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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         하나는 꼭 죽고야마는 육신의 생각, 사망의 생각-> 육신적으로 유익한 것 같은데 계속 쫓다 보면 결국은 정욕적인 추구이고 결과는 그 생각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생각

·         성령의 생각- 내 육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성령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고 생각하는 것,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 천국의 축복

-> 이 두 가지 생각을 너희가 선택하라.

 

·         하나님께서 천지의 모든 만물을 만드심.

·         창조물 중에서 으뜸 - 인간-> 인간 너희가 다스리고 정복하라. 사용하라. -> 엄청난 실권을 부여

-> 만물의 영장. 모든 권한을 무엇으로 하게 하셨는가? 생각으로 행사하라 -> 생각하는 인격적인 존재.

,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 창세기 1 1, 성경의 처음 시작입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곧 생각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생각이 곧 말씀이고, 그 말씀이 임하면 곧 현실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만물의 이름을 지으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만물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선포하면 만물들이 우리의 그 말에 따라 살아가리라는 축복, 특권을 오직 인간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돼지 -> 태초부터 지금까지 구정물을 먹고 자기가 싼 배설물을 먹고 삶. 발전이 없다. 변화가 없다.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 산다 -> 환경에 적응하면서 퇴화되고 조금씩 변화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진화니 뭐니 하지만 그것은 단지 살기 위한 적응이다. 본능적인 것이다.

·         오직 인간만이 문명을 가지고 발전 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오늘의 나- 내 생각의 결과이다.

그런데 내 삶이 내 생각의 결과라는 것을 잘 모른다.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운이 없어서, 부모를 이렇게 만나서라고 환경의 탓, 운명의 탓을 한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내 삶은 내 생각의 결과이다.  내 생각이 내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잘 의식하지 않아서 그 생각을 발전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환경, 운명은 동물에게만 전적으로 적용되지 인간, 사람은 생각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전혀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런 특권, 생각이 곧 현실이 되고, 생각을 통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사용하는 특권을 인간에게 주셨는가?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왜 인간을 만드셨는가? 심부름꾼이 필요해서? 돌맹이를 가지고도 일하실 수 있는 분이, 전지전능하신 분이 왜 일꾼이 필요하신가? 찬송받기 위해서? 그 분이 스스로 영광을 받지 못해서 인간에게 영광 받으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나?

왜 만물은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따르고 배반하지 않고 불순종하지 않는데 사람처럼 말 안듣고, 속 썩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를 만드셨습니까? 이왕 만드려면 말 잘 듣고, 순종하고, 믿을 수 있게 만드시지…-> 넌 니 자녀 왜 가졌냐? 이왕 가질려면 말 잘 듣고, 속 썩이지 않게 가지지 왜 이렇게 싸우고, 말안듣고 제멋대로 크게 낳았냐? 그래서 말 안들어서 니 아이가 밉냐?

그냥 우리를 자녀로 낳으신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아무리 범죄하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더라도 너는 내 것이라, 오늘 날 내가 널 낳았도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자녀로서 낳은 것이다.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능력을 오직 인간과 나누셨다. 원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자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간에게 맡기신 것이고 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자 다 네 것 이니까 잘 다스리고 잘 사용해야 돼?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네가 마음대로 먹어, 그런데 선악과는 먹으면 안돼. 그거 먹는 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내 자녀가 아니야. 그러면 너와 나의 관계가 깨지는 거야내가 널 도울 수 없고, 보장할 수 없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의 끈, 관계를 유지해주는 근거, 통로가 바로 선악과.

그런데 사탄이 와서 유혹: 사탄, 천사장, 그야말로 하나님의 수중 들던 자, 심부름꾼.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하던 루시퍼가 스스로 자기 찬양에 도취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려다 타락해서 쫓겨나 천사가 된 존재. 그런데 자기 앞에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 자기 보다 더 높은 존재, 하나님을 시기하던 그니까 당연히 인간도 말할 것 없이 시기왜 선악과 안 먹느냐? 그걸 먹는 날에는 네가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 같이 될 거다.-> 너 스스로 살 수 있어. 부모 없이 네 혼자 살아봐. 마치 탕자가 부모에게 나 혼자 살 터이니 돈 몇 푼만 주면 내가 자립하겠습니다. 그런데 자립할 능력이 되는가? 하나님 없이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유혹에 넘어간 인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인간.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능력이 없어지니 이젠 육체만이 남은 인간육신의 생각으로 가득찬 인간. 타락한 천사 루시퍼를 따라서 육신대로 살다가, 육신의 요구대로만 살다가 목숨이 끝나는 순간 타락한 천사 마귀와 함께 영원히 불타는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인간-> 그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운명.

그런데 천사는 타락하면 그냥 저주해서 지옥으로 보내면 되지만 인간은,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냥 떠나보낼 수가 없다. 그래서 거룩한, 온전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서 죄와 저주와 사망으로 말미암아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더러운 죄인들을 구원하라고 이 땅에 보내셨다. 그래서 죄인 중의 죄인 괴수들을 처형하는 십자가라는 저주의 나무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지어야 할 죽음을 대신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이는 구원이 확증, 증명된 자니 다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받고 거룩해졌음을 성령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 앞에 회개한 자만이 거듭나고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통로는 오직 우리가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우리 마음 속의 구주로 영접할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새벽예배 시간에 출애굽기를 나누고 있는데, 출애굽기의 모든 성막, 제사장의 옷, 모든 성막 안의 기구들은 결국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스도의 피와 대속, 그 분 앞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헌신하는 것을 우리가 날마다 살펴 보고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히브리서 8장에 보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죄사함 받고 거룩해 진 지들이 성령으로 전 되어 영원히 함께 거할 것이라는 하나님 섭리의 모형과 그림자일 뿐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8:5)

따라서 이제 예수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회개한 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산 성도의 심령을 하나님의 처소, 곧 성전으로 삼고 계신 것이다. , 성령을 모신 성도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요, 성령의 전이요, 하나님과 자기 자신이 만나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하는 말이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된 성도 안에는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다. 성령의 능력은 성령 받은 사람이 성령의 뜻을 따라 무엇이든 견디게 하며 마귀 사단 귀신 역사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같은 사탄의 유혹을 견디게 한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라는 처절한 고통을 앞두고 잔인하게 매 맞아 살이 찢어지는 고통의 현장에서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그러나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모신 순간부터 성령으로 나타난 그 능력으로 죽음도 전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성령에 이끌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성령의 권능으로 전하니 한꺼번에 삼천 명씩, 오천 명씩 회개하여 믿고 세례받고 성령을 받았다. 죄의 결과인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등, 어떤 병이든지 현장에서 고친 것은 성령이 그 권능으로 절정을 이루며 일하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따라서 예수가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는 신앙은 그 자체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형식적인 종교적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 앞에 회개하라 하여도 참된 회개 없이 자기 자신의 신념의 신앙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소리, 천국의 소리를 들려 주어도 그저 윤리나 도덕적인 차원의 가르침으로만 이해하려 하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니다. 성령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인 구원의 역사를 확실히 소유한 사람이요,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사람이요,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마귀는 아담을 시기해서 그를 타락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성령의 생각, 성령의 능력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우리를 혼란케 한다. 아담 때와 똑같이 우리를 이 땅에서의 정욕에 눈 멀게 한다. 일단 육체의 소욕과 생각이 들어오면 하나님의 성령을 거스리고 도전하고 망가뜨리려 한다.

육체의 생각은 결국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우리를 다시 사망의 세력 안에 가둬둔다.

(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예수 믿으세요? 하고 전도하면 난 예수가 필요없는 사람이예요. 난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 필요한 사람한테 가서 전도하세요.” 

-> 그의 생각은 육신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영원을 놓치는 사람, 잠시 후의 지옥을 보지 못하는 사람-> 사망을 가져다 주는 생각

-예수 믿으세요!: 난 다른 종교 믿어요. 뭘 믿든 다 똑같지 왜 꼭 예수만 믿으라고 하세요? -> 예수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그의 배운 것 때문에 영생을 놓치는 사람-> 육신의 생각-, 사망을 주는 생각.

·         많은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주로 관심사: 돈이 있냐? 직장이 뭐냐? 시집을 잘 갔냐? 장가를 잘 갔냐? 자식이 용돈 얼마주냐? 돈없으니 자식도 날 멸시한다. 항상 물질적인 것, 육신적인 것에 갇혀 있으면 영과 멀어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천국이 멀어지는 것이다.

·         나이 60먹은 사람에게 아이 40대 같아요 하면 기분좋아하면서 감사합니다 한다. 겉보기가 40대처럼 보여도 어차피 그 나이는 60대고 곧 있으면 죽을 나이다. 그것 때문에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나이가 70이 되고, 80이 되어도 천국이 준비되어 있고, 영생을 기업으로 받았으면 행복한 것이고 성공한 것이다.

 

영의 생각은 무엇인가?

[ 5:22-2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가 읽은 본문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아파도 영생을 믿기 때문에 일어 설 수 있는 것이고, 고난이 있어도 천국의 보장이 있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         생명과 평안의 생각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열심을 내야 한다. 그런 평안이 없다면 그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 전념을 다해야 한다.

·         생명의 생각은 사망을 삼킨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난 영의 생각으로 살리라.

예수 믿어도 되는 것이 없네….뭐가 안되었는가? 육신의 생각을 버려라.

사망의 생각을 유일하게 깰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즈음 제 생각을 떠나지 않는 문제, 숙제가 있다. 그것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로 구원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의 사람들, 혹은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시험에 들지 않고, 자기 욕심에 빠지지 않고, 영생을 바라보며 살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l  구약의 사람들: 하나님의 율법-그 때의 하나님, 엄위하신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이적과 저주를 내리시는 하나님, 전쟁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지키면 살고 안 지키면 죽는다 하면서 주는 말씀이 율법-> 그런데 율법을 요리저리 피해가며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게 지키는 사람들

Ex) 쉼과 안식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라-> 안식일을 지킨다고 위험에 처한 사람, 가난한 사람들도 돕지 아니하며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무시하며 외면하는 사람들.  -> 바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법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 준수자들-> 교만하여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람-> 결국 사단의 모습.

l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이 친히 함께 하며 먹고 마시며 자고 가르치고, 기적을 보이시고, 설명하고 하며 일대일로 혹은 모든 실습까지 다 시켰는데 예수님이 죽을 때까지 그분의 참 의도, 말씀의 참 뜻을 모르는 사람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준비하며 밤이 새도록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는데, 잠을 자느라 기도하지 못하는 제자들그 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구약의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가 공통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성령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친히 그가 너희를 가르치실 것이고,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시는 분.  아담의 타락 이후, 에스겔, 예레미아와 같은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가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던 성령을 받은 우리성령 시대를 사는 우리

그런데 왜 여전히 성령 받은 우리가 변하지 못하고 능력을 얻지 못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좌절하고 연약한 삶을 사는가? 영의 생각을 쫓지 않고 육신의 생각을 쫓기 때문이다.

 

사울 왕은 원래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이고 은혜를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첫 번째 임금이 되었고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처음에 임금으로 선택될 때는 달구지 밑에 숨을 정도로 겸손했던 인물입니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고 인물도 잘 생긴 데다가 겸손까지 하고 수줍음이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이랬던 사울 왕이 어느 순간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사무엘상 16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이것을 오늘 우리의 언어로 바꾼다면 받았던 은혜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잃어버리고 났더니 사울 왕은 철저하게 육신 적인 생각을 하고, 세상 적인 생각을 하고, 마귀 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의 사위인 다윗을 질투하고 미워하여 죽이려고 여러 차례 창을 던집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았던 사람도 은혜를 잃어버리면 사울 왕 같이 육신 적이고, 마귀 적이고, 세상 적으로 바뀌어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미움의 창을 겨누고 공격할 수 있습니다사무엘상 15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라고 한탄하십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23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결국 사울은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를 저버리고 육신의 정욕을 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맡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을 살아갈 때 생각 속에 먹기 위해서, 마시기 위해서, 입기 위해서, 내 체면을 위해서, 내 평안을 위해서 하는 생각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으면 불행히도 여러분은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육에 속한 사람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하나님을 등지고, 예배를 떠나서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생각,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여러분을 주장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한 가지는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셔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목사, 권사, 집사라 하더라도, 교회를 모태신앙으로 시작해서 수십 년 다니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이 계셔야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12절 빚진 자. –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예수의 피로 대속 받은 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

그러면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의 병든 육체, 이 땅에서의 육적인 삶도 승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오직 성령님입니다. 그 성령님을 의지 할 적에 우리의 육적, 영적 모든 삶에 생명이 넘칠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오. 그 분의 영이 날 주장하도록 내어 드리십시오. 내 마음이 성령님이 임하시도록 나 자신을 깨끗이 하고 회개하고 그 분을 중심에 모시십시오.

 

사도행전 1장의 성도들과 사도행전 2장의 성도들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도행전 1장의 성도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 성도들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와서야 비로소 성령이 임한 성도들입니다.

성령이 없을 때 그들은 육신적인 생각, 세상적인 생각, 마귀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벌벌 떨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임하시자 벌떡 일어나서 세상을 향하여 문을 엽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여 세상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달려나갑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전도자 사울로 바뀐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할 때도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도 똑같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무엇입니까?

변하기 이전에는 자기 안에 시퍼런 자기가 살아서 자기 생각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육신적으로, 세상 적으로, 마귀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여서라도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자기를 버리고 성령님께서 그 안에 임했을 때 그는 비로소 '! 내가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잘 믿고 열심히 특심 했는데 그게 다 잘못됐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 없는 열심을 버리십시오.

성령이 없는 열심은 시퍼렇게 자기감정만 살아있어서 육신적인 감정, 세상적인 감정으로 악한 마귀가 던져주는 악한 감정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릅니다. 자기가 잘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진짜 성령이 임하니까 바울은 자기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알고 그걸 일순간에 버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전에 자랑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자기 일생을 바쳐 헌신하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아직도 여전히 육에 속한 삶을 살고 있다면 아무리 교회생활을 거룩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 마지막은 사망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 로고스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모시기 바랍니다. 육의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에 속한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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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서 읽기는 하였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나, 이제 계시를 통해 열쇠를 가지신 분이 그 문을 여셨으며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로 나를 인도하셨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1647년의 글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영적인 유익을 얻지 못한 폭스는 어느 자신의 문을 여는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이 체험이 있은 후에 그는 성령을 통해 성경이 크게 열리는 체험을 주시고, 사물의 이치에 '문이 열렸다' 고백한다. 또한 체험들을 통해 그는 자신이 '빛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을 보게 되었고, 어둠과 죽음과 유혹과 불의와 불경건 등이 빛 가운데 분명히 드러남'을 보았다.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위대함을 깨닫고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바로 성경에서 말한 '성령,' 폭스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 안의 내면의 ' '경험' 것이다. 

 

성도님들과 함께 출애굽 당시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혹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가까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훈련을 받았는지를 읽으면서 부러워 하는 모습들을 발견하곤 한다. 우리도 모세처럼, 제자들처럼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한다면 훨씬 실수하지 않고 믿음을 가질 있을 같다는 하소연이다. 마치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지고 변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모르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분명한 뜻을 알기 위해 목사를 찾고 영성가를 찾고 신비가를 찾는다. 자신의 내면 안에 여전히 계신 ' ', ' ' 망각하곤 말이다.

목회를 하면서 계속 드는 절망은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 구약 시대 사람들처럼, 제자들처럼 여전히 실패하고 자기 멋대로 살고 변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우연찮게 나에게 숙제처럼 주어진 조지 폭스의 저널은 점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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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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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들이나 그들과 구분된 경험적인 설교가들에게조차 가졌던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외부적으로 나를 도와주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 때, 바로 그 때너의 상태를 말해 줄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기쁨으로 요동쳤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1647의 일기 중 11번째 글 중에서

 



목사로서 살아가기가 적지않게 부끄럽고 부담되는 시절이다. 끊이지 않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기독교, 특히 목사들의 잘못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면 낯이 뜨거워질 때가 많다. 조지 폭스의 시대 때도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들을 불신하였다. 그래서 평신도 설교가들이 나왔고, 또한  다른 이들의 말보다 체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폭스는 이와 같이 성직자들이 죄와 불신앙에 갇혀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던 시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은혜 가운데서믿음과 능력을 밝히시는 분임을 경험하였다.


목사는 또는 신학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 안에서 고통을 벗어 버리고 참된 기쁨을 누리도록 돕는 자이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영적인 고통에 둔감하여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목사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들이 과연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결국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겸손히 나아가 먼저 나의 영혼을 살펴보고, 다시 사람들을 섬길 수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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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1:1-출 31: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상과 그 기구와 순금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정교하게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그의 아들들의 옷과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1. 브살렐과 오홀리압

브살렐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여 하나님의 일을 시키셨습니다. 오홀리압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어 일하게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 아마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준비가 사람, 담을 그릇이 사람, 순종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셨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는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부르실 때에는 미리 일을 감당할 있는 모든 물질과 사람을 준비시키고 사람을 쓰십니다. 우리의 눈이 그것을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을 시키실 때에 '아멘'하며 순종함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것들을 있을 것이고 영광의 일에 참여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것은 세상적인 판단이나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것에 민감하게 분별하는 , 이것은 오직 성령에 민감하고 충만한 자만이 쓰임받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6-고전 1:28]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위한 가지 장치-목회자와 안식일 

일하는 당사자, 책임자가 브살렐과 오홀리압이라면 일의 능률이나 정확성을 위해서는 그들에게 직접 명하시는 것이 인간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의 진행을 모세의 입을 통해서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하나님의 대언자, 백성의 대언자로서 모세의 역할을 중시하고 그의 권위를 지키게 하시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브살렐과 오홀리압에 있어서도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모든 일의 진행에 있어서 자신의 뜻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 생활 하다보면 때로는 목사가 하는 것보다 자신의 방법이 훨씬 좋아 보일 수도 있고, 실재로 그럴 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일의 성과가 아니라 모든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함을 보십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바로 성도들이 세상이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통로로 주신 대언자입니다.

번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진행하려는 장치는 안식일입니다. 이날이 되면 모든 일을 멈추고 안식하며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일의 중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어느 ,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일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체에도 우리를 중독시키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성막을 지을 것을 모두 명하시고 안식일을 명하시는 것은 모든 과정 중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최우선을 두게 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뜻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시작한 일이라 하더라도 관계가 깨어지면 모든 일이 인간의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안식일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날 처음 명하신 것입니다. 이제 인간의 불순종과 죄로 말미암아 관계가 깨어져 버린 ,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 아담을 두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막 안에서 백성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 성막은 하나님의 관계 안에 있는 새로운 백성들을 위한 우주, 세계의 창조입니다. 성막을 완성한 다음 안식일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성막을 말씀하시고 안식일을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임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은 말씀이고 말씀은 성취입니다. 뜻을 깨달은 우리가 해야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뜻에 순종하여 헌신하는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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