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82020  이전 다음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로고스 교회 /주일예배 설교'에 해당되는 글 322건

  1. 2020.06.13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
  2. 2020.06.06 마태복음 5장 6절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3. 2020.05.29 온유한 자 (마태복음 5장 5절)
  4. 2020.05.23 마태복음 5장 4절 (참된 애통)

마태복음 5장 7절 긍휼

 

지난 주 설교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어떤 의인가? 하나님의 의

내가 의로와지기 위해서 의롭게 되기 위해서 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말슴에 길들여 지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길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내 노력과 내 의지만 가지고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음을 절절히 깨닫고 

내 안의 성령이, 주님의 은혜가,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예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왜?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할 수록 우리가 깨닫는 것은 말씀이 날 거룩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요

내 안에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이 자꾸만 나오기에 주님께서 날 불쌍히 여기사 날 다스려 달라고, 인도해달라고, 함께 해 달라고...주리고 목마른 것 

심령이 가난한 것이 내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라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은 

말씀 생활 하면서, 기도생활 하면서도 여전히 거룩해지지 못하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씀 안에 비추어진 나를 바라보며 목말라 하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신 복? 배부를 것이다. 

 

무엇으로? 다시 한 번 말씀으로, 은혜로, 하나님의 통치로, 하늘의 만나로.... 

 

지난 주 까지의 복 - 내면의 복,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복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열리게 되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 

 

이제 다섯 번째 복 부터는 구체적인 내 삶 가운데서 펼쳐지게 되는 하나님 나라 사람들의 모습. 

그 첫 번째 

[마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 당시의 사회에서 통용되던 긍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 부모는 오직 건강한 자녀만을 키울 책임이 있다.  

세네카 - 건강하게 출생하지 못한 자는 신의 저주를 받은 자요, 또한 저주받은 삶을 산다. 

 

사랑받고, 대접받고, 존경받고, 인정받고 ->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고, 자격 없는 자가 있다. 

어떻게 저러한 철학자가 이런 말들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당시만 그런가? 그들의 말은 지금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가? 

 

지굼도 여전히 세상은 받을만한 사람에게만 베풉니다. 은혜도 그렇고 상도 그렇고 축하도 그렇다. 상을 받을만한 사람, 축하를 받을 만한 사람, 은혜도 받을만한 수고와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사랑도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만 베풀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기면 분노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속상해한다. 

 

2. 이와 반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긍휼은 무엇인가? 

 

먼저 구약에서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집약한 단어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인애 - 헤세드 - 하나님의 성품 -사랑, 긍휼, 자비로 표현

그 하나님이 예배보다 백성들에게 더욱 원하신 것 - 바로 헤세드 - 인애, 자비, 긍휼, 사랑 

하나님의 무엇을 알기를 원하나? 바로 그 분의 헤세드. 그 분의 사랑, 긍휼 

 

긍휼- 구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을 집약한 단어 

 

[애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그 긍휼은 무엇인가? 

 

  • 긍휼은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따스한 손을 내미는 것이 긍휼이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것이 긍휼이다. 그저 사랑하고픈 마음으로 베풀기만 하는 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은 누구의 마음인가?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는 자녀를 보면 돕고 싶다. 못하면 대신 해 주고 싶고 필요한 것 있으면 사주고 싶고, 말 안들어도, 때로 애 때문에 속을 태우고, 고생을 해도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피곤해도 자녀에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바로 긍휼이다. 

긍휼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내 옆의 이웃에게, 내게 맡기우신 영혼에게 넓히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46-47에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가족에게 문안하는 것은 긍휼이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죄인 취급을 하던 세리를 사랑하고, 짐승 취급을 하던 이방인을 문안하기 위해서는 긍휼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긍휼은 자격을 묻지 않고,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베프는 사랑이다.  

 

  • 그래서 긍휼에는 조건도 없지만 대가도 없다.

 

대가를 바라고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있는가? 내가 널 키우는 데 얼마 들었으니까 너 크면 갚으라....

아니 다 주고 키워줘어도 죽을 때까지 더 남겨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글흉은 그 마음을 이웃에게로 향하게 한다. 다른 사람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람에게 부모의 마음을 주신다.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은 마르지 않는다. 

 

사랑하여 죽고 못살던 연인들이 왜 헤어지나? 서로 바라는 것이 채워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휼한 마음은 대가를 생각지 않는다. 아니 그 모든 대가를 주님이 이미 치루셨기에 감사함으로 행한다. 

 

  • 긍휼은 단순히 동정이나 불쌍한 느낌의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긍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언제나 마음과 행동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긍휼과 짝이 되는 단어 - 성실 "지속되고 반복되는 행동" 

[롬 12: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우리말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 ‘엘레에오’는 마음으로 느끼는 자비, 용서, 친철, 은혜의 구체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즉 마음과 행위가 동반된 것이 긍휼입니다.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직접 병문안을 가거나 아니면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전해 주고, 가슴이 답답한 일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시간을 내어서 들어준다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긍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언제나 마음과 행동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설파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참된 긍휼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안 인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때 율법사가 이같이 답했습니다. (누가복음 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우리말 “자비”로 번역된 단어가 ‘엘레오스’ 긍휼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 저에게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윗입니다. 다윗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둘람 굴에서의 다윗.

[삼상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에게 긍휼이 없었던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광야에서 그 400명을 거둘 수가 있었겠습니까? 압제 받은 자, 빚을 진 자, 원통한 자, 억울한 자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한들, 어디 자랑거리나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을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긍휼을 베풀었던 400명을, 하나님은 다윗의 용감한 군사로 만드셨고, 그 400명의 손으로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셨고, 그 400명을 통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다윗의 거처를 광야의 동굴에서 이스라엘의 왕궁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랑의 출발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4. 어떻게 긍휼한 자가 될 수 있는가?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예수 닮을 수 있다. 

예수는 긍휼히 여기는 자의 모델이 되시고 원천이 되신다.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으셨겠습니까?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긍휼이 불붙듯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여전히 불의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믿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이 없었던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나 있었겠습니까?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이처럼 귀한 예배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들 간에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긍휼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의 긍휼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그 분의 긍휼하심을 닮지 못한다. 

주님은 긍휼을 넘어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신다고까지 하셨다. 

체휼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체험하시면서 함꼐 하신다는 것이다. 

 

5. 결론 

신앙인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때 

기도 중에나, 찬송 중에나, 말씀을 읽으면서 "그 분이 내 마음을 아시고, 그 분이 내 마음을 위로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심령으로 느낄 떄" 

 

그런데 여러분, 우린 언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아니 되보려고 애쓴 적이 있는가? 

 

하나님 나라 사람들에게 주님은 "긍휼함을 얻은 너희여, 이제 너희도 나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라..." 

 

그런 자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가? 너흭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긍휼히 여김을 받았는데? 

무슨 말일까?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면서 비로소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긍휼히 여겼는지를 더 깊이, 더 진실하게 경험할 것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속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반항하고 투정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하는 말 - 너도 애 낳아서 키워봐....

키워보면서....비로서 깨닫게 되는 그 깊은 사랑. 

 

저희 어머니가 목회하면서 여자 성도 한 분이 여자 목사라고, 어떻게 여자가 목사가 되냐고....그러러면 다른 교회를 가든가, 여전히 나와서 다 좋은데 여자 목사라서 이 교회는 안된다.....

 

끙끙 앓다가 하신 기도 " 하나님, 저 집사님, 주의 종 되게 해 주세요...주의 종의 마음을 알려면 주의 종 되야 하잖아요...: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진정 깨달을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긍휼한 사랑을 하면서, 그 아픔을, 그 깊은 사랑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주님 닮고 실지 않으세요? 주님 마음 알고 싶지 않으세요?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태복음 5장 6절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1. 출애굽 백성들에게 임한 목마름과 은혜

출애굽기 15장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모세가 찬양하고 이어 미리암이 하나님의 권능과 구원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대략 이백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소망과 희망은 홍해를 건넌지 3일만에 무너져 내립니다.

뜨거운 광야에서 짤리 갈 수도, 그렇다고 홀로 뒤쳐질 수도 없는 상태에서 고된 길을 걸어가는데 3일을 걸어도 도대체 마실 물을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애굽에서부터의 삶을 생각하며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고된 길을 계속 갔습니다.

다들 건들면 터질 상태였지만 그래도 꾹꾹 참고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소리칩니다.

"물이다"

사람들은 모두 참은 보람이 있다며 기뻐하며 물가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연약한 자들을 앞세워 물가로 가는데 처음 물을 먹은 사람이 이내 물을 토해냅니다.

 

그 물은 이미 마실 수가 없는 썪은 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상태가 어땠을까?

목마름이란 이런 것입니다. 배고픔보다 더 큰 고통이 목마름의 고통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출 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한 나무를 가리키고 그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이제 그 물이 달게 변합니다. 마실 물이 됩니다.

그 나무는 곧 무엇입니까? 바로 나무에 달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사마리아 여인에게 임한 목마름과 그 은혜

신약에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와의 만남입니다.

고된 인생 속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며 아무도 오지 않는 뙤억볕 내리쬐는 정오에 오직 살기 위한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가에 나온 여인에게 주님은

 

[요 4:1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초막절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몰려드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7:37-38]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 주림과 은헤

출애굽기 15장이 목마름에 대한 이야기라면 16장에는 떡에 대한 불평이 나옵니다.

[출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들의 이 부르짖음에 내리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만나입니다. 만나는 곧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의 배고픔의 이야기는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든 무리들의 배고픔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기적.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를 축사하사 떡을 떼어 모인 무리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시고 오히려 그 남은 것을 열 두 광주리에 담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

 

4. 온유함과 목마름의 관계

지난주 우리는 온유함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온유함은 성격이 유순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길들여진 성품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길들여지자 않으면 야생마와 같습니다.

우리의 기질대로, 성질나는대로,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행합니다.

주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지만, 또한 우리를 만지사, 변화시켜 주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길들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엇을 닮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가지신 겸손과 온유를 닮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우리가 예수님께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두 축입니다.

 

겸손은 즉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알고 낮추는 것

높은 자가 억지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지신의 본질을 알기에 자신의 위치를 알기에 자신의 위치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근본 본체이셨지만 아들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순종하셨습니다.

 

온유는 우리가 나눈대로 내 모습을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길들여질 수 있도록 주신 것이 율법이고 계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야생말과도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말씀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자가 축복을 받으면 그 축복은 남을 죽이고 자신을 죽이는 멸망의 길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차차 익숙해지며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겸손과 온유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교만해져서 남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남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합니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높아지는 것, 자신아 남들과 구별되는 것

이것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의입니다.

 

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럼 우리가 읽은 팔복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구해야 할 의를 분명히 말씀해주십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먼저 (시간상의 시제가 아니라 최고의 가치를 말함) : 최우선. 첫째 것, 장자. : 대표하고 대신하는 것
  • 더하시리라: 배부름을 얻을 것이다. Add가 아니라 Complete (완성할 것이다. 온전케 할 것이다) 의 의미이다.

 

팔복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깊은 복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삶 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동행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주인된 나라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구해야 할 것은 내가 인정받고 내가 높아지는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롬 3:20-23]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 내 연약함, 내 죄, 내 어리석음

-> 그 깨달은 자의 마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을 깨닫고 주님의 필요하심을 통렬히 깨달은 상태

 

하나님의 의 - 우리의 연약함을 채우실 한 중보자. 그리스도, 메시야

 

우리가 구해야 할 의는 바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채우실 예수 그리스도

 

그 의로 충만할 적에만 우리는 겸손과 온유함을 간직한 의로움, 바로 예수의 의로움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에 굶주린 사람들, 그들이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유명한 로마서 1:17에서 이같이 외쳤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고 하는 것은 복음을 믿고, 복음의 은혜에 감사하고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하심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앞에 내가 내세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하심을 구할 뿐입니다.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던 사울이, 자기 의를 멈추고, 자기 자랑을 멈추고 자기 교만을 멈추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사울은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의로는 털끝 만큼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기에, 자기 의를 멈춘 사람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대신 평생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리고 목말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복음이 있고 그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의는 먼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바로 세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의 허물이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이웃과 세상과도 바른 관계를 맺도록 요청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동시에 이 땅에 도덕과 윤리를 바로 세우면서,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을 때 이웃도 세상도 바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인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목사건 성도님들이건 처음엔 하나님의 역사를 자랑하다가 결국은 자기 자랑, 자기 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끝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 주셔서 내가 얼마나 많이 바쳤는데요, 내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했는데요, 내가 얼마나 충성했는데요…. 결국은 내가 무엇했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의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 나타낼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중 한 장로님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 - 배부를 것이다.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다.

완성시킬 것이다. 그가 만들어줄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온유한 자 (마태복음 5장 5절)

 

팔복 - 여덟가지의 복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복된 것이 무엇일까?

성공하는 것?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

하나님을 가장 깊이, 친밀히, 가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팔복은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사람들의 상태, 태도,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가?

 

  • 심령이 가난한 자 -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젖먹이 아기가 어미의 젖을 찾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하는가?

여러분, 진짜 이렇게 심령이 가난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지금 그렇게 심령이 가난하십니까?

혹시 포기하진 않으셨습니까?

어차피 안보이고, 안 느껴지고, 인생은 다 이런거고 떄로는 교회에, 떄로는 성도에 상처입고 하나님이 계시는지 계시는지...

지옥은 두려우니까, 심판은 두려우니까, 저주는 두려우니까

그저 그러한 만약의 재앙이 임하지 않을 정도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신앙생활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언제 하나님이 필요하십니까?

힘들 떄? 어려울 떄? 아플 떄? 두려울 떄?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가 한 순간도 주님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 없인는 살 수 없음을 심령 깊이 깨닫는 것. 그렇게 사는 것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니라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나라

어떤 자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는가? 그가 간절히 필요한 자. 그 필요를 정말 절실히 느끼는 자.

 

  • 하나님이 간절히 필요한 자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습 - 애통

왜? 내 힘으로 안되니까...

무엇을 애통하는가?

1. 나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연약함, 부족함...주님, 난 주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다윗처럼, 한나처럼, 히스기야처럼...)

2. 하나님이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험해야 할 교회가 바로서지 못하고, 부패하고, 연약하니까....주님 이 곳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게 해 주세요 (느혜미야처럼)

3.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죄짓고, 방황하고 넘어지고...(예례미야처럼,,,)

 

누구를 향해 애통하는가? 자신을 향해 애통하는 것은 자기 연민. 자기 연민은 역사가 없다. 왜? 나에겐 그 애통을 바꾸어줄 힘이 없기 때문에....

우울증이 무엇인가? 나를 향해 애통하다가 절망하는 것. 그 슬픔에 취해 중독되는 것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누구를 향해 애통하는가? 하나님을 향해, 예수님을 향해...도와 달라고, 구해달라고, 함꼐 해달라고, 보여달라고...

위로는 단순히 감정적 격려가 아니라 확실한 하나님의 임재와 회복, 은혜를 주신다는 보장..

 

  • 오늘 나눌 세 번째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기 위한 성도의 복된 자세, 태도, 생태

[마 5: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영어 - Meek (온순하다. 연약하다)

한자: 따뜻할 온, 부드러울 유 (따뜻하고 부드럽다)

우리나라 말에서 온유한 사람 - 매사에 화를 내지 않고 큰 소리 치지 않고 공격적이지도 않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받아들이는 사람을 향해 온유하다고

 

온유 - 아나브(히), 프라우스 (헬) - 주인이 원하는 대로 힘을 사용하는 자

온유- 가난함, 겸손함과 동의어로 사용.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앤드류 머레이 <겸손>이라는 책

온유의 정의 :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도취되지 않는 상태 (감히 나를....) -> 온유의 정서적 반대는 분노

겸손: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어떤 상황도 수용하는 태도.)

 

프라우스- 헬라말 :길들여진 야생마를 표현할 떄 쓰는 말

야생마를 길들이면서 생겨난 스포츠 - 로데오

  • 서부개척 시대 때 야생마를 길들이는 방법

먼저 초원으로 나가서 그 야생마보다 작은 당나귀와 함께 묶어서 풀어 준다. 처음에 야생마는 이리저리 뛰어오르면서 힘없는 당나귀를 자기 맘대로 끌고 다니며 유유히 사라진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이 흐르면 자취를 감췄던 야생마가 나타나는데 힘없이 작아보였던 당나귀가 앞장을 서고 말이 뒤를 따른다.

결국 당나귀를 떼어놓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내며 날뛰던 야생마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 있는 당나귀에게 반항하기를 포기하고 결국엔 지쳐서 얌전해진다.

당나귀가 그렇게 구데기처럼 떨어지지 않고 마음껏 날뛰던 야생마가 스스로 지쳐 당나귀를 따라오게 만드는 것.

 

(마 11장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처음 예수를 믿으면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내 마음대로....그런데 그 연약한 예수의 말씀이 점점 더 나를 지배한다.

처음엔 무시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면 그 예수는 절대로 내게서 떠나지 않는다.

나라는 성, 나라는 야생마, 나라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 결국 주님의 말씀이다.

 

  • 두가지 종류의 그리스도인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해 보려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그 해결을 의존하려는 태도 - 결국 심령이 가난한 자 - 주님 도와주세요. 애통하는 자.

-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

 

온유하라.

- - 불의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해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해결을 맡기는 태도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을 때에...)

-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는 태도

- 나약함이나 비겁함이 아니라 끝까지 견디고 참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 모세의 온유함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그러나 모세의 성품은 결코 온유하지 못했다. 그는 바로의 궁에서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에, 자기 동족이 애굽의 군사에게 핍박을 당하자,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군사를 쳐 죽였던 거친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고는 비겁하게 도망을 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이나 숨어지냈다.

 

그리고 80세가 된 어느날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나?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5)

 

신을 벗는다는 것은 종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 종은 신발을 신을 수가 없었다.

신을 벗으라눈 곳운 더 이상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라는 말씀이다.

자신의 거친 천성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변화된 성품으로 살라는 말씀이다.

 

40년의 미디안 광야를 통해, 40년의 출애굽 광야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시련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날마다

두번씩이나 십계명을 받으면서 그 말씀으로 길들여진 사람

말씀의 사람이었기 때문

 

  • 예수님의 온유함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 - 하나님 자신

그런데 그 분이 온유하시다. 스스로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 아들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음.

모든 필요를 아버지께 구하는 태도

아들이 되고 자녀가 되는 연습,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죽을 때까지.

 

  •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땅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의 현장 속에 피어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나타나는 공간

 

[시 37: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 - 온유한 자

[시 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땅-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를 경험하는 공간

 

십계명의 제 5계명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모 공경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는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주신 것 - 하나님과 그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내 모습은 여전히 야샘마와 같지 않은가?

하나님께 길들여지고 싶지 않은가?

예수의 멍에에 매여 그 분의 겸손과 온유를 배우고 싶지 않은가?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

 

복되도다. 애통하는 자여,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보다- 주목하다. 의지를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보다.

어떤 무리인가?

 

[마 4:23-2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5절 - 수많은 무리가 따랐다. 그 무리의 정체는 모든 병든 자, 모든 약한 자, 모든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주님의 관심은 병든 자에게 있다. 병듦을 알고 모여드는 자에게 있다.

왜 우리는 모두가 다 병든 자이기 때문이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모두 병든 자이라는 말.

문제는 어떤 이는 자신이 병들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자.

어떤 이는 병든 것을 철저히 감추면서 사는 자.

어떤 이는 남의 병만을 들추어 내는 자.

어떤 이는 자신은 괜찮다고 하는 자.

 

예수는 이러한 자를 외식하는 자, 무지한 자라고 하신다. 그들은 스스로 나오질 못한다.

어떤 자가 나오는가? 자신이 병듦을 아는 자가 나와서 주님께 간구한다.

 

그러한 상태를 십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신다.

 

그런데 모든 병든 자가 모두 병들 고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나오는 자가 나 주님의 은혜를 맛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돌아가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죄용서 받는 것이 아니다.

 

어떠 자들에게 은혜가 임하고 어떤 자들이 천국의 비밀을 알까?

 

  • 산 위에 오르는 자.

예수님은 다가오시는 무리를 보신 후 홀로 산 위에 올라 앉으신다. 그들의 손을 붙잡고 산 위로 끌고 가지 않으신다.

그들을 산으로 데려오라고 하지도 않으신다.

산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잠깐 멈추고 주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산 위는 각자에게 주어진 주님께서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장소이다.

가장 보편적인 산은 바로 예배의 처소이다.

 

[요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산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예배의 개념이다. 어떤 이는 골방이 산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예배당이 그 사람의 산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정이 그 사람의 산이 되기도 하다. 그 산은 누구의 방해받지 않고 주님께 집중할 수 있는, 주님과 대면할 수 있는 당신과 주님과의 공간이고 또한 시간이다.

 

주님께 예배하는 이 시간이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는 산이 되기를 소망한다. 축원한다.

 

지난 시간에 이어 주님은 두 번째 주님께 나오는 자들의 상태를 말씀하신다.

하늘 나라의 주인공들의 상태를 말씀하신다. 이 주님의 선포는 세상의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이야기한다.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행복하도다. 슬퍼하는 자여, 너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왜 애통하는 자가 행복하다 했을까? 그 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팔복에 대한 유명한 설교를 남긴 17세기 위대한 설교가 토머스 왓슨은 이 애통을 설교하면서

진정한 애통함과 유사품, 가짜 애통을 나누어 설명한다.

 

  • 그가 말한 유사품 애통, 가짜 애통은 무엇인가?

- 자기 연민(절망)의 애통: 가룟유다의 애통 -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뼈아픈 후회, 그런데 그 애통으로 주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사망의 길로 내모는 애통.

- 위선의 눈물: 사울의 눈물, 다윗을 추적하는 사울- 늘 후회하고 눈물, 그런데도 여전히 시기,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다윗을 추적, 순간 애통하지만 곧 다시 자신의 욕망과 감정과 죄를 이기지 못하는 애통

- 억지 눈물: 가인 - "내 죄과가 너무 중하오니..." 그 죄를 경고했음에도, 짓고 나서 자신을 살려달라는....

- 외식의 눈물 : 바리새인들의 눈물, 전정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 하나님께 보이기 위한 눈물.

- 헛된 애통: 탐욕에 젖은, 자기가 원한 것을 얻지 못하는 애통.

 

  • 진정한 애통

애통하다 "팬테오"

됴셉을 잃어버린 야곱의 슬픔을 나타내는 언어 -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슬픔

[창 37: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가슴을 부서버리고, 옷을 찢고 창자를 끊어버리고, 뼈를 갉아내고, 창자를 끊어버리고, 심장이 절절한

죄와 고통으로 인하여 용서와 긍휼을 구하는....신성한 슬픔

 

[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 - 느혜미야의 고통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겪었던 고통 - 무능력의 고통, 무소망의 고통, 에배할 수 없는 고통

이 시선이 향하는 단 한 곳 - 메시야- 날 구해주세요.

 

느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시 119: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 자기 죄를 통회하는 슬픔 - 다윗의 애통

다윗의 통곡 - 자기 전 존재를 잃어버리고 낸 통곡

내가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출생하였나이다.

우슬초로 날 씻으소서.

- 내 안에 의가 없음으로 주를 갈망하는 애통

나의 죄로 인하여 울라.

경건한 자는 죄가 없는 자가 아니라 죄를 깨닫는 자요, 죄를 고백하는 자요, 그 죄를 예수로부터 용서받는 자이다.

 

  • 생명을 구하는 기도 - 히스기야, 한나, 욥

욥의 울음, 한나의 울음, 히스기야의 울음 - 자신의 슬픔을 그냥 슬퍼한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바꾸어줄 대상을 향해 우는 것.

 

[약 4:9-10]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위로하다. - 파라칼레오 -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계 21:3-7)

완전하게 용서하시고 완전하게 회복하시고, 성대한 잔치에 초대하신다.

천국의 것을 순간 경험케 하신다.

 

[계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 완전한 회복 - 이전 것은 다 지나가게 하시는 회복
  • 새롭게 하시는 구원
  • 생명수 샘물 - 갈급한 심령을 채우는 은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마르지 않는, 물덴 동산 같은 생명
  • 이긴 자 - 이만희가 이긴 자가 아니라 애통하는 자,

자기 죄를 위해, 성전을 위해, 생명을 위해, 민족을 위해 우는 자- 그가 곧 이긴 자이다. 이긴 자에게 주신 이름 -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 애통하는 자의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행복한 자이다. 소망이 있고 변화가 있고, 끝낼 것이 있고 새롭와 질 것이 있는 인생이 애통하는 인생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물이 메마른 시대다. 영혼은 갈급해 하면서도 울지 않는다. 남을 의식하고 울기 싫어하고, 헛된 웃음으로 가장한 인생이다.

행복하기를 원하면서도 애통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날마나 불행하다고만 여긴다. 사는 게 힘들다고 한숨만 내쉰다. 힘들어 죽겠다고 탄식만 하고, 병들어 아프다고 걱정과 염려만 쌓아간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하나님 앞에서 왜 울어야 되는지 그 이유도 모르는 인생이 많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이 병들었습니까? 인생이 답답하십니까? 질병 때문에 고통 당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깊이 통회하고 우십시오. 절망과 좌절 속에서 탄식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 하십시오. 여러분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애통해야 합니다. 그렇게 울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눈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애통하는 자, 그는 행복한 자로다.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