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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요나서 강해'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6.08.26 요나서 강해 1. 원치않는 하나님의 명령 (요나서 1장 1-2절)

요나서 강해 1. 원치않는 하나님의 명령 (요나서 1장 1-2절)


오늘부터 요나서 강해를 들어갑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우리의 숨겨진 불신앙의 모습을 발견하고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 같이 고민하며 회개하며,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소망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요나는 여로보암 2세때에 북왕국에서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이 때에 함께 활동한 선지자는 요나 외에도 호세아, 아모스와 같은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그 아비 요아스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을 통치했고 그 시기는 솔로몬 왕때의 번영을 연상시킬 정도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번영시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힘을 떨치던 앗수르가 잠시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북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남쪽으로 유다와의 전쟁에도 이겨서 그 영역이 솔로몬의 시대와 비길만큼 강대해 졌습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는 가장 번영의 시기를 보냈지만 여로보암 2세는 신앙적으로는 가장 악한 왕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당시 도덕적, 종교적으로는 음란과 유흥이 판치고 우상숭배가 판치던 시기였으며 사회적으로는 극단적 빈부의 차가 심화되는 시기였습니다. 


일반 역사에서 여로보암 2세 때를 가장 부강한 번영의 시기였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성경에서는 이 시기를 가장 위험한 시기로 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안목이 필요합니다. 내 인생을 살펴 볼 때에도 가장과 나라를 살펴 볼 때도 현재의 외적 상황으로만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부강해지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성행하는 것이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입니다. 나라가 부강하기 때문에 이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라고 전하면서 더욱 더 흥청망청한 삶으로 백성들을 현혹했습니다. 왕과 백성들의 비위에 맞는 예배와 말씀들이 성행했습니다. 이 와중에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분별하여 살았던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음란한 여인 고멜의 삶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지자는 몇 되지 않았습니다. 

호세아, 아모스, 그리고 요나 같은 선지자들이 이 떄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요나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위기의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앗수르가 위기라고, 이스라엘은 이제 부강한 나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모스와 호세아 같은 바른 선지자들은 이 때에 이스라엘의 심판을 경고합니다. 이것이 말씀에 선 자들의 분별력입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서 요나를 불러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요나의 이름의 뜻은 비둘기,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이름은 그 인물의 실존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온유한 사람이었고, 평화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었고 인격적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당시 몇 안되는 깨어있는 선지자 중 하나였습니다. 현 상태를 바라보는 요나의 입장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에 있어서 영적 위기의 시기 

   - 내가 복음을 전하고 회개를 촉구할 대상은 이스라엘 

     앗수르는 멸망해야 할 나라...

   - 하나님의 뜻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 - 결국 거부

   - 요나 입장에서의 정황이나 계획, 이유 => 합리적 

   - 하나님의 뜻 - 인간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음 

   

다른 모든 사람에게 아무리 인격적이고 평화로운 사람이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평상시 드러나지 않는 약점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명령을 주시니까 아무리 인격적인 요나라도 금방 반응하게 됩니다. 


  • 원치 않는 소명이 내용 

1) 지금 - 히브리 성경, 시간적,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즉각적인 결단과 순종을 원하신다.

2) 일어나라 - 각성하라, 안주하지 말라 어디덴가 네가 안주해 있다. 만족하고 있다. 

              안주하지 말고 깨어서 각성해서 일어나라 

 아브라함 (창 13: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헤아려 보라 

 수 1 : 2 - 여호수아 -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다니엘 -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단 10: 11)  

베드로   - 행 10: 13 -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사명을 주실 때 먼저 일어나라는 각성을 요구함


3) 가라 - 적극적 행동 

각성되었으면 움직여라 

윌리엄 케리 - 은혜는 있는데 기도와 찬양도 있는데 행동이 없고 실천이 없다. 

행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 


4) 외치라 - 방법 - 죄와 타협하지 말고 지적하고 심판하라

-> 쳐서 외쳐라 

요나 - 쳐서 외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난다. 회개하고 구원하신다. 

-> 그 결과를 알기에 움직이지 않는다. = 요나의 불순종이 여기에서 시작...  


  • 하나님의 섭리 

1) 하나님의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은 그들도 구원의 대상이라는 하나님의 열방을 향한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심판을 니느웨의 회개를 통해 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선민의식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나큰 경고의 메세지를 주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다 잘될 거야... 그 분은 항상 내 편이야... 또 회개하면 되지 뭐....


담대한 것과 근거없는 자신감은 다른 것입니다. 

담대함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면 반드시 그가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그런데 무모한 자신감은 계속되는 외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경건을 제거해 버립니다. 좀 잘 못해도 괜찮을거야 하는 타협과 변명과 죄에 대한 무감각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니느웨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들을 보고 너희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3) 또한 이 명령을 통해서 하나님은 요나라는 개인을 다루십니다. 인격적이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한 선지자가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을 통해 외식과 허영에 빠져 있던 자신의 연약함을 대면하게 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연약함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숨기지만 신앙은 드러내서 맞서게 합니다. 그것이 치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제사도 아니고 번제도 아니고 바로 순종...

사람의 보기에 완전한 것, 유익한 것, 평화로운 것에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듬으실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눈에 지금 당장 유익한가, 아니한가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의 경륜은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는 하나님의 경륜을 섭리라고 이해합니다. 당장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너무나도 넓고 큽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이 없이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습니까? 아니면 나는 하나님 마저도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까? 

신앙은 우겨서 되지 않습니다. "믿습니다.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그러나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서서"하는 것이 기도의 마음, 기도자의 자세입니다. 


요나는 이 원치 않는 명령으로 인해 갈등합니다. 타락하는 세상 중에 몇 안되는 진정한 선지자로 고상한 삶을 살던 자가 뜻하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해 불순종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여정을 통해 내 삶의 여정을 되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난 정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고 있는가? 그 안에서 담대한가? 

내 뜻이 아니더라, 이해하지 못해도, 그 분이 인도하시는 길을 순종하며 갈 수 있는가?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해도 말씀에 의지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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