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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길 (신명기 8장 11-20절)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생 일대의 실수는 목사 안수를 하러 LA를 내려가려다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4시간여를 거꾸로 르노 방면 까지 간 사건입니다. 

이런 저런 실수가 많았지만 이 사건만큼 제 마음 속에 크게 남는 이유는 가는 길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목회자로서의 길을 시작하는 목사 안수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길을 되돌이키며 전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나, 하나님이 더 준비하라고 하는 건가?하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갔고 그 이후에도 종종 그 사건을 생각하면서 내가 바른 방향을 가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종종 해 보게 됩니다.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 많이 제 삶과 목회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막연함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난 정말 말씀을 준비하거나 목회를 하면서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진실하게 전하고 있는가? 생명력 없는 그냥 배운 것을 가지고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가? 난 성도들을 바르게 이끌고 있는가?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잘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면서 깨닫지 못하고 그냥 죽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돌이키고 고쳐야 하는데.... 정말 고민이 많이 되고 확신이 잘 서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운 부흥은 성도의 숫자가 느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군중에서 성도로, 무리에서 제자로 자라가는 것, 구원받은 성도에서 성화되는 성도로 자라가는 것...적어도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부흥은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현장에 오면 성도들도, 목회자들도 끊임없이 성도의 숫자로서 부흥을 이야기합니다. 몇명이 늘었는지, 예배당은 큰지...이런 것들이 부흥의 기준이 됩니다. 

지금도 어떤 교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개척한지 3-4년만에도 몇배가 되었다더라. 성전을 건축했다더라...하는 그런 성공의 사례들... 

그게 비판해야 할 것이 아니라 분명 칭찬받을 만한 일인데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더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이런 것들에 대해서 영향을 받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들은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 아브라함부터,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모두 지루하고 고통스러우리만치 많은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빠른 길도 돌아가고 더디가는 훈련을 받았기에 빨리 가고 느리게 가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지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빨리 가려다 탈 나지 말고 천천히 인내하며 우리의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 더 올바른 하나님의 방법일 것이요, 

금그릇과 은그릇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요, 내가 할 일은 그릇의 재료를 바꾸려 하지 말고 그저 깨끗한 그릇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 보다 더 큰 고민과 두려움은, 그럼 우리 성도들의 신앙은 자라고 있는가?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있는가?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 갈망하고 있는가? 예수를 닮으려고 하는가? 

더 큰 고민은 이 문제에 있어서도 선뜻 자신있게 "예"라고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정말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한 말씀이 무언가를 하나님께 구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기도로서 구하면서 준비를 하였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난 주엔 '이게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들면서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말씀을 전하면 그냥 듣기 좋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성도들의 심령에 박히고, 박히면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제가 죽은 씨를 뿌리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막 생기는 것입니다. 

생명이 뿌려지면 변해야 하고, 생명이 뿌려지면 자라고 열매맺어야 하는데...저는 누우면 자는 스타일인데 지난 주는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시에도 일어나 교회에 나오고, 3시에도 깨서 교회에 나오고...

목사 안수 받으러 르노에서 헤멜 때 보다도 훨씬 더 고민하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저와 제 가족만 고생하는 것인데, 제가 목회의 방향이 잘못 되어있으면 여기 모인 성도들을 고생시키는 것 아닙니까? 


제가 이번 학기에 학교에서 모세 오경을 가르치면서 새벽예배 설교도 그것을 가지고 하고 지금 출애굽기를 마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삶의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모세에게 하는 원망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왜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 여기서 죽느니 애굽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원망하지 않습니까? 

그 마음이 마치 길을 잃고 헤메이는 저의 마음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달이면, 아무리 대규모 인구가 이동한다해도 두어달이면 될 길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머물면서 그 사람들도 얼마나 자주 우리가 길을 잘못들었나보다. 

이제 여기에서 죽나보다...가나안은 들어가지도 못하겠구나...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젠 애굽에 돌아갈 소망도 다 잃어버리고 그냥 광야 가운데서 이렇게 사나 죽나보다 하는 생각을 아마도 가졌을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출애굽한 백성이 3개월여만에 시내산에 도착해서 계명을 받고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성막을 세운 약 1년여간의 기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1년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정말 긴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3개월이면 가나안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시내산에서 7개월이나 머물면서 모세는 산에 올라가 사라지고 내려와서는 뚱딴지 처럼 성막을 지으라고 하고....아니 예배를 드리려면 빨리 가나안에 들어가서 드리지 왜 이 광야에서 번거롭게 성막을 짓고, 이동할 때마다 그 성막을 함께 짊어지고 이동을 해야 하는지... 아무리 하나님께서 열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내리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지만 이렇게 느리고 피곤하게 광야생활을 하면서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없고, 잘못 왔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신명기는 출애굽 사건 이후로 40여년이 지나 이제 가나안을 앞두고 모세가 죽기 전에 남은 새 세대의 사람들에게 준 말씀입니다. 

결국 출애굽 첫 세대는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도 못한 채 죽고 이제 애굽을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시대에게 지난 일을 되돌아보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자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자기의 부모세대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저 광야가 자기 집인줄, 그들 부모 세대들 보다도 어쩌면 가나안에 대한 희망은 더더욱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의 소망이 거의 끊겨버린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8장 1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신 8: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그냥 언젠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막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반드시 하신다는 확실함에 기초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40년동안 가나안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동안 하나님께서 만나를 통해서 지키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법, 운이 아니라, 힘이 아니라, 떡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알게 해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골리시려고 일부러 질질 끈 것이 아니라 그들이 광야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굶지 않고, 주리지 않고 먹고 입고 살 수 있었음을 보여주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그 복이 임하게 됨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만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이 없이 그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줄 모르지만 결국은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리 능력으로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교만과 우연과 상황논리로서 그 축복을 알 것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 가나안 땅은 반드시 순종을 통해, 말씀을 통해 들어갈 땅임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의 뜻은 너희를 풍성하게 거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거할 때에 주시는 권리, 권능, 물권, 인권, 신권을 부어 줄 것이다. 

사람을 다스릴 권리, 물질을 다스릴 권리, 하나님과 교제할 권리를 주셨으니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그것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줄 것이다. 

구약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에서도 다른 것은 다 천국, 하늘 나라에 관한 복이지만 세 번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온유가 무슨 뜻이냐? 길들인 말, 훈련된 말을 가리킬 때에 쓰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말씀으로 훈련된 자,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또 십계명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네가 땅에서 장수하리라. 

육신의 부모와 하늘의 부모를 공경하라. 경외하라. 순종하라. 그러면 땅을 얻고 그 곳에서 오래 누릴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기복신앙 기복신앙 할 줄 모르는데, 기복신앙은 그저 복달라고 빌어서 복을 받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고, 따르는 자에게 창세기에서 아담에게 주셨던 생육하고 다스리고 번성하는 복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복이 되리라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는 보장을 해 주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의미는 물질이 아니라 동행이다. 사시기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백성에게 나타나는 타락의 역사, 징계의 역사. 

실재로 물질 축복받았다고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하지만 결국 지나면 내가 어떻게 해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하는 숱한 사람들.... 그러면서 슬그머니 신앙생활은 뒷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사사기서의 사기꾼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순종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만 믿는 것이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십자가만 믿으면 천국 간다. 

그런데 그런 핑계를 미리 아시고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다. 나를 믿는다고 하면서 내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번성합시다. 부흥합시다.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는 삶을 삽시다. 

그러기 위해선?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건 우상숭배입니다.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어떻게 하나님이 그러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러냐?라고 하나님을 평가하지만 성경에는 이미 하나님이 하시는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가르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보다 큽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보다 크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심지어 다른 사람도 판단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하나님을 판단하고 평가합니까? 

큐티 훈련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훈련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알아야 순종합니다. 들어야 순종합니다. 


제 인생길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제 길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부흥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번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함을 누릴 것입니다. 

말씀에 생명을 겁시다. 그 곳에 운명을 겁시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