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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장 22-24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과 구원 

 

[사 66:22-24]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 계시록에 이어 이사야의 결말 
  • 새하늘과 새 땅 - 한 편에서는 심판이, 동시에 그 심판이 다른 한 편에서는 구원으로 표현되는 역사 
  • 무엇을 심판하시고 무엇을 구원하시는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심판의 사건,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고,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고, 그들이 이방왕 고레스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돌아오고 나서도 여전히 곤고해하는 그러한 역사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대상은 무엇이고, 그 심판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사 66: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떠드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들려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1. 그들이 만드는 성전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 출애굽기 32장 - 하나님 아닌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그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 사람이 만든 하나님, 사람이 만든 성전 

[행 7:48-50]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17:24-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 7장은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순교하면서 한 말 - 왜?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세계 -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영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러한 성전이 아니다.
  • 17장은 바울이 그리스 아덴에서 한 설교 - 아테네 - 그리스 로마의 신전으로 가득찬 도시 - 너희들이 만든 신전에 참 신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전과 예배 

  •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평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경외하는 자) 
  • [시 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 소를 잡아 드리는 것 - 거래, 뇌물로 드리는 제사, 이거 드렸으니 내 꿈 이루어 주세요.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세요.-> 살인함과 다름이 없다. 

 

2. 이스라엘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 

[사 66:7-9]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열매맺게 하신 것 
  •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 - 겸손함과 사랑을 회복케 하는 것 
  • 진통, 고난, 시험, 심판 - 그들이 세워가는 잘못된 바벨탑과 같은 신앙을 깨뜨리고 참신앙, 참예배를 회복케 하시는 것 
  • 심판이 있을지라도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 고난은 우리를 돌이키기 위함이요 참 성전으로 세워가기 위함이라. 

 

[사 66:10-14]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 그 성읍은 무엇인가? 그들이 세운 성전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전 안에서 기뻐하게 하는 것 
  • 그들의 영을 만족케 하는 것 - 하나님의 품,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안에서 그 분의 품을 느끼며 안식케 하는 것 

 

3. 심판의 대상 

[사 66:15-17]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
    • 거룩과 성결 -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 없이, 십자가 없이 우리가 스스로 거룩할 수 있는 존재인가? 
    • 동산에 들어가 그 가운데 있는 자- 누굴까?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 -> 바로 동산에서 뱀과 함께, 뱀에 의해 행동하는 자, 동산을 망치는 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는 자 ->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신다. 
  • 말씀을 유심히 보아야 될 구절 -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 스스로 정결하게 하는 것 - 좋은 말 같다.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 - 마치 천사나 그리스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문맥을 살피면 정반대의 내용이다. 교회 안의 적그리스도, 하나님이 세우신 성전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하나님, 또 다른 성전을 세워나가는 자 >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 

4. 하나님 세우신 교회의 사명 

[사 66:18-19]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 바벨탑을 쌓듯이 잘못된 그들의 성전을 흩으시는 하나님은 때가 되어 언어와 민족이 다른 자들을 모아 그들을 파송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모아 훈련시켜 다시금 흩으신다. 예루살렘 교회를 모이게 하여 전세계로 흩으시게 하신다. 

 

결론 

[사 66:22-24]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 새 하늘과 새 땅 - 내 앞에 항상 있는 나라
    • 우리에게는 새롭지만 하나님께서 원래 세워 놓으신 그 나라, 그 교회, 그 성전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또 끝내시며 성전을 정화하신 것처럼, 잘못 세워진 교회를 심판하시고, 다시 원래의 교회,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가신다. 
    • 매월 초하루, 매 안식일 - 무너졌던 우리 성전이 새로워지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의 심판은 그렇기에 새로운 구원, 새로운 시작을 창조한다

 

신앙생활은 매일 매일 새로워지고, 매일 매일 잘못된 나를 깨뜨리는 것이다. 

매 안식일 드리는 예배는 내가 세운 잘못된 집을 무너뜨리고 주께서 지으신 성전으로 들어가는 삶이다. 그래서 심판과 구원은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이사야가 바라본 이스라엘의 역사요, 그 역사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그가 세우신 집으로 우리를 모아들이시고, 우리를 해산케 하는 열매인 것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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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5장 17-25절 새 하늘과 새 땅 

 

[사 65:17-25]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1. 새 하늘과 새 땅 

[계 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벧후 3:13-15]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 구약의 끝과 계시록이 만나는 공간 - 하나님의 비전 : 새 하늘과 새 땅 
  •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데려가시고자 하는, 구원 받은 자들을 만드시기 원하시는 그 목적지, 사도 바울이 바라 보았던 그 푯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완성될 나라. 

 

2. 처음의 구원- 그의 일방적인 선택, 부르심

[사 65:1-2]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 우리가 간절히 원해서 구원받은 것 아니다. 그가 어느날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나를 만났고, 나를 불렀고, 나를 택했다. 
  • 우리가 구하지 않은 구원을 주셨고, 찾지 아니한 은혜를 주셨다. 그저 그가 일방적으로 그를 계시했고 보여주었다. 어떤 나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이었던 나를....
  •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그래서 우리는 그 구원의 깊이를 모른다. 내가 구하지 않았는데 왜 십자가에 죽으셨내고 난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고 따진다. 
  • 출애굽한 백성들이 애굽이 더 좋았다고 사실이 아닌 그들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십자가 지지 말라고 항변한다. 
  • 하나님의 구원과 그 구원의 의미를 모르는 구원받은 자들로 인해 그들의 삶에 갈등이, 불균형이 넘쳐 난다. 

바로 광야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루 하루가 고되기만 하다. 주님과 함께 거니지만 그들의 관심은 늘 십자가의 반대편을 향하고 있다. 거꾸로 가는 요나와 같다. 

  • 그런 삶의 모습이 때로는 하나님의 진노로, 보응으로, 심판으로 표현되어지는 상태다. 
  • 그런데 일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 가신다.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부르고, 부르실 뿐 아니라 그의 손길로 인도하고, 훈련시키고, 때로는 죽지 않을 정도의 심판을 통해 그들을 돌이키신다. 

 

3. 변화 

[사 65:15-16] 또 너희가 남겨 놓은 이름은 내가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리라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 그 고난과 훈련과 심판을 통해 성도는 자신의 이름을 떠나 저주하며 떠나 하나님이 정하신 이름을 향한다. 

You will leave your name for my chosen ones to use in their curses (너희들을 나의 택한 이름을 위해 저주하며 너희들이 지닌 이름을 떠날 것이다) 

  • 하나님은 아브람을, 야곱의 이름을 바꾸듯이 내 옛 이름을 죽이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할 것이다.
  •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던 자들이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고, 땅에 맹세하며 땅에 매인 자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4. 다시 새 하늘과 새 땅 

  • 그렇게 이루어진 새 하늘과 새 땅은 내 노력으로 이룬 결실이 아니라 내 안에 없는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이다. 
  • 그리고 우리는 그 새로운 나라, 새로운 나를 보며 즐거워하며 기뻐할 것이다. 
  • 그곳에서는 열매맺지 못하는 인생이 없을 것이고, 우리가 건축한 곳을 남에게 빼앗김도 없을 것이며, 수고에 결실이 있고, 하나님께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들으시는 충만한 교제와 친밀함이 있을 것이다. 
  • 만물이 화해하고 평화한 샬롬의 상태, 서로의 복이 넘쳐나는 즐거움의 상태...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시는 나라, 끝 날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맛볼 수 있는 내가 주 안에, 주가 내 안에 있을 때에 경험되어지고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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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4장 3-12절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라. 

 

63장부터 이어지는 종의 기도, 종의 간구 

1.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구원을 기억 

[사 64:3-4]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신 구원, 애굽의 바로를 굴복시키시며 홍해를 건너게 하사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신 전무후무한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의 기쁨 -> 옛부터 귀로 들은 자도,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구원 

 

2. 그 은혜를 저버린 죄에 대한 고백 

[사 64:5-7]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 주는 우리를 구원하셨건만 우리는 범죄함으로 구원에서 멀어졌습니다. 이런 죄악이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고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습니다. 
  •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원하지 않는 악만 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3. 아버지여, 주는 토기장이시며 우리는 진흙입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입니다. 

[사 64:8-9]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 모든 기도의 기초점- 당신이 나의 아버지요, 나를 만들어 가십니다. 

 

4. 다시 은혜의 구원을 간구함 

[사 64:10-12]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 거룩한 성읍 - 거룩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장소이기에....
  • 시온과 예루살렘- 하나님을 예배하는 나라 
  •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 - 그 성전 
  • 이거 언제까지 놓아두시려나이까? 회복시키소서 

 

왜 그들이 거룩한 성읍과 시온과 예루살렘, 그 성전을 잃어버렸는가? 

그것을 주었어도 그것이 기쁨인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축복인줄 몰랐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빠져나왔어도 그들은 당장 지금, 오늘의 곤고함 앞에서 "또 힘들잖아요"불평했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함이 없었다. 

은혜를 주셨지만 그것이 은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종의 간구는 이제 하나님 주신 것을 찾는다. 

마치 아버지와 함께 있었을 때에 탕자는 그것이 싫어서 뛰쳐 나갔다. 그런데 나가고서야 비로서 아버지 품의 위대함을, 따뜻함을 알게 되어 그 품을 찾는다. 

에덴에 머물렀던 아담은 그곳이 낙원인줄을 깨닫지 못한다. 

선악과를 먹고 자기가 온 인생을 책임지는 인생이 되어서야 비로서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한다. 

 

종은 지금 그 첫번째 구원의 의미를 절실히 깨닫고 그것을 구하는 것이다. 

단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당신이 베푼 구원의 즐거움을 깨달았으니 그것을 충만히 누릴 수 있도록 다시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적용: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기쁨을, 그 사랑을 잃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토록 많은 축복 속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의 곤고함에 대한 불평의 삶을 산다. 

잃어버려야 그 소중함을 안다. 

그러나 잃어버리기 전에 그 소중함을 아는 것이 지혜다. 

그들은 현재를 선물로서 받는다. 날마다 사는 현재가 곧 구원인 것이다. 

하나님은 진흙 같은 우리를 쓰임새 있는 토기되게 하신다. 

비로서 그 쓰임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가신다. 

첫 번째 주어진 구원이 그 의미를 몰라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구원이었다면 

두 번째 주어진 구원은 바로 은혜에 합당한 삶,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시는 은혜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구원을 오직 긍휼함으로, 사랑함으로, 은혜로서 부어주신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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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3:7-19절 종의 찬양과 간구 

 

[사 63:7-19]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1. 종의 기도 

[사 63: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 "나"는 누구인가? 문자적으로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 백성에게 선포한 이사야라고 해야 하지만 63장은 제 3 이사야, 혹은 후기 이사야 본문으로 여겨지는 바벨론에서부터 귀환한 때에 기록된 글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당시 이사야의 역할을 했던 선지자, 혹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활동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름없는 한 선지자, 혹은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라 하자. 
  • 그는 지금 이스라엘의 특정한 어느 역사적 순간에 하나님의 큰 은혜와 자비를 찬양한다. 19절까지 이어진 이 종의 기도는 찬양으로 시작해서 간구로, 탄원으로 끝이 난다. 7-19절까지는 "나"로 표현된 한 종의 기도문이다. 

 

2.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 63:8-9]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 하나님이 이루신 자비와 은혜의 역사는 무엇인가?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된 것이다. 
  •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Surely they are my people, children who will be true to me)-> 그들을 백성 삼으신 하나님은 그들은 나에게 진실할 것이라 (미래형)으로 선포한다. 그들을 택하실 때부터 그들에게 행하실 구원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 방법: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신다. 그리고 동참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자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신다. 그리고 어미가 아이를 돌보듯 그들을 안아주시고 일으키신다. 

 

3. 백성들의 반역과 원망 

[사 63:10-14]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로 그들을 구원하셨으나 그들은 주를 반역했다. 그런데 이 때 쓰인 표현 하나가 눈에 띈다.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다"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을 거룩하고 진실하게 인도하시는데 그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영을 근심하게, 상하게 하였다. 
    • [막 3:28-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왜 이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가? 그들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번 구원을 얻은 자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지만 성령을 거역하는 자,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가로 막는 자들에게는 그 구원의 역사가 펼쳐지지 못한다. 왜? 구원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 자체가 심판이다. 그리고 그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치시기도 하다) 
  • 백성의 원망과 탄원: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현실을 경험하고야 하나님을 찾는다. 부르짖는다. 그런데 이 부르짖음은 회개가 아니다. 모세에게 구원을 베풀어 출애굽 시켜 주셨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을 편히 쉬게 하셨던 하나님, 지금 어디 있느냐고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그저 부르짖는 것이다. 

 

4. 종의 중보와 간구 

[사 63:15-19]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며 종이 중보하고 간구한다. 굽어 살피소서. 우리를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 지금까지 그들에게 쉬지 않으시고 잠잠하지 않으셨던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사 63:17절]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은 어찌보면 그들의 잘못의 탓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처럼 들리지만, 회개가 없는 회복을 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앞서 드렸던 백성들의 부르짖음과는 다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올려 드리면서 그가 오직 의지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기도한다. 

[사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 구약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 종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른다. 그러면서 히브리인들이 자기 민족의 자긍심처럼 삼았던 아브라함도, 이스라엘로 변한 야곱의 이름도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간구한다.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왜? 그들의 불신과 배반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라 일컫을 수가 없습니다. 
  • 마치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에게 난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하는 것처럼 내가 아브라함의 자식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후손이 않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한 분- 하나님, 당신이 내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 날 책임지세요. 나에게 사랑을 거두지 마세요....

 

거기엔 조건이 있을 수 없다. 내가 뭐 했으니 들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기도일까? 왜? 우리가 한 것이 그 분이 행하신 것에 비할 바가 못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기도를 할 때가 많다. 내가 이 만큼 했으니 이 기도 들어주세요. 그 분은 날 위해 죽었다. 그런 분 위해 무엇을 했다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냥 아버지잖아요. 아버진데 왜 날 내버려 두세요....하는 기도는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의 의를 통해서도 아니고, 무미건조한 하나님의 성품을 나열하는 데서도 아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그 분이 날 택했고, 낳았고, 기르신 그 관계가 기도의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의 주기도문도 그 시작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의 출발, 기도의 근거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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