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2020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내 생명의 회복자 (룻기 4장 13-22절) 


추석입니다. 미국에 있어서 기분을 잘 내진 못하지만 추석은 구정과 더불어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어젠 설교준비하다가 잠시 밖에 나가 달을 보았는데 일년 중의 가장 둥글고 밝은 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온 식구가 모여 즐거워했을 것인데 이날을 반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몇 있습니다. 


결혼 못한 노총각, 노처녀들은 이런 명절이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취직못한 자녀도 마찬가지지요. 

노숙자들의 자살이 가장 많은 날도 이런 명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추석이나 구정같은 명절을 전후해서 이혼률도 가장 높다고 합니다. 

대가족이 모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가족들끼리 모이면 남자들은 술마시거나 고스톱치고 여자들은 음식만들랴 이런 저런 뒷치닥거리를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성경에서 며느리들이 가장 읽기 싫어하고 부담스러워 하고 반대로 시어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이 룻기서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룻기서는 단순히 정리하면 남자들이 다 죽고 이방인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들어와서 남편도 없이 시어머니 잘 모시다가 축복받은 이야기입니다. 남편도 없는데 시어머니를 내 어머니로 모시고 그 분의 종교를 내 종교로 고백하며 그것도 자신이 이방 땅에서 봉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한국 사람들에게도 며느리들에게는 부담이요, 시어머니들에겐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유대인들은 매년 보리 추수의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절때마다 함께 모여 이 룻기를 읽는다고 합니다. 룻기서는 보리 추수때가 중요한 사건을 가리키므로 해마다 보리 추수 때마다 룻기를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한국의 추석과도 관계가 깊은 성경이 룻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주간 새벽예배 때마다 룻기서를 강해했는데 마침 이렇게 추석날 룻기서를 마치면서 성도 여러분과 룻기서를 정리하며 그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룻기의 이해 - 구속의 은혜 


우리가 만약에 룻기를 읽으면서 한 여인의 일생을 그린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룻기는 조그만 단편소설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며느리는 싫어하고 시어머니들만 좋아하는 소설이겠지요. 그러나 이 룻기는 단순히 옛날 이야기처럼 두 과부가 어렵게 살다가 며느리가 고생을 해서 잘 살게 되었다는 효를 강조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룻기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관한 아름다운 설명입니다. 그래서 이 룻기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볼 때에 그 심오함을 볼 수 있습니다.  

4장의 짧은 장이지만 이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져 있는 성경입니다. 

 

  • 룻기는 기근과 죽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나오미가 남편을 잃고 또 아들들을 잃었다”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또 룻기는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로 끝납니다. 17절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는 물론 나오미가 낳지 않았으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룻기 1장 1-5절 사이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습니다. 그러나 룻기의 마지막 12절부터는 “낳았다”는 표현이 13번이나 계속 나타나며 룻기가 끝나는 것입니다. 계속 태어나는 것입니다. 희망이 이어지고 생명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 이런 룻기의 분위기는 “낳고”로 시작되는 마태복음을 연상케 합니다. 창세기의 족보는 ~가 몇세때 누구를 낳고 죽었더라"로 끝나지만 마태복음의 족보는 죽었더라라는 말이 없습니다. 생명이 계속 창조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즉 룻기는 이미 신약시대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낳고”로 이어집니다. 생명으로 이어지는 족보입니다. 룻기의 족보는 신약적입니다. 생명이 넘칩니다. 아픔이 지나고 기쁨이 왔음을 의미하는 족보입니다. 
  • 룻기는 울고 들어갔다가 웃으며 나옵니다. 죽음으로 시작하였다가 생명으로 나옵니다. 죄와 사망으로 들어갔다가 의와 생명으로 나옵니다. 절망으로 들어갔다가 소망으로 나옵니다. 화를 당했으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모압 땅에서 육체적인 풍요만을 찾았던 엘리멜렉은 두 아들과 함께 모두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뿌리 잘린 나무처럼 생명의 근본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뿌리에 접붙은 가지가 살듯이 다시 살게 됩니다.

  • 룻은 죽은 자의 아내입니다. 불쌍한 과부입니다.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여인입니다. 출신도 비천한 이방 족속인 모압의 사람이었습니다. 죄인의 전형적인 모델입니다.
  • 모압의 시작은 룻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롯에게로부터 왔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축복을 누리다가 롯은 자신이 보기에 좋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해 아브라함과 결별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 나오지만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뒤를 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두 사위는 롯의 이야기를 농담으로 들으며 담아 듣지 않아 그 땅에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런데 롯의 두 딸이 자신들의 자녀를 낳기 위해 동굴 속에서 롯을 술에 취하게 한 다음 자기 아버지에게서 나온 자녀가 모압과 암몬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머물적에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타락시켜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모압여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타락하게 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압 사람들을 경멸했습니다. 

           (신 23:3)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런데 룻기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비천한 여인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므로 다윗 왕의 가문에 들어갈 수 있는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올라가는 축복을 누리는 새 생명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 룻기의 요점 


룻기 1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마라⌟ 즉 “고통”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룻기 1장 20절에 보면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 베들레헴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나오미의 가정이 걸어가야만 했던 길고 어두운 고통의 장, 쓰디쓴 고통의 장이 바로 룻기 1장의 내용이었습니다.


2장에서의 중심단어는 “은혜”였습니다.

2장 2절을 봅시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이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은혜 입기를 원하는 룻의 모습으로 시작된 2장은 은혜의 장이었습니다.

 

3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안식”이라는 단어입니다.

3장 1절입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은혜 입은 룻이 드디어 안식에 대한 여명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은혜를 갈망했던 룻의 삶의 장에 드디어 쉼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이 3장은 안식의 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읽은 마지막 4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4장 14절을 봅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네. 맞습니다. “찬송”이라는 단어입니다.

4장은 바로 찬송의 장입니다. 그래서 룻기는 1장의 고통에서 시작했다가 찬송으로 끝나 해피엔딩의 드라마가 된 것입니다.

1장은 장례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죽어있는 사람들의 시신 앞에서 슬픈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4장은 새로운 출발인 신혼의 입맞춤으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으로 끝이 납니다.  1장과 4장의 이 날카로운 대조는 얼마나 극적인 한편의 드라마입니까? 

 

3. 룻의 선택: 무엇이 나오미와 룻의 인생을 이렇게 대조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까? 

 

1) 나의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룻은 죽은 자의 아내로서 절망적인 여인이었으나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자비와 사랑이 하나님을 기대했습니다. 시어머니를 붙좇으므로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로 달려 왔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

여러분들이 자의로 교회에 오셨든 인도를 받아 오셨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시라는 말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 되기를 위해 머나 먼 타국으로 왔습니다. 정든 고향과 친척을 버리고 찾아왔습니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파고, 배고픈 자가 식당을 찾고, 아픈 자가 병원을 찾습니다.


2)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위해 나섰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며 베들레헴으로 온 룻은 가만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은혜를 간구하며 찾아나섭니다. 적극적으로 자기 할 일을 찾아다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시어머니를 따라 이방 땅 베들레헴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곳 유대인들은 자신을 모압여인으로, 죄인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믿었던 시어머니 나오미는 집밖으로 나갈 생각도 아니하고 먹고 살일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룻은 주저앉지 않고 자신이 밖으로 나와 이삭을 줍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얻으려 움직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자녀에게 줄 음식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는 차가운 반응에도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하므로 "네 믿음이 크도다"했던 것처럼 룻은 자신의 자존심과 위험을 무릎쓰로 은혜 얻기 위하여 행동합니다. 생각만하고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이삭을 줍습니다. 그 성실함은 그녀를 보아스에게로 인도합니다. 은혜를 간구하며 길을 나선 그녀의 길을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보아스를 만남이 바로 룻의 일생의 대전환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므로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보아스를 통하여 사랑의 손길을 펼치셨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를 소원하십시오.

룻을 보십시오.보아스에게서 은혜를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자신을 맡아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마침내 소망 없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죽은 자, 엘리멜렉의 가문을 이을 아들을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가문에 증조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신앙 생활이란 그리스도와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 룻에게 보아스가 구세주요, 신랑이라면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요, 신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엡 5:22-33).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맡긴 사람들입니다.

룻은 보아스와 동침하므로 새 생명을 낳았습니다(13).

  • 그리스도는 우리와 동침하여 한 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동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계 3:20). 그리스도는 이제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영원히 사십니다. 성령의 체험은 그리스도와 동침의 사건입니다(요 3:5).
  •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인생의 대 전환을 이룬 사람입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분명히 외모는 그대로인데 마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졌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져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교회 생활을 모든 삶의 중심으로 삼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죄와 짝하던 생활 습관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결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변화를 「거듭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신방을 치르므로 새 생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엘리멜렉의 가문에 입적이되어 죽어버렸던 엘리멜렉의 가문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끊어졌던 대를 잇게 되니 자연히 잃었던 가문의 재산인 토지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죄악으로 잃어버린 모든 주권과 권세가 회복된 것입니다. 

            

  4. 은혜에서 멀어진 자 (오르바와 아무개) 

  오르바: 첫째 며느리: 배회하는 자, 주변에서 서성이는 자, 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도중 포기하고 모압으로 돌아감. 왜? 편한 길을 위해 

  아무개: 보아스보다 먼저 기업무를 자. 그런데 4장 6절에 보면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봐" 룻을 포기하고 신을 벗어 던지고 도망감. 

  

  우선 순위에 있던 자가 떨어져 나간니다.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자가 됩니다. 왜? 자기 보기에 좋은 곳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God is always Good. but Good is not always God. 

(잠 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선이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선악의 판단자는 오직 하나님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밖에서 선한 것을 찾다가 결국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악한 것으로 우리를 공격하면 오히려 넘어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악한 것을 통하여 이득보고 거짓을 통하여 성공하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선한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려다가 걸려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십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롯도 오르바도 아무개도 자기 보기에 선한 것을 쫓다가 믿음에서 떨어진 자가 되었습니다 .


            

            또 다른 주인공 나오미 

  • 룻기의 마지막은 룻이 아니라 나오미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지만, 이웃 여인들은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들이 결국 나오미에게 주어졌던 기업을 회복시킨 것이고 나오미가 속한 가정을 회복시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보다 귀한''(15절) 며느리 룻이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17절)라는 표현은 경수가 끊어지고(창 18:11) 태가 죽은 것과 다름없던 사라(롬 4:19)가 아들을 낳은 것과 같음을 뜻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나오미와 그를 지극히 섬긴 며느리 룻의 삶에 개입하셔서 새일을 행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연약한 이방 여인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의 족보 (4:18-22)

 

암울한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된 룻기는 다윗의 족보로 끝을 맺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펼친 왕입니다. 그러므로 다윗 왕의 족보는 하나님 나라의 족보 즉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베레스에서 족보가 시작되는 것은 다말이 룻처럼 결혼을 통해 유다에게서 베레스의 집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다말과 룻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성을 붙잡은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성을 붙잡고자 할 때, 그 사람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회복 다음에 곧이어 다윗의 족보가 나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사람이 회복할 때 그것이 단순히 한 사람의 회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시작됨을 보여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만약에 이 룻기서가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아들,딸 낳고 잘먹고 잘 살았다라고 끝났다면 이것은 정말 삼류단편소설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룻기에는 복음이 실려 있습니다. 룻이 결국 보아스와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낳은 자식이 오벳입니다. 그리고 이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 이새가 다윗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의 족보에 끼게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아주 평범한 한 여인! 그것도 이방족속인 모압여인 룻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가,바로 여러분이 바로 가정을 회복시키고 신앙의 계승을 할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생각할 때에 나는 이곳에 살면서 잘 먹고 잘 살다가 가면 되지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민족을, 교회를 변화시킬 수가 있겠어!~ 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자, 그를 더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 모두를 회보시키십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십니다. 다윗을 태어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날이 이르게 합니다.

꿈을 꾸십시오. 하나님 만나기를 소원하십시오. 그리고 더 긴밀한 관계, 연합하는 관계, 동행하는, 늘 함께 거하는 자가 되십시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