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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

본문: 119:97-105

제목: 어떻게 말씀을 사랑하나?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지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해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그 대상이 막막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이 막막합니다. 더군다나 아담 이후 우리의 본성은 여전히 죄악에 물들어 있어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자기만을 위하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해요. 하나님 교제해요.’하고 기도하고 찬양해도 어느덧 자기의 생각에 갇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지, 어떤 것이 내 생각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다가 하나님과 교제했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교제를 위해, 사랑의 관계를 위해 열어두신 통로가 똑같이 믿는 이웃, 형제와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사랑을 확증하라 하셨고 또한 말씀을 지킴으로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요일 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2:4-5]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 놓고 말씀을 읽지도 않고, 또한 읽은 말씀을 지키지도 않는 사람은 성경에서 뭐라 합니까?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라고 말씀합니다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은 하지만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만 위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코자 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말씀을 읽고 지킴을 통해서 그 사랑의 표현하는 것이지요.

, 부부가, 친한 친구가 지금 난 너를 정말 사랑해 라고 말은 하는데 무슨 부탁을 하거나 약속을 해도 한 번도 안지킨다면 한 두번이야 그래 사정이 있었겠지..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번번히 말을 듣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고백을 누가 곶이 듣겠습니까? 그러니까 번번히 예배하러 와서 난 주님을 사랑합니다. 찬양하는 사람이 있었도 그것으로 사랑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을 지켜 행하는 자라야 날 사랑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성경을 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접하지 구태여 책을 통해서 수고하며 글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요. 긴 소설도 두 세시간 짜리 영화 한 편 보면 그 내용을 다 알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짜그마한 글씨로 뺵뺵히 씌여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읽어도 몇장 넘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읽어도 1년에 걸쳐 한 번 읽기도 쉽지가 않지요.

저도 유치원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대학 졸업할 때까지 수십 번 성경을 통독하려고 하다가 실패했는지 모릅니다. 창세기랑 출애굽기는 너무 많이 읽었지만 그 다음을 넘기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부터 시작해서 복음서 읽다가 그만 둔 적도 많지요. 하두 끝을 못내서 차라리 뒷 부분부터 읽자 해서 말라기서와 계시록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끝을 못맺습니다. 신학교 가서야 비로소 이젠 신학생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1년에 한 독은 하자 하면서 읽었는데 그것도 잘 지키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힘들 때 마다 도전을 준 말씀이 요한 일서 2 4-5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어 볼까요?

[요일 2:4-5]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러니까 성경 읽기 힘들고 고될 때마다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아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그의 말씀을 읽지도 지키지도 않으면 내가 어찌 그리스도인인가 생각했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들고 고되지만 말씀을 읽었습니다. 물론 어느정도 말씀을 읽는 것이 습관화되고 꾸준히 읽게 되니까 이젠 말씀 읽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하고 불안해 지지요. 말씀을 읽는 것도 더 이상 고되거나 지루해지지 않고 읽을 때마다 은혜도 주시고 새롭게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기본 전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은 것이지요.

그런데 지난주에 성경 공부를 준비하다가 우리가 읽은 본문을 읽었습니다.

(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그러다가 시편 기자가 쓴 주의 법을 내가 어찌 그리 사랑하는가?하는 표현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내가 말씀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읽은 본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 97-주의 법, 98-주의 계명, 99-주의 증거, 100-주의 법도(104), 101-주의 말씀(103), 102-주의 규례등으로 그 용도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었지만,, 말씀을 읽은 것은 하나의 의무이고, 숙제이고, 책임이었지 내게 정말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면서 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고, 때로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지만 그 말씀을 정말 사랑했는가 생각하니 그렇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뭐가 다른가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서나 성도들 앞에서 바른 목사가 되고 싶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말씀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만큼은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대할 때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대하는가 하면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뭐 빠뜨리는 것은 없을까? 이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하고 항상 말씀을 연구의 대상, 숨긴 것을 펼쳐놓아야 할 비밀로서만 보았지 그 말씀 자체를 내 사랑의 대상으로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러면서 기도를 하니까 말씀이 곧 나다. 말씀이 내가 한 어떤 것이 아니라 말씀이 곧 나다.”하면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지요.

그러면서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 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동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읊조리다.

- 오늘 본문에서 97절과 99. 두 절에서 반복되는읊조리다라는 단어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읊조리다는 말의 뜻은 국어사전에서는뜻을 음미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읊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97절에서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어성경에서는읊조리다라는 말을 ‘meditate’라고 합니다. 이것은묵상하다, 깊이 생각하다. 뜻을 되새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읊조리다는 말은하나님의 말씀을 늘 깊이 생각하고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그읊조림은 언제 해야 하는지도 본문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 97절에서종일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우리가 어떻게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까? 시간적으로 그건 불가능하지요. 그럼 이 표현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술을 통해서 깊이 새기고 귀에 들리게 소리 냄으로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라. 교제하라는 의미이겠지요. 종일 묵상하는도다는 곧 항상 동행하고 교제한다는 의미입니다.

           •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의 결과 -> ~보다 지혜롭게 됩니다.

           1. 누구보다 지혜롭게 됩니다.(98-100) 오늘 본문 98-100까지 보면 그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합니다.

           1) 원수(98)보다 지혜롭습니다. (wiser: 현명함 -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행이 높다)

사울이 다윗을 괴롭힐 때.

           2) 모든 스승(99)보다 지혜롭고 명철합니다. (insight: 통찰력-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

부활 후 예수님의 제자들

           3) 노인(100)보다 지혜롭습니다. (understanding ; 이해력, 납득, 분별, 해석이 뛰어남)

요셉

          

           2.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1) 악한 길로 가지 않습니다

( 119: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2)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됩니다.

( 119: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된다는 의미는 죄인의 길에서 떠나 의인의 길로 들어선다는 의미입니다.

           - 시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의인들의 길에 선다고 말씀합니다.

의가 무엇입니까? 관계가 바른 것이 의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한 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니까 곧 의이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가 곧 의인인 것입니다.

 

(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 이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여기기까지 시인이 얼마나 연단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라는 말씀은 입에 넣기에 부드럽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의 배후에 담겨 있는, 이 시인이 주님의 말씀에 향미를 느끼기까지 겪었을 연단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 하나님 말씀을 우유처럼 부드러워 마시기 좋은 때도 있으나 고기처럼 질기기도 하며. 어떤 때는 방망이처럼. 어떨 때는 날카로운 칼처럼. 어떨 때는 불처럼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말씀으로 연단되지 않은 자에게 있어서 말씀은 단 것이 아니라 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말씀으로 연단된 자에게는 모든 말씀이 꿀처럼 달게 여겨지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인생길을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삶은 일종의 길입니다. 길에 대하여 시편 저자는 빛이 없으면 걷기 어려운 험준하거나 어두운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인생의 길이 어둡다는 암시입니다. 말씀이 비취지 않는 인생길은 보이지 않는 미로와 같습니다. 마음먹은 길로 나오질 않습니다. 항상 뜻밖의 상황 때문에 놀라고 불안해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동행하는 자는 어둡지 않습니다. 어두운 가운데서도 밝은 빛을 비춰주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갈 길을 밝히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로고스 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시나요?

그럼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항상, 꾸준히 말씀을 읽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항상 울리도록 읊조린 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악한 길에서 떠나 내 발걸음을 선한 곳으로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우리의 모든 부족함이 채워집니다. 악인이 두렵지 않고, 좋은 스승이 부럽지 않고, 솔로몬보다 지혜롭게 됩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받아 본인이 간직하며 사용하다가 악한 길에도 빠졌지만 말씀과 동행하면 악한 길에 들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연애해 보시길 바랍니다. 시인이 되어 내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소리가 울리도록 읊조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길을 밝히실 것입니다. 외롭지 않게 보호하실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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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63:1-시 63:1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묵상)

시편 63편은 유대 광야에서 다윗이 기도시입니다.

사울의 압제를 피해 달아나며, 물이 없고 황폐한 땅에서 다윗이 구한 것은 무언이었을까? 애굽의 압제를 피해 물도 없고 황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물을 달라고, 음식을 달라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똑같은 환경 속에서 "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육체가 주를 앙모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이 배고프고 목마를 , 다윗은 자신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다윗의 마음은 성소였고, 골방이었고, 은밀한 하나님과의 교제 장소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를 때에 주님은 너희가 떡을 얻기 위해 나에게 오는구나하시면서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자 수많은 무리들은 " 말씀은 어렵도다!"하시면서 주님을 떠납니다. 떠나는 무리들을 보시면서 주님은 12제자에게 묻지요. "너희도 가려느냐?"

"생명의 말씀이 여기 있사오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내가 하는 기도, 내가 바라는 주의 은혜, 내가 원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빵인지,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이고 은혜인지 다윗의 기도를 보며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임재를 골수의 기름진 먹음과 똑같이, 아니 더귀하게 여길 있는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으로…" 수없이 불렀던 찬송의 시가 정말 주의 인자가 , 속의 문제해결, 삶의 생사여부보다 나을 있는지… 부끄러운 신앙 안에서의 나의 욕망을 드러내 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윗의 기도가 얼마나 하나님을 즐겁게 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수많은 기도의 내용이 떡과 물질과 자신의 인생을 위해 기도할 , "주의 인자가 인생보다 귀합니다."하는 다윗의 기도. "물이 없어도 인생이 황폐해도, 영혼은 오직, 육체는 오직 주만을 갈망합니다"하는 다윗의 고백. 하나님이 사랑할 밖에 없는 다윗이 기도는 삶과 기도를 부끄럽게 합니다.

 

나에게도 위선이 아닌 진심으로, 고백이 아닌 삶으로, 다윗의 믿음, 다윗의 진심, 다윗의 고백이 주어지기를 기도해 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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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onflowe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2.01 01:43

    하나님과 나의 소통은 기도라 생각했는데 항상 달라고 징징대는 기도만 했습니다.
    기쁜맘으로 고백하고 진심을 담아 기도 하는것........연습이라도 해야겟어요.

[시 91:1-시 91:16]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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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으로 새벽 말씀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소르기가 지은 " 영이 마르지 않는 연습"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한 부부가 기도하러 앉았다가 갑자가 "도움이 필요하면 911 전화하세요!" 라는 반복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가만히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아이의 장난감 자동차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였다. 실망하여 방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 갑자기 가만있던 장난감이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울리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911이라는 숫자를 생각해내며 폈던 곳이 바로 시편 91 1절의 말씀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귀에 이어지는 말씀은 문제 많은 부부에게도, 그리고 지금 심령에도 강력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로서 울려 퍼진다.

 

  1. 지존자의 은밀한 ? 그것은 하나님과 나만의 친밀한, 비밀스런 교제의 장이다. 기도의 장소요, 예배의 장소요, 말씀으로 공급받는 장소이다. 내가 넘어지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 오는 것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만 유지 있다면, 분과의 은밀한 관계만 지속될 있다면 분의 그늘 아래, 분의 보호아래 거할 있다!

광야에서의 모세에게 ( 글을 모세의 시로 여겨진다) 초대교회의 일곱 교회도 얼마나 많은 겹겹의 위험과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공중 권세 잡은 자는 결코 하나님의 사람들을 내어버려 두지 않는다.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인 공격을 없이 덫을 놓고 잡으려 한다. 마치  올무를 놓고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그러나 우리를 날개의 깃으로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 있다면 천인이, 만인이 옆에서 엎드러져도 어떤 재앙도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한다.

  1. 지존자로 거처를 삼는 . 그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 말씀은 알고 있어도 내가 거하지 못하면 망한다. 절망한다. 엎드러진다. 그러나 내가 안에 거하면, 잠기면, 안에 살면… 그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일으키신다. 그가 모든 길에서 지키신다. 돌에 부딫치지 않게 하신다. 사자와 독사와 뱀이 와도 오히려 그들을 발로 누른다.
  1. 모든 찬양과 기도가 그가 나를 사랑하고 그가 이름을 안다고 했는데 말씀에서는 "저가 나를 사랑한 , 저가 이름을 안즉"이라 말씀하시며 친밀한 교제의 관계를 알게 하신다. 나에게 그러한 친밀함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네가 사랑하는구나 하는 소릴 들을 수가 있을까?
  1. 모세가 글을 썼다면 모세 시대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장 은밀한 장소는 지성소다. 그곳은 거룩한 곳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찬 곳이다. 그러나 모세가 지성소에 들어갔는가? 들어갈 있었는가? 지성소는 1년에 오직 제사장만 들어갈 있는 장소가 아닌가? 그럼 은밀한 곳은 어디인가? 광야 가운데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은밀한 장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죄의 짐으로 정해진 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있었지만 모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놓치지 않고 죽기까지 유지했다. 그의 마음, 그의 심령은 오직 하나님 앞에 열납된, 인정된 신앙인이었다.

 

나의 인생의 911, 내가 도움이 필요할 , 나아갈 있는 . 오직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 일으킬 있는 . 보호할 있는 . 분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갑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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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onflowe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1.27 23:01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데도 가고싶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이 오늘이었고, 그래서 간곳이 교회였고 두시간을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기도도 안하고....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가장 친말한 곳에서 그냥.....앉아있었습니다.

  2.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1.28 09:03 신고

    그럴 때 길 때가 있어서 좋고, 그럴 때 함꼐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함께 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친밀힌 곳, 교회에서 친밀한 분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기분이 좀 나아지셨다면 좋겠습니다.

 

Psalm 37:23-24

The steps of a man are established by the LORD,

 when he delights in his way;

 though he fall, he shall not be cast headlong,

 for the LORD upholds his hand.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예수 믿으면 절대로 내가 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고  내 마음 가운데 믿음이 항상 굳건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솔직히  종종 헛발을 딛고  심지어 넘어지기도 한다. 서럽고 아파서 울기도 한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자는  비록 넘어지더라도  완전히 엎드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 크리스찬이라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크리스찬이 더 일 잘 풀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크리스찬 되려고 하겠지. 자기 욕망을 채우려는 수단으로..

물론, 성도들도 아프고, 병들고 죽고 그런다…그렇지만, 왠만한 고통을 통해서는 오히려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되고,

또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항상 소망이 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가 받는 스트레스

  • 대충 믿고 세상적으로 살아도 되는 같은 자들.
  • 아니 오히려 안믿고 악하게 살아도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
  • 말씀대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필요를 절감하지 못한다.

-> 시편의 기자: 악인이 되는 것을 보고 거의 실족할 뻔하고 있다.

 

그가 받은 응답

[시 37:7-시 37:10]

Be still before the LORD, and wait patiently for him; do not fret over those who prosper in their way, over those who carry out evil devices. Refrain from anger, and forsake wrath. Do not fret--it leads only to evil. For the wicked shall be cut off, but those who wait for the LORD shall inherit the land. Yet a little while, and the wicked will be no more; though you look diligently for their place, they will not be there.

 

If the Lord delights in a man's way, he makes his steps firm

Though he stumble, he will not fall

For the Lord upholds him with his hand.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러면 그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주께서 우리의 길을 기뻐하시면 그가 우리의 발걸음을 견고하게 하신다고 하신다.

어떻게 하면 주께서 우리의 길을 기뻐하시게 있는가? 불평하지 말고 여호와를 신뢰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을 기뻐하며 묵묵히 가는 것이다. 상황이 좋아져서 기뻐하며 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길이고 나를 지키는 길이고 그에게도 나에게도 옳은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잠시 잠깐의 형통을 보며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분을 품고 원망하다가 결국 길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영생 뿐만 아니라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

상황이, 환경이 나빠져서 신앙이 흔들린다면, 내가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환경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환경이 흔들려도 변하지 않는 믿음이고 사랑이고 마음이다.

악인이 형통하고 믿음 없는 자들이 형통한 것을 품고 분을 품거나 신앙이 흔들리면 결국은 타협하고 무너지고 합리화시키는 신앙만이 남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는 것을 받으실 때, 그가 우리의 발걸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그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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