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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옮겨놓으라 (요한복음 11:39-41) 


[요 11:3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신앙생활하면서 목사이건 성도이건간에 흔히들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 참 안변한다는 소리입니다. 

은혜를 받아도, 때로는 기적을 보아도 사람의 본성은 참 잘 안변한다. 중보기도를 하고, 작정하고 누군가를 전도하기 위해서 기도해도 그 사람 참 안변한다하고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신앙생활 하면서 바뀌셨습니까? 안바뀌셨습니까? 


대부분, 사람들 간증할 때나 심방을 통해, 상담을 통해 직접적으로 물으면 예수 믿고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생각이 변하고, 말이 변하고, 행동이 변화했다고 말입니다. 신앙생활 했다고 하면서 하나도 안변했다고 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그런 말은 난 예수 잘 안믿었습니다 하는 말과 거의 같은 소리이기 때문에 거진 다 물어보면 신앙생활 해서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하곤 합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을 보면 잘 안변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난 참 변했는데 남은 참 안변했다고 합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난 은혜 받아서 많이 변했는데 저 사람은 은혜 받아도 하나도 안변했다 이렇게 우리의 모습이 부정적이고 옹졸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연약한 자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네 이름을 이제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 하라" "네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시몬이라 하지 말고 베드로라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 그것은 내 이름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 본질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우리는 "이제 나를 만남으로 네 본질이 바뀌었다"라는 선포 앞에 "하나님, 우리는, 사람은, 사람의 본질은 잘 안바뀝니다." 하고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1.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하시면서 특별히 사랑하신 가족이 있었습니다. 베다니 지역에 사는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의 가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역을 지나실 때마다 꼭 그 집에 들려 묵으시며 함께 식사하기고 교제하셨습니다. 

그들 또한 극진하게 예수님을 잘 대접하였습니다. 특별히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좋아하여 누이 마르다가 음식을 차리고 있을 때에도 예수님 앞을 떠나지 않아서 마르다의 원망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했던지 자기가 가진 가장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그 발을 씻은 사건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오라버니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받습니다.

요 11:3)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병들었으니 예수님께서 어서 오셔서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그 분을 반드시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는 이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떤 병이라도, 그 분이라면 다 고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급하게 소식을 보냈는데 예수님께서 어찌된 영문인지 그 소식을 듣고도 뜸을 들이십니다. 


[요 11:5-6]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언뜻 이해하기 힘든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그들을 사랑했는데 but,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였다는 것입니다. 이틀을 더 유하면서 무엇을 했는지 성경에는 나와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별다른 사건도, 급한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요 11:9-1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밤이 되면, 그 사람의 마음에 어둠이 깃들면, 은혜가 떨어지면, 낙망하고 실망하면 그 마음에 빛이 없어서 실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요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 지금 무엇입니까?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할 때가 많지요. "예수님, 내가 아파요. 내가 병들었어요. 빨리 와서 날 치료해 주세요. 고쳐 주세요. 당신이 날 사랑하시면 빨리오셔서 날 아프게 내버려 두지 마시고 날 힘들게 하지 마시고 빨리 와서 내 병을, 내 문제를 고쳐 주세요..."  그런데 지금 사건처럼 예수님께서 뜸을 드리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기도에도 침묵하시고 뜸을 드리시면 역사하지 않는 시간은 우리 영혼의 밤입니다. 실족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무엇인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지금 이틀을 유하시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마르다와의 만남) 

  • 이틀을 머무신 후에 다시 유대로 가신다. 이틀을 유하고 유대로 가셨다는 것은 소식 받은 후에 삼일 후에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삼일하면 떠오르는 것은 죽음의 시간이다. 인간적인 모든 것이 꺾이고 죽게 되는 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상황은 끝나있었다. 나사로는 죽고 장례마져도 다 치뤘다. 

       (요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는 예수를 맞이하고 마리아는 나오지 않는다. 

      (요 11: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했던 마리아가, 마르다가 예수님 대접한다고 분주할 때도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군소리를 들었던, 그러나 예수님의 칭찬들었던 마리아가 예수님이 집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왜 집에 앉아있을까? 삐친 것이다. 자기가 그토록 병들었다고,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했는데 곧장 오시지 않았다고 심령이 상해 있는 것이다. 

  • 마리아는 그 삐친 심령으로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는데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으면서 속상한 마음을 표현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1절) 
  •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유명하신 말을 하시지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3절) 
  • 그러니까 마르다가 "마지막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24절)이라고 대답합니다. 지금 마르다의 말은 무슨 말입니까? 언젠가는 되겠지요. 언젠가는 이루어 주시겠지요... 믿음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지금 체념의 표시입니다. 원망의 표시입니다. "네, 언젠가는 내 기도 제목 들어주실 줄 알아요. 천국가면 그 땐 다 이루어 주시겠지요..." 믿음의 소리 같지만 좀 공허한 소리입니다. 기도를 해도 자신이 열매를 보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확신 가운데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요 하면서 확신없이 기약없이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좀 넘어가 봅시다. 


3. 마리아와의 만남 

  • 이 말씀을 마치시고 마리아를 부릅니다. 가장 사랑하는 마리아를 만나시는 장면이 좀 인상적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예수님이 빨리 오시지 않아 나사로가 죽게 된 것에 대해 마음이 상해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지요. 예전 같으면 그 집에 들어와 마리아를 달래주거나 데리고 나올 텐데 

(요 11: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 일부러 마리아를 그 곳까지 나오게 하십니다. 예수님께 나아와서 서운했던 마음을 다시 표현하지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2절)마르다가 21절에서 말한 내용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그의 반응을 보고 예수님께서 비통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얼마나 비통히 여기셨나하면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토록 예수님은 우셨을까? 


자, 이제 여기까지의 말씀을 정리해봅시다. 

지금 마리아와 마르다가 내 오라버니가 병들었습니다. 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 

병은 죄악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도 때때로 죄악의 열매를 맺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옛 습관, 옛 자아, 옛 모습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 영혼의 어두운 때, 파도가 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땐 몹시 힘이 듭니다. 영혼의 병이 들 때, 그것은 우리가 아직 죄의 습관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 행동을 일삼을 때에 일어납니다. 

은혜 받은 자가 그러한 것을 경험하게 될 떄, 그리스도인이 그런 죄의 모습을 대면하게 될 때, 그것은 어찌 보면 죄인된 나의 자아를 대면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고 십자가 앞에서 죽어야 되는 시간입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기뻐한다"는 말은 나의 죄된 모습을 대면하게 되는 시간은 누구도 대시해 줄 수 없는 철저하게 홀로 내 어두운 모습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아픔의 순간이고 죽음의 순간입니다. 

내 모습을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고통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야 부활이 옵니다. 


이지선양의 간증 

"두 달만에 자기의 얼굴을 대면하게 되는 그 순간...." 

그는 육신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것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성도의 부활은 세례입니다. 옛 자아를 바라보며 그것을 주님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죽고 다시 새 모습으로 살아나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름이 바뀌는 시간이며 우리가 온전히 변화되는, 새롭게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4. 돌을 옮겨놓으라. 

  • 마리아의 원망의 소리를 듣고 우신 주님은 무덤으로 갑니다. 무덤은 무엇입니까? 죄악된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를 삼키는 고통, 염려, 두려움, 부정적인 생각,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는 내 약점....
  • 지금 예수님이 그 곳에서 들어오셔서 우리를 성령으로 바꾸어 놓으셔야 하는데 무덤 앞에 무엇이 있습니까? 큰 돌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 (요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 내 아픈 속마음, 내가 여전히 품고 있는 변하지 않는 연약한 모습, 부정하고 싶은, 내가 홀로 만나고 싶지 않은, 하나님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굳는 마음, 타락한 마음, 몸에 배여 있는 죄악의 습관들....
  • 예수님은 내 마음 밖에 오셔서 이제 네 마음의 돌을 치워라하십니다. 하나님, 냄새가 나서 열 수가 없어요....썪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것이 정말로 주님과 대면하는 시간, 내 이름이 변하는 시간, 온전히 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날 살리는 시간입니다. 


(요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어도 살겠고-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돌을 치우고, 예수님께 내 연약함을 모두 내어 드리고 주님 내 마음의 굴로 들어오세요. 내가 죽어있는 공간, 죽이고 싶은 나의 모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살려 주세요... 그러면 사는 것입니다. 부활이 임하고 생명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자, 정말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에...제자들은 그 무덤에 가지 않습니다. 누구도 예수의 시체 곁으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기대했던 전능하신 예수가 죽자 무력한, 무능력한 예수에게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여인들만이 예수가 계신 동굴로 새벽부터 일어나 갑니다. 

그녀들에게 있는 한 가지 걱정은 무엇입니까? 누가 무덤을 가로 막은 돌을 치워줄까? 

예수와 우리를 가로막은 돌을 치워줄까? 

다른 제자들은 그 돌을 치우려고도 하지 않고 그 곳에 오려고도 하지 않는데 여인들은 어떻게 돌을 치울까 염려하면서도 아무런 대책이나 도움이 없이 그냥 예수 앞에 나옵니다. 무조건적으로 예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오니까 어떻습니까? 이미 돌이 치워져 있습니다. 

예수와 우리 앞에 놓였던 돌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무작정 나오니까 어느 덧 돌이 굴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됩니다. 

자기 능력으로는 돌을 치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능으로 우리 모습 그대로 주님앞에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다 아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께서 그 돌을 치워주십니다. 

주님 앞에 가로막혀 있는 돌문을 주님께서 제거해 주십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그렇습니다. 


(요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은 후에 돌문이 굴러져 있는 예수의 무덤을 보고 나사로의 무덤 가에서 돌을 옮겨놓으라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지시는 부활의 주님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성도의 변화. 

무덤의 돌을 옮겨놓아야 한다. 그래야 무덤에서 나온다. 

돌을 옮기는 것은 내 마음의 100%를 하나님 앞에 공개하는 것이다. 냄새나서 악취가 나는 내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나, 내 마음의 깊은 곳을 내가 대면하고 그것을 주님께 열어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런데 용서받아야 되고 용서받는 것이 약속되어있는 죄인이다. 의로운 죄인이다. 변화되는 죄인이다. 언제 변화가 나타나는가? 우리 마음의 돌을 옮겨 놓을 때에 우리의 심령은 더 이상 무덤이 아니라 빛이 되고 능력이 되고 부활이 되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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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11.09 22:42

    잘보구갑니다 담아가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