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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절 - 심령이 가난한 자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찌게 - 1위 - 된장찌게, 2월 - 김치찌게

왜 그런 찌게들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답변 - 복을 복을 끓어서....

복을 좋아하는 민족

 

마태가 바라본 복 - 하나님 나라의 복을 대표하는 예수님의 설교

같은 설교를 다룬 누가복음의 표현 (눅 6:23) -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 심령이 가난한 자

- 왜 누가복음의 표현 위에 심령이라는 표현을 덧붙였을까?

 

구약적 배경이 필요하다.

 

[마 4:12-17]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언약의 땅으로 들어오는 그 행렬을 이사야가 꿈꾸면서 소개한 내용

회개의 본질 - 뉘우침이 아니라 연약 백성들이 먼 땅으로 끌려 갔다가 다시 언약의 땅으로 회복하여 돌아오는 행렬

- 그 땅에서 돌아오라.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으니 지금 있는 그 곳에서 돌아와 이리로 오라.

 

조건절이 아니라 초대된 백성들의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조건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설명이다. 조건절이 아니라 결과절이다.

심령이 가난해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의 삶을 보니 그들의 삶은 심령이 가난하였도다.

 

"심령이 가난하다"의 의미

1. 이사야의 의미에서...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마음이 상하다 - 억눌리고 짖눌리고 지친 상태 - 너덜너덜한 상태

포로된 자 - 자유

갇힌자 - 놓임을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이사야가 말한 마음이 가난하다고 말한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

 

애굽의 포로된 상태와 바벨론의 포로된 상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물리적 가난은 똑같다. 사회적 가난도 똑같다.

애굽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알았어도 예배를 경험하지 못한 무리들

바벨론의 포로들 - 예배를 경험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들

 

경제적, 사회적 가난 위에 더해진 가장 고통스런 가난- 믿을 데가 없다. 의지할 데가 없다. 기도할 데가 없다.

 

예배도 중단되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자, 노동해도 삯을 받지 못하는 때

고향의 소식 - 성전은 훼파되고 예배가 사라진......-

바로 그 상태 - 가난 (심령이 가난한 상태)

 

내 안에, 이스라엘의 공동체 안에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자원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 - 누군가 우리를 구원할 자, 되돌릴 자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좋았던 때, 사실은 아직 오지 않은 때이지만 그 때로 나를 데리고 갈자를 기다리는 상태

 

그 누군가....바로 메시야.

 

  • 히브리적 가난함 - 물리적, 육체적, 심리적, 종교적으로 내 안에 이것을 해결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오직 하나님밖에는 이것을 해결할 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상태

 

돈이 있어도 살 것이 없는 상태, 얼마든지 더 줄 수 있는 데도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가 없고...가난을 경험하는 상태 (지금의 상태)

그렇게 잘 산다고 하던 사람들이 가족의 장례조차도 치룰 수 없는 상태 심리적 가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가난

 

2. 다윗의 가난 - 그는 왕이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였고, 찬양하는 자 - 그가 경험한 가난은...

 

[시 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다윗 - 왕이 뭐 이런 표현을 하는가 - 지난친 엄살, 공감할 수 없는 가난?

 

[시 40:1-7]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이 무엇이었을까?

다윗의 인생에 가장 기막혔던 사건 - 밧세바와의 사건 - 하나님 앞에 감추었던 나의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 - 그 때의 심정 - 내가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출생하였나이다.

자기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죄악의 상태...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 반석, 곧 구원, 주는 그리스도시요.

 

그 깊은 죄의식과 고통 속에서 나를 그리스도 위에 세워 건지신 주.

새 노래 - 나의 모든 죄와 죄의식을 용서받고 드리는 노래.너덜너덜해졌던 마음이 회복된 후 드리는 노래.

그 새 노래를 보고 - 듣는 것이 아니라 회복된 다윗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를 의지하게 되었다.

가난함이라는 것 -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분을 통하지 않고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

 

다윗이 받은 계시 - 하나님의 음성

6-8절)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 다윗이 받은 계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 다윗의 말인가?

No, 바로 오실 이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히 10:1-7]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매일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치지 않는 죄- 영원한 제사장, 단번의 예배, 더이상 그 수렁과 구덩이같은 죄악에서 헤어나오게 하는 그런 제사를 꿈꾸는 자.

바로 다윗이 받았던 그 기사를 예수님의 언어로, 단번의 제사, 단번의 제사장, 더 이상 죄악 속으로 다시 빠져들지 않는 그 심령으로 우리 안에 오신 메시야.

 

왜 첫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 한 것인가?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의 가난 - 을 해결할 길이 없다.

그 가난이 바벨론 백성들이 경험했던 물리적, 사회적,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그냥 본 것이 아니다. 있기에 쳐다 본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주목하여 본다는 의미다.

그가 본 무리는 어떤 무리인가?

 

[마 4:23-24]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 약하고 병든 자. 예수님이 찾으시는 자. 예수가 주목하는 자.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무리 중에 제자들이 나아왔다.

어떤 제자들인가? 자신이 약하고 병든 것을 아는 사람들. 예수가 필요한 자.

 

팔 복의 이야기는 불신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자녀들에게, 주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

 

2절)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입을 열어 가르치신 내용 - 그 안에서 나오는 내용

사람에 대하여 , 하나님 나라

 

원래 어순

복되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하늘나라가 너희들의 것이니.

왜 복된가? 심령이 가난해져서...

김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겸손

 

베드로 -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사야 -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 주님 안에 비친 나를 보는 것

 

부자 청년 -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다 지켰나이다.

그럼 그것 다 내려놓고 나를 따르라.

근심하여 돌아갔다.

그는 채울 준 알아도 그것을 내어놓을 줄은 몰랐다.

 

나는 번제와 속죄제도 필요없다. 바로 내 안에 사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부부의 세계> - 정상인 사람이 없다. 다 비정상

좀비 영화 -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 - 결국 인간.

40대 이상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겪는 병 - 불면증, 우울증, 두통...

 

여러분은 괜찮으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장애가 없습니까?

너무 가난한 마음으로 여유도 잃고, 정상적인 사고도 되질 않고 내가 원하는 말도 표현 할 수 없고 남의 말도 그대로 들을 수 없는...나 혼자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

스스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태...

 

그런데 예수님이 그러한 우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

이리로 오라 하십니다. 나랑 만나자.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날 정죄치 않으시고 내 모든 죄를 단번에, 완전히, 사하시고 자유케 하시고 해방시키시는....

 

그리고 하늘나라가 바로 그런 자들의 것이다.

배운 자, 놓은 자, 잘난체 하는 자, 교만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병을 아는 자,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 그 고통 속에서 너덜너덜 난 자.

 

바로 하늘나라는 너희들의 것이라고.... 너희들이 그 나라의 주인이라고...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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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23-24절 상실 너머에 있는 형통의 세계

 

요셉 - 라헬로부터 난 아들, 사랑하는 자로부터 난 아들. 성경은 특별히 사람하는 자로부터 난 아들에 대한 기사들이 많다.

솔로몬 - 밧세바, 잘못된 관계였지만, 다른 처들 - 거의 정략결혼, 그러나 밧세바는 자기 눈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 다른 아들들보다 솔로몬을 가장 사랑했다.

사무엘 -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태어난 아들...

 

우리 성도의 위치

[시 2:7-8]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누구로부터 나은 자식인가?

[행 13:32-33]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우리는 예수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자 독생자 예수를 통하여 그 분의 자녀가 된 자들. 사랑받는 자.

 

요셉 -

  • [창 37:3-4]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자. 홀로 집에 남아 아버지와 함께 유하고, 남자이면서도 혼자 채색옷을 입고....형들은 일하러 가고. 편애 중의 편애..

그러나 요셉은 그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형들에 대한 배려도, 형제우애도 잃어버리고(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 자신이 사랑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인격적으로 볼 때 미성숙한 자. 형제들 사이에서 밉상.

cf) 사도 요한 -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 - 그런데 그는 성령 받은 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베드로를 받들고, 마리아를 받들고, 자신의 범위를 넘지 않고 섬기는 자, 사랑의 사도

여기에 비해 요셉은 사랑받는 것을 통해 남들의 미움을 받는다.

 

자기의 꿈을 가감없이 형제들에게, 두 번씩이나 고함으로 그렇잖아도,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함으로 형제들로부터 질투를 받았을 터인데 꿈이야기를 통하여 이젠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도 형들 위에 군림하려는 요셉을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을 수 벗다.

  • [창 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 그의 꿈보다 더 미운 것, 그의 말...진실한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배려가 없는 진실은 오히려 남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말을 통해 배려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형들이 악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감정을 보여준다.

 

어느날 야곱이 세겜 땅에서 양치고 있는 형들에게 심부름을 보낸다. 밥을 갖다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창 37: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평소 때와 같이 감시자로 보낸다. 고자질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데 오히려 더 고하게 한다. 이미 다른 아들들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금이 간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금이 간 형들은 아버지에게 이른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머물면서 양들을 친다.

아버지는 편애하고 형들은 불순종하여 아뢰지 않은 다른 곳에 진치고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가오는 요셉을 보고 유명한 말을 한다.

 

  • [창 37:19-20]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이 구절을 잘 기억해 두자. 그리고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이다.

 

  • [창 37:23-2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채색옷 - 요셉이 사랑받음을 벗기는 것, 그가 가진 모든 사랑을 벗기고 빼앗아 버림.

그리고 구덩이에 던진다. 구덩이는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이다. 누가 꺼내주기 까지는 나올 수 없다.

깊은 낙망, 깊은 우울증. 깊은 슾픔, 깊은 절망 -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 설명을 붙인다. 그 구덩이는 빈 것이고 그 속에 물이 없다.

왜 이 구절을 붙였을까? 무언가 의미를 주고자 함이다. 빈 것이고 물이 없다는 것은 사랑을 잃은 자의 마음이다.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물이 없음은 이제 받아왔던 모든 은혜가 사라진 상태다.

이후로부터 요셉의 삶은 낭떠러지를 떨어지는 것 마냥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다.

사랑받는 자녀에게서 옷이 벗겨진 채로 노예 상인에게 팔려가는 인생이 된다.

꿈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사는 이유도, 희망도 사라진다. 꿈이나 비전같은 말은 요셉의 삶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사치가 되었다.

 

적이 아닌, 악인들이 아닌 형들에게 배반당한 요셉 -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다 사라져 버림.,

아버지의 사랑이 속수무책으로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원인을 찾아보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도록 나를 이 곳에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 야곱이다.

 

상실 - 자발적인 포기는 상실이 아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내가 갖고 있는 것, 겅제로 빼앗기고 사라져 버릴 때 - 우리는 그것을 상실이라 한다.

요셉은 지금 전형적인 상실의 삶을 살아간다 - 그가 어떠한 고통을 겪었을 지는 상실의 깊이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다.

부정, 저항, 포기, 낙심, 우울, 생의 의욕이 완전히 꺾여짐.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 - 잃어버린 것을 그 것보다 더 한 것으로 채우는 것 (욥- 나중 받는 것으로 이전 잃어버린 것들을 극복한다)

가치 없는 것으로 그 상실을 극복하고자 할 때, 그 때 많은 사람들은 중독과 일탈과 타락의 삶으로 더 깊숙히 추락한다. 그 길은 사망의 길이다.

 

  • 보디발의 집에서 적응한다. 그럭저럭 삶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도록 노예의 삶에 잘 적응한다. 눈에 띠는 노예가 된다.

요셉은 집에서 궂은 일을 해 본 일이 없다.그런데도 이방 땅, 다른 문화, 다른 언어의 사람에게 팔려가서 온갖 굳은 일을 해가며 최고의 일꾼으로 인정받는다.

.

사랑받는 자녀에게서 노예로서의 삶 ->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성경은 친절히 설명해 주지 않지만 하나의 구절을 통해 힌트를 준다. .

 

상실을 대체하는, 누군가가 그에게 있었다.

 

[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요셉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이 요셉의 인생에 등장.

사랑받는 자녀였을 때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던 하나님이 요셉의 삶에 등장한다. 언제? 그가 상실의 극한에 있을 때에

꿈을 잃어버렸을 때에, 형들에게 배반당했을 때에, 물이 없는 구덩이에 빠졌을 때에....

 

그런데 그 전에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지 않았는가?

아니, 그런데 그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는 자기 조상의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알았지 자신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나에게 경험된 하나님이다.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비로서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을 만난다. 아버지에 사랑 때문에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의 현존을 경험한다.

그 분은 언제나 존재하시지만 그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내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경험할 때 그 존재는 현존, 임재, 동행이 된다.

 

포기 할 만할 때에 그의 삶에 생명력이 들어온다.

아버지의 집에서도 하지 않던 남의 집을 자신이 관리한다. 자신이 청소하고 운영한다. 모든 것을 관리한다. 놀라운 생명력이다. 포기의 순간이 오히려 그에게 생명을 주는 시간이 된다.

 

형통 - 찰라흐

외적 환경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영과 혼이 만족되면서 오는 만족과 기쁨.

바로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는 것.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형통이다.

삶에 동기가 생기고 생명력이 생긴다.

그런 형통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주어지기를 축원한다.

 

  • 또 한 번의 시험 - 두 번 째 상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겼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힘.

죄를 이겼는데 그 죄값을 치룸,.

이제 그 집을 자기 것처럼 여기고 살 소망을 가졌는데 그 집을 빼앗기고 감옥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상실이 찾아온 것이다. 어떤 상실이 더 큰 상실일까?

 

[창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는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붙들었다. 보디발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했다. 그래서 신나게 일하고 그 결과 하나님에게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인정받았다. 칭찬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오히려 그를 감옥에 들어가게 한다.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신앙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첫 번째 상실이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긴 상실이라면 두 번째 상실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상실이다. 어떤 상실이 더 컸을까?

두번째 상실은 그간 버텨온 요셉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상실이다.

첫번째 상실이 그의 외적 환경을 빼앗는 상실이면 두 번째 상실은 그의 내면을 뒤흔드는 상실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첫 번째 상실을 신앙으로 극복하지만 두 번째 상실을 만나게 되면 무너진다. 넘어진다. 일어서질 못한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생긴다.

 

[창 39:20-23]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어떤 상실 - 하나님에 대한 신뢰 상실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찾으면서 견뎠는데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깨어졌을 때에....

그런데 그 때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상실을 견딜 수 있었을까?
이 상실을 통해 요셉이 얻은 승리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내 기대와 내 생각 넘어에서 행동하시는 분이니까... 그 분의 행동은 내 생각 밖에서 움직인다.

 

[사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가 겪는 가장 흔한 실수

-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꺼야... 자신이 주도하고 해답을 내리고 하나님을 이끌려고 한다. 그리고 그대로 안되면 넘어지고 화내고 실망한다.

그런데 진정한 신앙의 자람은 내 마음대로 역사하지 않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이다. 그 때에 비로서 나보다 크신 하나님을 만난다. 내 존재 위에 계신 하나님께 의지한다.

그 전에는 말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지만 결국 내 믿음, 내 신념을 기대사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곧 내 힘의 원천이다.

 

그런데 내 뜻대로 안되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 그리고 그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 때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를 더하신다. 은혜를 받게 하신다. 요셉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셉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포기하지 않도록, 그에게 사랑을 주신다.

 

17살에 끌려와서 27살 떄 그 감옥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또 붙든다.

 

성도가 하나님께 실망할 때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열심히 하는데도 오히려 내 삶이 무너질 때

 

내가 상실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상(iMAGE)일 뿐이다.

내 과거의 믿음을 넘어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부활 전의 예수님의 상에 갇혀 있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어제의 믿음을 깨뜨리고 오늘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참 모습이 실날처럼 보여진다.

말씀이 새롭게 보여진다. 그 분의 어떤 맒씀도 허투로 보지 않는다. 내 경험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 안에 내 영혼을 드린다.

 

감옥에서 3년만에 총리가 된다. - 오늘 새벽에 나눈 사도 바울의 아바리아에서의 3년....

 

[창 42:8-9]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 요셉이 꿈을 붙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루 하루를 살았더니 어느날 문득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이 결국 자신에게 주신 말씀, 자신에게 주신 꿈이 이루어짐을 보게 된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갔을 때에 그는 과거의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말도 잃어버렸지만 우리가 그 말씀을, 꿈을, 비전을 잃어버려도 결국 하나님께서 그 일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꿈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여호와로 경험하는 삶이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지난 후에 알게 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을 때에 형들에 대한 사무친 억울함과 원망도 사라지게 된다. 상실을 넘어 형통으로, 상실을 넘어 화평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뉴욕에서 목회하는 목사님과 통화

예수 붙들자. 예수 바라보자. 견디고 참고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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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개요: 부부가 세시간 간격으로 참혹한 죽음을 당하는 사건

4장까지 한껏 고조되었던 성령의 역사, 교회의 역사가 멈칫 하는 사건. 그 이후에 줄줄이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리파 유대인의 분열사건, 스데반의 순교와 이어지는 교회의 핍박사건. - 그 시작이 되는 사건이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아니니아 :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삽비라: 보석, 아름답다

 

헌금을 떼어 먹었다가 죽은 사건인가? 그것이 죽을 이유인가? 만약 그것이 이유라면 우리 성도들 하나라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 사건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하나님이 설립하신 두 개의 공동체 : 가정과 교회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러한 가정이 깨어진다. 왜? 그들이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

누구의 잘못인가가 핵심이 아니다. 누구의 책임인가를 가지고 오랫동안 여성을 핍박

 

  • 죄를 짓게 하는 세력이 있다. 사탄의 존재
  • 죄를 짓게 하는 방법: 극단화, 과장화 -> 거짓과 죄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셨다.

네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넘어질 때 - 상황이 극단적으로, 과장적으로 생각되고, 느껴지고, 경험됨. 애굽에 있었더라면 배불리 먹고....

- 진리를 어느순간 바꾸어 버린다. 사탄은 과장된, 극단적인 우리의 생각의 틈을 파고든다.

그 거짓이 무얼 건드리느냐? 바로 탐심, 정욕-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

 

  • 탐심과 정욕의 결과 -> 가정이 깨어지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

깨어진 것은 가정, 에덴 동산은 그대로 있으나 추방당한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 그 이름은 행복

에덴동산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추방당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있지만 탐심과 정욕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에서부터 추방되어진다.

 

가정을 깬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깨는 사탄의 전략

[행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윤리적 실패가 아니다. 그 이면에 사탄이 움직였다.

가정을 깨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깨어질 수 있는 시험이 왔다.

 

1. 교회는 영적인 세력의 방해가 분명히 있다.

내부적으로, 과학적으로만 접근- 심리학, 상담학....

물론 사람을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 뿐이 아니다. 분명 사탄의 방해, 참소, 유혹이 있다.

그것을 외면하고 분별하지 못하면 이것을 이길 수 없다.

모든 것을 영적으로 취급하는 것 - 김기동 성락교회 - 이단

그러나 모든 것에서 영적인 것을 외면하는 것 역시 잘못된 신앙, 또 다른 이단이다.

 

교회마다 넘어지는, 깨어지는 돈 문제, 여자 문제, 세습문제, 이단 문제..분열문제 -> 개인적 일탈인가? 그 뒤에 역사하는 사탄의 세력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조직적 방해, 영적인 전쟁이 분명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개인에 대해,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지만 사탄에 대해서도, 그들의 공격과 방법에 대해서도 놓치지 말고 분별해야 한다.

 

[엡 2:1-2]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개인의 문제도 중요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영적 싸움, 우리의 존재 뒤에 역사하는 영이 있다.

 

2. 사탄의 방법

[행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사도들이 헌금을 강요했나? 작정헌금하라고 했나?

자원적 헌금 - 자원하는데 일부를 감추었다.

 

-> 이단이나 잘못된 부흥사 - 하나님 드릴 헌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벌받는다.

성도를 위협하는 도구로.... 아니다.

헌금의 마음은 조금도 강요됨이 없이 자원하는 것이고, 감사의 열매이다.

 

그러면 그들이 왜 헌금을 드리려고 했는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드린 동기는 무엇인가?

[행 4:34-35]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러나와서 도왔다. 그들을 먹였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 때 꿈쩍도 하지 않닸다. 언제 그들이 밭을 팔아 헌금을 내려 하는가?

[행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오늘 새벽시간에 나눈 배경 -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 - 돌아가지 않고 그 곳에 머뭄. 머문 자들을 통해 자발적으로 낸 헌금

그런데 36절 - 그 중 한 예 정도가 아니라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사건...

34절의 밭 - LAND

37절의 밭 - FIELD (어마어마한 양의 땅을 내어놓아 초대교회에 소문이 나고 그를 볼 때마다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 바나바- 로 불림)

 

요셉을 바나바라고 부름 - 사도들로부터, 성도들로부터 너도나도 칭송을 받음.

 

이것을 누가 보았을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들의 자원함은 무엇? 부러움과 시기함을 통하여...

그런데 그 흉내를 내다가 스스로를 속임- 그 칭송은 받고 싶은데 그 밭을 팔려니 아까운 마음, 거짓으로...

 

물질로 칭찬과 존경을 사려고 함 - 마술사 시몬과 같은...

헌금은 자원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 남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거짓으로...

 

  • 그래도 너무하지 않느냐?
  • 하나님이 주신 기회 - 대수롭지 않게 거짓으로... 회개할 기회...

[행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8-9]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린 것 - 거짓과 탐심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이유 - 거짓과 탐심

 

2. 이 사건을 통해 교회와 성도에게 주시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글로 읽는 우리들의 반응 - 당혹스러움, 하나님 너무하시네....

그런데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반응

 

[행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행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신앙의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성격 - 두려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두려움

 

구약의 하나님 - 두려움.

신약의 그리스도 - 사랑의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

구약 속에서도 한결같이 흐르는 것 - 그 분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예언서, 시편, 선지서에 반복적으로 흐르는 구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백성들이 느꼈던 하나님의 모습 - 엄위하신 하나님. 두려움의 하나님

 

신약의 그리스도 -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그 삶을 통해서 잘못된 종교인들을 향해 분노하시는 하나님

교회의 장사치들을 몰아내시는 하나님,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하나님

그럼에도 그런 모습을 잃어버린다.

 

사랑과 공의 - 사랑하시지만 그 분은 동시에 심판하시는 주이시다.

 

  • 경외의 반대는 무엇인가? 무시, 경시이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우상숭배하며 사는 이스라엘 백성에세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며

 

[민 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우리에게 없는 것 - 그리스도의 사랑은 다 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잃어버렸다.

대제사장 -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항상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

하나님의 현현을 본 사람들은 화로다 나로 죽게 되었구나....

 

그런데 우리는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슨 잘못을 해도 다 용서해 주시는 유덕한 할아버지처럼 생각한다.

두려움을 잃어버리면 남는 것은 불순종이고 지기 마음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기서의 반복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지기 힘으로 이기려는 바벨탑의 역사만이 남는다.

경건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성경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질병을 두려워하고, 사탄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회복되니 그 다음 구절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행 5: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아니까 하나님이 행하시는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아니까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 시작한다.

마지막 때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는 때, 사람들은 모이기를 폐한다고 말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 - 나는 성도를 위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한달 넘게 전세계 교회가 예배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죽어가고 있는 이 사태는 분명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가지라는 경고라는 것이다.

 

아이들과 가정예배 때마다 주는 말

지금은 방학이 아니라 고통의 때다.

지금은 HOLYDAY가 아니라 Crisis고 위협의 때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잠시, 또 무너져버린 생활 패턴을 되찾지 못한다.

 

기름값이 올라서 문제가 된 적 - 그 기름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전쟁을 일으키고..

사상 초유의 사태 - 기름 값이 Minus - 가름 한 배럴을 파는데 돈을 주면서 제발 가져가 달라고....

비행기가 뜨지 않으니까 기름을 쓸 뗀 없고, 놔두면 기름 생산이 한 번 중단되면 재가동하는데 엄청남 돈이 또 들어가니까 돈을 주고서라도 저장되어 있는 기름을 팔려는 것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비싸다고 하는 것들은 무가치해지고 생필품들은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마스크, 휴지, 쌀 - 맛배기였지만 이런 초유의 사태는 마지막 때의 시작 일 뿐...

 

복된 두려움을 회복하길 원한다. 그 분을 두려워함으로 말씀이 보여지고, 기도가 쉬어지지 않고, 진정한 예배가 여러분의 심령에서부터, 가정에서부터 회복되기를,

진정한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이 사태를 통해 교회 안의 거짓, 교회 안의 하나님을 멸시함과 남을 시기함과, 거짓과 탐심이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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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절 (두 가지 시선)

 

제 구시 - 오후 세시: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는 시간

11시 예배 - 아침과 점심의 중간 - 가장 중요한 시간.

 

성전에 올라갈 새 -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는 것

예수가 성전 척결을 하면서 하신 말씀 - 이 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다른 목적으로 성전에 온 사람. -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서... 날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 지금 나이 40살

지금도 당시도 사회의 가장 주축, 중심의 시간

그런데 나면서부터 육체의 병으로 인해 그런 중심을 잃어버리고 그저 구걸하기 위해서 성전에 오는 사람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만 있는 자.

-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자. 성전 안의 예배를 경험해보지 못한 자.

마가 다락방 안의 사람들과 다락방 밖의 사람들.

 

은혜의 안에 있는 사람 - 오직 주만, 오직 성령만

은혜의 밖에 있는 사람 - 당황하고, 놀라고, 조롱하고---오직 사람만 보이는 사람.

 

은혜의 소리는 듣고, 그 사람들은 보지만 정작 그 은혜는 누려보지 못한 자.

 

교회 문 앞을 기웃거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전 안, 신앙 안, 믿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성전과 세상의 경계선 상에서 서있는 신앙이어서는 안됩니다. 신앙 비슷한 것이어서도 안됩니다. 이왕 신앙생활 한다면 성전 깊이 들어와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3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본다. - 그리고 구걸한다.

4절 -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 두 시선이 마주치는 사건

그는 받기를 원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받기를 원하는 자의 대상은 돈이다.

주기를 원하는 자의 대상은 그리스도다. 은혜다.

 

받기를 원하는 자와 주기를 원하는 자가 만나면 곧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받는 대상이 다르고 주는 대상이 다르면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받아야 사는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과 우리가 받고자 하는 것이 다를 때 거기엔 진정한 만남이 있을 수 없다.

 

베드로가 그 불일치를 깨뜨리는 선언을 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 네가 얻고자 하는 것 내게는 없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내게 무엇을 찾는가?

우리는 무엇을 주고자 하는가?

우리에게 없는 것은 은과 금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

가장 귀한 것. 누구에게? 그 은혜를 아는 자에게....

 

이것이 합쳐질 때에 성령이 임한다. 아무리 받고 싶은 사람과 주고 싶은 사람이 만나도 그 대상이 바르지 못하면 항상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대상이 그리스도로 합쳐질 때에 은혜가 임한다. 역사가 임한다.

그 예수는 바로 그 사람이 가장 필요한 것,가장 근원적인 것- 멈추어진 인생이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주었던 것 - 은과 금

물론 고맙고 선하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시간이 지나면 계속 사라지는 것. 가져도 가져도 만족이 없는 것.

따뜻한 마음도 중요하지만 예수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딱 거기까지다.

 

돈도 주고 예수도 주면 안되는가? 아니다. 돈을 주면 예수를 찾지 않는다. 예수를 바라지 않고 돈을 찾는다.

 

선교학 강의 - 한국 선교에 대한 세계의 비판 - 그들은 복음이 아니라 돈을 전한다.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름을 붙인 교회만을 짓는다. 그들은 십자가의 선교가 아니라 십자군의 선교만을 할 뿐이다.

 

내게 있는 것 - 여러분에게 예수가 있는가?

여러분 안에 예수가 있는가?

그것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예수 대신에 돈을 남겨주고자 하지 않는가?

교회가 예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집 대신에, 카페, 체육과, 콘서트홀.... 이런 것들에 신경쓰지 않는가?

 

내 부모.... 나에게 남겨주실 동산, 부동산은 하나 없지만 내게 주신 가장 귀한 것. - 예수

형제가 모두 예수를 물려 받았다.

얼마나 감사한가....

 

기적 - 뛰어 서서 걸으며....

그것 보다 더 큰 기적 - 성전으로 들어갔다. 한번도 들어간 적 없는 성전 안의 세계, 은혜 안의 세계, 깊은 물의 세계, 지성소의 세계를 경험했다. 이것을 경험 한 적 없는 자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경험한 자, 그리로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하고 싶지 않은가? 뛰어 서서 걷는 것 보다 가장 큰 기적

-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인생의 무게가 떠나갔다. 노래 할 수 없는 자가 노래한다. 하나님을 향해 찬양한다.

 

노래는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서, 나를 향해서 부르는 것

찬양은 그가 좋아서, 그를 위해서, 그를 향해서 부르는 것.

어떤 환경에서도 변치않는 그를 위한 노래... 찬양.

 

남에게 돈을 구걸하던 그, 관심과 도움만을 구하던 그가 비로소 진정으로 예배하며 찬양했다.

 

앉은뱅이 - 홀로 설 수 없는 자. 홀로 걸을 수 없는 자.

그가 예수를 통해 걷고 뛰고, 그리고 찬양한다. 성전 안에 들어가 예배한다.

 

떄로 우리는 영적 앉은뱅이가 된다.

주님은 여전히 오늘의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데 우리는 구원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일까 관심을 가질 수는 없을까?

우리가 처한 환경을 통해, 우리가 짊어진 감정과 관계와 짐과 고난과 광야를 통해

그가 주시고자 하는 것, 그가 주시는 평안, 그가 주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 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우리에게도 앉은 자리에서 뛰어, 서서, 걷는 역사, 성전 안의 깊은 곳을 체험하는 은혜, 노래가 아닌 진정한 찬양이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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