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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들으시다 (삼상 1:19-28) 


사무엘서를 들어가면서 우리는 첫 시작에 사사 시대에 각자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한 가정의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첫째는 한나의 남편인 엘가나요, 엘가나의 둘째 처인 브닌나요, 그리고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한나입니다.

엘가나는 레위 족속입니다. 히브리어로 "엘"은 곧 하나님입니다. 엘가나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소유된 레위 족속이었지만 성전에서 봉사하지 못하고 멀리 에브라임 지역에 삽니다. 매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는 신실함을 가졌지만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그 일을 극복하다가 더 큰 곤경에 빠지는 형식적인 종교인입니다. 

엘가나나 엘리 제사장 모두 이름에도, 삶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달고 삽니다. 

예배하는 데 빠지지 않고, 성품도 원만합니다. 누가 봐도 사람좋고 신앙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신자입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성전에 모습은 드러내는데 정작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인격적인 교제에는 눈이 어둡습니다. 

공적인 기도는 잘 드리는 지 몰라도 자기 삶에 있는 문제에 대하여 개인적 기도에는 무지한 종교인입니다. 


브닌나는 세상적으로 다 가진 듯 하지만 정작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공허감을 채울 길이 없습니다. 

그런 공허감을 푸는 데 자기 보다 못가진 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이 넘치지만 어떤 것을 가져도 그 마음은 채우질 못합니다. 그녀 안에는 평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하는 사람들 역시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사 시대의 일반백성의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다 가진 것 같지만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주위에는 늘 불안함과 전쟁과 갈등 뿐입니다. 


그런 시대를 사는 한나 역시 여러 문제를 안고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자녀가 없고 브닌나는 자신을 괴롭힙니다. 아랫사람에게 멸시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그녀는 세 번씩이나 자기 마음에 있는 격분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동요는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스스로 억누르면 몸에 질병이 생깁니다. 남편이나 브닌나를 통해 풀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분쟁이 일어납니다. 

모든 마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시작점은 바로 기도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내 영의 문제를 고칠 수 있습니다. 


첫 설교의 중심은 기도의 시작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문제가 닥쳐 왔을 때에 그 해결의 시작은 기도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새역사가 시작됩니다. 내 문제 뿐만 아니라 문제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됩니다. 한나의 기도를 통해서  사무엘이 태어나고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의 왕국이 건설됩니다. 기도는 내 문제의 해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계획을 이루는 통로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엘리 제사장과 한나를 비교하면서 참된 예배자, 참된 기도자의 자세를 나누었습니다. 

엘리는 제사장 이었지만 그의 의자는 성전 안이 아닌 성전 입구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에 있었습니다.

그는 의자에 턱 하고 앉아 예배를 구경하고 사람들을 관리하는 구경꾼이요, 관리자요, 관망자였습니다. 

결국 그는 그 의자에서 최후를 마감합니다. 


한나는 참된 예배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그녀는 자기 마음이 요동할 때에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께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얻습니다. 

그녀는 오래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심정이 하나님께 통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참된 예배자는 형식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기도 한 것 자체 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를 통해 자기 마음을 하나님과 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통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흩뜨리지 않습니다. 

그녀는 영적으로 무지한 엘리 제사장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한 번 응답 받은 것에 대해 그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시는 그것 때문에 마음을 다치지 않습니다. 

내게 자녀를 주시겠다 약속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으면 지금 자녀가 없어도 그것 때문에 아파하지 않습니다. 

왜 기도해 놓고 또 근심합니까? 

응답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응답받았어도 근심한다면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르리니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기도는 떨어집니다. 

지난 주 설교의 주제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오늘 나눌 주제는 기도의 완성, 응답받은 후의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19절)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한나가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는지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한나와 엘가나는 다시 여호와께 경배하였다는 것은 예배하였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급할 때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기도는 제목이 있으나 없으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부흥회와 같은 집회가 있으면 열심히 참여하다 집회가 끝나면 오히려 기도가 식습니다. 

며칠 열심히 했으니 이젠 쉬어야 겠다는 것입니다. 

평소 기도 안하는 사람이 급할 때에도 기도하지 못하듯이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문제가 없을 때에도 꾸준히 기도합니다. 

기도를 쌓는다는 표현을 하듯이 기도는 평소에 훈련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19절 b) 

여기서 생각하셨다는 것은 지난 금요일 전도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강조한대로 "자카르" - 자세히 살피고 기억하여 권고해 주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생생히 기억하시고 그 기도에 행동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기도듣기를 즐거워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지 우리가 하는 기도는 다 욕심에 따라서 잘못구하니까 난 하나님보고 다 잘 알아서 좋은 것대로 역사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야" 하고 말합니다. 

고상하고 겸손한 것 같지만 기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면 인간을 창조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그 의지가 하나님의 생각과 연합되어 함께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기도는 육을 입고 사는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 맺고 연합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약속된 통로입니다.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약속대로 아들을 주십니다. 

사무엘의 뜻은 "여호와 즉, 나의 하나님께 구하였다" 는 의미입니다 .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 

여러분 이 감격이 있으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


신앙생활 몇십년이 되었어도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가지고 고민하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 들으라고 하는지 사람들 앞에 하는건지 불분명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계 맺는 영적인 교제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여러분 이것이 체험되고 느껴지만 소름이 돋고 감격스런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 분이 들으셨다!"는 감격에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아니 내가 뭐라고 내 자녀도 내 말을 안듣고 내 가족도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데, 전능하신 만유의 주인 하나님께서 내가 드린 기도를 들으신단 말입니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일입니다. 


얼마나 귀한 아들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신 아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한나의 관심은 사무엘에 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꼐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기도 해 놓고 정작 그 응답이 임했을 때에 너무 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기도의 결과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저 일이 이루어진 여러 요인들 중의 하나로 기도를 생각합니다. 

기도 한 것은 그저 내 소원을 아뢴 것으로 끝나고,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그 기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이 "내가 이러이러하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 주셨어...'라고 너무 확실하게 말하면 속으로 "아니 지가 뭔데 하나님께서 자기 말대로 응답했데..."하는 사람들이 있지요....이런 사람들도 역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때로 일하시지 절대 우리 기도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셔..."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기도하는 것이지 내 뜻을 이뤄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야...." 기도 응답에 대해 나름 신학적으로, 논리있게 설명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뜻대로 다 이뤄주시지 않을 때도 있지요. 

그런데 기도 하는 사람이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하는 사람이 그 뜻을 위해 기도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그 뜻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아무리 불의한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그 강청하는 것을 통하여 들어주시니 낙심하지 말고 간구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건, 우리의 환경을 바꾸시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21-23절 

매년제, 서원제

기도의 응답을 받자마자 드린 예배 - 서원의 예배

매년 올라가는 매년제 외에 이제 자기의 서원한 것을 기억하고 서원제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서원에 대한 말씀들...

(신 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전 5:4-5]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마 5: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 5: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마 5: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왜 이렇게 서원에 대한 말이 많을까요? 

여러 말씀을 요약하면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요구하신다. 

전도서에서나 산상수훈에서는 아얘 서원 자체를 하지 말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급한 사정이 있을 때의 사람의 마음과 그 사정이 넘어갔을 때의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얼마나 뻔뻔합니까? 하물며 강청했던 자녀가 응답한 이후에 발뻄하면서 기도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민 30:6-8]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경솔히 그 입에서 발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고 경솔히 입술에서 발한 서약이 무효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부부의 경우 아내가 서원을 하였을 경우 남편이 허락지 않으면 이 서원은 무효이다. 그러나 남편이 동의하면 이 서원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서원에 대한 규례를 남편의 동의를 얻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나의 말을 들은 엘가나가 " 당신 뜻대로 하시오." 하면서 그 서원을 인정해 주었고 "여호와께서 그이 말씀대로 이루시기리를 원하노라"라는 말씀은 우리는 이 서원을 지키려고 힘을 쓸 것이지만 이것을 지키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하면서 한나가 했던 서원이 주 안에서 반드시 지켜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서원을 지키는 것을 잊은 것도 아니고 부담 스러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젖을 떼자 마자 아이 뿐만 아니라 수소와 밀가루와 포도주 한 부대 등 여러 가지 귀한 예물을 들고 하나님 앞에 사무엘을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사람 한나의 기도의 완성입니다. 


급할 때는 여기 저기 기도부탁하고 저에게 전화하기도 하고....그러나 그 일이 성취되면 싹 외면하는 신자들...

나에게 고맙다고 안해도 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루신 것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가나안 같은 천국같은 장소도 지옥같은 불행한 처소가 되듯이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기도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면 아무리 큰 문제가 해결되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이상 진전되지못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내가 소통하고 그 분이 일하시게 하는 통로입니다 .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응답되어진 일들에 대해서 예배함으로 우리는 깨어서 감사하고 또한 더 깊고 친밀한 관계로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삼상 1:26-28]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엘리를 찾아가서 한나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고향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는가?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 늘 기도하는 여자, 항상 기도하는 여인....

자신을 이렇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내가 기도하였더니 그가 내 기도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앞에 드리되 그의 평생, 그의 전부를 당신께 드립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영광입니다. 

각자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쓰는 제사장이나 남편은 그저 형식적인 종교 행위만을 반복하고 있을 때에 한나는 진실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어둔 세상에 빛을 비추듯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가장 귀한 자녀를 그 분께 드립니다. 왜? 그 분안에서 가장 완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믿을 수 있는 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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