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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장 가나안 평정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와 아이성을 침 - 가나안 땅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중앙을 점령하였다. 

남부 가나안의 연합 -  

(수 9:2)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같은 것을 듣고 오직 기브온 족속만 화친제의 


그들로 말미암아 가나안 남부 족속들이 연합하여 기브온을 침공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시고 여호수아는 즉시 순종하여 전쟁에 임하고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여 태양을 멈추고 남부 족속들을 전멸 

그들의 왕이 막게다 굴- 그들의 피신처로 숨음 - 그곳이 그들의 무덤이 됨. 

하나님이 명하시면 그곳으로 가서 치고 진멸하여 가나안 남부를 점령 


남은 것은 가나안 북부 

북부의 우두머리인 하솔왕 야빈이 북부 족속들을 소집함 


  • (수 11:4)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그들이 의지한 것 -그들의 수의 많음. 말과 병거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여호수아의 군대는 이제 그 큰 숫자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음. 


  • (수 11:6)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또 두려워하지말라고 당부하신다. 

승리하고 또 승리해도 막상 들어닥치면 또 두려워진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의 심령을 두려워진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 말씀과 기도로 믿음 안에 거하는 것. 

  • 7절: 이에~갑자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자 즉시 순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속의 말씀을 주셔도 끝까지 상황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한다.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의지한다. 말씀을 주시면 행동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칠 때 이 갑자기, 즉시 라는 말이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 말 뒷발의 힘줄을 끊어라. 

그들 수의 많음에 당황하지 말고 급소를 치라.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못하도록 다시는 그것을 이용하지 말라. 

끊어버리라. 


악한 자의 것을 취하려다 유혹당하지 말라. 


어려울 때에 하나님 의지하고 극복한 후에 하기 쉬운 잘못 - 이제 세상의 것, 물질과 수단을 의지해서 어려움을 막으려고 함.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나를 신뢰하고 의지하면 영원한 승리를 준다. 


(신 20:1)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삼상 14:6)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삼상 17: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오히려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다. 없으면 의지한다. 전적으로 의지한다.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신다. 


모세의 광야생활 40년- 네가 가진 모든 능력을 무력하게 만드시는 기간 - 네 발을 벗고 나를 따르라. 너의 권리를 나에게 양도하라. 


(수 11:15)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모세는 죽었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런데도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무슨 말인가? 


성전을 지을 때에 다윗에게 성전의 지을 모든 설계도를 다윗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성전을 짓는 것은 솔로몬을 통해서다. 

모세에게 성막의 설계도를 주시지만 그것을 위임받아 세우는 것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통해서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늘과 땅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을 인간들에게 위임하셨고 또한 위임받은 인간들로 하여금 또 위임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었을지라도 자기들의 신앙을 위임했다. 그대로 전달했다. 에스라, 느혜미야 때에 성경이 기록되기까지 그들은 구전을 통해서도 정확하게 하나님의 신앙을 전달했다. 

그것이 가정과 교회의 의무이다. 


 

  • (수 11:18)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

오랫동안: 7년 

14장의 갈렙의 나이 85세 

가데스바데아에서 정탐꾼으로 가나안땅을 정탐할 때의 나이 40, 모세가 죽을 때까지 광야생활 38년 

85-78= 7년이다. 


  • (수 11:20)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

그들의 죄악을 끝까지 참으셨던 하나님, 반드시 심판의 때가 있다. 


(수 11:23)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40년의 광야 생활, 7년간의 전쟁 끝에 얻은 땅, 전쟁이 그칠 때가 있다. 열매 맺을 때가 있다. 반드시 주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이 끝날 때가 있다.

웨슬리- 이 땅에서의 기독자 완전이 가능하다.


Posted by 소리벼리

여호수아 10장 - 가나안 남쪽 정복 


1.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9장 1절의 시작 

(수 9:1-2) 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하더라


9절에서 일어났던 일- 기브온의 화친 제의 

기브온은 이스라엘 백성을 속이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묻지 않아 기브온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고, 여호수아는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듣게 되지만 큰 그림은 가나안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에 그들의 가장 큰 족속을 종이 되게 하여 이스라엘로부터 두려움을 물리치게 한 것이다. 


여리고성과 아이성은 큰 전쟁이긴 했지만, 단일 족속과의 전투, 가나안 영토의 가장 정 중앙을 차지하는 전투이었지만 이제부터 있을 전투는 중앙에서 시작하여 남쪽 연합군과 북쪽 연합군을 맞아 싸워야 하는 전투. 


물론 그 전투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지만 그 전쟁의 현장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기브온이 스스로 종이 되어 온 사건은 그 어떤 것보다도 힘이 되고 사기가 충전해질 수 있는 사건... 


수 10:1-5 이스라엘을 치려했던 전쟁이 이젠 기브온을 향한 전쟁이 된다. 

기브온은 어떤 땅인가? 왕도와 같은 큰 성- 왕의 성과 같은 큰 성, important city. its men were good fighters. 


그런데 그 민족이 스스로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시작된 전쟁. 

여호수아에 나오는 전쟁, 성화의 전쟁. 나 자신과의 전쟁...

주님, 날 구원하소서. 주님...

신앙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말 - 주님, 주인님, 나의 왕...

스스로 종임을 인정하면서 행하는 전쟁. 나 자신을 내려놓고 종이 되기 위한 전쟁. 

물론 그 싸움은 힘이 들고 어려운, 전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전쟁을 치루어 나가는 것이다. 


연합군 입장에서 볼 때 기브온의 화친은 얼마나 치욕적인가? 

이스라엘이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굴복하여 종이 된 사건이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 - 자존심 강한 사람 입장에서는 굴복하지 않으려 하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그 분께 주님하면서 기도하고 있다. 


견디고 싸우면 결과는 이미 얻어진 싸움이다. 



2. 종을 도우라!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기브온 사람들은 망설임없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낸다.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화친은 무엇인가? 우리를 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댓가로 조공을 보내고 스스로 종이 되겠다 했다. 

이스라엘의 의무는 그들을 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브온에 위기가 오자 자기들을 적극적으로 도와 달라고 한다. 

망설이지 말고 더디오지 말로 빨리 오라고 말한다. 

이미 그들의 소속은 이스라엘의 소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편에 흔히 나오는 표현중 하나는 "속히 도우소서, 망설치 말고 나를 구원하소서!" 

어떻게 한낯 인간이 만군의 주이신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바로 우리의 소속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와달라고 할 특권이 생긴 것이다. 

기브온 족속은 자기들의 수고와 꾀로 이스라엘 백성에 편입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우리 또한 기도할 수 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지체치 마시고 나를 도우소서." 


그 결과가 무엇인가? 

(수 10:7)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할 수 없이 도운 것이 아니다. 

모든 군사와 용사가 종을 위해 힘을 합해 올라간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는 도우시는 하나님이다. 


3.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수아는 1장에서부터 거듭 이 말이 반복된다. "두려워하지 말라." 

여리고와 아이성을 이기게 하시고 기브온 백성을 종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전쟁을 앞두고 또 다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왜? 인간은 또 현실 앞에서 두려워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홍해를 건넌 백성이 3일만에 물이 없다고 두려워한다. 

바알과 앗세라 850명을 무찌른 엘리야가 이세벨의 한 마디에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생각을 막는다. 

두려움은 계산조차도 불가능하게 한다. 

두려움은 적을 극대화하고 나를 극소화한다.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두려움을 통해서는 역사할 수 없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만이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말씀으로 주어지는 약속이다. 감정이 아닌 말씀으로 주어진 진리이다. 


(요일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을 통해 주어지는가? 말씀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전쟁에 앞서 하나님은 

(수 10:8)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승리의 전쟁의 싸이클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말씀- 온전한 순종- 예배 


4. 말씀에 근거한 열심

(수 10:9)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하나님의 승리의 언약을 받자 여호수아는 지체하지 않는다. 밤새도록 올라갔다고 한다. 길갈에서 기브온 까지는 40km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그들은 먼저 기브온의 요청에 머뭇거리지 않았고,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힘을 다해 밤을 새어 기브온으로 도착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예루살렘 연합군 입장에서는 "갑자기" 이스라엘 군대가 도달한 것이다. 

누구도 이렇게 빨리 그들이 도착할 줄을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올까 하고 의심하였을 때 이스라엘 군대 전부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그들에게 다다른 것이다.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은 부지런하다. 순종하는 자는 부지런한 자이다. 말씀이 근거가 된 열심은 열매를 맺는다. 성취가 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도 가만히 있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기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더라."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보다 크다. 그런데 그 능력은 사람을 통해서 사람과 함께 역사하신다. 

0*무한대는 여전히 영이다.

그런데 무한대 * 1은 무한대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서 무한대의 능력을 발하는 것이다. 


(수 10: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이미 오늘 그들을 이스라엘에게 넘기셨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그들은 승리하고 있다. 

그런데 외부의 환경은 이미 어두워져 가려고 한다. 

어두워지면 전쟁을 계속 할 수 없다. 

약속은 이루어져 가는데 환경은 멈추려 한다.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에게 멈추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하는 대상은 해와 달이 아니다. 누구를 향해 말하는가? 

바로 여호와께 고하는 것이다. 

"오늘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해와 달을 멈추어서서라도 오늘 이루어주시옵소서." 

맹목적인 열심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이루기 위한 기도요, 열성이다. 


열성이 없는 기도는 형식과 자기 만족으로 빠지고 말씀없는 열성 역시 자기 만족과 잘못된 것을 좇는 열성이 된다. 

사도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과 후는 자기 만족과 잘못된 방향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주의 나라를 위한 목적으로 바로 잡힌다


5.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승리)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21절) 



Posted by 소리벼리

여호수아 9장 - 기브온과의 화친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골 골짜기에서 아간이 죄를 회개함으로 다시금 하나님께 묻고 순종함으로서 패배했던 전쟁에서 승리한 장면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순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에발산에 올라 그 옛날 모세가 당부했던 그 땅에 들어가면 반드시 에발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나누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심 산과 에발산에 올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순종과 불순종, 축복과 재앙에 대한 말씀을 민족적으로 함께 나누는 장면을 나누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애굽에서부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삶에서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그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산 체험을 통해 점차 말씀의 사람으로 변모해가는, 성화되고 성숙되어져 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듭 말씀 드리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삶, 성화의 삶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늘 유혹이 우리를 순종치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9절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과 기드온 민족의 예를 통해 누가 진정 믿음의 사람인가?하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1. 승리 뒤에 오는 악한 세력의 방해 

1절: 이 일 후에 - 이 일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성에 이어서 아이성마져 무너뜨린 이 사건 이후에 가나안의 모든 족속이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이제 이들 모두가 힘을 합쳐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합니다. 


2절: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NLT 성경) These kings combined their armies to fight as one against Joshua and the Israelites.


우리가 은혜를 맛 볼 때에, 신앙적으로 성숙되려 할 때에 사탄의 방해는 더욱 심해집니다. 

이러한 영적인 세계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신앙 안에서 무엇인가 결심을 할 때 방해가 나타나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구나 오히려 확증을 하고 그런 방해와 유혹과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 무감하면 이런 방해가 올 때에 아직 때가 아니구나... 나중에 해야지, 하면서 미루다가 결국은 전진하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 걸음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서 성숙하려 할 때에 사탄은 더욱 방해한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사탄은 분열의 영이기 때문에 그 특징이 자기들끼리도 잘 합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 단합하느냐? 믿음의 방해꾼이 될 때에 그들은 하나가 됩니다. 

예수를 죽이고자 할 때에 절대로 합치될 수 없었던 헤롯당과 열심당이 하나가 됩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하나가 됩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절대로 합치될 수 없는 집단들인데 예수를 죽이려는 목적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2. 기브온 주민  

(수 9: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기브온 주민들은 가나안 여러 족속들 중 히위 족속에 속해 있는 한 마을의 주민들입니다. 

가나안 전체가 지금 하나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치려 하는데 유일하게 기브온 주민들은 꾀를 내어 이스라엘과 화친하는 일을 선택합니다. 그러면서 의복과 음식과 모든 짐들을 다 헤어지게 하여 그들이 먼 곳에서 왔음을 강조합니다. 

6절에도 보면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9절에도 보면 "우리는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왜 그들은 먼 나라에서 왔음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신명기 20장 10-18절 

신 20: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신 20: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신 20: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그들은 여리고와 아이성을 정복한 이스라엘 민족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말씀 까지도 철저히 연구한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요구는 무엇이었습니까? 

당신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3. 여호수아의 실패 

여호수아는 바로 이 전 장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큰 실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드온과 화친할 때에도 똑같이 묻지 않고 행하다가 그들의 꾀에 넘어 가 화친을 허락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들의 잘못을 꼭 집어서 14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수 9: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언제 실패하는가? 만약 이 일이 거꾸로 강대국 사람들이 와서 위협하며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라는 요구였다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엎드렸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들이 와서 엎드려 종이 되게 해달라고 하니까 그들은 묻지 않고 그들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그들은 왜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까? 

정탐꾼의 말이 이 전투는 너무 쉬운 전투다 하니까 묻지 않고 올라간 것입니다. 

어려운 일 앞에선 기도하지만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나에게 보탬이 되는 일에서는 우리가 그 영광을 취하려 합니다. 신앙의 실패는 바로 여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까지 기록한 것은 분명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그들의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들은 양식을 가지고 종이 되고자 찾아온 자들에 대해서 총체적인 영적인 부재를 드러냅니다. 


  • 분별력의 부재- 사신들의 외모를 보고 판단함. 낡고 기운 옷차림- 대표자의 자격이 아니다 

                        어느 나라를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저 먼나라라고만 함. 

  • 기도의 부재-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14절) 
  • 순종의 부재 - 출애굽기 23장 - 가나안 어느 민족과도 언약하지 말라. 그것이 너희의 올무가 되리라.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마땅히 정복해야 할 땅을 정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듣지 않아도 될 원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18절 b)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그들은 하지 말아야 할 원망, 40여년의 광야 생활의 원인이 되었던 원망의 삶을 또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수 9:23)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수 9: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수 9:25)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4. 약속 이행  

이 계약에서의 거짓을 저지른 쪽은 분명 기브온 주민들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을 저주하여 하나님의 집에서 대대로 일하는 자들이 되게 합니다. 

계약은 쌍방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쩌면 거짓으로 임한 계약에 이스라엘이 파기할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25절에 보면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앞에 바짝 엎드려서 "당신의 의향에 좋은대로 행하소서"하고 처분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을 저지른 그들을 죽여도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19절에 나와 있지요 

(수 9:19)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기브온 사람들은 거짓을 범했지만 그들의 거짓 유무와 상관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침범치 않기로 맹세했기 때문에 고민할 것 없이 그들을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이었습니다. 


야곱을 축복한 이삭...그 축복을 거두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입다....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 앞에서 자기의 딸을 내어 놓습니다. 


시편에 보면 반복해서 나온 구절은 "내 서원을 지키고...."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자기 사정을 핑계로 지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환경이 변하고, 사정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약속은 해로울 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5. 기브온의 축복 

기브온은 거짓 화친으로 말미암아 여호수아로부터 저주를 받게 됩니다. 

야곱이 이삭의 축복은 받았어도 그 거짓의 대가로 라반의 집에서 20년 가까이 일을 해야만 했듯이 기브온 사람들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 뿐입니까? 자기 동족 가나안으로부터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어제까지 가족이요, 친구였던 그들과 이제는 상종조차 못하는 원수가 된 것입니다. 

가나안 백성들은 10장에서 이스라엘을 치기 전 이 기브온을 치기 위해서 힘을 모아 공격합니다. 


그럼 도대체 왜 기브온 백성들은 자기 동족에게 배신자라고 낙인 찍히고, 이스라엘 민족에겐 종이 되는 그런 불리한 조약을 스스로 채결한 것입니까? 

그것이 사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종이 될 지언정 그것이 그들에겐 살 길이요, 생명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주민은 히위 족속에 속한 주민들입니다. 히위 족속은 가나안의 자녀입니다. 저주받은 민족이요,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가능성이 없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가나안 족속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나눌 10장에서 가나안 족속들은 기브온 민족들을 치기 위해서 연합하여 그들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종이라고 저주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그들을 구해냅니다. 

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주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가나안의 연합군을 맞써 싸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유명한 사건, 태양을 멈추게 하여 가나안 연합군을 멸하게 하십니다. 기브온의 땅에 태양마저 멈추어 전쟁을 도운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할 때 기브온은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되었고(수18;25), 이후 레위인의 성읍으로 지정되었습니다.(수21:17)

하나님의 집에서 나무나 패라던 족속이 정말로 레위인이 거하는 성읍이 되어 영원히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실로가 함락되자 하나님의 성막이 이 곳 기브온에 옮겨져 오게 되고 솔로몬은 이곳 기브온 산당에서 그 유명한 일천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에 이들은 이방민족이면서도 더불어 예루살렘 재건에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종에서 성전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수 10: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그들은 영원한 삶을 위해 현재의 지위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기보다 약한 민족의 종이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종이 되기 위해서 자기 민족들로 부터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저주받는 일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고 

가나안의 저주로부터 벗어났고

레위인이 거주하는 장소가 되었고, 성막을 맞이하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고 일천번제를 드린 축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의 실패를 맛보고도 또다시 자기의 유익 앞에서 묻지 않고 행하다가 하나님의 질책을 받습니다. 

자기 유익 앞에서 신앙의 길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유익을 벗어 던졌습니다. 

스스로 종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누가 참 신자입니까? 누가 참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Posted by 소리벼리

여호수아 8장 - 아이성 전투 2, 에발산의 예배


지난 주 여호수아 7장은 여리고성 전투에서 승리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아간의 죄가 발각이 나고 아골골짜기에서 심판당하는 이스라엘의 실패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

여호수아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거듭남 이후에 성화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영적인 일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출애굽기가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는 사건을,  홍해를 건너는 세례사건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듭남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만나와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성막을 통해 예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예수께서 사탄에게 시험 받을 때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 4:4)  하신 것처럼 우리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려는 사람입니다. 

말씀과 예배는 거듭난 신자라면 당연히, 그리고 최소한 행해야 하는 거듭난 자들의 삶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본격적으로 성화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거듭나는 사건은 한 번이지만 성화의 사건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수행해야 하는 매일 매일의 전투요, 매일 매일의 순교입니다. 


거듭남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는 사탄과 세상과의 영적인 전투라면 성화의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닌, 우리 안의 내 자아, 내 죄된 타락한 본성, 내 성품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변하고 반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데 우리가 반응하고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바로 우리가 마음 문을 닫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의 전투는 바로 이 내 마음을 여는 전투입니다. 나를 정복하는 전투입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그런데 한 번 은혜 받고 내 자아가 깨졌다고 해서 우리의 자아는 그냥 무너지지 않습니다. 끊질기게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도록 순간마다 우리를 걸고 넘어지며, 우리를 자꾸만 과거에 얽매이게 합니다. 


  • 7장의 아이성의 전투는 여리고를 정복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다시 실패하는가?를 다룬 신앙인의 실패를 다룬 장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7장의 내용을 아이성, 아간, 아골 골짜기라는 세 주제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아이성의 의미는 황폐한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산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장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을 받고, 열두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소입니다. 

아이성의 패배는 첫째,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움직였기 때문에 일어난 패배였습니다. 

신앙인의 실패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일을 벌이다가 일어납니다. 

여호수아는 다른 때와 달리 정탐꾼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바로 움직입니다. 저 곳은 쉬운 곳이니 군사 이삼천만 데리고 가면 된다는 말에 묻지 않고 가다가 혼비백산합니다. 


상황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면해야 할 우리의 신앙이 황폐해 질때에 실패가 임하고 고통이 임합니다 .


아간은  곤란이라는 뜻입니다. 왜 곤란해졌습니까? 정욕과 탐심때문입니다. 

승리했던 신앙은 결국 탐심으로 인해 곤란해졌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가로채다가 아간은 심판을 당합니다. 

외투 한 벌과 금덩이로 구원의 은혜를 맞바꿉니다. 


신앙인의 실패 두번째는 정욕입니다. 우리는 떡으로 사는 삶이 아닌 말씀으로 사는 삶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시 떡으로 인해 말씀을 버리면 결국 우리의 삶이 곤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탐심은 무엇입니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탐심이 아닙니다. 

필요치 않은 것을 욕심내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탐심과 욕망에 진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36명으로 인해 마음이 녹아집니다. 

작은 손해가, 작은 고통이 자기를 지배합니다. 무너집니다. <->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보는 것 <-> 별 거 아닌 것에도 무너지는 것  

 

과거에 집착합니다. 애굽이 더 좋았더라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 광야가 더 좋았더라고 불평합니다. 

탐심의 결과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은 언제나 가장 크고 과거는 언제나 살기 좋았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신앙은 현실을 이기라는데 불신앙은 현실이 항상 가장 최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골 골짜기 곤경과 고통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 이제 8장입니다. 8장은 회복의 장입니다. 회개한 후에 일어나는 은혜의 장입니다. 

수 8: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회개 이후에 주어지는 은혜: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까?  상황이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세워지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빛이 비추이게 됩니다.  


군사를  거느리고 올라가 : 정탐꾼이 했던 말? 이삼천명만 데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쉬운 싸움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야 하는 싸움이다)

오직 거기서 탈취한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전부 불사르거나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 

아이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 오직 침묵하고 나팔을 부르고 부르짖으라. 


- 왜?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하는가?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주시는 말씀이 다르기 떄문입니다. 문제마다 해결책이 다릅니다. 

우리는 겉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속을 꿰뚫어 보신다. 정확한 해결책을 아신다. 


7장의 전쟁: 묻지 않고 스스로 정탐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행하다가 실패한 전쟁 

8장의 전쟁: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여호수아가 명령하고 백성이 따른 전쟁 

여리고성은 낮에 침묵하며 성을 돌다가 나팔이 울리면 소리질러 무너뜨린 전쟁 

아이성은 밤에 매복했다가 낮에 돌격하는 전법 


여호수아가 전쟁을 걸면 군사들이 나와 그들을 쫓을 것이고 그러면 매복한 군사들이 성으로 들어가 점령하여 성을 불태우라. 

-> 성 안에 있는 군사들의 숫자가 많았다. 

정탐꾼을 속인 것이다. 정탐꾼이 보지 못한 군사들의 숫자가 많았다. 


10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수아서를 통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구절. 믿음은 행함으로 하는 것이다. 성실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아이성왕의 대비 - 

일찍이 일어나 (14절) - 그들은 잘 준비하였다. 그들 역시 성실하게 전쟁을 준비했다.

정한 때에 싸우려 하나 (14절) 그들은 전쟁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복병은 알지 못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 만이 안전하다.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17절) 그들은 동맹군도 있었다.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려 하였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 

  •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18절) 
  •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6절) 

-> 마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산에 올라 손을 내리지 않은 것처럼 단창을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진멸시키려 했던 아이성의 모략이 결국 그들이 진멸되는 사건으로 끝이 났다. 


  • 에발산에서의 율법낭독 

아이성과의 두 번의 전투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첫번째 전쟁은 이스라엘의 패배였고, 두번째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승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승리가 더 기쁘고 신났던 것은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성 자체를 제외한 성안의 모든 귀한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쟁에 참가했던 3만명의 군사들은 저마다 아이성에서 취한 값진 전리품들을 손에 들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개선행진을 하며 돌아오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고 나머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도모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때에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뜻밖의 일을 행한다. 

 바로 에발산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전쟁을 기뻐하고 축하하기 전에 사람들을 모두 모으고 굉장히 엄숙하고 진지한 예식을 하나 행합니다. 꽤 멀리 떨어진 에발산까지 사람들을 전부 데리고 가서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을 다시 세웠습니다. 

 

(신 27:1)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신 27:2)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신 27:3)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신 27:4)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신 27:5)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신 27:6)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신 27:7)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신 27:8)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승리에 때에 그들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하나님과 맺은 하신 언약을 기억했다. 

33절 모세의 명령을 재반영

온 이스라엘과 장로들과 관리와 재판장들이 본토인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궤 좌우에 섰다.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다.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고 명령한 것이었다. 

34-35절 율법의 낭독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낭독하였다. 곧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였다.


특별히 다듬지 않는 돌 위에 단을 쌓고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린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제사를 원하심은 인간의 인위적인 가식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순수함 자체를 받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고 온전한 제사를 원하신다. 불순물이 첨가되어 부자연스럽거나 온전하지 못한 제사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출 20:25)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에발산에 세워진 제단 위에서 번제와 화목제, 그러니까 참된 헌신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본격적인 언약예식에 들어갑니다. 우선 여호수아는 돌 위에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다시 기록하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왜 그렇게 이미 있는 율법을 다시 기록했고, 또 백성들에게 그 지루한 과정을 모두 지켜 보게 했을까요? 


이것이 이야기해 주는 바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채워지게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저주로 채워지게 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언약 안에서 사는 자기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모양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심 산에 세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에발산에 세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애석하게도 복된 쪽만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쪽은 받아들이지 않을 방도는 없습니다. 34절을 보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데요. 지금 전쟁에 승리해서 한 껏 기쁨과 흥분 속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모아놓고 여호수아는 ‘율법책이 기록된 모든 것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듣는 일은 참 즐겁고 기쁜 일입니다. 그것은 승리의 기쁨을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겠지요. 그러나 저주의 말씀을 듣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런 기쁨과 흥분에 찬물을 끼얹는 일입니다. 


축복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들려주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모두 불편하고 힘들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주의 말씀이나 경고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없고, 듣는 사람도 그 말씀을 유쾌하게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성도들을 마치 소비자나 고객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교회들 안에서는 죄에 대한 이야기,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위로와 축복의 말씀만 넘쳐나고 있지요. 그래서, 교회 안에는 항상 가벼운 웃음 소리와 부담 없는 걸음들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참으로 성도들을 사랑하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성도들을 그리심 산 앞에 뿐만 아니라 에발 산 앞에도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의 말씀 뿐만 아니라 저주의 말씀도 들려주어야 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