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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주일예배 설교'에 해당되는 글 301건

  1. 2020.03.14 내 영혼의 대피소 (시편 91편 1-16절)
  2. 2020.03.07 우리가 가야할 길 (왕상 13:1-10)
  3. 2020.02.29 죄의 백신 (민수기 21장 4-9절)
  4. 2020.02.22 신앙파멸 (민수기 22장 15-22절)

내 영혼의 대피소 (시편 91편 1-16절)

 

시편 91편은 아직 학자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유대 경전 미드라쉬의 해석에 의하면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나서 쓴 글이라고 설명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다윗이 고난 당할 당시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내용이라고도 한다.

 

다윗의 글이건, 다윗의 글이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노래를 함께 찬양하며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의 길을 걸어갔다.

이것이 모세의 글이건 다윗의 글이건 지금 시편기자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3절: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

새 사냥꾼의 올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물들도 영리해서 사람이 놓는 덫을 구분할 줄 안다. 미리 쳐 놓은 덫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요리저리 잘도 피해 다닌다.

그런데 새 사냥꾼의 덫은 어떠한가? 전혀 새로운 공격, 뜻밖의 곳에 위치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믿는 자를 넘어뜨리는 전혀 새로운 방법의 공격, 그것이 무엇인가?

신기하게도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새 사냥꾼의 올무로서 심한 전염병을 이야기한다.

 

5-6절은 다시 그러한 시편 기자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5절)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찾아오는 화살

-> 이것은 낮에 받은 공격으로 인해 그 두려움과 불안으로 잠못이루는 밤의 공포를 도치시켜 표현한 것이다.

즉 낮에 받은 화살은 육체적으로, 직접적으로 받은 공격이라면, 밤에 찾아오는 공포는 그러한 화살로 말미암아 생겨난 정신적 공포, 불안을 이야기한다.

 

(6절)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 아무도 모르게 퍼져나가는 전염병을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으로 묘사하고

그로 말미암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재앙을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이라고 표현한다.

 

분만 아니다. 그러면서 7절에 그러한 것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천 명이 네 왼편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으러진다고 말한다.

 

읽으면서 느끼시겠지만 시편 91편의 내용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전염병을 맞고 있는 인간의 공포와 두려운 상황과 너무 닮아 있는 장면들이다.

 

지난 주에 제 아내를 비롯해서 코스코나 대형 마트를 갔다오신 분은 마스크 뿐만 아니라 쌀과 물까지도 사재기로 인해서 살 수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하시더니 신문을 보니까 호주와 일본에서는 휴지가 동이 나고 먼저 산 사람에게서 휴지를 얻기 위해서 몸싸움을 벌이는 일까지 있다는 내용이 사진과 더불어 실린 기사를 보았다. 왜 하필이면 휴지가 바닥나나 했더니 휴지의 원료가 중국에서 나는 것인데, 이제 그 재료를 수출할 수 없어서 이제 곧 휴지 대란이 난다는 이야기가 퍼저나가면서라는 것이다.

그 소문도 곧 가짜 뉴스로 판명이 났다. 중국이 없어도 나라마다 휴지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문만 가지고도 나라의 휴지가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몰라도 그저 남들이 사니까 두려움 가운데 같이 사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에 살고 있는 형님께도 전화를 했더니 그곳에서도 마스크를 비롯해서 이런 저런 사재기 마트를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온 세상이 난리가 났다.

 

역사를 들여다 보면 유래가 없던 일도 아니고 우리 또한 몇 해전 메르스나 사스같은 전염병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퍼지다 보니까 더 큰 공포와 불안감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이다.

 

중세 때나 가깝게는 1900년도 초반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을 때도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사태만 보아도 한 번 전염병이 올 때마다 세계가 얼마나 아수라장이 되었을 지는 가히 상상이 간다.

 

재난의 때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난 끄덕없어. 난 그래도 평안해 하는 것은 오히려 문등병처럼 통증을 못느끼는 무딘 심령이라는 것이다.

 

  • 전쟁이나 지진 같은 피해도 엄청난 재해지만 전염병이 그와 다른 것은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힘들어도 같이 있으면 위로가 되고, 같이 있으면 두려움이 덜할 텐데, 전염병이라는 것은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고 사람 모인 곳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롯이 홀로 맞아야 하는 재난은 공포 그 자체이다.

 

  • 더군다나 이번 사태로 교회와 성도가 겪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재난이나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믿음을 지키고,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다.

 

그런데 교회모임 자체가 바이러스의 공포에 노출되면서 교회 모임을 갖는 것 자체가 눈초리의 대상이 되었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 조차 바이러스의 위험으로 인해 삼가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위기를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 있어서 시편기자가 말하고 싶은 신앙의 처방은 무엇인가?

 

[시 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시 91: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 은밀한 곳와 그늘은 무엇인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평소 때는 그 가치를 알 수가 없는...

 

나다나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부터 너를 알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은밀한 곳과 전능자의 그늘은 주님과 긴밀히 교제하는 자,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있을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이다.

 

  • 그러한 자들의 고백이 무엇인가?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누가 하나님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정말 긴박한 상황에서 그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피난처라고 여러분의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고백할 수 있는가?

어떤 자가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가?

 

바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다.

일상에서, 평상시에, 남이 알든 모르든, 아니 남이 알지 못하는 바로 그 시간에 주님을 찾는 자들이다.

 

  • 피난처이신 하나님은 그러한 자에게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시는가?

 

[시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어떤 모습인가? 새가 자녀를 품는 모습이다. 어미가 아이를 품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우리를 품으신다. 우는 아이를 어르시듯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우리를 앉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또한 그는 어떻게 우리를 도우시는가?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신다.

His faithfulness will be your shield and rampart

그의 신실하심은 너의 방패와 성벽이 되신다.

 

우리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의 진실하심, 그의 신실하심.

그가 자기 백성을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어미가 간난아이를 품듯 우리를 품으시고 우리의 성벽이 되고 방패가 되신다.

 

어떤 자에게? 하나님과 은밀히 교제하며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에게...

 

  • 전환

[시 91:9-10]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분명 신앙인에게 있어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의 보호처가 되신다.

그 말이 곧 신앙인은 전염병이 돌아도 병에 걸리지 않고, 재난이 와도 화가 미치지 못한다는 소리인가?

 

하나님이 천사들을 명령해서 믿는 자들은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만 전염병에 걸리게 하시는 것인가?

이것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오만함이다.

 

물론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하나님은 믿는 자는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는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믿지 않는 자들만 재앙이 임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신앙적이지도 않다.

 

[시 91:12-13]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므로 위험한 상황에서 사자 앞에 나가듯이 뛰쳐 나가고 독사를 발로 밟으려 한다면 이것은 신앙이라기 보다는 자기 도취요, 자기 망각이다.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구절이 신약에서 누구를 시험하기 위해 쓰여진 말씀인줄 아는가?

 

[마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바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하면서 이 구절을 가지고 시험하는 구절이다.

 

네가 뛰어들어도 죽지 않아.... 그러니 한 번 뛰어봐....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코로나로 두려워 떨어도 성도는 다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예배당에 나오라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어떠한 질병에 걸려서 쉬어야 할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예배하러 나오는 것은 개인의 믿음이요, 개인의 신앙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질병이 남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 지켜주실 것이야 하면서 모임을 주장하는 것은 믿음 이전에 맹신이다. 설사 전염이 되지 않는다해도 그 사람으로 인해 타인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두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남을 살리는 것이지 두려움을 주고 죽이는 것이 아니다.

 

[시 91:14-15]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은 재앙이 내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고백에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그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고난이 없을 것이 아니라 그 고난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신다고 말씀하신다. 고난을 면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환난 당할 때에 그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신다.

 

(L 목사님의 간증)

딸의 희귀병으로 말미암아 목회도 학업도 중단하고 딸도 학업을 포기하고 장기 휴양....

왜 목사님인데도 그런 고난을 당해야 해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그런데 병원의 원목으로서 많은 환자와 그 가족, 보호자들을 위로하고, 의사들에 앞서 환자와 그 가족을 돕는 사역...

 

자신의 모든 고난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결코 의미없는 고난을 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 안정제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이 비례한다면 오늘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큰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살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거 그 어느 떄보다 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며 산다.

1950년대까지 안정제라는 약은 없었다. 처음 안정제가 나왔을 때 광고가 어떻게 소개되었는지 아는가

"행복알약, 마음의 평화를 주는 약, 행복을 처방하는 약"이라 불리며 신비의 알약이라 소개되었다.

지금 이 안정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용되고 흔한 약이 되었다.

 

약이 우리의 심령을 평안케 할 수 있는가? 안정제가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나?

아무도 지금은 그 광고의 문구를 믿으려도, 들으려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평안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당신은 위기의 때에 과연 "내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 분의 내 피난처, 내 요새가 되는가?

그의 은밀한 처소에, 그의 그늘에서 쉬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의 처소는 여러분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도 들어갈 수 있는 처소이다.

그분의 날개 깃은 여러분이 순전한 마음만 있으면 안길 수 있는 품이다.

 

휴지사러, 마스크 사러 --물론 필요할 때는 사야 겠지만....

그것을 통해서 불안을 극복하려 하지 말고 우리가 해왔던 것.

우리가 누려왔던 바로 그 신앙을 통해서 위기의 시대를 이겨나가길 축원한다.

말세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 때마다 주의 은밀한 처소에서 요동치 않는 주의 사랑과 보호함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시는 우리 로고스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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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할 길 (왕상 13:1-10)

 

새벽예배 가운데 나누는 말씀 - 열왕기상

이스라엘 왕조의 역사 - 열왕기서와 역대서

역대기서는 바벨론 포로기를 마치고 하나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으로 귀한할 때 완성된 성경

유다왕조의 정통성 강조 - 북왕국 이스라엘 왕조는 유다왕들을 소개하면서 필요할 때만...

 

열왕기서는 이보다 앞서 기록되었다고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는데 열왕기서가 기록되고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때는 바벨론 포로기 때.

-> 역사를 기술 할 때의 관점 - 우리가 왜 포로가 되었을까? 왜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까?

 

열왕기서는 하나님의 택한 나라 이스라엘이 각각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열되는 과정을 소상히 다루고 그것을 다름아닌 왕들의 신앙, 왕들의 정책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시작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솔로몬이 있었다.

 

신명기 17장에는 아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광야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왕의 기준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신 17: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절: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

16절: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 것이요.

17절: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요,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기 말 것이니라

18-19절: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이 말씀과 배치되어 살았던 것이 누구인가? 바로 솔로몬

애굽의 왕 바로의 사위가 되고, 1000명의 아내를 두고, 은금으로 모든 왕궁을 치장.

 

솔로몬이 만약 이 말씀 중에 하나라도, 자기 지혜를 의지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자기 옆에 두고 읽었더라면....

그가 지은 잠언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거늘.....후렴구처럼 많이 등장하는 구절....

그러나 그의 삶은... 왕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계명을 어겼다.

 

그래서 선지자 아히야를 보내어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움을 알게 한다.

여로보암은 전쟁을 통해서도 아니고, 백성들의 투표를 얻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 왕이 된 자다.

그것도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10지파를 책임지는 왕이 된다. 그를 왕으로 세우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왕상 11:37-38]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마음껏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내가 도울 것이다. 네가 내 말을 지켜 행하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그런데 여로보암이 왕이 되자 가장 걱정 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왕이라는 자리를 배앗길 염려부터 한다.

하나님으로 인해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되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을 잃어버릴까봐, 그 축복을 자신이 어떻게 지킬까 전전긍긍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왕상 12:25-33]

(왕상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왕상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이 나라가 다시 다윗에게 가면 어떡하지?)

(왕상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왕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애굽에서 인도한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 신들이라-> 완전한 혼합 신앙

 

25절- 건축하고, 건축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백성의 대표가 되어 르호보암에게 우리를 어떻게 다스릴꺼냐하고 묻던 자가 다름 아닌 여로보암.

왜? 솔로몬 때 그의 치리기간 동안 계속되는 건축으로 고달팠던 백성들의 짐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데 그가 왕이 되자마자 힘쓴 것 - 또 건축- 누구를 위하여? 오직 자신을 위하여...

 

29절부터 끝절 까지 읽어보면

그들의 예배 - 하나님 아닌 황금 송아지 - 그들의 신들,

- 레위인 아닌 자격없는 제사장

- 그들이 마음대로 정한 절기.

 

이런 배경에서 13장이 시작된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범죄하였을 때에, 르호보암이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을 보낸 것 같이 여로보암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그를 돌이키게 하신다.

 

[왕상 13: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에게 왔으니 여로보암이 무엇을 하고 있었나? 분향- 제사의 주관을 자신이

분향은 누가 하는 것인가? 제사장이.... 사울-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제사를 주관하다가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게 됨.

 

이러한 광경을 보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무엇이라 예언하는가?

[왕상 13:2-3]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왕하 23:15-17]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여로보암 이후 300여년이 지나 그 사람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

 

이러한 예언- 자신의 나라를 저주하는 예언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여...(4절)

손이 말랐다- 손은 능력, 권세 - 권세가 말랐다.

 

5절)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 예배를 받지 아니하셨다.

 

그 때에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한 말을 보자.

[왕상 13: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지금 여로보암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제단에서 분향 - 지금으로 말하면 예배 인도

그런데 손이 마르니까 무엇이라 구하는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자기 입으로 자기가 예배 드린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님과 다름을 고백하는 것 아닌가!

성경이 그냥 이렇게 표기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니 손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왜 낫게 해 주셨을까?

아니 왜 하나님의 사람을 여로보암에게 보냈을까?

그를 저주하도록? 왕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깨달으라고. 회개하라고, 돌이키라고...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 - 손이 낫게 된 후에 여로보암의 행함을 보자

[왕상 13: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지금 잘못해서 병이 나았으면 무엇해야 하나? 회개하고 참회하고 돌이켜야 하거늘.... 이제 낫으니 쉬자. 같이 쉬자

병 낫고 예물을 드리는 것 - 무당에게 하는 짓 - 끝까지 혼합종교.

 

그러니 그 사람이 무엇이라 말하는가?

[왕상 13:8-9]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겠다.

함께 거하면서 함께 먹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는 말 - 식구 - 함께 먹는 사람, 함께 먹는 관계

난 당신과 한 식구가 아닙니다. 난 당신과 섞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말을 합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다른 길로 가고 되돌아가지 말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 보낸 자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동시에 누구에게 들으라 한 소리인가?

여로보암에게.... 솔로몬의 길로, 르호보암의 길로, 자기가 잘못한 과거의 길로 돌아가지 말라.

 

다른 길은 어느 길인가? 주님 가신 길. 좁은 길, 좁은 문, 십자가의 길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말씀 따라 순종하는 길.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주님 바라보고 걸어가는 길. 그것이 신앙의 길이다.

 

모든 사람이 고통을 느끼고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난 목사로서 특별히 이번 사태가 한국의 기독교인, 한국의 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기독교인으로서 신앙과 상관없이 그저 질병이 아닌 그로 인해 예배가 금하여지고 교회의 문을 폐쇄시켜야 하는 그런 조치들이 하나님이 주신 따끔한 채찍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이미 세상의 반대와 비난을 무릎쓰고 교회의 건축을 감행했던 교회들,

세습을 금한다는 교회의 법을 정했으면서도 이를 스스로 어기면서 감행했던 여러 교회들의 무법천지,

일부 목사들의 학위와 졸업장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징계나 조사 없이 그냥 눈감아 버린 죄....이로 말미암아 무수한 교단과 이단들이 범람하게 된 것.

 

하나님은 이미 여러 차례 교회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우리는 말로는 위기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

 

불뱀에 물렸을 때에 하나님은 불뱀을 치워 주신 것이 아니라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그것을 쳐다보도록 하였다.

장대 위의 놋뱀은 우리가 저지른 죄악을 바라보며, 그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보는 것이요, 나 대신 심판 당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숱한 역경이 있을 때마다 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단결과 애국심을 또 한 번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해 또 한 번 나라의 시스템과 국민의식이 발전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위기를 통해 한국교회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이전의 잘못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회개의 물결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왕상 13:33-34]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난 이러한 일이 정말 한국교회와 사회에 다시금 반복되지 않기를,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기를 함께 기도하고 중보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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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백신 (민수기 21장 4-9절)

 

[민 21:4-9]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수기 - "광야에서"의 뜻

광야의 역사 - 온 인류에서 가장 놀랍고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나오는 하나님의 기적의 장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원망과 불평을 하는 원망의 역사이다.

오늘 나눌 민수기 21장의 내용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원망 사건의 가장 마지막 사건.

 

언제? 광야에서의 오랜 지체됨 가운데 다시 가나안을 향한 진군을 시작하려는 때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을 막아섰을 때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이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가나안 족속 한 왕을 쳐서 완전히 멸하게 되었을 때에.

 

가나안 족속 - 신체적, 철 문화에 의한 병기, 지리적 홈그라운드.... VS 이스라엘 백성 - 전쟁의 훈련을 받지 않은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이 대다수, 거기에 민족적으로는 허다한 잡족들이 모여있는...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그런 전쟁.

 

[민 21:2-3]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백성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 은혜의 때가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 다음 구절 -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니라

  • 왜 마음이 상했는가?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4절)

 

에돔을 우회하는 길 - 우회했기 때문에 멀어서 상했는지, 홍해 길을 따라- 해변길이라 힘들어서 상했는지....

그런데 그 길은 어떤 길인가?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길

멀고 험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안심하고 가야 하는데 자기 생각대로 평탄대로가 열러지지 않으니 마음이 상했다.

 

  • 마음이 상한 것의 결과 (5절)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 원망 : 마음의 상한 것의 결과 -> 감정이 상하면 말이 변한다. - 차라리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면...
    • 거짓 불평: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다 - 40년동안 그들이 굶은 적이 있는가? 물을 구하면 바위에서라도 물이 나오게 하지 않았는가? 고기를 달라하면 하늘에서 메추라기 떼가 떨어져 질리도록 먹게 하지 않았는가?
    •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 하찮은 음식 (this miserable food) - 만나

 

하루 하루 광야 가운데 살아가는 은혜 - 하나님의 은혜

그런데 매일 같이 그것을 누리면 그 놀라운 은혜 조차도 하찮게 여긴다.

 

광야에서의 백성들의 원망 - 죽겠다.- 모세를, 하나님을 원망하는 표현 -죽겠다. 거기서 죽이지 왜 여기서 죽이냐...

 

내가 먼저 죽고 말지...(부부 간에)

내가 너무 늙었나보다. 빨리 죽어야지 (부모 자식 간에)

죽겠다는 말이 입에 붙은 사람들... 나이가 들어갈 수록....10대때 죽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잘 못본다.

 

주고 사는 일이 내게 달린 것인가?

정말 죽고 싶어서 그러는가?

 

  • 원망과 불평의 결과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죽겠다는 표현 - 불뱀을 내려와 백성들이 죽었다. 죽는 것을 보았다.

불뱀들을 보내어 - 적극적인 표현,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거기서 부터 불뱀의 환경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구약 성경의 표현 - 모든 고난과 환란이 올 때마다 하나님이 보내시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걍팍케 하심으로...하나님이 백성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

그러나 실질적인 신앙의 현실 -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사라지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들어가는 것이다.

 

죽겠다던 사람들이 정말 죽음이 닥치니까 어떻게 기도하는가?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불뱀을 우리 가운데 사라지게 해 주세요

백성들의 요구- 불뱀을 사라지게 해 주세요

하나님의 응답 - 불뱀 (놋)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라.

 

불뱀 -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 원망과 불평의 결과-> 사탄의 역사 가운데서 살아가는 모든 불행, 아픔. 죄의 결과

 

뱀 - 사탄의 모습 -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종말의 때가 올 때까지 사탄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언제나 우리를 상하게 하는 존재

예수 믿는 사람, 구원 받는 사람도 예외 없이 찾아와서 무는 존재이다.

에덴을 떠난 모든 인류가 처한 운명

 

예) 물이 새어 공사했던 교회의 목사 간증

 

우리의 영혼을 스캔하는 카메라가 있다고 하자.

우리 영혼의 모습은 멀쩡할까? 상처 없는 영혼이 있을까?

우리 모두에게는 사탄으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상처 투성이가 아닐까?

 

예수님이 올때까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불뱀의 문제는 이 번 한 번만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되는 연속되는 언제나 찾아오는 문제이다.

 

어떻게 불뱀의 문제를 해결하는가?

불뱀을 바라보면 죽는다. 오히려 우리의 시선을 돌려 높이 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이다.

 

니고데모-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의 교사였지만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고....어떻게 하여야....

그의 관심 - 어떻게 해야 영생을 누리는가?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가? 어떻게 해야 밤에 잠 좀 편히 잘 수 있는가?

 

예수의 말 - 그것 없애려고 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불뱀에 물릴 때마다... 좌절, 낙심, 미움, 불면, 우울....

그것에 사로 잡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늘을 바라보고 시선을 돌려 한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나를 항상 보호하셨던 주님.

내 아픔 가운데서도 늘 내 기도를 들어주셨던 주님.

어떤 마음의 상함 가운데서도 드리는 예배 조차도, 찬양 조차도, 기도 조차도 받아 주셨던 주님.

 

  • 지난 주에 가장 마음이 상하는 일

아주 선전하던 코로나 바이러스 감시 체계망이 대구의 신천지 한 교회로 말미암아 지금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상황

 

이단이긴 하지만 교회라고 이름 붙여진 장소가 한국 바이러스의 본거점이 된 것 - 목사로서,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나마 다행인 것은 교회 안의 공동의 적이었던 신천지가 세상에 완전히 알려지게 된 것

그들의 명단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하는 것 - 장기 결석 신자 때문이라고 발표 하지만 훈련 받아 각 교회로 파송되어 있는 그들의 용어를 빌자면 '추수꾼'이라는 신천지의 정체 때문이다.

 

그런데 이단 신천지보다 더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이 엄중한 상황에서도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어 전국의 어르신들을 모이게 하면서

"바이러스에 걸려 죽음으로 이 정권에 타격을 주는 것이 애국이다"라고 하며 소리치고 있는 한기총과 한기총 회장이라고 하는 전광훈이라는 사람 때문이다.

 

너무 말도 안되는 짓꺼리들을 많이 해서 외면해왔는데 이제 더 이상 기독교의 물을 더럽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한기총의 현 실태를 알리는 것도 중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신천지가 활개 치고 다니는 데 있어서 한기총의 역할이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천지가 전도방법으로 삼고 있는 중요한 방법 하나가 한기총을 한국 기독교의 대표기구로 상정하고 그 타락성을 집중 부각시킴으로 한기총은 거짓이요 자신들은 참된 종교라고 주장함으로서 포교활동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시면 한기총 하면 따라나오는 검색어가 신천지, 신천지 하면 따라 나오는 단어가 한기총과의 다른점이다.

 

가톨릭이 로마 교황청의 감독하에 하나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면 개신교는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기치아래 초대교회 흩어진 디아스포라 교회처럼 여러 교단으로 나뉘어져 운영되고 있다.

2014년 교회 연합회 주소록을 보면 한국 기독교 교단의 수는 252개의 교단이 기록되어 있고 2019년 시민단체에서 조사한 기독교 교회의 교단 수는 370여개가 넘는다고 하지만 이는 모든 이단 까지도 합쳐진 수이다. 그리고 250여개의 개신교 교단 중에서 장로교 이름을 가진 교단의 수만 204개, 감리교 계통이 10여개, 침례교 계통도 그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때에 따라 개신교의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런 교단을 아우르는 기구가 있어야 될 필요성은 늘 제기되어져 왔다.

한기총 전에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NCCK)가 `1924년부터 조직되어 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며 60-80년대 까지 권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교회 협의회는 250개 교단 중 10여개의 교단들만 참여해서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진보적인 목소리에 우려를 표하는 보수적 기독교 목사님들이 모여 1989년 한경직 목사님을 명예 회장으로 모시고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 총 연합회 (한기총)의 시작이다.

소수의 교단만 참여하던 교회협에 비해 한기총은 대다수 교단과 대형교회들이 함께 참여해서 기독교의 대표기구같은 모양새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설립 때 36개 교단 6개 단체가 참여했고 2010년에는 가장 절정기로 100여개 교단 및 회원수만 1200만명에 이른다고 기록되고 있다.

 

보수화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기총은 막대한 교회의 후원과 조직으로 여러 사회 활동 및 북한 구호, 세계 선교의 일을 감당하였지만 2010년 회장선거를 통해 그 동안의 금권선거가 알려지면서 회원 교단과 교회들이 탈퇴하기 시작헀다. 당시 회장에 입후보하기 위해서는 10억에서 20억을 뿌려야만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알려지면서 이제 한기총을 문닫아야되고 오히려 한국교회의 폐해라는 주장이 계속적으로 제기 되어 온 것이다.  

 

이에 가입되어 있는 주요 교단 들이 다 탈퇴를 하고 남아 있는 소속 교단 교회들의 성도들을 다 합쳐서 현재 약 20여만명 정도의 회원들만 가입되어 있다.

그런데 기성 교단들이 탙퇴를 하고 나가자 그들이 모자라는 재정 및 회원을 늘리기 위해 했던 일들이 이른바 기존에 이단으로 처리되고 있었던 교회 및 교단들을 정상으로 복귀시켜 주면서 한기총의 재정을 충당하고 그나마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애 현 실태다. 

 

지금 전광훈 목사라는 사람은 그 사람의 학력도 다 거짓으로 판명되고, 그 동안 쏟나놓은 막말들도 사회 신문 지상에 걸쳐 여러번 소개된 한국 교회의 문제 인물이다.  그 막말은 강대상에서 소개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말들이다. 각자가 인터넷에서 전광훈의 막말을 검색하면 알 수 있을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기총이 무너지는 기간에 한기총을 기독교의 대표인 것 처럼 타깃을 삼고 집중 포교 활동을 펼친 것이 바로 신천지이다. 신천지도 바이러스의 온산지로 지목되어 있지만 그 신천지를 키워왔던 것이 역설적이게도 한기총이다. 

 

나는 이러한 참담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에돔을 우회하여 돌아가는 우회길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길이라 할지라도 다 시 한번 한국교회가 일어나고 회복되는, 부흥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믿음의 눈을 통하여 바라보고 소망하게 된다. 

한국 교회가 바이러스의 본부가 되어버린 가장 충격적이고 가슴아픈 이 시기에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며 울부짖되 장대위에 달린 그리스도, 왜 놋뱀인가? 놋은 성경에서 심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왜 그리스도를 기분나쁘게 놋뱀에 비유했는가?

뱀을 심판하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심판자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이상 신천지도, 한기총도 외면하지 말고 그 타락한 역사의 종지부를 찍고 그들을 심판하고 우리의 불뱀의 상함으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를 바라봄으로 진정 상해버린 우리 마음, 우리 교회에 진정한 구원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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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파멸 (민수기 22장 15-22절)

 

오늘 설교는 발람이라고 하는 좀 특이하면서도 성경에서 이름이 꽤 언급되고 있는 한 이방인 예언자에 대한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오늘 주제는 금요일날 예배 후에 조한경 집사님으로 부터 질문을 받고 이것 저것 자료를 찾다가 흥미로운 자료도 많이 찾게 되어 토요일 새벽에도 잠시 나누고 또 계속 묵상이 되어 발람을 통해 들려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민수기 본문에서 차지하고 있는 발람의 사건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적 중요성과 발람에 대한 성경의 언급들, 그리고 민수기 에서 다루고 있는 발람과 관련된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도대체 성경기자가, 혹은 하나님께서 이 발람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를 같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1. 민수기에서 발람의 사건

먼저 민수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지은 이후로부터 약 38여년간의 광야생활을 담고 있습니다.

민수기는 전체가 36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부터 10장초반까지는 첫번째 인구조사를 비롯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과정이 나옵니다.

10장부터 12장까지는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에서부터 가데스바데아 땅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머물면서 13장에서는 그 유명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땅으로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잘못된 보고로 말미암아 38년간을 광야에서 보내는 장면이 19장까지 소개되고

20장부터는 이제 38여년을 다 보낸 후에 드디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다시 진격하는 새 시작의 장이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앞길을 막는 시혼왕과 바산왕 옥을 물리치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광야를 덮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메뚜기떼 처럼 몰려드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 광야에 머물던 모압왕 발락이 그 지방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는 사건이 22장부터 24장까지 아주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25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락의 백성인 모압여인들과 행음하는 장면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다시 징계 받게 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발람과 발락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정탐꾼들의 잘못된 보고로 말미암아 38여년을 멈추었던 발걸음을 새롭게 정비하여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에 발생된 또 다른 신앙의 방해를 다루는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두 번째 큰 걸림이 되는 사건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인지, 아니면 단순히 점쟁이인지도 불분명하고, 더군다나 나귀사건으로 불리우는 나귀가 소리지르며 발람의 길을 멈추게 하는 사건은 요나의 물고기 사건과 더불어 역사적인 허구로 여겨지는 그런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서학자들은 오랫동안 발람에 대한 본문은 그냥 넘겨버리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와는 별 관계 없는 Minor로 취급하며 별다른 연구를 하지 않은 것이지요.

 

2. 고고학적 발굴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성서 고고학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발굴을 하게 됩니다. 1967년 요르단의 데이르 알라(Deir Alla)에서 지진의 잔해로 여겨지는 파괴된 건물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검정색과 붉은색 잉크로 새겨진 119 개의 석고 파편들이 발견됩니다. 발굴자들의 연대 계산에 따르면, 그 잔해들은 BC 760년경인 웃시아(Uzziah/Azariah) 왕과 선지자 아모스(Amos)가 있었던 시기로서 여겨지는데 그 때에는 암 1:1, 슥 14:5)에서 표현된 큰 지진이 일어났던 때라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 석고 파편들에는 "”브올의 아들인 발람으로부터의 경고들. 그는 신들의 예언자였다”라는 구절을 비롯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이라는 문장이나 단어가 똑똑이 여러번해서 언급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발견으로 인해서 그는 실존했던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후대 아모스 선지자 시대때 까지 영향력을 끼치던 예언자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발람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발람은 누구인가?

그의 이름의 뜻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인데 5절에 보면 그는 "브올의 아들"이라 소개 합니다.

브올은 누구인가?

1.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인물로 발람의 부친 - 발람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해석하는 자들의 견해

2. 모압의 신, 바알브올 - 발람을 처음부터 이방선지자로 해석하는 자들의 견해

 

바로 모압인들이 숭배한 신의 이름으로 바알브올로도 불리며 브올의 제사에는 여러가지 문란하고 부도덕한 행위가 초청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발락은 발람을 통해 하나님으로 하여금 히브리인을 저주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발락이 발람을 어떻게 지칭하냐면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이 말은 누가 누구에게 말한 말씀인가? 창 12장 3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주신 축복의 말씀...

그런데 발락이 이방인 예언자 발람을 그러한 자로 지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호칭에 걸맞게 발람은 하나님을 가리켜 "여호와:"라고 부르며 하나님은 그의 부름에 세번이나 말씀을 주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발람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생각하였다.

 

그는 발락의 요청에 따라 하나님께 뜻을 물으며 세 번에 걸쳐서 하나님의 뜻을 듣는다.

 

  • 첫번째 하나님을 구하는 장면

[민 22:7-12]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 이교적 모습 : 복채를 받고, 밤에 유숙하는 동안에 어떠한 의례를 통해 묻고 답하는 장면

- 신앙적 모습: 여호와라 부르는 모습. 그리고 분명한 응답 -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 (히브리인)들을 저주하지도 말라.

 

  • 두 번째 하나님을 구하는 장면

[민 22:15-20]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 이교적 모습: 더 높은 고관들 (더 많은 복채) , 아무 것에도 거리끼지 말라. (왜? 왕이 곧 신이기에...) 그에게 신은 남을 저주하는데만 필요하다.

- 신앙적 모습: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굉장히 신앙적인 모습)

 

그런데...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밤에 시행되는 의식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 말은 아무리 많은 복채를 주어도 하나님의 뜻만 전하겠다 하지만 한 번 말씀하신 하나님이 뜻을 더할는지 알아보겠다고 스스로의 모순된 말...(말과 행동에 균열...)

 

- 하나님의 응답: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왜 NO하지 않으신가? 이미 발람의 마음이 그 쪽으로 가 있기 때문이다.

 

  • 세번째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장면

2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아브라함이 순종하듯 일찍 일어나는 것일까? 마음이 발락에게 가 있으므로...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 하나님의 사자와 나귀와 발람의 뒤엉킴.

하나님의 사자는 칼을 들고 막아서고 나귀는 그 사자를 피해 돌이키고 발람은 그 나귀를 자꾸만 채찍질하고. (25절)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고 (27절)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심

나귀: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발람: 네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다.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너를 죽였으리라.

나귀: 나는 당신의 일생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느냐?

발람: 없었다.

 

눈을 밝혀 보니 칼을 들고 죽이려고 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을....

 

왜 이런 장면을 보여주셨을까?

 

22절: 그가 감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거역하는 것은 나귀인가, 발람인가?

죽어야만 하는 것은 나귀인가 발람인가?

나를 이같이 세번을 때리느냐?

 

34절: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 당신이 나의 길을 막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어서 무엇이라 말하는가?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아니 지금 가는 것을 막으시는 것 자체가 기뻐하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 가고 싶으면 가....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

 

가서 얻은 것

37절: 내가 특별한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

-> 그가 간절히 원한 것

 

38절: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 정말 멋있는 고백같은가? 정말 위선적인 고백 아닌가?

 

41절: 결정적인 장면-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어디로?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그가 구한 곳

  • 첫번째 예언 - 바알의 산당에서 -> 그러나 이스라엘을 축복 (22:41)
  • 두번째 예언 23:13)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리라. (이 곳 저 곳 터를 달리하면 저주하고자 하는 방법) - 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세상의, 사탄의....but 하나님의 진리는 어디에서나 변함이 없다.
  • 세 번째 예언(24:1) :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

 

그러한 그의 사술적인 방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발람의 입술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죽임당한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돌아간 후(민24:25),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데, 그 음행을 벌인 브올 사건이 사실은 발람의 계책이었던 것이다( 민31:16). 입으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였으나,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게책을 제공한 이중적인 선지자인 셈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정복할 때 발람까지 죽인다(민31:8, 수13:22)

[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신약성경은 발람을 폐역하고 사악한 사람(벧후 2:15; 유 1:11)으로, 또 이스라엘을 죄 가운데로 유혹하는 자(계 2:14)라고 한다.

 

[벧후 2:15-16]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유 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죽임당한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돌아간 후(민24:25),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데, 그 음행을 벌인 브올 사건이 사실은 발람의 계책이었던 것이다( 민31:16). 입으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였으나,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게책을 제공한 이중적인 선지자인 셈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정복할 때 발람까지 죽인다(민31:8, 수13:22)

[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발람

하나님의 법과 나라가 완전히 세워지기 전

- 아브라함 때의 멜기세덱, 모세때의 이드로와 같은 미디안 제사장...

동방의 욥 - 히브리인이 아님에도 하나님을 경험하고 전하는 사명을 주셨다.

발람은 광야의 예언자로서 아마도 하나님을 알고 경험한 자였던 것 같다.

하나님은 나귀의 입술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를 원하셨다.

 

나귀는 서양에서는 가장 고집센 동물로 여겨진다.

그런데 발람은 그 고집센 나귀보다도 더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스스로 존귀하게 높아지려는 욕망으로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뜻을 정해놓고 그 뜻을 이룰때까지 기도했다.

발락이 장소를 바꾸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한 것처럼 발람은 자신의 뜻이 관철 될 때까지 주장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한다.

 

그이 입술은 현란하다. 아무리 많은 은금을 주어도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성경을 읽는 우리 조차도 이 사람의 정체가 누구인지 불분명하게 한다.

그런데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누구보다도 발람의 정체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신약성경은 발람을 폐역하고 사악한 사람(벧후 2:15; 유 1:11)으로, 또 이스라엘을 죄 가운데로 유혹하는 자(계 2:14)라고 한다.

 

[벧후 2:15-16]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유 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사람의 눈과 귀는 속일 수 있어도 성령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감찰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가?

먼저 자신의 뜻을 버리라.

자신의 뜻에 하나님의 이름을 팔지 말라.


발람의 이름의 뜻은 "무너뜨리는 자, 파멸자"이다. 자신을 속이는 자는 곧 신앙의 파멸자이다.

무엇이 우리 신앙을 파멸시키는가? 결국 탐욕이고 교만이고 높이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성경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라고 한다.

섬기는 자가 되고 낮은 자가 되라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낮은 데로 임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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