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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대피소 (시편 91편 1-16절)

 

시편 91편은 아직 학자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유대 경전 미드라쉬의 해석에 의하면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나서 쓴 글이라고 설명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다윗이 고난 당할 당시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내용이라고도 한다.

 

다윗의 글이건, 다윗의 글이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노래를 함께 찬양하며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의 길을 걸어갔다.

이것이 모세의 글이건 다윗의 글이건 지금 시편기자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3절: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

새 사냥꾼의 올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물들도 영리해서 사람이 놓는 덫을 구분할 줄 안다. 미리 쳐 놓은 덫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요리저리 잘도 피해 다닌다.

그런데 새 사냥꾼의 덫은 어떠한가? 전혀 새로운 공격, 뜻밖의 곳에 위치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믿는 자를 넘어뜨리는 전혀 새로운 방법의 공격, 그것이 무엇인가?

신기하게도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새 사냥꾼의 올무로서 심한 전염병을 이야기한다.

 

5-6절은 다시 그러한 시편 기자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5절)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찾아오는 화살

-> 이것은 낮에 받은 공격으로 인해 그 두려움과 불안으로 잠못이루는 밤의 공포를 도치시켜 표현한 것이다.

즉 낮에 받은 화살은 육체적으로, 직접적으로 받은 공격이라면, 밤에 찾아오는 공포는 그러한 화살로 말미암아 생겨난 정신적 공포, 불안을 이야기한다.

 

(6절)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 아무도 모르게 퍼져나가는 전염병을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으로 묘사하고

그로 말미암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재앙을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이라고 표현한다.

 

분만 아니다. 그러면서 7절에 그러한 것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천 명이 네 왼편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으러진다고 말한다.

 

읽으면서 느끼시겠지만 시편 91편의 내용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전염병을 맞고 있는 인간의 공포와 두려운 상황과 너무 닮아 있는 장면들이다.

 

지난 주에 제 아내를 비롯해서 코스코나 대형 마트를 갔다오신 분은 마스크 뿐만 아니라 쌀과 물까지도 사재기로 인해서 살 수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하시더니 신문을 보니까 호주와 일본에서는 휴지가 동이 나고 먼저 산 사람에게서 휴지를 얻기 위해서 몸싸움을 벌이는 일까지 있다는 내용이 사진과 더불어 실린 기사를 보았다. 왜 하필이면 휴지가 바닥나나 했더니 휴지의 원료가 중국에서 나는 것인데, 이제 그 재료를 수출할 수 없어서 이제 곧 휴지 대란이 난다는 이야기가 퍼저나가면서라는 것이다.

그 소문도 곧 가짜 뉴스로 판명이 났다. 중국이 없어도 나라마다 휴지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문만 가지고도 나라의 휴지가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몰라도 그저 남들이 사니까 두려움 가운데 같이 사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에 살고 있는 형님께도 전화를 했더니 그곳에서도 마스크를 비롯해서 이런 저런 사재기 마트를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온 세상이 난리가 났다.

 

역사를 들여다 보면 유래가 없던 일도 아니고 우리 또한 몇 해전 메르스나 사스같은 전염병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퍼지다 보니까 더 큰 공포와 불안감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이다.

 

중세 때나 가깝게는 1900년도 초반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을 때도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사태만 보아도 한 번 전염병이 올 때마다 세계가 얼마나 아수라장이 되었을 지는 가히 상상이 간다.

 

재난의 때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난 끄덕없어. 난 그래도 평안해 하는 것은 오히려 문등병처럼 통증을 못느끼는 무딘 심령이라는 것이다.

 

  • 전쟁이나 지진 같은 피해도 엄청난 재해지만 전염병이 그와 다른 것은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힘들어도 같이 있으면 위로가 되고, 같이 있으면 두려움이 덜할 텐데, 전염병이라는 것은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고 사람 모인 곳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롯이 홀로 맞아야 하는 재난은 공포 그 자체이다.

 

  • 더군다나 이번 사태로 교회와 성도가 겪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재난이나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믿음을 지키고,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다.

 

그런데 교회모임 자체가 바이러스의 공포에 노출되면서 교회 모임을 갖는 것 자체가 눈초리의 대상이 되었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 조차 바이러스의 위험으로 인해 삼가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위기를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 있어서 시편기자가 말하고 싶은 신앙의 처방은 무엇인가?

 

[시 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시 91: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 은밀한 곳와 그늘은 무엇인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평소 때는 그 가치를 알 수가 없는...

 

나다나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부터 너를 알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은밀한 곳과 전능자의 그늘은 주님과 긴밀히 교제하는 자,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있을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이다.

 

  • 그러한 자들의 고백이 무엇인가?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누가 하나님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정말 긴박한 상황에서 그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피난처라고 여러분의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고백할 수 있는가?

어떤 자가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가?

 

바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다.

일상에서, 평상시에, 남이 알든 모르든, 아니 남이 알지 못하는 바로 그 시간에 주님을 찾는 자들이다.

 

  • 피난처이신 하나님은 그러한 자에게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시는가?

 

[시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어떤 모습인가? 새가 자녀를 품는 모습이다. 어미가 아이를 품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우리를 품으신다. 우는 아이를 어르시듯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우리를 앉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또한 그는 어떻게 우리를 도우시는가?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신다.

His faithfulness will be your shield and rampart

그의 신실하심은 너의 방패와 성벽이 되신다.

 

우리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의 진실하심, 그의 신실하심.

그가 자기 백성을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어미가 간난아이를 품듯 우리를 품으시고 우리의 성벽이 되고 방패가 되신다.

 

어떤 자에게? 하나님과 은밀히 교제하며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에게...

 

  • 전환

[시 91:9-10]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분명 신앙인에게 있어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의 보호처가 되신다.

그 말이 곧 신앙인은 전염병이 돌아도 병에 걸리지 않고, 재난이 와도 화가 미치지 못한다는 소리인가?

 

하나님이 천사들을 명령해서 믿는 자들은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만 전염병에 걸리게 하시는 것인가?

이것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오만함이다.

 

물론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하나님은 믿는 자는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는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믿지 않는 자들만 재앙이 임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신앙적이지도 않다.

 

[시 91:12-13]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므로 위험한 상황에서 사자 앞에 나가듯이 뛰쳐 나가고 독사를 발로 밟으려 한다면 이것은 신앙이라기 보다는 자기 도취요, 자기 망각이다.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구절이 신약에서 누구를 시험하기 위해 쓰여진 말씀인줄 아는가?

 

[마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바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하면서 이 구절을 가지고 시험하는 구절이다.

 

네가 뛰어들어도 죽지 않아.... 그러니 한 번 뛰어봐....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코로나로 두려워 떨어도 성도는 다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예배당에 나오라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어떠한 질병에 걸려서 쉬어야 할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예배하러 나오는 것은 개인의 믿음이요, 개인의 신앙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질병이 남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 지켜주실 것이야 하면서 모임을 주장하는 것은 믿음 이전에 맹신이다. 설사 전염이 되지 않는다해도 그 사람으로 인해 타인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두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남을 살리는 것이지 두려움을 주고 죽이는 것이 아니다.

 

[시 91:14-15]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은 재앙이 내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고백에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그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고난이 없을 것이 아니라 그 고난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신다고 말씀하신다. 고난을 면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환난 당할 때에 그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신다.

 

(L 목사님의 간증)

딸의 희귀병으로 말미암아 목회도 학업도 중단하고 딸도 학업을 포기하고 장기 휴양....

왜 목사님인데도 그런 고난을 당해야 해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그런데 병원의 원목으로서 많은 환자와 그 가족, 보호자들을 위로하고, 의사들에 앞서 환자와 그 가족을 돕는 사역...

 

자신의 모든 고난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결코 의미없는 고난을 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 안정제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이 비례한다면 오늘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큰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살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거 그 어느 떄보다 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며 산다.

1950년대까지 안정제라는 약은 없었다. 처음 안정제가 나왔을 때 광고가 어떻게 소개되었는지 아는가

"행복알약, 마음의 평화를 주는 약, 행복을 처방하는 약"이라 불리며 신비의 알약이라 소개되었다.

지금 이 안정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용되고 흔한 약이 되었다.

 

약이 우리의 심령을 평안케 할 수 있는가? 안정제가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나?

아무도 지금은 그 광고의 문구를 믿으려도, 들으려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평안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당신은 위기의 때에 과연 "내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 분의 내 피난처, 내 요새가 되는가?

그의 은밀한 처소에, 그의 그늘에서 쉬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의 처소는 여러분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도 들어갈 수 있는 처소이다.

그분의 날개 깃은 여러분이 순전한 마음만 있으면 안길 수 있는 품이다.

 

휴지사러, 마스크 사러 --물론 필요할 때는 사야 겠지만....

그것을 통해서 불안을 극복하려 하지 말고 우리가 해왔던 것.

우리가 누려왔던 바로 그 신앙을 통해서 위기의 시대를 이겨나가길 축원한다.

말세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 때마다 주의 은밀한 처소에서 요동치 않는 주의 사랑과 보호함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시는 우리 로고스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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