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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을 벗고 (여호수아 5:13-15) 


(히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믿음, 신앙태도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않는데에 여기 나와 예배 드리는 자들이 있는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상 주심을 믿지 않는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자가 있는가? 


이 두가지 믿음이 없다면 신앙생활하는 이유가 없다. 


(롬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심을 믿는 믿음, 신앙생활의 모든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말씀을 들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말씀은 들음에서, 무엇을 듣는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믿음이 나온다. 


이것이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의 일차적인 기준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자기가 만든 하나님이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결국은 자신의 믿음, 자신의 신념, 자신의 경험을 믿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따른 것, 믿은 것, 순종한 것은 모세의 말이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기에 애굽을 떠나 짐을 싸서 모세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떠나 사십일 이상을 내려오질 않자 그들이 따를 말씀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들이 한 것은 그들의 경험에 의지해서, 그들이 본 것에 의지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나온 하나님이 바로 황금 송아지이다.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 하며 예배를 드렸다.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이 이와 같다.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 아는 것에 의지해서 믿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에게 황금 송아지가 되는 것이다. 

여호와 증인들도, 몰몬교도, 통일교도, 구원파도 자기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이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다. 자기들의 교주의 말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다.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데 전혀 다른 대상을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결과를, 열매를 낳는 것이다. 


헬라어로 하나님의 말씀은 레마, 즉 개인적으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믿음은 들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 즉 레마를 들음에서부터 믿음이 시작된다. 

믿음의 첫 번째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아무리 신실한 자라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듣는 자는 엾다. 

성경에 통달한 자라도 그것에 살려고 힘쓸 지언정 그것을 다 지킬 수 있는자는 없다. 

나에게 들려진 말, 나에게 주어진 말, 나에게 향하신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설교를 들을 때에, 기도를 할 때에, 찬양을 할 때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에, 혹은 꿈과 환상을 통해서, 혹은 무언가를 바라볼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고 들려지고, 또 맡겨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훈련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또 기도훈련이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혹은 분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구한다. 기도하고 갈망한다. 한번 그분의 음성을 듣기만 한다면....하고 소원한다. 

그분의 말씀이 들려지기만 한다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릴 것만 같고 방황할 이유가 없어질 것만 같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신앙인의 치열한 갈등이 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에 반드시 발생한다. . 

들려주시기만 하면 다 순종할 것 같은데 들려 주었는데 순종할 수 없으니까 들은 말씀을 의심하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거부한다. 

구약의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혹은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어졌다. 신약의 때에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을 전하셨다. 그런데 들은 자들이 다 순종했나? 아니다. 불순종했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는 들려주신 말씀을 다 순종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들려주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또한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의 두 번째 조건은 들은 말씀을 조건없이 따르는 것이다. 잔꾀를 부리거나 자신의 능력이나 환경을 보고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말씀하셨더라도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라는 온전한 신뢰다. 


말씀이 들려졌는데 왜 순종하지 못하는가? 나 중심적이고 내 생각, 내 경험이 말씀을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말씀이 들려지고, 주어지고, 맡겨지면 내 경험, 내 지식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은 단지 내가 하나님이 날 도와주시는 분, 날 지키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믿음은 또한 참 믿음이 아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언제나 ‘나’중심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두고도 그 분을 항상 나에게 쩔쩔매는 분 정도로 생각을 한다. 자기 말 안들어 주면 하나님께 삐치고 서운해하고 또 외면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엄위하신,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믿음은 나의 감정, 나의 생각이 출발점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성경에 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 딱 두군데 등장하는데 하나가 모세이고 또 하나는 오늘 나눌 여호수아이다. 

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룻기서에 의하면 네 권리를 나에게 양도하라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양을 치며 꿈도 잃고 하루하루 소일하는 모세에게 찾아와 네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후 이스라엘 민족을 바로의 손에서 구해내어 약속하신 새 땅으로 인도할 것을 명하셨다. 모세는 일곱 번에 걸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부인하며 거절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곱 번 모세에게 찾아오시고 여덟 번째는 찾아오셔서 모세가 행하진 않았던 언약의 행위,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다. 모세를 찾아와 네 신을 벗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네 권리를 나에게 넘기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너를 통해 내가 일하겠다. 너는 온전히 나의 쓰임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한다.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던 모세가 죽었다. 이제 여호수아가 그 후계자로 임명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넜다. 건너자마자 제일 첫 번째 만난 것이 여리고성이다. 역사적으로 여리고성은 가나안에서 가장 견고한 성이었다. 어떤 침략으로도 무너드릴 수 없다고 하는 가장 견고한 성으로 불린 것이 바로 여리고성이었다. 


날마다 여호수아는 이 성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여러 가지 작전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군대와 가나안의 군대를 비교하면서 어쩌면 굉장히 낙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나안인은 12명의 정탐꾼이 보고한 내용대로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훨씬 크고 힘쎈 그리고 훈련도 잘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40년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훈련은 커녕 매일 매일 살아가는 데에 벅찬 사람들이었다. 제대로 된 무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광야를 움직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 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수 1:5-9]

(수 1:5)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수 1:6)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수 1:7)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 1: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9)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4절의 말씀 안에 가장 두드러지는 표현은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는 말씀이다. 비록 모세가 살아있을 때에도 많은 전쟁을 앞장서서 용맹히 싸웠던 여호수아이고 신앙 또한 뜨거워서 마지막까지 기도했던 여호수아지만 모세가 죽고나서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여호수아의 심적인 부담은 굉장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강하게하고 담대히 하라고 격려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여리고 성의 공략에 대하여 큰 부담을 가진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는 말씀이시다. 


어떻게하면 여호수아의 마음이 강하게 되고 담대해질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격려해 주시면서 증원군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까? 책임지고 성을 무너뜨려주시겠다고 말씀하시나? 하나님이 강하게 하고 담대히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단 하나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행하라.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마음이 강해지지 않고, 담대해지지 않으니까 그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보내셨을 것이다. 군대장관을 첫 대면한 여호수아의 첫 반응은 

“당신이 우리편입니까? 여리고 성의 편입니까?”였다. 

군대장관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단지 네 신을 벗으라고만 말한다. 그리고 이후로 여호수아는 신을 신지 않고 발바닥으로 땅을 밟으며 가나안땅을 정복한다. 


(수 1: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 정치 지도자, 군 사령관인 여호수아가 이제부터는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위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전투를 지휘하고 전쟁의 승패에 대해 책임지는 권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권리를 포기하면 그 때부터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 질까? 아니다.

그 다음에 여호수아가 해야 할 일은 말씀하시는 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여리고 성의 견고함도,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말씀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하나님,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데에 있어서 치밀한 작전계획이나 탁월한 전투 지휘 능력이 아니고 오직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온전히 따르는 것을 원하셨다. 자신의 능력으로 도저히 할 수 없어도 말씀하신 하나님이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서 있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이다.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한 다음에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작전을 말씀하신다. 

[수 6:1-5]처음에 무장한 자들을 앞에 세우고, 두 번째로 제사장 일곱을 세우고, 그 다음에 법궤를 뒤따르게 하라.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르게 하되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마지막 날에는 일곱바퀴 돈 후에 소리치라


인류의 역사상 이런 작전 계획을 가지고 견고한 성을 무너뜨린 일이 있을까? 설화가 아닌 실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을 벗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기의 경험과 이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적전 계획을 말씀하셨어도 그것을 수용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은 “이제부터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네 모든 권리를 포기해라. 이성이나 경험이나 지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들을 너에게 지시하더라도 너는 들은 대로 행하라. 하나님의 작전 명령을 듣고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그대로 하자 여리고성은 무너졌다. 여호수아가 한 것은 무엇인가? 그는 다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랐으며, 말씀하신 분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졌을 뿐이다. 작전계획을 세운 것도, 전투지휘를 한 것도, 전쟁의 승패를 결정한 것도 다 하나님이 하셨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들은 대로 따르며 말씀하신 그분이 행할 것이라는 신뢰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맨 발로 가나안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 올라갈까요?’

‘올라가지 마라’

‘이제 올라갈까요?’

‘그래 이제 올라가라’


신을 벗은 사람은 이제부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여호수아가 신을 벗고 나서 마음이 강해지고 담대해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말씀하시는 분 앞에 신을 벗고, ‘주여,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라고 질문하며, 들은 그대로 행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여리고성을 보고 자신을 보면, 전쟁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전쟁을 할 수 없다.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다. 하나님은 이것 때문에 신을 벗으라고 하신다. 


신을 벗는 것은 ‘이제부터 너의 삶 속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고, 경험이나 지식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을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를 좇아 믿음으로 살 수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음성을 듣고 따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오직 신을 벗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입으로 아무리 주여, 나는 주의 종입니다를 외쳐도 다 신을 벗은 것은 아니다. 


말씀 앞에서 신을 벗은 사람이 여호와의 종이다. 부르심을 받은 그 순간부터 평생동안 신을 벗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은 나의 종이라고 부르신다. 


여리고 성이 함락된 후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만세!’라고 외쳤을까?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 만세!’라고 외치며 그 분이 누구신지를 더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영적 지도자의 성공이다. 


창립 10주년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다. 

주위에 많은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성공목회를 말한다. 

몇해 만에 교회가 부흥되고, 성전이 건축되는 이야기들을 한다. 

많은 목회자들은 저마다 그런 대형 교회를 꿈꾸면서 어떤 사람들은 행정학을, 어떤 사람들은 경영학을 공부하는 목회자들이 점점 늘어간다. 

결국 교회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은 얼마나 잘 행정하고 경영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신학교 때에 그런 말들을 들으면 굇 가에도 안들어오고, 외면했는데 목회현장에서 목회를 하다보니까

내가 교인들을 잘못 인도하지는 안나, 내가 목회하는데에 방법적인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모든 걱정들이 방법적으로, 학문적으로 말하면 결국 행정과 경영에 관한 것이다.  


10년의 기간이 지나면 10년 뒤를 그리면서 교회의 비전을 찾고, 방향을 찾고, 어떻게 준비해야하나,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마치 모세는 죽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데리고 왔는데 앞에 여리고라는 성에 꽉 막혀 버린 것 같은 답답함이 왔다. 교회를 옮겨야 되나, 그래도 가야하나. 

어떻게 전도를 해야 하나.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나. 주일학교와 학생부는 어떻게 방향을 세워야하나. 

뭐 하나 제대로 해결하기 힘든 일들 뿐이다. 

문제에 빠진 성도들의 가정을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인도해야 하나.... 

교회의 재정문제, 아니,.. 내 개인의 재정문제도 여전히 쉴 틈이 없다. 


그렇게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에 이 본문을 주셨다. 

네 신을 벗어라. 

네 인생을 나에게 맡겨라. 

 

여러분! 아무리 고민해도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고민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있는 현실에서 문제는 무엇이고, 무엇이 막혀있는지를 보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런데 염려는 몸과 마음을 망칩니다. 

(빌 4: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할 일은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에 나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하며 묵묵히 따르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똑같은 숙제를 남기진 않았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다른 숙제, 다른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남의 숙제를 보고 당황할 필요도 없습니다. 

난 내 숙제 잘하면 됩니다. 내 숙제는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께 신을 벗고 내 인생을 드립니다. 

내 인생을 통하여 영광 받으소서.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는 목회자가 될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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