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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2장 12-26절

지혜자나 우매자나...


이스라엘의 첫 왕은 누구입니까? 

바로 사울입니다. 성경은 사울을 가리켜 이스라엘 중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었고, 그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했다(삼상 9:2)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9장에 보면 그가 왕이 되기 전의 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암나귀를 잃고 사울에게 찾아오라고 말합니다. 

사울이 사환을 데리고 암나귀를 찾아나서는데 그냥 대충 찾는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땅에서 시작해서 살리사, 사알림, 베냐민, 술 땅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찾아나섭니다. 

 

사울이 암나귀를 찾지 못하고 술 땅까지 이르렀을 때에 사울이 사환에게 말합니다.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그는 암나귀를 찾는 데에 최선을 다하다가 실패하자 이제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이렇다가 나마저 아버지의 근심이 될까 두려워하였다고 증거합니다. 

그는 암나귀를 찾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자신을 걱정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다른 그 어떤 능력보다 하나님께서 보신 왕으로서의 자격이었는지 모릅니다. 

왜 백성들이 왕을 원했습니까? 

사무엘이 늙고 그의 뒤를 이을 아들들이 아버지와 같지 않고 뇌물을 받고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자 그들을 인도해 줄, 그들을 지켜줄, 인도자를 구했던 것입니다. 

왕의 사명은 백성을 인도하는 것, 더군다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왕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여 하나님과 그들의 중재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하나님이 보이질 않고, 보여도 두려워서 가까이 하지 못하니까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줄 대리자, agent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적어도 사울의 시작은, 왕의 되기 전, 그의 삶은 이런 왕의 목적에 합한 자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도 그는 양을 돌보는 자였습니다.

왕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어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도 안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울의 마음 속에 겸손함과 은혜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는 대리인에서 '자기 땅, 자기 가족, 자기 왕국'을 앞세우는 그야말로 스스로 왕이 된 자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왕으로 삼으신 것이 하나님이요, 자기에게 능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일진데, 마치 이제 이스라엘이 자기 것인양 스스로 왕이 된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기운 것이 하나님이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미래도, 사명도, 평안할 수 있었을 텐데, 맡기운 것이 자기 것이 된 순간, 그 평안이 깨어진 것입니다. 


(삼상 20: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이제 사울왕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도,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도 아닌 자기 나라, 자기 왕국을 지키는 데로 집중합니다. 

자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이젠 죄없는 자를 죽이고자 합니다. 백성를 살리려 왕아로 세워진 자가 이젠 자기를 위하여 결국 남을 죽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

그는 자기가 왕된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결국 자기도 죽고, 요나단도 죽게 만들고, 자기 나라만 남기워서 자기가 그토록 미워했던 다윗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흔히들 우리 신앙인을 가리켜 "청지기"라는 말을 합니다. 맡기운 자라는 말입니다. 관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가정도, 자녀도, 일도, 돈도, 심지어 나 자신 까지도 우리는 영생을 살기 전, 잠시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 청지기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평안 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맡은 자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내 것이라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하고 싶고, 내가 가진 돈, 내가 꽉 쥐고 내 마음대로 쓰고 싶고, 내 육신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굴리면서 마음껏 즐기고 싶습니다. 

런데 하나님이 내게 맡긴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것이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 여겼던 자녀가 내 마음을 떠나고, 내것이라 여겼던 돈이 내 품에서 떠나고, 내것이라 여겼던 내 몸까지 내 마음대로 안되고 쇠약해지고 예전같지 않고 내 몸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을 다 떠나 보내고 홀로 남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처음 하나님께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백성들의 마음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자 이젠 누구의 소리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소리에만 매달립니다. 

자기가 맡은 본분을 잃어버리고 자기 지혜에 스스로 매료되어 자기 인생을 자기 지혜의 시험터가 되게 합니다. 


처음엔 자기가 원한 것마다 이루고, 마음 먹은 것마다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만족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다 한들, 자기 한계성을 넘어설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제한이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높아져도 절대로 하나님이 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혜로워도, 날씨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내가 나이 드는 것을 멈출 수 없고, 실수없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지혜자가 더 많이 보고, 많이 안다 해도 자기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다 바꿀 수 없습니다. 

비가 오면 맞아야 하고, 감기오면 걸려야 하고, 해가 지나면 나이를 먹어야 합니다. 나이들면 이가 상하고, 눈이 흐려지며,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을 몸으로 견뎌야 합니다. 

지혜자라고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했던 솔로몬도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냥 아는 것을 그는 생각하고 연구해서 안 것입니다. 


살다보면 다 알게 되는 삶의 여정을 그는 연구해서 , 공부해서, 테스트 해보아서 알았으니, 그의 수고가 얼마나 헛된 것입니까? 


솔로몬이 탄식 합니다.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다." 


또 그가 괴로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어도 이제 늙으면 누군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그 물려줄 자가 자기보다 낳을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큰 지혜를 받는 줄을 알기 때문에 이후에 오는 자기 후계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자기를 능가할 수 없다.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것이 자부심이고 교만함의 원천이었는데, 자기의 업적을, 유업을 남기고 가려니까 이제 이것보다 서글픈 일이 없습니다. 


어느 부모도 자기 자식이 자기보다 못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좋은 것 다 주고서라도 자기 자식이 자기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왜 불행한 세대라고 합니까? 이제 부모보다 못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미래가 언제 열릴지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근데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내 수고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내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해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남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솔로몬이 결국 밤 낮 안 가리고 수고 하여 이룩한 모든 것을 수고치 아니한 자에게 넘겨주고 그 미래가 불확실하니 헛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왕된 삶을 사는 자의 끝, 바로 허무한 삶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끝절을 봅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삶의 어느 현장에서든지 그가 계시고 그를 의지 하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 

이런 자에게 지혜 지식 뿐 아니라 삶의 희락,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이백만을 이끌고 가나안 바로 앞에 와서 최후를 맞이 합니다. 가나안을 앞두고 그는 자기의 모든 권한을 여호수아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모세가 억울했을까요? 아니요. 그는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고 기쁘게 자기의 다음 일을 여호수아에게 물려줍니다. 

여호수아가 능력이 있는지, 자기만큼 할지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명령했기에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이스라엘의 미래를 여호수아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보다 더 못 미더울 후계자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딴소리 하며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다투며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는 모두는 도망하고 배반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전혀 실망하지 않고 자기의 모든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그들에게 맡깁니다. 

너희는 나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 그대로 이 제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무엇이 모세의 마음을, 예수의 마음을 이렇게 평안케 한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를, 베드로를 믿었다면 절대로 안심하고, 평안할 수 없을 텐데,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지금은 부족해도, 연약해도, 믿고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청지기 마음을 가진 자는 자기 같은 부족한 자도 하나님께서 맡기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열심으로, 이렇게 살았듯이, 자기 자녀, 자기 후손, 자기 후배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루실 것을 믿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와 안 믿는 자의 삶의 차이요, 결과입니다. 

자기가 왕 된 자와, 청지기, 맡은 자의 삶의 차이요,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으시겠습니까? 

Posted by 소리벼리

 

전도서 2장 1-11절 : 나를 위하여 찾은 것들 


유대인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지혜를 담은 미드라쉬라는 글에 나와 있는 한 일화 입니다. 

다윗왕이 어느날 반지를 만드는 세공업자를 불러 주문을 합니다. 

"나를 위하여 반지 하나를 만들되 내가 승리하고 기쁠 때는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절망하고 시련에 차 있을 때에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달라." 


세공업자는 반지 만드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다윗왕이 요구하는 기쁠 땐 교만하지 않게, 절망 할 때에는 낙심치 않는 그런 문구를 생각해 낸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것도 반지 위에 새겨야 되니 너무 길어서도 않되구....

끙끙 고심을 하다가 그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구합니다. 

자신을 찾아온 반지 기술자에게 솔로몬이 알려준 글 귀는 다름 아닌 

"This, too, shall pass away"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입니다. 

아무리 큰 승리도 곧 지나가는 것이요, 아무리 큰 슬픔과 고난도 곧 지나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도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것도 헛되도다" 하는 말의 근원도 바로 이 글귀에서 나옵니다.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헛되다, 바람과 같다. 의미없다. 허무하다.

라는 말 속에는 곧 '붙잡을 수 없는', '곧 지나가는'이라는 의미가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삶을 생각 할 때에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함께 나눈 것 처럼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 부와 명예와 권세를 다 가졌지만 그것을 낭비하고 그릇 사용하여 인생에서 실패한 자로서 간단히 생각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글을 보면 그의 삶은 베짱이 처럼 낭비된, 영적으로 게으른 자의 삶을 산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치밀하게 사람의 인생을 연구합니다. 


1절: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I will test you with pleasure to find out what is good"  

무슨 소리입니까? "what is good"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찾기 위해 즐거움이라는 것을 가지고 테스트를 해 볼것 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좋다라고 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씩 자기 인생에 시험해 봅니다. 솔로몬과 함께 그 선한 것들을 하나 하나씩 찾아가 볼까요? 


그 첫 번째는 바로 즐거움, 웃음에 관한 것입니다. 

옛날에도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인상 찌푸리지 말고 그냥 웃으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에도 웃음 치료라는 것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을 때만 웃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웃다보면 만사가 즐거워진다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건 미친 짓이다. 아무리 웃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란 소리는 열매가 없다. 성취함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물론 찌푸리는 것 보다 웃는 게 좋습니다. 즐겁게 살아야지요. 

그런데 내 마음이, 내 영혼이 즐거운것과 그냥 표정이 즐거운 것은 다른 것입니다. 아무리 즐겁게 웃어도 내 영혼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개그 콘서트 맨날 봐도 그 때만 지나면 또 우울해집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이것 또한 지나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술입니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위안을 삼는 것이 바로 술인데 솔로몬은 뭐라 말하냐면 내가 내 마음 속에 지혜를 놓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술이 주는 어리석음 속에 머물러 있기로 시험해 보았다.....

그러니까 술 먹으면 잠시 생각이 둔해져서 머리아픈 일상에서 피할 수가 있기에 좋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도 너무 술에 술해 지혜를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술에 대해 시도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자신을 위하여 흔히 말하는 부귀영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세워 실행해 나갑니다. 

집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과수원을 만들어 나무와 과일을 심고 노비를 삼고 첩들과 노예들을 거느립니다. 그 결과 이전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고, 그리고 지혜도 여전하였다고 말합니다. 


10절)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자기에게는 일을 계획하고, 수행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가 있어서 그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었고 즐거워하는 것을 다 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남들에게도 떳떳하게 자기가 수고해서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 세상의 사람들이 가장 추구하고 싶은, 가장 떳떳하게 성공한 자의 자신 만만함....

부정한 방법을 쓴 것도 아니고 자기의 지혜와 노력으로 이 모든 것을 이뤘다면 당연히 행복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삶이야 말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추구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누리고, 또 자기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면....떳떳하고 행복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11절을 보면 정말 이해 안되는 고백을 합니다 .

"내 손이 한 모든 것을 측량해 보고, 내가 이루고 성취한 모든 노역들을 측량해 보았을 때

난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바람을 쫓는 것이었으며, 해 아래 얻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왜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남는 것이 없었다고 느끼는지는 다음 시간에 세밀히 나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0절과 11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인생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솔로몬처럼 이것만 있으며, 이것을 이루기만 한다면 행복하겠지, 만족하겠지 하고 달려온 내 삶이, 그것을 얻은 이후에도 만족이 없고, 행복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라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 헛된 것들을 쫓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 하나하나가 너무 어리석은 것이요,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사람들을 이토록 어리석게 만든 나쁜 존재들이 있어 사람들에게 참 행복, 참 삶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토록 다 이루고도 행복하지 못한 솔로몬 자신이 원인이야 다음 시간에 살펴본다 하더라도 우리는 오늘 표현된 솔로몬의 고백을 통해서 "솔로몬의 삶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는가?" 몇가지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1. 내가 시험삼아...

돈이 전부가 아니다. 성공이 행복이 아니라고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세상 속에서도 이런 소리를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돈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다투고 죽이고.... 복권에 당첨되고 일확천금을 얻은 자들이 오히려 가정이 풍지 박산이 나는 일들을 우리는 신문지상을 통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많이 접합니다. 대 기업들의 가정들마다 형제들끼리, 부모 자식간에 분쟁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일들을 확인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시험해보기를 원합니다. 설마 나도 그럴까? 나는 다를 것이다. 

여러분, 인생은 시험삼아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의 인생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시험은 떨어지면 다시 볼 수 있지만 한 번 정해진 심판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면 문은 더이상 열리지 않습니다. 그 때 아무리 참회록을 지어도 회개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잠언을 짓고, 전도서를 짓고, 아가서를 지었어도 그의 인생의 오점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솔로몬처럼 불확실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도 그를 선한 이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2.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3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9절) 

지난시간 나누었지만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분별력이었습니다.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분별력이 흐려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나름 치밀하게 자신이 삶을 시험해 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분별력을 그는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삶을 테스트하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의 삶에 어느덧 여호와의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오직 내 지혜, 내 즐거움만 남았습니다. 

참 지혜는 무엇입니까?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3. 나를 위하여....(4, 6, 7, 8) 

그는 그의 삶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목적을 반복적으로 '나를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너는 없습니다. 당신도 없습니다. 그의 삶엔 오로지 나만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기대는 존재입니다. 나만 있는 자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너'의 소중함, 너의 중요성을 완전히 망각합니다.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이암아 얻은 몫이니라."

너를 모르는 사람은 모든 것이 내가 잘나서 입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들이 나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나와 함께 살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너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내가 한 것이 뭐 있나요? 나 여러분 덕분입니다. 

탤런트 황정민이 청룡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한 소감

"나는 여러 스텝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맛있게 먹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나만 보이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또한 우리가 함께 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마다 분주한 일상에서 꿈을 쫓아 삽니다.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행복을 쫓는 자가 아닙니다. 복을 누리는 사람이요, 복되게 사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의 복있는 사람은 이란 말씀은 우리가 복의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 줍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솔로몬은 하나님 주신 지혜에 갇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기 지혜, 자기 꾀를 따르다가 결국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가 욉니다. 

그 악인들의 끝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다윗은 이야기합니다. 

복있는 사람, ,복되게 사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법을 즐거워하고 그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대로 사는 자가 참 지혜로운 자요, 복된 자요, 행복한 자입니다. 


여러분, 참 복된 자의 삶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전도서 1장 12-18절 (참 지혜가 무엇이냐?) 


[전 1:12-전 1:18]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흔히 솔로몬 하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주셔서 부와 명예와 권세를 다 가졌지만 그것을 낭비하고 그릇 사용하여 인생에서 실패한 자로서 간단히 생각해버리기 쉽습니다. 솔로몬 하면 생각하는 것은 300명의 후궁과 700여명의 첩, 총 1000여명의 아내를 두어 삼손이 들릴라라는 이방여인에 의해서 그의 능력을 빼앗긴 것처럼 1000여명의 이방여인들과 그들이 들여온 우상들로 그의 지혜조차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떤 설교가들은 솔로몬을 탕자의 비유에서의 둘째 아들에 빗대기도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소유인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흥청 망청 써버리고 이젠 뼈져린 실패와 후회 속에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탕자의 마음과 전도서의 솔로몬의 마음을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가 전쟁보다는 혼인을 통한 외교를 통해 산당이 지어지고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지역에 만연해 진 것은 솔로몬의 큰 실책이고 잘못된 것이지만 그가 여인들의 품 안에서 국가의 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탕하게 살았다는 것은 역사적인 기록을 보나 열왕기상이나 전도서기록을 보아도 잘못된 이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도서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여인들의 치마폭 속에서 허랑방탕하게 삶을 산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전도서를 계속적으로 나누면 알겠지만 그는 정말 부지런하게 그에게 주어진 지혜를 통해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기를 원했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도, 사람들에게도 그에게 주어진 지혜의 결과들을 정리하고 알리는 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폈다"고 증거합니다. 

그는 적어도 자기 능력을 믿고 대충 살다간 사람은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혜를 통해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더 알려고, 더 남기려고 한 사람입니다. 


문제는 그가 생각하는 지혜와 나중에 깨닫게 된 지혜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은 우여곡절 끝에 왕 위에 오른 자입니다. 

그는 서열로서 보면 절대 왕 위에 오를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열 아홉 명의 아들 중에 열 번째의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하다가 압살롬에게 죽고 압살롬은 다윗을 반역하다가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압살롬 밑의 아도니야는 다윗이 죽은 뒤 왕이 되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솔로몬에 의해 죽게 됩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잘 알듯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로부터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밧세바의 아들 중에서도 솔로몬 위로 시므아, 소밥, 나단이라는 세 명의 형들이 더 있었습니다. 

그는 전체 아들들 중에서도, 밧세바의 아들들 중에서도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자였지만 역시 인간적인 서열이 아니라 중심으로 인정받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다윗의 후계자가 됩니다. 


그러니 그가 왕이 될 때에 그의 마음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이른바 일천번제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나타나 그에게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솔로몬이 구한 것이 지혜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 말씀하면 듣는 마음입니다.  

[왕상 3:7-3:9]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나서야 될 때와 들어갈 때를 알지 못합니다. 분별력이 없습니다)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 듣는 마음-왜? 남의 얘기 안들으려 하기 때문...또 말하는 표면 뒤에 숨겨진 의도를, 그 사람의 마음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 우리의 말은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수하기를,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를....

지금 솔로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의 왕권의 확립. 그는 신분적으로 결합이 있고, 어리기 때문...

장수한다는 것은 그가 왕위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자기의 안전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한다면 그가 당연히 구해야 할 것은 자기 안전과 보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구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그들을 잘 치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는 권세를 구한 것도, 힘을 구한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백성들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분별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이 기도를 들으시고 무엇이라 하시냐면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 3:10) 주를 기쁘시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자기의 안전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는 어린 아이라면서 겸손한 가운데 백성을 위한 마음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이 이야기를 금도끼 은도끼 전설처럼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정직하게 쇠도끼를 구하니까 금도끼 은도끼도 받은 것처럼 지혜를 구하면 부귀영화도 따라오는 구나...철저히 자기 이익, 계산적으로 지혜를 구할 때가 많습니다. 


ex) 어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어릴적부터 기도합니다. 솔로몬의 기사를 읽고 다른 것 구하지 않고 오직 지혜 달라고 기도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셨는지 아이가 정말 지혜롭게 컸습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남다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이 정말 무엇을 생각하는지, 의도하는지를 척척 꾑니다. 그런데 보니까 너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니까...항상 피곤합니다. 늘 손해보고 희생합니다. 정말 지혜 달라했더니 지혜만 주셨습니다. 좀 자기 잇속도 차리고 성공좀 했으면 좋겠는데 밤낮 남의 얘기 들어주다가 자기 것은 다 놓쳐 버립니다.  어머니가 보다 못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혹시 잊으신 것 없으십니까? 지혜 달라 했으면 부귀 영화도 같이 주셔야지 왜 반만 주십니까?" 


신앙 생활 오래 해도 심보가 못나면 안됩니다. 사람이 먼저 되야 합니다. 자꾸 자기 이익, 욕심만 채우려 하니까 신앙도 안 성숙하고 교회도 비난 받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유익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백성들을 잘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한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가장 첫째는 사랑인데 사랑은 자기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헤어지고 이혼합니까? 결국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갈라섭니다.

세상의 사랑이 왜 온전하지 못한 사랑입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좋아야 하고, 자기가 만족해야 하고....성경은 그런 것을 사랑이라 하지 않습니다. 


왕상 4:29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듣는 마음, 분별력을 구한 솔로몬에게 응답으로 주신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를 구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구했는데 주신 것이 지혜요, 넓은 마음입니다. 

 

 이 때 넓은 마음으로 번역된 말은 이해심입니다. 영어로는 "Breath of Understanding"입니다. 

 무엇이든 보고나 듣고나 읽으면 이해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결과 그는 잠언 삼천 가지, 천 다섯 편의 노래...

왕상 4장 33절에 보면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그러니까 그에게 지혜를 주셨는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듣는 마음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젊은 마음, 이해심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에게 다가온 지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이 이해심으로 인해 솔로몬의 왕국은 당시 팔레스틴 지역의 최강국이 됩니다. 모든 나라에서 그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의 지혜를 구합니다.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읽을 때마다 다 이해되고, 사람들이 말을 하면 그 속 의도를 정확히 꽤 뚫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여러분, 행복하시겠습니까? 

영적 능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하면 그의 문제가 느껴지고, 신유의 능력이 있어서 그의 아픔이, 고통이 느껴지신다면 여러분 행복하시겠습니까? 


솔로몬은 이 지혜를 가지고 나라가 부해지고 그도 지상 최대의 부귀 영화를 누렸지만...

"이는 괴로운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것을 주신 것은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라고 탄식합니다. 

쉴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 한분이 탄식을 하는데 어릴적 부터 하도 부모님들이 의대 의대 해서 의사가 되었는데, 의사 마누라는 돈 잘 벌어줘서 좋을지 모르지만 의사 당사나는 아주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유명해지면 질수록 몇달치 스케줄이 가득 차있고, 집에서 쉬다가도 급한 환자 오면 나가야 하고...쉬고 싶어도 대기하고 있는 환자 생각하면 한 명이라도 더 수술해야 하고...


더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고칠 수 있는 병 보다 여전히 못 고치는 병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진단이 나와도 해결할 수 없는 불치병을 만날 때는 의사로서 정말 절망스럽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고백도 그와 같습니다. 

"구부러진 것이 보여도 내 힘으로 펼 수 없고 모자란 것을 채울 수도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이해하고 알아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세상 이치에 바르고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이 있어도 결론은 헛되다. 

지혜가 많으면 번되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도 더 많아진다. 

아얘 모르면 고민을 안 할 텐데...알아서 더 고민되고....

솔로몬의 한탄이 느껴지십니까? 


그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잘못된 것입니까? 

지혜를 구하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가 읽은 12절에서 18절에서 솔로몬은 자기 지혜의 대상을 철저히 하늘 아래, 해 아래의 세계에 두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대상은 오직 이 세상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의 것만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늘로 부터 받은 능력, 은혜, 믿음이 많아도 이 땅에만 소망 두고 관심 두고 살면 결과는 결국 헛됩니다. 

앞으로 그 헛됨의 내용을 더 자세히 살피겠지만...

조금만 더 가지면, 더 배우면, 더 커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만족함이, 평안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지혜의 핵심을 깨닫고 쓴 것이 바로 잠언입니다. 

여러분, 물론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이 이 세상에만 맞추어져 있다면 남는 것은 곧 허무이고 바람입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결국 이 듣는 마음, 넓은 마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결론 

너는 청년의 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13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결국 지혜의 시작과 근원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얻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세상의 힘을 다 얻었지만 그의 삶은 행복함이 없었습니다. 

왜? 세상의 칭찬과 영광은 얻었어도 너무 바쁘고 고단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참회록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지혜의 허무함을 보여줍니다.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영화로운 자녀가 됩니다. 무엇이 참 지혜입니까? 이해 하면 좋지만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까? 솔로몬의 삶이 더 행복했습니까? 

다윗은 솔로몬보다 지혜가 없을지 몰랐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듣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더 큰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점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참 지혜입니까?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분을 경외하는 것... 이것이 참 지혜요, 생명인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전도서 1:1-11


새해의 시작을 왜 하필이면 전도서로 시작하는가? 

'새해', '시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소망, 희망, 꿈, 계획, 무언가 진취적이고 긍정적이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주어야 하는데 전도서 하면 가장 기억되는, 반복되는 문구가 우리가 읽은데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하는 부정적이고 새해에 나누기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실재로 성경 전체에서 솔로몬이 지은 성경이 세 권이 있는데 그 세권 가운데 가장 늦게 씌여졌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시작보다는 끝에, 황혼기에 쓴 글이고 또 우리 인생에서도 어쩌면 인생을 많이 사신 분들이 더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가는 성경이 전도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서를 새해를 여는 첫 강해설교의 시작으로 삼은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헛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함입니다. 

전도서는 끊임없이 해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헛되고 헛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삶을 부정하거나 염세적으로 허무함 속에 갇혀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는 말 그대로 전도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교훈을 주기 위해, 바른 방향을 주기 위해 쓴 설교문입니다. 헛되다고 자꾸 말하는 것은 헛되지 않는 삶을 살기 원하는 전도자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자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수고하면서 살아가는데 정말로 유익한 수고가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 

정말 굶직하고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수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허무주의지요. 

뒷 부분을 통해 계속 나누겠지만 전도자는 그냥 희희 낙낙하면서 인생을 낭비한 자가 아닙니다. 치열하게, 열심히, 수고하면서 산 자입니다. 그런데 그 수고 중 정말 나에게 유익했던 수고가 무엇인가? 우리 인생에서 정말 나에게 유익을 주는 수고가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 


어렸을 때는 잘살면 저 사람 정말 열심히 살았네 생각했고 못살면 저사람 게으르게 살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어떤 사람은 대충 대충 사는 것 같은데 잘 사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데 안되는 사람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과외 선생을 오래 했습니다. 

가르치다 보면 정말 공부 안 하는 애들이 있기도 하지만 고 3 정도 되면 자기 인생에 대해서 정말 고민하고 생각이 있으면 정말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공부 잘하는 애도, 공부 못하는 애들도 그 때 만큼은 정말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열심히 하는 것에 합당한 열매를 거두기도 합니다. 다 같이 열심히 하는 중에도 성적이 오르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밤을 세워가면 진짜 열심히 하는데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애들도 있습니다. 

열심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방향이 없습니다. 두서가 없고 공부에 질서가 없습니다. 

계획성있게 필요한 것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자꾸 다가오니까 이 책 저 책 보다가 결국 남는 것이 없는 공부를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고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신앙인일수록 그렇습니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사는 것만 가지고 안됩니다. 

열매를 남겨야 합니다. 무언가 의미있는 일에 열심내야 합니다. 

허무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meaningless", 의미가 없다. 방향이 없다. 목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분주하게 사는 것 같은데 뭐하는지 모르게 살면 안됩니다. 

바쁘고 서두르며 사는데 정작 의미 없이 살면 그것이 허무한 삶입니다. 

엘에이를 향해 운전해서 가는데 기껏 네시간 운전해서 바라보니 레이크타호까지 가 있으면 헛된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아무리 경치 좋은 곳에 있어보았자 내가 가야할 곳은 엘에이인데 반대 방향으로 가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아닙니까? 

전도서는 작년에 새벽예배를 하면서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두세사람이 모인 곳에서 한절씩 한 절씩 읽어가면서 연령에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전도서를 통해서 meaningless한 인생이 아니라 meaningful한 인생, 인생의 참 의미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주 앞에서 겸손하기 위해서입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잠언과 전도서, 그리고 아가서를 남겼습니다. 

잠언 1장 1절은 '솔로몬의 잠언이다'라고 썼고, 아가서 1장 1절에서도 '솔로몬의 아가라'하며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밝히는데 전도서 만큼은 한 번도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을 도를 전하는 자, 설교자라는 의미의 전도자로 칭합니다. 왜 자기 이름을 쓰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분에 넘치는 지혜, 분에 넘치는 부와 사랑을 받았는데 자기 인생을 돌이켜 보니까 하나님 앞에 너무 죄송한 것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거느린 처첩 1000여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우상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치명적인 죄의 길을 터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쓸 당시 이스라엘의 미래는 암울했습니다. 분열의 징조가 곳곳에 나타나고 환란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앞에 감히 이름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쓴 글이 전도서입니다. 


아이들에게 너무 큰 돈을 맡기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엔 돈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주어도 쓸 줄을 모릅니다. 이럴 땐 차라리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기 시작하면 무서워 집니다 .

막나가기 시작합니다.  

필요없는 것을 사고, 필요없는 곳, 가서는 안될 곳도 갑니다. 

그러면서 자기 보다 돈이 없는 어른들은 우스워 보이고 우쭐대기 시작합니다. 

결국 자신도 파괴하고 남들도 파괴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너희에게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르면서 살아갑니다.  

안타까운 것이지만 뭐 괜찮습니다. 성숙하고 깊어질 수록 우리 안의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으면 됩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곳은 나에게 주신 것의 가치를 모르고 막무가내로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부흥한 것은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서 사회가 뭐라하든 안 믿는 사람이 뭐하하든, 다른 성도들이 뭐라하든 내 가족, 내 교회만 복받았으면 땡이다 하고 교만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간구하고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하는 것 다 주지 않으십니다. 다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요? 다 주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다 주면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넘어지고 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동안은 항상 부족합니다. 많이 벌어도 부족하고 적게 벌어도 부족합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주인공의 자리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이 중심에 없으면 자신이 주인공된 삶을 삽니다. 

자기 기준대로 평가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저주합니다. 

내가 아무리 성공해봐야 한 세대 지나면 죽어 없어지는 모래 사장의 모래 한 알에 지나지 않는 존재입니다. 

내가 죽어도 땅은 없어지지 않고, 모든 것은 결국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자가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쓰는지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안티 기독교인들이 많고 하는데도 역사를 history하고 하는 데 반대하는 자가 없고 달력이 왜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연도를 정하냐 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 만드신 세상에 복종하면서 살아가면서 아니다. 없다...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아는 것. 그것은 나를 만드신 이 앞에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그 분이 주인공이시구나. 나는 나에게 주신 역할만 감당하면 되는구나. 

주의 일을 하는데도 내 마음대로 안되지요.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주 앞에 날마다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일, 맡겨주신 인생에 내 역할에 충실한 것...그것이 전도자가 말하고 있는 의미있는 삶의 통로입니다. 


솔로몬

성경에 있는 인물 중 솔로몬처럼 논란이 되는 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그를 선한 자로 볼 것인가? 악한 자로 볼 것인가? 

그를 본받을 자로 볼 것인가? 닮아서는 안 될 자로 볼 것인가?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자였을까? 


그는 출생에서부터 어쩌면 그릇된 자였습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게 태어난 아들. 

성경은 밧세바를 칭할 때마다 다윗의 아내라고 하지 않고 우리아의 아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1장의 예수의 족보를 전할 때에도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씁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서 늘 따돌림 당하는 자녀였습니다. 같이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다윗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자녀였습니다. 일찌감치 다윗의 후계자로 지목받았습니다. 

아가서에 나오는 피부가 검은 여인은 술람미 여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랑 받지만 늘 놀림당하는 솔로몬 자신을 향한 표현이기도 한듯 합니다. 


그는 다윗에 이어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은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드리는 예배를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세상 제일의 지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혜와 함께 부와 권세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그렇게 짓고자 했던 성전을 솔로몬에게 짓도록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왕국을 더 크게 확장시켜 완전한 통일 왕국을 이루웠는데 다윗과 달리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오직 그의 지혜로 외교를 통해 강대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토록 사랑받는 자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태생의 한계 였던 정욕으로 인해 또 다시 범죄합니다. 

300명의 처와 700명의 후궁을 두어 그들에게 산당을 지어주고 우상숭배를 허용합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이 우상숭배의 잔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가 죽자 마자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갈라집니다. 분단의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선인도 악인도 아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 죄많고 허물많은 인간을 사랑하신 것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인생의 순간마다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세 권의 성경을 남겼습니다. 


사랑받았지만 완전하지 않았던 솔로몬이 전해준 성경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도전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조각목을 통해 성막으 세웠듯이 하나님은 완전치 못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제 몇주 동안 2016년도 새해를 전도서를 통해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가고 목적과 방향을 세우고 참 의미 있는, 의미 가득한 삶을 바랄 수 있는 우리 로고스 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