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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 17:4)

 

: 분의 사역은 언제나 획기적이었고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고, 새로왔다.

우리의 예배와 모임이 예상대로라면, 틀에 박혀 있다면, 새롭지 못하다면 무언가 예수님의 사역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

  1.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는 .
  1.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는 .

-> 단호한 목적에서 벗어남도 없었고 흔들림도 없었다.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태도나 방법

  1. 겸손
  • 아버지께 전적으로 복종: 공생애의 시작은 세례를 받으심으로부터 ( 3:21-22) : 세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
  • 성령으로 덧입는 :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무릎꿇고 성령으로 덧입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교만하고 불순종한 . -> 성령을 덧입는 것의 전제: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회개하는 -> 예수의 세례, 세례 요한을 통해서, 세례 요한의 사역: 회개하라.
  •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는다. 죄는 예수님의 삶이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을 막는다.

-> 현대 교회의 문제: 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인, 죄를 당연시 하는 그리스도인.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1. 아버지께로 전적인 의존

(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 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 예수님은 기다려서 아버지께 보고 들17:4은 것을 행하셨다.

(시편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특별한 사역의 , 언제나 새벽 미명에 나가서 하나님께 기도함.

 

  1. 온전한 순종

(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순종의 3 원칙: 즉각적인 순종- 지연된 순종은 불순종이다. 부분적 순종이 아닌 전적인 순종, 투덜거림이 없는 기쁨과 자원함의 순종.

 

  1. 기도
  • 제자들이 예수님께 구한 . 남을 지도하는 , 가르치는 , 귀신을 쫓는 , 관리하는 법이 아닌 제자들이 유일하게 구한 ->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중심, 사역의 시작이 기도임을 알았기 때문)
  • 기도한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초청하여 예수님이 일하시게 하며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하기 위한 것이다.

 

  1. 결과 -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취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다.

? 분이 하라는 대로 했고, 분이 역사하셨기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묵상 및 점검)

1. 내 신앙의 목적은 예수님을 닮는 것인가? 내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것인가?

 

2.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3. 주의 일을 감당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나누려고 하지는 않는가? 철저히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그 분의 영광이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소망하고 애쓰고 있는가?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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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8:28-롬 8:29]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앙생활- 예수님을 알아가며 또한 닮아가는 .

-그리스도인: 미리 아셔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신 사람들.

분의 형상이 되기 위해 일하시는 - 성령.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예수님이 땅에 오신 목적

  1.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2. 사탄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1.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 땅에 인자, 사람으로 오신 이유)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요일 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뜻에 반대되는 나의 태도들
  1. 결코 예수님처럼 살수 없어.
  1. 내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좋은 방법이 있어
  1.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 않아. 지금의 내가 좋아.

 

회개해야 불신의 돌덩이들

  • 나사로가 죽은 가운데서 나오기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 돌을 옮겨 놓으라 그러면 영광을 보리라.

 

우리가 닮아야 예수님의

  1.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치료하시고 회복케 하심
  2.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심
  3. 제자삼고 양육하심.
  4. 사역과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과 교제하시고 기도하심.

 

월요일 날 스님들을 만나 이야기 할 기회-> 스승이 가장 중요하다.

가톨릭 수도원: 고해성사나 멘토링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수시로 점검을 받는다.

기독교- 누가 내 신앙을 점검해 주지 않는다.-> 오직 내 스스로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함에 따라서 그 수준이 결정된다. 물론 제자 훈련 같은 프로그램도 있지만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함이지 다른 누구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  그래서 수준이 천차만별.

 

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한 윌로우 크릭 교회의 보고서

-       평신도들의 85퍼센트: 성도와 가족의 영적인 필요와 재충전 (나 중심적)

-       목회자들의 80%-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사람들을 복음으로 구원시키기 위해.. (하나님 중심적)

 

나의 신앙생활의 목표가 무엇인가?

난 예수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가? 아니면 단지 그 분에게 나의 필요만을 구하는가?

예수님을

닮으려고 애써본 적 있는가? 아니면 애쓰고 있는가?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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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벽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1.14 18:58

    내가원하는것을 하기위하여
    드라마를 보기위하여
    식구들 식사를 위하여 많은 시간을 쓰면서
    하나님을 알기위하여
    또그분을 닮기 위하여 노력한 시간은 과연 있었는지
    정말 부끄럽다 지금이라도 깨달아 알려주신
    성령님 감사합니다







[막 8:22-막 8:26]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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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1. 눈- 깨달음. 

 

말씀은 마가복음에만 나온 내용으로 다른 병자를 고치시는 이적과는 특이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에 걸쳐 안수하시며 맹인의 상태를 물으신 것이지요. 특별히 맹인에게는 " 번의 안수를 하시며 고치셨을까?"하는 질문이 있을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8장의 전후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8 처음 부분은 6장의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다시 4천명의 사람들에게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그들을 먹이시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후에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며 제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는데 제자들이 '그들에게 떡이 없음으로 수근수근'하게 되지요. 그렇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17-1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막 8:17-막 8:1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 눈과 귀를 고치시는 기적은 깨닫지 못하는 자를 깨닫게 하시는 예수님의 기적인 것입니다.

그렇면서 19-20절에 말씀하십니다.

[막 8:19-막 8:20]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 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똑같이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러나 똑같은 은혜에도 남는 자는 결국 이스라엘 (12바구니- 12지파) 신약의 교회(7광주리- 7교회) 남는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귀가 있어도 결국 깨닫는 자와 깨닫지 못하는 , 남는 자와 버려지는 자가 있다는 것이지요.


2.
번의 안수

번째 안수 하시고 예수님이 "무엇이 보이느냐?" 하시니 소경이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안수가 완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소경의 보는 눈이 온전히 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이해 속에서 살아갑니다. 내가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권사이고, 장로이고, 목사이여도 여전히 완전히 보지 못하는 불완전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번째의 안수가 필요합니다.

불완전한 자의 눈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합니다. 나무와 같은 물질, 대상으로 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람을 보는 시각과 같습니다. 나에게 유익한가? 그렇지 않은가? 나를 위하는 자인가? 적인가? 사람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고귀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심적으로 사물로서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번째 안수하시니 모든 것을 밝히 보았다고 합니다. 사람의 외모가 어쩄든, 학식이 어쨌든,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이 형상이 있는 사람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눈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열렸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있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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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2.02 12:39

    비밀댓글입니다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2.02 12:41

    비밀댓글입니다

1. 장소적 배경: 르비딤 (평야) -> "쉼터" -원래 물이 풍부히 흐르는 곳이었지만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머물때에는 물이 없었다.

질문) 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물이 없는 쉼터로 인도하셨는가? 하나님의 연단 (Test)인가? 그 목적은 무엇인가?

2. 백성의 반응

1) 모세와 다투고 불평함

왜 이러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평하는가? 아직도 그들은 모세에게 왜 그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느냐고 모세에게 불평한다. 모세가 그들을 인도하였는가? 모세는 하나님게 순종한 죄 밖에 없지 않은가? 왜 하나님 아닌 모세에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원망하는가?

우리가 우리의 삶의 고난이 올 때마다 불평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결국은 그것이 내 삶을 인도하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임을 알고 있는가? 감히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내가 원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2)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결국 원망의 원인은 "내 것"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노예"였던 그들에게 "내 것"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우리는 "내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왜 내가 곧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 내 자녀, 내 가축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품지 못하는가? 결국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들을 책임질 수 없지 않은가?

3. 모세의 반응

1)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똑같은 원망의 상황에서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다면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은가?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요, 승리가 아닌가?

4. 하나님의 응답

1)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너에게 배푼 은혜, 기적, 능력을 기억하라. 그것을 가지고 내 일어섬의 발판을 만들라.

2)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고난의 순간마다, 불평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해결책은 호렙산(하나님의 산, 시내산-내게 주신 계명의 산)에 가서 반석을 치라 (그리스도를 붙들라)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고 인생의 모든 갈증을 해결하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시는 길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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