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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장 1-9절 (강하고 담대하라) 


신약에 복음서가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원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면 구약에서 구원의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모세오경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복음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끝이 나듯이 모세오경 역시 모세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구원의 열매와 역사가 비로서 나타나듯이 여호수아서는 모세 이후에 비로서 가나안 땅을 얻게 되는 열매의 역사를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이 누가복음과 이어지듯이 여호수아서는 역사서의 시작이지만 사사기와 사무엘서, 열왕기서로 이어지는 이후의 역사보다는 모세오경과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모세오경이 구원의 과정을 보여준다면 여호수아는 구원의 열매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신앙의 열매를 맺을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가나안의 의미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신 말씀-하나님의 사람을 통한 언약의 시작점, 구원역사의 시작. 믿음의 조상. -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는다. 

       창세기 12장 :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인해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이 되리라. 

       그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이 바로 가나안. (창 12장 5절)  

  •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그런데 땅이 중요한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 중요한가? 
  • 가나안 자체가 복의 땅인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복인가? 
  • 가나안은 구원사에 있어서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임과 동시에 그 땅에 하나님이 떠났을 때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그 복은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신 복에 더 관심을 가질 적에 그것은 기복신앙이 된다.기복신앙은 복을 주는 대상이면 누구든 상관없다. 복이 중요하지 하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을 준다면 바알이던 앗세라던 상관이 없다. 이른바 샤머니즘적 신앙이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무당을 찾아간다. 돈을 지불하고 굿을 하라면 굿을 하고 무당이 시키는 대로 한다. 무당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면하고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일단 문제가 끝나면 다른 문제가 생길 때까지 무당이 누군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관심 가질 이유도 없고 그렇지도 않는다. 문제가 끝나면 무당은 다시 사회적으로 존경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위험한 인물 취급 받는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 말씀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자체가 복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화요, 불행의 시작이다. 성도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가장 큰 사명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2) 모세 

  •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하고 느보산 꼭대기에서 죽는다. 그는 약속하신 땅에 들어오지 못했으므로 실패한 삶을 산 것인가? 광야에서 죽어간 다른 이스라엘 민족과 똑같이 고난만 맛보고 영광은 맛보지 못한 신앙생활을 한 것일까? NO! 누구도 모세의 삶을 실패자로 생각지 않는다. 이미 그는 하나님을 경험한 자요,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받은 자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충만한 자였기 때문이다. 이 지면에서 모세보다 더 가까운 자가 없었다는 칭찬을 들은 자다. 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났다. 
  • 아론은 호르산에서 죽고 모세는 느보산에서 죽었다. '느보'는 높다라는 의미이다. 하늘과 맛닿아 있는 꼭대기이다. 산에서 죽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았을 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에녹이 살다가 하나님께로 올라갔듯이 땅에서의 사명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감을 의미한다.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명을 감당하다가 하늘로 영원히 올라간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구원을 이룬 것처럼 광야에서 모세가 느보산 꼭대기에서 하늘로 간 것은 그의 사명을 온전히 마친 사명의 완성으로서 이해하여야 한다. 


3) 여호수아 

  • 다윗이 사울을 통해 훈련받듯 여호수아는 모세의 밑에서 일찍부터 후계자로서의 훈련을 받는다. 
  • 여호수아의 리더자로 서는 과정은 물리적, 지형적 그림을 통해 연상하면 더 드라마틱하다. 

- 출 17장의 아말렉과의 전투 (산꼭대기- 모세, 아론, 훌<-> 여호수아는 땅에서 백성들과 함께...) 

-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출 24장): (아론과 훌을 백성에게 남겨두고 모세와 여호수아는 함께 산으로 올라감) 

- 가나안 정탐꾼 파송 (민수기 13장, 신명기 1장) : (모세는 백성과 남고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심)  

- 후계자로 지명하심 (민 27장): 모세와의 관계 안에서 하나씩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여호수아의 시작은 모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 마치 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에 예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다.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다. 이것이 신앙안에서 이루어지는 패턴이다. 내가 죽어야 그가 산다. 세례의 의미는 내가 죽고 그가 살게 하는 영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 죽음 이후에 생명이 온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다윗은 아침에 일어나 새 하루를 맞이할 때에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 영혼의 밤, 고난은 어둠임과 동시에 희망이다. 삶이 죽음처럼 힘이 든다면 이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다. 아침이 밝아 올 것이다. 모세가 죽자 여호수아에게 비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이때까지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이제 여호수아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가 죽었다. 이 백성과 더불어 네가 일어나라. 요단을 건너 그 땅으로 가라." 

-> 그가 죽었으니 이제 네가 일어날 차례라고 말씀하신다. 죽음을 그냥 놔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망을 물리치시는 분이시다. 슬퍼하지 말고 이제 네가 일어나라고 하신다. 그리고 요단을 건너라는 것은 이제 "너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주님의 길은 그냥 걸어갈 수 없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듯이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또 다시 죽어야 한다. 날마다 내가 죽고 그가 일하시도록 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내가 죽어야 할 수 있다. 주님의 길은 십자가 지고 따라야 하는 길이다. 그리고 푯대를 향하여 그 땅으로 가라 하신다. 

  • 너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곧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광야에서의 삶은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굶주리지 않고, 날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동시에 그들의 현실은 언제나 녹록하지 않았다. 현실을 바라보면 쉴 수 없는, 불평이 막 터져 나오는, 피곤하고, 지치고, 곤한 여정이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분명 하나님이 함께 하신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피곤하고 안식이 없고 쉼이 없는 삶의 연속인가? 그냥 이렇게 살다가 끝나는 것일까?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우리 인생은 어차피 눈물의 골짜기인가? NO!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다. 아직 넘치는 복을 받은 기억이 없는가? 포기하지 말고 더 바라보고 나아가자. 그는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다. 천지의 주인이시다. 흔들어 넘치도록 채우시는는 분이시다. 아직 맛보지 못했다면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 "강하고 담대하라."1-5절까지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약속하시고 보장하시는 말씀이라면 6절부터는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명령하시고 당부하시고 지시하시는 내용이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6절- 강하고 담대하라. 

7절- 율법을 지켜 행하고 치우치지 말라. 형통- 어느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동행

8절- 말씀 안에 거하라. 

9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6절과 9절에 계속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다. 신앙생활은 담력이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파도를 넘어, 그로 인한 감정의 요동침을 넘어, 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기드온에게, 디모데에게, 주님은 여전히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다.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그 넘어에 있는 말씀을 계속 바라보라고 하신다. 들을 때는 잘 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닥치면 결코 쉽지 않다. 다가오는 현실의 위협 속에서 하나님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은 믿음의 담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매여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의 비밀이다. 내 감정이 요동치고, 내가 또 흔들리고....사람들은 그런 것을 아무 대비 없이 받아 들인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어두움은 온다. 하나님이 그 자체를 막아 주시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이기고 요동치 않는 것은 오직 말씀을 붙잡는 자만이 이길 수 있다. 


계속적인 말씀, 구체적인 말씀, 믿음은 감정이 아닌 믿음의 습관이고, 매달리는 것이고, 바라보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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