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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아가서 강해 (잔귀용)'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4.02.12 아가서 6:1-3
  2. 2014.02.06 아가서 5:7-9 (2)
  3. 2014.02.06 아가서 5:1-6
  4. 2014.02.05 아가서 4:9-16

 

아가서 6:1-3

(아 6:1)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아 6:2)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아 6:3)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1절: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아내의 찬사를 들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조롱하던 말(5장 9절)을 거두고 함께 남편을 찾아나서겠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도 그 남편이 얼마나 사랑받을 만하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언제 사람이 움직이는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지켜 볼 때... 

세상: 내가 무엇을 가지고 내가 얼마나 높아지고...그럴때 전도가 되고, 남들이 부러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 사람들이 감동받는가? 참 사랑의 모습이 이루어질 때.. 

술람미 여인: 자기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 분에 대한 설명, 묘사를 함. 이것이 전도이다. 

우리의 태도: 내가 그 분을 믿고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전도를 할 때에도 오직 "나의 모습"에 집중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부족하여도 온전하신 분은 그분이다. 그 분을 증거하고 그 분을 사랑할 때 모든 사람들은 그 분에 대해서 궁금함을 느끼고 찾아나선다.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라는 말을 보면 오히려 예루살렘의 딸들이 더욱 적극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기꺼이 나설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녀들에게 있어 술람미 여인의 신랑인 솔로몬을 찾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와 함께 찾으리라'라는 말에서 '함께'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서로 같은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에 있어서 이러한 의미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구원의 진리를 남의 일처럼 불신자들에게 주입시키는 것보다는 그 일이 바로 나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복음을 전한다면 그 효과는 상당할 것입니다. 


1) 사랑하는 자와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 속하였고'라고 하여 자기의 사랑의 감정을 설명하였고, 이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라고 하면서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3절). 즉 서로가 사랑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사랑하는 자를 소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관계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은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이지만 신앙생활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함께 거할 때에 성령의 열매가 일어나고 나의 삶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주님 안에 내가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정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오해하기 쉬운 것. 

1. 내가 그 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나만 열심히 하면 그 분은 언제나 나를 받아주시는 분. 그 분은 상수, 변수는 항상 나. 

-> 아니다. 내가 문을 열어도 그 분이 침묵하실 때에 우리는 주님의 부재를 통해서 더욱 주님의 주권을 이해하고 갈망하게 되어 있다. 그 분이 오실 때에 오시면 원하실 때 가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2. 난 없고 오직 그 분이 날 다스리는 것. 

-> 그 분은 내 자유의지를 꺽지 않으신다. 강요치 않으신다. 하나하나 나의 자원하는 심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원하신다. 내 의지, 상황을 넘어서는 그 분에 대한 신뢰는 나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꺾는데 있는 것이지 정복당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난 스스로 내 의지를 정복함으로서 그 분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2) 신랑이 하는 일에 대해 그녀는 표현하기를 '양떼를 먹이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양떼를 먹이는 일'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참 필요를 채워 주는 일입니다. 양떼를 먹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위치를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는 목자로 보았습니다.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한 마리의 양만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양들은 모두 그의 보살핌의 대상입니다. 이러한 목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그분이 바로 인류의 목자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는 자마다 푸른 생명의 양식으로 배를 채울 것이며, 풍요로운 삶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백합화

백합화처럼 하나님을 믿는 생활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수한 생활을 상징하며 또 하나님의 돌봄 아래 사는 믿는 이들을 상징하고 있다.  

백합화 같은 교회 생활은 보잘 것 없는 아주 낮은 위치의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을 그리스도는 타락하여 더럽고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귀하게 여긴다.  

모든 화초는 열매가 아니라 꽃이 절정이다. 백합 역시 백합꽃이 절정이다.  꽃이 피기 전의 백합은 다른 화초에 비해 아무런 특징이 없다. 꽃이 폈을 때 꽃과 향기 모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향기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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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아가서 5:7-9


(아 5:7)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1장에서 술람미 여인이 신랑의 거처를 묻자 사람들은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이라"고 말했다. 

주님을 따르는 또다른 신앙인들의 길을 따라 (양떼들의 발자취) 올바른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3장에서 또다시 신랑을 찾아 헤멜 때 신부는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3:3)를 주저하지 않는다. 

성안의 파수꾼, 즉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따라가 신앙의 길을 묻는 것이다. 

주님의 부재의 순간에 신앙의 동료들이나 주의 말씀을 가리키는 자들은 우리의 길을 찾도록 인도한다.

그런데 때로 그들마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말이 내 영혼을 상하게 하고 오히려 나의 죄를 드러냄으로 더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위로하러 왔지만 오히려 욥의 마음을 쳐서 상하게 했고, 다윗은 사울의 옷 자락을 가져 감으로서 그의 죄를 드러내게 하였다. (옷자락은 죄를 가리우는 것이다. 창 3장의 아담, 창 9장의 노아, 창 37장, 39장의 요셉의 사건을 기억하라)  

"성을 지키는 자들에 의하여 상처 입은" 자신의 모습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고통을 줄 수가 있다. 그런데 때로 주님은 그러한 고통을 맞이하게 하신다. 나를 덮고 있는 자기 의를 벗기기 위함이다. 나 중심적인 신앙을 벗기기 위함이다. 


(아 5:8)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내 영혼에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에, 영혼의 밤이 찾아 왔을 때에, 술람미 여인이 행한 일은 그가 주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사랑함으로 더욱 아픔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예루살렘 여인들을 찾아가서 부탁하는 장면은 언뜻 이해가지 않는 장면이다. 

그들은 신랑의 주위를 맴돌고 있지만 정작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었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 이었으며, 자신을 힘들게 한 자들이 아닌가? 

보통 내가 아플 때에, 고난 당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숨긴다. 더군다나 나를 힘들게 한 자 앞에서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을 주의 부재의 순간, 자신의 허물을 가장 잘 아는 자에게조차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위해 도울 것을 부탁한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도움을 처한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에 그들에게 자신을 숨김으로 자신의 허물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아프고 고난 받는 것은 오직 주를 사랑함임을, 자신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분만을 바라고 있음을 고백하고 선포한다. 


(아 5:9)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술람미 여인의 고백을 들은 예루살렘 여인들은 그겋게 많은 재앙 가운데에서 어떻게 그렇게 강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아해 한다. "도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그토록 사랑하는가?"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도대체 그가 누구기에 그토록 그를 사랑하는가? 

누군가에게 도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주님을 그토록 사랑하는가?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토록 주님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내가 누구이길래 나같은 것을 사랑하시나요?"하며 그 분의 사랑에 감격한 적은 있어도 한 번도 그 분이 누구이길래 내가 그 분을 그토록 사랑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적은 없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도전을 준 적도 없다. 

내가 그 분의 살과 피를 마실 뿐만 아니라 그 분 또한 내 삶의 살과 피를 원하신다는 것, 

그 분만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도 그 분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오직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나이지만 그 은혜를 받은 나 역시 은혜 가운데 부어주시는 사랑 안에서 

진실한, 온전한, 순전한 사랑을 그 분께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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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아가서 5:1-6


(아 5:1)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내가 주님을 온전히 사모하고 바라보며 그 분의 열매를 맺을 때에 나는 그 분이 거하시는 동산이 된다. 나의 존재는 그 분이 들어와서 거하심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 믿는 자 한 사람 한사람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즉 그 분이 임재하실 때에만 그 존재의 목적대로 서 있는 것이다. 

그가 내게 와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시는 것이다. 

몰약은 내가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그  분과 함께 걸어감으로 경험하게 되는 고난이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이다. 그 분이 거할 때에 모든 고난은 사라지고 그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향은 오직 주님께로 향한다. 

그는 나의 삶을 통해 열리는 말씀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거두고 (꿀송이, 꿀, 포도주와 우유) 그것을 또한 그 분이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계 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는 내가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 만을 생각하지 그 분께서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온전히 주님을 향할 때에 그분은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의 삶의 열매들을 먹으신다. 그리고 양떼들에게 그 열매를 나누게 하신다.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아 5:2)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아 5:3)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주님이 내 안에 거함으로 나의 삶의 모든 열매를 먹고 나를 통해 주의 잃어버린 양들을 먹일 때에 그 분께서 은밀히 나에게 다가오신다. 거룩한 교제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사역으로 피곤한 나는 영은 깨었으나 육체적으로 소진한 자가 된다. 

일에 치여 다시금 은밀한 교제를 원하시는 주님께 응답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이미 은혜를 체험하고 내 모든 허물이 씻어지고, 그 분을 경험하기 위해 험한 십자가의 길을 걸었거늘, 내가 그같은 과정을 또 거쳐야 하는가?하면서 또 다시 영혼의 밤을 맞이한다. "내 마음은 깨었는데 결국 자는 자가 된 것이다." 그 분의 소리가 들려도 응답하지 못하는 영적인 게으름, 둔감함에 빠진 것이다. 은혜 뒤에 오는 침체는 신부를 더욱 괴롭게 만든다. 


(아 5:4)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나 자신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신랑은 자기 부인의 틈새 안으로 그 분의 손을 밀어 넣으신다. 내 마음을 계속적으로 만지시며 내 마음을 여시는 것이다. 주님은 한 번 은혜를 경험한 자가 넘어지도록 방치하시지 않으신다. 


(시 37:24)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신실한 자가 넘어짐은 어느 때 오는가? 

내가 주님의 일을 잘 감당했다고 하는 순간 올 수 있다. 나 자신이 어느 정도 섰고, 의로우며, 순결함을 인정받았다고 하는 순간 자기 만족으로 빠질 수 있다. 그 때 주님께서는 그 의가 나 자신의 의가 아님을 또 다른 다가오심으로 보게 하신다. 나의 자기 의, 자기 교만, 자기 만족을 보게하심으로 나의 유일한 의가 오직 주님께 속한 것임을 보게 하신다. 

 

(아 5:5)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나의 허물을 인정하자마자 나는 다시 주님께 마음을 연다. 다시 주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 회개이다. 돌이켜 여는 것이다. 그 분께 마음을 돌이킬 때마다 보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것은 그 분의 고난이고, 그 분의 십자가이고, 그 분의 죽음이다. 오직 그 분의 십자가의 보혈이 나를 살리신 것이다. 


(아 5:6)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내가 다시금 회개할 때에 우리는 그 분이 들어 오셔서 나를 만지심으로 모든 슬픔을 치료하고 회복하실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치유가 급속히 임하지는 않는다. 그 분은 내가 다시 회개 할 때 그 분 자신을 감추기도 하시며 돌아서서 사라지기도 하신다. 

내 교만함은 무엇인가? 

나만 그 분을 찾으면 그 분은 언제나 나를 다가오신다는 교만함이다. 나 중심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내가 그 분을 찾아도 만나주시질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내 혼이 나갈 만큼 고통스러운 그 분의 침묵의 순간이 있다. 

이 고통을 통하여 내 단단하고 고집스러운 성품들이 허물어 지는 것이다. 

나 중심적인 교만함이 그 분에 대한 갈망함과 겸손함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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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아 4:9-16


술람미 여인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하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여인들과의 계속되는 내적/외적 비교입니다. 

그녀들은 왕이 계신 처소에 함께 거합니다. 그 분을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녀들은 왕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그 분을 시중들기도 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꿉니다. 

세상의 화려한 것으로 자신을 꾸미고 값비싼 향로로서 자신을 바릅니다. 

그 앞에 있는 자신은 한없이 초라하고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여인들은 주를 위해 자신을 가꾸는 듯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가꾸는 일에만 신경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고 가꾸고 하는 사치와 허영일 뿐입니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점점 황폐해져 갑니다. 

그에 반해 술람미 여인은 자신에게 맡기워진 일을 하느라 얼굴도 검게 그을리고 머리결코 상했습니다. 들판을 뛰어다니며 포도원을 가꾸고 양들의 길을 거닐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참 목자를 만났습니다. 그 목자 역시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보아 주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발견못할 가치를 왕은 보아주었고 칭찬해 주었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오직 그 분 앞에서 여인은 가장 아름다운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에라도 그 분의 시선에서 멀어지면 또 다시 예루살렘 여인들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나보다 더 화려한, 나 보다 더 예쁜... 세상은 우리를 이렇게 흔들어 놓습니다. 


두 번째 고통은 주님의 임재가 지속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입니다. 

그 분의 임재를 맛보는 순간 그녀는 "나를 깨우지 말라" 라며 그 거룩한 임재, 그 깊은 은혜 가운데서 깨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분은 또 다시 사라져 버립니다. 

그 분의 임재가 사라질 때 느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술람미 여인은 떠나간 임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그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애타게 찾아다닙니다. 


(아 4:9)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신부라고 불렀던 신랑은 이제 여인에게 내 누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아버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우린 하나라는 것입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내가 모든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선이 그 분으로부터 돌아서지 않았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이 어디계신지 알지 못하는 때에라도 여인은 그 분을 찾기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그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했습니다." 


한 번 본 다는 것은 일시적인 한 번이 아닙니다. 내 모든 존재와 정결함이 담겨 있는 한번입니다. 한강의 한이 큰, 깨끗한의 의미이듯 여인의 한 번 바라봄은 그녀의 바라봄이 얼마나 간절하고 순결한 바라봄이었는지를 알려줍니다.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는 전적으로 그 분께 메인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인은 그 분 없이는 살 수 없는 스스로 매인 자 입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진실한 고백을 한 자 입니다. 그러한 갈급함과 간절함이 있는 자에게 주님은 또한 마음을 빼앗기십니다. 


(아 4:10)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사는 그로 말미암아 많은 영혼들을 또한 먹일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는 자에게 향기를 주시고 풍성히 나눌 수 있는 영의 양식을 공급케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자 곁에는 항상 얻을 것이 많습니다. 많은 양떼들이 모입니다. 


(아 4:11)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주님께 시선이 고정된 자의 삶은 말씀의 열매가 가득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삶에 가득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 집니다. 

꿀과 젖은 말씀입니다. 내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가고 삶을 통해서 그 열매가 맺혀집니다. 의복의 향기는 삶의 열매입니다. 삶의 향기입니다. 하늘의 향기를 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 4:12)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주님을 온전히 사모하는 신부의 영혼은 주님이 거하시는 동산입니다. 사탄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천사가 호위하는 닫혀진 동산, 잠근 동산입니다. 안에서부터 영원히 샘솟는 우물임과 동시에 밖의 환경이 침범치 못하는 덮은 우물입니다. 썩지 않도록 흐르는 샘이되 다른 생물들이 침범치 못하는 봉한 샘입니다. 다른 영혼, 다른 양떼에게 주의 동산을 열기 전에 주님은 오직 신부의 영혼 안에서 은밀한 교제를 나눕니다. 


(아 4:13)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아 4:14)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 4:15)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주님과 은밀히 교제함으로 우리 영혼에는 각종 열매들이 열립니다. 석류는 한알 한알의 씨앗이 한 열매 안에서 열리는 씨앗의 과실입니다. 한알 한알이 과즙을 내는 과실입니다. 그러한 열매는 고난의 과정(유향과 몰약)을 통해서 계속해서 열립니다. 이러한 열매는 하늘로부터의 (레바논에서부터) 공급되어지는 하늘의 열매입니다. 삶의 열매입니다. 


(아 4:16)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신랑의 칭찬을 들은 신부는 자기 안에 주어진 모든 은혜의 가능성들은 오직 그 분이 오실 때에만 열릴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 분이 오시도록 성령의 은혜가 더욱 더 주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찬양의 가사로서도 유명한 이 구절은 내 마음 속에 성령의 임재, 성령의 역사가 더욱 임해서 나를 통해서 주님의 향기가 발하도록 간구하는 신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내가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신앙의 장벽은 무엇인가? 세상적인 가치관인가? 주님의 부재, 혹은 침묵인가? 그 밖의 다른 것인가? 


2. 나의 주님을 향한 바라봄은 순전하고 정결한가? 두 마음으로 온전치 못한 바라봄으로 주님을 대하진 않는가? 


3. 나의 삶, 나의 영혼은 주님이 거하시는 동산인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가?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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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