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92019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로고스 교회 /아가서 강해 (잔귀용)'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4.01.22 아가서 2:8-10
  2. 2014.01.21 아가서 2:1-7 (6)
  3. 2014.01.17 아가서 1:8-11
  4. 2014.01.16 아가서 1:5-7

아가서 2:8-10


  • (아 2:8)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예루살렘 여인들과의 비교에서도, 세상의 다른 유혹에서도 자유함을 얻은 술람미 여인은 이제 신랑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민감한 영적인 귀를 얻게 됩니다. 신랑을 찾기 위해 그가 양을 치는 곳과 정오에 쉬는 곳을 알려달라는 그녀에게(1:7-8), 그를 찾기 위해 양떼들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곁에서 염소새끼를 먹여야만 했던 여인은 이제 자신이 머문 곳에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우리의 마음에 모든 장벽들이 사라지고 우리가 그 분께 집중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찾아헤매지 않아도 그 분의 임재, 그 분의 다가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나의 시선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귀용은 작은 산은 우리 마음의 외적인 부분이고 산 위는 우리 영의 가장 깊은 부분이라 해석하며 그분께 집중하며 얻는 그 분의 임재와 경험은 우리가 하나님을 감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다른 연합을 경험하게 됨을 이야기한다. 


  • (아 2:9)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그분의 충만한 임재는 계속적으로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귀용은 사슴이나 노루의 움직임을 통해서 신랑의 갑작스러운 사라짐과 나타남을 표현합니다. 즉 그 분과의 달콤한 연합을 맛볼 때에 우리는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때론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라짐은 마치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자기 눈앞에 나와 있는 사슴이나 노루처럼 슬며시 다시 곁에 있음을 감지합니다. 신랑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옮긴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그녀를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은 항상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는 그분을 항상 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따끔씩 그 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분의 보호를 의식할 수 있으며 그 분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인이 자신의 공간안에 홀로 있을 때에 마치 창문을 엿보는 자처럼 그 분은 항상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엿보는 즐거움은 만나는 즐거움과 또 다른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상대방은 알지 못하지만 나만 상대방을 알고 있다는 재미가 있습니다. 우월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부를 놀라게 해줄 즐거운 기대가 있습니다. 곧 있을 '합환'의 기쁨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신부의 방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마음 졸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 듣고 문을 열면..." (계 3:20) 

그 분은 우리 마음의 창문 곁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가 그 분을 영접하기 위하여 방문을 열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아 2: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앞 부분에서 술람미 여인과 왕의 연합을 가로막는 것은 주로 예루살렘 여인들이었습니다. 즉 겉으로는 왕을 사모하고 갈망하지만 그들의 본성은 허영이고 자기 만족이고, 자기를 가꾸는데만 있는 세상적인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부가 거하고 있는 은밀한 곳에 와서 왕은 여인을 향해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향할 수 있도록 우리의 관심을 밖이 아닌 우리 내부로 돌리시며 때로는 그 분의 임재로 떄로는 사라짐을 통해서 우리 자신 속에 있는 그 분의 임재에 익숙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안에 안주하지 말고 그 분이 거하는 곳, 그  분이 인도하는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제 우리 자신으로부터 빠져 나와서 나를 따르라고 부탁하십니다. 이전의 나아옴은 신랑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연적인 만족, 세상적인 만족을 버리라는 부름이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본성을 떠나라는 부르심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아브라함의 부르심처럼 그 분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거처를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제 신랑은 또다른 영적 경험의 세계로 여인을 인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가치관과 허영심이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 그 분의 임재가 주는 달콤함을 경험해 보았는가? 아니면 지금 그런 달콤함이 사라진 것 같아 목말라 있지는 않은가? 나 자신이 그 분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할 때에라도 그 분은 사슴처럼, 노루 처럼 여전히 조용히 내 주위에 머무르시며 내 내면의 창밖에 서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고 있는가? 
  • 그 분이 내면에 머물러 안주하고 있는 나에게 와서 일어나 함께 가자 할 때에 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로고스 교회  > 아가서 강해 (잔귀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영혼의 깊은 밤 (아가서 3:1-4)  (0) 2014.01.28
아가서 2:10-14  (1) 2014.01.23
아가서 2:8-10  (0) 2014.01.22
아가서 2:1-7  (6) 2014.01.21
아가서 1:8-11  (0) 2014.01.17
아가서 1:5-7  (0) 2014.01.16
Posted by 소리벼리

 

아가서 2장 1-7절


  • (아 2:1)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1장 13-14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그의 사랑을 몰약 행주머니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하며 칭송합니다. 자신의 치유자(몰약) 과 자신이 피하고 거할 피난처(엔게디의 포도원)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2:1장에서는 자신의 모습은 사론의 수선화, 즉 넓은 들판에 피어있는 흔하디 흔한 들꽃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론은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넓은 평원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찬사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기를, 자신은 바로 이 넓은 들에 핀 야생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겸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들판에 피었다가 곧 시들어 버릴 사론의 들꽃에 불과합니다.' 이게 신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들에 ,핀 민들레와 같이 아무 보잘것도 없는 들판에 꽂과 같다고 겸손한 표현을 합니다.

골짜기의 백합화 역시 자신의 낮은 위치와 환경을 표현한 것입니다. 

내가 사는 곳은 왕궁도 아니고 초라한 들판이나 골짜기에서 포도원을 돌보는 자요 거기에 피어있는 흔한 꽃이라는 것입니다. 


  • (아 2:2)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신랑은 여인의 이 말을 받아 백합화는 백합화인에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하며 그녀를 자랑합니다. 

가시나무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시로 인해 순종하지 못하고 온전히 교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접근하게 하지 못하는 예루살렘 여인들의 모습입니다. 이 가시들 곁에 있으면 상처를 받습니다. 술람미 여인 또한 그녀들의 곁에 있으면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며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왕이 보기에 술람미 여인은 그러한 예루살렘 여인들과는 다른 가시나무 사이에 있는 한송이 백합화입니다. 백합은 가시들에 둘러 쌓여 있어도 그 정결함과 향기를 보존합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완전히 콩깍지가 씌워져 술람미 여인의 피부는 거무스름하며 겉으로 보기에 보잘것 없었지만 솔로몬에 눈에는 술람미 여인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허물과 실수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 장점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시의 많은 예루살렘 여자들이 있었지만 솔로몬의 눈에는 오직 술람미 여인만 보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콩깎지가 씌운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여인이었지만 솔로몬의 눈에는 솔로몬이 선택한 술람미만 사랑스러워 보였던 것입니다. 


  • (아 2:3)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술람미는 솔로몬을 향해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그냥 수풀로 표현하고 솔로몬은 거기에 우뚝 서있는 사과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가시나무 속에 백합화처럼 수풀속에 사과나무도 단연 돋보였을 것입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을 가장 멋지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또한 내안에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찬양을 하듯 오직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신랑을 위해 여인이 다른 모든 것은 수풀입니다. 당신만이 나의 사과나무입니다. 하는 것은 어쩜 너무 닫연하면서도 헌신적이고 순결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아 2:4)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이렇게 서로가 사랑가운데 교제하니 술람미 여인은 신랑으로부터 무수한 영적 즐거움을 얻습니다. 잔칫집은 사랑의 교제 안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즐거움과 행복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즐거움은 그녀에게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게 합니다. 내 위의 깃발은 신랑으로 인해 드높아진 자신이 누릴 기쁨이고 승리이고 행복입니다. 


  • (아 2:5)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난해한 구절 가운데 하나인데 신랑이 주는 기쁨 가운데 취하여 술람미 여인은 지금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그런 사랑에 취해 그녀는 지금 이성을 회복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다른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건포도와 사과로 나를 좀 도와달라고 한다. 외적으로 강해지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건포도와 과일은 단지 외적인 즐거움과 건강함을 주는 것들이다. 외적인 안위이다. 예루살렘 여인들이 먹고 힘을 내는 것들이다. 


  • (아 2:6)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그녀가 사랑에 취해 비틀거미면서 있을 때에, 혹은 다시 세상 가운데서 정신을 차리려 애쓸 적에 신랑은 그녀에게 다가와서 왼팔로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안아 줍니다.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되고 그녀를 안아 줌으로 세상적인 즐거움이, 유혹이, 풍파가 그녀를 훼방하거나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흔들려도 끝까지 그녀를 지키는 것은 왕의, 신랑의 품입니다. 


  • (아 2:7)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신랑의 품으로 인해 다시금 온전한 사랑에 거한 여인은 자신이 아름다울 수 있는, 왕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금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루살렘의 여인들로 인해서 훼방받거나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 의탁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즐거움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을 것을 이야기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주님의 사랑을 받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난 사랑받을 만해!라고 하며 교만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모습을 잘 알고 있는가? 


2. 주님의 사랑을 받는 나의 눈에는 오직 주님만 보이는가? 다른 모든 것들은 수풀처럼 여기는가? 때로 다른 것에 현혹되어 주님을 놓쳐 버리지는 않은가? 건포도와 사과를 의지하듯 사랑받는 중에 다시금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는 않는가? 


3. 자신을 흔들고 깨우는 것들로 인해 방해받고 있는가? 그것들이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있는가? 

'로고스 교회  > 아가서 강해 (잔귀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서 2:10-14  (1) 2014.01.23
아가서 2:8-10  (0) 2014.01.22
아가서 2:1-7  (6) 2014.01.21
아가서 1:8-11  (0) 2014.01.17
아가서 1:5-7  (0) 2014.01.16
아가서 1:1-4  (3) 2014.01.16
Posted by 소리벼리
 

아가서 1:8-11

(아 1:8)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아 1:9)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아 1:10)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아 1:11)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8절은 이스라엘 여인들이 술람미 여인에게 하는 말이라는 설명도 있으나 귀용은 신랑(왕)이신 목자가 술람미 여인에게 말하는 장면으로 해석한다. 


자, 지금 예루살렘의 딸들이라 불리우는 왕궁의 여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안전한 곳에서 자신을 치장하고 가꾸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왕과 가까이 있는 듯 하고 여인들 사이에서 서로 아름답기 위해서 서로를 질투하며 경계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데 왕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 여인들 사이에서 자신만을 가꾸고 서로 티격태격하는 그런 자들이 아니라 햇볓에 나가 왕의 포도원을 지키면서 또한 양떼들의 발자취를 찾아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자신의 염소 새끼를 먹이는 그런 여인이다. 

자기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을 만나기 위해, 혹은 그가 자신에게 맡긴 일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빛 안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으며 오직 그 분만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따라 나설 때에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을 만나 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신 곳에서 우리가 또한 우리의 의무를 소흘히 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양들을 돌보는 일상 중에서 내면적인 자유를 누리며 자신을 부인하고 

  • 양떼의 발자취: 앞선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 혹은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라는 것이다. 
  • 목자들의 장막 곁: 양들을 먹이는 목자들이 있는 곳. 곳 말씀이 있는 곳, 예배가 있는 곳, 성전, 말씀, 기도의 처소 
  •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 염소는 목자들 틈에서 가장 말썽장이이다. 특히 양들틈에서 염소는 늘 말썽을 일으킨다. 그러나 염소는 또한 양 틈에서 양들이 엉커붙지 않도록 늘 떼어 놓는 역할을 한다. 늘 양들 틈에서 긴장의 관계를 유지하고 목자의 인도함을 받도록 유지시킨다. 예배를 통해 말씀과 기도 안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한 부분을 먹이면서 늘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자신의 허물을 깨끗이 하라는 것이다. 
  • 내가 너를 바로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신랑의 목소리) : 바로의 준마란 능력 있고 기상 있는 말. 그 때는 모든 말 가운데 애굽산 말이 가장 좋은 말. 그런데 왕이 타는 말처럼 기상있고 잘 훈련된 말. 온유함- 말이 길들여진 것 같은 것. 말씀으로 가다듬어진 삶. 신앙인격. 


  •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구나(10) : 따로 보석으로 치장하지 않았어도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포도원을 돌보고 자신의 염소새끼를 먹이기 위해서 땋은 머리털로, 치장한 보석이 아니라 소박한 목의 구슬꿰미로 인해서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왕이 원하는 아름다움과 자신이 준비한 아름다움이 다르면 어떨까? 
  •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11) : 술람미 여인은 이미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정결한 마음과 순결한 사랑으로 인해 아름답다. 그런 여인을 위해 왕은 더욱 그녀를 아름답게 할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금사슬은 왕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자에게 주는 면류관이다.

 

묵상으로의 초대) 

  •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신앙의 시선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처럼 항상 나자신만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직 하나님께로만 시선을 향하고 있는가? 

  •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 2:5)을 묵상해 보자. 그리고 술람미 여인이 목자를 찾을 때에 장소를 가르켜주지 않고 행함(양떼들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염소새끼를 먹이라)는 것을 말하는 신랑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난 나 자신을 치장하느라 그의 목소리를 놓쳐 버리지는 않은가? 그의 목소리에 순종함으로서 나 자신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가?

 

'로고스 교회  > 아가서 강해 (잔귀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서 2:8-10  (0) 2014.01.22
아가서 2:1-7  (6) 2014.01.21
아가서 1:8-11  (0) 2014.01.17
아가서 1:5-7  (0) 2014.01.16
아가서 1:1-4  (3) 2014.01.16
아가서 강해를 시작하며  (1) 2014.01.15
Posted by 소리벼리

아가서 1:5-7

 

(아 1:5)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아 1:6)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아 1:7)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1. 예루살렘 딸들아!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인들에게 자기를 변호하고 표현하는 구절이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성전에 거하는 여인들, 피부가 희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 그러나 자신은 햇빛에서 일하는 동안 피부가 검어져 있는 초라한 여인. 그러나 왕으로 부터 사랑받는, 왕의 사랑을 받는 여인. 

피부가 검다. 하류층, 노동자... 햇빗체 의해 그을린... 

자신의 오빠들이 자신에게 포도원을 지키라 노하여서 일하였으므로 피부가 검어졌다. 


2.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 

  •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크게 경험하게 될 때에 우리 안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가장 깊은 지식이 생겨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우리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분명하게 인식하는데서부터 은혜가 시작된다. 왕궁에 거하는 피부가 하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술람미 여인은 비로서 자신이 왕이 거하는 곳에 있는 자들과 다른, 피부가 검은 자라는 의식을 하게 된다. 빛으로 인해서 자신의 모든 흠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흠을 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이 왕에게 선택된 사랑받는 자, 그 분 안에서 아름다움을 인젇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언제 우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오직 그 분의 사랑을 받을 때이다. 우리가 아름다울 때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날 때, 즉 하나님이 사랑하실 만한 그 분의 모습이 비춰질 때에만 아름다운 것이다. 
  • 신랑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여인을 아름답게 하신다. 나 자신이 스스로의 눈에 검게 보이면 보일 수록 그 분의 눈에는 그만큼 더 아름답게 보인다. 


3. 게달의 장막 같을 지라도 솔로몬의 휘장 같구나. 

  • 게달의 장막은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검은 천막을 가리킨다. 
  • 성전안에서 보호받으며 사는 예루살렘 여자들 앞에서 술람미 여인의 얼굴은 검은 면만보이고 계달의 장막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사랑을 받는 여인은 휘장으로서 그 모든 흠을 가리웁니다. 휘장으로 말미암아 여인의 모든 허물은 가리워지고 오직 거룩하고 아름다운 자로서 여겨지는 것입니다. 

      

4. 내가 햇빛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 그녀는 본래 검은 피부가 아니었습니다. 검게 된 이유는 하루종일 포도원에서 일 할때 햇볕으로 거무스럼하게 그을렸습니다. 내가 '포도원에서 일광에 쬐어서'라고 합니다. 포도원은 솔로몬의 포도원입니다. 어머니와 오라비들이 소작인이었으나 무엇 때문에 노했는지 술람미를 포도원지기로 삼았다고 합니다. 
  • 여기에서 우리는 왕과 술람미 여인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왕이 소유한 포도원을 돌보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을 잘 돌보느라 피부가 검어졌습니다. 즉 자신에게 맡겨진 일상의 작은 일에 충성하다가 보니 어느덧 자신의 피부가 검어진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살갗을 태운 태양빛은 육신의 눈으로 보일 때는 자신의 피부를 태운 고난이고 역경이었지만 결국 자신을 아름받게 하여준 하나님의 빛이 비춘 결과입니다. 
  • 포도원을 지키느라 햇빛에 피부가 그을린 여인이었지만 주인 앞에서 고백할 때는 언제나 난 나에게 주어진 것을 잘 관리하지 못한 모자람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한 겸손은 외식적인 겸손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한 자가 중심에서 드리는 진정한 고백입니다. 


5.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 술람미 여인과 왕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술람미 여인은 왕이 소유한 포도원을 돌보는 자로, 왕은 양을 돌보는 목동이 되어 만났다. 양을 어떻게 돌보았냐면 마치 친구를 사귀듯 사랑으로 돌본 것이다. 그곳에선 왕의 권위도, 권세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선한 목자로서 양들의 친구가 되어준 것이다. 
  • 술람미 여인은 그러한 선한 목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을 하나도 가리우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 내게 말하라: 사랑하는 자를 갈망하는 마음. 같이 있고 싶어하는 마음. 

 

'로고스 교회  > 아가서 강해 (잔귀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서 2:8-10  (0) 2014.01.22
아가서 2:1-7  (6) 2014.01.21
아가서 1:8-11  (0) 2014.01.17
아가서 1:5-7  (0) 2014.01.16
아가서 1:1-4  (3) 2014.01.16
아가서 강해를 시작하며  (1) 2014.01.15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