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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주일예배 설교'에 해당되는 글 272건

  1. 2012.09.10 주일예배 설교(9월 9일) 삶이라는 이름의 전쟁터 (4)
  2. 2012.09.03 2012년 9월 2일 낙심과 싸워 이기라. (2)
  3. 2012.08.28 배에 오르신 예수 (8월 19일)
  4. 2012.08.28 죄인을 위하여 죽는 자(8월 26일) (2)

주일예배 설교

 

제목: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본문: 왕하 21:1-23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나 사건들은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델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으로 주셔서 다시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고 올바른 역사의 예를 따르라고 주신 역사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우리들은 성경의 역사를 우리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성령님께 묻고 분별하여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말씀이고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고 그 분의 인도하심이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제 3대 왕 아사의 아들이다. 아사는 그의 부친 아비얌이나 대개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위를 하였던 다른 이스라엘 왕들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삶을 살았다. Ehgks 그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고 나서 처음으로 종교 개혁을 행한 인물이었다.

[왕상 15:13-14]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는 태후의 위를 폐위시키는 등 강력한 개혁 의지를 실천했다. 그는 41년 동안 왕위에 앉아 유다를 통치하였는데 그의 선한 삶은 여호사밧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오랫동안 왕위에 있던 부친 아사 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여호사밧이 남왕국 유다의 제 4대 왕으로 등극했다. 왕위에 오를 때 그의 나이는 35세였으며 그때 북 왕국 이스라엘에는 아합이 왕이 된 지 4년째 되었던 때이다. 아합은 우리가 잘 아는 엘리야 선지자 때의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여겨지는 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비대해진 북왕국 이스라엘을 견제하는 일이었다. 그는 국경에 위치한 성읍들을 더욱 강화시키고 그의 부친 아사 왕이 정복한 에브라임 지역에 강력한 수비대를 투입하고 견고한 국고성을 건축하였다

여호사밧은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바알들은 복수로서 유일하신 하나님과 대조되는 모든 이방 우상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을 철저히 지켰으며, 계명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 사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우상 숭배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무서운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은 하나님을 섬기느냐 우상을 숭배하느냐의 문제에서 결정되었다. 여호사밧은 우상 숭배를 금지하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겼고 백성들도 그렇게 하도록 지도하였다.

l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섬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로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제사를 게을리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늘 그들이 우상을 숭배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그들은 그들의 필요에 맞는 우상을 섬겼던 것이다. 인간 편에서 보면 우상을 섬긴다는 말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드렸고, 기도를 하였고, 말씀을 가까이 했다. 그러나 문제는 우상도 겸하여 섬긴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리 예배를 하여도 두 마음을 가진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여호사밧이 백성들의 신앙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죄악의 요소들을 제거 해야 했다. 그리하여 여호사밧은 유다 나라 안에 있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거하였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금하시되 그것들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이를 위반하거나 무시하는 자에 대해서는 벌을 내려 그 죄를 갚겠다고 하셨다. 여호사밧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상들을 유다 땅에서 제거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행하는 가증한 행위, 남색을 일삼는 성적으로 문란한 자들도 몰아내었다.  

여호사밧은 백성들의 신앙을 쇄신하기 위해 소극적으로는 우상을 제거하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에 방백들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는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는 모든 개혁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알고 레위 사람, 제사장, 방백들을 세워 각 성읍을 순회하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는 백성에 대한 율법 교육이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전체적인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여호사밧은 한 성읍도 빠짐없이 모든 성읍에 거하는 사람들을 율법으로 교육시키게 함으로써 모든 백성을 회개시키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하였다.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았고 그 길로 나아갔다.

l  한 목사님과의 대화: 한국의 중대형교회에서 오랜 기간 목회하시던 분-> 답답해 하시며 신학생들이나 신학자들은 올바른 목회만을 생각하고 배우는데, 교회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어떻게 목회를 성공시키냐이다. 바른 목회와 성공하는 목회는 다르다. 신학교에서도 더 실질적으로 목회를 성공하는 법, 큰 교회를 이룰 수 있는 법을 가르치고 토론해야 한다. ->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è  맞다, 바른 목회와 큰 목회, 속된 말로 해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목회를 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만약 당신이 교회를 새로 개척하거나 새로 부임한 목사라 한다면, 당신은 바른 목회에 초점을 맞추겠는가? 큰 목회, 성공하는 목회에 초점을 맞추겠는가? 물론 바른 목회가 성공하는 목회로 이어지고, 큰 목회를 하면서 바른 목회를 하면 가장 좋은 것이겠지만,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이 교회를 연구하면서 느끼는 것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둘이 같이 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요구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è  내려놓음,” “같이 걷기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님이 저희 신학교에 오셔서 한국인 학생들을 모아놓고 간증-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앞날이 보장된 삶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은 무엇인가 기도하다가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가족과 같이 몽골 선교사로 떠난다. 그런 그의 삶의 이야기를 하며 간증하며 자기를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내려 놓으라고 간증하며 말씀을 끝내었는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마침 기도하면서 우리도 내려 놓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선교사님처럼 하버드 대학도 가고, 서울대도 가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됩시다.” 하면서 기도해서 가슴이 탁 막히고 막막해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선 교회가 안정되고 큰 교회가 되어야 큰 일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처음 시작부터 바로 하지 않으면 나중 되어서는 더욱 고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 이야기를 하면서 생활이 좀 안정되고 여유가 있으면 헌금 내고 십일조 내야지 하고 이야기 하지만 1000원 있을 때 10월 십일조 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큰 돈이 들어와도 정직히 내어 놓지 못한다. 그런 신앙 생활 속에 온전한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 현재의 많은 목회자들- 누구도 돈 이야기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헌금생활 재대로 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렇다가 언제 이야기 하느냐? 성도가 제대로 헌금 생활 안 하는 것은 결국 목회자의 책임이고 그렇게 목회자가 성도가 바르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니까 실재로 교회 재정이 어려워진다. 교회 재정이 어려워지면 그 때서야 어렵게 헌금 이야기를 한다. 그렇니까 성도들이 생각이 아~ 우리가 헌금 안 하면 교회가 어려워지는구나. 우리가 헌금해서 교회와 목사가 먹고 사는구나 하면서 자기 헌금이 교회 운영이나, 목회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내는 것으로 느끼며 생각하기 시작한다. 목회자가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고백을 드리고, 우리 삶의 모든 공급처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헌금을 단순히 교회와 목사를 먹여 살리는 품삯처럼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신앙생활의 매사가 마찬가지다.

한국- 선진국인가? 개발 도상국인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나라.

OECD- 살만한 나라들이 가입한 곳.

다른 지수는 평이한데 한국이 1등하는 것-> 자살률, 이혼률, 교통사고, 부정부패지수,

가장 최근에 조사한 웃어른에 대한 존경지수-> 끝에서 두 번 째…

è  왜 이렇게 되었나? 누구의 책임인가? 교회의 책임 아닌가?

많은 성도와 목회자들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본다. 개혁해야 한다. 세계 최대 규모 50개 교회 중에 절반이 한국에 있다. 지금 유럽의 길로 가고 있다. 그 화려한 성전들이 이슬람교의 교회로 다 바뀌어 가고 있다.

그래서 젊은 목회자로서, 신학자로서 저의 책임은 기존 교회의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해서 잘된 것은 받아들여 더욱 힘쓰고 잘못된 것은 과감히 버리고 고쳐야 되는 것이다. 이 작업이 힘들면서 조심스럽고 어렵다. 그 기준은 항상 말씀일 수밖에 없다.

말씀, 전통, 문화-> 신앙의 통로...좋은 전통은 받아들이지만 (술문화, 담배문화, 이단에 대한 경각심(문선명), 성적인 보수성) -> 그것보다 우선인 것은 항상 말씀이다. 전통이 말씀보다 앞서서 타락한 것이 가톨릭이고 그래서 개신교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개혁자이다. 항상 말씀에 빗대어서 자신을 개혁하고 자신을 개혁함으로서 내 식구, 내 친구, 내가 속한 공동체를 개혁해 나가는 것이다. 개신교가 영어로 무엇인가? Protestant-> protest 저항하다. 개혁하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자신을 개혁하지 않는 성도는 죽은 성도이다. 개혁은 신앙적인 용어로 하면 회심이고, 변화이고, 성결의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삶은 전쟁터이다. 끊임없이 죄와 편견으로 물들어 있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고, 잘못된 전통과 싸워야 하고, 그리고 그런 가치관과 전통에 젖어 있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말씀에 서 있지 못하면 결코 이 싸움에서 버티지 못한다.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역사 상 가장 장엄했던 전쟁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어떤 사람이 와서 지금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 자손들, 3개국 연합군이 쳐들어 온다고 알려 준다. 모압과 암몬이 어떤 민족인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 할 때에 아내가 뒤를 돌아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된다. 그래서 빠져 나온 두 딸이 동굴에서 거하다가 베필이 없으므로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나온 자식들이 모압과 암몬이다. 마온도 암몬 족속의 일파다. 다시 말하면 무엇이냐? 다같이 아브라함의 일가, 신앙의 뿌리가 있었던 일가이지만 근친에 의해, 죄악에 의해 태어난 자손이 바로 모압과 암몬, 그들이 지금 연합하여 여호사밧에게 쳐들어 오는 것이다.

다윗 시대부터 유다에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던 모압과 암몬이었지만 여호사밧 통치 말기에 속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다에 침공해 들어왔다. 여호사밧은 유능한 통치자였다. 그리고 그는 종교 개혁을 단행한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중대한 실책이 있었다. 그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가까워진 것입니다. 정략 결혼도 하였고 아합의 요구에 따라 아람과의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 일 후에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침략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모압과 암몬 자손이 아람에서부터 왕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움에 싸였다. 그는 이 전쟁이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훌륭한 신앙을 가진 자로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며 그는 전쟁의 소문을 듣자 마자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였다. 여호사밧은 이 위기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으로 알고 그분께 구원을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였다.

여호사밧의 전쟁은 우리가 인생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 줍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나의 영적 전투에서 적이 누구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가 알 것 같지만 시제 인생에서 내 영적 전투의 적이 누구인지 분별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적을 나를 반대하는 사람, 나를 못살게 하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에 있어서 우리 신앙생활의 적은 우리 자신일 경우가 많다. 우리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반응이다.

지금 여호사밧을 쳐들어 온 적은 표면적으로는 모압과 암몬이다. 이들은 잘못된 신앙인, 세상적인 신앙인, 음란한 신앙인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들이 쳐들어 왔을 때에 아합왕과 화친하여 그 딸을 며느리로 삼은 자신의 죄악을 보았다. 그래서 3절에 나온 여호사밧의 두려움은 자기의 죄악에서 나온 것이다. 신앙 안에 온전히 있으면 두렵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두렵지 않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우리 자신이다. 여호사밧은 전쟁이 나자 자신의 죄를 알았다. 자신의 죄악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모압과 암몬을 향해서만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두려웠지만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낯을 향하고 간구하고 온 백성과 함께 금식을 선포한다. 오직 자신을 구원할 분은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그 분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모압과 암몬이 쳐들어왔는데, 여호사밧은 그들을 직접적으로 상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한다.

6절부터 13절까지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모압과 암몬을 다스리는 것도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8-9: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실 적에 성소에 나와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 번째의 영적 원리: 자신의 처지와 부족함을 솔직히 주님께 아뢰라.

(대하 20:12)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è  우리는 입술로는 주님 도와주세요 하면서 여전히 우리 스스로 살 방도를 찾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날 안 도와 주신다고 하며 원망한다. 위기의 상황에 정말 하나님만 의지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 외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방법에 의존하는 것. 그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è  불행히도 대개의 경우 우리는 마지막 수단으로 기도를 하고 기다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l  하나님의 응답

[대하 20:15-대하 20:17]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하나님이 하셔도 우리가 할 일은 그들에게 내려가고 맞서고 만나는 것이다. 이것에도 용기와 담대함과 믿음이 필요하다)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신앙에서 흐트러지지 말고 삶에 성실히 임하며)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삶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l  여호사밧의 응답

(21절)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미리 찬양대를 뽑아서 감사드린다. 부대 선두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노래할 백성들을 선택했다. 승리하기 전에 믿음으로 찬양하는 법을 가리켜 주신다.

상상해보라. 산 정상에서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다른 산 정상을 본다. 다른 쪽에서는 세 나라 군대가 모여서 이스라엘을 쳐부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장면에서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찬양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모두 나와서 선두에 서라.” 이스라엘 군대는 성가대를 선두에 세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적진을 향하여 진군해 나간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을 할 때 취했던 전쟁방식.

(20)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목사로서 제일 두려운 것- 신앙과 삶은 다르구나. 현실과 신앙은 다르구나.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눈감아주고, 그냥 이 땅에서 가족들과 같이 평화롭게 사는 것…. 그런 목사가 될까 두렵다.

지금도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기도한다. 나 자신을 이기는 것도 힘들지만 성도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서 날 지키실 것이다. 세상의 전통과 가치관을 분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말씀을 통해서 내가 배워야 할 전통이 무엇인지, 내가 따르지 말아야 할 전통이 무엇인지 분별할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 내 성도들이 날 믿어주지 못하고, 오해하고, 떠날 때…. 목사는 성도에게 외면 당할 때, 사명의 의미를 상실한다. 여호사밧이 그 말을 하는 것 같다.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여러분과 함께 라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제 말을 믿어주는 성도님들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 하나 되어 정말 교회다운 교회, 예배다운 예배를 만들어가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는 그런 로고스 교회를 세우자.

 

Posted by 소리벼리

주일예배 설교

제목: 낙심과 싸워 이겨라.

본문: 느혜미아 4 1-14

 

이 세상에 있는 질병, 아니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인간에게 가장 위협을 주는 질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에이즈? 문등병? 여러분은 인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인간에게 해를 끼쳤던 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계 제 2차 대전때 악명높던 아우슈비츠 수용서에서 독일군이 연합군에 항복하기 바로 전해인 1944년 겨울 갑작스레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이전까지 그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용소에서는 하루 한 잔의 물이 배급되었는데 그들은 반은 물을 마시고 반 컵의 물로 세수를 하고 유리조각을 가지고 면도까지 하며 살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거의 끝나버릴 1944년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갑작스레 많은 유대인들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질병이나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944년 수용소 안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독일군들이 수감자들을 석방시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은 그 소문을 믿으며 고된 수용소에서의 삶을 참으며 한 잔의 물을 마시면서도 그 물로 세수도 하고 면도도 하며 자신을 지켜 왔던 것이지요. 이제 조금만 참으면 가족들도 만나고 자유를 얻게 되는구나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사람들은 막상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석방의 소식이 없자 급기야 절망하고 낙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고문에서도 버티고 이겨냈던 사람들이 낙심하게 되니까 삶의 의지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그 다음해 4월까지 아우슈츠 수용서에는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죽어나가게 됩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해 5 8일 히틀러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수용서의 모든 유대인들이 석방되게 된 것입니다.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라는 사람은 그의 유명한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죽음이 최대의 위험일 때는 사람은 살 것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한 층 더 무서운 위험에 부딪치면, 사람은 죽음을 원한다. 그리하여 죽음이 희망이 될 만큼 위험이 클 때, 그때에 죽는 것 조차도 바랄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절망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불치병이나 고난에서도 인간은 살려고 하는 희망을 잃지 않지만 절망이라는 병, 낙심의 병에 걸리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되는 가장 치명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낙심은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낙심합니다. 남녀노소, 빈부의 격차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걸릴 수 있는 병이 낙심의 병입니다. 그리고 한 번 낙심하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낙심합니다. 낙심의 병은 고질병이고 끈질긴 병이고 또한 전염병입니다. 낙심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도 낙심하게 됩니다. 혹시 낙심의 병의 영향력 아래에 계십니까? 스스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한 숨 쉬면서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낙심의 원인과 그것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줍니다. 낙심의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에게 진단과 처방을 내려 줍니다. 말씀을 통해서 낙심의 병, 절망의 병에 대한 성경의 해결책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가 고역을 시키고 노동과 비참한 생활을 영위해 가도록 한지도 어연 70년이 가까워오고 서슬이 시퍼렇던 바벨론도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상대해 이김으로 바벨론의 영화도 끝이나고 페르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던 때였습니다. 느헤미아는 바벨론에서 태어났지만 이방신을 섬기지 않고 신앙과 조국으로 돌아 가려는 열정을 가슴에 담고 살았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에세 잔을 받들어 올리는 일을 하는 술관원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먹는 모든 음식을 책임지는 중요한 요직에 있었지만, 자신의 안전하고 평안한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조국의 일을 염려하는 자였습니다.

B. C. 445년경(참조, 2:1)에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궁에서 패망한 조국 예루살렘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도성이 훼파되었고 남은 유대인들이 능욕과 갖은 시련을 당한다는 소식은 그로 하여금 페르시아 성전에서 금식케 하였고, 마침내 왕께 간청하여 예루살렘 귀향길에 오르도록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지역의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예루살렘에서 그는 무너져 버린 성벽을 재건하려고 합니다. 3장에 보면 느혜미아의 지도를 통해 각 가정과 지파들이 얼마나 열심히 성벽을 재건하는 데 동참하고 일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재건 사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의 파견으로 위협을 느낀 예루살렘 인근의 지도자들, 특히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건너편 암몬의 통치자 도비야의 방해 책동 등은 재건 사업의 큰 장애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는 넘치는 열심과 열정이 있었고 성벽을 재건한다는 사실에 들 떠 있었지만 일이 계속 진행되면서 낙심하게 됩니다. 느헤미아 4장에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이렇게 나타납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4:6)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백성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는 성벽을 절반이나 쌓아 올렸다.”라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그 때 유다 사람들은 몹시 지친데다가 제거할 흙 무더기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성벽을 쌓을 수 없다고 불평했으며 우리 원수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밀어닥쳐 우리를 죽이고 공사를 중단시킬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고 합니다. 원수들의 주변에 사는 유다 사람들이 열 번이나 그들의 위협과 계획을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자 그럼 느헤미아와 그와 함께 사람들이 처한 낙심의 이유들을 하나 하나 살펴 봅시다.

첫 째 그들이 낙심한 때는 그들이 성벽재건을 절 반쯤 했을 때였습니다. 언제 가장 쉽게 낙심합니까? 일을 절반쯤 했을 때 낙심을 우리를 건드립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열심히 일합니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신선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신선함은 사라지고 일은 지겨워집니다. 삶은 다시 피곤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빠지게 되고 진부해지고 습관적인 삶은 사람을 피곤케 합니다.

산을 오르기 전에 우리는 산의 정상을 쳐다보며 생각합니다. “한 두 세시간 이면 정상까지 가겠지.” 하지만 겨우 절반 밖에 올라가지 않았는데 3시간이 훌쩍 지납니다. 그럼 고민하게 되지요. “계속 올라가야 하나? 내려가는게 더 좋지 않을까?” 피곤함은 낙심을 불러 일으키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며 보통 중간 지점에서 잘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4:10)

낙심의 이유. “제거할 흙 무더기가 너무 많아 더 이상 성벽을 쌓을 수가 없다.” 성벽을 재건하려 하다 보니까 이전에 있었던 깨진 바위덩이가 여기 저기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들은 흙무더기와 쓰레기 더미를 보고 낙심하게 됩니다.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아 일을 계획은 계속 지연되고 일을 과연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불안하고 실망하게 됩니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동시에 이전의 잘못된 일과 잔재들을 치워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청소의 일은 언뜻 기대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한 편으로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지만 동시에 죄에 젖에 있고 세상적인 가치관에 젖어 있는 나의 내면의 쓰레기를 치워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치워 나가는 과정은 끝이 없어 보이고 때로는 불가능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치워야 할 쓰레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사명과 목표와 계획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치우다가 절망하고 낙심하고 계십니까? 힘이 다 빠져 이제는 못하겠다고 하십니까?

세 번째, 그들의 일을 기뻐하지 않는 세력들의 방해와 위협 때문입니다. 1절의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고 비웃으며, 3절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 4:7-8]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4: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사람들은 먼저 유대인들을 비방했고, 조롱했고, 그리고 협박하고 위협했습니다. “너희가 성벽을 계속 쌓으면 우리는 너희를 죽일 것이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좋아할 사탄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희들이 해 봐야 얼마나 하냐 하면서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결심이 강해 끊질기게 지속되면 이제는 위협하고 협박합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고소하고 우리를 무너뜨리려 한다. 낙심은 그들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 마귀를 대적하라. 대적의 무기는 말씀과 기도.

ex)신앙생활 열심히 하려는데……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큰 위협을 주고 절망을 주었던 사람들은 산발랏과 도비야보다도 원수들 가까이 사는 유다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라고 부정적이고 낙심케 하는 비관적이고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데, 그래봐야 네가 별수 있어? 우리는 어차피 돈 앞에 장사없고, 세상을 벗어나 살 수 없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면 세상에서 왕따가 되고 만다는 신앙인들 앞에서 가장 큰 낙심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낙심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          [ 4:4- 4:5]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è   비방하는 자에게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 기도 할 때에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나타난다.

1)         비방자들의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라.

2)         비방자들로 인한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신다.

2.       [ 4:13-14]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1) 종족에 따라 재배치- 지지 그룹을 만들라. 낙심한 사람은 그들을 뒷받침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Ex) 모세: 이드로와 가족들.

[ 4:9- 4: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 주를 기억하라.

-              과거에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              현재에 나와 함께 동행하고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              미래에 우리에게 행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라.

è   기억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자신의 신앙을 재헌신 하라. 그 분의 영적인 능력 안에, 그 분의 주권 안에 들어가라.

è   그 분은 우리를 이끌어 오시고, 우리를 책임지실 능력의 아버지, 낙심될 때, 상황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라. 감정이 생각을 지배하도록 내어 놓지 말고 생각이 감정을 다스리도록 하라. 그리고 말씀 가운데 당신의 생각을 집중하라.

낙심은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포기할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위대한 신앙인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에도 낙심하는 것을 거부했다. 피곤하고 실망될 때도, 실패하고 두려울 때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위대한 신앙인이란 단지 엄청난 인내심을 가진 보통사람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포기하지 않는 자다.

 

전반기의 사역을 끝내고…. 후반기를 준비하는 때…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우리를 선하게 이끌어 왔나.

그러나 동시에 너무 지쳐있는 모습들… 때로는 낙심된 모습들…

우리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열심히 참고 달려 왔는데, 몇 분은 직장을 잃기도 하고, 몇 분은 육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하기도 하고, 몇 분은 낙심하여 예배에 빠져 있기도 하고, 몇 분은 건강이나 가족의 건강으로 미래에 대해 두려워 하기도 하고…. 주변에서는 우리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모습도 있고, 때로 믿음의 동료들까지 낙심되는 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기도에 물러서지 말자. 시험 받더라고 예배의 처소에서, 기도의 처소를 지키는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기억하자.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서로 일으켜 주자. (이드로와 십보라가 모세를 일으키듯이)

 

해방의 날을 4개월 남겨두고 낙심중에 죽어갔던 수 많은 유대인들이 될 것인가? 끝까지 참고 이겨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와 영광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까? 바로 여러분의 선택에 있다.

 

 

Posted by 소리벼리

주일예배설교

제목 : 배에 오르신 주님

본문: 누가복음 5 1-11

 

 

게네사렛 호숫가(마태 마가에서는 갈릴리 바닷가, 요한 복음에서는 디베랴 바다)에서 첫 제자를 부르신 사건 - 베드로, 야고보, 요한

·         예수를 만나기 전 (실패의 순간에 만난 예수)

·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음- 보기 드문 실패의 날, 왜냐하면 그는 전문 고기잡이였기 때문.

·         좋은 고기 그물과 배도 있었음. 어떻게 고기를 잡아야 되는지 그물을 내려야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패하는 것이 인생.

·         밤새 고기를 잡았다. 안 잡히면 쉴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잡은 고기가 생계의 전부다. 그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 그런데 한 마리도 못 잡았다. -> 실망하여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 오늘 실패해도 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물을 씻고 있는 실망한 어부들. ->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인생.

·         무리와 함께 다가오신 예수 - 육지에서 조금 떼어서 (분리) - 배에 앉으시고(정착) -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누구에게? 무리 but 그 배에 있는 무리…) -> 네 배를 타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하겠다.

·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절망하며 또 기약없이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에게 다가와서 배를 빌려달라 하시는 예수님. -> 매정하신 예수님? 사렙다 과부에게 마지막 남은 기름으로 떡을 부쳐오라는 말씀? 사랑의 하나님이 매정하다고 여겨질 때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         실패와 절망의 수단이었던 배가 예수님이 거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음. 첫 번째 선택.

·         말씀을 마치시고.. 어부들에게 말씀. "이제 오른쪽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무슨 말씀을 전했는지 나와 있지 않다. 왜 그 말씀의 내용을 적어놓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떤 내용이었든지 간데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기대가 생겼을 것이다. 간음한 여인 앞에서 땅에 쓰신 글자처럼 가장 의문이 되는 내용.

·         "어제 밤새도록 일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물을 던지겠습니다."

·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다.

 

 

-> 실패의 순간에 배에 오르신 예수

·         우리가 최선을 다 했는데도 부족했을 때: 시험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c학점이 나오거나,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도 잘 안 될 때,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밤 낮 안 가리고 열심히 하는데 부족할 때 드는 생각-> 절망 ->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내가 최선을 다 해 봤자 무엇이 달라지냐.."

·         밤 새도록 고기를 잡아서 한 마리도 못 잡는 어부와 단 몇 분 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은 어부들: 똑같은 그물, 똑같은 호수, 똑같은 배, 그리고 똑같은 사람들… 무엇이 다른가? 거기에 우리 인생의 열쇠가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열쇠를 깨닫고 순종하면 똑 같은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성경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믿는 자들에게 주신 살아있는 말씀이기에

 

1.     주님이 함께 하셨다. -> 배에 주님이 오르시도록 하라! 당신이 탄 배에 주님을 모셔 들여라. -> 그리스도인의 출발점.

·         : 어부들의 생계 수단. 배를 내어드림. 나의 사업을 그 분의 사역을 위한 도구로 사용토록 한 것.

-> 당신의 생업에 예수님이 참여하시는가? 당신의 직업, 학생이던, 주부이던, 그것을 통해 주님이 일하시게 하는가? 세속적인 것과 신앙생활과는 별개로 살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당신이 드리는 모든 것에 동행하시고 축복하기를 원하신다. 일부만 드린다면 그 부분은 하나님의 주권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설교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의 하나: 목사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저런 소리 하지모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은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도 적용되어온 말씀.

·         예수님이 나의 배에 함께 계셨을 때 그 결과는 믿기 어려운 축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순서를 기억하라. 먼저 베드로는 자기 배를 예수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 몸은 피곤하고 영은 곤하고 절망 중인데 예수님께 배를 내어 드렸다. 예수님은 그 배를 타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의 필요를 다 채우셨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스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6:33)

 

2.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라.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언제: 지금, 어디서: 깊은 데로 가서; 어떻게: 그물을 내려)

·         베드로의 반응:

·         몇 가지 순종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있었다. 첫째 시간적으로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아침이었고, 둘째 장소적으로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깊은 곳이었으며, 셋째 이미 그물을 씻어 다시 내리는 것은 노력상 손해가 되는 것이었고, 넷째 자신은 노련한 어부였으나 예수는 산중의 목수였었다

·         불구하고: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고, 그런 그에게 또 다시 배를 데라고 말씀하시고 그 위에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이 끝나자 이제 다시 바닷가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다.

·         이런 상황에서도 베드로는 질문하지 않고 단지 "선생님,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었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 질문하지 않고 순종.

·         "깊은 곳" 대한 해석- 얕은 곳에서 고기가 잡히고 깊은 곳에서는 잡을 수 없다? (전통적 해석) -> 깊은 데로 가야 더 큰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얕은 곳에서는 작은 고기 밖에 잡을 수 없다.

·         많은 사람들: 인생의 얕은 물가에서 살고 있다. 깊은 곳에는 조금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 얕은 물이 안전하니까.. 깊은 물의 파도를 두려워 하고 단지 쉽게 피할 수 있는 얕은 물 가에서 산다."

·         믿음의 삶: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모험적인 삶, 위험한 삶.. 그래서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오길 주저한다.

-> "만일 내가 주님께 진심으로 헌신하면 그분은 나를 광신도로 만들어 버리실 거야. 그럼 내 가정도 내 삶도 엉망이 되겠지… 친구들도 다 떠날거야. 적당히 믿어야지…" -> 얕은 물 신앙. 너무도 많은 신앙의 비밀들을 놓치고 만다.

·         하나님의 계획: 좋은 것, 완전한 것,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 궁극적으로 나의 유익을 위한 것

·         지금도 원하시는 예수님의 요청: 나를 네 배에 태우라. 네가 어디로 가든 너의 사업, 너의 가정, 너의 결혼을 비롯한 네 삶의 모든 영역에 내가 함께 하게 하라. 내가 널 온전케 하리라."

 

반응: 신앙적인 조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좋은 말씀이지만 그건 내 상황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전 지금 너무 힘들다.
->
그런 힘듦과 실패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성경은 구체적인 원리를 제공한다. 왜 자꾸 신앙과 일상의 삶을 구분하려 하는가? 어부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랐을 때의 결과: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복을 주셨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그 분의 계획에 동참하여, 그 분의 약속에 의지 할 때 항상, 반드시 그런 결과를 약속한다. 내 배 뿐만 아니라 다른 배의 어부들에게 까지 고기를 나누어주게 할 것이다.

·         예수를 만나기 전의 제자: 어제 밤새 일했는데 그물이 텅 비었습니다.

-> 이 말이 혹시 당신의 삶, 가정, 사업, 인간관계의 문제를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젠 다 소용없다고 자포자기 하며 그냥 살고 있지 않은가?

베드로는 실패의 순간에 자기의 실패는 호수에 물고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그 물고기를 못 잡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수에는 물고기가 많다. 단지 내가 못잡은 것 뿐이다. 그래서 대 부분의 사람들은 미련을 놓치 못해 또 마지못해 그물을 씻는다. 기약 없이 38년 된 병자가 그저 연못에 나와 기적을 기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그물을 씻지만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 때 찾아오시는 주님을 배에 모시고 그 분께 배를 사용토록 하고, 그리고 동행하고 순종하라.

 

3.     베드로의 고백: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은총을 감당치 못하는 우리 인간. -> 고기 잡힌 것으로 인하여 놀라고…

·         무력한 자기 발견

베드로는 어부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속속들이 모르는 것이 없을 만큼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간밤에는 밤새껏 헛그물질만 하였고 동시에 피곤한 밤을 지새웠습니다. 뭍으로 나와 그물을 씻는 그는 아마도 종종 있었을 이런 순간을 되돌아보며 무엇인가 인간의 한계성과 무기력한 자신을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         의심했던 자신 발견.

·         예수님의 신성을 발견: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

·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 베드로가 이 말을 하고 났을 때 주님께서는 오히려 그에게 하나의 커다란 비전(Vision)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EX) 스탠리 템 장로: 하나님이 나의 사업을 소유하시다.

스텐리 템이라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지만 결혼을 한 후에 교회를 등한히 하고 돈 버는 일에 열중을 했습니다. 당시는 플라스틱 사업이 호황기라 그도 작은 플라스틱 공장을 세워 사업을 했는데 얼마나 사업이 잘 되던지 돈을 긁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고 교회에도 안나가고 성경도 안 읽고 가정예배도 드리지 아니하고 가정도 등한히 하고 아내가 교회 나가자고 그렇게 사정을 해도 “웃기는 소리 하네. 돈벌 때 돈벌어야지 무슨 한가하게 교회 가서 예배나 드리고 있냐!”고 꾸짖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사업이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무려 네 번이나 도산을 하고 재기할 여력이 조금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크게 낙심되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실망할 필요가 없느니라. 네 사업을 나에게 넘겨주면 내가 성공시켜 주리라."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 서약했습니다. "하나님, 만일 하나님이 제 사업을 맡아서 성공시켜 주신다면 저는 사업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겠습니다." 그는 37달러로 다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점차 풀려갔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기도 중에 물에 빠진 베드로가 주의 손을 잡고 건짐 받는 환상을 보고, 그는 ‘이제부터 오직 주님의 손만을 붙들고 사업을 하겠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이 시키는 데로 하지 않고 세상 줄잡지 아니하고 주님의 손만 잡고 사업을 하겠습니다.’하고 철저히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가정예배 드리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서약하기를 수익금의 51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아예 규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수입 중에 51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며 주님과 의논하여 사업을 했습니다.

 

1952년에 그는 한국의 선교지를 방문하게 됩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묵고 있던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잃은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제가 지금보다 선교를 두 배로 더 할까요." 그가 계속 기도하는데 갑자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스탠리,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이지." ",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스탠리, 100년 후에 가장 크게 남는 투자는 무엇이지." ", 영원한 것에 대한 투자입니다." "그렇다면 너의 모든 사업을 다 내게 넘겨주지 않겠니." "아니 주님, 이미 51%를 드렸잖아요." "스탠리,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다 지불했지 않니. 그런데도 너는 너의 모든 사업을 내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말이니. 나를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야.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너의 사업을 영원한 보물로 만들어 주려고 그러는 것이야." "주님, 감사합니다. 제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리겠습니다." 그는 정말로 모든 사업을 예수님께 다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처음보다 4배나 더 큰 공장을 새로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미국플라스틱회사는 계속 번창했습니다. 더 큰 공장을 또 지어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미 서약한 대로 미국플라스틱회사의 전체 수익금으로 450명이 넘는 전임 선교사들을 후원했습니다. 그 결과 해마다 25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있고 해마다 85개의 교회가 새로 개척된다고 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제목: 죄인을 위해 죽는 자

본문: 5:6-8; 15:13

[ 5:6- 5: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목회를 하면서 목사님들로부터, 그리고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쓰는 성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사람은 정말 안 변한다. -> 그렇게 기대를 하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여도 참 변하기 어려운 존재가 인간. 그래서 실망하면서 기도를 중단하고, 인간 관계를 끊고, 그저 혼자 성경보고, 기도하는 신앙 생활에 만족. 안 변하는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이 목회고, 신앙생활이고, 기독교인의 삶이다. 그래서 목회도, 신앙생활에도 갈등이 많고, 슬럼프도 많고, 시험도 많다.

·         저의 은사 중에 이정효 교수- 기독교 교육

목회자로 부름 받고 나서, 설교자로 부름 받고 나서, 꾸었던 가장 무서운 꿈. 

-> 내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을 때, 나는 열심히 전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떠들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 하고 있을 때….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드는 더 무서운 생각… 안 변할 줄 알고 기대 없이 말씀을 준비하고, 아무 기대 없이 말씀을 전할 때… 앞의 경우는 그래도 말씀을 전하고, 준비하는 본인이라도 신앙의 순수는 있는데, 뒤의 경우에는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똑같이 하나님과 멀어져 있을 때…

·         그래서 그런 열정 없는 목사가 되지 않기 위해, 여기 있는 성도님들 중 한 분이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 주일 예배 준비할 때는 정말 각별히 신경 쓰고 정성을 들여서 준비한다. 미국 학교에서 기말에 쓰는 페이퍼는 레터지로 20-30장… 페이퍼 하나 쓰기 위해서 최소 10권에서 2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지적 받지 않기 위해 엄청 긴장하고 쓴다. 그런데 설교는 내 자존심이 아니라 영혼에 관련된 준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더 예민하게 준비한다. -> 대부분의 목사가 주일 설교만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다. 어떻게 이 말씀이 성도들의 심령을 움직일지그런데 반응이 없고, 변화가 없고, 말씀을 잘못 반응하는 것을 보면 설교자는 점점 무력감에 빠져든다. 절망감이 엄습한다. 어떤 목사라도 겪게 되는 경험이다. 

·         -> 그럴 때 꼭 기억하라고 이정효 교수님이 주신 말씀. 5:6-8

 

짐 엘리엇 선교사

우리가 본 영상은

1956년 미국 전역을 큰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짐 엘리엇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창 끝"의 내용을 짧게 편집한 내용이다.

짐 엘리엇-JIM ELLIOT(1927-1956) 1927년 여기서 멀지 않은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학창시절에 글을 잘 썼고, 연설로도 유명했고 또한 레슬링 선수로 우승까지 차지했고 공부도 수석으로 졸업한 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많은 친구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은 그가 탁월한 리더십과 영적인 능력으로 미국 교회의 유망한 일꾼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엘리엇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께 그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다. 그런 간절한 기도 중 그는 에콰도르에서 사역을 했던 선교사로부터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두 번씩 들어야 합니까?"

라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한 번도 전해지지 않았던 남아메리카의 식인부족 아우카 부족에 대해 듣고 그의 갈 길을 정했습니다.

아우카 부족- 어떤 인디언도 어울리지 않는 독립되고 분리되어 있는 부족. 외부인은 무조건 죽이고 자기 부족인들도 많은 수가 서로 죽이고 있던 부족.

 

똑같이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아내 엘리자베스와 엘리엇은 우선 에콰도르에서 인디언 사역을 하며 미래에 사역을 할 아우카족의 말과 문화를 배워 나갑니다.

 

드디어 1955년 가을 비행선교사 네이트 세인트와 다른 세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엘리엇은 아우카족의 사람들과 친구가 될 목적으로 몇 달 간 비행기에서 선물을 떨어뜨리면서 그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마침내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젊은이들이 간단한 짐만을 챙긴 채 잔인하고 독하기로 이름난 아우카 족속들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조그만 소비행기를 타고 해변에 내린 이들이 해변가에 텐트를 치고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간 지 닷새 째 될 즈음, 선교 본부에서는 이들에게서 소식이 없자 혹시 하는 생각에 비행기를 보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 해변에서 다섯 명의 청년들이 무참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1956 1 8일 다섯 명 모두 아우카족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해변가에 그들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머니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신변보호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을 뽑지 않고 그대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그를 죽이는 데 가담되어 있던 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짐 엘리엇의 죽음에서의 마지막 말은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빠가 아우카족에게 간다고 하니까 헤어지면서 아들이 아빠에게 하는 말을 기억하고 한 말이었습니다.

만약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약속해 주세요.. 와다니 말을 알려주며..

그 뜻은 "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당신의 진실한 친구"

 

라이프 지와 타임 지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라이프 지에서는 이 사건을 10페이지에 달하는 기사로 다루면서 오랫동안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했던 선교사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결국은 죽음을 당한 그들의 삶을 가리켜 "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What a unnecessary waste!)라고 애석해하면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결국은 세상적으로 개죽음을 당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한탄한 것이지요.

 

한 기자는 급기야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에게 찾아가 인터뷰를 하면서 또 다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What a Waste!" 그러자 그 당시 20대 초반밖에 안 되었던 그의 아내가 그 기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항의했습니다.

"낭비라니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의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내 남편은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 뿐입니다. 이후로 다시는 내 남편의 죽음을 낭비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엘리엇이 시카고에 있는 휘튼대학교 기숙사에 있을 시절부터 적었던 글이 공개 되었는데 그 글 중에는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19살 때 썼던 글인데

"하나님, 제가 감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부족한 나의 나무토막 같은 인생에 주여! 불을 붙여 주소서. 제가 주를 위해 탈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주께서 소멸시키십시오. 이 몸은 주의 것입니다. 나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완전하고 풍성한 삶을 원합니다. 바로 주님과 같이...."

 

그는 일기장의 한 쪽 구석에 영상에서 소개된 이런 글도 적어놓았습니다.

 "제게 다시는 영원히 썩어지지 않을 것에 바치는 나의 희생을 어리석다고 말하지 말아요"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젊은이들의 아내 다섯 명은 한 두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남편이 순교한 그 나라를 찾아갑니다.

'우리 남편들이 못다한 일들을 우리들이 마저 해야 한다’ 그들은 복음을 들고 그 잔인하기 짝이 없는 아우카족을 다시 찾아 나선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일년간 간호사 훈련을 받고 아우카족에게로 갔는데  아우카족은 다행히 여자를 해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하여 부인을 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인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목숨을 걸고 그곳에 갔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우카족을 위해 여러 해 동안 헌신하였습니다.

 

부인이 어느 날 고국으로 돌아갈 일이 있어 가려고 하자 아우카족의 추장이 부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서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부인의 말을 들은 아우카족은 감동을 받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우카족의 추장이었던 사람이 빌리 그레함이 주도하는 한 예배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에게서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들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래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처럼 그분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5명의 선교사 살해에 가담한 사람들 중의 세 사람은 현재 그 부족 교회의 담임목사와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짐 엘리엇과 동료들이 살해당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들이 죽은 마을에서 수백 개의 교회가 생겨났으며,

엘리엇이 죽고 나서 태어난 아들이 그 교회 중 마을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미의 열대 우림 속에서 죽은 지 40년 후인 1995, 엘리엇이 졸업한 휘튼대학에서는 강력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         이런 분들의 삶 앞에서 우리의 삶의 고민이나 염려, 시험들이 어떻게 보여 집니까? 아니면 뭐 나랑 상관없는 그런 이야기로 들려집니까?

 

제가 영성을 공부하게 된 계기

·         신학교 다니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며 굉장히 영적으로 힘들었을 때, 수업시간의 일환으로 봉쇄 수도원 방문.

-> 23년간 한 번도 밖에 출입하지 않고, 그 곳에서 매일 같이 똑같은 일상, 하루 세번의 기도와 예배, 노동과 독서… 죽을 때까지…

-> 그 분께서 하신 말: 난 등대의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일반 교회가 일반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배라면, 그 배가 풍랑을 만나 길을 잃어버렸을 때에 등대를 보고 다시 길을 찾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살다가 힘들었을 때에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고민을 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신앙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 인생도 의미가 있을 꺼다."

그 앞에서 한 순간에 내가 가졌던 모든 고민, 우울함, 방황이 끝나버렸다. 정말 쪽팔리고 나 자신이 초라하고 너무 작아 보였다.

 

우리가 생명을 던지면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람은 변하기 힘들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변화될 수 있다. 내가 죽어 사랑하는 것이다. 불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 사랑 앞에 내 자존심?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무시당하는 것?

예수님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했던 그 고난, 더러운 죄인들이 그 앞에 침 뱉었다. 돌을 던졌다. 하나님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런 모욕을 참았으면 내가 당하는 모욕과 무너지는 자존심이 뭐 그리 대단한가?

내가 이뻐서, 잘해서 구원받았는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식물인간처럼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는 영적으로 죽어있던 내가..

경건하지 않는 나- 부도덕하고, 배은망덕하고, 정말 더러운 나를 위해, 죄인인 나를 위해 그가 죽었다.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고귀한 삶을 삶게 하기 위해서…

 

이 사랑을 한 마디로 하면 십자가의 사랑. 십자가를 짊어진 삶의 특징.

자존심을 버리고 낮아 지는 것

 

우리가 하는 고민, 기도 제목의 대부분은 뭔가?

오직 내 가족, 내 자녀 잘 되는 것, 가난하지 않게 하는 것, 복 받는 것… 오직 그런 욕심으로만 가득 차 있고 매일 매일의 삶에 허덕이며 살고 있지 않은가?

누굴 위해 죽겠다는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한 몸 바치리라는 결단을 해 본적이 언제였는가? 그런 기도를 내가 얼마나 기억하고 지키려고 애써 보았는가?

 

 

 

특송 훈련: 자존심 땜에 안 했던 나. -> 시키는 대로….

 

낮아지는데에 고상하게 낮아질 수 있나?

아름답게 낮아질 수 있나? 낮아지는 것은 그야말로 비참함을 견디는 것이다.

어머니의 예….()

 

 

남을 세워주기 위해서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을 참아보자.

 

 

교회를 세우자. 정말 멋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정말 상처입은 자들이 와서 치료받고 회복되어 다시 세상에 나가 전파할 수 있는 그런 교회…. 그렇기 위해선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어도 죽고, 또 죽고, 이 성전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넘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받치는 것.

누가 친구인가? 첫 번은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날 친구로 부르셨으므로.

믿는 자?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으므로 동일한 형제와 친구

연약한 자, 경건치 못한 자, 죄인-> 나 또한 그런 자였으므로…

 

한 번 뿐인 인생 정말 값어치 있고 고귀하게 살아보자.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