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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현실의 충돌 (삼상 17:33-40) 


여러분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 나의 주로 영접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앙생활이 그냥 여러가지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통장의 돈을 의지하고, 직장을 의지하고, 혹은 자녀나 배우자를 의지하고 살아가듯, 그런 것보다 더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 국민 대다수가 의료보험을 들고 생활하듯 위급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그런 삶의 한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 뒤에 영생이 있다고 하니까 노후 대책을 하듯 죽음 이후의 만약에 닥칠 삶을 위해 미리 가입해 놓은 보험같은 삶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도 안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냥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에 푹 빠진 아이들처럼 신앙생할이 하나의 습관이 되어서 늘 함께 하고, 그 안에서 때로 재미도 느끼고 유익도 얻지만, 더 좋은 무언가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바꿀 수도 있고, 쉴 수도 있고, 언제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저 익숙한 습관으로서의 삶의 양식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가장 사랑받는 다윗의 등장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삶도 예수를 주로 영접함으로 성령이 내 안에 오시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세례의 사건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고백의 사건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거나,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 어느 것이든 개인으로 볼 때는 내가 하는 의지적인 행위처럼 생각되지만 사무엘이 베들레헴으로 찾아가 기름을 붓듯이,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거나,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건은 주가 나를 선택하신 사건, 주가 날 만난 사건으로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날 선택하신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베드로가 주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륙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 (마 16:17) 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적인 우리가 결코 알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건이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적, 혹은 신학적으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건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는 사건인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특정한 일을 위해 임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중에서 오직 막내 아들 다윗을 뽑았듯이 내가 하나님을,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여러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위해 뽑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사울의 궁정에서 첫번째 그의 일을 시작합니다. 참 왕이 되기 위한,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훈련, 연단, 연습이 그의 삶의 일을 통해 주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이후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한 훈련장, 연습장이 됩니다. 

우리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서 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가정에서건, 학교에서건, 직장에서건 내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 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고,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서 쓰실 때에 잘 준비되어 지도록, 혹은 그 일 자체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일이 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안에서는 큰 일 작은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위해 특별하게 주신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신앙적, 신학적으로 이러한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그 분의 특정한 일을 위해 나를 부르셨다는 소명의식, 내 일에 그 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일을 위해 나에게 일이 주어졌다는 사명의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와 방식, 삶의 질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상이라는 것이 무서워서 아무리 하나님의 큰 은혜를 통해 선택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을 향해 가는 삶을 산다할지라로 매일 매일 겪는 일상의 어려움은 우리를 통해 일을 위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자로, 내가 사는 매일 매일의 현실에 하나님이 금방 도와주시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거나, 불평하거나, 우상을 향해 달려가는 삶으로 변질시켜 버립니다. 

일상의 어려움은 하나님을 철저히 내 일을 위해 필요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그렇게 내 일을 위한 도구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골리앗이라는 일생 일대의 장벽을 앞에 둔 이스라엘의 모습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두 가치관, 두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골리앗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과 신하들은 무기력합니다. 그 자신은 아무런 용기도 없고 문제를 이길 지혜도 없습니다. 단지 문제가 일어나면 이것을 누구에게 말할까 하여 능력 있는 자들을 찾아 헤맵니다. 그게 목사건 무당이건, 돈이건, 권력이건 대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문제를 해결할 자가 있으면 어린 아이에게라도 도움을 청합니다. 물론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교회의 목사나 교역자를 찾아가 자신의 문제를 상담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를 오직 주의 종에게만 의존하고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어린아이의 믿음도 벗어나지 못한 유약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직접적인 교통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 앞에, 문제 앞에 무릎꿇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2. 사울

골리앗이 비록 큰 용사이긴 했지만 그 능력으로 볼 때 사울 역시 골리앗 못지않은 훌륭한 용사였습니다. 블레셋, 아말렉, 모든 대적들과 맞써 싸웠고, 또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승리가운데 그가 키운 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힘이었습니다. 자기의 군사를 더욱 모았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이라는 자기 보다 힘쎈 장수가 나타나자 꼼짝을 못합니다. 힘을 의지하는 자는 더 큰 힘에 굴복합니다. 권력을 의지하는 자는 더 큰 권력앞에 비굴해집니다. 자기의 옷과 무기를 어린 다윗에게 주는 사울의 모습은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미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죄책감 가운데 언제나 자신의 운명을 두려워하며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골리앗이라는 산은 하나님이 자신의 죄과를 갚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많은 복을 얻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언제나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문제가 나타나면 곧 자신에 대한 징벌인지 알고 그 문제에 걸려 꼼짝달짝을 못합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적으로 열심히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저주받은 사람처럼 문제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문제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죄에 대해서 돌이키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지 결코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심판은 아닙니다.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존재는 오직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골리앗을 무찌르고 오는 다윗을 향해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저가 누구냐?"하고 묻는 장면은 바로 전장에서 영적으로 괴로워하는 자신에게 찬양을 통해 치유했던 다윗을 크게 사랑했다고 하는 말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는 철저하게 신앙과 현실이 구별된 자였습니다.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이 완전히 분리된 자였습니다. 


3. 다윗 

오직 다윗 만이 골리앗의 크기와 힘에 압도되지 않고 골리앗을 그저 할례받지 않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짐승으로 바라봅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의 키가 힘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어떤 문제든지 결과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이 크건 작건 문제는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부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산이, 혹은 내가 대면하고 있는 이 적이, 이 고난이 하나님에 대한 내 믿음을 드러낼 수 있느냐, 내가 믿음으로 이것을 바라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맞는 위험에는 위험 이면에 영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37절에 보면 다윗은 사울 왕에게 고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거대한 조직체이자 악한 영의 힘으로 움직이는 세상에 맞서기 위해서는 ‘객기’가 아닌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용기는 세상을 바르게 보는 안목에서 생겨납니다. 사탄의 속성은 양을 움켜가는 짐승들과 유사합니다. 사탄은 연약한 성도들을 유혹하여 두려워하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도망하게 하고 나약하게 합니다. 세상을 너무 과소평가해서도 안되지만 과대 평가하여 숨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문제로 다윗의 눈으로 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자녀에 대한 문제이든 직장에 대한 문제든, 신앙에 관한 문제든 상관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나 사이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큰 문제가 크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작은 사소한 문제도 하나님 앞에서 크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방법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방법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의 상식으로는 마땅한 방법입니다. 39절에 보면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한 고로~~ ”라고 나옵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잘못은 익숙치 못한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줄을 찾고 백을 찾고, 도와줄 모든 것을 찾습니다. 

자, 지금 사울이나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이 세상의 모든 방법을 가지고서 골리앗을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보다 훨씬 어리고 전쟁의 경험이 없는 다윗에게 무기를 가져다 주고, 세상적인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도와주려는 그들의 모습은 선의라고 해도 어리석은 것 아닙니까? 그들의 방법이 안되서 지금 다윗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다윗에게 와서 그들이 했던 방법대로 골리앗과 맞서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순종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방법입니다. 바쁜 일 있어도 예배 중심으로 살아가고 비록 쓸데가 많아도 십일조 위주로 감사하면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몸에 익어 있는 믿음의 행위들을 세상에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의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배짱 믿음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믿음만 가지고 골리앗을 이긴 것은 아닙니다. 그는 평상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인 양들을 지키는 데에 성실하고 전문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골리앗을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일상에서의 성실성과 이에 더하는 전문성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작은 일에 있어서라도 다윗은 자기 분야에 전문가였습니다.

  

가장 압권인 장면

40절)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골리앗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군복과 칼을 벗어던지고 냇가에서 조약돌을 고르고 있는 다윗을 상상해 보십시오. 자기가 늘 하던대로 쉴만한 물가에 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 하나님과 교제하는 모습... 가장 다윗다운, 믿음의 눈과 방법으로 세상과 맞서기 위한 방법...

급할 때일수록 먼저 기도하고, 일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께 아뢰고...다급할 때 당황하지 않고, 위급할 때에 서둘지 않고 자기가 늘 하던대로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모습.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술을 사용하셔서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첫째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절대적인 믿음이었지만,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자기 생활에서 경험했고 또한 평상시 연마했던 일상에서의 성실함과 전문성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일상 중에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이 있습니다. 학생의 신분이면 그 신분에 맞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생활보다 우선하는 것은 교만한 행동입니다. 주부는 가정의 안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교회의 모든 일들도 마땅히 감당하는 교회의 일꾼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자녀를 잘 돌보는 부모가 주일학교에서도 영혼을 잘 감당하는 교사가 될 것입니다. 남자들은 세상의 직장에서 교회 운영의 노하우를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행정과 교회의 운영이 세상의 기업들보다도 더 원만하고 깨끗이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남성들의 사회생활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사무엘상 17장 50절에는 다윗의 승리에 대한 짤막한 정의가 나옵니다.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었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세상 사람들은 칼로서 승리를 거두려고 합니다. 남을 죽이고 깎아 내리고 업신여기므로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칼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성실함에 있습니다. 믿음과 이것을 행하는 성실한 행동이 뒷받침이 될 때에 우리의 인생의 어떤 것도 단지 신앙을 드러내게 하는 과정일 뿐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방법입니까? 아니면 믿음의 방법입니까? 

만약 여러분의 익숙한 것이 믿음의 방법이라면 그 방법대로 세상을 살아가십시요. 결코 흉내내기 힘든 완악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믿음 안에 승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감당하기 힘든 우리의 모습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