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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아가서 강해 (잔귀용)'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4.01.31 아가서 4:6-8
  2. 2014.01.30 아가서 4:1-6
  3. 2014.01.28 내 영혼의 깊은 밤 (아가서 3:1-4)
  4. 2014.01.23 아가서 2:10-14 (1)

 

(아 4:6)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신랑은 잠시 신부에 대한 칭찬을 멈추고 산을 향하여 그를 따라오도록 초청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산으로 데리고 올라 천국의 복음, 산상수훈을 들려주시듯 자신의 사랑하는 신부를 십자가의 산으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그 산은 몰약과 유향이 있는 산입니다. 

몰약은 동방박사들이 예수가 나실 때 가져온 예물이면서 동시에 십자가 상에서 병사들이 포도주에 타서 예수께 주고자 했던 것,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할 때 썼던 향료이면서 유향은 길르앗에서 난 향로로 치료하는 향입니다.  

십자가의 삶, 고난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향을 발하는 것이고 주님은 그 안에서 참 쉼을 주십니다.

우리 삶은 축복으로 향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축복을 달라고,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마치 자신이 높아져야 하나님의 이름이 빛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향기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풍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산으로 부르시어 제자들을 향한 특별한 말씀을 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나니..." 

신명기의 물질적, 육체적 복의 개념은 완전히 다른 천국의 복, 팔복으로 바뀝니다. 아니 팔복을 통하여 완성됩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오직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복입니다. 

왕은 술람미 여인을 산으로 불러 예루살렘 여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신비하고 거룩한 영적인 길로 초대합니다.   


(아 4:7)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십자가의 산 아래에서 우리는 아무런 흠이 없는 자가 됩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입니다. 그 분께서 우리의 모든 흠을 가리우고 창조하실 때 모습처럼 보시기에 심히 좋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볼때 삶의 아름다움은 십자가를 통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만 그 분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의 삶은 우리를 세상 그 무엇보다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은 자신의 외모를 가꿉으로 아름다와 지려고 했습니다. 겉은 아름다왔지만 그들은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한낮 평범한 하층 여인에 불과합니다. 노동으로 인해 검게 그을린 피부며 들판을 뛰다니는 모습은 예루살렘 여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가 왕에게 선택을 받음으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됩니다. 그 분이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택받을 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자신을 가꾸어도 자기 만족에만 머무는 삶은 아름답지 못한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받고 어리석고 미련한 길이지만 주님의 선택받을 만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한 것이 됩니다. 

세상사람들은 천하에 있는 어떤 것을 소유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천하를 창조한 그 분 안에 있으므로 천하보다 귀한 자가 됩니다.  


(아 4:8)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해석상의 가장 어려운 구절입니다. 

이 전까지 왕은 술람미 여인을 "나의 어어쁜 자, 나의 사랑하는 자, 나의 비둘기"라고는 불렀어도 한 번도 나의 신부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녀를 나의 신부라고 부릅니다.  

레바논은 사시 사철 꼭대기에 눈이 쌓여있기 때문에 '흰산'이라는 의미로 솔로몬의 성전을 지은 백향목의 원산지입니다. 3장에서 이 곳의 나무로 가마를 만들어 신부를 불렀습니다. 그 산의 산기슭은 포도나무로 덮혔고(호 14:6,7), 

사자나 표범 등 들짐승이 숲 속을 돌아다녔습니다. 

광야에서의 장막 성전은 조각목으로서 지었지만 솔로몬은 가장 좋은 나무인 백향목으로 지었습니다. 

조각목같은 술람미 여인이 왕으로 말미암아 가장 아름답고 순결한 백향목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 분의 죽음으로 그 분의 자녀, 그분의 신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가장 고귀하고 좁은 길, 높은 길을 향하는 그 분의 제자, 그 분의 신부로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가서에서는 신부로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로서 부르는 삶입니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는 레바논 산의 봉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의미가 재미있습니다. 아마나는 ‘진리’이고 스닐이란 ‘부드러운 갑옷’을 의미하며, 헤르몬은 ‘파괴’라는 뜻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각각의 특성을 가리키듯 참 진리, 승리자(구원자), 그리고 심판자의 의미를 지닌 세 봉우리입니다. 


여인을 이 레바논 산으로 불러 세 봉우리를 보여주시는 것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변화산상에 오르셔서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보여주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이 경험한 삼층천을 기억나게 합니다. 

참제자, 참 사도, 참 신부인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맛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맛을 본 자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오늘 죽어 천국에 가자하면 망설입니다. 

장가도 가야하고, 성공도 좀 해 보아야 하고,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다 합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 땅의 것에 미련을 두고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벗어나 탈출하게 하시는데 뒤를 바다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린 롯의 아내와 같은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술람미 여인은 비둘기 처럼 순전히 오직 왕을 바라보다가 레바논 산에 오르게 됩니다. 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가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영적인 깊은 체험은 우리의 순전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두 마음을 두면 안됩니다. 세상의 것에 집착하고 미련을 두면 그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사자 굴과 표범 산에 내려다보아라”. 사자나 표범은 땅 위의 짐승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자 굴과 표범 산이 하늘에 있다고 말합니다. 영적인 대적들은 이 땅에서 많은 환경들을 일으키지만 근원지는 공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영적인 성도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많은 환경 속 일만 생각한다면, 그 근원을 알지 못합니다. 아담은 땅의 모든 동물에 이름을 지어주며 그것을 알았던 자였지만 하늘의 영적인 존재를 알지 못해 뱀의 유혹에 빠집니다. 뱀 안에 가려 있는 사탄을 알아보지 못해 실패하는 것입니다. 

굴은 곧 근원입니다. 표범이 사는 산이 곧 근원이다. 왕은 술람미 여인에게 이 땅의 모든 사악한 것의 근원을 보여 주십니다. 꿰뚫어볼 수 있게 합니다. 이 여인을 이런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더 높은 지점으로 부르십니다. 

이런 것을 본 사람은 땅의 것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배설물처럼 여기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신앙생활 하면서 여전히 땅에 것에 집착하고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가? 

하늘의 것을 맛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오직 순전히 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자를 주님은 지금도 산으로 부르십니다. 

참 진리, 참 승리, 참 심판을 맛보게 하시고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이 땅에 살면서 흔들리지 않고 파도 위를 걷게 하십니다. 

순전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늘의 은혜를 소망하십시오. 

십자가를 통해 가치있는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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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아가서 4:1-6


본장은 결혼한 예루살렘 왕이 신부의 사랑을  확인한 이후 신부에게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신랑은 아내로 맞이한 신부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칭찬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바라보는 신부의 아름다움. 주님이 바라보시는 성도, 교회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을까?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1절) 

신부가 너울을 쓰고 있다는 표현으로 봐서 본문의 찬사는 결혼 행렬이 계속되고 있는 중에 행해지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부는 결혼식이 끝나기까지 계속 너울을 쓰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 아름다움의 근거는 내 본질에서 우러나온 곳이 아니라 그분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직 그 분의 관계 안에서만 아름다운 것이다. 

1-5절까지 7가지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1. 비둘기 같은 눈 (1절) 

그 눈은 겸손하며 정숙하고 하늘을 우러러 슬퍼하는 비둘기의 눈에 비유되었습니다. 성도의 눈은 겸비한 마음의 눈이며, 자신의 죄를 슬퍼하며 주님을 앙망하는 눈입니다(참조, <시 25:15>). 그런 눈이 주님 보실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귀용- 비둘기의 눈은 신실하고 단순하다. 이 단순함은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을 확신한 자가 가지는 눈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행동하기 전에 어떤 불필요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만함이 없이 오직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2. 길르앗 산 기슭의 누운 염소 떼와 같은 머리털 

여인의 머리털은 정절과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여인의 머리털이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다는 표현은 풍요와 평화를 느끼게 합니다. 정결하며 아름다운 교회는 풍요와 평화의 부드러움이 넘칩니다. 


길르앗- 도피성, 피난처. 모든 죄인이 피하여 편안히 쉬는 곳.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에 피하여 쉬어 회복하는 곳.  이 산지는 멀리서 보면 황폐하고험한 산 같지만, 가까이 가 보면 아름다운 경치이다. 또 이 길르앗 산지는 물이 풍부하여 삼림이나 계곡이나 시내 사이에 점재해 있는 얼마 안되는 농경지에 올리브나 포도가 재배되고있다. 길르앗의 향료- 모든 상처를 낫게하는 치료제. 


3. 쌍태를 낳은 이 같은 아름다움 (2절) 

   신부의 이는 희고 깨끗하며 쌍태의 양처럼 가지런하여 아름답게 보입니다. 

   귀용- 양식(말씀)을 소화(이해)하여 저장(기억)시키는 지체. 이해와 기억이 정결케 되어 혼동스럽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말씀 안에서 혼동하지 않고 단순하고 진실되이 말씀과 하나가 된다. 

   

4. 홍색 실 같은 입술의 아름다움

입술은 의지입니다. 의지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애정을 담아 키스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될 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을 따르는 길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지를 가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를 신랑은 어여쁘다고 말한다. 


5. 석류한쪽 같은 뺨

석류는 많은 씨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한 쪽, 한 외피 속에 들어 있다. 모든 씨(말씀, 생각)들이 정결하고 온전한 사랑에 의하여 하나님 안에서 재정비 되어 있는 것이다. 


6. 다윗의 성채같은 목 

목은 생명, 우리의 힘. 다윗의 성채와 비교하는 것은 우리의 유일한 힘이 오직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 여호와는 나의 힘, 나의 구원.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집. 장막. 이 주님의 요새는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한 일천 방패와 용사의 모든 무기들이 걸려 있는 것이다. 


7.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새끼 같은 두 유방 

유방- 젖을 먹이는 공간. 백합화 가운데서... 정결함 가운데서 주님으로부터 양식을 얻고 또한 내게 임한 양식으로 주님의 양을 먹이는 제자로서의 삶. 하나님의 말씀의 젖을 나누어 주는 생명 양식의 공급처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과 머리털, 이와 입술, 뺨과 목, 그리고 두 가슴...

그 아름다움은 오직 신랑을 사모하는 순전한 마음으로 부터 나온 순결함이고 그 분의 말씀으로 인해 나의 생각이 정리되고 오직 주님안에 거하는 자의 안전함과 평안함과 강력함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성도의 아름다움은 오직 주님 안에 거할 때이다. 

그 분이 날 아름답게 하시는 것이고, 그 분이 날 아름답게 보실 때 내가 온전히 사랑받는 자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여인들,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나 왕이 택하지 않는 아름다움. 

술람미 여인- 자신이 보아도 남이 보아도 별 아름답지 않지만 왕이 가장 아름답게 보시는 아름다움. 


묵상을 위한 질문) 

1. 주님이 날 아름답다 여기신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그 분이 날 찬찬히 흩으시면서 머리끝에서부터 하나하나 바라보시면서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생각해보자. 어떤 기분이 드는가? 난 그러한 칭찬을 듣기에 합당한 자인가? 


2. 난 그 분의 사랑을 받기에 내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술람미 여인과 같이 순결하게 정리되어 있는가? 책망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 마음으로 나뉘어 있지 않은가? 


3. 난 오직 그 분 안에 있을 때에 아름답다는 말을 묵상해 보자. 세상사람들이 아름답게 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들을 생각해보자. 난 어느 곳에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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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아가서 3:1-4  내 영혼의 깊은 밤. 


(아 3:1)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영혼의 깊은 밤-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때, 왜 우리에게 영혼의 밤이 올까? 

침상- 내 깊은 내면의 공간. 


하나님이 경험되고, 기도가 응답되고...그러나 성숙한 신앙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때 - 영혼의 깊은 밤. 

개신교에서 칭의-성화-영화의 단계를 말하듯, 초기 교부들은 초보자의 단계를 ‘정화의 길’, 이를 넘어서면 ‘조명의 길(성숙한 자)’, 그 다음을 ‘합일의 길(완성된 자)’로 여겼습니다. 

이 두 단계를 뛰어넘는 과정에서 각각 ‘감각의 어두운 밤(메마름)’과 ‘정신의 어두운 밤(비참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가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가기 전에 광야를 지나는 것처럼 신앙의 단계에서 경험되어 지는 것.- 영혼의 깊은 밤. 

왜? 

단맛 증후군에 빠지지 않게 하시려고- 나 중심적, 내 감정적, 내 감각적 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게 하시려고... 

젖을 빠는 아이에게 밥을 먹여야 할때- 자연스럽게 밥을 주면 좋지만 젖을 계속 먹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왜? 젖이 더 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젖을 끊는 기간이 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기 위한 단계이고 내 중심적이고 단 맛 증후군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간이다. 

채움의 신앙에서 비움의 신앙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다. 


귀용: "그 분을 당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 분 안에서 찾아야 한다. 당신이 오직 그 분 안에서 당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신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아 3:2)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하나님의 임재가 경험되지 않는자는 괴롭다. 갈급하다. 가만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찾아나선다. 


"하나님에 대해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온전하게 채우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면 노방전도를 하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그런 방식으로만 이해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하나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를 깨뜨리려면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니, 하나님이 하셔야겠죠. 그래서 우리를 비참함 가운데로 몰고 가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비참해지면 겸손해지고, 내면의 사람이 되기 시작합니다. 다른 이들만 생각하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지식도 확장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이미지들을 거둬가십니다.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 앞에 진정 낮아지고, 온전한 이해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고통과 비통도 성숙의 과정, 영적 단맛 증후군 극복" 크리스찬 투데이 2013년 12월 5일 기사 중 발췌)  


내가 알고 있는 장소에서 그 분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그분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러나 내가 찾아나선다고 해서 그 분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갈망과 영적인 방황을 통해서 정말로 하나님이 계신 곳을 발견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 


(아 3:3)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성안은 그 분이 거하시는 곳, 곧 성전이다. 양 떼의 발자취이고 신앙인들이 거하는 곳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자들에게서도 주님을 발견할 수 없다. 

순찰하는 자들은 파수꾼이다. 한시도 깨어있지 못하고 영적으로 깨어서 살피는 자이다. 영적 지도자들이다. 

그들을 찾아가서 신앙의 문제를 묻고 싱담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목회자들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지도자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 3:4)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여인의 행로를 살펴보자. 

침상- 자기 내면, 자기의 친숙한 공간, 자기가 늘 경험하던 체험의 공간. 그 곳에 예수가 없다. 임재가 없다? 

성안을 돌아다니고- 양때들의 발자취를 따라 

파수꾼에게 물으며 - 목자들이 거하는 장막에 가서 말씀을 구하고... 

그것을 지나치자 그 분을 만나게 된다. 붙잡게 된다. 

그리고 붙잡은 그를 놓치 않으려 그 분을 붙잡고 내 어머니의 집, 나를 잉태한 이의 방- 내가 태어난 하나님의 품 안...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에게도 이런 영혼의 깊은 밤이 있었는가? 나의 영적인 게으름 때문이었는가? 나에게도 영적 단맛 증후군이 있지는 않은가? 


2. 술람미 여인과 같은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가? 그 분의 임재가 없을 때에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난 얼마나 애써 보았는가? 


3. 그 분이 만나졌을 때에 난 그 은혜를 붙잡고 있는가? 놓치 않기 위해 애써 본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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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2장 10-14절 

(아 2: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 처음에 여인이 왕을 찾을 때에 답변- 양들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이라. 

- 하나님은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 말씀(성전, 예배, 기도와 같은 그 분의 임재) 안에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나 자신을 부인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러면 온유(말이 길들여짐; 애굽의 바로의 준마와 같이..)한 자가 되어 오직 순결을 지닌 비둘기와 같은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 그렇기 위해서 떠나야 될 것- 예루살렘 여인들과 같은 세상적인 허영과 세상의 만족을 버리라는 것. 그리고 내 마음 속의 공간으로 내면으로 들어오라는 것. 
  • 그러나 이제 그 분은 나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다시름 나오라고, 일어나라고 하시면서 일어나 함께 가자고 나를 재촉하신다. 마치 광야 (세상을 떠나 나 자신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곳) 에서 이젠 세상을 다 잊고 살아가는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자 하시는 하나님처럼 이젠 내면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안식하는 여인에게 일어나 함께 가기를 요청하신다. 


(아 2:11)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 세상의 겨울이 올때에 우리는 밖을 나갈 수 없고 집 안에 거하게 된다. 밖이 추울 수록 안은 더욱 따뜻해지게 된다. 안에만 거하게 된다. 그러나 내 안이 추워지는 내면의 겨울이 올 때가 있다. 내면의 겨울이 오면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 겨울이 자니갔다는 표현은 이제 세상적인 욕망과 기대가 사라짐을 이야기한다. 세상으로 인해 받는 유혹과 시험이 이젠 사라짐을 의미한다. 세상을 피해 주님께로 온 자,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내면에 거하는 자에게 주님은 또다시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애굽으로 나와 광야로 들어온 자에게 다시 가나안을 향해 길을 가자고 하신다. 겨울비가 그쳤다. 이젠 날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 2:12)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 세상의 즐거움을 버리고 그 곳에 시선이 머물지 않고 다시 한번 나온 세상엔 이전 과는 다른 세상이 열린다. 지면에는 꽃(성령의 열매와 신앙의 열매)들이 열려 있고 비둘기의 소리가 땅에 울린다. 이 전의 지면이 부패와 불순종으로 얼룩진 유혹의 땅, 시험의 땅이라면 주님과 함께 나온 땅은 순종하는 자의 열매와 소리가 가득한 땅이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 만발하고 주님을 향하는 자들의 찬양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아 2:13)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 그 땅에는 겨울이 없다. 목 마름이 없다. 이제 봄과 여름과 가을이 어울어진 계절이 있다. 이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첫 사랑의 경험, 첫 은혜 받았을 때의 추억에서 빠져나와 이젠 날마다 그 분과 동행하는= 현재의 삶,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구원에 머물지 않고 비전을 향해, 사명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다. 약속된 땅을 정복하러 길을 떠나야 한다. 


(아 2:14)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 바위의 갈라진 틈은 무엇인가? 그 분의 상처 안이다. 반석(그리스도)의 상처 안에 숨어있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아래에 숨어 있다. 감추어져 있다. 한 때 그 분을 발견하기 위하여 항상 내면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와 반대로 신랑은 우리 내면으로부터 우리를 불러내신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분과 함께 나오는 것이다. 왜 이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가? 내면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이 때로는 나의 앞길을 막을 때가 있다. 첫 은혜 받았을 때, 첫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을 때, 그 사랑이 나의 신앙을 발전하지 못할 수가 있다. 구원 받은 은혜가 커서 더 이상 그 신앙을 넘어 자라지 못하게 할 수 있다. 
  • 우리가 내면으로 가라 앉아서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교제를 나누었던 경험이 얼마나 멋진 것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젠 자신에서 나올 때에 열매를 맺고 내 옛 성품이 죽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세상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한가? 여전히 애굽을 그리워하며 시험에 연약하진 않은가?
  • 나에게 첫 은혜는 어떤 의미인가?
  • 이젠 첫 은혜, 내 내면의 공간에서 나와 주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하신다. 열매를 맺으라고 하신다. 내가 떠나야 할 내 내면의 공간... 난 떠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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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