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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0-12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마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성경에서 8이라는 의미 -

지난 주 일곱 번째 복 - 화평케 하는 자 - 온전함. 하나님의 완전 수 

거기서 끝났으면 훨씬 더 깔끔하지 앟았을까? 

아니면 십계명처럼 또다른 완성의 의미인 열가지 복 하면 어떘을까?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팔복 

 성경에서 8이라는 숫자 

 안식 후 첫 날의 의미 - 안식 후 첫 날에 일어난 일 

 새 창조, 새 역사, 부활의 첫 날 

 지난 주 화평케 하는 자를 나누면서 그 화평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내 안에서부터 샘솟는 평안, 내 안이 평안해야 결국 화평케 할 수 있다. 

어떻게 내 안에서부터 화평할 수 잇는가? 내 안에 있는 성령을 통해, 내 안의 주인되신 주님으로부터... 

 

그러한 자가 화평케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 내가 죽음으로, 내가 침묵함으로, 내가 희생함으로 얻어지는 평화. 결국 내가 죽는 십자가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 

순교는 무엇인가? 내가 죽어 원수와 평화를 이루는 것 

 

그 화평을 이루는 자들이 날마다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삶의 역사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삶 

제 팔복은 인전과 새로운 복이 아니라 모든 복의 정리이고, 정점이고, 완성이다. 십자가의 삶은 부활을 통해 완성되고 성도의 삶은 예수의 부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팔복의 시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그런데 마지막 팔복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의 것임이라. 

 

똑같은 약속 

그런데 그 의미는 다르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천국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 - 누구에게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그런데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에게 임하는 천국 -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 토기장이의 마지막 작업 

토기장이가 멋있는 토기를 만들려고 한다. 

흙을 반죽하여 빗고 - 창조 

기계틀에 넣어 돌려가며 반듯한 모양을 만들고- 사랑으로 어루만지심 

거기에 아름다운 모양을 새기고 - 말씀을 새기고...

그리고 유약을 입히고 - 성령의 은혜로 충만케 하고 

자 그럼 토기가 만들어졌는가? 

토기장이가 하는 작업은 여기에서 끝났지만 그것으로 그릇의 모양은 갖추었어도 아직 토기의 기능을 발하지 못한다. 

이제 토기장이는 자기가 빗고 모양내고 무늬를 새긴 토기를 어디에다 넣어야 하는가? 

펄펄 끓는 용광오에 넣어야 한다. 

그 뜨겁고 오랜 용광로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서 그릇이 된다. 

그 과정을 거지치 않으면 그저 토기 모양의 진흑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바로 고난과 핍박을 통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 라오디게아 교회 - 소아시아의 마지막 교회 

책망 - 차갑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 차가운 신앙이란 없다. 

결국은 뜨거운 신앙- 그러므로 너희가 열심을 내라. 

그들에게 주어진 진단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한 그들에게 내린 처방: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 핍박의 이유 

(1) 세상으로부터 

높고 고위한 사람- 존경의 대상이지 핍박의 대상이 아니다. 착한 것 - 칭찬의 대상이지 핍박의 대상이 아니다. 

왜 핍박을 받는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들이 보기에 좋은 사람 있으면 가까이하려 하고, 본받으려하고, 칭찬을 아끼자 않는다. 

그런데 왜 그리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는가? 

착해서가 아니고, 고귀해서도 아니다.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 방향, 목적,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기가 좋아보이는 여러길을 가지만 우리는 한 길 (The Way)를 향한다. 

 

이 핍박은 내 성격과 기질 때문에 받는 핍박이 아니다. 내 의를 내세워서 받는 교만함으로 인한 핍박도 아니다. 

"나로 말미암아- 곧 주님 떄문에 받는 핍박" 

그 핍박의 내용은 무엇인가? 

욕먹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그들을 거슬르게 하고 (앞 길을 막는다. 계획을 튼다. 마음을 상하게 한다.) 

악한 말을 듣는다. 

 

왜? 내가 못나서, 내 죄 떄문이 아니고 오직 주님 때문에, 예수 믿어서,  

 

(2) 세상으로부터 받는 핍박보다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러운 핍박 

예수님은 누구에게 가장 고통받으셨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 잘못된 종교인들, 그리고 가룟유다 

바울과 사도들 - 유대인들,

마틴 루터 - 1940년대 제 2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가톨릭으로부터 사탄으로 불림. 

 

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부터, 성도로부터 박해를 받는가? 

역시 다르기 때문에 

세상과 똑같은 목적, 기복적이고, 높아지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믿는 자들로부터 거꾸로 위선자라고, 너만 잘났냐고,,,,

 

차라리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으면 선과 악이 분명하니까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는데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당하는 박해는 왜 더 고통스러운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내가 제대로 믿고 밌는가? 내가 정말 위선자는 아닐까? 

수없이 고민하고, 수없이 절망하고, 수없이 방황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고통을 어떻게 이기는가? 

말씀으로 묻고 말씀 안에서 해답을 찾으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 어떤 의인가? 하나님의 의 - 하나님의 나라 

그것을 구하는 자들이 받는 복  배부를 것이다. - 가르쳐줄 것이다.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분별하게 해 줄 것이다. 

감추어짐 만나를 먹게 할 것이다. 

 

  • 핍박의 대명사 -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의 감독 - 폴리캅

로마 황제가 그 유명한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 그를 붙잡아 직접 심문 

이 자리에서 황제에게 절하고 그리스도를 욕하면 너를 살려줄 것이다. 

"내가 86년동안 예수를 믿어왔지만 한 번도 나를 실망시칸 것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그를 배반하리요" 

당시 산사람을 화형시킬 때에 달려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묶는 것이 관례 

"나를 묶지 마시오. 그리스도께서 내가 달려나오지 않도록 함께 해 줄 것이요" 

그야말로 번제처럼 불타 화형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던 황제와 로마인들이 그의 숙연한 죽음 앞에서 충격을 받고 

도대체 그리스도가 무엇이기에 저렇게 죽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은 박해해도 소용없다. 소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를 멈추게 한 사건. 

 

로마가 한 순간에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역사가 쌯여 그들을 죽이고 그것을 현장에서 보았던 많은 로마인들이 하나 둘씩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지금 선교학자들이 말하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표상 - 북한의 지하교회성도 

오직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지금도 끌려가고 메맞고 고문당하고.... 

 

북한 선교하는 모둥이돌 선교사님의 간증. 

 

한 지하교회 성도가족이 끌려갈 위기에 차했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을 통해 잠행해서 탈북을 시도

86세 된 노인부터 그의 손녀까지... 

나갑시다. - 나갈 수 있소? 나가도록 돕겟소. 

그런데 86세 된 할아버지가 걸림돌 몸도 시원찮고  

꼭 나가고 싶소. 왜 나가고 싶소? 

다른 이유 없소. 죽기 전에 소리내어 찬송을 부르고 싶소

 

그 소리에 선교사님이 말문이 막혀 같이 가고자 하는데 

가기 전에 예수님께 기도하고 깁시다. 

"북한을 나오려는데...

내가 손이 없어 너를 구원하지 못한지 아느냐, 내가 능력이 없어 너를 도망치지 못하게 한 줄 아느냐? 

그럼 고난 당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잡혀 가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이렇게 죽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까? 

 

지금도 맘 먹고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재던지고 그들의 고통과 함께 나누고 지하속에서 한 영혼이라도 그곳의 영혼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남아 있는 성도들.. 

 

예수믿기 힘든 시대 

예수 믿어서 욕먹는 것 참기 힘든 시대 

 

그런데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복이 있다. 하신다. 

기ㅃ쩌고 즐거워하라 하신다. 

하늘에 상이 크다 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 하신다. 

 

순교의 현장에 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

로마의 경기장에서 순교하는 것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순교의 현장에 발견된 그들의 모습 

두려운 마음은 사라지고, 기쁨 가눙데 평안한 모습 

왜? 예수가 그들과 함께 있으니까....

 

예수를 위한 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어떤 메유얼인가? 

어떤 기운인가? 

아니다.. 인격이다. 

인격적인 만남이다. 

그 박해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예수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 예수를 조금이나마, 부족하나마 나도 사랑할 수 있다는 데에서 나오는 능력 

그 예수와의 만남이 잇기에 그 사랑으로부터 박해를 이길 능력이 나온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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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 -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받을 것입이요. (마 5: 9)

팔복 중 일곱번 째 복 - 일곱: 하나님의 완전 수

청결함 -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복

         - 손을 깨끗이 하듯 행동이, 삷으로 정결함이 나타나야 한다. 

         -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  

         -> 하나님을 볼 것이라. - 야곱이 이스라엘 되듯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변화되리라. 

         ->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이, 변화받은 자들이 누리는 온전함의 복. 

         평화의 복은 온전함의 복, 우리가 맺는 가장 온전한 열매 -평화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평화 

이스라엘의 역사 - 고난의 역사 - 식민지의 역사

그들의 인사 - 샬롬 

우리나라 사람들- 안녕하세요? 밤새 안녕하셨지요? 왜? 그 밤에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지 못했으니까.

  • 성경에 등장하는 평화, 평강, 평안, 화평 이라고 번역된 단어들 -> 샬롬의 의미 
  • 예수님 -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 

베들레헴에 나실 때 허다한 천군이 천사와 함께 찬송하여 가로되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친히 제자들에게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부활하심으로 평화의 복음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 것입니다. 그의 일생은 화평케하는 자의 온전한 일생이었다.

예수는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 세상이 말하는 평화 

세계의 패권 - 로마 -> 로마의 국가 철학 -팍스 로마 -평화로운 로마 

무엇을 가지고 이 평화를 유지하는가? 힘과 법

그들의 식민지 - 종교의 자유 보장, 자치권 인정, 엄벌에 처하는 것 - 평화를 깨뜨리면, 소란케 하면...

 

예수님, 사도바울 -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란케 했다는 죄로....

 

- 트럼프의 전략 - 힉인들이, 멕시칸들이, 이민자들이...우리의 평화를 깨뜨렸다. 

- 영국: 유럽 연합에서 탈퇴하여 우리까리 평화하자. 

 

  •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의 의미 

영어성경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를 Peacemaker,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럼 그 평화는 어디에서부터 만들어 지는가? 

외부에서 오는 평안? NO!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평안 

화평케 하는 자는 먼저 자기 마음 속에 화평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안 - 어떤 환경에서도 요동치 않고 주어지는 평안 

 

세상의 것들이 왜 참 복이 되지 못하는가? 물질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명예가, 권력이 아무리 높아도 평화를 간직할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복들은 성공하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평화를 잃어버리고 깨뜨리고 사라지게 합니다.

 

코로나 19 -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공급되는 돈. 

육신은 쉬고, 물질도 어렵다고 하지만 캘리포니아 한인가정 - 대부분 국가적 혜책 

온 가족이 함께 머물며.... 

그런데 평안하신가?  왜? 불안하기 때문. 안심할 수 없기 때문.... 

 

인류의 모든 문제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미움과 증오와 원수 맺는 타락한 본성 때문이다.  이것은 교육으로 될 수 없다. 사상으로도 안된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성령은 평화의 왕이다. 평화의 왕이 임할 때에 우리가 평화의 사람이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어 평화의 사도로 임명했지만 그들은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심령 속에 평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3년 동안 배웠지만 그들은 원수를 사랑할 수가 없었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없었다. 그들 안에 평화의 복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뒤를 따르면서도 그 마음 속에는 평화가 없었다. 제자들은 서로 시기하며 다투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자냐고 자리다툼을 하고 분을 내고 있었다. 그들의 심령 속에 평화의 복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도 언제나 마음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었다. 자기를 압제하는 로마를 정복하는 꿈... 자기 실현 자기 목적, 오직 성령이 임할 때에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

 

  • 자기 안에 평화가 이루어질 떄에 비로서 형제들과 평화가 이루어진다. 

남들과 평화하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늘 그 원인을 외부에서, ~ 떄문에라고 하지만 내 안에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까지 용서하시고 평화를 이루심..

님들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내 안에 평화로와야 하고 또한 내가 십자가 안에서 죽어야 한다. 

자신이 죽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평화를 누릴 수가 없다. 

 

우애하고 화목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한다. 자기 욕심을 다 채우고는 결코 화목하기가 힘들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을 부정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형제들과 화목하고 평화로운 사람은 행복하다. 서로 원수 맺고 싸우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 순교는 평화의 사도가 되는 신앙행위이다. 순교는 원수의 손에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죽음으로 원수와 평화를 이루는 행위이다.

원수의 칼에 죽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자기 죽음을 자원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만약 원수의 손에 죽으면서 마음 속에 미움을 품고 죽어간다면 이것은 순교가 아니다. 자기를 적대하는 사람에게 평화를 이루고 자신이 먼저 죽어서 원수의 마음 속에 평화를 심어주어야 한다

자기를 죽여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은 평화의 산 증인이다. 순교의 제물은 어디나 있어야 한다. 자기를 죽이고 가정에 들어가면 가족들의 마음에 평화가 임한다. 직장에 순교자로 들어가면 동료 직장인의 마음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

 

  • 화목제물의 의미 

[레 7:15-18]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흠이 없어야 한다. 

가정 평현체 따라 제물의 종류는 다를 수 있다. (소, 양, 염소...) 

그 날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 

 

어떻게 해야 그것을 하루 동안에 먹을 수 있을까? 

나누어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셋쨰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 것이다. 왜? 상해서? 

다 나누지 못해서, 자기를 위해서 남겨서...

 

자기를 위한 화목제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돌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질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드린 제사 - 회목제

오직 회목제는 제사 후의 남은 음식을 제사장에게 주거나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어 먹게 했다. 

 

결국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탐욕을 버리고, 우리의 것을 희생하며 나누라는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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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8절 - 그리스도인의 청결함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청결- 카탈로스 - 더러워진 어떤 것을 씻어내다.

 - 카타르시스 -> 카탈로스에서 파생된 용어,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다.

 

청결하다는 말은 “키질하고 채로 쳐서 모든 겨를 제거한 곡식”에 사용된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고, 하나님의 의를 사모함으로 말씀으로 나를 가다듬고, 닦아서 마음 속의 불순물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정결의 의미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석하셨는가? 

마음이 청결한 자 -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 

 

  • 청결의 의미
  • 마음이 청결한 자의 의미 
  • "하나님을 볼 것이라"의 의미 

 

당시 유대인- 바리새파, 제사장, 서기관 -> 청결의 유지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강조,

제사, 음식, 의복, 관계- - 정결법 - 거룩하게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율법

 

어느날 예수님을 만나러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막 7:15-16)

 

손도 씼지 않고 음식을 먹는가? - 그들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청결의 위배 

 

[마 23:25-28]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왜 겉만 깨끗이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쳗결함의 의미 

 

1. [약 4:7-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 정결함의 반대 - 두 마음을 품는 것-> 마음이 청결한 자 - 하나님을 바라보고 집중하는 자  

 

"두 마음을 품는 것" 

  • 하나님과 우상,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

이스라엘의 범죄는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상을 겸하여 섬긴 것- 바알과 앗세라 - 그들의 농사와 충요로운 삶에 연관된 신 

마음을 품는 자에 대해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1:8절을 보면 ‘두 마음을 품은 자’를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하십니다.

 

구약성경 호세아 10:2절은 두 마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 주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는 것 

베드로: 풍랑이는 바닷가에서 다가오시는 예수님 

"주여 주시어든 나로 오라 하소서" 주님을 향해 풍랑 위를 걷던 베드로가 중간에 바다에 빠진다. 왜? 

바람을 보고 빠져 가는지라. 

 

엘리야-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앗세라 선지자와의 영적 전투 

          - 이세벨의 유혹 

[왕상 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마음이 정결한 것 - 마음이 나뉘어지지 않는 것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방법, 자기 형편, 자기 감정에 이끌리는 마음 - 정결하지 않은 마음 

믿는 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과 명예와 권력에 의지해서 살고자 하는 것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로다".

 

2. [시 24:3-6]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여호와의 산, 거룩한 곳 -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 누구냐? 

  • "손이 깨끗하다"의 의미  

[사 1:15-17]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 - 팔복과 이어지는 말씀 
  •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자이다. 

 

3. [히 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무엇을 통해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가? 예수의 피를 힘임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 무엇으로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는가? 예수의 피, 십자가의 보혈로... 
  •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 - 

 

청결의 조건 

  • 두 마음을 갖지 않는 것 
  •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자 
  • 예수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 속에서 정결함을 나타내는 자. 

 

하나님의 얼굴을 대한 자 모세? 

브니엘 - 하나님의 얼굴 

언제 그가 하나님을 보았는가?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며 자기 죄를 고백하며 사기꾼(야곱)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의 이름이 바뀌었을 때에... 붙인 이름, 

 

아무 것도 의지 할 것 없을 때에 얍복강 가에서 비로서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를,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자기 자신이 사기꾼 이었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그가 의지하는 힘의 상징인 환도뼈를 치면서 평생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은혜를 주신다. 

 

  • 오늘 새벽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지만 그는 어느 도시를 가던지 가장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에게 먼저 말씀을 전한다. 

 

[행 28:26-27]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누가 병자인가? 유대인들, 오래 믿은 자들, 자기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

구약시대 가장 큰 질병 - 문등병, 자기 병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 

이단보다 더 무섭고, 이방인보다 더 어리석은 자들- 38년된 병자, 오래된 병자, 분등병자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왜 그토록 오래동안 신앙생활 하는데도 은혜에서 멀어져 가는가?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는가? 

두 마음을 품고,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고, 세상에 나가서 똑같이 돈밝히고, 줄을 잡으며, 온갖 꾀에 의지해서 살고자 하니 말씀을 들어도 읽어도 내 마음에 남지 않는다. 

그런 심령은 언제나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일 뿐이다. 

 

가장 큰 복- 하나님을 경험하는 복,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복, 하나님 나라를 사는 복. 

언제? 내 마음의 시선이 하나로 모아지고, 예수의 보혈의 은혜가 내 삶 구석구석 펼쳐지고, 내 삶에 믿음의 열매가 맺힐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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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7절 긍휼

 

지난 주 설교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어떤 의인가? 하나님의 의

내가 의로와지기 위해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말슴에 길들여 지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길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내 노력과 내 의지만 가지고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음을 절절히 깨닫고 

내 안의 성령이, 주님의 은혜가,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예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왜?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할 수록 우리가 깨닫는 것은 말씀이 날 거룩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요

내 안에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이 자꾸만 나오기에 주님께서 날 불쌍히 여기사 날 다스려 달라고, 인도해달라고, 함께 해 달라고...주리고 목마른 것 

심령이 가난한 것이 내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라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말씀 생활 하면서, 기도생활 하면서도 여전히 거룩해지지 못하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씀 안에 비추어진 나를 바라보며 목말라 하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신 복? 배부를 것이다. 

 

무엇으로? 다시 한 번 말씀으로, 은혜로, 하나님의 통치로, 하늘의 만나로.... 

 

지난 주 까지의 복 - 내면의 복,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복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열리게 되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 

 

이제 다섯 번째 복 부터는 구체적인 내 삶 가운데서 펼쳐지게 되는 하나님 나라 사람들의 모습. 

그 첫 번째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 당시의 사회에서 통용되던 긍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부모는 오직 건강한 자녀만을 키울 책임이 있다.  

세네카 - 건강하게 출생하지 못한 자는 신의 저주를 받은 자요, 또한 저주받은 삶을 산다. 

 

사랑받고, 대접받고, 존경받고, 인정받고 ->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고, 자격 없는 자가 있다. 

어떻게 저러한 철학자가 이런 말들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당시만 그런가? 그들의 말은 지금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가? 

 

지굼도 여전히 세상은 받을만한 사람에게만 베풉니다. 은혜도 그렇고 상도 그렇고 축하도 그렇다. 상을 받을만한 사람, 축하를 받을 만한 사람, 은혜도 받을만한 수고와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사랑도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만 베풀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기면 분노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속상해한다. 

 

2. 이와 반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긍휼은 무엇인가? 

 

먼저 구약에서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집약한 단어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인애 - 헤세드 - 하나님의 성품 -사랑, 긍휼, 자비로 표현

그 하나님이 예배보다 백성들에게 더욱 원하신 것 - 바로 헤세드 - 인애, 자비, 긍휼, 사랑 

하나님의 무엇을 알기를 원하나? 바로 그 분의 헤세드. 그 분의 사랑, 긍휼 

 

긍휼- 구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을 집약한 단어 

 

[애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그 긍휼은 무엇인가? 

 

  • 긍휼은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따스한 손을 내미는 것이 긍휼이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것이 긍휼이다. 그저 사랑하고픈 마음으로 베풀기만 하는 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은 누구의 마음인가?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는 자녀를 보면 돕고 싶다. 못하면 대신 해 주고 싶고 필요한 것 있으면 사주고 싶고, 말 안들어도, 때로 애 때문에 속을 태우고, 고생을 해도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피곤해도 자녀에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바로 긍휼이다. 

긍휼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내 옆의 이웃에게, 내게 맡기우신 영혼에게 넓히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46-47에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가족에게 문안하는 것은 긍휼이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죄인 취급을 하던 세리를 사랑하고, 짐승 취급을 하던 이방인을 문안하기 위해서는 긍휼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긍휼은 자격을 묻지 않고,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베프는 사랑이다.  

 

  • 그래서 긍휼에는 조건도 없지만 대가도 없다.

 

대가를 바라고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는가? 내가 널 키우는 데 얼마 들었으니까 너 크면 갚으라....

아니 다 주고 키워줘어도 죽을 때까지 더 남겨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글흉은 그 마음을 이웃에게로 향하게 한다. 다른 사람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람에게 부모의 마음을 주신다.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은 마르지 않는다. 

 

사랑하여 죽고 못살던 연인들이 왜 헤어지나? 서로 바라는 것이 채워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휼한 마음은 대가를 생각지 않는다. 아니 그 모든 대가를 주님이 이미 치루셨기에 감사함으로 행한다. 

 

  • 긍휼은 단순히 동정이나 불쌍한 느낌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긍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언제나 마음과 행동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긍휼과 짝이 되는 단어 - 성실 "지속되고 반복되는 행동" 

[롬 12: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우리말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 ‘엘레에오’는 마음으로 느끼는 자비, 용서, 친철, 은혜의 구체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즉 마음과 행위가 동반된 것이 긍휼입니다.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직접 병문안을 가거나 아니면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전해 주고, 가슴이 답답한 일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시간을 내어서 들어준다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긍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언제나 마음과 행동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설파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참된 긍휼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안 인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때 율법사가 이같이 답했습니다. (누가복음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우리말 “자비”로 번역된 단어가 ‘엘레오스’ 긍휼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 저에게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윗입니다. 다윗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둘람 굴에서의 다윗.

[삼상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에게 긍휼이 없었던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광야에서 그 400명을 거둘 수가 있었겠습니까? 압제 받은 자, 빚을 진 자, 원통한 자, 억울한 자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한들, 어디 자랑거리나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을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긍휼을 베풀었던 400명을, 하나님은 다윗의 용감한 군사로 만드셨고, 그 400명의 손으로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셨고, 그 400명을 통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다윗의 거처를 광야의 동굴에서 이스라엘의 왕궁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랑의 출발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4. 어떻게 긍휼한 자가 될 수 있는가?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예수 닮을 수 있다. 

예수는 긍휼히 여기는 자의 모델이 되시고 원천이 되신다.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으셨겠습니까?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긍휼이 불붙듯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여전히 불의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믿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이 없었던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나 있었겠습니까?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이처럼 귀한 예배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들 간에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긍휼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의 긍휼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그 분의 긍휼하심을 닮지 못한다. 

주님은 긍휼을 넘어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신다고까지 하셨다. 

체휼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체험하시면서 함꼐 하신다는 것이다. 

 

5. 결론 

신앙인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때 

기도 중에나, 찬송 중에나, 말씀을 읽으면서 "그 분이 내 마음을 아시고, 그 분이 내 마음을 위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심령으로 느낄 떄" 

 

그런데 여러분, 우린 언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아니 되보려고 애쓴 적이 있는가? 

 

하나님 나라 사람들에게 주님은 "긍휼함을 얻은 너희여, 이제 너희도 나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라..." 

 

그런 자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가? 너흭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긍휼히 여김을 받았는데? 

무슨 말일까?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면서 비로소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긍휼히 여겼는지를 더 깊이, 더 진실하게 경험할 것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속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반항하고 투정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하는 말 - 너도 애 낳아서 키워봐....

키워보면서....비로서 깨닫게 되는 그 깊은 사랑. 

 

저희 어머니가 목회하면서 여자 성도 한 분이 여자 목사라고, 어떻게 여자가 목사가 되냐고....그러러면 다른 교회를 가든가, 여전히 나와서 다 좋은데 여자 목사라서 이 교회는 안된다.....

 

끙끙 앓다가 하신 기도 " 하나님, 저 집사님, 주의 종 되게 해 주세요...주의 종의 마음을 알려면 주의 종 되야 하잖아요...: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진정 깨달을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긍휼한 사랑을 하면서, 그 아픔을, 그 깊은 사랑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주님 닮고 실지 않으세요? 주님 마음 알고 싶지 않으세요?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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