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82019  이전 다음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너희도 가려느냐?  (요한복음 6장 60-68절) 


 


  • 요한복음의 시작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로고스)=하나님
  • (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성육신 하신 말씀, 성옥신 하신 하나님-> 바로 예수 그리스도 

->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우리같은 육신이 되어 오셨듯이 육신인 우리가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말씀이 되어 살아가라고... 


그런데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11절) 

그런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12절) 

-> 구원의 메시지 


이 배경을 가지고  요한복음 6장을 보자.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의 기적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온다. 어떤 분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폄하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 모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예수님의 데표적 이적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갈릴리 지방의 예수가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오실 메시야로 소문이 나게 된다.  


예수의 사역은 누가복음 4장 13절에 표현된 대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사건이었다. 병자들이 치유받고, 눌린 자들이 자유를 얻었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정점에 오병이어의 사건이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이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모여들고 더 많은 예수에 대한 소문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을 보고 예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기다리며 임금 삼으려 함을 보고 (15절) 또한 예수를 쫓아다니는 것을 보며 그들의 중심을 간파하시고 한탄하셨다. 


"2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들을 보며 예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27절)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오신 참 목적, 자신의 참 역할, 자기를 통하여 무엇을 이룰까, 그야말로 참 복음, 진짜 의도를 말씀하시는 장면이 6장 후반부의 내용이다. 


이른바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나의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는다" 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이해 못할 말씀이었지만 반대로 예수님 편에서는 비유가 아닌 가장 직설적으로, 가장 구체적인 표현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역할을 말씀하신 사건이다.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가 가진 능력, 예수가 가진 힘이다. 그 역할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수건, 로마의 황제건, 바알이건 앗세라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 땅에 오서서 그들을 구원코자 했던 예수는 그들의 실패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버린 백성이요, 그들의 배는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물빠진 항아리와 같은 공허감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 혼, 육으로 이루어진다. 육은 밤과 물질로 채울 수 있다. 허기진 배는 밥으로 채우고 물질로서 안목의 정욕을 채운다. 

우리의 혼은 정서로 채운다. 보살핌이 필요하다. 나를 사랑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혼과 육은 오직 우리의 육신의 때에 펠요한 것이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살아있을 때에 제한된다. 

그런데 우리의 영적인 문제는 이 땅의 제한적인 물질이나 정서로 채울 수가 없다. 영은 영원한 것으로만 채워진다. 영원한 것은 영이신 하나님이요, 그 분이 이 땅에 말씀으로 내려오신 예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에 대해 무지하다. 물질로서 영을 채우려고 한다. 아니 영에 대해서는 무지 몽매하다. 그런데 그들의 배는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하나님이 옆에 앉아서 매일 같이 공급해줘도 그놈의 배는 꺼지면 또 배고프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영원에 눈을 뜨라고, 영혼에 눈을 뜨라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으라, 내 피를 마시라. 그런 자 만이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할 것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55-56절) 


  • 기껏해야 하루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 기껏해야 이 세상의 풍요만을 위해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자기가 추구하는 것만을 보게 된다. 아무리 진리를 얘기해도 자신의 정욕으로만 가득 차 있는 그런 사람들은 생명의 떡을 말하는데도 계속해서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기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당신의 피를 먹으라고 그 피를 먹어야만 너희가 죄에서부터 자유를 얻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셔도 여전히 오병이어만을 기대하며 물고기와 보리떡만을 바라보고 마는 것입니다. 
  1. 오병이어는 위대한 기적이었다. 우리의 연약한 작은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요를 체험케 하신 놀라운 기적이었다. 우리의 작은 십일조를 통하여 우리의 일생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기적은,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 그 분의 삶에 동참하는 것, 즉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 어떤 기적도 표적도 예수님의 살과 피보다 앞서나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피와 살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신앙이 이렇게 생명의 떡의, 예수님의 살과 피의 신앙이 되려고 할 때 많은 수많은 무리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육신의 행복을 위하여 믿었던 신앙이 참 영원한 나라의 영생을 위한 신앙으로 바뀌어 갈 때 수많은 무리들이 흩어져 버립니다. 배부르기 위하여 예수님을 단지 부분만, 순간만 의지하려는 신앙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하고 우리의 삶의 전 영역을 예수와 연합하는 삶으로 가고자 할 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도망을 쳐 버립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6절) 


예수님의 지혜와, 예수님의 권능과, 예수님의 이적으로 인해 다 내버리고 예수를 쫓았던 무리들, 그분과 함께 있으면 무언가 대단한 일이 발생할 것 같았고, 자신의 위치도 올라갈 것 같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줄로 여겼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너의 전 영역을 나와 함께 하자하고 말씀 하실 때에는 두려워서, 무서워서, 귀찮아서, 부담이 되어서 더 이상 예수를 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참 모습은 예수님이 강할 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적의 현장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질 때, 아무런 역사가 없을 때에, 너무나 고통당하고, 조롱당하고, 외면당하고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그 때에 참 신앙의 모습은 빛을 발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룰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시고, 육은 무익하다고, 세상의 가치관을 꺾어버리시고 영생의 복음을 드러내실 때에 대다수의 무리들은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물어보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복적인 신앙에서 정말로 영생의 참 신앙에 눈을 뜰 때,  더 이상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새로운 영적 가치관에 눈이 띄어질 때, 신앙생활에 고난이 따르고 십자가가 주어지고 죽음이 있어야 부활 할 수 있다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 할 때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라서 날 버리겠느냐?”


한국 기독교 안에 있는 샤머니즘적 요소

긍정적인 요소- 하나님 사상. 새벽예배. 신을 섬기는 사상. 복채...

부정적인 요소- 기복신앙(미래보다는 현실이 중요하다. 현실의 복이 최우선). 남을 꺾어 나를 세우려는 사상. 복채. 기쁜 일 있을 때, 중요한 일 앞두고 복채를 더 내어놓음) 


우리나라 - 복을 간절히 사모하는 나라- 배게에도, 숟가락 젓가락에도, 대문에도, 한복에도, 덧버선에도, 고무신에도, 복복복.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 복이 정말 필요했을 때....

정말로 신앙을 통해서 복받는 소식들이 전해짐. 여기 저기서 간증들이 쏟아짐. 

우리나라 60-70년도 새마을 운동->교회 부흥의 절정기. 최고의 화두는 복. -> 성취. 


5병이어 다음에 예수와 동행, 고난에 동참. 피와 살을 나누는 삶. 

샤머니즘은 남을 죽어 내가 복 받자. 그러나 기독교 정신은 내가 죽어 남을 살리자. 

내 살을 먹어 너희가 살아라. ->신앙의 전환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그 순간에 많은 신자들이 떠난다. 자기의 복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복을 찾기 위해...


* 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는가? 

1)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리려-> 복의 근원은 예수그리스도. 

2)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려....말씀을 증거하기 전에 먼저 먹어라. 기력을 좀 차려라. 


병든 자, 배고픈 자, 억눌린 자,  외로운 자를 치유하고, 먹이고, 해방시키고, 함께해 주시려...그러나 그 보다 가장 큰 이유는 영생을 주시려고... 복음서에 보면 구원의 의미가 각각 현세적인 구원과 내세적인 구원 모두 구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현세적인 구원은 만족이 없고 끊임없이 채워주어야 하고 그래도 만족함이 없어. 항상 부족하고 불만족하고 배고퍼한다. 오직 영생만이 이 모든 것을 채울 수가 있다. 


구약 - 말씀에 순종하면 복, 그렇지 않으면 화.. 그런데 말씀 잘 지켜서 복 주면 그게 지속이 안됨. 채워지면 교만해지고 채워지면 죄짓고, 채워지면 떠나고... 죄와 복의 순환.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 죄와 순환 사슬을 끊는다. 영원한 복을 줄 것이다. 

영생만 가지면 다 해결될 수 있도록.... 그런데 영생이 무슨 의미인지를 도대체 알지 못한다. 3장 니고데모 -> 어찌 사람이 거듭날 수 있습니까?  

현세적 믿음에서 영생의 믿음으로 갈 적에 많은 신앙인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는 생명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매 내가 어디로 가오리까? 하며 주를 붙잡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내 삶 가운데서 이루면서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