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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개요: 부부가 세시간 간격으로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사건

4장까지 한껏 고조되었던 성령의 역사, 교회의 역사가 멈칫 하는 사건. 그 이후에 줄줄이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리파 유대인의 분열사건, 스데반의 순교와 이어지는 교회의 핍박사건. - 그 시작이 되는 사건이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아니니아 :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삽비라: 보석, 아름답다

 

헌금을 떼어 먹었다가 죽은 사건인가? 그것이 죽을 이유인가? 만약 그것이 이유라면 우리 성도들 하나라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하나님이 설립하신 두 개의 공동체 : 가정과 교회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러한 가정이 깨어진다. 왜? 그들이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

누구의 잘못인가가 핵심이 아니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가지고 오랫동안 여성을 핍박

 

  • 죄를 짓게 하는 세력이 있다. 사탄의 존재
  • 죄를 짓게 하는 방법: 극단화, 과장화 -> 거짓과 죄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

네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넘어질 때 - 상황이 극단적으로, 과장적으로 생각되고, 느껴지고, 경험됨. 애굽에 있었더라면 배불리 먹고....

- 진리를 어느순간 바꾸어 버린다. 사탄은 과장된, 극단적인 우리의 생각의 틈을 파고든다.

그 거짓이 무얼 건드리느냐? 바로 탐심, 정욕-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

 

  • 탐심과 정욕의 결과 -> 가정이 깨어지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

깨어진 것은 가정, 에덴 동산은 그대로 있으나 추방당한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 그 이름은 행복

에덴동산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추방당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있지만 탐심과 정욕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에서부터 추방되어진다.

 

가정을 깬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깨는 사탄의 전략

[행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윤리적 실패가 아니다. 그 이면에 사탄이 움직였다.

가정을 깨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깨어질 수 있는 시험이 왔다.

 

1. 교회는 영적인 세력의 방해가 분명히 있다.

내부적으로, 과학적으로만 접근- 심리학, 상담학....

물론 사람을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 뿐이 아니다. 분명 사탄의 방해, 참소, 유혹이 있다.

그것을 외면하고 분별하지 못하면 이것을 이길 수 없다.

모든 것을 영적으로 취급하는 것 - 김기동 성락교회 - 이단

그러나 모든 것에서 영적인 것을 외면하는 것 역시 잘못된 신앙, 또 다른 이단이다.

 

교회마다 넘어지는, 깨어지는 돈 문제, 여자 문제, 세습문제, 이단 문제..분열문제 -> 개인적 일탈인가? 그 뒤에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조직적 방해, 영적인 전쟁이 분명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개인에 대해,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지만 사탄에 대해서도, 그들의 공격과 방법에 대해서도 놓치지 말고 분별해야 한다.

 

[엡 2:1-2]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개인의 문제도 중요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영적 싸움, 우리의 존재 뒤에 역사하는 영이 있다.

 

2. 사탄의 방법

[행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사도들이 헌금을 강요했나? 작정헌금하라고 했나?

자원적 헌금 - 자원하는데 일부를 감추었다.

 

-> 이단이나 잘못된 부흥사 - 하나님 드릴 헌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벌받는다.

성도를 위협하는 도구로.... 아니다.

헌금의 마음은 조금도 강요됨이 없이 자원하는 것이고, 감사의 열매이다.

 

그러면 그들이 왜 헌금을 드리려고 했는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드린 동기는 무엇인가?

[행 4:34-35]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러나와서 도왔다. 그들을 먹였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 때 꿈쩍도 하지 않닸다. 언제 그들이 밭을 팔아 헌금을 내려 하는가?

[행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오늘 새벽시간에 나눈 배경 -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 - 돌아가지 않고 그 곳에 머뭄. 머문 자들을 통해 자발적으로 낸 헌금

그런데 36절 - 그 중 한 예 정도가 아니라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사건...

34절의 밭 - LAND

37절의 밭 - FIELD (어마어마한 양의 땅을 내어놓아 초대교회에 소문이 나고 그를 볼 때마다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 바나바- 로 불림)

 

요셉을 바나바라고 부름 - 사도들로부터, 성도들로부터 너도나도 칭송을 받음.

 

이것을 누가 보았을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들의 자원함은 무엇? 부러움과 시기함을 통하여...

그런데 그 흉내를 내다가 스스로를 속임- 그 칭송은 받고 싶은데 그 밭을 팔려니 아까운 마음, 거짓으로...

 

물질로 칭찬과 존경을 사려고 함 - 마술사 시몬과 같은...

헌금은 자원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 남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거짓으로...

 

  • 그래도 너무하지 않느냐?
  • 하나님이 주신 기회 - 대수롭지 않게 거짓으로... 회개할 기회...

[행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8-9]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린 것 - 거짓과 탐심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이유 - 거짓과 탐심

 

2. 이 사건을 통해 교회와 성도에게 주시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글로 읽는 우리들의 반응 - 당혹스러움, 하나님 너무하시네....

그런데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반응

 

[행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행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신앙의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성격 - 두려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두려움

 

구약의 하나님 - 두려움.

신약의 그리스도 - 사랑의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

구약 속에서도 한결같이 흐르는 것 - 그 분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예언서, 시편, 선지서에 반복적으로 흐르는 구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백성들이 느꼈던 하나님의 모습 - 엄위하신 하나님. 두려움의 하나님

 

신약의 그리스도 -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그 삶을 통해서 잘못된 종교인들을 향해 분노하시는 하나님

교회의 장사치들을 몰아내시는 하나님,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하나님

그럼에도 그런 모습을 잃어버린다.

 

사랑과 공의 - 사랑하시지만 그 분은 동시에 심판하시는 주이시다.

 

  • 경외의 반대는 무엇인가? 무시, 경시이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우상숭배하며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세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며

 

[민 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우리에게 없는 것 -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 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잃어버렸다.

대제사장 -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항상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

하나님의 현현을 본 사람들은 화로다 나로 죽게 되었구나....

 

그런데 우리는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슨 잘못을 해도 다 용서해 주시는 유덕한 할아버지처럼 생각한다.

두려움을 잃어버리면 남는 것은 불순종이고 지기 마음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기서의 반복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지기 힘으로 이기려는 바벨탑의 역사만이 남는다.

경건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성경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질병을 두려워하고, 사탄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회복되니 그 다음 구절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행 5: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아니까 하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아니까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 시작한다.

마지막 때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는 때, 사람들은 모이기를 폐한다고 말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 - 나는 성도를 위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한달 넘게 전세계 교회가 예배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죽어가고 있는 이 사태는 분명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가지라는 경고라는 것이다.

 

아이들과 가정예배 때마다 주는 말

지금은 방학이 아니라 고통의 때다.

지금은 HOLYDAY가 아니라 Crisis고 위협의 때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잠시, 또 무너져버린 생활 패턴을 되찾지 못한다.

 

기름값이 올라서 문제가 된 적 - 그 기름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전쟁을 일으키고..

사상 초유의 사태 - 기름 값이 Minus - 가름 한 배럴을 파는데 돈을 주면서 제발 가져가 달라고....

비행기가 뜨지 않으니까 기름을 쓸 뗀 없고, 놔두면 기름 생산이 한 번 중단되면 재가동하는데 엄청남 돈이 또 들어가니까 돈을 주고서라도 저장되어 있는 기름을 팔려는 것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비싸다고 하는 것들은 무가치해지고 생필품들은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마스크, 휴지, 쌀 - 맛배기였지만 이런 초유의 사태는 마지막 때의 시작 일 뿐...

 

복된 두려움을 회복하길 원한다. 그 분을 두려워함으로 말씀이 보여지고, 기도가 쉬어지지 않고, 진정한 예배가 여러분의 심령에서부터, 가정에서부터 회복되기를,

진정한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이 사태를 통해 교회 안의 거짓, 교회 안의 하나님을 멸시함과 남을 시기함과, 거짓과 탐심이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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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절 (두 가지 시선)

 

제 구시 - 오후 세시: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는 시간

11시 예배 - 아침과 점심의 중간 - 가장 중요한 시간.

 

성전에 올라갈 새 -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는 것

예수가 성전 척결을 하면서 하신 말씀 - 이 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다른 목적으로 성전에 온 사람. -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서... 날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 지금 나이 40살

지금도 당시도 사회의 가장 주축, 중심의 시간

그런데 나면서부터 육체의 병으로 인해 그런 중심을 잃어버리고 그저 구걸하기 위해서 성전에 오는 사람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만 있는 자.

-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자. 성전 안의 예배를 경험해보지 못한 자.

마가 다락방 안의 사람들과 다락방 밖의 사람들.

 

은혜의 안에 있는 사람 - 오직 주만, 오직 성령만

은혜의 밖에 있는 사람 - 당황하고, 놀라고, 조롱하고---오직 사람만 보이는 사람.

 

은혜의 소리는 듣고, 그 사람들은 보지만 정작 그 은혜는 누려보지 못한 자.

 

교회 문 앞을 기웃거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전 안, 신앙 안, 믿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성전과 세상의 경계선 상에서 서있는 신앙이어서는 안됩니다. 신앙 비슷한 것이어서도 안됩니다. 이왕 신앙생활 한다면 성전 깊이 들어와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3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본다. - 그리고 구걸한다.

4절 -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 두 시선이 마주치는 사건

그는 받기를 원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받기를 원하는 자의 대상은 돈이다.

주기를 원하는 자의 대상은 그리스도다. 은혜다.

 

받기를 원하는 자와 주기를 원하는 자가 만나면 곧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받는 대상이 다르고 주는 대상이 다르면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받아야 사는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과 우리가 받고자 하는 것이 다를 때 거기엔 진정한 만남이 있을 수 없다.

 

베드로가 그 불일치를 깨뜨리는 선언을 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 네가 얻고자 하는 것 내게는 없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내게 무엇을 찾는가?

우리는 무엇을 주고자 하는가?

우리에게 없는 것은 은과 금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

가장 귀한 것. 누구에게? 그 은혜를 아는 자에게....

 

이것이 합쳐질 때에 성령이 임한다. 아무리 받고 싶은 사람과 주고 싶은 사람이 만나도 그 대상이 바르지 못하면 항상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대상이 그리스도로 합쳐질 때에 은혜가 임한다. 역사가 임한다.

그 예수는 바로 그 사람이 가장 필요한 것,가장 근원적인 것- 멈추어진 인생이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주었던 것 - 은과 금

물론 고맙고 선하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시간이 지나면 계속 사라지는 것. 가져도 가져도 만족이 없는 것.

따뜻한 마음도 중요하지만 예수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딱 거기까지다.

 

돈도 주고 예수도 주면 안되는가? 아니다. 돈을 주면 예수를 찾지 않는다. 예수를 바라지 않고 돈을 찾는다.

 

선교학 강의 - 한국 선교에 대한 세계의 비판 - 그들은 복음이 아니라 돈을 전한다.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름을 붙인 교회만을 짓는다. 그들은 십자가의 선교가 아니라 십자군의 선교만을 할 뿐이다.

 

내게 있는 것 - 여러분에게 예수가 있는가?

여러분 안에 예수가 있는가?

그것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예수 대신에 돈을 남겨주고자 하지 않는가?

교회가 예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집 대신에, 카페, 체육과, 콘서트홀.... 이런 것들에 신경쓰지 않는가?

 

내 부모.... 나에게 남겨주실 동산, 부동산은 하나 없지만 내게 주신 가장 귀한 것. - 예수

형제가 모두 예수를 물려 받았다.

얼마나 감사한가....

 

기적 - 뛰어 서서 걸으며....

그것 보다 더 큰 기적 - 성전으로 들어갔다. 한번도 들어간 적 없는 성전 안의 세계, 은혜 안의 세계, 깊은 물의 세계, 지성소의 세계를 경험했다. 이것을 경험 한 적 없는 자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경험한 자, 그리로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하고 싶지 않은가? 뛰어 서서 걷는 것 보다 가장 큰 기적

-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인생의 무게가 떠나갔다. 노래 할 수 없는 자가 노래한다. 하나님을 향해 찬양한다.

 

노래는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서, 나를 향해서 부르는 것

찬양은 그가 좋아서, 그를 위해서, 그를 향해서 부르는 것.

어떤 환경에서도 변치않는 그를 위한 노래... 찬양.

 

남에게 돈을 구걸하던 그, 관심과 도움만을 구하던 그가 비로소 진정으로 예배하며 찬양했다.

 

앉은뱅이 - 홀로 설 수 없는 자. 홀로 걸을 수 없는 자.

그가 예수를 통해 걷고 뛰고, 그리고 찬양한다. 성전 안에 들어가 예배한다.

 

떄로 우리는 영적 앉은뱅이가 된다.

주님은 여전히 오늘의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데 우리는 구원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일까 관심을 가질 수는 없을까?

우리가 처한 환경을 통해, 우리가 짊어진 감정과 관계와 짐과 고난과 광야를 통해

그가 주시고자 하는 것, 그가 주시는 평안, 그가 주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 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우리에게도 앉은 자리에서 뛰어, 서서, 걷는 역사, 성전 안의 깊은 곳을 체험하는 은혜, 노래가 아닌 진정한 찬양이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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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을 위해 (누가복음 24장 36-49절)

 

부활을 믿지 않고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향해

평강 - 샬롬, 에리레네

평안과 편안: 편안함은 평안함의 모조품이다.

 

평안함은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편안함은 환경을 통해 누리는 육신의 즐거움이고 평안함은 마음을 통해 주어지는 영혼의 즐거움이다.

 

요즘 처럼 육신적 편안함 가운데서 영적 평안함을 간구한 적이 있을까?

몸은 편한데 마음은 절대적으로 불안한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주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편안함이 아닌 평안함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오신다.

왜 제자들을 방문했을까? 어떤 상황에서 그들을 방문하신 것일까?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그런데 그 소리를 믿지 않았다.

[막 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그 이전

[막 16: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눅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허탄하다: 영어 번역- (Non-sense) 감각할 수 없는 것. 넌센스- 비이성적이라는 말의 기원- 자기 몸으로 감각할 수 없는 것.

그런데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것- 그게 더 Non-sense 아닌가?

 

왜 믿지 않았을까?

믿었더라면 그들이 있어야 할 곳 - 갈릴리.

[막 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신앙생활, 끊임없이 내 감각, 내 상식, 내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서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그분을 믿고 바라는 것- 그런데 그 분을 믿지 못하는 일들이 불신지들이 아닌 예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말씀을 읽고, 왜 기도하는가?

과거의 믿음이 날 보장하지 않는다.

아무리 신령한 은혜를 체험해도 말씀 가운데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또 내 감각 속에 갇혀서 산다.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가 된다.

 

그들이 믿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숨어 있으니 주님이 갈릴리로 가시지 않고 그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발걸음을 돌이키신다. 우리를 찾아다닌다.

 

[막 16: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왜 나타났는가? 그들이 안믿으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난다.

 

어떻게 믿게 하시는가?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몸- 마리아도, 제자들도 못알아본다. 왜? 부활하신 몸은 신령한 몸. 모든 상처와 죄와 연약함이 사라진 몸.

 

십자가상의 주님의 몸 - 상처투성이의 몸- 채찍질, 가시면류관....

온 몸의 모든 상처, 찢긴 것들이 다 회복된 몸일진대....단지 이것은 회복하지 않고 그대로 오신다.

 

그것이 무엇인가?

못박힌 손, 못박힌 발.

왜 그 상처를 부활하신 주님이 남기셨을까? 오직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늘보좌에 좌정하셨던 그 예수가 왜 이 죄많은 땅에 내려오셨는가?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예수껜 어떤 의미일까?

여행하는 기분으로 오셨을까?

애인만나는 기분으로 즐겁게 오셨을까?

물론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셨지만, 하늘 보좌를 버러고 이 땅에 내려오신 그 의미는

재벌가 자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 자기 상속과 지위를 다 버리고 오는 것과는 상상할 수 없이 더 큰 불편함과, 고통과, 아픔을 각오하고 오신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가 자기의 사명을 다 끝내고 십자가의 그 고통을 다 겪으시고, 감당하시고

이제 하나님 나라, 그 보좌를 향해 가는 일만 남았는데, 어서 빨리 가고 싶은 그 나라를 바로 올라가시지 않고

40일간을, 마치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실 때에 40일간 금식하셨던 그 마음으로, 그 고통을 다시 감당하며

이 땅에 남으셨다. 왜? 오직 제자들을 위해서...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믿게 하시려고....한 영혼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그냥 남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쳐다보기도 싫은 그 고통의 흔적, 그 조롱과 비아냥과, 그 모욕의 흔적인 손과 발의 못자국을 그대로 남기시고 제자들을 찾아오신다. 무슨 훈장처럼 달고 오셨을까?

그 고통의 흔적을? No! 오직 제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그 제자들이 그 못자국의 깊이를 알까? 그 고통의 의미를 알까?

예수가 못박힐 때, 창에 찔릴 때, 그들은 다 어디 있었는가?

 

숨고, 도망가고, 저주하고, 부인하고.... 그 손의 못자국을 제대로 보기나 했을까?

그들이 보기 싫어 외면했던 십자가, 그들이 지기 싫어 도망쳤던 십자가, 그 십자가의 흔적을

 

살아나신 주님께서 나타났는데도 그 분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뚫어진 입이라고

"당신이 만약 예수라면 손의 못자국 보여줘 봐. 발의 못자국 보여줘 보! 창에 찔린 옆구리 보여줘 봐!"

 

그들이 그 상처를 보기라도 한듯이, 알기라도 한 듯이....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샬롬! 평강이 있을지어다....하며 닫혀진 문을 뚫고,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뚫고

"어찌하며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하면서 자, 내 손과 발을 보아라. 감각이 있어야 믿는다고 하면 너희들 가 감각을 가지고 마음껏 만져보라....

 

그런데 그 다음 절을 보면

[눅 24: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 문장은 제가 아무리 해석해도 해석이 안돼.

너무 기쁜데, 믿지 못해....

눈으로는 보고, 손으로는 만지는데 그래도 믿지 못해....

그 손과 발을 보여주시는 데도 아직도,.....

 

뭘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주석들과 논문들을 찾아봐도 뚜렷이 확 마음에 닿는 것이 없는데....

 

크게 두 종류의 해석

 

  • 너무 기뻐서 실감하지 못하는 마음
  • 기쁘긴 한데 여전히 믿기지 않는 마음,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증언하고, 이제 급기야 자기 눈으로, 손으로 만지는 데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 것. 믿지 못하게 하는 것 -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나....하는 common sense

영적, 육적 모든 감각보다 더 우선하는 사회적, 일반적 상식.

 

나를 주님 안으로 더 가깝게 믿게 하지 못하는 일반적 상식

 

다른 복음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그들을 꾸짖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면서 생선을 구워 그들 앞에서 같이 식사한다.

그들과 늘 하던대로, 가장 일상적이고도, 친근하게 지내던 함께 밥먹는 일. 영이 아닌 육적으로 살아났음을 친히 체험케 하신다.

 

우리는 식구잖아......

 

그리고 나서....그들을 믿게 하는 더 깊은 길

45절: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은 우리의 경험보다 더 확실한 믿음의 통로다.

말씀은 주의 못박힌 손과 발보다 더 확실한 믿음의 통로다.

말씀은 가장 친밀한 주의 사귐보다도 오히려 더 확실한 믿음의 통로다.

이게 믿어지고, 인정이 되고, 이게 납득이 되야 말씀 앞에 목숨을 건 자가 된다.

 

가장 좋은 교회는 은사가 충만한?

증거가 확실한?

사랑의 교제가 뜨거운?

물론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하고, 필요하지만 가장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이다.

 

그래서 성도는 목사의 설교를 위해, 강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은 무엇을 통해 확증되는가?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위로부터의 능력이 무엇인가? 바로 성령을 통해 .

말씀과 성령이 함께 할 때 우리는 위로부터의 능력으로 덧입혀 지는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모든 죄와 당신을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심을 믿는가?

그리고 그 분이 죄와 사망의 모든 권세를 이기고 다시 부활하셨음을 믿는가?

그 주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위해 기도하시며, 나를 믿게 하기 위해서

그 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그 상처를 내 보이면서까지 나를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함을 믿는가?

 

우리는 지금 부활의 소망과 부활의 능력이 필요하다.

 

영국 형에게서 온 메시지... (영국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번역해서 나에게 보내 준 편지)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

 

지구가 속삭였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내고 급기야 소리쳐 외쳤을 때 조차 귀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벌 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당신을 깨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지구는 도와 달라 외쳐왔습니다. 대규모의 홍수로 외쳐도 당신들은 듣지 않았고, 불타는 화염으로 외쳐도, 강력한 폭풍과 돌풍에도 당신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양의 생물들이 해양 오염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당신들은 여전히 지구의 외침을 듣지 않습니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심각한 경고에도, 혹독한 가뭄에도, 지구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끊이지않고. 욕심은 멈추지 않고, 무수한 증오에도, 하루에도 수 많은 죽음이 일어나도 당신들은 그저 당신들의 삶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지구가 보여주는 수많은 징후를 알아내기 보다는 최신 아이폰을 갖는 것이 더 중요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여기서 서서 세계가 돌아가는 그 궤도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내가 마침내 당신들로 듣게 만들었습니다. 당신들로 대피하게 만들었고,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생존에 대한 염려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깨닫고 계십니까?

지구 온난화로 지구가 뜨거워 몸살을 겪는 것처럼 당신들에게서 고열이 나고,

지구가 대기가 오염으로 가득 찬 것처럼 당신들에게 호흡곤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구가 매일 약해지는 것 같이 당신들에게 연약함을 주었습니다.

세계를 멈추게 만들어 당신들로 지구와 그 아픔을 잊게 만들던 편안함과 즐거운 외출을 당신들로부터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국과 인도의 하늘이 깨끗해지고 공기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단지 공장들이 더 이상 오염물질을 지구의 대기에 내뿜지 않게 된 것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니스의 물이 깨끗해지고 돌고래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곤돌라가 멈추는 것 만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신들은 비로소 당신들의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나는 여기에 당신들을 벌 주러 와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을 깨우기 위해 온 것입니다.

내가 떠나고 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제발 이 시간들을 기억해주세요.

지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당신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더 이상 지구를 오염시키는 것을 멈춰 주세요.

 

싸움을 멈추고,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이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시작해 보세요.

지구와 그 안의 모든 생물을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조주를 기억하세요.

 

그렇지 않다면 혹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모습으로 오게 될 거예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마치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깨우듯 이 질병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깨우고자 하는 이 글의 모습이

자신의 손과 발의 상처를 보여주시면서까지 우리를 믿게 하시면서

편안함이 아니라 평안함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갖지 않은가?

 

주님은 부활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부활의 증인이 되라 하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은 그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 시작 한 뒤로 처음맞게 되는 가정 온라인 예배라는 말씀들을 하신다.

편지 글 대로 우리를 벌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깨우기 위해서일꺼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오히려 믿지 못하고 자기 길로만 가는 수많은 성도와 교회들에게

말씀으로 돌아오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고... 단지 예배당에서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으라고....

 

부활의 주님은 그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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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교회와 성도 (아모스 5장 3-5절)

 

 

섭리 -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우연도 아니고, 숙명론, 운명론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것

하나님이 주도하시는가, 허용하시는가?

 

하나님의 주도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하나님이 허락 - 욥의 고난, 나면서부터 병자된 자.

 

왜 허용하셨을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말이암아 오랜 기간 동안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는 일

예배 드리는 것이 온세계의 관심이 되고 비판이 되고 있는 시기

 

당분간 자기 백성을 흩어 놓으신 것

성도 입장에 보면, 목사 입장에 보면 당분간 자기 백성을 흩어 놓으신 것

 

바벨탑-

북왕국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의 멸망으로

신약 -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 흩어진 교회

 

흩어질 때의 공통적 특징

모여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 보이지 않으시고

모여 있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에 어긋났을 때

 

모이는 것 자체가 뜻이 아니다.

모여서 어떤 삶을 사는가? 모여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마음이 되는가?

자기 만을 위하는가? 세상을 위하여 섬기는가?

믿음이 자라는가? 성숙하는가?

 

[암 5: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벧엘, 길갈, 브엘세바 -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가 있던 곳

그런데 그곳으로 가지 마!

그 곳이 비참하게 될 것이고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그 사이에 성전으로 오지 마

왜 성전에 오는가? 하나님 찾으러, 만나러 오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 그리로 가지 말고 나를 찾으라!

 

예배당 왔으니 하나님 만난다고 단순히 생각하지 마라.

그저 내게 보이러 와서 마당만 밟고 가는 것이다.

 

성전에 오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착각하고 스스로 만족하게 하고 내 앞에서 할 일 다했다고 하는구나.....

그런 그들을 흩으셔서 골방에서, 산에서,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만나고자 할 때....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실 때 - 자기들 까리 좋아 떡을 떼고 교제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나아가지 않는다.

왜 우리를 구원하시고 모이게 하시는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세상을 구원하고자...

 

바벨탑- 모여서 자기들 이름만을 내게 할 때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 예배당 중심의 신앙생활 - 한국교회의 성장 배경 - 좋은 역사

그런데 그렇게 모여서 사회의 빛이 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직 성도들끼리만 좋고 그 안에서만 이동하고...

 

좋은 전통이지만 그 안에서 만족하고 있으면 안된다.

예배당 안에 있으니까 괜찮다고, 할 일 다했다고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하는데....몸은 예배당에 나왔는데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지 않는다.

 

거짓 부요함.

[요 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에게 주신 말씀.

보고 있지 못하면서 본다고 만나지 못하면서 만난다고 하는 믿음,

맹인이 되엇더라면...바디메오처럼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며 부르짖을 텐데....

안주하고 만족하고,

 

심령이 가난한가? 은혜에 주리고 목마른가?

 

영적으로 죽은 자의 징후 - 교만, 판단, 정죄....

영적으로 산 자의 모습- 십자가 은혜, 더 갈급하고, 더 겸손하고, 더, 더, 주님을 알고자....

 

나를 만나지는 않고,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그저 온 것으로 만족하구나...

흩으신다. 홀로있게 한다. 묻어가지 못하게 한다.

남들을 보면서 스스로 취하고, 판단하고 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를 보게 하시는 것이다.

 

신앙의 본질 - 하나님 추구하는 것

그분을 찾고 만나고 사귀는 것.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는 것 - 기노스코 (헬), 야다 (히) - 인격과 인격이, 살과 살을 맞대듯이, 아무도 간섭할 수 없이 그렇게 친밀히 서로를 알아가는 것.

그렇게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예수를 알기 위해, 그 분을 경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를 알고 그 분 안에서 나를,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

 

주님의 관심이 교회 부흥일까? 성전 짓는 것일까?

내 안에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

내가 교회가 되는 것.

나를 통해 영혼을 담을 수 있는, 남들을 포용할 수 있는, 그 발을 씻어줄 수 있는, 주님을 따르는 자, 십자가를 지는 자. 부활을 경험하는 자.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내 목적에서 사라지고 내 신앙의 결과물에 만족하면서, 지금이 좋사오니 하면서 머물적에 하나님의 시험이 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자기 열심으로 이룬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주신 신앙의 열매, 하나님의 증거. 그 아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자녀/

 

그런데 왜 그 자녀를 바치라고 했을까? 왜 죽이라고 했을까?

 

그것이 축복이건, 성공이건, 신앙의 열매건, 그 것때문에 지금 하나님을 더 알고자 하는 갈급함이 사라질 때- 그것 죽이고 나와 교제하자.

 

우리가 골방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그 순간. 하나님은 이미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마지막 때에 알곡과 쭉정이가 갈린다. 참 신앙이 드러나고 거짓 신앙이 드러난다.

 

  •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나와 하나님과의 진실한 교제를 이루는 자- 더 깊은 신앙으로 그들의 신앙이 성숙되어져 갈 것이다.
  • 그런데 이런 시기를 만나서

처음에는 주일에 예배당에 나가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하던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지고, 느슨해지고,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도 괜찮구나. 꼭 예배당 나갈 필요 없구나...하면서 신앙이 헤이해져 가는 사람들은

예배당 신앙생활보다도 더 떠나가는 사람들은 신앙의 쭉정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이 거하시고 우리 몸으로 성전된 우리 성도는 교회가 필요없는가? 교회는 공동체이다. 모이고 부딪끼고 하면서 신앙이 자라고, 영향력을 발하고,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과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

흩으신 우리를 하나님께서 다시 불러 들이신다.

흩으심을 경고하신 하나님은 때가 차매 흩어졌던 백성들을 불러들이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나타난 가장 큰 기적

홍해를 갈른 사건? 40년 동안 만나를 먹은 사건?

여리고성을 친 사건? 바다 위를 건넌 사건? 오천명이 배불리 먹은 사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가장 놀라운 기적

 

2천여년을 이스라엘을 떠나 있던 백성이 나라가 망한지 2500여년 만에, 이스라엘 영토에서 쫓겨난지 1800여년 만에 하나님이 그 나라를 다시 주셨을 때 1800여년을 떠나있던 민족이 그 나라로 모여 나라를 이룬 사건.

 

[렘 16:14-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 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AD 135 하드리아누스 황제 이스라엘 전역 985개 성읍을 불태우고 유대인 58만명을 학살한 후 강제로 추방하고 그 지역에 팔레스타인 민족을 이주시킴으로 이스라엘 땅에 거하던 모든 유대인들이 추방

중세 때 십자군에 의해 대량 학살

1350년대 흑사병때 그 원인을 유대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어 그렇다는 이유로 유럽 일대에서 유대인 대량 학살

크고 작은 유대인의 핍박이 계속되다가 세계 제 2차 대전 때 독일에서 600만명의 유대인 대량 학살 (전 세계 유대인의 60%가 죽고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110만명 사망)

 

그 사건이 끝나자 마자 이스라엘 이라는 영토가 기적적으로, 전혀 기대할 수 없을 때에...이스라엘 국가가 전세계 승전국 UN에 의해서 주어진 것.

 

지금의 상황으로는 언제 다시 모일지, 한달 후가 될 지, 몇달 후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때.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면 우리는 다시 모일 것이라는 것.

다시 모일 그 때, 흩어졌던 유대인, 다 죽어가고, 멸시받고,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강력한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었듯이

흩어졌을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 분을 만나기를 애썼던 자들은

다시 모였을 때에 힘을 발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성도, 모든 교회, 아니 전세계에 무기력하고 안일함에 빠져있던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기회일 것이다.

흩어진 교회가 된 성도들이여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양치기 아모스선지자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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