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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행 1:3-8) 


성탄절을 4주간 앞두고 시작해서 지키는 '대강절'은 문자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그 오심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사건, 성육신 사건, 그리스도의 초림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일차적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3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강절, 즉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과거의 역사로는 그리스도의 탄생(성육신)으로 오셨음을,미래의 사실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오실 것을,현재의 사실로는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계속적으로 임재하시는 것을 다 포괄하는 것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오심의 3중적인 사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말은 바로 기다림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오시기를 정말로 기다리고 있습니까?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오심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 때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400여년 동안이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진 때였습니다. 

1) 헤롯, 종교제사장, 서기관..

바벨론 포로로 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 성전을 짓고, 다윗 시대, 솔로몬 시대의 부흥을 꿈꾸었지만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페르시아에서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희망을 잃어버리고 그런 상황에 익숙하게 적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로마의 통치 속에서 어느덧 자기들의 안전한 자리를 보장받았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하는 마음이 그들의 마음을 채웠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은 이미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이미 안정된 생활을 하였고, 로마 사람들의 눈치만 좀 보면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대다수 백성들이 가난하건 말건, 그건 상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평안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헤롯왕과 제사장들은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큰 별을 발견하고 멀리 외국에서부터 온 외국의 대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와서 이스라엘의 새 왕이 날 것을 말합니다. 메시야가 왔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기쁜 소식이라고 이 소식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해방하고 온 이스라엘 민족들이 기다리던 구원자가 왔다는 데에 놀랍게도 그들의 지도자였던 왕과 제사장들은 메시야가 왔다는 소식을 반갑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메시야가 왔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린 아이들을 무참히 죽이는 짓을 저지릅니다. 

헤롯왕이야 어차피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로마의 파견된 왕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제사장들의 반응은 정말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그들의 공식 의무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연구하고 예배하는 자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사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헤롯왕이 어린 아이들을 죽이는 데에 암묵적인 동의와 지지를 합니다. 그들은 현재만을 위해 신앙생활하는 타락한 신앙인들입니다. 현재의 평안 때문에 더 큰 기쁨, 완전한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쁨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누리는 현재의 평안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의  평안앞에서는 먼지와도 같은 허무한 것입니다. 그들은 작은 기쁨 때문에 큰 기쁨을 져버리고 방해하는 자가 됩니다. 기쁨의 살인자가 됩니다. 


2) 기다리는 사람 

이와 반대로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말씀을 듣고 간절히 예수님을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에 보면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가 바른 사람입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며 기도 생활하는 사람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도 매일 같이 말씀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고 깨달아도 그것대로 살지 않는 형식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 형식적인 종교인, 습관적인 종교인은 오히려 신앙을 망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의로운 자고 경건한 자였습니다. 

자기 편의대로, 자기를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으로 말씀을 보는 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위로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스시"라는 말인데 이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도와주는" "위로하는" "대신 요청하는" 더 나아가 "구원하는"의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도자는 다름아닌 위로자입니다. 우리 크리스찬은 세상의 위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높으나 낮으나 세상의 지도자입니다. 남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자가 지도자가 되면 행복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나 종교지도자들처럼 백성들은 부르짖는데 자기들의 안위만 앞세우는 자는 결코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위로자가 되는가? 의롭고 경건한 자가 위로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위로자 입니다. 구원자 입니다. 성령의 다른 이름은 바로 위로자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기다리던 시므온은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성전을 찾은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축복합니다. 기다리던 자에게 하나님은 결국 메시야를 축복하는 영광을 줍니다. 


목동: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예수의 나심을 발견한 것은 목동입니다. 목동은 쉬지 않고 일하는 자였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였습니다. 어쩌면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일상에 충성된 자입니다. 

주일 학교 때 부르던 찬양..."두 사람이 함께 맷돌 갈다가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다가..'  기다린다고 일상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일상에 충실한 자에게 하나님은 먼저 보이십니다. 그들을 먼저 구원하십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아모스는 목동이었습니다. 엘리사도 밭을 갈다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지금 맡은 일에 충성된 자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습니다. 기다리면서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자가 바로 충성된 자요, 기다리는 자입니다. (달란트 비유..)  


세례요한: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가 기다리는 자입니다. 


2. 성령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을 약속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이미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다 이루시고 바로 올라가시지 않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40일을 유하십니다. 

그들에게 그동안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 나라가 무슨 나라이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이 어떤 일들이고,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 부활하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들의 눈을 열어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가도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쳐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성령이 올 때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첫 번째 성만찬을 거행하셨던 곳. 주님의 피와 살로서 하나된 공동체를 이루었던 곳. 

 그곳은 끝까지 남아 예수를 기다린 사람들, 몇번이고 넘어졌지만 부활 후 찾아다니면서 하나씩 이름불러 회복시키신 열한명의 제자와 새로 뽑힌 사도 맛디아,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 

 

 예수의 공생애 동안 예수로 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5병이어의 기적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원 - 약 2만여명, 이방지역에서 베풀었던 4천명을 먹이신 사건.... 딱 두 사건만 들어도 은혜 받은 자 2만 5천여명.... 수많은 귀신 들린 자, 병든 자 그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들 중의 몇은 혹시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는 자들의 대열 속에 있지는 않았을까? 

 

예수의 승천의 현장에 있었던 자들- 500여명  

(고전 15: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500여명에게 위로 부터 능력이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눅 24장 49절)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하시면서 하늘로 승천. -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함.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이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람들... 그리고 열흘-> 380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길로 뿔뿔히 흩어져버림. 왜 떠나갔을까? 


기다림의 반대는 조급함이다. 조급함은 내 일정에 하나님의 시간을 맞출 때에 일어나는 불신앙이다. 결국 하나님보고 나에게 맞추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빠름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름"이다. 바른 자, 의로운 자 시므온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다. 예수께 축복을 베푼 자가 되었다. 바로에게 축복한 야곱도 훌륭하지만 예수님께 축복기도한 시므온은 얼마나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인가? 


기다림은 믿음을 통해서 역사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말씀안에 오로지 순종할 때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듯, 롯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지 못하고 뒤돌아보듯, 사울왕이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하듯, 조급한 신앙인은 떠나간다. 


한 해 두 해... 목회를 하면서 가장 괴로울 때는 조급함이 은혜를 망가뜨릴 때이다. 조급하면 내 뜻이 앞서게 된다. 바르지 못하게 된다. 조급한 마음이 신앙을 앞설 때 다시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음은 내가 하나님께 바르게 서있나를 물어보는 것이다. 


열흘을 기다리지 못하고 오순절의 은혜의 대열에 끼지 못한 성도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인가? .....

결국 그들은 무엇 보다 큰 하늘의 은혜를 맛보고 조급함으로 인해 위로부터의 능력을 받지 못한다. 


3. 예수님의 기다림

- 승천하실 때에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 제자들에게 세상을 맡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의 마음은 한없이 편안했을까? 

어리석었던 제자들.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 이젠 옆에서 지켜줄 수 없고, 가르쳐 줄수도 없고, 그들에게 세상을 맡겨야 하는데...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세계를 구원코자 했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해야 하는데...

갈릴리 출신의 어부...여전히 연약한 제자들... 과연 믿을 수가 있었을까? 


어쩌면 부활 후 40일간의 주님의 행적은 성령이 오시기 전 열흘 간을 견딜 수 있는 믿음을 주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주님은 기다렸다. 

3년간의 공생애 동안 그들이 주님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려워하고, 여전히 넘어지고, 오해하고,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해서 높은 자리 차지하려고 서로 싸워도.... 주님은 성령이 임하면, 그들이 온전해지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땅끝까지 증인되는... 그런 예수의 분신, 작은 예수로서 세상을 요란케 하는 자들이 될 것임을....


유난히 아픈 사람이 많은 주간이었습니다. 

내년도 계획을 세우고...일꾼을 세워야 하는데 적은 인원에 믿고 맡길 사람이 잘 모이지 않습니다. 

그런 중에 한 성도님을 심방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이젠 아무것도 못하겠습니다." 


마음이 막 낙심되었습니다.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 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자꾸 로뎀 나무 같은데 피하고만 싶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럴 때에 주신 말씀이 기다림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기다림은 내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기다림이었습니다. 


75세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지만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이 자라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조급했지만 하나님은 기다렸습니다. 

이백만이나 되는 큰 무리를 광야 가운데서 데리고 나왔어도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이 온전해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200만명을 40년동안 먹이시고 입혀서도 귀찮아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믿음이 자라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사울이 범죄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을 때도 이스라엘에 위기가 닥쳤어도 다윗의 믿음이 자라날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예수님도 기다렸습니다. 맨날 딴 소리하고, 자기들끼리 다투는 제자들을, 십자가 앞에서 뿔뿔히 흩어지고 다시 고기 잡는, 열매 없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어도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고 제자들이 성령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연약한 자들이었지만 이들을 통해서 반드시 세상은 구원된다. 

 힘없는 아브라함 이었지만 너를 통해 믿음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어린 다윗이었지만 너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맨날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이지만 너희를 통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여러분 대강절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기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기다리지 못해 조급함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흥청망청 하다가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듯 하나님께서 우리가 연약함 가운데서 걸어나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내 죄악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온전한 삶으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힘없고 연약하기 떄문에 그래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분께서 주시는 위로를 향해 나아오길 기다리십니다. 


다가오는 성탄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과 그 분을 기다리는 우리가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듯 기다리는 신랑과 신부가 드디어 만나듯, 그렇게 새롭게 만나는 은혜가 가득한 성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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