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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1 12월 2일
  2. 2012.12.01 11월 30일 (금) 버가모 교회
  3. 2012.12.01 12월 1일 (토) 아침묵상 갈라디아서 6장 7-9
  4. 2012.11.30 내면의 빛의 소리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외부적으로 걱정거리가 없어도 늘 걱정하며 불안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전쟁이 나면 어떡하지, 미국이나 한국이 망하면 어떡하지, 지진이 일어나면 어떡하지…등등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걱정하며 불안해 합니다. 조금만 안좋은 일이 생겨도 더 안좋은 일을 기다리는 사람마냥 걱정이 가득합니다.

모든 일이 잘 안 풀리고, 누가 보아도 상황이 안 좋고 걱정거리가 많은데도 이상하게도 마음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장 내일 일이 걱정인데도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라는 찬양의 가사대로 하루 하루 기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보장된 성공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혹 어떤 일에 있어서 실패하여도 그것은 성공을 향한 하나님의 훈련이고, 내 연약함을 단련시키는 연단이고, 하나님의 강하심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 연약함의 통로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로고스 교회 성도 여러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평안을 소유하시는 우리가 됩시다. 어차피 우리는 보장받은 성공, 영생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실패도 우리를 궁극적인 구원으로 인도하는 통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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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5일  (0) 2012.11.24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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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       13절을 보면 버가모는 사탄의 영향력을 받는 도시, 거대한 우상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자랑하는 것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①그 첫째가 제우스 제단이고두 번째로는 아스클레오피오스라는 치유의 신을 모시는 아스클레오피온이라는 유명한 병원이며세 번째는 2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명한 도서관입니다. 그 대규모 도서관에 대해서 도시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는 세계 제일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1)     제우스 신전: 태양신 제우스- 당시 이방세계 최고의 신. 그 신을 모신 신전. 그 뒤로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봉축. 아시아 전체에서 살아있는 황제를 기념하는 최초의 신전. 황제 숭배의 중심지.

2)     아스클레오피온 (치유의 신-) 신전과 그 신의 이름을 한 아세아 최고의 병원

그 신의 모습인 뱀을 보며 구주라고 부름.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환자들을 대리석으로 된 길을 맨발로 엄숙하게 걷게 해서 병원 뜰 중앙에 솟아오르는 온천수에서 목욕을 한 번 합니다. 다음으로 지하 터널로 된 치료실을 지니는데 그러면 치료실 위쪽으로 난 창문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네 병은 곧 낫는다. 나을 수 있느니라.’ 라며 심리적으로 그들을 고취시킵니다.  다음에는 치료실을 나와 극장에 가서 음악을 듣고 마지막으로는 아스클레오피온 신 앞에 가서 기도하고 서약을 합니다. 곁들여 제우스 신 앞에서도 역시 구주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신전 내부에는 길들인 뱀들을 키우는데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캄캄한 시간에 뱀들 중 한 마리가 옆으로 지나다가 스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신전에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뱀의 접촉은 아스클레오피온 신의 접촉이므로 즉시 치유가 뒤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è  마귀를 상징하는 뱀을 구주로, 치유의 신으로….

3)     아시아 최고의 도서관: 20만권 이상의 장서. 모든 이방사상의 지식들이 저장되어 있슴.

이런 곳에 위치한 교회

-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è  우리 같으면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터는 세상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우라 하신 곳에 세우는 곳이다.

에베소 교회의 중심 주제가 사랑, 서머나 교회가 고난이었다면 버가모 교회를 향한 중심 주제는 진리이다.

복음은 사랑과 진리를 균형 있게 하나로 묶는다. 진리를 무너뜨리고 사랑만을 외치면 감정에 빠지고 혼탁해지며 결국 타락하게 된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매정하고 지독하고 판단하며 결국은 교만해지게 된다.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들고 ( 4;15), 진리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며 (요삼 1), 사랑에서만 아니라 분별력에서 자라가라고 하신다. ( 1:9)

교회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 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은 이러한 균형을 잃어버릴 때에 일어난다.

때로 우리는 핵심 사항은 경시하고 주변적인 문제는 확대시킨다.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진리들은 양보하고 정작 부수적인 문제들과 하찮은 일에 목청을 높일 때가 많다. 그러면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절대 원칙, 핵심은 무엇인가?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3)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상황에서나 반드시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이다. 교회의 생명은 이 교회가 세상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붙잡고 있느냐? 그 분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하는 것. 내가 절대적으로 예수를 붙잡고 있는가?

서머나 교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을 상황에서도 믿음을 채워라. 충성: 믿음으로 채워라.

버가모 교회: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노라.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소아시아의 3대도시, 그러나 에베소 가장 큰 도시 (수도), 서머나 (무역도시), 버가모 (의학, 종교적 도시,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발전하면서 점점 쇠퇴한 도시) -> 규모가 작아지면서 교회가 처한 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 갔고, 그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의 깊이는 더 깊어져 갔다.

그들은 죽음이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진리 안에 서 있었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죽음에 맞서는 믿음이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안디바: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Anti-대항하는, Papas-교부(교황)”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교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다.  요즘 표현으로 '안티'. 무엇에 대한 안티인가? 신실한 증인 안디바는, 세상적인 교회가 끌어들이고 실행했던 모든 것을 반대하여 섰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순교자가 되었다. 헬라어로증인이란 말은 '순교자'와 같은 단어이다.

반대(안티) 증인인 안디바는, 예수의 간증에서 벗어난 어느 것에도 반대하는 반대 간증을 했다. 그의 생존 시 버가모 교회가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것은 이 반대 간증으로 말미암은 것임에 틀림없다. 전설에 따르면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 때 그를 솥에다 쩌서 죽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시며 그의 죽음을 귀하게 보셨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책망 받을 것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불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적이었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발람이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주장하셔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말이 나갑니다. 그러나 발락이 주는 물질에 탐심으로 가득찬 발람이 음란한 연회를 열어서 모압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이라고 하여 그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맞춰져야 할 믿음의 초점을 우상에게 돌리게 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정신을 파괴시킨 것이었습니다( 31:16).

1세기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됩니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와 로마의 관습과 철학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니골라당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교회 안의 부유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고결한 표준을 사람들의 미묘한 철학적 논리와 이교 사상과 혼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부인하도록 유도하였다. (동성연애, 요즈음 일어나는 부부교환,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인간의 의와 논리 위에 세워진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었다. 사단은 에베소 교회시대 이후 계속해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인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킨다라는 도덕률 폐기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예수님의 권면과 축복의 약속

-       회개하라.

-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수님의 말씀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12)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4:12)

오류를 이기는 것,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것은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2:16)

 

축복의 말씀

1)     감추었던 만나: 이스라엘은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 16:32~3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차 메시아 왕국에서 공개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들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말씀. 만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상징한다(요한복음 6:26~63).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셔서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그분과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2)     “흰 돌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신명기에 보면 돌판에 석회를 발라 희게 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게 합니다. 즉 흰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돌입니다. -> 그리스도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 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다.(우림과 둠님) 흰 돌은 무죄 석방을 의미하였고, 검정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게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새로운 이름이 그 돌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다. 흰 돌은 자유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흰 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세상을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오직흰돌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고 또한 바로잡으라고 하시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와 흰돌, 또 다시 말씀을 준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주어진 계시를 굳게 붙드는 사람에게는 더 충만한 계시를 준다는 약속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계시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알던 사람들이 그 때는 주께서 자기를 아신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되고, 지금 거울로 희미하게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된다.

(시편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버가모 교회: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 그러나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행위로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금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바르지 못한 교리가 들어와서 흔들려고 한다. 그러니 다시 말씀 위에 굳게 서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진리안에 굳게 서면 더 깊은 말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말씀을 줄 것이다.

네 삶 속에 바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제하고 말씀으로 너를 깨끗이하고 무장하라.

 

금요예배 계시록 7교회 3. 버가모교회 ( 2:12-17) [ 2:12- 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       13절을 보면 버가모는 사탄의 영향력을 받는 도시, 거대한 우상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자랑하는 것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①그 첫째가 제우스 제단이고두 번째로는 아스클레오피오스라는 치유의 신을 모시는 아스클레오피온이라는 유명한 병원이며세 번째는 2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명한 도서관입니다. 그 대규모 도서관에 대해서 도시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는 세계 제일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1)     제우스 신전: 태양신 제우스- 당시 이방세계 최고의 신. 그 신을 모신 신전. 그 뒤로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봉축. 아시아 전체에서 살아있는 황제를 기념하는 최초의 신전. 황제 숭배의 중심지.

2)     아스클레오피온 (치유의 신-) 신전과 그 신의 이름을 한 아세아 최고의 병원

그 신의 모습인 뱀을 보며 구주라고 부름.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환자들을 대리석으로 된 길을 맨발로 엄숙하게 걷게 해서 병원 뜰 중앙에 솟아오르는 온천수에서 목욕을 한 번 합니다. 다음으로 지하 터널로 된 치료실을 지니는데 그러면 치료실 위쪽으로 난 창문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네 병은 곧 낫는다. 나을 수 있느니라.’ 라며 심리적으로 그들을 고취시킵니다.  다음에는 치료실을 나와 극장에 가서 음악을 듣고 마지막으로는 아스클레오피온 신 앞에 가서 기도하고 서약을 합니다. 곁들여 제우스 신 앞에서도 역시 구주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신전 내부에는 길들인 뱀들을 키우는데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캄캄한 시간에 뱀들 중 한 마리가 옆으로 지나다가 스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신전에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뱀의 접촉은 아스클레오피온 신의 접촉이므로 즉시 치유가 뒤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è  마귀를 상징하는 뱀을 구주로, 치유의 신으로….

3)     아시아 최고의 도서관: 20만권 이상의 장서. 모든 이방사상의 지식들이 저장되어 있슴.

이런 곳에 위치한 교회

-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è  우리 같으면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터는 세상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우라 하신 곳에 세우는 곳이다.

에베소 교회의 중심 주제가 사랑, 서머나 교회가 고난이었다면 버가모 교회를 향한 중심 주제는 진리이다.

복음은 사랑과 진리를 균형 있게 하나로 묶는다. 진리를 무너뜨리고 사랑만을 외치면 감정에 빠지고 혼탁해지며 결국 타락하게 된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매정하고 지독하고 판단하며 결국은 교만해지게 된다.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들고 ( 4;15), 진리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며 (요삼 1), 사랑에서만 아니라 분별력에서 자라가라고 하신다. ( 1:9)

교회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 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은 이러한 균형을 잃어버릴 때에 일어난다.

때로 우리는 핵심 사항은 경시하고 주변적인 문제는 확대시킨다.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진리들은 양보하고 정작 부수적인 문제들과 하찮은 일에 목청을 높일 때가 많다. 그러면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절대 원칙, 핵심은 무엇인가?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3)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상황에서나 반드시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이다. 교회의 생명은 이 교회가 세상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붙잡고 있느냐? 그 분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하는 것. 내가 절대적으로 예수를 붙잡고 있는가?

서머나 교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을 상황에서도 믿음을 채워라. 충성: 믿음으로 채워라.

버가모 교회: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노라.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소아시아의 3대도시, 그러나 에베소 가장 큰 도시 (수도), 서머나 (무역도시), 버가모 (의학, 종교적 도시,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발전하면서 점점 쇠퇴한 도시) -> 규모가 작아지면서 교회가 처한 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 갔고, 그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의 깊이는 더 깊어져 갔다.

그들은 죽음이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진리 안에 서 있었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죽음에 맞서는 믿음이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안디바: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Anti-대항하는, Papas-교부(교황)”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교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다.  요즘 표현으로 '안티'. 무엇에 대한 안티인가? 신실한 증인 안디바는, 세상적인 교회가 끌어들이고 실행했던 모든 것을 반대하여 섰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순교자가 되었다. 헬라어로증인이란 말은 '순교자'와 같은 단어이다.

반대(안티) 증인인 안디바는, 예수의 간증에서 벗어난 어느 것에도 반대하는 반대 간증을 했다. 그의 생존 시 버가모 교회가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것은 이 반대 간증으로 말미암은 것임에 틀림없다. 전설에 따르면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 때 그를 솥에다 쩌서 죽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시며 그의 죽음을 귀하게 보셨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책망 받을 것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불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적이었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발람이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주장하셔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말이 나갑니다. 그러나 발락이 주는 물질에 탐심으로 가득찬 발람이 음란한 연회를 열어서 모압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이라고 하여 그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맞춰져야 할 믿음의 초점을 우상에게 돌리게 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정신을 파괴시킨 것이었습니다( 31:16).

1세기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됩니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와 로마의 관습과 철학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니골라당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교회 안의 부유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고결한 표준을 사람들의 미묘한 철학적 논리와 이교 사상과 혼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부인하도록 유도하였다. (동성연애, 요즈음 일어나는 부부교환,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인간의 의와 논리 위에 세워진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었다. 사단은 에베소 교회시대 이후 계속해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인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킨다라는 도덕률 폐기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예수님의 권면과 축복의 약속

-       회개하라.

-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수님의 말씀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12)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4:12)

오류를 이기는 것,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것은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2:16)

 

축복의 말씀

1)     감추었던 만나: 이스라엘은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 16:32~3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차 메시아 왕국에서 공개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들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말씀. 만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상징한다(요한복음 6:26~63).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셔서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그분과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2)     “흰 돌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신명기에 보면 돌판에 석회를 발라 희게 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게 합니다. 즉 흰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돌입니다. -> 그리스도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 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다.(우림과 둠님) 흰 돌은 무죄 석방을 의미하였고, 검정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게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새로운 이름이 그 돌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다. 흰 돌은 자유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흰 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세상을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오직흰돌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고 또한 바로잡으라고 하시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와 흰돌, 또 다시 말씀을 준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주어진 계시를 굳게 붙드는 사람에게는 더 충만한 계시를 준다는 약속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계시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알던 사람들이 그 때는 주께서 자기를 아신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되고, 지금 거울로 희미하게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된다.

(시편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버가모 교회: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 그러나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행위로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금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바르지 못한 교리가 들어와서 흔들려고 한다. 그러니 다시 말씀 위에 굳게 서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진리안에 굳게 서면 더 깊은 말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말씀을 줄 것이다.

네 삶 속에 바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제하고 말씀으로 너를 깨끗이하고 무장하라.

금요예배 계시록 7교회 3. 버가모교회 ( 2:12-17) [ 2:12- 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       13절을 보면 버가모는 사탄의 영향력을 받는 도시, 거대한 우상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자랑하는 것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①그 첫째가 제우스 제단이고두 번째로는 아스클레오피오스라는 치유의 신을 모시는 아스클레오피온이라는 유명한 병원이며세 번째는 2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명한 도서관입니다. 그 대규모 도서관에 대해서 도시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는 세계 제일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1)     제우스 신전: 태양신 제우스- 당시 이방세계 최고의 신. 그 신을 모신 신전. 그 뒤로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봉축. 아시아 전체에서 살아있는 황제를 기념하는 최초의 신전. 황제 숭배의 중심지.

2)     아스클레오피온 (치유의 신-) 신전과 그 신의 이름을 한 아세아 최고의 병원

그 신의 모습인 뱀을 보며 구주라고 부름.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환자들을 대리석으로 된 길을 맨발로 엄숙하게 걷게 해서 병원 뜰 중앙에 솟아오르는 온천수에서 목욕을 한 번 합니다. 다음으로 지하 터널로 된 치료실을 지니는데 그러면 치료실 위쪽으로 난 창문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네 병은 곧 낫는다. 나을 수 있느니라.’ 라며 심리적으로 그들을 고취시킵니다.  다음에는 치료실을 나와 극장에 가서 음악을 듣고 마지막으로는 아스클레오피온 신 앞에 가서 기도하고 서약을 합니다. 곁들여 제우스 신 앞에서도 역시 구주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신전 내부에는 길들인 뱀들을 키우는데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캄캄한 시간에 뱀들 중 한 마리가 옆으로 지나다가 스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신전에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뱀의 접촉은 아스클레오피온 신의 접촉이므로 즉시 치유가 뒤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è  마귀를 상징하는 뱀을 구주로, 치유의 신으로….

3)     아시아 최고의 도서관: 20만권 이상의 장서. 모든 이방사상의 지식들이 저장되어 있슴.

이런 곳에 위치한 교회

-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è  우리 같으면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터는 세상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우라 하신 곳에 세우는 곳이다.

에베소 교회의 중심 주제가 사랑, 서머나 교회가 고난이었다면 버가모 교회를 향한 중심 주제는 진리이다.

복음은 사랑과 진리를 균형 있게 하나로 묶는다. 진리를 무너뜨리고 사랑만을 외치면 감정에 빠지고 혼탁해지며 결국 타락하게 된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매정하고 지독하고 판단하며 결국은 교만해지게 된다.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들고 ( 4;15), 진리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며 (요삼 1), 사랑에서만 아니라 분별력에서 자라가라고 하신다. ( 1:9)

교회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 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은 이러한 균형을 잃어버릴 때에 일어난다.

때로 우리는 핵심 사항은 경시하고 주변적인 문제는 확대시킨다.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진리들은 양보하고 정작 부수적인 문제들과 하찮은 일에 목청을 높일 때가 많다. 그러면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절대 원칙, 핵심은 무엇인가?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3)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상황에서나 반드시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이다. 교회의 생명은 이 교회가 세상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붙잡고 있느냐? 그 분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하는 것. 내가 절대적으로 예수를 붙잡고 있는가?

서머나 교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을 상황에서도 믿음을 채워라. 충성: 믿음으로 채워라.

버가모 교회: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노라.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소아시아의 3대도시, 그러나 에베소 가장 큰 도시 (수도), 서머나 (무역도시), 버가모 (의학, 종교적 도시,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발전하면서 점점 쇠퇴한 도시) -> 규모가 작아지면서 교회가 처한 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 갔고, 그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의 깊이는 더 깊어져 갔다.

그들은 죽음이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진리 안에 서 있었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죽음에 맞서는 믿음이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안디바: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Anti-대항하는, Papas-교부(교황)”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교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다.  요즘 표현으로 '안티'. 무엇에 대한 안티인가? 신실한 증인 안디바는, 세상적인 교회가 끌어들이고 실행했던 모든 것을 반대하여 섰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순교자가 되었다. 헬라어로증인이란 말은 '순교자'와 같은 단어이다.

반대(안티) 증인인 안디바는, 예수의 간증에서 벗어난 어느 것에도 반대하는 반대 간증을 했다. 그의 생존 시 버가모 교회가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것은 이 반대 간증으로 말미암은 것임에 틀림없다. 전설에 따르면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 때 그를 솥에다 쩌서 죽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시며 그의 죽음을 귀하게 보셨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책망 받을 것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불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적이었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발람이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주장하셔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말이 나갑니다. 그러나 발락이 주는 물질에 탐심으로 가득찬 발람이 음란한 연회를 열어서 모압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이라고 하여 그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맞춰져야 할 믿음의 초점을 우상에게 돌리게 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정신을 파괴시킨 것이었습니다( 31:16).

1세기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됩니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와 로마의 관습과 철학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니골라당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교회 안의 부유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고결한 표준을 사람들의 미묘한 철학적 논리와 이교 사상과 혼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부인하도록 유도하였다. (동성연애, 요즈음 일어나는 부부교환,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인간의 의와 논리 위에 세워진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었다. 사단은 에베소 교회시대 이후 계속해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인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킨다라는 도덕률 폐기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예수님의 권면과 축복의 약속

-       회개하라.

-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수님의 말씀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12)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4:12)

오류를 이기는 것,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것은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2:16)

 

축복의 말씀

1)     감추었던 만나: 이스라엘은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 16:32~3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차 메시아 왕국에서 공개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들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말씀. 만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상징한다(요한복음 6:26~63).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셔서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그분과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2)     “흰 돌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신명기에 보면 돌판에 석회를 발라 희게 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게 합니다. 즉 흰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돌입니다. -> 그리스도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 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다.(우림과 둠님) 흰 돌은 무죄 석방을 의미하였고, 검정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게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새로운 이름이 그 돌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다. 흰 돌은 자유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흰 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세상을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오직흰돌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고 또한 바로잡으라고 하시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와 흰돌, 또 다시 말씀을 준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주어진 계시를 굳게 붙드는 사람에게는 더 충만한 계시를 준다는 약속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계시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알던 사람들이 그 때는 주께서 자기를 아신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되고, 지금 거울로 희미하게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된다.

(시편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버가모 교회: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 그러나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행위로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금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바르지 못한 교리가 들어와서 흔들려고 한다. 그러니 다시 말씀 위에 굳게 서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진리안에 굳게 서면 더 깊은 말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말씀을 줄 것이다.

네 삶 속에 바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제하고 말씀으로 너를 깨끗이하고 무장하라.

 

버가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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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묵상)

신앙생활 하면서, 경건의 훈련을 쌓으면서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 가장 우리를 무너뜨리는 생각은 '우리의 훈련과 신앙 생활이 아무런 발전, 아무런 열매, 아무런 성과가 없으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이 몰려올 입니다.

노력의 성과, 신앙 생활에 있어서 노력이라는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지만 하나님께서 깨우치시고 인도하신 것에 따라 순종해왔던 삶에서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우리는 낙심하게 되고 낙심은 신앙의 슬럼프로 이어집니다.

 

그러한 나에게 하나님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나는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속아 넘어가지 말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나와 교제 했던 순간들이 의미 없고 변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나를, 나의 능력을, 나의 통치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은 나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나의 안에 곳곳이 숨겨져 있음을 부인할 없습니다. 없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안에 감사가 없었을 따름입니다.

 

한국에서 여름철이 되기만 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뉴스는 장마나 태풍에 관한 소식입니다. 시기가 되면 장마나 태풍으로 인해 농작물이 얼마나 상하고 피해가 얼마고 하는 소식을 전합니다. 마치 모든 농사가 황폐화되어 아무런 열매를 거둘 없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계속 농사를 지어온 농부들은 설사 농작물에 피해가 있어도 상한 제하고 추슬러서 결국 가을철 추수에 동참을 합니다. 아무리 쓰러져 재생 불가능할 같은 농작물도 다시금 햇빛이 비치고 날씨가 좋아지면 장마도, 태풍도 결국은 추수를 위한 과정이고 좋은 농작물을 위한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추수를 위해선 오랜 기간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닌 노동의 기다림입니다. 날마다 물을 주어야 하고, 거름도 주어야 하고, 벌레나 상한 농작물이 있으면 제하여 버려야 합니다. 썩은 농작물은 농작물에도 피해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농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두려움 속에서 가려고 발버둥치다가 세상과 작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차근히 천국을 준비하여 영혼을 위한 삶을 살다가 천국을 기다리며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천국을 기다리며 산다고 해서 세상의 삶을 견디고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먹이시고 입히시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급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빨리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금방 실망하고 식어버리는 시대입니다. 어린 아이 때부터 섣불리 인생의 승부를 보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느 인물도 급하게, 빨리 은혜를 받고 열매맺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도, 요셉도 어릴 기름부음과 비전의 꿈을 받았지만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혹독히 훈련시키고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그들을 약속대로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로고스 교회 성도 여러분. 조급함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우리를 낙망케 합니다. 낙망하는 자는 게을러지고 포기하게 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이루리라는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다시금 약속하십니다. 때가 바로 앞에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단지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선을 행합니다.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안에 거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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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폭스는 침묵에 관해 가르쳤으며 사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에 대해 증거하고 가운데로 인도하셨으며, 각자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빛의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도록 참고 기다리라고 사람들을 격려했다...그는 모든 사람을 각각의 신조와 예배에 억지로 순종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사람들은 보편적인 원칙, 각자의 내면의 빛을 통해 영적인 연합에 이르게 되는데, 영적인 연합이란 공일한 원칙에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것이다."

윌리엄 (William Penn 1644-1728), 조지 폭스의 일기의 서문에서 발췌.

                                                                                                    

 

퀘이커의 예배에 참여해보았다. 보기(See) 위해 참여(Participate) 것이다.

아무런 찬송도, 어떤 의식도 없이 그냥 그들은 앉아 있었다. 앉아서 마냥, 차분히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들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빛의 소리. 그렇게 침묵 속에서 내면에 들려오는 빛의 소리, 성령의 소리를 기다리다가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조용히 일어서서 자기가 들은, 혹은 경험한 것들을 모인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나눔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진다. 그날은 그렇게 그냥 헤어졌다.

 

교회와 사회가 어지럽고,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어떤 영적인 위안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지폭스의 신앙의 여정은 당시의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극단적인 모습의 퀘이커라고도 불리고 친우회 (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라고 하는 신앙운동, 신앙공동체를 일어나게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침묵을 강조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영감이 일어날 전신이 떨렸다고 해서 퀘이커, 진동하는 자로 불리웠다는 것이다.

 

목회를 하며, 또한 영성을 공부하는 한국 개신교 목사로서 그들의 모습은 내가 익숙하고 자라왔던 신앙의 환경의 가장 맞은 편에 있는 듯하다. 교회나 목사로서 성도들을 양육하며 훈련시킬 때에 그들을 독립적인 신앙인으로 서게 했는가? 아니면 점점 무엇엔가 의존하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느끼게 했는가? 아니면 두려움을 심어주어 자유로부터의 도피하게 만들었는가?

가톨릭의 타락이 심했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과 우리를 중보하는 통로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성경 뿐임을 외치며 믿는 모든 자가 제사장이라하며 개신교를 탄생시켰지만 다시 목사는 교황의 자리에,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통로가 아닌 장벽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퀘이커는 어쩌면 잘못되어져 버린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만들어낸 급진적인 이단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 그들의 예배, 그들의 기도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2012년을 지나가며 여러 가지 사회적인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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