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92020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이사야 7장 10-17절 (임마누엘) 

 

[사 7:10-17]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

 

역사적 배경 

  • 앗수르가 신흥제국으로 떠오르면서 주변국들을 하나 둘씩 점령하기 시작 
  • 기존의 세력국가 - 아람 (엘리사 당시의 나아만이 군대 장관에 있을 때- 왕 앞에 존귀한 자라 - 전쟁에 승승장구) - 아합왕 (영적으로 타락했으나 정치, 경제적으로 부강했던 때) 그 둘이 앗수르에게 맞서려고 동맹을 하고 (아람- 에브라임 동맹) 주변국들을 설득- 남왕국 유다의 불참 -> 아하스를 몰아내고 그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 동맹을 강화하고자 하는 상황  
  • 이 소식을 듣고 아하스와 백성들이 요동치는 모습이 7장 오늘 본문 전까지의 상황

 

[사 7:3-9]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어 아하스에게 "삼가고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라" "그 일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라" 
  • 아하스의 선택 - 이사야의 말씀에 공감하지 못한다. - 이사야의 말을 믿지 못한다. 

 

그 말을 못믿으니까 이사야가 다시 말한다. 

(사 7:11)"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높은 데서든지 낮은 데서든지 구하라" 

하나님께 집중하라.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구하고 확신에 거하라. -> 무엇을 위해? 네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 

 

아하스의 답변 

[사 7:12]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 이 구절만을 딱 떼어놓고 살펴보면 누가 신앙적인지, 누가 건전하지 못한 신앙을 가졌는지 이 배경이 없으면 판단하기 어렵다. 

이사야가 징조를 구하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께 더 확실한 것을 구하는 모세나 기드온처럼, 그들의 성숙되지 못한, 불신앙적 모습을 보이는 말처럼 들리고 

아하스의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하신 예수님의 말처럼 굉장히 신앙적인 모습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나타나면 우리는 혼동할 수 있다. 누가 참 신앙의 사람인가? 누가 억지쓰고, 광신적인 신앙의 사람인가? 

 

  • 그런데 이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유다에 큰 위기가 닥쳐서 왕과 백성들이 두려워 떨 때에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어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라. 믿음을 굳게 하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전혀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는지 아니한지 싸인을 구해보라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푸신 이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그 표적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은 신앙적인 표현인 것 같지만 아하스의 "나는 구하지 않겠습니다.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는 말은 아주 단순히 말하면 "난 당신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건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사야가 말한다. 

[사 7:13]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 다윗의 집이여- 유다백성, 유다의 왕- 다윗의 집으로 부른다. 하나님의 큰 애정이, 사랑이 들어간 표현이다. 
  •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왜? 믿지 못한 결과로 그 괴로움이, 고난이, 상황이 나아지질 않으니까... 백성들이 고생한다
  •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어떤 괴로움-> 두려워하지 말라고, 낙심하지 말라고, 그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데 그 말은 듣지 않고 자꾸만 다른 길로만, 다른 것들만 찾으려 하는 모습을 보며....고통스러워 하는 하나님의 모습 

[사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아하스의 선택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 아니라 앗수르에게 달려가서 원조를 구함, 그 결과가 역대하 28장에 생생히 증언  

 

[대하 28:19-25]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 도와줄줄 알았던 앗수르왕이 오히려 그들을 공격 
  • 엄청난 조공을 받쳐도 유익이 없다-> 효과가 없다. (조공: 여호와의 전(성전의 기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가져온 제물)
  •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다메섹의 신, 곧 아람의 신들에게 제사 
  • 그가 저지를 엄청난 죄악 

[대하 28: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 자기 자녀들까지도 흰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 산당에서 인신 제사를 드림 - 흰놈의 아들 골짜기 - 게헨나 - 지옥불의 어원이 되는 지명 

 

우리는 아합의 이러한 선택, 결정을 단순히 그가 악하기 때문에 그랬다로 결론을 짓고 넘길 수 있다. 그러면 이 일은 나 자신과 상관이 없다. 왜 그가 하나님 보내신 선지자의 말도 안듣고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질렀을까? 그의 상황과 선택을 좀 더 깊이 살펴 이런 모습이 나 한테는 없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그것이 성경을 남기신, 나와 상관없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렇게 자세히 남기신 이유이다. 

 

위기 상황에서 20세 때 왕이 된 아하스. - 무슨 철이, 성숙이 있었을까? 

강대국 사이에 둘러쌓여 있는 한 지파 반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작은 나라. 

그가 할 수 있는 것-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것, 어떻게든 나라를 유지하고, 왕조를 유지하고, 그야말로 생존하는 것. 살아남는 것, 나라를 살아남게 하는 것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한 사건이 얼마나 아브라함에게 큰 사건이었는지를 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독생자 아들을 우리를 살리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늠한다. 

 

그런데 아하스는 유다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몰렉의 신전에 산 채로 불에 던진다. 그게 쉬운 일이었을까? 

앗수르를 찾아가서 있는 모든 제물을 바쳐 도와달라 하고, 그것도 안되니까 자기를 공격했던 아람의 신을 섬겨 온 땅에 산당을 세우기도 한다. 하나님만 제외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온갖 몸부림을 다 하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도 버리고, 왕의 권위도 내어 버리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사람이 하지 못할 온갖 몸부림을 친 사람이다. 

그런데....그럼에도 불구하고....그는 하나님을 모르고 외면했다. 이것이 단 하나지만 가장 결정적인, 치명적인 실수이자 과오였다. 

 

이것이 13절과 14절 사이의 행간에 들어있는 역사적 배경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대로 이사야를 보내어 그 분의 뜻을 알려주시고, 다시 강조하시고, 또 보내어 말씀하시는데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하스는 그 하나님은 쳐다보지 않으시고 고통스럽게, 그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모든 유다의 백성들까지도 점점 더 죽음으로 이끌고 간다. 

 

거기서 시작된 것이 임마누엘의 징조를 주시는 것이다. - 오늘의 중심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또 이 구절만 떼어 놓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것이 예수를 주시리라는 예언으로 바로 생각해버린다. 이사야가, 아하스가 이 예언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를 떠올릴 수가 있었을까? 신약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읽으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유대인의 구약 주석을 보면 이 구절은 이어지는 15-16절과 더불어 보아야 한다. 

[사 7:14-16]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여인이 장차 결혼하여 애을 낳아 그 애가 선악을 분별할 나이가 되면- 유대인의 주석엔 이 선악을 분별할 나이를 12살쯤으로 본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갔을 나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었던 나이, 더 나아가 신약에서 예수가 성전에 올라가 말씀을 전한 나이...그 나이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선악을 분별할 나이라는 의미이다. 
  • 엉긴 젖과 꿀- 버터와 꿀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음식은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먹게 되는 우리나라로 치면 보릿고개 때의 음식을 가리킨다- 아주 어려울 때, 앞으로도 계속 어려움이 계속되겠지만 너희들이 두려워하는 그 나라, 그 왕들은 내가 사라지게 할 것이다. 

 

유진 피터슨 메시지 성경 

"두고 보십시오. 당신이 구하지 않아도 주께서 친히 표징을 보일 것입니다. 처녀인 한 소녀가 잉태하게 되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라 할 것입니다. 그 아이가 열 두 살이 되어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전쟁의 위협이 끝나 있을 것입니다. 그대들을 그토록 근심하게 하는 저 두 왕은 그 때쯤이면 사라져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 임마누엘 - 너희들의 미래를 내가 잡고 있다. 내가 이 역사를 주관하고 있다. 
  • 이것이 이사야 당시의 이사야와 아하스가 알아들었던,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이 말씀의 의미이다. 

 

이사야의 예언 - 유다를 못살게 굴었던 북왕국 이스라엘도, 아람도 앗수르에게 망할 것이다. 그 앗수르가 유다도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황폐해 질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유다의 백성들이 그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올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다의 역사를 이사야의 눈을 통해, 입술을 통해 예언되어 진다

 

그런데 아하스에게 주었던 이 예언은 더 크게, 더 깊이, 궁극적인 그 결과가 그리스도의 세대들에게 주어진다. 

[마 1:18-23]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요셉에게 주신 말씀 - 다윗의 자손 요셉아 (cf, 다윗의 집이요 원하건데 들으소서. 아하스: 유다의 왕) 무서워하지 말라
  • 누가 의로운 사람인가? 그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자. 
  • 아하스도, 요셉도 닥친 현실에 괴로워하고 몸부림 치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와 함께 하시는가?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의 역사

 

처녀의 몸에서 났다. - 날 수 없는 자에서 났다는 기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차리리 기적을 보이시려면 알에서 낳던가 남자가 나면 어땠을까? 동정녀 탄생, 기적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장) 창조주, 우리를 만드신 자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창조주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 그 결과물은 우리가 만들지 않은 처녀를 통해 이 땅에 오셨다. 

2중적인 창조 - 우리에게 오신 예수는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 것 

그 분의 오심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왜 오셨는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계 1:4-5]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 이 땅에 예수님을 머리로 삼은 모든 교회, 모든 성도 
  • 이제도 계시고(현재), 전에도 계셨고 (과거), 장차 오실 이(미래)
  • 먼저 나시고, 머리가 되신 예수의 이름으로, 그 이름 때문에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언제 우리 삶에 은혜와 평강이 임하는가? 우리 삶의 모든 현재, 과거, 미래를 아시고 주관하시고 함께 하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살 때에... 그 분의 사랑을 알고,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알 때에... 

 

아하스의 고민 - 이 닥친 상황, 우리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몸부림.... 

임마누엘 - 내가 너의 모든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주관하고 이끌고 함께 한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결과물로 오시고 낳은 수 없는 자가 낳게 되는 역사 - 잉태치 못하는 자가 잉태하는 역사 - 구약의 구속사의 중요한 메시지 - 열매 맺을 수 없는 자가 열매 맺는 역사 - 오직 예수 안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현재만을 살아간다. 현재 때문에 힘들고, 현재 때문에 몸부림치고 바둥바둥 산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과거에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바라보고,  그 예수와 함께 현재를 살고, 그 예수와 함께 미래를 본다. 결과물을 알고 살아간다. 우리의 미래을 알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이요 임마누엘의 삶이다. 

 

고린도전서 13장 - 사랑 장 

이것을 덕목으로, 훈련으로 이룰 수 있을까? 

참고 견뎌서 어떤 보장이 있나? 이 세상은 참으면 병신취급 하는데,,,,

 

어떤 자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가? 누가 오래 참을 수 있는가? 끝까지 참을 수 있을까? 

이미 이루어진 것을 알고 살아가는자. 끝을 알고 살아가는 자.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아하스는 우리랑 상관없는 악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현재를 견디기 위해 몸부림 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 안에 예수가 없다면 그 몸부림은 점점 더 사망을 향해 간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이사야는 임마누엘을 외친다. 오늘 만나는 하나님은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완성시킬, 구원자요, 피난처요, 안내자이다. 

아하스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요, 임마누엘을 살아라. 왕이 아니어도 요셉은 임마누엘 예수를 선택한다. 은혜와 평강은 예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매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사야 1장 1-9절 

 

1. 전체 구성

  • 이사야는 전체 6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39장까지는 유다 멸망 이전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심판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40장부터 55장까지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구원)의 메시지, 56-66장까지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에게 주는 계시와 당부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한 사람이 쓴 거냐? 예언자는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 후대의 사람들이나 그 동료, 혹은 제자의 무리들이 그 예언자의 삶과 설교를 기록한 것이다. (제 1 이사야, 2 이사야, 3 이사야라고 나눌 필요없다.  이사야서는 긴 형성과정을 통해 의도적으로 한권의 말씀으로 형성된 책이다. 신학적으로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다. 이사야서에는 많은 시간과 장소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심판과 구원 신학을 표현하기 위해 한권의 책으로 읽는 것 - 그것이 교회와 성도들이 이 책을 대하는 태도로서 읽기를 원하는 것이다. 
  • 특별히 기독교 교회 공동체에서는 신구약 성서 전체가 66장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전체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불리기도 특히 40장부터 55장 사이에 나와있는 여호와의 종에 관한 예언은 그리스도를 정확히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기에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2. 이사야  

[사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 이사야 BC 740년 부터 BC 680까지 4대의 왕(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어 걸쳐서 약 60여년간 예루살렘에서 사역한 선지자 

 

  • 이 때의 가장 큰 사건 

BC 743-32: 아람과 북이스라엘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한 사건  (아하스 왕때) 

BC 721년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 정복 

BC 701년 앗수르 산호렙 왕이 예루살렘 침공 (히스기야 왕 때) 

 

  • 이러한 시대적 배경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 구원이 이스라엘 역사적 현실에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성경과 예배를 통해 경험하는 신앙적 삶이 우리의 매일 매일의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체험되어 지는가? 

성경의 사건은 역사임과 동시에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들이 만난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만나야 하는 하나님이다. 

 

 

  • 이사야의 소명 - 6장에 가서야 비로서 시작 (웃시야 왕이 죽던 해) 

1-5장: 이사야의 소명 이전에 역사적 정황이 먼저 소개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님께 예언자의 직분을 받는 데서 이사야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사 1:1-9]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시간순서대로 쓰여졌다기 보다는 이사야가 살았던 역사적 전체의 맥락을 보여 준 후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고 유다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전하는 데에 역점을 둔다. 

-> 이것을 이미 경험한 이사야의 입장에서 이 재앙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아니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왜 일어났는가? 

-> 역사적 주체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 지점에서 구약의 역사를 아주 간단히 요약해보자. 

  • 출애굽기 - 애굽을 빠져나오면 행복한가? 
  • 여호수아 - 광야를 벗어나면 행복한가? 
  • 사사기 - 가나안에 들어가면 행복한가?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더라. - 먹고 살만하면 드는 교만함. 애굽때 보다도, 광야 때 보다도 가장 패역한 모습을 보인다. 
  • 열왕기, 역대기 - 왕이 있으면 좀 나아지려나, 누군가 질서를 잡아주고...

-> 하나님을 제외한 삶의 모든 추구, 행복의 추구는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하고 점점 더 추락하기만 하다. 

 

왕정 

왕-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는 메개자. 권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는 청지기 

그런데 이 일은 매번 실패한다. 

다윗이라는 한 명의 왕만을 남기고....

 

솔로몬 - 성전 건축, 그에게는 업적이지만 백성들은 이것으로 인해 매우 고단해한다. 

그는 성전을 건축했지만 성전을 짓고 나서 1000여개의 산당을 지음으로 이스라엘을 둘로 쪼개어 놓는다. 

 

어떤 신학자는 현대의 물질문명 하에서의 교회

화려한 성전을 짓고, 그보다 훨씬 많은 자신들의 신전, 우상들을 만드는 교회

화려한 성전을 짓기 위해 성도들은 늘 피곤하지만 그 성전을 바라보며 어느덧 화려한 성전에 취하여 드는...하나님의 임재가 아니라 화려한 건물에 취하여 가는 성도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 그 성전을 다시 지어줄 메시야... 그들이 정말 기다리던 메시야는 다윗 같은 하나님가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왕이 아니라 솔로몬 처럼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 눈에 보이는 부흥을 일으켜 세워 줄 자. 

비록 1000개의 산당을 지어도, 그 성전만 지어준다면.... 얼마든지 그 산당은 눈 감아 줄 수 있는... 

 

솔로몬의 죽음 이후, 왕국은 10개의 지파와 베냐민 반 지파 - 대다수가 이쪽으로 가서 나라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유지 

솔로몬 아들 르호보암은 베냐민 반 지파와 유다지파 - 그 유다 지파가 곧 국호. 

그런데 성경은 대다수의 선택을 받은 북왕국을 하나님을 배역한 나라로 여기고 역대기에서는 유다의 왕들의 이야기는 다루어도 북왕국의 왕조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그리고 19명의 왕이 나오는 동안 정말로 한 명도 하나님앞에 바로 서고자 한 왕이 나오지 않는다. 

 

유다지파 - 다윗의 신앙을 이러가려 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향력 또한 크다. 하나님을 바라면서도 또한 북왕국처럼 세상을 본다. 그들의 왕도 둘로 갈라진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와 외면하는 자. 

 

이사야에 등장하는 네 왕 - 유다의 왕들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웃시야 - 16세 때 왕위에 올라 오십년간 통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함, 

[대하 26: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런데 사사기 시대처럼 먹고 살만 해지자 그가 교만해진다. 

[대하 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 분향 - 제사장 만... 그가 더 이상 스가랴 같은 선지자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을 상대하려 하다가 문등병에 걸려 왕궁에서 별궁으로 쫓겨나서 자기 아들 요담을 왕위에 앉히고 대리 청정하는 왕으로 전락.  요담은 명칭은 왕이었지만 웃시야의 지배를 받는 이름 뿐인 왕으로 살아간다. 

-> 왕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세상의 왕됨을 추구하는 모든 인간상을 보여준다. 

 

  • 아하스- 앗수르가 당시의 실권을 잡는데 앗수르 제국은 역사상 가장 혹독하게 식민지를 지배했던 무자비한 세력 

당시의 앗수르에 대항할 수 있는 강국 - 아람 (나아만이 군대장관으로 있던 나라) - 북왕국 이스라엘- 엘리사가 활동하던 때 

 

아람과 북왕국이 주도하여 앗수르에 맞서려고 동맹을 결성하여 유다의 동참을 요구하는데 아하스가 거절- 아하스를 죽이고 자기들이 원하는 왕을 세우려고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

 

[사 7: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그 위기를 극복하게 해 줄 것을 약속 (7장에 자세히 기록) 

그런데 아하스가 이사야의 말을 듣기 보다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냐면 앗수르에게 지원군 파견을 요청하여 앗수르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그런데 그 댓가로 엄청난 조공을 앗수르에게 바치게 되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기 아들을 몰록이라는 신에 제물로 인신제사를 드리며 앗수르의 모든 종교를 유다로 들어오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신 반대편인 다시스로 가는 요나 - 엄청난 뱃삯을 지불, 태풍으로 인해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세상에서 요구하는 삯은 너무나 크다. 

 

왜 이사야의 말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했을까? 

현실은 어렵고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에... 

앗수르의 힘은 눈에 보이고 강력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감추어져 버린다.

당시의 왕-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으로 인해 제사장이나 선지자로부터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어야 했다. 

그러나 매일 같이 말씀을 보아도 막상 위기가 닥치자 앗수르를 찾는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 히스기야: 왕에 오른지 6년만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아하스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과감한 종교개혁을 시행. 그러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바치던 조공을 내지 않고 멀어지자 유다를 침공하여 다 내어주고 예루살렘 한 도시만 남음. 하나님이 기가 막힌 방법으로 앗수르의 대군이 스스로 자멸하게 하고 히스기야를 구하여 위기를 지났는데, 갑자기 죽을 병에 걸려 그 유명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 살아나게 됨. 그러나 죽을 뻔하였다가 살다가 그의 인생의 치명적인 실수 - 바벨론의 사신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와서 (율법을 어김) 성전 안의 모든 기물들과 그 위치를 보여 줌. 웃시야 왕의 반복. 

 

남왕국 유다의 역사에서 이사야가 경험했던 시기 

유다왕조 20대 왕의 역사 중에서 10-13대까지의 중간을 넘어 후반부의 역사 - 네 명의 왕들 중에서 아하스를 제외한 3명이 하나님께 바로 서고자 했지만 불완전한, 형통할 때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실수했던 때 - 멸망을 향하여 추락해가는 과정 .

 

물론 그들의 죄로 인해 당하는 고난이지만 하나님의 메시지는 단순히 회개하라는 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아무리 뛰어나고 신앙좋은 왕이라도 형통에서 시작되는 교만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한계를 조명한다.

아무리 악했던 아하스 때에도, 서고자 노력했으나 넘어질 수 밖에 없었던 웃시야나 히스기야를 넘어 39장까지 이사야는 끊임없는 우리의 한계와 고난의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 모든 한계를 넘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와 희망을 준다. 

하나님의 사랑과 경륜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감싸 안고 넘어서며,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위로와 용서와 소망을 불어넣어 주신다. 

 

탕자의 비유 

나가겠다는데 나가게 하시고 재산을 달라는데 주신다. 다 경험하고 깨달으라는 것인가?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 크기와 그 깊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신다. 

우리는 아버지 날 사랑한다면 내가 나가겠다고 했을 때에 말렸어야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전능하신 하님조차 건드시질 않는다. 

 

설교자로서 내가 단상에 설 때에... 나는 없고 주님만 드러나게.....NO, 철저히 네 안에서 역사하시는 삶을 보이라. 네 입술로, 네가 경험한 나를 네 목소리로 증거하라. 

잘못한 것 벌주시는 데서 끝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통한 결과를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것이 이사야를 통해 보여주시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죄악과 연약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이다. 

 

  • 그리고 이사야가 임한 상황....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상황. 

그리고 그 원인: 

[사 1:2-3]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 난 내가 필요할 때는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별 애원의 소리를 다 하지만 내가 죄를 지고, 외면할 때는 너무도 쉽고 차갑게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지 않는가? 

 

  • 그리고 그들이 임한 현실

[사 1:5-6] ...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 하나님을 떠난 자의 현실 - 머리가 병든다.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한다. 온통 비뚤어지고 왜곡되고 피해망상적인 생각만 할 뿐이다. 

마음은 피곤하고 -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깊이 생각하면 깨닫는데 좀 생각하다 포기하고 벗어날 줄 모른다.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 떠난 자의 모습은 이토록 처참하다. 

 

그럼 이젠 멸망으로 가는가? 희망이 없는가? 추락하는 유다 백성에게는 심판만이 남아 있는가? 

 

  • 마지막 희망 

[사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생존자, 남은 자-> 우리를 위하여...

소돔과 고모라 -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불에 탄 나라. 음행과 범죄가 가득찬 나라- 에덴 동산 같지만 결코 같지 않은 날. 

하나님은 모든 약한 자의 실패를 넘어 구원을 이루시지만 동시에 누구를 통하여 그 구원을 이루시는가? 

생존자. 남은자. 모든 타락한 세대 가운데서 꿋꿋이 노아처럼, 엘리야처럼, 세례 요한처럼, 악한 세대 가운데서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바라보는 자. 

그들을 통해 이 땅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타게 하지 않으신다.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예배하는 성도여러분! 

생존해 계십니까? 아직 살아계십니까? 

아직 여러분의 영혼이 깨어 하나님을 갈망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끝없이 절망하다가 넘어져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으십니까? 

머리는 병들어 진리에 어둡고 마음은 피곤하여 기도조차 나오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그러한 자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사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사 1: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아무리 내가 넘어졌어도 들으면 삽니다. 아무리 상처가 났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곪은 마음을 짜고 터진 상처를 싸매며 성령의 기름을 부어 부르럽게 하면 우리는 삽니다. 살아납시다. 이 시대의 생존자가 되어 이 땅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타오르지 않게 합시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얻은 교훈 

심판 중에서도 그 이마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이름을 가진 자는 결코 심판에서 자유롭게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심령에 어린양이 없고, 십자가의 길이 아닌 자기 욕망과 솔로몬의 영광만을 구하면서도 믿는다고 여기는 자, 입으로 주여 주여 외치면서 말씀과는 상관없이 사는 자. 이들을 어찌할꼬... 

 

계시록을 마치고 다음 강해를 준비하면서 기도할 때에 주신 말씀  - 이사야

 

아직 그 깊은 뜻을 모른다. 

그런데 계시록을 전하면서 가진 아쉬움, 녹화하고, 실시간으로 언제, 몇명이 이 말씀을 나누는지 체크하면서 

매일 꾸준히, 그 말씀을 듣는 자가 별로 없다. 

물론 매일 같이 보내주는 설교를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줄 안다. 

그런데 그 결과 우리의 심령이 어떠한가? 오늘 본문처럼, 어느덧 하나님에게서 시선이 멀어져 발바닥에서버터 머리끝까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마음은 병들고 피곤해져 있지 않은가? 

 

Zoom으로 모이고 교제하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같이 보고 듣고 그 분과 교제하는 것이다. 이사야 강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성도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다. 하루 30분 보내주는 말씀을 통해 이 시대를 이기는 생존자가 되자. 소돔과 고모라를 구할 수 있는 시대를 이기는 생존자가 되자.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진리 안에 서 있는가? (요한복음 8장 31-32절) 

 

도입 - 포스트 - 트루스 (Post-Truth)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특징을 한 용어로 특징짓는 용어는 포스트트루스 (post-truth)라는 용어이다. 

이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지금의 시대는 객관적 사실 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더 진리로 받아들여진다는 말로서 이 말이 근근히 쓰여지다가 본격적인 사회현상으로 대두된 것은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부터 였다. 

 

당시 미국의 대선에서 폴리 팩트라는 대선주자들의 유세나 TV연설에서의 발언이나 공약을 팩트 점검하는 싸이트에서 트럼프의 말 중 70%가 거짓이라고 싣고 이를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보도하자 이에 대한 역공으로 신문이나 방송 모두가 거짓이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유세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여론의 형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2016년 가장 공신력이 있다는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서 뽑은 올해의 단어로 "포스트 트루스"가 뽑히게 되고 2018년 하버드대학의 철학교수였던 리 메킨타이어가 "포스트 트루스"란 책을 내며 현대 사회의 사회현상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의 여파로 사람들은 그동안 여론 형성의 중심이었던 신문이나 뉴스를 불신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sns나 팟케스트, 그리고 현재에는 유튜브와 같은 대안 매체들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팟케스트나 유튜브마저 가짜 뉴스들의 진원지가 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공적인 매체나 대안 매체 모두 신뢰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제는 객관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의 현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함께 이루어져 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진리의 수호처인 교회는 이러한 현상에서 자유로운가? 

교회의 목사로서, 또한 성경을 연구하고 나누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포스트-트루스"의 현상은 교회나 성도들에게도 이미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포스트-트루스"라는 말은 "탈- 진실", 즉 객관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고 또 다르게 해석하면 "진리 이후의 시대"를 말하기도 한다. 

"포스트-트루스"시대의 사람들은 객관적 진리 자체를 거부한다. 어차피 그것은 이상적인 것이고 주관적인 것이니,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각자가 진리라고 믿는 것을 듣고, 바라보며, 사는 삶이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리 자체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진리에 대한 회의, 진리에 대한 의심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에겐 성경도, 신앙도, 교회도, 각자의 신념을 위해 선택하게 되는 도구일 뿐이다. 

각자가 자기의 뜻을 합리화하고, 주장하고, 설득하기 위해서 성경을 해석하지만 그 해석은 각자에 따라 달라진다. 

진리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진리를 주장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보수기독교와 진보적 기독교가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싸우지만 똑같이 성경에서 근거를 제시하고 주장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느 곳이 진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선호하는 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진리라고 받아들이고 그 반대편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기독교인을 미혹하는 사탄의 마지막 방법이 바로 이러한 포스트-트루스 전략이 아닐까 싶다. 

말씀이 진리라고 믿기 보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이 곧 진리가 되게 함으로 결국 자기 뜻이 가장 중요하게 되게 하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 인들의 불안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교회마다, 목사마다 말하는 진리가 다르기에, 자기에게 맞는 사람 말만 듣게 되지만 그것이 참 진리일까라는 근본적인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에게 있어서 진리는 어떤 것인가? 

 

 

 2. 믿음의 출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라는 예수님의 자기 고백, 혹은 자기 선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곧 예수가 곧 진리요, 하나님을 믿고 만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요,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곧 진리입니다. 유일한 길이요 진리인 예수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예수와 동행하고 그 분 안에 거할 수 있습니까? 

 

지금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만 해도 크게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큰 세개의 종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종파 안에는 또한 수많은 교단과 연합회와 크고 작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그들은 연합하지 못하고, 서로를 적대시하기도 합니다. 

 

마치 누구는 코끼리 머리를 보고, 누구는 다리를 보고, 누구는 꼬리를 보면서 그것이 코끼리의 전부를 보는 양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같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면서도 각기 주장하는 것이 다르고 믿고 강조하는 것이 다릅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를 믿는 우리가 어떻게 진리 안에 거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요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말씀 바로 전에 어떤 말씀이 있는가 하면 

[요 8:30]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하면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될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를 믿어도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 예수를 믿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 - 내 말에 거하면 

단지 그 말씀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거하는 삶

말씀 속을 살피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 그 말씀을 살아가는 것. 늘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삶. 

 

2) 그러한 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결과 - 제자가 된다. 

 

제자가 된다. - 예수를 따르는 삶, 예수와 함께 거하는 삶 

누가 제자인가?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을 사는 삶, 그가 곧 제자이다. 

예수가 제자를 삼으신 목적 - "자기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 (막 3:3절) - 예수와 함께 거하는 자가 바로 제자이다. 

 

예수와 함께 하는 자가 제자이듯, 지금의 시대에는 "말씀 안에 거하고 살아가는 자가 바로 제자"이다. 

 

3) 제자에게 주신 것 - 진리를 안다. 진리는 곧 그리스도. 예수가 곧 진리

예수를 알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선 나를 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세상의 모습을 안다. 세상 돌아가는 것들을 하나님 안에서 안다. 

알지 못하고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우상숭배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수를 우상숭배하듯이 믿는다.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으려 한다. 

 

[요 8: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요 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제자, 진리를 알고 자유케 되는 삶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 너희는 나를 죽인다. 말씀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죽인다. 

 

믿는 자가 되어도, 그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하면 결국 그리스도를 죽이는 자다. 

실천적 무신론자 -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믿지 않는 자. 그리스도를 죽이는 자. 믿는 다고 하지만 말씀도 모르고, 그렇기에 말씀에 순종함도 모르는 자. 

그리스도를 죽이는 자는 이방인이 아니라 잘못 믿는 자요, 그 말씀에 거하지 못하는 자이다.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예수를 알지 못했던 제사장들이, 바리새인들이,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였다. 

왕으로 알았다가 십자가 지시는 것을 보고 뒤돌아선 유대인들이 죽였다. 

 

4. 그렇게 진리를 아는 자, 그리스도를 아는 자- 경험하는 자. 함께 하는 자에게 주신 것 

바로 자유함이다. 세상이나 환경이나 감정에 요동하지 않고 내적 자유가 충만해진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자유케 하는 삶이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 세상에서 종노릇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에게서 나오게 할 때에 하나님이 하신 것은 그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유케 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바로 광야에서 주신 말씀과 성막이다. 

 

무엇이 우리를 자유케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서 자유한 자가 된다. 

기독교의 가장 큰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역설이다. 

 

세상에 중독된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이다. 

세상의 자유는 우리를 방종으로 빠뜨리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우리를 더욱 깊은 삶으로, 더욱 충만한 삶으로 인도한다. 

 

5. 더 깊은 자유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자유한 자가 누리는 더 큰 자유 - 남을 얻기 위해, 남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된 자유. -> 복된 자유

 

예수- 가장 큰 자유를 누리기 위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삶을 사신 것 

가장 아픈 삶이지만 가장 자유한 삶이기에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사 홀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세상 어떤 것에서도 눌리지 않는 자유를 주신다. 

그리고 그 자유를 통해 더 깊은 사랑으로, 생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결론 

 

사탄은 우리를 진리에서부터 멀어지게 한다. 진리와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이 곧 진리라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한다. 

그 진리는 예수를 믿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분 안에 우리를 거하게 한다. 

그 분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그 말씀 안에서 우리를 보고 세상을 보고, 다시 그 분을 만나게 하신다. 

 

진리를 아는가? 진리 안에 사는가? 진리를 충만히 누리는가? 오직 예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함을 갈망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벧전 5:7-11: 찢어지지 않는 그물  

 

[벧전 5:7-11]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베드로전서 : 불같은 시험을 당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권면하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편지 

  • AD 64년 경 - 로마의 화제를 잠재우기 위해 그 희생양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와 핍박 
  • 고난 중에 있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던져버려라. 떠 넘기라. 

 

염려- 하나님께 맡기는 대신 스스로 짊어지는 것-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태도를 교만이라 보았다. 

6절)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겸손은 맡기는 것이고 염려는 내가 맡는 것이다. 

 

왜?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 He cares for you 

1. 그가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

2. 그가 너희를 염려하기 때문.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런데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 근신하라. 깨어라. (Be alert and of sober mind) 

조심해! 그리고 술에서 깨! 염려나 근심에 취해 있지 마!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할 이유 

  • 마귀가 우리를 삼키기 때문 

감정 - 우리를 사로잡게 한다. 

사탄의 방법 - 우리의 감정을 이용한다. 시기, 질투 (사울), 가인 (살기), 우울 (엘리야, 모세..) 

우리는 감정이 내 것인줄 알지만 사탄은 영이 아닌 우리의 육신을 통해 (질병으로), 또 감정을 통해 우리를 삼키게 한다.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 거린다. 

감정에 중독된다. 

 

어떻게 감정을, 마귀의 공격을 이기는가? 

  • 믿음을 굳건하게 하라. 

어떤 믿음 - 주님이 나와 함께 있다. 난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 날 위해 근심하신다. 그 분이 내 짐을 맡아 주신다. 

  • 마귀를 대적하라. 

마귀는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짐으로 마귀의 참소로부터 자유하게 하셨고, 그가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모든 권세는 무너졌다. 

그가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단지 속이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당하실 때에 하신 방법 

사탄아 물러가라. 

 

언제? 염려가 날 휘어잡으려고 할 때 

마귀가 날 삼키려고 할 때

나쁜 감정에 휘둘릴 때에...->  사탄아 물러가라. 

 

[벧전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 온전하게 하다- 이미 끊어져서 쓸모없게 된 것을 다시 재생시키다. 처음 것 처럼 만들다.   
  • 굳건하게 하다-이미 깨어지고 갈라져서 소용없게 된 것을 틈을 매워 새것처럼 만들다. 
  • 강하게 하다 -  힘이 다 빠져버린 생명을 다시 재생시켜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하다. 

[겔 37:7-9]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 기초를 다시 세워 건물이 건축되게 하다. 

 

-> 다시 일어나게 하는 능력, 부활의 능력, 십자가의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여 새롭게 하는 능력 

 

베드로 - 예수의 부활을 통해 그의 인생에도 부활을 경험하는 인물 

 

예수님과의 첫 만남과 끝 만남 (똑같아 보이는 사건이 중첩되며 그의 삶을 감싼다) 

 

1. 첫만남 

[눅 5:4-6]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2. 마지막 만남

[요 21:5-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상황 : 예수님의 부재, 만나기 전과 떠난 후에...물고기가 없는 상태, 부족한 상태, 지친 상태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주님의 말씀이 임함-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완전히 무너져 있는 상태에 그 분의 말씀이 임했다는 사실

- 순종: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자기 경험과 자기 지식을 내려놓고 순종). 이에 던졌더니...

-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눅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요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 잡은 물고기가 많아 그물이 다 찢어졌다. 그물은 무엇인가? 자기의 그릇, 자기의 역량, 자기의 기대와 소망 

고기 잡는 전문가. 자신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작은 은혜 하나에도 우리 그릇이 다 깨어진다. 부서진다. 

그리고 나서 하는 고백 - 나는 죄인이로서이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 - 신앙 생활의 시작이다. 

이제 고기 낚지 말고 사람낚는 어부가 되어라. 

그 만남을 통해 자기의 그물이 다 찢어서 쓸모없는 그물이 되었다

아니 깨어져서야 비로서 주님의 일, 사람 낚는 일이 시작된다. 

주님의 일은 그물이 찢어지는 데서 시작한다. 깨어지고 부서지지 않고 사용되지 않는다.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를 높이리라. -> 겸손하지 않으면, 네가 무너지지 않으면 너를 쓰지 않는다. 

 

  •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다시 주님을 만났을 때 - 정말 찢어진 그물같은 인생 아닌가? 십자가 상에서 세번씩 주님을 부인하던 제자. 

언제나 행동이 앞서던 제자. 

다시 찾아와서 그 찢어진 그물을 이젠 영원히 찢어지지 않는 그물이 되게 하시는 주님

 

온전하게 하다. (카타르티조) - 회복시키다. 수리하다. 그물을 수선하다

 찢어진 그물 같은 베드로를, 그리고 우리를, 나를....

 찾아오셔서 

 찢어진 곳을 기워주시고, 무너진 곳을 다시 세워주시고, 다시금 주님의 교회가 건설될 수 있는 견고한 터를 세워주시는 주님

 

 염려로 인해 무너져 있지 않은가? 

 감정에 취해 지금 마귀에게 삼킨 자가 되어 있지 않은가? 

 염려도 교만이라는 것을 아는가? 주님은 맡기라 하는데 우리는 염려하며 내가 하겠다 한다. 

 주님은 내게로 와서 쉬라 하는데 우리는 열심히 일할테니 잠자코 계시라 한다. 그리고 열매맺지 못한다. 

 쉬지도 못하고 열매맺지 못하고 찢어진 그물 마냥 아무런 고기를 낚을 수 조차 없다. 

 

 지칠 땐 무엇 하려 하지 말고 주님의 품에 안기어라. 

 걱정될 땐 잠잠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고 그 분의 품을 느껴보라. 

 그 분의 말씀이 임하면 그 때 순종하라. 그 때 움직여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 - 잠깐 당하는 고난 

 1. 시간적인 표현 - 어떤 고난도 지나간다. 

 2. 임시적, 일시적-> 돌아갈 처소가 있다. 우리가 머물 장소가 아니다. 우리가 머물러야 될 곳 - 주님이 주인 되신 하나님 나라. 

 

 지난 3월부터 공예배를 금하고 온라인 예배로..

 참석하는 인원 - 어쩔 땐 3명, 많으면 5명 

 

그런데 시청에서 우리 교회에서 모임을 가져서 시끄럽다고 검사관이 2번씩 왔다가더니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건물 용도변경 하가증을 받으라. -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 전문 건설업자가 책을 만들듯이 작성해야 하는 긴 작업.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걸리는 일. 

 

건설업자가 교회 건물을 처음 등록할 적에 해야하는 절차. 

 

그런데 2004년부터 이 자리서 예배 드리고 있는 데 하필이면 지금 그것을 트집잡아 

2013년부터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 주 정부, 프리몬트 시에 정식으로 교회로 등록받아 어떤 것은 2년에 한 번, 프리몬트 시에는 1년에 한 번 교회 등록을 Renewal하는데 이제 와서 교회 건물을 가지고 트집. 

 

맡기고 말씀하실 때에 움직이자. 

그 일을 해결하시든지 새 예배 처소를 주시던지.... 

함께 근신하고 깨어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터를 견고하게 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신다. 

찢어진 그물을 깁듯이 이젠 영원히 찢어지지 않는 그물이 되게 하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