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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사사기 강해'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7.07.15 사사기 8장  
  2. 2017.05.13 사사기 7:9-18절 (기드온 2)
  3. 2017.05.12 사사기 6장 (기드온 1)
  4. 2017.05.12 옷니엘 (삿 3:7-11) 

사사기 8장  


  • 에브라임의 불평  (8:1-4) - 기드온의 군사들이 미디안에게 큰 승리를 거두자 왜 자기들을 끼워주지 않느냐고 불평

그들의 불평의 잘못 - 기드온이 부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지 않은 것이다. 

                                기드온이 그들을 제외한 것이 아니라 모인 자들도 하나님께서 제외하셨다. 

                                곧 두려워 떠는 자, 걱정 근심으로 가득 찬 자, 세상에 무릎꿇는 자 모두 제외하셨다. 

                                곧 그들이 전쟁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삶의 결과이다. 

기드온의 겸손 - 그들이 한 일이 자신의 한 일 보다 뛰어나다. 그들을 세워줌으로서 분열과 갈등을 치유한다. 

                     - 왜 분열하고 갈등하는가? 결국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겸손하고 온유하니 내게로 와서 배우라" 주님의 말씀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의 자녀는 결국 겸손하고 온유한 자이다. 평화는 겸손에서 오고 갈등은 교만함에서 온다. 

                           

  • 피곤한 중에 끝까지 싸우는 기드온 - 피곤한 데 아무도 돕지 않는다. 그럴때 우리는 실패한다.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온다. "피곤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격하였다." 왜?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직접 맞서지 않는다. 우리 같으면 그들이 대접하지 않으면 적이고 뭐고 그들을 먼저 쳐부술 것이다. 괘씸하나 지금의 목표는 숙곳이 아니라 미디안이다. 신앙은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 20절) "그의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더라." 

-> 여호수아에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 불순종과 불신앙. 불신앙의 원인은 바로 두려움...다 이긴 전쟁에 생포된 우두머리 조차 물리치지 못한다. 


  • 기드온의 약점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8:21)  물욕, 탐심 

"23절 - 정치적, 권력욕은 없는 대신에 물질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24절 -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읍에 두고 예배함. 

-에봇: 대제사장들이 걸친 의복 - 금실과 청색, 홍색, 자색실과 가늘께 꼰 베실 - 그리스도의 사역과 속성을 나타내는 상징.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보석들이 떨어지지 않게 견대로 묶여져 있다. 

마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하나님께 붙어 있는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것이다. 

27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30)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고 아비멜렉 - 세겜- 그들이 피곤할 때에 음식을 주지 않으므로 미디안과 전쟁을 끝낸 후에 무찌른 땅. - 그런데 그 지역에서도 첩을 얻고 아들을...- 당시의 사회상이 얼마나 음란한 지를 보여주는 표식, 

 

 9장에서 이 아비멜렉이 기드온의 70아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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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니엘 (삿 3:7-11)   (0) 2017.05.12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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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7:9-삿 7:18]

(삿 7: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삿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삿 7: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삿 7: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삿 7: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삿 7: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삿 7: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삿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삿 7: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삿 7: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 우리가 읽은 본문은 기드온과 300용사가 미디안 군사 13만 5천명의 군사와 싸워 승리를 이루는 전쟁 역사상 가장 기가 막힌 승리를 나타낸 장면입니다. 이전에도 기드온과 300용사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적이 있지요. 


  • 미디안 족속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 미디안 족속이 두려워서 포도원 틀에서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던 므낫세에서 가장 작은 가문, 그 집안에서도 가장 약한 자였던 기드온을 택해서 "큰 용사"다라고 부르시며 그에게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내었다"(6장 14절)에서 부릅니다.  

1. 우리가 읽은 본문 9절은 "그 밤에"란 구절로 시작됩니다. 그 밤은 어떤 밤입니까? 

기드온이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과 몇가지 사연을 거쳐서 미디안 족속과 아말렉 족속과 전쟁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모으니 3만 이천명 정도가 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보시고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들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여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사 7:2) 하면서 두려워하는 자를 돌려 보내니 2만 이천명이 돌아가고 만명이 남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미디안 병사의 숫자가 얼마인줄 아십니까? 자그만치 13만 5천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병사를 다 모아보았자 3만 이천명인데 그것같다 이겨도 기적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기면 또 스스로 자랑하여 내 손이, 내 노력이, 내가 잘해서 이겼다 할까봐 그 숫자를 줄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나머지 만명이 남았는데 하나님께서 "백성이 아직도 많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개처럼 핥아서 마시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또 다 돌아가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가가 무엇입니까? 

고난을 주어서 허겁대고 물질에 넘어가고, 세상에 무릎꿇는 자들을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그만치 9천 700여명이 돌아갔습니다. 3만 2천명 중에서 3만 천 700명이 다 사라지고 300명만 남은 것입니다. 

미디안 족속은 얼마라구요? 13만 5천명입니다. 

자꾸 줄이기만 하시는데 여러분 기드온의 심정을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그리고 미디안을 치라고 연약한 자 기드온을 불러놓고 자꾸 힘을 실어도 모자란데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 줄여라. 더 줄여라... 하면서 내가 의지하고 있던 것들을 자꾸만 없애고 줄이고 하실 때 그런 상황을 내가 겪는다고 생각하면 속이 막 타들어갈 것입니다. 조마조마 하면서 "하나님, 나 못해요..." 그러겠지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제가 큐티 책에 이렇게 묵상글을 남겼습니다. 

"자꾸 숫자에만 눈이 간다. 내가 이겨야 할 숫자. 내가 감당해야 할 숫자. 내가 살아야 할 숫자. 내가 써야만 하는 숫자. 내가 가지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숫자...." 

자꾸만 숫자에만 눈이 간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계속 숫자를 없애신다. 계속 줄여나가신다. 숫자를 보면서 절망하고 숫자만을 위해 기도한다.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내겐 믿음이 없는 것일까? 헛된 믿음만 있는 것일까? 믿음이라 여겼던 고집만 있었던 것일까? 사라지는 숫자를 보면서 입술이 타고 믿음이 타고 마음이 탄다. 하나님, 내 눈에서 숫자를 지워주세요. 숫자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네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숫자를 지워 주세요.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세요..." 


  • 그 밤에...는 바로 고난을 통해 거품을 제거하는 기간이었다. 
    기드온과 300 용사처럼(삿 7:7)... 고난은 32,000 에서 세상의 거품을 빼서 300 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문제나 환경과 싸울 나의 32,000 의 안전장치를 모두 내어버리고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 300 용사와 하나님만을 안전장치로 삼는 '거품제거기간'이다. 그 거품이 제거되는 그 때에... 그 밤에... 하나님은 작전은 개시되고 일하시기 시작한다. 


  • " 그 밤에"는 줄어가는 숫자를 보면서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고 토로하는 시간이고, 왜 32000 을 300 으로 줄여가시는지 답이 안가는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이다.  
    정말 힘들고 이해가 가지도 않지만 그래도 절대로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하나님과의 대화시간이고, 가나안 정탐을 하고 부정적인 열명의 시각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시각으로 바꿔지는 시간이다. 


그게 그 밤에... 의 시간이다. 
바로 도자기를 완성하기 직전에 겪어야 하는 '불가마'라는 고난의 시간이 지난... 그 밤에... 이다.


2. "그 밤에" 등장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 "그 밤은" 내가 의지하는 것을 모두 내려 놓는 시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내게 다가오시는 시간입니다. 나의 입장에서는 어려움과 고난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제 의지할 것이 없냐? 이제 내가 너의 써포터, 돕는자, 심부름꾼이 아니라 너의 주인, 너를 다스리고, 너를 인도하는 구원자로 등장하는 시간입니다.  


  • 여러분! 예배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변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관점입니다. 인간적인, 세상적인 관점이 바뀌어서 영적인 관점, 믿음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세상적인 관점, 세상적인 기준에 대해서 세뇌당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내가 가진 것, 내가 가진 실력만큼 사는 것이 최상입니다. 가장 잘 되었을 때가 그렇습니다, 자기 그릇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나에게 맡겨진 것만을 하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의 인생, 찌질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관점, 믿음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꿈꾸게 하시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게 하시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믿음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은 자기 인생의 크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미지근하던 인생이 열정을 품게 되고, 안된다고만 여겼던 것들을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3. 두려워하고 있는 기드온을 하나님께서는 부하와 함께 진영으로 내려가 그들의 말을 듣게 합니다. 

(삿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 내려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수가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해변의 모래 같은지라. 눈에 보이는 상황은 암울합니다. 변한 것이 없고 그들의 수는 자신을 압도합니다. 그런데 내려가서 염탐하니 그 병사들 중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꿈을 말하는데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앞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하면서 기드온의 칼이 자기의 진영을 무너뜨릴 것을 이야기하며 두려워합니다.
  • 하나님이 행하신 대로 순종했더니 무엇이 바뀝니까?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현실에서 희망이 보입니다. 자기는 미디안을 두려워하는데 그들은 이미 기드온의 칼이 자기를 무너뜨릴 것이라 염려하며 두려워합니다. 300명으로 13만 5천을 상대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이 가라 하는 곳으로 갔더니 오히려 미디안이 기드온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 보리떡 한 덩어리가 들어와 미디안 진영을 무너뜨렸다는데 보리떡 한 덩어리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실 때에 사탄이 나타나 돌덩이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유혹합니다. 그 때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 4:4) 광야에서 내리는 떡덩이는 무엇입니까? 만나입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드렸던 소년의 보리떡 다섯개는 무엇입니까? 주님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말씀 앞에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러니까 떡덩이가 들어와 그것이 기드온의 칼이 되어 미디안의 진영을 무너뜨린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하시면서 17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우리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리의 검입니다. 
  • 관점이 바뀌니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두려움이 없어지니까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선포합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삿 7:15) 


4.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 지금 300명의 용사는 어떤 용사입니까?  3만 2천명 중에서 가리고 가려서 뽑은 정예 군사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자들입니다. 그럼 그런 정예 부대를 통해서 전쟁을 한다면 전략적으로는 게릴라 전이라든가 그들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도저히 상식밖의 일을 명하십니다. 
  •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라. (16절) 
  •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1) 나팔 :

  • 이스라엘의 전쟁은 항상 나팔을 분 자들이 가장 앞에 섭니다. 나팔은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사망권세를 멸하시고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며 외치며 진격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기드온의 명령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기준과 잣대로 부정하게 적용했다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듯 이들은 기드온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그것이 곧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논쟁으로 시간 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에게 순종하며 나아갈 때 전쟁은 승리합니다. 


2) 빈항아리

  • 항아리는 담는 것입니다. 
  •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항아리는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 영혼입니다. 깨지기 쉬운 연약한 우리 마음 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빈항아리를 가져오라 명하십니다. 내 욕심, 내 판단, 내 기준 다 버리고 오직 순종하는 빈 마음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전쟁에 나와서 그 빈항아리를 깨뜨리라 하십니다. 부스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숫자를 의지하고, 약을 의지하고, 환경만을 의지하는 가득찬 항아리를 비우고 가져와서 깨뜨리라는 것입니다. 
  • "항아리가 뭘 뜻하죠?" 하고 묻는데, "넌 거기에 뭘 담고 싶니?" 라고 되물으신다. 항아리에 무엇을 마실까...의 물을 담는 게 아니라, 항아리에 무엇을 먹을까...의 양식을 담는 게 아니라, 항아리에 횃불을 담으라신다. 횃불은 성령입니다. 내 두려움과 내 욕심과 내 기준을 버리고 그 속에 성령의 기름, 성령의 충만, 활활 불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기도로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대로 너희도 그리하여....(사 7:17절) 


* 능력은 하나님을 믿는대서 나옵니다. 능력은 순종에서 나옵니다. 

그냥 믿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만이 하신 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단지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 할테니 내 부족한 것 도와주세요. 가만히 계시다가 내가 못하면 도와주세요...그런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오직 그 분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방법, 내 기준, 내 관점을 버리고 철저히 그가 하는대로 내가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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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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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1 

(사사기 6장) 


  • "또 짓는 죄" 

사사기 6장부터는 기드온이 등장합니다. 6장 1절이 어떻게 시작하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신앙생활 중에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죄. 우리의 자존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하나님 앞에서 죄의식을 갖게 만들어 관계를 깨뜨리고, 점점 마음이 완악해지게 하는 무서운 죄. 


하나님은 또 짓는 죄를 싫어하십니다.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또 다시 반복적으로 온전히 돌이키지 못하고 조금만 여유가 생기고, 살만해지고, 틈만 나면 짓게 되는 반복적인 죄. 다시 짓는 죄. 회개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했으면서 또 다시 짓는 죄는 성도들을 병들게 하고, 끊임없이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또한 고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죄를 반복적으로 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죄에서 떼어 놓으십니다. 거짓말이 습관이 될 때에, 도박이 습관이 될 때에, 인터넷이 습관이 되어 내 삶을 황폐화시킬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반복적인 죄에서 떼어 놓으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반복적으로 또 지은 죄는 무엇이었습니까? 바알과 앗세라를 섬긴 것입니다. 농사의 신, 물질의 신, 경제의 신 바알과 쾌락의 신, 탐욕의 신, 정욕의 신 아세라를 섬긴 것입니다. 우리를 반복적으로 넘어지게 하는 것, 결국은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우선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보다 쾌락과 정욕을 탐하는 것. 그것이 우리 성도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회개해도 또 넘어지게 하고, 이긴 것 같으면 또 넘어뜨리는, 우리의 죄의 근원입니다.  사사기에는 ‘또,’ ‘다시’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는지 모릅니다. 


  • 미디안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고나서 맞은 후처,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식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미디안의 제사장이었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과는 먼 친척의 관계였습니다.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갈 때에 미디안족속을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그들은 모세와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31장에 보니까 미디안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했던 영적인 원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전체 민족에 비해서 작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 보다 훨씬 강한 민족인 가나안을 정복하고도 지금 하나님 앞에 반복적으로 “또” 범죄하니까 미디안에게도 꼼짝 못하는 약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왜 미디안에게도 꼼짝 못하게 됩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더 이상 하나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소같으면 쉽게 이길 전쟁에 이스라엘이 흩너지고 자기만 살겠다고 하니까 미디안 작은 민족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곡물을 바치고 땅굴이나 파서 피하는 궁핍한 민족이 됩니다. 


  • 이기심과 분열된 이스라엘 백성 

전쟁이 나도 자기 살 궁리만 합니다. 자기에게 직접 피해만 없으면 옆에 동족이 죽는데도 무관심합니다. 미디안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민족이 행한 것은 힘을 모아 그들을 몰아낸 것이 아니라 산에 올라가 웅덩이와 굴과 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6:2절) 산에 올라가 숨어서, 자기 것이 어떻게 될까 전전 긍긍하여 몰래, 숨어서, 자기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습관적인 죄의 결과입니다. 우리를 떳떳하지 못하게 숨어살게 만들고, 숨기게 만들고, 우리 안이 평온하지 못하게 불안가운데서 외롭게, 우울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사회상- 가나안 땅을 분배받음으로 물질적 축복이 임함-> 도덕적, 신앙적 타락-> 이기심 팽배-> 그들에게 위기가 닥쳐서야 비로서 하나님을 찾음 

지금의 세대와 유사하지 않습니까? 민족적인 경제 위기, 안보위기 -  자기만 괜찮으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함. 전쟁이 나도 자기만 도망치면 된다고 생각... 그러다가 정말 민족적인 위기가 찾아오면 되돌이킬수 없는 상황...


  • 부르짖음에 또 응답하시는 하나님 

결국 미디안의 손길이 이스라엘 전 민족에게 미쳤을 때에 이스라엘 전체 민족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로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삿 6:6-7]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성경은 두 절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백성으로 말미암아 부르짖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반복해서 죄를 지어도 부르짖어 회개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또 용서하십니다. 부르짖어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영원하심으로 끝까지 용서하신다는 말입니다. 부르짖는 자를 결단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사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복에 겨운 이스라엘 백성이 점차 하나님을 떠나서 반복적인, 습관적인 죄를 짓게 됩니다. 습관적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들지요. 그러면 그들은 부르짖습니다. 부르짖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피폐된 삶에서 그들을 건져 주십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보면서 어찌 사람들이 이렇게 어리석게 또 죄 짓고, 또 죄짓고 그런가만 보지 그럴 때마다 그들이 부르짖는 것은 쉽게 넘겨 버립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 부르짖을 수 있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표시이고, 특권이고, 능력입니다. 문제는 고난이 왔는데도 부르짖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고, 고난이 왔는데도, 삶이 황폐해지고, 우울해지고, 영혼이 죽어가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사시기 시대의 사람들보다도 훨씬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꼭 경제적으로 궁핍해지고, 사업이 망하고 시험이 떨어지고 해야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 영혼에 만족이 없고, 평안이 없고, 자꾸만 어두운 생각이 들어오고,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과, 좌절감이 몰려올 적에 그러한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답게 살게 해 달라고, 사명 감당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다시 정욕과, 탐욕과, 습관적인 죄가 나를 엄습할 적에 내 영혼이 강건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 죄의 원인 - 두려움  

부르짖음의 응답이 무엇인가? 

(삿 6: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è  이름도 나와있지 않은 한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데 무어라고 말씀하냐 면은 난 너희를 구원하여 이 땅을 준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고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과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다.” (10절) 

이것이 그들의 부르짖음의 응답이다. 

è  왜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 자꾸만 세상으로, 세상적인 방법을 따르는가? 두렵기 때문이죠. (끝없이 반복되는 불순종, 불신앙)

세상 속에 살면서 그들과, 그들의 가치관, 그들의 기준, 그들과 어울리지 못할 것처럼 자꾸만 두렵기 때문에 자꾸만 이방의 신, 경제의 신, 정욕의 신, 탐욕의 신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놓치 못하고 따르는 것이지요.  자꾸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름없는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응답. 왜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세상을 두려워하는가? 내가 이미 그들을 쫓아내어서 너희에게 준 것이 아니냐? 왜 두려워하는가? 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가? 하는 한가지. 모든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그 분의 말씀을 온전히 듣지 않은 것. 그리스도 인의 모든 실패의 원인. 


  • 기드온 선택 

그 말씀을 주신 후에 기드온을 택한다. 싸움에 나서게 하기 전에 내 죄를 회개하게 하신다. 회복하기 전에 나 자신을 살펴보게 하신다. 왜? 회개하기 전에는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믿음의 반대는 무엇인가? 불안이다. 불안의 반대는 무엇인가? 바로 믿음이다. 

기드온은 어떤 자였는가?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자 (11절) . 왜? 미디안 족속이 두려워서…. 

원래 밀은 타작마당과 같은 큰 장소에서 황소를 끌고 다니며 타작해야 하는데 지금은 미디안 몰래 포도주틀과 같은 작은 기계로 조금씩만 타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 어떤 자였는가? 므낫세 중에서 가장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약한 자. (많이 본 표현 - 지난주 사울을 택했을 때에 사울이 사무엘에게 했던 말) 

믿음도 별로, 집안도 별로, 그 집안 중에서도 더욱 연약한 자. 

그를 가리켜 무엇이라 부르셨는가? 너는 큰 용사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2절) 

이제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를 통해서,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이 정말로 함께 하신다면 강한 용사로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함께 하는 것이 너의 힘이다. 


물고기 낚고 있는 베드로의 배에 올라 "내가 너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75세 된 자식 없는 노인 아브라함에게 "네가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나이 80된 목동 모세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구원하라!" 

불구자 에훗을 통해, 여선지자 드보라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어떻게 "내가 너와 함께 함으로..." 

갈렙이, 여호수아가 그렇게 외쳤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린 큰 용사다. 큰 용사는 다름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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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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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니엘 (삿 3:7-11) 


  • 옷니엘 - 갈렙의 사위, 그나스의 아들 

                 - 그나스: 에돔 족속, 출애굽할 때에 함께 나온 허다한 잡족중의 하나 

                 그런데 갈렙과 웃니엘로 말미암아 12지파의 상속지파라 할 수 있는 유다 지파 중에서도 특별한 분깃을 받은 족속. 

                  

갈렙이 헤브론 땅을 분깃으로 받아 들어가서 정복할 때에 특별히 기럇 세벨이라 불리는 드빌 주민을 칠 때에 "기럇 세벨을 쳐서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할 때에 그 땅을 정복한 자. 악사가 출가할 때에 갈렙에게 복을 청하여 윗샘과 아랫샘까지 얻어간 내용 (여호수아 15장) 

              

              그러니까 이 옷니엘 때에 이미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서서히 하나님을 잊은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삿 3: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곧 우상을 향하게 된다. 우상을 섬기면 곧 하나님을 잃어버린다. 섬기게 되어 있는 인간이다. 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같이 되리라는 것은 홀로 존재한다는 것인데 성경은 섬김 없이 홀로 서는 인간의 가능성을 무시한다. 

인간은 섬기고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가나안을 이용하여 살려 하다가 결국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기고, 결국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곧 내 뜻대로 행하고, 그러면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게 되고 그러다가 사단이 내 뜻을 조정한다. 그러면 결국 사단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분을, 그 분의 말씀을, 그분의 임재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묵상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2. 징계 

(삿 3:8)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파셨다.- 소유권을 넘겼다. 구산 리사다임의 소유가 되었다. 하나님의 보호가 끝이 났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파셨다로 표현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수 23:11)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수 23:12)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수 23:13)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하나님의 징계- 그 분의 보호하심이 떠나는 것, 그러나 잠시동안. 왜? 

(히 12:10)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그 유익은 무엇인가? 

죄를 미워하는 것 - 

가나안인을 내쫓지 않은 이유- 불신앙, 불순종... 그들과 함께 하다가 결국 그들의 지배를 받음. 

[히 12:4-5]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연단- 반드시 유익이 있다.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3. 옷니엘을 통한 구원 

(삿 3:9)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삿 3:10)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 웃니엘 : 하나님은 힘이시다. 


그들이 힘들 때에 누구에게 먼저 달려갔을까? 그들이 섬기는 신, 우상에게...그러나 풍요로울 때엔 우상이 그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고통의 순간에 우상은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깨닫는다. 


잊어버린 하나님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부르짖는다. 회개한다. 


그럼 하나님은 길을 주신다. 한 구원자를 세우신다. 

잃어버린 소유권을 찾아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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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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