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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여호수아서 강해'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7.02.17 여호수아 20장 도피성
  2. 2017.01.27 여호수아 19장 (나머지 땅의 분배)  (2)
  3. 2017.01.14 여호수아 18장 (실로의 회막과 베냐민 지파)
  4. 2017.01.13 므낫세 지파와 슬로보핫의 딸들

여호수아 20장 - 도피성 


  • 2절: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 

(출 21:12)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출 21:13)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 십계명을 주실 때에 주신 말씀. 

출애굽기 21장에 처음 언급하며 이후, 민수기 35장 신명기 19장, 그리고 여호수아 20장에 각각 언급 


  • 대상: 부지 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

(신 19:5)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 목적: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3절)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가 율법의 원칙 (동해 보복벅) 

친족이 자기 친족의 권리를 물을 수 있다. (고엘제도) . 

율법은 동해 보복법과 고엘제도를 통해 피살자의 친족은 그 죽은 자를 대신하여 합법적으로 피의 복수를 할 수 있다. 도피성은 합법적인 재판이 공개적으로 열려서 정확한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보복하려는 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읍이다. 

일단 도피성으로 도피하면 도피성은 그를 내어주지 않고 보복자는 따라 들어올 수 없었다. 


  • 위치: 7-8절- 어느 지파든지 반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도록 각각의 가장 가까운 처소. 

(신 19: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가장 가까운 장소에 길을 닦아 누구든지 쉽게 올 수 있도록 도피성을 마련 (누구든지 하루 길 안에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어진 말씀에 보면 도로의 각 교차로마다 이정표를 세워 도피성의 위치를 정확히 알리도록 하였다. 


  • 운영방법 (4-6절) 

문 어귀에서 자기의 사건을 말하고 그들은 성읍에 받아들여 그 곳에 거주하게 한다. (고백, 회개) 

누가 와도 내어주지 않는다. 

재판으로 무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가 확정되면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성에 거주하여야 한다. 그 이전에 나오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예표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자유케 되었다. 


  • 도피성과 그리스도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도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모두를 위한 곳 

피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리 가까와도 도달하여 들어와야 한다. 


차이점: 부지 중에 죄를 지은 자만? 누구든지가 예수 그리스도

            누구든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 

            대 제사장이 살아 있을 동안만? 그 대제사장은 영원히 죽지 않는 구세주. 

            

우리는 여기서 율법과 은혜의 원칙을 본다. 복음을 순종하고 믿는 자는 결과적으로 그의 죄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행한 것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사탄에게 속아서 범죄한 것이 되며 모르고 사탄에게 종 노릇 한 것이 된다.


부지 중에 죄를 지은 자, 고의로 죄를 짓지 않은 자  

예)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긍휼은 입은 것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였다(딤전 1:13).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도 동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 그것을 알지 못하고 행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 같은 사람을 도피성으로 피하도록 길을 열어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 그러나 우리는 믿으면서도 고의로 죄를 지을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신앙 안에서 우리가 짓는 죄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영이 고의로 짓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에 의해서 영이 영향력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 탕자 -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허랑방탕, 그러나 그가 깨달았을 때에 멈추지 않고 돌이켜 회개했다.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은 고의로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다. 이들은 사탄의 고의적인 죄에 동참한 자들이므로 그들의 죄가 고의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에는 죄를 용서하는 은총이 있을 뿐 아니라 범한 죄를 의도성 없는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녀가 아버지의 돈을 훔쳐 달아났다 하자. 그런 경우 나중에 아버지께 돌아와서 회개하며 잘못했다고 할 때 아버지는 그의 죄를 용서한다. 용서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그 자녀의 죄는 당시 철이 없고 너무 어려서 잘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10년이고 20년이고 그가 회개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그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의 과거의 죄는 고의적인 것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도피성이 어떤 죄인이라도 피할 수 있는 도피처가 된다.


게데스는 성소 혹은 거룩을 의미하고, 세겜은 어깨, 헤브론은 교통, 베셀은 요새, 라못은 높은 곳, 고지(高地), 골란은 기쁨 또는 환희를 뜻하는데,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룩 또는 성소이시며(요 2:19), 정사를 멘 어깨와 같으시고(사 9:6), 아버지와 사귐을 갖게 해주시는 분이며(고후 5:18-19), 신자들의 피할 요새시며(시 91:2), 높은 하늘에 앉게 해주시는 높은 곳이며(엡 2:6), 기쁨(롬 5:11)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도피성이시라는 말이다.


죄인이 살기 위해서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이는 그가 도피할 곳의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 자신의 사고를 고백하는 것이다. 


  왜 땅의 분배를 마치고 이 도피성을 세우는가? 

            진정한 안식은 땅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땅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사망의 골짜기가 된다. 

            아무리 험한 땅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으면 안전하다. 

            참된 피난처는 우리 그리스도 안에만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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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9장 (나머지 땅의 분배) 


창세기 49장의 야곱의 축복과 신명기 33장의 모세의 축복이 이들 분배에 있어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살펴보는 것이 해석의 틀이다.


1. 시므온 땅의 분배 

1, 9절 :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땅을 취함 

시므온은 자기들의 구별된 땅을 얻지 못하고 유다 자손의 땅 중에서 땅을 취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그 까닭은 시므온 지파가 12지파 중 인구 비율상 가장 열세한 지파인데 반해, 유다 지파는 한 지파가 관리하기에 너무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므온 지파는 서서히 유다 지파에 동화되어 유대 온 지경에 분산되어 버린다. 


반면에 부족한 토지 속에서도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를 위해 기꺼이 토지를 양보하였다. 남들보다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도 불평한 요셉 지파에 비하면 유다 지파가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분명히 보여 준다. 그것이 바로 찬양이 힘이고 감사의 힘이다. 감사는 받은 축복을 축복되게 한다. 복 자체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도 만족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 레아의 자녀, 르우벤, 시므온, 레위를 나을 때까지 하나님은 레아가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자녀를 통해 위로하셨다. 그러나 그 어떤 자녀도 레아를 위로할 수 없었고 레아의 허전함을 달래줄 수 없었다. 그러나 유다를 통해 이제 그녀의 시선이 하나님께로 옮겨졌을 때에 이제 레아는 더 이상 야곱에게 얽매이지 아니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간다.  


왜 시므온은 야곱의 둘째 아들이면서도 그를 대신하여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열두 지파를 대표하게 되는가? 창세기 49장엔 야곱의 시므온을 향한 언급이 나온다. 


(창 49: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창 49: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 49: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그들의 누이 딤나가 세겜 족속에 의해 강간 당했을 때에 그들에게 할례를 하게끔 하여 할례 받게 한 후에 칼로 도륙하여 전멸시킴. -> 거룩한 할례를, 하나님의 언약을 자신들의 복수에 사용. 야곱으로 부터 저주를 받게 된다. 

결국 그들은 지파로서의 독자성을 잃고 유다지파에 예속되게 된다. 


두 번째의 사건이 민수기 25장에 등장한다. 이른바 바알브올 사건 

모압 왕 발락의 사주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러 왔다가 나귀의 책망을 들은 발람은 오히려 성령에 붙들려 이스라엘을 세 번이나 축복하게 됩니다(23,24장). 그러나 마지막 순간 모압 왕 발락이 제시한 재물과 권세(24:11)에 눈이 어두워진 발람은 자신이 저주하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와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꾀’(31:16)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서 결국 발람 자신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고 맙니다. 


발람의 꾀에 따라서 발락은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을 따라서 육체적인 죄에 빠지게 되고 이어서 그들의 신들의 제사에 함께 하는 영적인 죄에 빠지게 됩니다. (민 25 1-3절) 

 이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서 죄악을 저지를 자들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여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미디안 여인과 그와 함께 음행을 저지를 이스라엘 남자를 죽이게 됨으로 화를 면하게 되는데 이때 죽은 자가 시므리로 시므온 조상의 가문 중 지도자였습니다. 


똑같이 저주를 받게 되었지만 레위지파는 광야에서의 황금송아지 사건을 통해서 축복을 회복하게 된다. 

(출 32:26)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출 32:27)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출 32:28)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출 32:29)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 황금 송아지를 통해 반역하게 된 자에게 여호와께 속한 자는 이 쪽편에 서서 자기 민족 중 범죄한 자를 치게 함. 

자기 절제, 자기 회개. 온전한 헌신 


똑같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레위는 그 흩어짐이 축복으로 바뀜. 

연결된 땅이 없었지만 레위에게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 하나님이 보장하심. 


2. 스불론 

(창 49:13)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신 33:19)그들이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이 예언대로 스불론 지파 사람들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시돈과 두로 지역 및 갈릴리 해안 지대와 활발한 상거래를 형성함으로써 많은 부를 축적


3. 잇사갈 

(창 49:14)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창 49:15)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왕상 21:1)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잇사갈 지파는 그 옛날 야곱이 예언한 바대로 갈릴리 바다 남쪽과 서쪽에 위치한 농업 지역 곧 에스드렐론 평야를 위시한 많은 풍부하고 비옥한 농지를 지닌 곳을 영토로 분배받게 됩니다. 이곳은 그 유명한 아합의 궁전과 나봇의 포도원이 위치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4. 아셀 

(창 49:20)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평야 지역으로 가장 농사 짓기 좋은 땅. 


아셀 지파는 그 옛날 야곱이 예언한 바대로 비옥한 농사 지역을 차지하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즉 갈릴리 호수 서쪽 경사 지대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곳은 에스드렐론 평야와 악고 평야 등지를 끼고 있는 곳으로 대체로 비옥하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아셀 지파는, 국제 무역항인 두로와 시돈까지 그 영토가 뻗어 있는, 입지적으로 산업 활동에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아셀 지파는 한 사람의 사사도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공헌도가 지극히 낮았습니다.


5. 납달리 

(창 49:21)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예수님이 초기 사역의 중심지- 갈릴리에서 요단강 사이 


모세가 예언한 대로 비옥한 땅을 얻게 된 납달리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가장 북쪽의 땅을 얻게 됩니다. 납달리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반이스라엘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친 인물 중 한 사람인 하솔 왕이 거하던 곳을 영토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납달리 지파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심지어 자신들과 어울리게 함으로써 12지파 가운데 가장 일찍 우상 숭배의 죄악에 심취하고 말았습니다.


6. 단 

팔레스틴에서 가장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 그러나 좁은 땅 

(창 49:17)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상속 받은 땅을 빼앗기고 다른 땅을 개척함 

나중에 우상 숭배의 본산지 황금 송아지의 땅. 


7. 여호수아

이스라엘 12지파가 모두 영토를 분배받는 동안 그 모든 일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던 여호수아는, 자기에 대한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지파들이 영토를 부여받은 뒤에 비로소 마지막 순서로 분깃을 받았던 것입니다. 특히 그가 받은 영토는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딤낫세라라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화려하고 장엄한 곳이기보다 폐허에 가까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성읍이었습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했던 제일 큰 공로자였습니다. 따라서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이 차지한 영토 가운데서 가장 풍요롭고 안정된 지역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개인의 안녕과 영달을 취하고자 하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모든 욕심을 뒤로 한 채 하나님과 백성의 유익을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자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결코 좋은 땅이 아니어서 파괴된 성읍을 가짐. 

믿음있는 자가 좋은 땅을 얻음,. 

약속을 받은 대로. 

그리고 겸손한 자. 

가장 좋은 땅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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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0.01 21:57

    1. 바알의 꾀를 따라서 발람이... 죄를 지었다는 표현은 좀 잘못된 것 아닐까요?
    2. 발람과 발락이 혼동되어 사용된 예로 좀 있는 것 같아요.

  2.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10.02 07:20 신고

    확인해 보니 오타와 오류가 맞네요. 수정하였습니다. 잘못을 지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여호수아 18장 (실로의 회막과 베냐민 지파)

  • 길갈에서 실로로 

길갈 (광야 땅) : 굴러가다. 넘어가다. 

          지금까지 회막이 있던 곳. 

          할례를 행하고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여 열 두 돌을 세워 놓은 곳. 

          수치가 굴러가고 죄가 굴러가고 가난이 굴러 간 곳. 

          여리고와 아이성을 정복한 곳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 (요단 동쪽) 

          유다, 요셉 (에브라임, 므낫세 반)지파가 땅을 기업으로 받은 곳. 

          

실로: 가나안의 중심지, 이 때부터 사무엘때까지 성막이 머무는 곳. 

        정복시대에서 가나안 통치의 시대. 그리스도를 가나안 땅의 중심으로 모심. 

        

  • 분배를 하다말고 성막의 처소를 옮긴다. 

왜? 분배를 가지고 불만을 제기하고 분배를 받으러 나오지조차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하면 불평과 피곤함이다. 

왜 불평과 피곤함이 생겼을까? 

인간적인 이유를 대면 하나 둘이 아니다. 

첫째, 그들은 쉴 틈이 없었다. 애굽에서의 종살이...40년간의 광야생활 7년간의 가나안 정복....

큰 일 뒤에 또다른 일이 항상 생겨났다. 

그들의 육신은 한계에 다달았다. 

둘째, 그 긴 여정끝에 얻은 땅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였다. 왜? 

땅은 작아 보이고, 또 들어가서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야 했다. 땅만 얻으면 될 줄 알았는데 또 힘든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이유는 한가지다. 말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단강을 건널 때 등장했던 언약궤가 긴 전쟁과 분배의 과정 속에서 잊혀졌다. 예배를 잃어버리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다. 


여호수아는 문제의 중심을 알았다. 피곤함이 문제가 아니라 예배가 실종된 것이다. 불평의 근원을 알았다. 환경에 만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길갈에 있던 성막과 언약궤를 옮겨 실로에 세운다. 여호수아 때 세워진 실로의 회막은 사무엘 때까지 그 곳에 거하게 되고 다윗 때 헤브론 성전으로 옮겨진다. 


1절의 끝을 보면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그 중간에 "비로서"라는 말을 넣어 보자. 

땅을 정복한 것은 오래 전이지만 정복의 완성은 회막을 세웠을 때에 "비로서" 완성된다. 

10명의 문등병자... 고침을 받은 자 가운데 단 한 명만 예수께 나와서 감사의 예배를 드린다. 

그 때 그는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그 땅이 비로서 그들의 지배를 받았다라는 의미이다. 


성을 무너뜨리고, 왕을 죽임으로 그 땅을 정복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예배할 때에 비로서 그 땅이 정복되었다. 

그들이 정복한 것이 아니라 땅이 정복되었다.

우리는 땅은 가만히 있고 내가 움직여야 땅이 정복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 할 때에 땅이 정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할 때 복이 되는 것이다.



  • 땅을 분배받지 않은 일곱 지파 

왜 그들은 땅을 분배받지 않는 것일까? 

1) 긴장이 풀리고 피곤해 짐. 

38년간의 광야생활, 7년간의 정복전쟁. 

이제 좀 쉬자. 좀 쉬었다 하자. 그러나 내가 쉬면 안된다. 쉬라고 할 때 쉬어야 한다. 

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몸이 쉬어도 마음이 쉬지 못하면 쉼이 없다. 

그러나 육신이 움직여도 마음이 쉴 수 있다. 영은 쉴 수 있다. 믿음 안에 거하면 쉼이 있다. 

안식일은 영이 쉬는 날이다. 예배가 쉼이다. 


2) 지도자가 없다. 

유다지파의 지도자, 갈렙 

요셉 지파의 지도자, 여호수아 

믿음 안에 거하고 꿈을 심어주고 성취하는 지도자

나머지 지파, 불신의 지도자, 계산하는 지도자. 현실안주형, 물질 주의형 지도자. 


각 각 세명을 뽑아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을 따라 그 땅을 그려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4절) 


왜 신앙생활 하다가 방황하는가? 

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선 다섯지파가 분배받는 과정을 통하여 상대적인 상실감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의 불평을 보며 저들도 만족 하지 못하는데 하는 두려움에 빠졌을 수도 있다. 

땅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앞선 자들의 땅을 보며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기도하고 예배는 하는데 자기 삶에 대한 열정이 없다. 

기대가 없다. 

기도하라면 하나님 주신 것이 다 감사하지 난 따로 뭐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주어도 깨닫지 못한다. 

주님은 기적을 베푸실 때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널 구원하였다"하신다.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것을 추수하는 것이다. 


신앙 생활은 꿈을 꾸는 것이다.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 안에서 교회를 그리고 가정을 그리고 남편을 그리고 자녀를 그리는 것이다.  

시편 145편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자랑하리라. 


다윗은 기도하며 자기의 자녀의 자녀들이 주의 위대하심을 세상에 알게 할 것이라 확신하며 기도했다. 

그는 자기의 개인적인 기도를 성가대가 부르고 온 민족이 따라부르며 온 세대가 부르게 했다. 

자기의 꿈을 실천한 것이다. 

(주를 자랑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녀의 이야기)


그려서 내게로 가져오면 제비를 뽑으리라. 

그린대로 제비가 뽑히는 것이다.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밟고 꿈꾸며 그리는 대로 땅을 주는 것이다. 

  

  • 베냐민 지파 

- 야곱의 축복: (창 49:27)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남북을 잇는 교통로, 분쟁이 많은 지역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지역은 다른 지파뿐 아니라 이방 세력들에게 있어서 약탈의 대상.  베냐민 지파는 항상 긴장하며 자신들의 영토를 지켜야만 했다. 따라서 자연 베냐민 지파는 호전적이고 전투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 모세의 축복: (신 33:12)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예루살렘에 거함으로 요셉 지파 곁에서 머뭄. 


하나님의 전지하심, 한 인격의 앞날과 그들의 성격과 기질 조차도 붙잡고 계시는 전능하고 초월하신 분.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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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7장 - 므낫세 지파의 분배 - 두 마음 신앙 


므낫세 - 요셉의 장자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다음으로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음. 

나중 되었던 자였지만 먼저 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또한 므낫세는 에서와 마찬가지로 장자권을 잃어버린 첫째다. 

성경에는 왜 장자권을 잃어버렸는지 나와있지 않고 그저 야곱의 축복을 통해서 에브라임이 장자권을 물려 받는다. 

에서는 왜 장자권을 잃어버렸는가? 그가 무엇때문에 장자권을 잃어버렸는가? 팥죽 한 그릇. 결국 육신의 정욕, 한끼 배고픔 때문에 장자권의 축복을 잃어버렸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주리시고 사탄에게 시험받을 때에 첫번째 시험이 무엇인가? 

"돌을 변하여 떡을 만들어 먹으라."

십자가의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너 배고픔 먼저 해결하라 한 것이다. 

팥죽 한그릇으로 표현된 이 신앙은 신앙인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아니 거쳐야 하는 시험일 수 있다. 

무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기도하며 결심하다가도 내 꼬락서니를 보면 "내 꼴이 이런데 무슨..." 하면서 나 먼저 챙기고자 하는...


에서가 장자권을 잃어버린 이유는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므낫세 지파가 왜 장자권을 잃어버렸는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우리는 므낫세 지파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과정을 보면서 그들이 왜 장자권을 잃어버렸는가 하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


므낫세는 반지파씩 나누어서 요단 동편의 땅과 요단 서편, 즉 가나안 본토를 유다와 에브라임의 뒤을 이어 받게 된다. 

한 지파지만 나뉘어서 땅을 분배받는 것이다. 12지파 중에서 지파가 나뉘어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 지파는 므낫세 지파가 유일하다. 

그런데 요단 동편의 땅은 앞에서도 나누었듯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가나안 민족과 전쟁없이 쉽게 얻고자 했지만 결국 모든 전쟁에 참여해야만 했고 땅을 얻은 이후에는 오히려 가나안 본토에 속한 지파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이방인처럼 살게 되었다. 


가나안 본토에 들어와서는 또한 에브라임에게 우선권을 빼앗기게 된다. 

므낫세는 나뉘어진 마음, 두 마음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취하게 된다. 

한편으로 믿음에 대한 열성도, 끈기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계속적으로 잘못된 선택으로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지파가 므낫세이다. 


17장 1절- 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였고,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라. 그는 용사였다....

1절에는 므낫세가 얼마나 훌륭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가 나온다. 

특히 3절에는 슬로보핫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3절- 슬로보핫의 딸 

        므낫세의 현손 슬로보앗은 아들이 없어 분깃에서 제외

        슬로보핫이 요구 - 내 형제 중에서 분깃을 얻게 하소서 

        따라서 므낫세의 여자 자손, 슬로보핫의 딸들이 아버지의 형제들을 통해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었다. 

        

민수기 27장 1-7절을 읽으라. 

민 27:1-7여호수아 17장 - 므낫세 지파의 분배 


므낫세 - 요셉의 장자 

유다 지파 다음으로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음. 

나중 되었던 자였지만 먼저 되는 기쁨을 누렸다. (요셉 뒤에 베냐민이 있듯이 요셉 앞에는 유다가 있었다.) 


그런데 또한 므낫세는 에서와 마찬가지로 장자권을 잃어버린 첫째다. 

성경에는 왜 장자권을 잃어버렸는지 나와있지 않고 그저 야곱의 축복을 통해서 에브라임이 장자권을 물려 받는다. 


므낫세는 반지파씩 나누어서 요단 동편의 땅과 요단 서편, 즉 가나안 본토를 유다와 에브라임의 뒤을 이어 받게 된다. 

한 지파지만 나뉘어서 땅을 분배받는 것이다. 

그런데 요단 동편의 땅은 앞에서도 나누었듯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가나안 민족과 전쟁없이 쉽게 얻고자 했지만 결국 모든 전쟁에 참여해야만 했고 땅을 얻은 이후에는 오히려 가나안 본토에 속한 지파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이방인처럼 살게 되었다. 


가나안 본토에 들어와서는 또한 에브라임에게 우선권을 빼앗기게 된다. 

므낫세는 나뉘어진 마음, 두 마음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취하게 된다. 


3절- 슬로보핫의 딸 

        므낫세의 현손 슬로보앗은 아들이 없어 분깃에서 제외

        슬로보핫이 요구 - 내 형제 중에서 분깃을 얻게 하소서 

        따라서 므낫세의 여자 자손, 슬로보핫의 딸들이 아버지의 형제들을 통해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었다. 

        

민수기 27장 1-7절을 읽으라.

[민 27:1-7] 요셉의 아들 므낫세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으니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가로되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마땅히 하나님께 요구함으로 권리를 되찾게 됨. 이 때가 어느 때인가? 여인들은 인구계수에도 끼이지 못하는 시대였다. 그런데도 슬로보핫의 딸들은 그 시대의 풍조를 따른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그들의 권리를 찾는 것이다.


슬로보핫의 딸들은 마치 갈렙의 딸 악사를 떠올리게 한다. 악사는 갈렙을 떠나 독립할 때에 아버지에게 요구하여 윗샘과 아랫샘의 축복을 받는다. 

분깃은 말씀 안에서 취하는 것이다. 


민수기에는 이 슬로보핫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소개하며 중요하게 다룬다. 

민수기 마지막 장에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민 36:6-12]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무릇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자기 조상 지파 가족 되는 사람에게로 시집갈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존하게 되어서

그 기업으로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 간단하게 요약하면 "너희가 다른 지파에게 시집 가면 재산을 빼앗길 것이요 자기 지파에게 시집가면 그 기업이 유지 될 것이라"는 말이다. 


(민 36:10) 슬로브핫의 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민 36:11) 슬로브핫의 딸 말라와 디르사와 호글라와 밀가와 노아가 다 그 아비 형제의 아들들에게로 시집가되

(민 36:12) 그들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자손의 가족에게로 시집간 고로 그 기업이 그 아비 가족의 지파에 여전히 있었더라


민수기의 끝이 이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은 

"너의 첫 신앙을 유지해라. 신앙의 본분을 지켜라" 는 것이다. 그러면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헤아려진다는 것이다. 


이런 슬로보핫의 딸들과 같은 믿음이 있었는가하면 연약함과 실패의 모습도 보인다. 


[수 17:12-13]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 왜 쫓아내지 못했는가? 두려웠고 자기 자신들의 연약함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또 강성한 이후에는 그들에게 노역을 시키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다. 


유다의 죄와 에브라임의 죄를 다 짓게 된다. 

처음에는 두려워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다가 그들이 강성해진 뒤에는 세상을 벗삼아 살아가는 것이다.                 


므낫세 지파는 양다리 신앙의 대표자이다. 

열심있을 때에는 누구보다 빛을 발하지만 또한 슬럼프에 빠지면 넘어지는 제목들마다 빠지지 않고 넘어진다. 


17장의 마지막 부분은 그들의 신앙의 모습을 또 한번 잘 보여준다. 

14절: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 신앙의 욕심... 

어머니- 신앙의 욕심이 대단했다. 난 욕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래서 그만큼 진보가 느리다. 발전이 없다. 

신앙안에서의 욕심

그런데 욕심만 있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유럽식 교육 - 자기가 미리 목표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과정을 치루게 함. 

숙제도, 공부의 양도....


14절- 난 더 필요합니다. 

15절의 응답- 넌 큰 민족이고 땅은 네게 너무 좁다. 그 해결책- 스스로 개척하라. 

16절- 그 산지도 별 마음엔 들지 않고 그들은 철병거가 있습니다. 

17절-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이 주신 꿈은 내가 꺾는다고 꺾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뜻을 받아들여 빨리 순종하는 것이 빨리 열매맺는 것이다. 


(수 17: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개척하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함께 하셔서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결코 홀로 내어버려 두지 않는다. 

믿음을 보시는 것이다. 

18장 - 그 땅을 그려오라. 

가만히 있는 자에게 역사하지 않는다. 

홍해를 건너는 역사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단계라면 

여호수아에는 끊임없이 움직임, 순종을 요구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순종하고, 발을 담그고, 침묵하며, 성을 돌고, 전쟁을 하며, 그 땅을 개척하게 하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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