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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기뻐하라

본문 : 37 : 4 7

[37:4-7]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act. He will make your vindication shine like the light, and the justice of your cause like the noonday. Be still before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do not fret over those who prosper in their way, over those who carry out evil devices.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표들이 있고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채찍질 하면서 자신을 아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기도 하고 또한 불행하고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각자가 지닌 소원이 여러 가지고 천차만별이겠지만 사람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개 소원을 이루어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원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도제목이나 소원을 물으면 얼버무리고 그런 건 하루 하루 먹고사는 저에겐 너무 과분한 것이지요하며 마치 소원을 가지는 것이 여유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그들의 소원을 두고 그것을 이루는데 그들의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소원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기뻐하고 혹은 슬퍼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도 소원이 이루어지면 감사헌금을 내고 또한 간증을 하기도 합니다. 소원의 성취에 따라서 그들의 믿음이 평가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소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두루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원을 이루시는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니다. 거기에는 믿음의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특이한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에서 보면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의 전후 순서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대개 소원을 성취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말씀은 그가 소원을 이루시리니 먼저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으로 보면 그 숨겨진 깊은 뜻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면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냥 내가 꿈꾸는 소원이 아니라 그 분께서 내 마음에 소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원은 곧 비전입니다. 사명입니다. 그 분이 소원을 주시면 그분이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7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고 하시고 불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남을 불평하고 자신을 불평하면 행악에 치우친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먼저 하셨습니다. 그는 그 약속을 믿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고난 중에 부유가 찾아와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자손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근심이 되었고 또한 불평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서두르고 초조한 마음에 인간의 방법을 써서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기도 하고 종 하갈의 태를 빌어 이스마엘을 출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인내하지 않고 섣부르게 행동한 결과로 오늘날 테러의 전쟁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전쟁을 낳게 되었습니다. 참지 못하고 불평하는 것은 행악을 낳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분에 대한 신뢰가 깊어가면서 그는 다른 조건이 아닌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게 되었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도저히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을 적에 이삭을 허락하셨고 그 이후에도 아브라함은 이삭보다 하나님을 먼저 기뻐하는 그러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잠잠하라 하는 말씀을 보면 심한 풍랑에 잠잠히 주무셨던 예수님이 생각이 납니다. 풍랑이 일자 제자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 상황에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께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두려워하느냐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신앙 안에서 잠잠한 것은 편안한 환경 중에 잠잠한 것이 아니라 풍파 중에 믿음으로 잠잠할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11절의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아 하나님의 보배로 타인을 대할 적에 나타나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의로움이란 신학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온유한 자는 성경에서는 땅을 차지한다고 했고, 의인은 반드시 축복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18절의 완전한 자의 날은 우리의 모습이 환경 때문에 기뻐하고 또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을 그 날입니다. 그 때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업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실 것이고 그 길을 영원히 축복하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먼저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소원의 성취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신 하나님 자신으로서 먼

저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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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제목: 나의 나 된 것은

본문: 고전 15:9-10

[고전 15:9-10]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For I am the least of the apostles and do not even deserve to be called an apostle, because I persecuted the church of God.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No, I worked harder than all of them---yet,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아직 젊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해오고 있지만 한 번도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부담스러웠고, 남들을 쫓아가기 바빴고,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내내, 중학교 때까지도 피부병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하고, 남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을 때에, 내 앞에 항상 나보다 더 건강하고, 나 보다 훨씬 부유하고, 나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들 속에서 자라나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 그리고 나의 연약함에 대한 걱정에서 한 번도 자유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많이 했던 걱정은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

어릴 적 부모님께서 사업하실 때에는 가정부가 밥을 제대로 먹이지 않아 영양실조를 걸린 적도 있고, 어머니께서 목회를 시작하실 때에는 서울에 혼자 남아 집에서조차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과외 수업 받아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과외 시켜 달라고 말 조차 꺼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날 붙잡아 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내 자아, 내 자존감이 극히 작아 나에 대한 자신감이 하나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고, 내가 외로울 때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나의 Best Friend였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면 응답해주시는 나의 후원자셨습니다.

(When my self-esteem and self-confidence was so low, God became my father; when I was so alone, He became my best friend, when I was needed, He became my supporter!)  

Like Moses, he treated me as a prince of Heaven, he whispered me, “I love you” whenever I prayed, and he makes me to know that I am a special person, the precious person in the world.

When I effort with fear to be an ordinary man, He challenged me, “Don’t afraid! You are special, I will always be with you.” 

마치 모세에게처럼, 주님께서는 나를 하늘 나라의 왕자로 대우하셨고, 내가 기도할 때마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으며, 내가 세상 어느 사람보다 귀한 존재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난 보통사람이라도 되려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며 살아가는데, 주님은 나를 특별한 존재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널 붙들어 주리라고 격려하시며 날 살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적 하나님을 알게 된 후부터 지금까지 회개 없이 지내 온 날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고, 믿음대로 산다고, 믿음 밖엔 없다고 기도하고 찬양하면서도 세상적으로 조금 욕심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 때문에 신앙을 뒤로 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외면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내가 외식하는 자였기 때문에 외식하는 신앙인들을 보면 너무 잘 알아 겉으로, 속으로 정죄하고 비난했으며 나에게는 한없이 변명하고 합리화했지만 남들의 잘못은 칼날 같이 예리하게 판단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신앙 안에서 한 번도 예수님께 떳떳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신앙 안에서 전 떳떳하지 못합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리고 유학을 오고삶의 여정 가운데서 내가 가장 감사했던 것은 내가 어떻게, 나 같은 것이 어떻게 남들과 같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걱정하던 인생의 모든 여정들을 하나님께서는 부족함 없이, 가장 좋은 때에, 뒤쳐짐이 없이 살아오게 하셨습니다. 목사 안수 받으러 LA갈 때, 난 방향을 잘못 가서 북쪽 레딩까지 가서 다시 오던 길을 돌아 10시간 넘게 가서 안수를 받아야만 했지만, 그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 네가 어디를 가던 너의 길을 돌이켜서 나의 길을 가게 하리라. 네가 아무리 방황하고 잘못된 길을 가도, 내가 그 길을 바로 잡아 예정된 시간에 너에게 맡겨진 일을 하게 하리라는 내 인생의 하나님의 주권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 로고스 교회의 영혼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나를 붙드시고, 나를 일으켜주셨던 그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내 힘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내가 노력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은혜 없이 나도, 여러분도 이 자리에 함께 예배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이야기하려는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받은 은혜와 함께 그의 삶을 통해서 체험한 것들입니다.

(I will name this phrase as the grace of “however” because the word “however” indicat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grace of God.)

Paul was the least of apostles and prosecutor the church if God.

However,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저는 이 은혜를 '그러나'의 은혜라고 이름 짓고 싶습니다.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바울이 받은 은혜의 색깔을 선명하게 밝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교회의 핍박자', 바울은 자신의 모습을 이 두 가지 표현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용하신 하나님을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처럼 자신을 자격이 없다고 보는데 하나님은 자격 있다고 하시고, 그는 자신을 감히 사도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시며, 자신은 죄가 많아서 안 된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신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I do not deserve to be apostle, however, he says that you deserve to be; I cannot do anything however, he says that you can do everything in Me.)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바울의 크게 빚진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했던 자는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핍박자도 있을 것이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살았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런 죄 저런 죄를 범해서 그 때를 돌이켜 보면 고개를 들 수 없는 수치를 간직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돌보시고 인도하셔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 나 이하의 삶은 아닙니다. 이것이 '그러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가 있었기에 주를 위해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10).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나서 죽는지 사는지 모르게 일했습니다. 마치 하루 종일 놀다가 오후 5시에 일당 받기로 하고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된 노무자의 심정으로 헌신했습니다. 감지덕지 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합니다.

( I live than what I am by the grace of God! This is reason why I call it the grace of “however”!)

그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실토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면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 고개를 쳐들고 자기 공로를 이야기할 만도 한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수고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다'란 말은 '실패가 없었다', '능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분께서 내 삶을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He does not fail. He has power to success. He makes me to success. This i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모진 시련과 고통을 겪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주어진 삶의 무게와 이번 생에서 배워야 할 삶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결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람이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다른 하나는 아주 쫌생이가 되고 강팍하고 부정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똑 같은 고난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로 드러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은혜로 드러납니다. 연륜은 고난을 겪고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처가, 쓴뿌리가 많은 사람에게 연륜이 쌓여다 하지는 않습니다. 연륜은 상당한 정신과 영혼의 수준으로 이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낮아지고 깊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새로워지고,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바라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도 연륜의 깊이가 충분히 묻어납니다. ‘내가 죽을 고생을 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나를 몰라주나?’ 이런 게 아닙니다. 큰 시련과 고난을 통해 사람이 익고 성숙됩니다. 이전에 지닌 모든 기득권과 부를 내놓고, 심지어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진실의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자신의 인생궤적을 돌아보면서, 지독한 외로움, 무시무시한 억압을 경험하고, 공포와 불안이 가득한 시대의 모순에 직면하여 진실과 진리의 사람이 되는 여정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지금의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는가 질문합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코 자신을 선택한 하늘의 은총은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처럼 내 자신을 선택한 하늘의 은총이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로오늘의 내가 있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사람의 입술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진보한 영혼이며, 성숙한 영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나 이상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죄 앞에서 떳떳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 예수의 공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고백을 다 함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그리고 마지막 우리 인생의 때에 우리도 사도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날 구원하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결단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결단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This is the way to be happy

I am what I am by the grace of God.

I will live in order that his grace to me was not without effect.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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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예수님의 사역

본 문 : 4: 12 - 25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 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우리가 함께 감당해야 할,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예수 닮는 길을 아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 회개하라.

예수님은 공생애의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시고 누가복음에서만도 12번이나 회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목적이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는 회개와 죄사함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과 중간, 마지막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못한 죄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을 방해하며, 우리 삶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방법과 단계

1) 생각의 변화 (성령의 지적에 동의하여 죄를 시인하는 단계)

2) 마음의 변화: 하나님이 나의 죄를 보시는 대로 보고 느끼시는 대로 느끼는 단계

우리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수준까지만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대로 죄를 보면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 시각에서 죄를 바라보기 때문에 계속 타협하고, 변명하며, 다시 죄로 복귀하는 것입니다.

3) 삶의 변화: 회개란 전에 사랑하던 죄를 미워하게 되는 것. 결국은 죄를 사랑한 것이 죄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죄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8:13)”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죄의 유혹을 받는 대신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2. 두 번째 사역 나를 따르라.

* 나를 따르라: 나를 보고, 나의 말을 듣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행하라.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곧 말씀과 기도 가운데 그와 함께 동행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신 작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사역- 가서 전하라.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가서 전하기 앞서 전제되는 것: 복음대로 살고 있는가? 투명하게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 예수: 항상 먼저 행하시고 가르치신 분

우리의 삶의 방식이 아닌 것을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유창하게 전달하더라도 삶이 전제 되지 않으면 거기엔 능력이 없고 기름부으심이 없습니다. 진리대로 살지 않는다면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위선: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는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곧 진리대로 산다는 것. 진리대로 살아야만 우리의 가르침에 권세를 주십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응답되는 기도가 곧 우리의 권세이며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응답되는 기도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순종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보장입니다.

 

*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0:26)

* [23:27-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삶이 뒤따르지 않는 가르침이 곧 위선이며, 화 있는 자의 결말입니다.

 

나에게 하는 질문)

나는 예수를 닮으려 하고 있는가?

난 예수를 닮기 위해 예수의 사역을 이해하고 있는가?

날마다 회개하며 하나님과 나 사이의 장벽을 치우고 있는가?

닮기 위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와 동행하고 있는가?

이해한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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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 17:4)

 

: 분의 사역은 언제나 획기적이었고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고, 새로왔다.

우리의 예배와 모임이 예상대로라면, 틀에 박혀 있다면, 새롭지 못하다면 무언가 예수님의 사역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

  1.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는 .
  1.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는 .

-> 단호한 목적에서 벗어남도 없었고 흔들림도 없었다.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태도나 방법

  1. 겸손
  • 아버지께 전적으로 복종: 공생애의 시작은 세례를 받으심으로부터 ( 3:21-22) : 세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
  • 성령으로 덧입는 :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무릎꿇고 성령으로 덧입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교만하고 불순종한 . -> 성령을 덧입는 것의 전제: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회개하는 -> 예수의 세례, 세례 요한을 통해서, 세례 요한의 사역: 회개하라.
  •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는다. 죄는 예수님의 삶이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을 막는다.

-> 현대 교회의 문제: 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인, 죄를 당연시 하는 그리스도인.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1. 아버지께로 전적인 의존

(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 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 예수님은 기다려서 아버지께 보고 들17:4은 것을 행하셨다.

(시편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특별한 사역의 , 언제나 새벽 미명에 나가서 하나님께 기도함.

 

  1. 온전한 순종

(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순종의 3 원칙: 즉각적인 순종- 지연된 순종은 불순종이다. 부분적 순종이 아닌 전적인 순종, 투덜거림이 없는 기쁨과 자원함의 순종.

 

  1. 기도
  • 제자들이 예수님께 구한 . 남을 지도하는 , 가르치는 , 귀신을 쫓는 , 관리하는 법이 아닌 제자들이 유일하게 구한 ->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중심, 사역의 시작이 기도임을 알았기 때문)
  • 기도한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초청하여 예수님이 일하시게 하며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하기 위한 것이다.

 

  1. 결과 -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다.

? 분이 하라는 대로 했고, 분이 역사하셨기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묵상 및 점검)

1. 내 신앙의 목적은 예수님을 닮는 것인가? 내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것인가?

 

2.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3. 주의 일을 감당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나누려고 하지는 않는가? 철저히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그 분의 영광이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소망하고 애쓰고 있는가?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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