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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인의 복

본문: 마태복음 5 1-10

 

한 주 뒤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 그 분의 오신 의미를 되새기는 날. 사실 그 분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성경이나 어느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313년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정해진 이후 그들의 가장 큰 축제날인 12 25일날을 예수님의 생일로 바꾸어 지키기 시작한 것이 크리스마스의 유래이다. 그래서 엄격한 보수주의자들은 성탄절을 지키는 것을 꺼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의 나심을 통해 그리스도의 나심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심은 세계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역사라는 말이 다름 아닌 예수의 이야기 his story를 기반으로 펼쳐지게 되었고 예수를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모두 똑같이 예수의 나심을 기준으로 달력을 만들고 날짜를 계산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만 여겨졌던 하나님의 구원이 예수를 통해서 온 인류를 하나님으로 믿어지게 되었고 징벌의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이라고만 여겨지던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성품을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의 하나님임을 명확히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또 하나 주어진 가장 탁월하고 특별한 차이는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될 이 무엇인가?에 대한 예수님의 정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복

[ 28:1-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è  땅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번영의 복

그 복의 시작은 아브라함을 부름에서 시작/ 아브라함: 우상을 섬기던 자, 하나님을 모르던 자.

è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리라.

è  떠나서, 나의 땅으로 가라. 너를 하나님이 예비한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얻게 하고 그 복의 기원으로 삼겠다.

l  구약의 역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의 우상에서부터 떠나서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우상을 왜 믿느냐? 땅의 복을 달라고그런데 그 땅의 복도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누구냐? 애굽이냐, 가나안이냐? 바알이냐 하나님이냐의 싸움.

l  구약의 복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 땅의 것은 하늘의 모형.

그런데 우리가 읽은 신약의 복,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에는 구약에서 명시한 복이 하나도 나와있지 않다. 이 곳 말씀에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어느 인물도 그러한 복, 땅을 얻고, 자식을 많이 낳고, 물질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을 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예수님도, 제자들도, 바울도, 디모데도 이런 구약의 복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고, 복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대신에, 부자 되려고 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라서, 가난한 자가 복되다고 하신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오래 살 생각 말고, 주를 위해 언제든지 생명 바칠 각오 하라! 왜 그럴까?

세상에서 환난, 핍박당해도 그것이 복이니까 기뻐하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구약의 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를까?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위대한 신학자 칼빈. 칼빈은 세계를 바꾼 십대 인물에 속할 정도로 탁월한 인물이었다.

더욱이 가톨릭의 탄압에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인물이라면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복을 듬뿍 부어주셔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의 전기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31세에 결혼했는데, 조건으로 오직믿음 좋은 여자만 찾다보니 자식을 7명이나 둔 과부와 결혼했다. (결혼 복도 없었다)

그녀와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몇 년 못 살고 죽었다.(자식 복도) 부인도 결혼 후 9년 만에 자식 7을 남긴 채, 먼저 소천했다. 그 후 그는 15년 동안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두통, 천식, 소화불량, 열병, 담석증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약 십 년 동안 그는 위가 안 좋아서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았다. (건강 복도 못 받았다)

그러다가 54세로 소천했는데, 생전에 그는 온 전력을 다하여 수 백 명 사람들이 수 백 년 동안 못 했던 일을 혼자서 해냈다. 수백권의 저서, 기독교 강요는 성경의 백과사전.

죽는 순간까지 그는 참 신앙인의 유언을 남겼다. “내 무덤에는 묘비를 세우지 말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으니까!”

è  그가 복이 없는 사람인가?

복을 보는 기준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한 마디로 답하면하나님의 나라 때문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팔레스틴에 지상천국을 이루고 온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세상적 왕국은 꿈꾸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이 없었다. 다시 말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가르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다.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복음서에하나님의 나라 110회 이상 반복되어 나온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얻은 것 - 영생, 천국

천국이 주어진 우리에게 장수하고, 배부르게 살고, 땅의 소산이 많고, 그러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수훈은 무엇인가? 천국의 복음.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예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인 팔복-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8가지 통로, . 하늘 나라의 통로

 

5병이어의 기적: 배고픈 자들을 먹이심- 똑같이 땅의 복을 내려주심, 병든 자, 약한 자, 부정한 자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치료하심- 그 결과:

6:14)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구약의 하나님의 복을 가져다 주는 자 

è  예수님의 반응: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è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 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에 얻는 복: 땅의 복과 하늘의 복

에덴 동산: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 땅의 주인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그런데 그 권능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복.

그런데 사탄의 꾀임에 너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벗어나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떠나가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 그 결과 땅의 모든 복을 잃어버리고 땅도 저주를 받고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내고 힘껏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게 되었다. 만물을 다스리는 정복자에서 만물의 지배를 받고 만물의 도움을 받아야 만 사는 자로 전락해 버림. 그 다음부터 우리의 관심사는 오직 땅의 복. 그런데 하님께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

신명기 28장의 말씀-> 네가 내 말을 잘 지켜 행하면-> 다시 선악과 안의 관계 안으로 들어오면….주시는 축복. 다시 회복시키리라. 1-14절이 축복의 말씀이면 20-68절까지는 지키지 않았을 때에 나타나는 저주의 말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관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땅의 복이 팽팽히….

탕자의 비유: 아버지 나에게 유산 주세요. 내가 나가서 살래요. 난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재산이 필요해요. ->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모든 재산을 다 잃고 갈데도 없고 먹을 데도 없어서 그냥 종살이라도 하려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어떤가? 맨발로 달려나와서 아들을 반기고 잔치를 배품-> 다 잃어도 관계가 회복되어서 좋은 거다.

( 4: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갈리리: 가나안 북단입니다. 데가볼리: 요단강 동편에 있는 헬라의 도시 (거라사, 힙포, 가다라, 빌라델비아, 다메섹…)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중심 중에 중심 유대: 가나안 남단에 있습니다. 요단 강 건너편은 가나안을 넘어오기 전 이방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사방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들 중에 예수님을 순순하게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었고, 자기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예수님을 해꼬지 하고 예수님께 흠집을 내기 위해 기회를 엿본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5 1절 그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1)

 아까 오병이어의 사건에서도 백성들이 예수님이 떡을 주니까 왕으로 삼으려 하자 올라갔던 곳. .

: 노아가 사람들의 온갖 조롱을 받으며 온 평생 힘을 모아 방주를 만든 곳. 모세가 자기 자신이 완전히 낮아져서 자신의 모든 욕심, ,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교제 했던 호렙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시내산.

그곳으로 무리들을 이끌고 가신다. 그 곳은 어떤 곳? 땅의 복이 없고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만 있는 곳.

내가 가벼워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 짐을 가지고선 올라갈 수 없는 곳. 그리고 고된 훈련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곳. 그곳에 올라온 사람을 그래서 무엇이라 부르는가? -> 제자. 그곳에서 하신 말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여덟 가지 통로. 팔복의 말씀.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 그렇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팔복의 말씀.

 

우리의 삶: 여전히 땅의 복만을 바라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망하는 내가 팽팽히 부딪치는 곳.

거기에 주시는 첫 번째 말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마음이 비워진 자 < - > 마음이 가득 찬 자

마음이 가득 찬 자: 우리 자신의 모습. 따지고 보면 우리 사이에 많은 다툼과 시기와 질투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일어나는 것들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을 했으면서도 부부싸움을 하는 까닭도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상대방을 이해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신앙 생활,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은혜가 안되고 변화가 없는 것. 내 마음이 너무 가득차서…. 내가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내가 아는 것, 내가 가진 것이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것.

 

성도들에게 많이 듣는 소리: 내가 은혜 받았을 때처럼 해 주세요. 그 때 불렀던 찬양 해 주고, 그 때 했던 기도대로 해주고그 때 갔던 기도원처럼 해주고그런데 그 때 부흥했던 교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멈춰 버리고, 욕먹고, 비난받는 교회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물론 과거의 교회를 다 부정해서도 안되고 우리의 좋은 전통, 기도의 전통, 말씀의 전통, 우리 나라 만의 새벽기도, 술 담배 안 하는 전통, 좋은 전통으로 지키고 계승해야 하지만 2012년도, 13년도에 그 교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 교회들을 뛰어 넘는 신앙관, 믿음과, 성경관이 있어야 한다. 부르짖었더니 축복하셨더라에서 넘어가서 내가 얼마나 제자가 되었는가? 내 인격과 삶과 말과 행동이 얼마나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아가는지 삶의 신앙, 영적인 신앙으로 올라가야 한다. 땅의 신앙에서 영의 신앙으로 옮겨가는 것.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신앙.

 

그렇다면 대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누구인가? 내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

è  예수 만난 이후에 자기의 이전 자랑: 가문, 시민권, 교육-> 다 배설물로 여긴다.

 

왜 그렇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들만이, 주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텅 비어버린 심령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생기가 사라져 버린 심령에 성령의 새 바람을 불어넣으시는 분이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은혜는 항상 나를 비우고 새 은혜를 갈망할 때에 찾아오는 것이다.  

누가 복음 18장에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바리새인이 기도를 했습니다. 누가복음 18:11-12의 기록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기도만 놓고 본다면, 바리새인은 남의 것을 빼앗는 토색도 하지 않고, 불의와 간음도 행하지 않고, 일주일에 이틀이나 온전히 금식을 하고 소득의 십일조도 헌금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신앙과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내 세울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바리새인은 심령이 가난하지가 못했습니다.

한편 세리는 이렇게 기도했다.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하나님 앞에 내 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눈을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가슴만 치면서, 하나님,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의 그의 기도의 전부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세리는 정말 심령이 가난한 자였던 것입니다.

이같은 두 사람의 기도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토색도 하지 않고 불의도 행치 않고 금식하고 십일조 하는 바리새인이 의로운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세리가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에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하는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어서, 하나님의 자비만을 의지하는 자,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너무도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서 눈을 들지도 못하고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험한 이 세상에서 피할 곳이 하나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어서 그저 가슴만 치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의지하고 싶어도 의지할 데라고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 그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초대 교회는 심령이 부자였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가난하고 무식했던 갈릴리의 어부들, 인간 사회에서 거절 당하던 세리와 창기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던 제자들을 통해, 초대 교회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가 그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들이었겠습니까? 심령은 비록 가난했지만, 그들은 천국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제 땅의 복만을 바라보면서 쫓는 탕자같은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의 복, 생명의 복,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아들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구약의 복을 넘어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자녀의 삶으로 인도하는 팔복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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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onflowe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2.24 04:24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날.....전 오늘 교회에서 즐겁고 행복한 성탄축하 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가슴 한켠이 무거웠던건...오늘 나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많은 선물로 그야말로 복을 받은 행복한 날이었는데.....이번 크리스마스가 말할수 없이 슬플 코네티컷 20명의 아이들 가족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들을 위해 이제 그만 슬퍼하고 , 그만 안타까워하고....기도 해야겠습니다.
    잠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내가 해야할일은 원망도,미움도 아닌.....그들을 위한 기도라는걸.........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닫습니다.

  2. ghd plancha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4.07 03:18

    사람들은 죽을걸 알면서도 살잖아 .사랑은 원래 유치한거에요

[계 3:1-계 3: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사데 교회

  1. 사데 - 리디아의 수도
  • 사데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이며 트몰루스 산의 깎아자른 듯한 절벽에 위치한 도시로 타지로부터의 출입이 한정되어있는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사데 성읍 주위에는 헤로도투스강이 흘렀는데 강에는 사금이 많이 나와 이로 인해 도시는 더욱 부강해졌다.
  • 리디아 왕국은 크로에소스라는 유명한 왕이 있었는데 당시 전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한 왕으로 불리워서 다른 부자가 나타나면 "크로에소스같은 부자"라고 불릴만큼 당대 최고의 부를 자랑했다. 그는 금과 은을 섞어서 최초로 금화를 만들어 보관하고 사용하였다.
  •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은 리디아 왕국을 점령하려고 했으나 크로에소스 왕은 수도인 사데로 피신했고 고레스 왕은 가파른 언덕 안에 숨겨진 사데성을 점령할 수가 없었다. 고레스왕은 사데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크로이수스와 사데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트몰루스산에 숨어있기만 하면 문제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트몰루스산에 숨어있기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데사람들을 가리키며 고레스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살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목숨이다.”  고레스는 14일간을 포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에“사데성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특별상을 주겠다고 했다. 어느 날 히에로에데스(Hyeroeddes)라고 불리는 한 군인이 사데성의 발포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사데 군병의 한 명이 실수하여 자기 철모를 성벽 총구 너머로 떨어뜨리고는 그것을 찾으려고 절벽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히에로에데스는 그 곳에는 몸집이 작은 사람이면 기어 올라갈 수 있는 틈바구니가 바위 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날 밤 일단의 페르샤 군인들이 그 바위의 갈라진 틈바구니를 통해 사데성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발포대 위에 도달했을 때 그 곳에는 보초병 하나 없었다. 사데 사람들은 발포대에 보초가 깨어서 경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다 잠자고 있다가 사데는 함락된 것이다. 페르시아는 B.C.549년 사데를 점령하였고, 300년 동안 그곳을 아시아 총독 본부로 사용하였다. 그후 B.C 218년 안티오쿠스 대제에 의해서도 점령되었는데, 그 때도 병사 중 하나가 히로에아데스의 방법을 되풀이 하여 점령했다. ->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헤이함으로 인해 번이나 정복당했던 .
  • 주후 17년에 지진이 일어나 지역이 초토화 된다. 5년동안 로마에서 세금을 면제해주어서 재건되는 했지만 이전의 영광은 찾지 못했다.

 

  1. 사데 교회
  • 사데교회도 지역의 성격을 그대로 닮은 교회였다.
  • 도덕법적으로 잘못이나,  혹은 발람당과 니골라 당과 같은 그런 이단적 분파와 관련된 어떤 것도 그들에게서 보지 못했고 이세벨과 같은 어떤 음탕한 거짓 선지자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의 어떤 핍박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의 핍박과 고발도 없었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단절되어 그들만의 안전한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곳이 바로 사데 교회였다. 부유한 환경 덕으로 교회 건물도 화려했고, 성도들의 수준도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사람들에게 명성이 좋은 교회로서 익히 알려진 교회였다. 지방 사람들만 사는 동네 였기 때문에 교회 출석률도 좋았고 다양한 활동들도 하였다. 나름대로 봉사와 선교도 하는 교회였다. 그들은 돈이나 재능이나 인적자원이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
  • 외형적으로 본다면 교회는 문제도 별로 없고, 다른 6교회가 본다면 정말 부러워할 입지 조건과 환경을 타고난 교회였다.
  • 그런데 사데 교회에 주신 편지는 7교회에 보낸 편지 중에서 가장 호된 질책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디의 칭찬도 없습니다. 3 1절에 보면 "내가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행위를 안다. 너희의 모든 활동들을 알고 있다. 예배와 봉사와 선교와 모든 친교의 활동을 안다. 그런데 네가 살았다, 잘한다고 하지만 정작은 죽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는 사회적으로 이름 있었지만 사실은 영적인 묘지라는 것입니다.

  • 그러면서 2 후반부에 말씀은 "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으니…"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온전하다" 표현은 "채워지다" "달성되다" "성취되다"라는 의미입니다. ,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는 것인데 그들의 행위가 하나도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이름은 인간들에게서 얻은 것이지 하나님께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제법 견고하고 훌륭해 보였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결함투성이의 교회가 바로 사데 교회였습니다. "명성" "실체" 차이- 인간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의 차이.

->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삼상 16:7)

  • 사데 교회는 이 도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크게 부흥 하였다가 나중에는 쇠퇴하는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사도 요한이 사데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의 교회지도자는 누구였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처음에는 그 지역에 크게 지어져 있는 아데미신전을 빼앗아 예배드리다가(4세기경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권세를 얻었을 때쯤)후에 신도의 숫자가 작아져 아데미신전 담 밖에 돌담을 싸놓고 예배드렸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 당시 신도 수는 매우 많았으나 영적으로는 미약하였다. 때문에 "너는 살아있다고 말하나 실은 죽어가고 있다!"란 책망을 받았다. 사데 지역은 황금이 많은 지역으로 재물의 유혹이 있었고 또한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의 사데교회 유적은 아데미 신전 뒤편에 비잔틴 시대에 벽돌로 지은 작은 교회이다
  • 사데교회의 영적인 죽음이 어떤 것인지 있는 한가지 단서는 4절에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사데에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명이 네게 있어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러니까 반대로 대다수 교인들은 "옷이 더러워져 있었다. -> 행실이나 삶이 바르지 못했다." 다른 곳에는 니골라당이나 발람, 이세벨 같은 악한 세력이 그들을 더럽혔지만 사데교회는 풍부함 속에서 스스로 더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사데의 주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덕 기준이 해이해져 아얘 방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당시 가장 좋은 교회라고 소문나있었던 사데교회에 주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가혹하리만치 차갑습니다. 그들의 명성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름 뿐인 기독교가 어떤 지를 보여준 최초의 교회라고까지 합니다.

 

->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만 가져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 가져야 한다. 구약의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 29:13)

바울: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

-> 위선자: 위선은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 속과 겉이 다른 .

예배에도 위선이 있을 있다: 찬양대와 밴드나 오케스트라의 인도에 따라 찬송을 부를 수도 있고, 기도할 있지만 생각은 가있고, 마음은 더욱 하나님과 멀어질 있다. 실체는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으며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하게 예배를 드리는가이다. 예배를 인도하는 , 찬양하는 , 설교자는 더욱 위험에 빠질 있다.

 

  1. 예수님의 해법
  • [계 3:2-3]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 다섯가지 명령: 깨어라. 남아있는 것을 굳건하게 하라. 기억하라. 지켜라 (순종하라), 회개하라.
  1. 남은 사상: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명이 있어… ex) 노아, (소돔과 고모라), 칠천명의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선지자…-> 소수의 남아있던 경건한 무리들. 더러운 행실에 참여하지 아니한 자들.

그들에게 말씀하신 : 깨어(잠에서) 남아있는 것을 굳건하게 지키라.

지금 옷이 더러워져 있는 자들은 이미 죽은 자라고 하시는데 옷이 더럽혀져 있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잠에서 깨라고 하신다. 일부교인들은 주위의 혼탁함 때문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잠에서 깨어 정신차리라고 하신다. -> 예수님이 공생애 내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 깨어 있으라. -> 난공 불락의 요새가 번이나 침공당한 이유 -> 자고 있었기 때문에… 깨어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1. 굳건하게 하라.- 초대교회에서 굳건하게 하라는 말은 주로 양육하다의 뜻으로 사용.

  18: 23)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1:11)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해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려… -> 양육해야 한다.

교회 안의 남은 : 교회 안의 교회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의 교회를 통해, 소수의 깨어 있는 자를 통해 교회를 일으키신다. 깨어 살아있는 자들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고, 남은 죽게 것을 굳건하게 있다.

  1.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생각하라. 기억하라. 끊임없이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 (내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구원받기 전의 처지가 어찌했던지, 구원 받은 후에 겪은 신앙의 유익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면 막연히 과거만 추억하게 된다. 애굽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데 기억하고 생각해야 가장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이다. 회개하면 주어지는 것은 바로 성령이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복음에 반응할 받는 특별한 선물-> 성령

그리스도인이 여태 받았고 여전히 받을 있고 장차 받을 있는 최고의 선물- 성령

성령은 사랑과 기쁨과 평안으로 우리를 채우시며, 우리의 욕심을 복종시키시고, 우리의 성품을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이것을 받침하는 : 소절의 예수님에 대한 소개 - 편지의 도입부의 예수님의 소개는 편지를 수신하는 교회의 상황에 맞게 자신을 묘사

  •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
  • (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일곱 : 일곱 영으로 표현 했는가? 교회에 보내주신 , 무소 부재하신 . 동행 하시는 . 일곱- 완전

따라서 남아 있는 잠자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 성령 받았을 때의 은혜를 생각하며 회개하라. 그리고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은 언제나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러나 내가 지금 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는가?

내가 안에 그가 안에 거하는 것이 성령의 충만이다. 성령은 언제나 안에 계신다. 그러나 안에 충만히 거하지 못한다. 언제나 생각, 생활, 습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충만함이 없다.

 

  1. 믿는 자의 상급
  •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 거룩해지고, 성령이 충만함으로 네가 어디에 있던지 나와 함께 동행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나와 함께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문제는 내가 잠들어 있으므로 분과 함께 걷지 못하는 것이다. 세마포- 승리한 자들이 입는 .
  • (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킨 자들에게 주시는 승리의 .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
  • 생명책에서 절대 지우지 않을 것이다. 이름을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절대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찾을 때면 언제나 내가 함께 것이다. 중간에 네가 변절되거나 타락하지 않도록 내가 붙들어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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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 19 1-18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고 하면 엘리야라고 하는 데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로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암흑 시대인 아합 왕 때에 부정한 정권에 맞서 싸우는 개혁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당시의 왕 아합은 반대로 이스라엘 역사상 우상숭배와 탐욕스런 모습을 가장 많이 보여준 악한 왕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아내 이세벨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아합의 아내 여왕 아세라는 이방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이었는데 엣바알은 이름의 뜻이바알과 함께의 뜻으로 바알의 신부, 숭배자였고 여신 아세라의 제사장이었다. 그는 아버지, 혹은 자기 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이세벨의 원 의미는순결, 순수를 뜻하는데 이것은 사탄의 속임수다. 그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들이 섬겼던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는 가나안 민족이 섬겼던 우상 중에 가장 대표적인 우상인데 그들이 이 신들을 숭배한 이유는 "땅의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신적인 힘이 땅 속에 내재하고 있으며, 그 힘이 땅을 비옥하게 하고 곡식을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농부들은 이러한 힘이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의 성적 결합을 통해서 생겨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전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성적으로 자극하기 위해서 성적 흥분을 자극하는 일을 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흥분시키기 위해서 신전에서 음란한 제사 의식을 거행하고, 신전 안에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성 관계를 맺는 소위 거룩한 창녀들이 있었습니다.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성 관계를 맺음으로 바알과 아세라가 성적으로 흥분하도록 자극한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바알과 아세라가 성적으로 결합을 하게 되면 비가 내려 땅을 적시게 되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세벨은 아합과 결혼 한 후에 당시 수도였던 사마리아에 아세라의 신전과 제단을 지었고 음란한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 850명을 데리고 와서 보살피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누구를 믿고 누구의 영향 안에서 사는냐가 그의 온 인격과 삶과 그리고 평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호와 만이 나의 하나님이다. 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다는 믿음으로 살았던 엘리야와 바알과 함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서 이스라엘 선지자를 죽였던 아합왕과 그 배후 이세벨의 대결은 그렇기 때문에 이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삶이 정말 의미 있고 승리하는 삶인가를 보여주는 영적 전쟁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이 이세벨과 함께 바알 신전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고 있을 때에, 엘리야는 왕 앞에 나타나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거슬린 형벌로 수년 동안 우로가 없을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아합왕은 분노했겠지요, 이 분노를 피해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몸을 숨겼으며, 여호와께서는 매일 그에게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 등 먹을 것을 공급하게 하셨다. 그의 예언대로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강물도 얼마 후에 말라 버렸지요.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돈 땅으로 보내어 보내어 우리가 잘 아는 사르밧 과부에게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떡을 지어 먹게 합니다. 마지막 남은 그것을 주의 종에게 공궤하자 비가 올 때까지 그 집의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되고 이어 아들이 병에 걸렸는 데도 죽지 않는 역사가 나타나죠. 시돈 땅이 어디지요? 바로 이세벨의 아버지 엣바알이 통치하던 나라입니다. 그 곳에서 이름없는 과부를 통해 하나님이 엘리야를 먹이시고 또 그 때문에 그 과부에게 축복하시는 거죠.

3년 후, 계속 비가 오지 않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누가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이고 우리를 살게 하는 신인지 그동안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모조리 죽이려 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이른바 갈멜산 전투를 벌여 하나님이 불을 내려 심판하게 하여 그들을 모조리 죽게 만들고 급기야 비를 내리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18장까지의 내용입니다. 

3년동안 하나님의 충실한 대변인, 이스라엘 민족의 훌륭한 리더. 온갖 기적이 일어났고 이방 신에 빠져 있던 그의 민족에게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되지요.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승리했다고 여기는데 사탄의 세력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엘리야를 좋아하지 않는 한 세력- 아합왕과 이세벨이 다시금 엘리야를 옥 죄어 옵니다.

"내일 이맘 때까지 너를 죽이고 말겠다. 네가 그 예언자들을 죽였듯이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신들이 나에게 무서운 벌을 내릴 것이다. (19:2)

80인의 이방 선지자와 싸워 이겼던 영적 선지자 엘리야가 여인의 위협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 광야로 도망쳐서 로뎀나무 아래 않아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합니다. 그 수많은 위협과 위기 속에서도 오직 여호와만이 나의 하나님이다고 외쳤던 믿음의 선지자가 지금 이세벨의 위협에 도망한 것입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이지만 이것이 인생이고, 인간이고, 우리의 모습입니다. 큰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고도 삶의 작은 어려움이 오면 또 다시 무너지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 지금 엘리야의 모습을 야고보서 기자는 그도 우리와 성정, 마음이 똑 같은 사람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엘리야- 슬럼프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입니다. 육체적으로 지치고, 감정적으로 고갈됨. 그리고 누군가 그의 목숨을 위협. 이 때 일어나는 감정: 두려움, 적개심, 죄책감, 분노, 외로움, 걱정->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능한 상태. 우리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 슬럼프에 빠져 있다. 의기소침해 있었다.

슬럼프는 자신의 문제에 갇혀 부정적으로 생각 할 때 온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온다. 사람의 감정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자신이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낙심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은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엘리야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가 지금 낙망하고 있습니까?

[왕상 19:3-왕상 19:4]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1. 사실들보다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를 위협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해버리고 맙니다.  

           -> 감정은 항상 현실을 과장하고, 극대화하고 종종 거짓말을 합니다. 한 영역에서 실패하면 인생 전체에서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감정이 아닌 진실에 귀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2.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

슬럼프의 두 번째 원인- 자신을 남들과 비교함으로 나쁜 감정으로 치달게 합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고후 10: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 비교하는 것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셨고 누구를 흉내내어 살지 않도록 인도합니다. 누구나가 나만의 삶의 목적이 있고, 계획이 있고,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맞게 훈련하신다.

           3. 잘못된 비난을 하지 말라.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 저는 열심히 일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주님과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자책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우리의 기대와 현실, 혹은 하나님의 응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 엘리야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이세벨입니다. 사탄이 그를 위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엘리야는 지금 이스라엘 자손 모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연약함이 현실 모두를 자기의 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저희가 내 생명을 취하려 하나이다."

           -> 모든 사람이 나를 대적합니다. -> 단 한 사람만이 그를 위협하고 있다. 그것도 단지 말로 대적하고 있다.

           이세벨-사자를 보내 협박, 정말 죽이려면 자객을 보내어 죽였을 것이다. 그녀는 백성들의 지도자를 죽일 수도 없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18절에보면 아직 이방 종교에 굴복하지 않은 수천 명의 선지자들이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치료방법

           1. 육체적인 필요를 채워주라.

           [왕상 19:5-6]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

           하나님은 그를 질책하지 않으시고 쉬게 하시고 육체적인 필요를 채워 주신다. 영혼을 회복시키기 이전에 육체를 회복케 하신다.

           2. 속 마음을 하나님께 털어놓으라.

           [왕상 19:8-왕상 19:9]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원기가 회복된 다음 동굴로 들어가 하룻밤을 보냄. 동굴- 골방

           -> 엘리야야,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엘리야는 자기 속내를 모두 토해냈다. 하나님은 그가 울분을 통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억눌렸던 감정들을 분출하게 하셨다.

           엘리야는 많은 것들을 속으로 꾹꾹 눌러 참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감정만도 두려움, 적개심, 죄책감, 분노

           "저는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전 조상들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없자 허무하고 화가났다. 외로워서 절망했다.

           여기서 무엇하느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낙심하느냐?  무엇이 너를 집어 삼켰는냐?

           3. 하나님을 새롭게 깨달으라.

           [왕상 19:11-1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바람, 지진, 불의 모습->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했던 모습, 지금까지의 엘리야의 인생. 전쟁과도 같은 영적인 전쟁. 사역의 연장. 지금으로부터 말하면 큰 부흥회만 다니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또한 수 많은 영적인 우상들과 전쟁하던 삶->

하나님의 응답- 불과 지진과 바람도 나의 능력이지만 난 너와 은밀히 교제하기를 원한다. 은밀한 교제를회복하자하고  나지막한 소리. 부드러운 음성을 들려주심-> 갈멜산에서의 영적 전투가 아닌 하나님과의 은밀한 속삭임. -> 새로운 일을 주심. 그리고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 일하게 하심.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3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1) 첫째는 하사엘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을 삼는 것이었고, 2) 두 번째는 예후라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북이스라엘의 왕을 삼는 것이었고, 3) 세 번째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뒤를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고 아합에게 예언했다 (왕상 21:23). 이 예언은 그대로 적중되었다. , 이세벨이 예후의 말에 따라 내시에게 창문으로 던져져 죽은 다음 장사할 때는 두개골과 수족 외에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개들이 그 시체를 뜯어먹었기 때문이다

 

북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삼는 예후에 의해서 이세벨 여왕은 창문으로 던지워저 죽임을 당하고 개들의 먹이가 됨.        

지금도 우리는 영적인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복 받으려면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한다. 때로는 타협할 수도 있어야하고 부정한 것도 눈감아 줄 수 있어야 하고, 때론 술자리도, 음란한 자리도 낄 줄 알아야 한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죄이다. 죄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모든 것이다. 때로 그런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는 지치고 상하고, 넘어진다. 끝없는 사탄의 괴롭힘에 지긋지긋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전쟁은 오래가지 않는다. 반드시 끝나는 전쟁이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넘어져도 결코 우리에게 실망하지 않고 또한 우리를 실망시키지도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연민에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도 원치 않으시고 일어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새로운 목적과 방향을 주신다. 우리를 도와 주신다. 그런데 사실 이런 침체에 빠지면 다시 회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로뎀나무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고 기력이 회복한 다음 사십일을 가서 호렙에 간다. 사십일 길을 가서 호렙에 간다? 낯선 단어들 아닌가? 바로 모세가 바로의 궁을 빠져 나와 사십년 동안 광야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I am Nothing의 시간,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낮아지는 시간이다. 자존감이 무너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영적으로 보면 축복의 시간이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또한 힘든 시간이다. 그것을 연단을 다 거친 엘리야, 갈멜산에서 이방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서 승리를 맛보았던 엘리야가 다시 그 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믿음에 한 번 선 자들은 될 수 있으면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 침체가 이르기 전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예화: 선교사 한 분이 아프리카로 선교를 갔습니다.  원주민들과 함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원주민이 큰 돌을 선교사 가슴에 안겨주었습니다.  자신들은 큰 돌을 머리에 이거나 가슴에 안고 강을 건넜습니다.  그 선교사는 그 이유를 강 중간쯤 왔을 때 알았습니다.  강 중간쯤에 급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만약 무거운 돌이 없었다면 급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무거운 짐이 자신들을 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볍고 편한 것만이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고 침체의 강을 건너게 하시는데 그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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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입구에 반짝반짝 빛이 비취고, 예배당에 올라가면 성탄절 트리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고, 그 앞에는 성도님들이 미리 사 두신 선물 보따리가 있습니다. 제법 성탄절 분위기가 나는지 아이들이 교회 오는 것을 신나 하면서 성전으로 뛰어 올라가곤 합니다. 혹시나 자기선물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큰 아이는 벌써부터 성탄절 예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립니다.

 

예쁘게 장식된 트리와 그 앞의 선물 보따리!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배당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모습도 이와 같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지만 성전은 특별히 기도하는 곳이고 예배하는 곳,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며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시는 곳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예배를 기다리며 우리가 볼 수 없는 예쁜 장식으로 예배당을 꾸며 놓을 수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선물보따리를 잔뜩 쌓아둘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단지 우리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 예배를 기다리시는 날, 우리 모두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실 선물을 기다리며 성전에 뛰어 올라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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