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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모데전서 4장 9-16절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미쁘다 이 말이여! 

참말이다. 진실로....무엇이?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이란 것은 무엇인가? 

경건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배에 잘 참여하고 기도 잘하고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경건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참된 경건은 우리가 디모데전서 1장 이후로 계속 다룬대로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 경건은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참된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즉,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다. 집착하는 것이고, 나만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못된 사랑은 세상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만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 이기심과 집착이다. 

예) 나르시시즘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랑이다. 그를 우러러 보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에게서 나오게 된다. 세상의 사랑에 빠지면 더욱 더 나 자신에 집착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을 보고 이웃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나도 귀하게 여기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시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약 1:27) 


나에게 집착하면 할수록 나를 파멸시키지만 주를 바라보면 볼수록, 경건해지면 경건해질 수록 나는 건강해진다. 이것이 경건의 파라독스이다. 

신앙에는 이런 파라독스 투성이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라 하고 첫째가 되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한다. 

복있는 자는 가난한 자라 하고 나 자신을 부인하면 영생을 얻는다 한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경건, 경건주의는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100여년이 지난 이후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일대의 일대 신앙적인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종교개혁 - 종교 전쟁 - 아우부스부르크 종교회의 (기독교 공인) - 정통주의 시대 - 경건성의 위기 - 경건주의, 청교도 운동 시작 


종교개혁 100년 후 찾아온 경건성의 위기- 이성 중심, 교리 중심, 논리 중심 적인 신학 논쟁... 

삶이 따라오지 않는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능력이 없다. 삶의 변화가 없다. -> 지식 보다는 실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변화에 초점 


디모데전서의 이 구절에서 경건과 반대로 쓰인 말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

좀 더 앞으로 가면 1절의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

2절) 양심의 화인을 맞아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

3절)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금하라....


신앙의 양 극단 - 자유주의와 신비주의 

성경보다 합리성, 이성을 더 숭배 

성경에서 기적은 모두 신화, 천국과 지옥에 관련된 것은 모두 비유로서 진리가 아니다. 

예수의 말 외에는 모두 인정 거부

예수의 삶 속에서도 기적은 거부

->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는 그저 도덕적 스승이다. 성인들 중의 한 명이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그의 사상을 따르는 것이다. 

공자를 따르듯, 부처를 따르듯... 


왜 이 이성의 신학이 잘못된 것인가? 

이성의 신학의 시작: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주의, 이른바 모더니즘 

과학에 대한 맹신. 

신학: 하나님은 우주를 시계 톱니바퀴처럼 완전하게 창조해 놓으셨다. 

그래서 창조 이후의 세계는 과학의 법칙, 이성의 법칙을 통해서 운영된다. 

예수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은 간섭하지 않으시거나 시계가 고장 났을 때에 잠시 수리하듯 제한적으로 간섭하신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포스트 모더니즘. 

기독교 세계가 아니라 일반 세계의 흐름이 이성의 세계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그 회의의 시작? 세계 대전...과학이 발달되면 유토피아가 올 줄 알았는데 그 결과 온 것은 지구의 종말의 위험. 

왜? 이성도 방향을 읽으면 폭력이 된다. 

다시 신학으로...


역시 기적은 있다. 과학으로 이해되는 세계는 극히 일부분이다. 이해되지 않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 


신비주의: 성경보다 체험을 중시한다. 직통계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럴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인지, 나 자신의 생각으로부터인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인지 분별해야 한다.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계시의 분별 기준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다. 

예) 재림 예수, 종말의 때- 성경에 분명 떄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이다고 말씀했다. 그런데 끊임없이 때와 기한을 이야기한다. 

말씀이 말씀을 거스를 수 없다. 


허탄한 신화- 무엇 했더니 어떻게 하였다. 주일 성수 했더니 사업이 대박 났더라. 

그럴 수도 있고 안 스럴수도 있다. 은혜는 공식이 아니다. 

은혜는 측량할 수 없기 때문에 은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신앙을 공식화 시켜서 이야기 한다. 

허탄한 신화이다. 내게 일어난 일이 남에게 그대로 안일어 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맞게 역사하신다. 


경건- 믿는 자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아니 꼭 필요한 것이다. 

수고하고 힘써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게 되기를... 


왜? 이 세상에서 경건에 힘써야 하는가? 우리의 소망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둔 자이므로... 

경건하지 못한 자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자들, 왜? 경건하지 못했기에...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불평하고 세상을 섬겼기에... 

우리는 왜 경건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 목적을 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둔 자이므로.. 


12절)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연소함- CHILDISH, CHILDLIKE 

1) 나이가 어리다. (Childlike) 

2) 유치함 (Childish) 

무엇이 신앙의 유치함인가? 

기도는 잘하지만 행동은 그대로, 쉽게 혈기를 내고, 신앙보다 감정에 치우치고, 정욕에 이끌리고, 유혹에 늘 넘어지고...


유치함의 반대 - 성숙함. 온전함 

12절 후반) -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의 본이 되라! 유치하게 살지 말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힘쓸 것-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은사를 활용하라! 

전심전력하여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라! 계속하라. 끊임없이 하라! 

무엇을 위해? 나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내게 주어진 영혼들을 위해....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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