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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교회 /마가복음 강해 '에 해당되는 글 34건

  1. 2016.01.09 제자의 길 (마가복음 6:7-13)
  2. 2015.02.27 마가복음 6장 1-6절 (알기에 잃어버린 믿음) (1)
  3. 2015.01.23 마가복음 5:21-43절 달리다굼
  4. 2015.01.23 마가복음 5장 1-20절

 

제자의 길 (마가복음 6:7-13)


사람들을 모아 씨 뿌림의 비밀, 천국의 비밀들을 말씀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이 여기 저기 뿌려지지만 열매 맺는 땅은 극히 적다. 그러나 그 열매 맺는 땅의 열매는 나머지 땅의 기근을 다 충당하고도 남는 풍성한 은혜다. 충만한 은혜이다. 


그것을 말씀으로 뿐만 아니라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폭풍을 잠잠케 하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메시야의 사명을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고향에서는 오히려 예수를 반기지 않는다. 똑같은 말씀, 똑같은 이적을 베푸시는데도 그들은 판단하고 정죄하고, 애써 폄하한다. 

고향땅의 자기 친지들과 이웃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셨다." 


믿지 못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셨다가 아니라 믿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셨다. 

3절의 배척한지라- 그를 반대하기로 택하다. 


사람들은 믿어져야 믿지 어떻게 억지로 믿냐?하고 질문한다.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느다고도 한다.  

모세 때 처럼 눈 앞에서 직접 보여주면 믿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매일같이 보아도 믿지 못하는 것이 인간. 

모세가 시내산에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에 사람들이 한 일.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예배. 

그 때에는 구름 기둥 불기둥이 없었나? 40일동안 만나가 내리지 않았나? 아니다. 그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되었지만 그들은 우상을 만들고 섬겼다. 


결국 믿음은 선택이다. 내가 믿는 것을 선택하느냐, 믿지 않는 길로 선택하느냐?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전에 과외를 가르치다 보면 부모들이 항상 하는 소리 

"얘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성적이 나빠요..." 

그런데 과외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어지간히 나쁜 머리 아니면 공부 안해서 성적 나쁜 아이 가르치는 것이 훨씬 힘들다. 

머리 나쁜 아이는 열심히 할려고라도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성적이라는 것이 천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지능의 학생이 조금만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교과서라든가 시험이 만들어진다. 


정말 머리가 나빠서 해도 안되는 아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머리 좋은데 공부 안해서 못한다는 것은 변명이 아니다. 정말 많이 혼나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말 말씀을 읽을 기회도, 교회를 다닐 기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도 어떤 영문인지 예수 앞에 나오는 자들이 있다.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도 없이, 교회도 없이, 예수 믿는 것이 발각나면 죽는데도 그래도 예수 믿는다고 굴을 파고, 아궁이라도 들어가서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성경책을 사주고, 예배 나오라고 전화하고, 죽어라 중보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쳐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 고향에 가서 느낀 것이 바로 그런 이상한 마음이다.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은 사람들 앞에 나오면 위험한데도 예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나온다. 

회당장은 자기의 체면도 권위도 다 내려놓고 예수앞에 나온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배척한다. 안믿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초창기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예수를 몰래 믿는 자들이 많았다. 

가족 전도는 기도는 할 지언정 입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때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집에서 전도하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는데 무슨 그리스도인이고 전도를 하냐고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가정이 교회의 출발점이 되었고, 가정이 신앙생활의 바탕이 되었다. 

맞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바르게 살면 집안에서부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내 옆의 가족부터 전도는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해도 해도 안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하고 진실하게 대하려고 하고, 진리의 말씀을 전하려고 해도 이미 굳어진 관계로부터 나온 마음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가족들도 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하고 나서 믿지 않자 곧 열방을 향해 눈을 돌린다. 

가족을 처음 부터 포기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자 연연하지 않고 그러고나서 모든 촌으로 눈과 발을 돌린 것이다.


그럼 가족들은 영원히 포기되었는가? 

아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인정하고 언제인지 모르게 형제들도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갈리리의 여인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나사렛이란 동네 자체가 존귀하게 되었다. 

때로 한가지 일이 안 되었을 때에 과감히 또 다른 일에 집중하다 보면 처음 일도 잘 해결될 떄가 있다.

주님은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그의 사명에 전념하신다.

 

 

7-a)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제자는 백성과 다르다. 무리와 다르다. 주님과 동행 할 뿐 아니라 사역을 나누는 것이다. 

복음전파의 사역, 귀신을 쫓는 사역,. 회개를 선포하는 사역.... 


제자를 삼으실 때는 한 사람씩 부르셨는데 동역자로 파송할 때에는 둘씩 둘씩 짝지어 보낸다. 

1. 동역하게 하신다. : 하나였던 자들이 둘이 되게 하신다. 영적인 일을 감당해야 하므로 이 둘은 믿음 안에서 또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마음이 꼭 맞는 자들이 짝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마태와 시몬처럼 극과 극인 사람도 짝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둘이기 때문에 이들은 의지할 수 있었고, 예수가 옆에 없어도 서로 격려할 수 있었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 자체가 동역하기 위해서이고, 온전함의 열매 역시 동역이다. 


2. 증인되게 하신다. 

복음 전도자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받아들이는 자, 혹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


7-b)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은사는 봉사를 위해 주신다. 예수가 자신을 위해서 하나도 이적을 베푸시지 않고 인간을 위하여 남을 위해서만 이적을 베푸셨듯이 권능은 언제 나타나느냐? 복음 증거하고 남을 위해 사용될 적에 나타나는 것이다. 


8-10) 

왜 그러셨을까? 

1. 주님께 맡겨라. 

너 자신을 믿지 말고 보내신 자를 믿어라.

어떤 사람들은 전도하거나 누구를 가르치라 하면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준비되면 나중에 한다고 한다. 

제자들의 상태는 어떠했을까? 

엉성하였다. 

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 들은 바가 있었다. 

믿음이 있으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내가 준비 되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연약하지만 보내신 자를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일하는 것이다. 


2. 타인에 전념하라. 그에게 집중하고, 생명을 다해라. 

하나님께만 의지해라와 동시에 내가 전하는 자에게 올인하라. 

분산되지 말아라. "그곳을 떠나기까지 그곳에 머물라." 

내가 일을 완수할때까지, 다른 것에, 다른 곳에 신경쓰지 말고 그곳에 푹 잠겨 있으라. 


3. 내가 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값진 것인지를 알고 당당해라. 

아무리 내가 귀한 사람이라도 한 곳에 오래 유숙하면서 신세를 지면 죄송하다. 비굴해진다. 

그때 내가 가진 것이 있으면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서 돈을 주거나 귀한 선물을 준다. 

그런데 주님은 사전에 그런 감정의 비굴함으로부터 제자들을 경계하셨다. 

그들이 전하는 내용의 값짐, 귀함을 잊지 않도록 하셨다. 


11절) 어느 곳에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매정하게 끊어 버리라? 

주님은 전하다가 안들으면 소금 뿌리듯 그들과 관계를 끊으라고 하시는 것일까? 


1. 구원을 거부하는 죄인들과의 고통스러운 이별 

(눅 13:3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아픈 마음에 대한 표현 

가룟유다에 대해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시지만 죽음의 길로 내닫는 제자. 


2. 먼지를 더 이상 마음 속에 품지 말라. 

마지막 만찬 때 그들의 발을 씻기시며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구원받은 자가 해야 할 회개 

날마다 살아가면서 지어왔던 먼지같은 죄


내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파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에 들게 되는 생각. 저주와 분노 


그곳을 떠나면서 자기들을 증오하고 조롱하며 모욕하며 핍박하여 왔던 악인들로 인하여 그들을 향하여 혹시 가질 수 있었던 사단이 준 미운 마음, 분노, 좌절감, 절망감, 무기력


너희들의 먼지를 털어버리라.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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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기에 잃어버린 믿음 (마가복음 6:1-6 )


예수가 말씀을 전할 때- 듣고 놀라 가로되... (첫번째 반응) 

두 번째 - 판단: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그들의 형제가 아니냐...우리와 동급이 아니냐? -> 배척한지라... 

  • 마리아의 아들... 왜 요셉의 아들이 아니로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요셉이 죽었기 때문에? 

    No, 유대인의 법은 죽었어도 아버지의 아들로서 부른다. 오히려 비아냥 거리고 조롱하기 위한 표현이다. 

     

사 53:2-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마른 땅이 어디이냐? 곧 세상이요, 좁게 말하면 갈릴리 나사렛이다. 

그러나 그는 생명으로 나왔다. 뿌리다. 겉으로는 나사렛이지만 속은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두 번째 판단으로 인해 놓쳐 버리는 은혜. 

결국 본질이 아닌 외형의 문제... 외모의 문제, 권위의 문제, 

외적인 조건을 바라보는 세상...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

5장의 혈루증 앓는 여인, 회당장 야이로- 

혈루증 앓던 여인은 예수께 가까이 가면 고침을 받는다는 믿음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대중들을 뚫고 예수께 나아오도록 인도

"딸아 네 믿음이 널 구원하였다." 

회당장 야이로는 사람들의 이목이나 자신의 체면을 상관치 않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 앞에 꿇어 엎드리고 나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해라!"

그런데 고향 사람들- 예수의 말씀과 이적을 보면서도 그럴리가 없다 하면서 예수를 배척. 

그들에게 예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1. 예수은 "예수에 관하여"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예수는 알지 못했다. 

예수의 부모가 누군지, 그의 형제가 무엇인지, 그의 자라온 환경은 무엇인지 알았지만 정작 예수 자체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2절) ->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냐? 그것의 Source가 무엇이냐? 

자꾸 외적인 것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 


2. 선입견이 그들의 눈과 귀를 닫게 했다. 

그 사람의 배경에 관한 선입견

은사하면 귀를 닫는 선입견

헌금 얘기하면 눈을 감아버리는 선입견

'주여 삼창하며 기도하면' 마음을 닫아 버리는 선입견... 

반대로 침묵기도하면 마음 속에 분란이 일어나는 선입견... 


신앙생활 하면서 나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 선입견이다. 그것이 정작 예수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신앙 생활은 내 취향에 맞추어 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말씀에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비우고 내 취향을 거부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나를 바꾸는 것이다. 


편견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잘 알아서도 일어난다. 
나사렛 사람들은 서로 혈연으로 얽혀있는 작은 마을- 그들이 아는 예수, 경험한 예수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예수는 너무도 달랐다. 이것을 그들은 극복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예수 때문에 더 넓고 크신 그 분을 경험하지 못한다. 

체험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새 말씀, 새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 내가 유학와서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것: 교회 역사와 교회 전통과 신앙의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된 것. 

       내가 가진 신앙의 그릇이 얼마나 편협하고 좁았는가? 얼마나 다양하게 그러면서도 분명한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신앙의 운동이나 모습들이 있었는가? 

       다르면 부정하고 부인하는 기독인들의 모습... 

       넓어지는 것 만큼 더 경험되어질 수 있고, 품는 것 만큼 더 깊어 질 수 있는 것이 신앙이다. 

       근본주의가 왜 나쁘냐? 

       자기가 경험 한 것 이외에는 다 부정하고, 상대만 안 하면 되는데, 다르다는 이유로 죽이고, 부수고... 오히려 복음에 방해되게끔... 

       

       3. 자기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닥쳤을 때에 일어나는 반응- 그 앞에 엎드리거나 배척 


(막 3:31-32)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 가까운 것 같으나 먼 사람들, 가까운 관계 같으나 항상 밖에 거하는 사람들... 


열명의 정탐꾼- 그 땅은 좋은 땅이지만 우리는 메뚜기라 . 우리는 그 땅을 감당할 수 없다. 

                       자기의 한계 안에서만 생각. 

                       

신앙은 내 한계를 무너뜨리고 주님의 무한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의 무한 앞에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했다. 

야이로는 예수이 무한앞에 자신이 직분과 체면과 시선을 넘어섰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무한 앞에 군대 장관이라는 자신의 타이틀을 내려 놓고 엘리사 앞에 무릎꿇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다섯번의 물음표 

  • 그들이 예수님의 메시아적인 지혜와 표적을 보고 놀라 고민하다 내린 결론
  • 똑같은 말씀과 이적을 보면서도 거듭되는 물음표 안에서 잃어버리는 것. 첫 경험의 확실함을 잃어버리고 결국 믿음을 잃어버리고 그 결과 예수를 앞에 두고서도 배척해 버린다. 
  • 배척하다 (took offene at him)- 결국 거절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대신 공격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고전 3:18-20)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 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4.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쳤다. 

소수의 병자는 누구인가? 자기 편견과 자기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의 병으로 인해 주님을 바라는 자. 

자기의 병을 인정하고 예수의 능력을 바라는 자 

적지만 그렇지만 그 마을에도 예수를 영접하는 자가 있었다. 믿는 자가 있었다. 

자기들과 같이 커 왔고, 같이 자랐지만 이제 새롭게 나타난 예수에게 전혀 다른 기대와 새 희망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기도를 받았다. 그들의 머리를 예수의 손 아래에 두고 겸손히 예수님의 기도를 받았다. 그리고 치유받았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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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12.30 18:30

    말씀풀이 잘 보았습니다!
    궁금한 부분이였는데....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나에게는 예수님이 바라보기만해도 크시고 위엄하시며 사랑이신 분이시라 그호칭을 부르는것 만해도 몸둘바를 모르겠는데 이글을 작성하신분은 어쩌면 예수님과 동일한 친구이신가봅니다
    그저 예수 예수라고 하시니 읽는 나로서는 예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마가복음 5:21-43절 달리다굼 (연약한 자여 일어나라!!)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21절) 이방인의 땅에서 다시 유대인의 땅으로, 갈릴리 가버나움의 땅으로..

야이로의 사건과 12년동안 혈두증 앓던 여인 

  • 두 개의 사건이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 
  • 혈루증 앓는 여인의 사건은 야이로와 제자들, 그리고 무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 이미 예수님은 이전의 사건들을 통해 사탄의 어떤 세력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어떤 병든 자와 심지어 죽은 자까지도 힘을 잃는 것을 보여 주신다. 
  • 부정한 것과 정한 것, 고위층과 하층민의 경계를 무너뜨리신다. 
  • 야이로라는 뜻: 깨인자, 각성된 자, 깨우친 자, 통달한 자 
  • 회당장이라는 것은 학교로 말하면 교장 선생님이고 교회로 말하면 수석 장로 되는 분이다. 시로 말하면 시장이다. 
    예수님 당시의 회당은 교육과 종교, 그리고 정치까지도 관할하는 종합기구였다. 거기의 수장이니까 지역에서는 이름꾀나 떨치던 유지였다. 그 동네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 사람을 깔보지 못했을 것이다.

     지식적으로나 물질적, 사회적, 명예 모든 면에서 그는 부족함이 없는, 아쉬울 것이 없는 자- 그런데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 그가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린다.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와서 그 위에 손을 얹으시옵소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옵소서" -> 그 딸이 잘 살 수 있도록... 

  • 유대인은 결코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지 않는다. 이건 전적인 예수께서 하신 방법이다. 
  • 24절: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사며 에워싸 밀어다. 

             The two went together and a large crowed followed, pushing against Jesus.

             마을에서 가장 권위있던 그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간청하며 겸손히 나아가자 예수와 함께 거닐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둘러쌓이자 예수와 그가 멀어지도록 밀게 된다. 

             사람들의 이목- 때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체면, 권위의식이 예수와 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 회당장과 예수님 사이를 이렇게 큰 무리들이 밀면서 떨어뜨리려 할 때 일어난 사건이 혈루증 앓는 여인의 사건이다. 
  • 지금 딸은 죽고 있어서 예수님과 함께 딸이 있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무리들이 막고 있다. 사회적인 통념이, 고정관념이, 편견이, 체면이, 자신의 권위가 예수님과 나를 막고 있다.

그 찰나 일어난 사건이 혈루증 앓는 여인의 사건. 

  • 야이로와 혈루증 앓는 여인: 남자와 여자, 회당장과 부정한 여인, 유명인과 무명인. 
  • 혈루증 앓던 여인과 야이로의 딸: 고질병에 걸린 자와 지금 급히 병에 걸려 죽게 된 자. 어린 소녀와 나이든 여인, 딸은 곧 야이로의 이름으로 불림, 여인의 이름은 곧 병의 이름. 가난한 자와 부한자, 
  • 예수 앞에서는 야이로나 야이로의 딸이나 혈루증 앓던 여인이나 모두 똑같은 죄인이요, 도움이 필요한 자요, 구원이 필요한 자....그리고 믿음이 요구되는 자들... 
  • 혈루증이라는 것 자체가 부정한 병, "많은 의사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 온 몸과 옷이 의사의 손에 치유되지 못하고 몸도 모든 물질과 함께 더 더렵혀지고 악화되었다. 그녀의 몸에 손을 대는 모든 자들도 똑같이 부정해졌다. 
  • 그녀는 문등병처럼 격리시켜야 할 환자였다. 12년간 혈루증을 앓아 오면서 그녀는 건강도, 돈도, 사회에서의 지위도, 친구도, 여성으로서의 고귀함도, 안식도 모두 다 잃어버린 여인이었다. 
  • 그런데 그런 그녀가 예수님 곁에만 있어도, 심지어 그 분의 옷만 만져도 그녀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용감하게 무리들 틈에 섞여서 예수님을 만진다. 
  • 그녀가 무리 틈에 끼인 다는 것, 그녀의 몸에 닿는 것마다 부정해지는 것-> 발각되면 죽는다. 그런데 그 위험을 무릎쓰고 그녀가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 
  • 이것은 그녀 자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예수님을 만졌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발각되는 즉시 예수님 자신도 부정한 자가 되어 버린다. 자신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 
  • 옷: 능력, 세례... 5:15 귀신들린자가 고침 받고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진 것을 보고..." (엘리야와 엘리사)  
  • 예수님과 여인이 동시에 능력이 흘러 간 것을 깨닫게 됨. 아가서의 입맞춤. 하나님이 나를 만지듯 내가 주님을 만지듯- 만질 때에 일어나는 것- 하나님의 역사, 임재, 
  • 만짐 (Touching) - 마가복음의 중요한 이미지, 그 분이 죄인을 만짐으로 우리의 죄가 그 분께 전가되고 우리가 그 분을 만짐으로 그 분의 거룩하심이 우리에게 임했다!!! 
  • 그의 병의 근원이 말랐다. 소금으로 물 근원을 치유한 것처럼 모든 부정한 것이 깨끗함을 입었다. 언제? 그녀가 예수님을 만졌을 때...
  • 예수는 단지 그녀를 보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무리와 제자들, 특별히 야이로가 그녀의 믿음을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 "누가 나를 만졌느냐?" "제자들...: 수많은 사람들이 만졌을 겁니다..." "아니 믿음을 가지고 나를 만져서 믿음대로 열매를 거둔 자가 누군가?" 
  • 여인: 두려워서 떨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자들이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반응. 
  • 딸아! "누구의 딸인가?" 예수의 딸, 하나님의 딸....나를 믿는 자가 곧 내 형제요 내 가족이니라...
  •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때 아직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실 때에...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전한다. (35절)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5절) 


애이로에게 있어서 본격적인 신앙의 사건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이제까지는 야이로가 다급해서 예수님께 나왔다. 야이로가 한 것은 예수 앞에 엎드려 매달리고 간구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절망의 소식이 들려온다. 

예수가 미쳐 손을 쓰기도 전에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이젠 어떤 일도 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한다.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아는가? 지금까지는 야이로가 예수님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애썼지만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으신다. 

당황스러움과 절망에 빠진 야이로를 그가 붙잡으신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제 혈루증 앓던 여인이 한데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믿기만 하라! 그 예를, 믿음의 모델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가장 먼저 하신 것은 자신의 가장 아끼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가신다. 나머지 제자들과 무리들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신다. 

아마도 좀 전에 혈루증 앓는 여인에게서 멈추어 섰던 것을 탓했던 제자들을 떼어놓으셨을 것이다. 

집에 갔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어떤 사람들은 아이의 죽음을 통곡하며 운다. 

그리고 우는 사람들 곁에 있는 자들이 있다. 떠드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했는지 아는가? 

그들이 비웃더라! 

아주 짧은 한 문장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을 비웃는 자들은 도대체 왜 어떤 자들일까? 


주님이 오셨는데 그 와중에서 우는 사람들 곁에서 떠드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아마도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에 대해서 수근수근했을 수도 있다. 다 늦은 후에 도착해서 이제 당신도 별수 없다하면서 비웃은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어 보내셨다. 그들에게 거기 똑바로 서서 내가 하는 것을 잘보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같은면 자신을 비웃는 자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을 텐데 예수님은 그저 그들을 내어 보내셨다. 

사방에서 야유가 날아오지만 신경도 안쓰신다. 사람들의 수근거리는 소리에 귀를 닫는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아얘 자리를 뜨는 것이다. 

잠시만 나가 달라 정중히 부탁하는 것도 아니다. 마구 등을 떠밀어 내보내신다. 원문을 보면 내보내시다의 동사는 성전에서 잡상인들을 내어 쫓으셨던 바로 그 동사이다. 

그리고 야이로와 자기와 함께 온 자들,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신다. 

무엇인가?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자, 기적을 믿는 자,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간절히 바라는 자와 함께 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에 방해가 되는 자들, 소음을 내는 자들은 과감히 내어 쫓으신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에게 구태여 믿음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짖건 말건, 비웃건 말건, 그들의 소리에 열받거나 논박하지 않고 그저 믿는 자에게, 오직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능력을 보이시는 것이다. 


이제 야이로의 집은 기도하는 자, 믿는 자들만이 거하는 교회가 된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제자들에게 말씀 하신 것이다. 

어느 순간인가? 이제 상식적으로 늦었다고 하는 순간,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하며 떠들고 있는 그  순간, 오직 소수의 제자들과 기적이 간절히 필요한 야이로와 처만을 데리고 그들의 말에 신경쓰지 말고 믿으라고 하는 것이다. 

믿기만 하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들리는 것에 휘둘리지 말고 세상의 논리에 좌지우지 되지 말고, 전지전능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딸에게 가서 달리가굼!하고 외치신다. 

달리다굼’이란 말은 원문이 Ταλιθα κουμ(탈리다 쿰)인데, 이 말은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틴에서 통용되던 아람어 ‘탈리다 쿰’에서 유래한 말이다. 

‘탈리다’는 ‘연약한 것, 불쌍한 것, 미천한 것’을 뜻하는 단어로서 여기에서는 ‘소녀'를 뜻한다. ‘쿰’은 ‘일어나라’는 말인데 이 말의 합성어가 ‘달리다굼’인 것이다. 

이 ‘달리다굼’은 당시의 가정에서 일상화 된 용어였다. 곧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아이들을 깨울 때 사용한 단어로서 "자녀들에게 아들 일어나!"하며 깨우던 일상용어이다.


성경에서는 이 "일어나라"는 용어가 중요한 순간마다 반복적으로 쓰인다. 

(수 7: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아이성에서 패한 뒤에)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눅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관에 실려서 나갈 때에) 

(행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감옥에 갇힌 베드로에게) 

(엡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야이로의 딸 - 열두살 (42) 

야이로의 딸로 부유하게 살다가 이젠 위기를 맞은... 

혈두증 앓던 여인 - 이름없는 여인이었지만 이젠 하나님의 딸이 된

-12- 이스라엘 12지파- 하나님의 백성

이제 구약의 시대가 가고 그리스도의 시대가 왔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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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장 1-20절 


5-7장의 이야기는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장소는 강의 맞은 편 이방인 지역. (4:36절: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 

-> 5장 1 절 :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회당과 집에서 행하던 일들-> 바닷가, 이젠 국경을 넘어 이방 땅에까지... 

->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

하나님의 나라- 계속적으로 커지는 것, 퍼져 나가는 것. 

사탄의 계략- 머무르게 하는 것, 자신의 성을 짓도록 하는 것. 자기 것에 만족해서 남을 향하지 못하게 하는 것.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2절) 

그가 거하는 곳- 무덤 사이


지금도 이집트에 있는 무덤에서 사는 사람들. 

당시의 무덤 - 사후세계를 인정했기에 지붕만 없이 거의 평상시의 집 모양으로 무덤을 만들고 그 사이에 평상시와 같은 생활용품 및 부리던 종들이나 가족까지 생매장. 

그런데 시간이 지나 가난한 사람들이 이 곳 무덤에 모여 살기 시작- 죽은 자들이 남기고 간 유물들을 사용하며 그것들을 사용하며 생활. 

그곳에 전기가 들어오기도 하고 이집트 카이로에는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덤의 도시에 삶. -> 문제는 각종 귀신들림의 역사가 일어남...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2절) 

배- 교회, 안전한 피난처 

      비록 배 안에 큰 광풍으로 인한 파도 물결들이 몰려 들었지만 그곳은 언제나 주님이 지키시는 곳. 

      배 밖의 세계- 사탄이 지배하는 곳. 제자들을 데리고 그 곳으로 가자! 

      

배 안의 세계에서 필요한 것 - 믿음 

배 밖의 세계에서 필요한 것 - 영적 전투 (담대함) 


광야생활에서 필요한 것 - 믿음, 공급자, 보호자, 인도자는 오직 하나님 

가나안 땅 - 전투


그리스도인 - 빛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 나가지 않으면 미완성. 과잉보호자.... 

사람들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 순응하는 것, 쇠사슬로 메는 것, 통제, 제어...

그러나 그러면 그럴 수록 신앙 밖의 사람들은 통제 불능, 제어 불능의 사람이 되어 간다. 

그야말로 더럽고, 추하고,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동굴에서의 삶- 산 사람들과는 만나지 못하고 오직 죽은 자들만 상대. 그들과 함께 거하고 그들이 사용하던 것들을 같이 나누어 쓰고....


그것이 자유인가? 

누구도 날 제어할 수 없고 통제 할 수 없는 자유함이 날 행복하게 하는가? 

그에게 육체적인 자유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가 하는 것은 오직 소리지르고 돌로 자기의 몸을 헤치는 것. (5절)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자해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삶. 


이번에도 귀신이 먼저 예수님께로 나아와 외침. 

1장 23절 - 회당에서도 가장 먼저 반응한 것- 귀신 들린 자. 


C. S. Lewis가 쓴 “스쿠루테이프의 편지”

스쿠루테이프라는 한 악마가 자기 조카 악마한테 쓴 조언의 편지 

그 편지에서 악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최고의 방법은 사람들에게 세상에 악마란 없다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대로 악마는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계략과 작전이 드러나는 순간 무기력하게 됩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나타나는 현상- 귀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악한 자도, 귀신도 이런 고백을 언제나 할 수 있다. 

아무리 악한 귀신들린 자라도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려 절할 수 밖에 없다.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히지 말기로 하나님과 맹세하소서.


Why? 

아직 십자가와 부활의 때가, 심판의 때가 아니기로, 그 때까지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 

사탄의 횡포가 아무리 거세고 위험하더라도 그들의 권세는 오직 예수님이 만지시기 전까지...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정한 때는 언제인가? 오직 주님이 만지시는 때. 명령하신 때. 말씀이 임한 때.....

더 이상 그들에게 거할 길이 없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본질을 꿰뚫는 질문? 너 누구냐? 

야곱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했던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 

"사기꾼 입니다." 

"군대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면서 그냥 피하고 묶고, 상대를 안하고, 포기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보면서 너 누구냐?고 정체를 드러내심. 

사람들의 방법- 이해 못할 일들이 있으면 꽉 묶어 놓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좋여 놓으려고 함. 솨사슬과 쇠고랑에 채워놓도록... 


악도 발달해서 이제 사기꾼, 거짓말 쟁이의 악한 영이 군대가 되어 그의 온 일생을 망가뜨림. 

군대: Region. 군단; 6000명 단위. 


크고 많고 엄청난 파워의 악한 군대가 장악한 인간.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는 그보다 더 크다. 능치 못하실 일이 없다.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신 하나님은 군대 귀신 들린 자도 치유하신다. 

말씀으로 치유하신다. 


군대 귀신이 2000마리 되는 돼지 때에게 들어가서 몰살. 

돼지 - 자기 의지가 없다. 들어가니까 바로 죽는다. 

이것이 사탄의 정체다. 무덤 곁에서 살고 있는 자의 운명이었다. 결국 미치광이로 살다가 스스로 몰살할 수 밖에 없는 자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서 살리신 것이다. 

그것도 밤에 폭풍을 뚫고 배를 타고  건너와 살리신 것이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전한 소식-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뭘 말했을까? 자기가 치던 돼지들이 다 몰살 당했다. 귀신이 나간 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키우던 돼지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한 영혼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자기 생업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예수님이 하신 큰 일에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하고 도망하고 원망한다. 

미친 이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것- 이대로가 좋다. 변화가 싫다. 

                                   자기가 바뀌는 것이 싫다. ->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5:17절) 

                                   

자기 중심적인 신앙, 훈련을 온전히 견디지 못하고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한다. 모든 기준은 내 이익- 그런데 그 내 이익은 다른 사람이 살고 죽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영원한 기쁨과 상급과도 상관이 없는 오직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내 소유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영혼을 위하여 

배를 타고 폭풍을 뚫고 구원하러 오신다. 

그리고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당연스레 돼지 2000마리를 희생시킨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으신다. 


그리고 다시 배에 오르신다. 제자 들과 함께 머무는 곳으로, 교회로, 평강으로 들어오신다. 

예수와 함께 있으려 하는 그 자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그 사람은 떠나려 하는데 

예수님은 돌아가라 한다. 

사람들은 2000마리 돼지가 죽었다고 소동하며 예수님보고 떠나라 하는데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한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만큼 너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2000마리의 돼지가 죽고, 내가 죽고, 십자가를 져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너를 사랑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소식을 내 가족, 내 이웃,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에게 전하라고 나를 남기신다. 

나를 남겼지만 홀로 두신 것이 아니라 이젠 성령 안에서 육이 아닌 영으로 하나가 되게 하신다.


데가볼리 - 10개의 큰 마을 

주님은 가족에게 전하라고 하시는데 그 사람은 열개의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기에게 일어난 사랑의 소식을 알렸다.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과 동행하였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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