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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기억 (신 8장 2-6절)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전, 그러니까 출애굽을 한 1세대 백성들은 거의 다 광야에서 죽고 새로운 세대들이 태어나서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40여년 전에 시내산에서 주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되돌아보며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즉 반복적인 말씀의 교육입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삶의 여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왜냐하면 그들은 날 때 부터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이 많았으므로 그 전에는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고, 그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이 왜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갔는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돌아보도록 교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1. recall

돌아보다의 영어식 표현은 recall입니다. 다시 부르는 것이지요. 

자동차에 문제가 있으면 회사는 문제 있는 제품을 다 수거해 모읍니다. 이것을 recall한다고 하는데 회상하다, 돌아보다의 단어와 같은 의미입니다. recall해서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 시작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 . 왜 recall의 과정이 필요합니까? 지금 내가 있는 현재가 맞게 굴러가고 있는가? 잘못되었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되나? 그 시작점에 서는 것이 recall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앞에두고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그들을 시작점에 서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행함으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것인가? 애굽에서,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것처럼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며 그런 저런 인생을 살다가 끝날 것인가? recall은 시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내 인생의 발걸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2. remember

2절에 보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기억합니까? 사십년 동안 광야길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걸어왔던 길, 고난의 여정이 또한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보시는 시간이었음을, 동시에 고난 가운데서 나를 지키셨음을... 

기억하라는 것은 또한 영어로 "Remember"입니다. 

다시 멤버가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애굽에서 탈출해서 광야길을 거닐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의 훈련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멤버가 되라는 물을 가르시는 지 감격했던 그 멤버, 

만나와 메추라기를 바라보며 감격했던 그 멤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황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잘못 예배했던 바로 그 멤버... 그 멤버가 됨으로 인생의 실패와 성공이 과연 무엇때문이고 어디서부터인지 다시 그 역사,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건의 멤버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성경을 보면서 글자 하나 하나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현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땐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때의 사건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말씀이기 때문에 읽는 것입니다. 

그 때의 멤버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보고 다시 그 때의 멤버가 되라는 것이기 때문에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생생한 이스라엘의 사건을 보이시면서 우리도 똑같은 그 때의 멤버라고 지금도 말씀을 걸어오시는데 사람들은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 멤버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짜라는 것입니다. 그가 말씀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도 거짓된 말, 허황된 말, 공수표가 남발하는 말 속에서 살았습니다. 

진짜 이루어지는 말에 대해서 별로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도 별 기대 안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말도 신뢰를 못합니다. 

마치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아들을 준다는 가브리엘의 말에 헛웃음 짓다가 벙어리 되는 것처럼 기도 해놓고 자기 기도도 까먹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다시 그 멤버가 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의 일생을 기억하시면서 자기 인생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사건의 바로 그 멤버가 되어 보십시오. 


3. comemorize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떼시며 주님의 살과 피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가 됨을 말씀하시고 이제 후로 먹고 마실 때마다 이것을 기념하라(comemoration)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념하라는 것은 곧 함께 기억(co-memorate)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은 현재만 살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하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의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에 불평합니다. 

현재는 늘 부족하게 여겨집니다. 많이 가져도 현재는 늘 부족합니다. 출애굽을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의 문제 앞에서 늘 불평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3일 동안 마실 물이 없자 곧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현재에 조금 힘든 일 있으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현재만 기억하는 사람은 또한 교만합니다. 

현재 자기가 가진 것이 다 자기 때문인 줄 착각합니다. 내 것인양 누립니다. 

그런데 기념하는 사람은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함께 기억하는 것입니다. 

즐겁게 누리되 이것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 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고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통해 공동체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에서 보면 각기 처한 각처소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장소, 성전에 나와 함께 이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곧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홀로 교만한 것이 아닌 함께 있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성령과 함께 하고, 그리고 성도와 함께, 교회와 함께 하는 사람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4. 추수감사절의 유래 

종교개혁이 형식적인, 타락한 가톨릭 교회에 반대하는 신앙의 순수 회복 운동이었다면, 영국에서는 신앙의 순수회복을 위한 종교개혁이라고 하기에는 좀 불편한 형태의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1534년 영국의 왕이었던 헨리 8세가 자신의 시녀인 엔 볼렌과 결혼하기 위하여 여왕인 가타리나와의 이혼을 승인해 줄 것을 교황에게 요구하였으나 교황이 이를 거부하자 의회를 열어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하여 형식은 그대로 가톨릭을 따르나 가톨릭으로 부터 분리되어 이른바 영국 국교회, 성공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동기나 형식이 신앙의 회복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루터나 칼빈과 같은 순수한 신앙운동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청교도라 불리며 완전한 신앙의 회복 운동을 실시하게 됩니다. 그런데 국교회를 공고히 하고자 한 국왕은 국교회를 따르지 않는 가톨릭 교도나 청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하고 청교도들은 국가의 핍박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 승무원 6명과 남자 72명, 여자 29명, 100여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1620년 메이플라오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먼 미국땅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배를 타고 이런 긴 항해를 한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 100여명의 사람들이 긴 뱃여행을 시작해서 65일만에 11월 9일 미국의 동부 메사추세츠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사이 배 속에서도 어쩔때는 하루 2-3명씩 끊임없이 죽어나갔습니다. 뱃속에서도 뱃멀미니 건강악화로 시달리다가 꿈에 그리던 땅에 도착했더니 그곳 사정 역시 만만치가 않습니다. 곧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했고,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에서 식량난과 굶주림으로 하나 둘씩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첫해 겨울을 지나는데 죽은 숫자가 50명이 넘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대부분은 또한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들이었습니다. 어찌 눈물바다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 고통과 슬픔을 이기고 그들은 또 땅을 경작하여 옥수수와 감자를 심고 학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다행히 가을 그들은 풍성한 수학을 거두며 추수할 수가 있었습니다. 50 여명 남은 청교도들은 한해를 돌아보며 먼저 죽어간 이들을 기리고, 또한 그들의 농사를 도와주었던 인디언들을 초대했습니다. 90여명의 많은 인디언들이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들새를 잡으러 나갔는데 다행히 많은 칠면조를 잡아 그들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인들은 인디안 들과 아울러 모여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기뻐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이 바라던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습니다.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후회한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꿈에 그리던 미국 땅에 도착했는데 모진 겨울을 만나 추위에, 배고픔에, 금식을 밥먹듯이 하면서 살아가면서 또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을 때에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그 여정 속에서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그들의 삶의 시작점을 되돌아 볼 수 있는 recall의 신앙,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날마다 바라보는 remember의 신앙, 그리고 함께 그 고통을 이기며 그 여정 속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붙잡는 comemorize의 신앙이 있었기에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우리의 감사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신앙은 바울의 시대에 이미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확대됩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정착할 때의 신앙의 중심지는 유럽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이 감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멤버가 되자 이제 아메리카 대륙이 신앙의 중심지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속한 아시아, 그 중에서도 그들과 인접하지 않은 동북, 동남아는 오히려 지구를 돌아 가장 늦게 복음이 전파됩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에 가려 선교사들의 눈에도 가리워진 나라였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중국과 일본을 전도하려고 지나가다가는 곳이 한국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된 19세기 말에 우리나라는 고종황제가 이른바 쇄국정책을 통해 서구 문물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의 입국 자체가  차단되었고 몰래 들어와서 선교를 하다가 죽었습니다. 

멀리 영국에서, 미국에서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왔던 수많은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이 긴 뱃여행으로 땅에 내리지도 못하고 죽은 경우도 허다했으며 땅에 내려서도 낯선 환경과 문화로 미국땅에서 첫해 절반가까이 죽었던 것처럼 귀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한 희생과 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된지 100여년 만에 우리나라는 영국을 이어 세계에서 가장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청교도들의 신앙이 미국을 낳았고 영국을 바꾸었듯이 뚫릴 것 같지 않던 한국의 신앙의 문이 열리자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나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역사는 곧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들의 역사이고 그 감사의 역사는 또한 선교의 역사, 복음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감사할 제목이 없어요. 전 아픕니다. 전 힘듭니다. 

왜 우리 감정이, 환경이 감사하도록 허락지 않는데 말씀으로 감사하라고 하시는가? 

변치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견고히 서라는 것입니다. 내 지금 감정이나 환경은 어렵고 막혀 있어도 반드시 그 분이 날 인도하시고 감싸 안으시고 보호하신다는 믿음 위에 서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내가 받은 은혜를 되찾게 하십니다. 

감사는 지금의 어둠을 이기는 소망이 됩니다. 

그래서 감사는 

천국 백성의 표요

감사는 신앙의 선포요

감사는 행복의 열쇠요

감사는 하나님을 아는 참 지혜요

감사는 죄의 독을 없애는 해독제요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그릇입니다.


2015년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처럼, 척박한 땅 조선에 첫 발을 내딘 선교사들처럼 양 갈레의 길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인생의 여정을 되돌아 보며 새로운 시작점에 설 것인가? 아니면 그냥 발 닿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대로 아무 변화없는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그 사건 하나 하나에 우리의 삶을 담아 하나님 나라의 멤버로서 살아갈 것인가? 

이 땅의 멤버로서 사람들 눈치보며, 세상에 굴종하며 그렇게 살아갈 것인가?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며 하나님 하신 일들을 나누며 예배 공동체, 신앙 공동체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내 인생 하나 살아가기 급급한 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가? 

감사는 내 인생을 recall하고 하나님 나라의 remember가 되는 것이며 로고스 신앙공동체를 통해 comemorate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 기억하는 성도, 기념하는 성도,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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