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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마가복음 강해 '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14.01.24 2. 세례요한
  2. 2014.01.24 서론

마가복음 강해 2. 세례요한 (막 1:1-8) 

 

 

 

가장 먼저된 복음서 

초기 교회의 갈등이 최고조에 다달았을 때에. 

로마에 의한 극심한 핍박. 유대인들이 성전을 지키기 위해 로마와 대적하는 일에 참여하라는 이중 압박. 


예수 사후 30년 후에 로마 제국은 기독교 교회를 극심하게 핍박한다. 


당시 무역과 교육의 통로였던 로마와 헬라 제국의 통로를 따라 복음이 이방에 까지 퍼지자 원래 유대교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긴장이 생기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중심의 기독교 공동체의 리더 - 베드로와 야고보 (순교) 

이방땅의 바울과 디모데 - 순교 

-> 순교가 곧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다. 

* 순교자가 많았다는 사실은 또 반대로 변절자들이 많았다는 것도 증명한다. 

수많은 배교자들 중에는 때로는 박해의 때를 지나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오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친일파를 대하는 것과 같이 공식적인 회개한 배교자들을 어떻게 치리하는가가 교회의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세례시 행한 맹세,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배반한 자들을 수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순교를 당하며 신앙을 지킨 초대교회 공동체 구성원들과 똑같이 이유막론하고 받아들일것인가? 어떤 절차에 의해 받아들여야 하는가? 

베드로 -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 왜? 예수를 배반했던 자가 어찌 예수와 같은 방법으로 십자가에 달릴 수 있는가? 하며 자원해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 

예수를 배반했던 바로 그 베드로가 초대 교회 리더가 되고 순교자가 됨.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마가 - 베드로의 아들처럼 여기던 수제자. 베드로와 바울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한 자. 

           베드로 - 예수의 수제자였지만 세번이나 배만하고 모욕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자 

           바울 - 예수 믿는 무리들을 핍박하던 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들이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초대교회의 유대인들의, 이방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무엇으로 인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의 가르침: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라. 

  초대교회: 누구는 순교하며 목숨을 바치며 신앙을 지키는데 누구는 배교하고 피하다가 세상 좋아지니까 다시 돌아오고...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갈등의 고조- 

  베드로도, 바울도, 우리가 모델로 삼는 신앙의 선배들도 다 배교했던, 핍박했던 자들이다. ...

  감정의 한계를 넘어선 용서- 무엇을 의지해서? 성령 안에서의 회개. 그것이 바로 회개의 세례이다. 

  

  왜 예비하는 자, 세례 요한이 필요한가? 

  

  (출 23:20-21)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사 40:3)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말 3: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사자: Messenger- prepare the way for us. 

  예수를 만나기 전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을 씻겨져야 하고 공식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얻게 된다. 

  

  예수 믿음을 통해서 그냥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보기위해서, 믿기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 먼저 회개해야 한다. 

  복음은 개인에게, 공동체에게, 전 민족과 나라에게 "이제 예수가 올 것이니 회개하자. 천국,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가까이 왔다"하는 것이다. 

  

  요단강에서의 세례 - 유다 지역 

  신앙과 예배의 중심지- 예루살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배하기 위해 이스라엘 온 민족이 모이는 곳. 

  그런데 회개의 시작은 요단강에서의 세례. 이스라엘의 가장 남쪽 사이드. 가장 작은 곳, 먼 곳에서부터 은혜의 시작이 온다. 

  

  (말 2:10)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누가 회개해야 하는가? 

  배교자만 하는가? 

  신앙을 지키며 순교를 각오한 사람들은 배교자를 용서하는 사람들인가? 

  NO, 우리는 다같이 회개해햐 할 사람들이다. 

  

  슬픈 광경(1:1-8)


  세상에는 슬프지만 아름답고 아름답지만 슬픈 광경이 너무 많다.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회개하고 세례받는 광경은 매우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한 광경이다. 그것은 죄와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인간 세계의 한 단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1. 광야의 요한

  본문은 세례 요한의 활동 무대가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였다고 소개한다. 누가는 아예 요한이 어려서부터 빈 들(눅1:80)에서 자랐다고 한다. 이것은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타락하고 오염된 세상 문화에 대한 거부이지만, 세상의 입장에서는 거룩한 선지자에 대한 용납 거부라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영접받지 못하셨다고 했다(요1:11). 고향에서 조차 배척받으셨다(막6:3). 사단은 항상 거룩한 자, 하나님의 종을 배척하도록 이 세대에 요구한다.


2. 광야의 사람들

  세례 요한이 출현하자 사람들은 광야로 나온다. 예루살렘에서도 나오고 유대 지역에서도 나온다. 왜 나오는가? 현종교(유대교)에 식상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 지도자에게 염증이 나서 나오는 것이다. 사단이 지배하는 문화, 악령이 들끊는 종교, 거기엔 생명이 없다. 사람을 식상하게 할 뿐이다.

  예수께서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마11:7-9)고 하셨다.


  • 초라한 시작: 

우리가 주목할 만한 가치 있는 시작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시작이요, 인류에게 생명을 주고 구원을 주는 복음의 시작이다. 그 초라하기조차 한 시작은 어떠했는가?


1. 광야에서

  복음, 더 정확히 말해 오늘날 온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기독교와 교회의 시작이 거칠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광야하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이 광야에서 온전한 한 백성으로 자리잡았음을 고백하며 광야를 즐겨 회상한다(느9:19;시78:19). 그렇다. 광야는 거룩한 백성에게 위대한 시작의 장소요, 체험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비로소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만나시고(왕상19:4) 호소를 들으시며 당신의 뜻을 계시하신다.


2. 회개로

  광야의 요한은 거침없이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 한다. 군국주의 국가 군인들에게 강포하지 말라 한다. 조세의 칼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세리에게 정한 세 외에 더 걷지 말라 한다. 왜인가? 남 비방하기를 좋아해서인가? 아니다. 회개야말로 참 생명의 시작이요 새 세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3. 거지의 모습으로

  마지막으로 그의 모습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한다. 영락없는 거지의 모습이다. 거기에는 오염되고 타락한 인간 문화를 온 몸으로 배격하는 강한 거부감이 있다.


우리가 주목할 만한 가치 있는 시작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시작이요, 인류에게 생명을 주고 구원을 주는 복음의 시작이다. 그 초라하기조차 한 시작은 어떠했는가?


1. 광야에서

  복음, 더 정확히 말해 오늘날 온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기독교와 교회의 시작이 거칠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광야하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이 광야에서 온전한 한 백성으로 자리잡았음을 고백하며 광야를 즐겨 회상한다(느9:19;시78:19). 그렇다. 광야는 거룩한 백성에게 위대한 시작의 장소요, 체험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비로소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만나시고(왕상19:4) 호소를 들으시며 당신의 뜻을 계시하신다.


2. 회개로

  광야의 요한은 거침없이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이라 한다. 군국주의 국가 군인들에게 강포하지 말라 한다. 조세의 칼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세리에게 정한 세 외에 더 걷지 말라 한다. 왜인가? 남 비방하기를 좋아해서인가? 아니다. 회개야말로 참 생명의 시작이요 새 세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3. 거지의 모습으로

  마지막으로 그의 모습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한다. 영락없는 거지의 모습이다. 거기에는 오염되고 타락한 인간 문화를 온 몸으로 배격하는 강한 거부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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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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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8


 

마가복음
 -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덜 중요시되었던 말씀. 가장 짧은 본문. 16장 

 

고대로부터 주석이 가장 없는 복음서- 마태복음의 요약본이다. 


현대비평시대가 열리면서 마가복음을 복음서를 이해하는 키로서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함.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로서 마가복음 이전에는 예수의 생애와 복음을 전체적으로 기록한 양식이 없었다고 본다.


마가- 베드로의 제자, 통역. 요한 마가라고도 함. (사도행전 12:12절)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 ,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힘. 천사가 베드로를 일깨워서 마가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인도. 

골 4:10절에 보면 - 바나바의 사촌.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게 된 사건. - 바로 마가로 인해서... 

나중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려오라 하면서 "그가 내게 유익하다"(딤후 4:11)고 하였다. 

베드로전서를 기록하면서 베드로는 마가를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까지 하였다. 


초대교회-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에게서부터 바울에게로 넘겨져가는 상황. 유대인에게서부터 이방인에게로. 

그 가운데서 연결고리가 되는 인물이 바나바. - 바나바의 생질로서 마가는 베드로에게는 아들로까지 여겨지며 (마치 바울에게 디모데가 있었던 것처럼) 처음에는 바울에게서 미움도 받았지만 결국 바울에게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서의 저자가 될 정도로 초대교회에서 그 정통성과 신앙을 인정받은 자. 


저작 목적-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 예루살렘 박해의 시작.. 순교가 리얼리티인 소위 불확실성의 기상속에 살고 있는 자에게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 함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마가는 위기라는 맥락 속에서 계속 의미있게 말씀하시며 행동하시는 그리스도를 제시해 주는 그러한 전승만을 선정하였으며 엮어 놓았다. 그 상황의 요구는 과거의 말씀이 아니었다. 과거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일이 아니었다. 현재에 살아계신 주를 듣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말씀이었다. 마가의 글 솜씨는 단순과 직설이 특징이다. 그의 언어는 마태나 누가보다 스타일에 있어서 덜 복잡하며 서민적이다.


*마가가 경험한 복음, 예수그리스도. 

마가의 기록 목적을 담은 핵심 구절은 10:45이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가 거룩한 신성으로 인해 존귀히 대접받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 거룩한 신성과 권능으로 인해 밤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1:32-34). 이것은 낮에 밭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도 집에 돌아와 쉬기는커녕 주인의 상을 차려 주는 등 가사까지 해야했던 유대 당시의 종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바없다. 그의 신성이 드러난 것은 철저히 일함으로써 이다. 병든 자를 고쳐 주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그의 신적인 권세와 능력은 유감없이 드러나며 하나님의 아들됨이 입증된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생애를 단계별로 분류하여 일하시는 종, 고난받는 종, 승리의 종으로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마가복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하면서 그분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마가복음은 그 기술에서 그리스도의 출생 근원이나 이런 성장 시절의 언급없이 바로 성년 시절의 세례와 사역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그분의 사역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것은 마가복음 전체 분량의 40%가 시간적으로는 3년의 지상 생애중 단 1주일밖에안 되는 예수의 수난 주간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내 시각, 관점에 경험되는 복음 

마태 (새리) - 계산적, 논리적, 유대인으로서 새리- 차별받고 외면되어진 자. - 소망하는 것 - 오직 하나님 나라. 

예수의 족보- 소외된 자, 외면받던 자. 억눌린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족보. 


누가 (의사) - 의사 입장에서 바라본 복음 - 

(눅 1:1-2)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절)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가장 첫 두 가지 사건 - 사가랴의 사건과 마리아의 사건. 가장 비과학적인 일들이 복음에 의해서 일어나는 사건. 


요한) 영적인 체험, 가장 영성적인 글들...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은 자 - 태초에....


마가) 복음의 현장에 있었지만 항상 뒤에서 수종들던 자. 자신이 따르고 의지하던 자들이 하나 둘 순교해가면서도 여전히 더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 


첫 시작 - 자신의 정체성을 담고 상황을 담는 글. 

예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에 대신 복음을 전하는 자. 그를 위해 핍박받던 자.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아는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다) 세례 요한의 설명에서부터 복음을 시작. 


그에게 있어서 복음의 현장을 광야이다. 광야가 곧 교회이고 복음의 터전이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던 광장이다. 마가복음의 3분의 1일이 고난에 대한 기사. (예수님의 수난에 초점) 

그래서 사복음서에서 십자가와 고난이 가장 간략하지만 강렬하게 표현된 복음서가 마가복음이다. 


나에게 복음은 무엇인가? 내가 성경을 기록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중요하게 기록할 것인가? 

내 삶을 통해 보여주신 복음의 측면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측면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경험한 하나님만을 기준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닫혀 있지는 않은가? 왜 신약성경은 같은 복음의 내용을 네 권이나 걸쳐서 반복되고, 때로는 이것 때문에 오류 논쟁도 일으키고,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를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통합하지 않고 네 권을 제시했는가? 

예수님의 삶은 네권, 동서남북, 봄, 여름, 가을, 겨울, 다각도로 살펴서 모자람이 없도록, 치우침이 없도록, 두루 살펴보아 내가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내가 버려야 할 것들.... 

을 보라는 것이다. 

이 세 권을 하필이면 공관복음이라고 부른다.

관점이 같다는 의미이다. 

아니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같은 예수의 삶이 다르게 표현되어 네 권이 필요하다고, 즉 관점이 다른 네 개가 모여 한분의 삶, 복음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공관복음이 아니라 이관복음(관점이 다르다)라고 해야 하는데 이관복음이 아닌 공관복음이라고 한다. 왜? 경험하는 사람은 각각이고, 그들이 경험한 복음, 그들이 경험한 예수가 각각 다른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어도, 우리 입장에서 보면 각각 관점이라고 해도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오직 한 분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복음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입술을 통통해서 전해지지만 결국 한 분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시각에서 하나의 관점. 공관이라는 것이다. 다른 눈으로 보아도 보여지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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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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