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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2.12.01 11월 30일 (금) 버가모 교회
  2. 2012.11.23 11월 23일 (금) 저녁예배 설교 서머나 교회(계시록 2장 8-11)

[ 2:1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       13절을 보면 버가모는 사탄의 영향력을 받는 도시, 거대한 우상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자랑하는 것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①그 첫째가 제우스 제단이고두 번째로는 아스클레오피오스라는 치유의 신을 모시는 아스클레오피온이라는 유명한 병원이며세 번째는 2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명한 도서관입니다. 그 대규모 도서관에 대해서 도시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는 세계 제일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1)     제우스 신전: 태양신 제우스- 당시 이방세계 최고의 신. 그 신을 모신 신전. 그 뒤로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봉축. 아시아 전체에서 살아있는 황제를 기념하는 최초의 신전. 황제 숭배의 중심지.

2)     아스클레오피온 (치유의 신-) 신전과 그 신의 이름을 한 아세아 최고의 병원

그 신의 모습인 뱀을 보며 구주라고 부름.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환자들을 대리석으로 된 길을 맨발로 엄숙하게 걷게 해서 병원 뜰 중앙에 솟아오르는 온천수에서 목욕을 한 번 합니다. 다음으로 지하 터널로 된 치료실을 지니는데 그러면 치료실 위쪽으로 난 창문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네 병은 곧 낫는다. 나을 수 있느니라.’ 라며 심리적으로 그들을 고취시킵니다.  다음에는 치료실을 나와 극장에 가서 음악을 듣고 마지막으로는 아스클레오피온 신 앞에 가서 기도하고 서약을 합니다. 곁들여 제우스 신 앞에서도 역시 구주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신전 내부에는 길들인 뱀들을 키우는데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캄캄한 시간에 뱀들 중 한 마리가 옆으로 지나다가 스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신전에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뱀의 접촉은 아스클레오피온 신의 접촉이므로 즉시 치유가 뒤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è  마귀를 상징하는 뱀을 구주로, 치유의 신으로….

3)     아시아 최고의 도서관: 20만권 이상의 장서. 모든 이방사상의 지식들이 저장되어 있슴.

이런 곳에 위치한 교회

-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è  우리 같으면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터는 세상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우라 하신 곳에 세우는 곳이다.

에베소 교회의 중심 주제가 사랑, 서머나 교회가 고난이었다면 버가모 교회를 향한 중심 주제는 진리이다.

복음은 사랑과 진리를 균형 있게 하나로 묶는다. 진리를 무너뜨리고 사랑만을 외치면 감정에 빠지고 혼탁해지며 결국 타락하게 된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매정하고 지독하고 판단하며 결국은 교만해지게 된다.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들고 ( 4;15), 진리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며 (요삼 1), 사랑에서만 아니라 분별력에서 자라가라고 하신다. ( 1:9)

교회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 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은 이러한 균형을 잃어버릴 때에 일어난다.

때로 우리는 핵심 사항은 경시하고 주변적인 문제는 확대시킨다.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진리들은 양보하고 정작 부수적인 문제들과 하찮은 일에 목청을 높일 때가 많다. 그러면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절대 원칙, 핵심은 무엇인가?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3)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상황에서나 반드시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이다. 교회의 생명은 이 교회가 세상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붙잡고 있느냐? 그 분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하는 것. 내가 절대적으로 예수를 붙잡고 있는가?

서머나 교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을 상황에서도 믿음을 채워라. 충성: 믿음으로 채워라.

버가모 교회: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노라.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소아시아의 3대도시, 그러나 에베소 가장 큰 도시 (수도), 서머나 (무역도시), 버가모 (의학, 종교적 도시,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발전하면서 점점 쇠퇴한 도시) -> 규모가 작아지면서 교회가 처한 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 갔고, 그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의 깊이는 더 깊어져 갔다.

그들은 죽음이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진리 안에 서 있었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죽음에 맞서는 믿음이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안디바: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Anti-대항하는, Papas-교부(교황)”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교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다.  요즘 표현으로 '안티'. 무엇에 대한 안티인가? 신실한 증인 안디바는, 세상적인 교회가 끌어들이고 실행했던 모든 것을 반대하여 섰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순교자가 되었다. 헬라어로증인이란 말은 '순교자'와 같은 단어이다.

반대(안티) 증인인 안디바는, 예수의 간증에서 벗어난 어느 것에도 반대하는 반대 간증을 했다. 그의 생존 시 버가모 교회가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것은 이 반대 간증으로 말미암은 것임에 틀림없다. 전설에 따르면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 때 그를 솥에다 쩌서 죽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시며 그의 죽음을 귀하게 보셨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책망 받을 것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불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적이었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발람이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주장하셔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말이 나갑니다. 그러나 발락이 주는 물질에 탐심으로 가득찬 발람이 음란한 연회를 열어서 모압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이라고 하여 그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맞춰져야 할 믿음의 초점을 우상에게 돌리게 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정신을 파괴시킨 것이었습니다( 31:16).

1세기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됩니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와 로마의 관습과 철학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니골라당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교회 안의 부유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고결한 표준을 사람들의 미묘한 철학적 논리와 이교 사상과 혼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부인하도록 유도하였다. (동성연애, 요즈음 일어나는 부부교환,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인간의 의와 논리 위에 세워진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었다. 사단은 에베소 교회시대 이후 계속해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인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킨다라는 도덕률 폐기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예수님의 권면과 축복의 약속

-       회개하라.

-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수님의 말씀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12)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4:12)

오류를 이기는 것,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것은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2:16)

 

축복의 말씀

1)     감추었던 만나: 이스라엘은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 16:32~3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차 메시아 왕국에서 공개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들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말씀. 만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상징한다(요한복음 6:26~63).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셔서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그분과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2)     “흰 돌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신명기에 보면 돌판에 석회를 발라 희게 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게 합니다. 즉 흰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돌입니다. -> 그리스도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 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다.(우림과 둠님) 흰 돌은 무죄 석방을 의미하였고, 검정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게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새로운 이름이 그 돌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다. 흰 돌은 자유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흰 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세상을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오직흰돌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고 또한 바로잡으라고 하시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와 흰돌, 또 다시 말씀을 준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주어진 계시를 굳게 붙드는 사람에게는 더 충만한 계시를 준다는 약속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계시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알던 사람들이 그 때는 주께서 자기를 아신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되고, 지금 거울로 희미하게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된다.

(시편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버가모 교회: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 그러나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행위로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금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바르지 못한 교리가 들어와서 흔들려고 한다. 그러니 다시 말씀 위에 굳게 서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진리안에 굳게 서면 더 깊은 말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말씀을 줄 것이다.

네 삶 속에 바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제하고 말씀으로 너를 깨끗이하고 무장하라.

 

금요예배 계시록 7교회 3. 버가모교회 ( 2:12-17) [ 2:12- 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       13절을 보면 버가모는 사탄의 영향력을 받는 도시, 거대한 우상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자랑하는 것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①그 첫째가 제우스 제단이고두 번째로는 아스클레오피오스라는 치유의 신을 모시는 아스클레오피온이라는 유명한 병원이며세 번째는 2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명한 도서관입니다. 그 대규모 도서관에 대해서 도시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는 세계 제일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1)     제우스 신전: 태양신 제우스- 당시 이방세계 최고의 신. 그 신을 모신 신전. 그 뒤로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봉축. 아시아 전체에서 살아있는 황제를 기념하는 최초의 신전. 황제 숭배의 중심지.

2)     아스클레오피온 (치유의 신-) 신전과 그 신의 이름을 한 아세아 최고의 병원

그 신의 모습인 뱀을 보며 구주라고 부름.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환자들을 대리석으로 된 길을 맨발로 엄숙하게 걷게 해서 병원 뜰 중앙에 솟아오르는 온천수에서 목욕을 한 번 합니다. 다음으로 지하 터널로 된 치료실을 지니는데 그러면 치료실 위쪽으로 난 창문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네 병은 곧 낫는다. 나을 수 있느니라.’ 라며 심리적으로 그들을 고취시킵니다.  다음에는 치료실을 나와 극장에 가서 음악을 듣고 마지막으로는 아스클레오피온 신 앞에 가서 기도하고 서약을 합니다. 곁들여 제우스 신 앞에서도 역시 구주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신전 내부에는 길들인 뱀들을 키우는데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캄캄한 시간에 뱀들 중 한 마리가 옆으로 지나다가 스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신전에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뱀의 접촉은 아스클레오피온 신의 접촉이므로 즉시 치유가 뒤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è  마귀를 상징하는 뱀을 구주로, 치유의 신으로….

3)     아시아 최고의 도서관: 20만권 이상의 장서. 모든 이방사상의 지식들이 저장되어 있슴.

이런 곳에 위치한 교회

-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è  우리 같으면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터는 세상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우라 하신 곳에 세우는 곳이다.

에베소 교회의 중심 주제가 사랑, 서머나 교회가 고난이었다면 버가모 교회를 향한 중심 주제는 진리이다.

복음은 사랑과 진리를 균형 있게 하나로 묶는다. 진리를 무너뜨리고 사랑만을 외치면 감정에 빠지고 혼탁해지며 결국 타락하게 된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매정하고 지독하고 판단하며 결국은 교만해지게 된다.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들고 ( 4;15), 진리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며 (요삼 1), 사랑에서만 아니라 분별력에서 자라가라고 하신다. ( 1:9)

교회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 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은 이러한 균형을 잃어버릴 때에 일어난다.

때로 우리는 핵심 사항은 경시하고 주변적인 문제는 확대시킨다.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진리들은 양보하고 정작 부수적인 문제들과 하찮은 일에 목청을 높일 때가 많다. 그러면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절대 원칙, 핵심은 무엇인가?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3)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상황에서나 반드시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이다. 교회의 생명은 이 교회가 세상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붙잡고 있느냐? 그 분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하는 것. 내가 절대적으로 예수를 붙잡고 있는가?

서머나 교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을 상황에서도 믿음을 채워라. 충성: 믿음으로 채워라.

버가모 교회: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노라.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소아시아의 3대도시, 그러나 에베소 가장 큰 도시 (수도), 서머나 (무역도시), 버가모 (의학, 종교적 도시,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발전하면서 점점 쇠퇴한 도시) -> 규모가 작아지면서 교회가 처한 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 갔고, 그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의 깊이는 더 깊어져 갔다.

그들은 죽음이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진리 안에 서 있었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죽음에 맞서는 믿음이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안디바: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Anti-대항하는, Papas-교부(교황)”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교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다.  요즘 표현으로 '안티'. 무엇에 대한 안티인가? 신실한 증인 안디바는, 세상적인 교회가 끌어들이고 실행했던 모든 것을 반대하여 섰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순교자가 되었다. 헬라어로증인이란 말은 '순교자'와 같은 단어이다.

반대(안티) 증인인 안디바는, 예수의 간증에서 벗어난 어느 것에도 반대하는 반대 간증을 했다. 그의 생존 시 버가모 교회가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것은 이 반대 간증으로 말미암은 것임에 틀림없다. 전설에 따르면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 때 그를 솥에다 쩌서 죽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시며 그의 죽음을 귀하게 보셨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책망 받을 것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불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적이었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발람이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주장하셔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말이 나갑니다. 그러나 발락이 주는 물질에 탐심으로 가득찬 발람이 음란한 연회를 열어서 모압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이라고 하여 그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맞춰져야 할 믿음의 초점을 우상에게 돌리게 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정신을 파괴시킨 것이었습니다( 31:16).

1세기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됩니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와 로마의 관습과 철학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니골라당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교회 안의 부유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고결한 표준을 사람들의 미묘한 철학적 논리와 이교 사상과 혼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부인하도록 유도하였다. (동성연애, 요즈음 일어나는 부부교환,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인간의 의와 논리 위에 세워진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었다. 사단은 에베소 교회시대 이후 계속해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인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킨다라는 도덕률 폐기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예수님의 권면과 축복의 약속

-       회개하라.

-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수님의 말씀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12)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4:12)

오류를 이기는 것,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것은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2:16)

 

축복의 말씀

1)     감추었던 만나: 이스라엘은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 16:32~3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차 메시아 왕국에서 공개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들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말씀. 만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상징한다(요한복음 6:26~63).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셔서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그분과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2)     “흰 돌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신명기에 보면 돌판에 석회를 발라 희게 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게 합니다. 즉 흰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돌입니다. -> 그리스도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 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다.(우림과 둠님) 흰 돌은 무죄 석방을 의미하였고, 검정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게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새로운 이름이 그 돌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다. 흰 돌은 자유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흰 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세상을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오직흰돌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고 또한 바로잡으라고 하시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와 흰돌, 또 다시 말씀을 준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주어진 계시를 굳게 붙드는 사람에게는 더 충만한 계시를 준다는 약속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계시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알던 사람들이 그 때는 주께서 자기를 아신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되고, 지금 거울로 희미하게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된다.

(시편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버가모 교회: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 그러나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행위로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금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바르지 못한 교리가 들어와서 흔들려고 한다. 그러니 다시 말씀 위에 굳게 서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진리안에 굳게 서면 더 깊은 말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말씀을 줄 것이다.

네 삶 속에 바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제하고 말씀으로 너를 깨끗이하고 무장하라.

금요예배 계시록 7교회 3. 버가모교회 ( 2:12-17) [ 2:12- 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       13절을 보면 버가모는 사탄의 영향력을 받는 도시, 거대한 우상 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자랑하는 것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①그 첫째가 제우스 제단이고두 번째로는 아스클레오피오스라는 치유의 신을 모시는 아스클레오피온이라는 유명한 병원이며세 번째는 20만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유명한 도서관입니다. 그 대규모 도서관에 대해서 도시 사람들은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는 세계 제일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1)     제우스 신전: 태양신 제우스- 당시 이방세계 최고의 신. 그 신을 모신 신전. 그 뒤로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봉축. 아시아 전체에서 살아있는 황제를 기념하는 최초의 신전. 황제 숭배의 중심지.

2)     아스클레오피온 (치유의 신-) 신전과 그 신의 이름을 한 아세아 최고의 병원

그 신의 모습인 뱀을 보며 구주라고 부름.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환자들을 대리석으로 된 길을 맨발로 엄숙하게 걷게 해서 병원 뜰 중앙에 솟아오르는 온천수에서 목욕을 한 번 합니다. 다음으로 지하 터널로 된 치료실을 지니는데 그러면 치료실 위쪽으로 난 창문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말합니다. ‘네 병은 곧 낫는다. 나을 수 있느니라.’ 라며 심리적으로 그들을 고취시킵니다.  다음에는 치료실을 나와 극장에 가서 음악을 듣고 마지막으로는 아스클레오피온 신 앞에 가서 기도하고 서약을 합니다. 곁들여 제우스 신 앞에서도 역시 구주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신전 내부에는 길들인 뱀들을 키우는데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들은 캄캄한 시간에 뱀들 중 한 마리가 옆으로 지나다가 스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신전에서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뱀의 접촉은 아스클레오피온 신의 접촉이므로 즉시 치유가 뒤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è  마귀를 상징하는 뱀을 구주로, 치유의 신으로….

3)     아시아 최고의 도서관: 20만권 이상의 장서. 모든 이방사상의 지식들이 저장되어 있슴.

이런 곳에 위치한 교회

-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è  우리 같으면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곳을 떠나라고 하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안다고 말씀하신다. 교회의 터는 세상을 극복하고 정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우라 하신 곳에 세우는 곳이다.

에베소 교회의 중심 주제가 사랑, 서머나 교회가 고난이었다면 버가모 교회를 향한 중심 주제는 진리이다.

복음은 사랑과 진리를 균형 있게 하나로 묶는다. 진리를 무너뜨리고 사랑만을 외치면 감정에 빠지고 혼탁해지며 결국 타락하게 된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매정하고 지독하고 판단하며 결국은 교만해지게 된다.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붙들고 ( 4;15), 진리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며 (요삼 1), 사랑에서만 아니라 분별력에서 자라가라고 하신다. ( 1:9)

교회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 적인 것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에는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교회 안의 여러 문제들은 이러한 균형을 잃어버릴 때에 일어난다.

때로 우리는 핵심 사항은 경시하고 주변적인 문제는 확대시킨다.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진리들은 양보하고 정작 부수적인 문제들과 하찮은 일에 목청을 높일 때가 많다. 그러면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하는 절대 원칙, 핵심은 무엇인가?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3)

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상황에서나 반드시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이다. 교회의 생명은 이 교회가 세상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고,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붙잡고 있느냐? 그 분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하는 것. 내가 절대적으로 예수를 붙잡고 있는가?

서머나 교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을 상황에서도 믿음을 채워라. 충성: 믿음으로 채워라.

버가모 교회: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노라.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소아시아의 3대도시, 그러나 에베소 가장 큰 도시 (수도), 서머나 (무역도시), 버가모 (의학, 종교적 도시,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발전하면서 점점 쇠퇴한 도시) -> 규모가 작아지면서 교회가 처한 환경은 점점 더 어려워 갔고, 그들에게 요구하는 신앙의 깊이는 더 깊어져 갔다.

그들은 죽음이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진리 안에 서 있었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죽음에 맞서는 믿음이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안디바: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Anti-대항하는, Papas-교부(교황)”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교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다.  요즘 표현으로 '안티'. 무엇에 대한 안티인가? 신실한 증인 안디바는, 세상적인 교회가 끌어들이고 실행했던 모든 것을 반대하여 섰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순교자가 되었다. 헬라어로증인이란 말은 '순교자'와 같은 단어이다.

반대(안티) 증인인 안디바는, 예수의 간증에서 벗어난 어느 것에도 반대하는 반대 간증을 했다. 그의 생존 시 버가모 교회가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것은 이 반대 간증으로 말미암은 것임에 틀림없다. 전설에 따르면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 때 그를 솥에다 쩌서 죽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시며 그의 죽음을 귀하게 보셨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책망 받을 것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불러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적이었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발람이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주장하셔서 저주가 아닌 축복이 말이 나갑니다. 그러나 발락이 주는 물질에 탐심으로 가득찬 발람이 음란한 연회를 열어서 모압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이라고 하여 그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맞춰져야 할 믿음의 초점을 우상에게 돌리게 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정신을 파괴시킨 것이었습니다( 31:16).

1세기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됩니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와 로마의 관습과 철학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니골라당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교회 안의 부유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고결한 표준을 사람들의 미묘한 철학적 논리와 이교 사상과 혼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부인하도록 유도하였다. (동성연애, 요즈음 일어나는 부부교환,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인간의 의와 논리 위에 세워진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었다. 사단은 에베소 교회시대 이후 계속해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인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킨다라는 도덕률 폐기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예수님의 권면과 축복의 약속

-       회개하라.

-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수님의 말씀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12)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4:12)

오류를 이기는 것,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것은 오직 진리의 말씀으로.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2:16)

 

축복의 말씀

1)     감추었던 만나: 이스라엘은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 16:32~34)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차 메시아 왕국에서 공개될 것이라 여겼는데, 그들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말씀. 만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상징한다(요한복음 6:26~63).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셔서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그분과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2)     “흰 돌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신명기에 보면 돌판에 석회를 발라 희게 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게 합니다. 즉 흰돌은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돌입니다. -> 그리스도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 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다.(우림과 둠님) 흰 돌은 무죄 석방을 의미하였고, 검정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게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새로운 이름이 그 돌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다. 흰 돌은 자유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흰 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세상을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오직흰돌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고 또한 바로잡으라고 하시면서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와 흰돌, 또 다시 말씀을 준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주어진 계시를 굳게 붙드는 사람에게는 더 충만한 계시를 준다는 약속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직접 계시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알던 사람들이 그 때는 주께서 자기를 아신 것처럼 온전히 알게 되고, 지금 거울로 희미하게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된다.

(시편 9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버가모 교회: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 그러나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행위로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금 발람의 행위, 니골라당의 바르지 못한 교리가 들어와서 흔들려고 한다. 그러니 다시 말씀 위에 굳게 서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진리안에 굳게 서면 더 깊은 말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말씀을 줄 것이다.

네 삶 속에 바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제하고 말씀으로 너를 깨끗이하고 무장하라.

 

버가모 교회

Posted by 소리벼리

서머나 교회 (계시록 2:9-10) [ 2:9- 2:10]

 'I know your tribulation and your poverty (but you are rich), and the blasphemy by those who say they are Jews and are not, but are a synagogue of Satan. 'Do not fear what you are about to suffer. Behold, the devil is about to cast some of you into prison, that you may be tested, and you will have tribulation ten days. Be faithful until death, and I will give you the crown of life.

에베소 교회의 표지- 사랑, 첫사랑을 회복하라.

서머나 교회의 표제- 고난

사랑과 고난은 같이 간다. 진실한 사랑은 고통과 함께 온다.

C.S. 루이스 고통의 문제의 저작 배경, 영화 <Shadow Land>

옥스포드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평생 독신으로 책을 쓰며 살았던 루이스. 반지의 제왕을 지은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자 루이스가 쓴 글이 나니아 연대기.” 두 교수 모두 기독교의 진리를 어떻게 쉽게, 여러 사람이 읽게 할 수 있을까?

그는 고통에 관한 글을 많이 썼고 고통에 관한 수업도 유명했다.

그 수업가운데 유명한 구절을 몇 가지 들면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조각가가 인간형상으로 깎아 내리는 돌덩어리 입니다. 끌로 때리면 너무 아프지만 고통을 우리를 완벽하게 합니다.” “고통은 귀머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이제는 아이방에서 나와 타인과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고통입니다.”

한 여인을 만나기까지 고통은 그의 가장 중요한 강의의 주제였다. 그러나 삶은 아니었다.

그가 노후에 편지교류를 통해 교류한 조이 그래샴이라는 미국의 여류시인과 서신왕래를 하게 됨. 나중에그녀가 이혼을 하고 영국에 와서 그녀의 영주권을 위해서 서류상의 형식적인 계약결혼을 하게 됨.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골수암에 걸림.

그녀가 죽어가고 있고 얼마 후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루이스는 이전의 모든 고통에 대한 정의를 새로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누구를 사랑하면 그 고통을대신해주고 싶다. 하나님도 더 하실 것이다.

그녀의 병이 진전되었을 때에 둘이 여행을 가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다가 대화하는 내용.

조이: 딴 곳에 가긴 싫어. 그냥 지금 여기서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것도 싫고, 모퉁이 지나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날 것도 싫어요.” “그 때 겪게 될 고통은 지금 누리는 행복의 일부분이야.”

그녀가 죽고 나서 그녀를 회상하면서 그는 고백한다.

난 인생에서 두 번의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한 번은 소년으로서, 한 번은 남자로서. 처음엔 안전한 길을 선택했고, 나중엔 고통스러운 길을 선택했다.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그 때 누렸던 행복의 일부분이다.”

사랑과 고통처럼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는 당대의 도시 중에서 제일을 다투는 유명한 라이벌 도시였다. 천해의 항구로 아시아의 자존심이라 불렀으며 소아시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기독교 인들에게 그 곳은 고통의 도시였다. 그래서 이 교회에 주는 편지의 내용은 고난이다.

과거에 당했고, 현재 당하고 있는 환난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장차 다가올 더 심한 시련에 대한 경고. 그리고 끝까지 견디라는 격려가 이 편지의 전부이다. 서머나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그들은 어떤 일을 당할 지 아무도 모르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살았다.

에베소에 아데미 신전이 있었다면 서머나에는 로마를 인격화한 신인 여신 데아 로마가 있었고, 이 때문에 서머나는 로마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도시로 명성을 얻었다. 제국과 황제, 즉 로마와 케사르에 대한 숭배와 충성은 이 도시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었고, 특권을 주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만이 우상 숭배의 이유로 케사르를 주로 부르지 않았고 신전에서 예배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애국심이 없는 민족의 반역자였다.

가장 그들은 박해하도록 모략했던 자들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 -> 자신들은 공식적으로 제사의 의무를 면제 받았는데, 그들 자신에 대한 눈총을 그리스도인들을 중상모략하여 당국과 대중의 비위를 맞추었다. 사도행전-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을 끝까지 추적하여 죽이려고 하는 자들은 다름아닌 유대인들. 사도행전의 끝은 그러한 유대인들을 눈멀고 귀먹었다고 한탄하며 끝을 맺는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받았던 고난

1.     궁핍

-       내가 네 궁핍을 안다. (9): 가장 번창한 도시에서 가장 소외되고 핍박받았던 자들이 그리스도인들.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이 상종하지 않으려 했던 자들. 빈곤- 초대교회, 중세시대 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따르고자 했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방법.

2.     비방 내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9)

-       유대인들: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악한 소문을 퍼뜨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핍박을 당하게 함. 그리스도인이 모인 회당을 사탄의 회당이라고 했다.

è  궁핍과 비방: 그들이 이미 견디고 있던 환란.

è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2:10)

1.     감옥: “마귀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10)

-       바울 이래로 초기 교회 사도와 성도들은 수 많은 감옥에 갇혀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로마의 감옥들은 찬송과 기도로 거룩하여졌고 그리스도의 임재로 밝아졌다.

2.     죽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10) 나를 위해 죽을 각오로 충성하라. -> 폴리캅이라는 초기 교회 가장 유명한 주교가 이 곳에서 순교. 사도 요한이 직접 임명한 서머나의 주교.

-       자기를 추적해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대접한 뒤, 잠시 물러나 기도할 시간을 청하고 두 시간 가량 기도했다. 총독에게 끌려가서 케사르에게 제사를 드리고 맹세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리스도를 욕하라!”고 강요했지만 거부

-       내가 지난 86년간 그 분을 섬겼거늘 그분은 내게 잘못하신 일이 하나도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단 말이요.”란 말을 마치고 화형에 처함.

-       화형장에서의 마지막 기도: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여, 전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저를 그리스도의 잔에 동참하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셔서 순교자들의 대열에 두시니 감사합니다.”

l  그리스도인과 박해

-       산상수훈의 마지막 복: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가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5:11-12)

-       사도 바울: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29) -> 사랑과 고난이 단짝이듯 믿음과 고난도 단짝이다.

-       본훼퍼: 고난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달 수 있는 배지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수는 없는 법이다.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

l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죽도록 충성하라.

-       충성하라 ( Be Sincere, Be faithful!!) 그리스어로 충성하라는 말은 믿음을 굳게 하라는 말이다. 믿음이 충만하게 하라!.

-       두려움과 믿음은 정반대. 공존할 수 없다.

(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 5: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충성은 곧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가?

그 분은 처음이며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 분은 그 분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환난 중에도 우리를 지키시며 마지막 날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분이다.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그 분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에게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말은 무엇인가?

죽음을 맞이하도록 우리가 믿음을 지킬 때에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 벼랑 끝 신앙.

사람들은 벼랑 끝에 몰리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신앙인도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절규한다. 그런데 그 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떨어져 보라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붙잡고 있는 선에서 떨어져 내리면 하나님이 받아 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선 그어놓고 내가 믿고 싶은 만큼만 믿겠다며 두 눈 감으면 그 것은 벼랑 끝에 선 신앙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내 몰았지만 실상 벼랑끝으로 내 몰린 것은 자신들이지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은 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서라도 나를 의지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 믿음을 드렸을 때에 비로서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이 여호와 이레 주께서 예비하신다는 말씀이다.

막다른 홍해에 발을 디딜 때에 비로서 홍해가 갈라진다. 그 말씀은 어린 양이고 어린 양은 곧 예수 그리스도. 내가 막다른 골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지할 때, 하나님의 예비하심. 그리스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l  내가 네 환란을 안다. (2:9)

-       힘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을 이해하는 분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을 털어놓을 분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은 교회의 고난과 교회된 성도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아신다. 그 분은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우리의 고난이 아무리 깊고 커도 그 분은 다 아시고 또한 돌보아 주신다.

l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이다. (9)

-       그 분의 가치관은 보이는 물질적 세계가 아닌 우리의 영적인 세계를 보신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시고 모든 일에 풍족하다고 하신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신다.

-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라고 하신다.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을 가리켜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10)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는 한 어떤 고난도 우리를 삼킬 수 없다. 그 분은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과 미래에 당할 환난도 아신다. 그러나 고난은 제한된 고난이고 지나갈 고난이고 약속이 보장된 고난이다.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10)

사탄이 어떤 고난을 가져와도 예수님은 더 넓은 날개 가운데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고난의 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시고자 하는 것은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시는 순간, 모든 고난을 몰고오는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시고 우리에게 예비된 축복을 주신다.

 

마귀는 신자들을 밀까부듯 무너뜨리려고 고난을 가지고 우리에게 덤빈다. 때로 하나님도 그런 사탄을 용납하시고 허용하실 때가 있다. 기도에 깨어있지 않을 때, 성도에게 이런 고난이 온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하나님이 사탄의 공격을 허용하시는 의도는 우리 인간의 이해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 중 한가지 말씀에 분명히 나와 있는 이유는 우리를 연단케 하시기 위해서다. 시험은 정금같이 단련된 믿음을 우리에게 준다.

 

l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0-11)

-       그 분께서 주시는 구원은 영원한 것이고 영원히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고, 다시는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것이다.

-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약속: 생명나무-잃어버렸던 생명의 나무를 공급.

-       서머나 교회: 생명의 관- 경주의 결승점. 승자에게 주시는 화관.

l  진실하면 고난을 받는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자. 믿음이 충만한 것이 곧 충성이다. Faithful. 죽기까지 믿음을 지키면 그가 우리를 보호하시고 벼랑 끝에서 예비한 복을 주신다. 그리고 이긴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