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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시편강해'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2.11.27 11월 27일(화) 아침묵상 시편 91편 (2)
  2. 2012.11.21 11월 21일 아침묵상 시편 37:23-24
  3. 2012.11.20 11월 20일 아침묵상 시편 37편 4-7절

[시 91:1-시 91:16]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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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새벽 말씀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소르기가 지은 "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한 부부가 기도하러 앉았다가 갑자가 "도움이 필요하면 911 전화하세요!" 라는 반복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가만히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아이의 장난감 자동차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였다. 실망하여 방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 갑자기 가만있던 장난감이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울리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911이라는 숫자를 생각해내며 폈던 곳이 바로 시편 91 1절의 말씀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귀에 이어지는 말씀은 문제 많은 부부에게도, 그리고 지금 심령에도 강력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로서 울려 퍼진다.

 

  1. 지존자의 은밀한 ? 그것은 하나님과 나만의 친밀한, 비밀스런 교제의 장이다. 기도의 장소요, 예배의 장소요, 말씀으로 공급받는 장소이다. 내가 넘어지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 오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만 유지 있다면, 분과의 은밀한 관계만 지속될 있다면 분의 그늘 아래, 분의 보호아래 거할 있다!

광야에서의 모세에게 ( 글을 모세의 시로 여겨진다) 초대교회의 일곱 교회도 얼마나 많은 겹겹의 위험과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공중 권세 잡은 자는 결코 하나님의 사람들을 내어버려 두지 않는다.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인 공격을 없이 덫을 놓고 잡으려 한다. 마치  올무를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그러나 우리를 날개의 깃으로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 있다면 천인이, 만인이 옆에서 엎드러져도 어떤 재앙도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한다.

  1. 지존자로 거처를 삼는 . 그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 말씀은 알고 있어도 내가 거하지 못하면 망한다. 절망한다. 엎드러진다. 그러나 내가 안에 거하면, 잠기면, 안에 살면… 그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일으키신다. 그가 모든 길에서 지키신다. 돌에 부딫치지 않게 하신다. 사자와 독사와 뱀이 와도 오히려 그들을 발로 누른다.
  1. 모든 찬양과 기도가 그가 나를 사랑하고 그가 이름을 안다고 했는데 말씀에서는 "저가 나를 사랑한 , 저가 이름을 안즉"이라 말씀하시며 친밀한 교제의 관계를 알게 하신다. 나에게 그러한 친밀함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네가 사랑하는구나 하는 소릴 들을 수가 있을까?
  1. 모세가 글을 썼다면 모세 시대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장 은밀한 장소는 지성소다. 그곳은 거룩한 곳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찬 곳이다. 그러나 모세가 지성소에 들어갔는가? 들어갈 있었는가? 지성소는 1년에 오직 제사장만 들어갈 있는 장소가 아닌가? 그럼 은밀한 곳은 어디인가? 광야 가운데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은밀한 장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죄의 짐으로 정해진 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있었지만 모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놓치지 않고 죽기까지 유지했다. 그의 마음, 그의 심령은 오직 하나님 앞에 열납된, 인정된 신앙인이었다.

 

나의 인생의 911, 내가 도움이 필요할 , 나아갈 있는 . 오직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 일으킬 있는 . 보호할 있는 . 분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갑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Psalm 37:23-24

The steps of a man are established by the LORD,

 when he delights in his way;

 though he fall, he shall not be cast headlong,

 for the LORD upholds his hand.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예수 믿으면 절대로 내가 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고  내 마음 가운데 믿음이 항상 굳건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솔직히  종종 헛발을 딛고  심지어 넘어지기도 한다. 서럽고 아파서 울기도 한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자는  비록 넘어지더라도  완전히 엎드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크리스찬이라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크리스찬이 더 일 잘 풀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크리스찬 되려고 하겠지.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수단으로..

물론, 성도들도 아프고, 병들고 죽고 그런다…그렇지만, 왠만한 고통을 통해서는 오히려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되고,

또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항상 소망이 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가 받는 스트레스

  • 대충 믿고 세상적으로 살아도 되는 같은 자들.
  • 아니 오히려 안믿고 악하게 살아도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
  • 말씀대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필요를 절감하지 못한다.

-> 시편의 기자: 악인이 되는 것을 보고 거의 실족할 뻔하고 있다.

 

그가 받은 응답

[시 37:7-시 37:10]

Be still before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do not fret over those who prosper in their way, over those who carry out evil devices. Refrain from anger, and forsake wrath. Do not fret--it leads only to evil. For the wicked shall be cut off, but those who wait for the LORD shall inherit the land. Yet a little while, and the wicked will be no more; though you look diligently for their place, they will not be there.

 

If the Lord delights in a man's way, he makes his steps firm

Though he stumble, he will not fall

For the Lord upholds him with his hand.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러면 그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주께서 우리의 길을 기뻐하시면 그가 우리의 발걸음을 견고하게 하신다고 하신다.

어떻게 하면 주께서 우리의 길을 기뻐하시게 있는가? 불평하지 말고 여호와를 신뢰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을 기뻐하며 묵묵히 가는 것이다. 상황이 좋아져서 기뻐하며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길이고 나를 지키는 길이고 그에게도 나에게도 옳은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잠시 잠깐의 형통을 보며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분을 품고 원망하다가 결국 길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영생 뿐만 아니라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

상황이, 환경이 나빠져서 신앙이 흔들린다면, 내가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환경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환경이 흔들려도 변하지 않는 믿음이고 사랑이고 마음이다.

악인이 형통하고 믿음 없는 자들이 형통한 것을 품고 분을 품거나 신앙이 흔들리면 결국은 타협하고 무너지고 합리화시키는 신앙만이 남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는 것을 받으실 때, 그가 우리의 발걸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그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것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주안에서 기뻐하라

본문 : 37 : 4 7

[37:4-7]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the desires of your heart.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act. He will make your vindication shine like the light, and the justice of your cause like the noonday. Be still before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do not fret over those who prosper in their way, over those who carry out evil devices.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표들이 있고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채찍질 하면서 자신을 아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행복하고 의미가 있기도 하고 또한 불행하고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각자가 지닌 소원이 여러 가지고 천차만별이겠지만 사람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개 소원을 이루어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원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도제목이나 소원을 물으면 얼버무리고 그런 건 하루 하루 먹고사는 저에겐 너무 과분한 것이지요하며 마치 소원을 가지는 것이 여유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그들의 소원을 두고 그것을 이루는데 그들의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소원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기뻐하고 혹은 슬퍼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도 소원이 이루어지면 감사헌금을 내고 또한 간증을 하기도 합니다. 소원의 성취에 따라서 그들의 믿음이 평가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도 소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두루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원을 이루시는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니다. 거기에는 믿음의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특이한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에서 보면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의 전후 순서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대개 소원을 성취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말씀은 그가 소원을 이루시리니 먼저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으로 보면 그 숨겨진 깊은 뜻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면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냥 내가 꿈꾸는 소원이 아니라 그 분께서 내 마음에 소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원은 곧 비전입니다. 사명입니다. 그 분이 소원을 주시면 그분이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7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고 하시고 불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남을 불평하고 자신을 불평하면 행악에 치우친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먼저 하셨습니다. 그는 그 약속을 믿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고난 중에 부유가 찾아와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자손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근심이 되었고 또한 불평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서두르고 초조한 마음에 인간의 방법을 써서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삼기도 하고 종 하갈의 태를 빌어 이스마엘을 출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인내하지 않고 섣부르게 행동한 결과로 오늘날 테러의 전쟁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전쟁을 낳게 되었습니다. 참지 못하고 불평하는 것은 행악을 낳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분에 대한 신뢰가 깊어가면서 그는 다른 조건이 아닌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게 되었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도저히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을 적에 이삭을 허락하셨고 그 이후에도 아브라함은 이삭보다 하나님을 먼저 기뻐하는 그러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잠잠하라 하는 말씀을 보면 심한 풍랑에 잠잠히 주무셨던 예수님이 생각이 납니다. 풍랑이 일자 제자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 상황에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께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두려워하느냐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신앙 안에서 잠잠한 것은 편안한 환경 중에 잠잠한 것이 아니라 풍파 중에 믿음으로 잠잠할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11절의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아 하나님의 보배로 타인을 대할 적에 나타나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의로움이란 신학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온유한 자는 성경에서는 땅을 차지한다고 했고, 의인은 반드시 축복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18절의 완전한 자의 날은 우리의 모습이 환경 때문에 기뻐하고 또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을 그 날입니다. 그 때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업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실 것이고 그 길을 영원히 축복하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먼저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소원의 성취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신 하나님 자신으로서 먼

저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