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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35:1-19]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이 이러하니라 이르시기를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및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드는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곧 성막과 천막과 그 덮개와 그 갈고리와 그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증거궤와 그 채와 속죄소와 그 가리는 휘장과 상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불 켜는 등잔대와 그 기구와 그 등잔과 등유와 분향단과 그 채와 관유와 분향할 향품과 성막 문의 휘장과 번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뜰의 포장과 그 기둥과 그 받침과 뜰 문의 휘장과 장막 말뚝과 뜰의 말뚝과 그 줄과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정교하게 만든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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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1. 성막 짓기 전에 먼저 명하신 언약 - 안식일

출애굽을 하기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은 바로왕의 궁을 짓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왕의 궁을 짓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쉬는 날도 없이 댓가없이 노동을 하다가 죽어가야 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죽은 왕을 위한 묘지였다. 왕이 죽으면 뿐만 아니라 왕이 부리던 하인들이나 가족들 마져도 매장하여 죽은 왕마저도 보필해야 했다.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가까이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지을 때에도 중국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토록 세상에서의 노동은 우리 인간을 쉬지 않고, 대가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자기들만을 위해서 사람들을 부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막을 짓기 전에 안식일부터 제정한다. 일한 후에 쉼을 보장하고 쉼을 통해 회복을 명하신다. 불도 피우지 말라는 것은 안식일에 예외를 두지 않음으로서 모든 인간이 쉼을 얻도록 것이다. 하나님의 언어는 때로는 완고하고 매정하지만 그것은 오직 인간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아말렉을 진멸하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하나님의 단호한 표현 뒤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1. 너희의 소유 중에서 드릴 것을 택하되 마음에 원하는 자는….

우리의 소유가 있었던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물은 출애굽을 때에 애굽인들로부터 얻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져 얻은 것이다. 우리는 가끔 헌금에 관한 설교를 때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내가 너희에게 주었으니 다시 바쳐라' 하지 않으신다. '너희의 소유 중에서 택하여 마음에 원하는 자는 여호와께 드리라"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두려워서나 억지로나,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당신의 것을 찾으실 때에도 너희의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러한 자원함과 선택에 의해서 우리를 드릴 적에 하나님은 자원하는 심령을 통해 일하신다. 그것이 신앙의 삶이고 교회의 삶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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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34:18-35]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수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너는 내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제물을 아침까지 두지 말지며 네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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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1. 절기를 지키라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언약을 세우시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은 세가지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내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벗어났다는 구원에 대한 감사요,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죄에서 구원하여 새로운 열매(성령) 주셨다는 삶에 대한 감사요, 수장절은 이제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고 모든 열매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추수의 예배입니다. 죄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성령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모든 사명을 이루기까지의 모든 그리스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며, 분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의 삶의 예배를 말씀하십니다.

 

  1. , 말씀 안에 사는 삶의 열매

흔히들 그리스도인의 삶을 빛과 소금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의무로 주신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거할 때의 열매로서 주신 보장입니다. 모세가 떡도 아닌, 물도 아닌,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제했을 , 그의 심령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따랐고, 그에 따른 열매는 얼굴에 광채() 띄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으로 얼굴,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인격, 삶은 빛을 띄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빛을 가로막고 있는 삶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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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34:1-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 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네가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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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번째 돌판

첫 번째 돌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새겨주신 돌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돌판은 모세가 다듬어 올라갔습니다. 그 새로운 돌판에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깨뜨린 것에 있던 말을 다시 써 주셨습니다. 묵상하는 가운데 첫 번째 돌판은 아담을 지으셨을 때와 같은 첫 창조를 기억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손수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사람이 되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 안에 그 분의 말씀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돌판은 죄로 말미암아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첫 돌판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돌판은 우리에게 다듬어 가져 오라 하십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며 회개를 외친 것과 마찬가지로 회개하여 우리의 심령을 가다듬고 하나님 앞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회개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 단독자로 서는 것입니다. 자비하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백성,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하고 간곡히 아뢰는 것입니다.

 

  1. 가나안을 준비하라

번째 돌판이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돌판이라면 번쨰 돌판은 장차 들어가게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나님께 마음을 정하는 돌판입니다. 열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입성을 두고 "내가 아직 어느 백성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에게 행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느 백성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은 무엇일까? 물론 여리고성을 치고 가나안의 모든 백성을 몰아내게 하시지만 인간적인 눈으로 그것이 홍해를 가르고 하늘에서 신령한 음식을 내리시는, 더구나 열가지 상상치도 못하는 재앙을 내리는 것보다 기이해 보이거나 새로와 보이진 않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들을 진멸하는 것을 "어느 백성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어떻게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시는가를 명백히 보여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도 이미 범죄한 백성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중보와 그들의 회개로 말미암아 그들은 새로운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은 우리는 마땅히 가나안 백성들처럼 멸망당할 백성들 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로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가장 이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보다 이적은 없습니다.

 

생각해 문제)

  1. 오늘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1. 하나님 앞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은혜로 나의 마음 판을 가다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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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복,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사역

본문: 요한복음 21 2-19

[ 21:1-19]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다른 복음서들이 거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으로 끝맺음을 하는데 반해 요한 복음은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21장 한 장을 할애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며칠이 지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그리고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도마를 위해 한 번 더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난 것입니다.

3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난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6제자들 역시 베드로를 따라 나섭니다. 왜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으러 떠나고 있습니까? , 어부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사람낚는 어부가 되어라는 부

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예수님의 설교와 그 분의 기적을 체험하며 그 분과 하루도 빠짐없이 동행하며 수제자로서, 누구보다 열심인 자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죽음이었지만 예수님은 미리 주님의 죽으심을 이야기 하셨고, 그리고 약속대로 부활하셔서 자기들에게 두 번씩이나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 그것도 수제자인 베드로는 지금 나는 지금 고기 잡으러 간다하며 바다로 나서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또 다른 수제자,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바로 이전 장에서 첫번째 방문의 자리에 없었다고 다시 나타나셔서 내 옆구리과 손을 만지게 하셨던 도마까지도 베드로가 고기잡으러 간다는 소리에 말리지도 않고 말리기는커녕 따라서 고기 잡으러 나서고 있습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 앞에 그들은 어떤 심정으로 지금 고기를 잡으러 갑니까?

신앙적인 상식으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그 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전도를 하던 예배를 하던 흥분되어 있을 시간에 그들은 하나같이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터벅 터벅 고기를 잡으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한 제자들이 지금 왜 하나 같이 힘을 잃고 고기를 잡으러 가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옆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영광의 주로 나타나셨지만 매일 같이 눈으로 보고 만지고 같이 하던 예수님이 그들의 곁에 없자 그들은 갈 바를 몰라 헤메이는 예전의 비천한 존재로 돌아가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믿기 힘든 기적을 경험하고 목격한 신자라 하더라도 지금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됩니다. 길잃은 고아가 됩니다. 예수님이 곁에 없으니 그들은 우울해지고 정서가 불안해 집니다. 가만있지 못하고 불안해서 자꾸만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요.

모세가 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자 그들은 안전부절 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다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예배하며 죄를 범케 됩니다. 그 전에 어떤 것을 경험해도 다 소용없습니다. 내게 지금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들도 똑 같은 모습을 합니다.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며 그런 감정을 이기기 위해서 아무런 일을 서스럼 없이 합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다가 무언가 자기 마음대로 안되고 예수님이 곁에 없는 것 같고 자꾸 자기의 실수한 것, 잘못된 것만 생각나게 될 때, 우리의 무너지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버리는 것.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옛날의 나로 돌아가 버리는 것, 그것을 지금 예수님의 가장 가깝고도 열심이었던 제자,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와 도마와 같은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이란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이 왜 이렇게 실패의, 실의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인가요? 옛날의 나로 돌아가 전문 어부인 이들이 밤이 새도록 고기를 낚았으나 한 마리도 못 낚게 됩니다. 세상으로 돌아간 자의 삶은 너무 비참합니다. 제자들이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자 낙심했습니다.  빈손처럼 좌절되고 허무한 것은 없습니다.  빈손이 무서운 이유는 이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을 시키고 예수님께서 옆에 계셨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설교가 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이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는 이유를 보게 됩니다.  1) 가장 근본적인 이유야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  2)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드리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3) 가정사가 복잡해서 드리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4) 기독교에 대한 불신,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불신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5) 게을러서 들리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신다는 겁니다.  너무 좋으신 분입니다.  실패해서 좌절하고 있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뭐라고요.  고기를 많이 잡았냐고요. 가정은 평안하냐. 직장생활은 한만 하냐. 사업은 잘 되냐. , 괜찮니? 아프진 않니? 살만하니?”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끝임 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3년 동안이나 함께 해서 모든 것을 보여주시고, 같이 먹고 마시며 함께 했던 제자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너무나 알아 듣지 못했고, 십자가의 고난 앞에선 하나 같이 도망쳤던 제자들, 그래도 부활하자 마자 그들에게 나타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며 다가오신 바로 그 제자들.. 그 자리에 없다고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해서 그 앞에 직접 나타나서 내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하셨던 바로 그 제자들이 지금 너무도 무력하게, 아무런 신앙의 일을 나타내지 못하고 그저 다시 예전의 일터로 돌아가 밤이 새도록 무력하게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그들에게 지금 주님이 다시 다가오십니다. 다가와도 이미 신앙의 눈이 어두워져 버린 그들이기에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하지요.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무슨 말입니까? 다시 세상으로 나가서 일해보았는데 열매가 있느냐? 기쁨이 있느냐? 만족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내가 지시한 곳에 그물을 다시 던져보렴. 다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준 계명대로 순종해보렴하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전합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봅니다. “주님이시다.”

육지에 올라서 하신 일은 더욱 제자들을, 그리고 읽는 우리들마저도 감동시킵니다.

믿음 없는 그들을 혼내시거나, 설교를 하신다거나, 무엇을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손수 떡을 가져다 주시고 물고기를 가져다가 그들을 먹이십니다.

마치 얼마나 힘들었냐? 배고프지? 그 동안 고생했어…”하면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를 발하시며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멸하신 하나님이 원래 마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범죄한 아담이 죄를 짓고 바위 뒤에 숨어 있을 때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신 하나님의 본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니?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얼마나 고생하니? 그러면서 우리의 피곤한 육신과 영혼을 먹이십니다. 함께 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매일의 일상으로 그들을 초대하셔서 예전과 똑같이 그들과 먹고 마시며 동행하시는 분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보에 쓴 시

대학시절 신앙의 열심, 열정이 있었을 때

혼자 성경공부 모임을 만들어서 30여명을 모아서 성경을 가르치고 나누었던 적.

굉장히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우쭐해 있을 때, 신대원에 들어가면서 그 모임이 점점 줄어서 5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러면서 찾아온 무력감, 상실감, 좌절감. 더 그만 두자난 안되는구나….

그럴 때 주님께서 주신 위로승구야네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난 너무 기쁘구나. 많이 힘들지나도 12명의 제자들을 온 정성을 다해 훈련시켰어도 내가 힘들 때 그들이 다 떠났을 떄, 정말 힘들었단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라. 내가 끝까지 사랑했듯이 너도 끝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말아라. -> 결국 5명의 모임으로 미국오기 전까지 계속 모임을 진행.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너무 너무 포근합니다. 너무 너무 좋습니다.  저는 이런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힘든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베풀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교회는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구제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생선과 떡을 주고, 가슴이 아픈 사람에겐 울어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습관처럼 베드로가 이야기 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언제나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베드로입니다. 언제 이 말씀을 묻는 것입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뒤로하고 제자들을 선동해서 고기 잡으러 나가서 한 마리의 열매도 없이 낙심되어 있는 베드로를 먹이시고 위로한 후에 이제 그에게 진심을 묻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묻습니다.

네가 정말로 날 사랑하느냐?”

거듭 물으시는 주님 앞에 베드로의 현재 처지가 부끄럽게 다가옵니다. 자신의 사랑이 한 없이 초라해 집니다.

세 번째로 묻습니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

십자가 상에서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세 번의 질문을 통해서 그의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근심하며 한없이 초라하게, 부끄럽게,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주님이 내 사랑의 분량, 내 사랑의 모습을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비록 실패했어도, 내 사랑이 한 없이 작아도, 비록 당신을 배반하고 저주했어도, 주님 난 주님 사랑해요.”

마치 주님 사랑해요 하는 베드로의 대답에 아니야, 베드로야 내가 널 사랑하는 거야. 너는 실패했어도, 너는 떠나갔어도 내가 널 찾아오고, 내가 널 먹여주고, 내가 널 붙들어 주고, 내가 너에게 능력 주고, 내가 널 들어 쓰고, 내가 널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고, 내가 널 영원한 생명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세 번 사랑을 물으시는 예수님의 물음은 물음이 아니라 실패하고 낙담되어 있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그래도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실패한 너를 사랑하고 붙들어주고 일어나게 하듯이 너도 또 다른 영혼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그가 실패해도, 배반해도, 무력하여 아무런 도움이 안되도 네가 나의 사랑의 받듯이 너도 그를 사랑해야 한다. 네가 너에게 그들을 맡긴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네가 어릴 적엔 네가 원하는 데로 신앙생활 하고 있지만, 너의 능력, 너의 방법, 너의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지만 네가 믿음 안에서 성숙되면 네가 너에게 준 말씀대로, 네가 아닌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의 방법과 목적대로 네가 일할 것이다. 하면서 주님이 계속해서 성령을 통해 그와 함께 일하고 훈련시키고 성숙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이야기가 요한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을까? 베드로전후서라든지 아야 다른 복음서가 아닌 요한 복음. 요한-> 베드로와 라이벌. 서로 예수님의 수제자를 놓고 다투던, 경쟁하던 제자 앞에서 생생하게 베드로를 회복시키시는 모습을 보게 하심.

이전의 베드로를 향한 요한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맨날 앞에서 나서기만 하지 실수 투성이고, 헛점 투성이고, 성격도 더러운 그런 제자. -> 베드로의 신앙에 대한 불신

그런데 그를 사랑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 -> 오직 주의 사랑이 그를 붙들어주는 것이고 그 사랑으로 베드로가 서는 것이구나. 또 이후부터 그 때의 그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역하는구나.

è  사랑의 메신저. 베드로가 아닌 베드로를 세우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의지. 이제부터는 철저히 베드로의 협력자, 중보자, 써포터가 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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