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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4장 1-8절 


3장까지에 걸쳐 교회가 무엇인가? 

신앙생활과 교회 목회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선배목회자로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하나 하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그리고 이제 4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목회 사역에 있어서 또 다른 장벽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

바로 거짓 목회자들에 관한 소개 및 경고입니다. 


이 성경을 목회서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 목회자로서 다른 교훈을 증거하는 목회자들을 상대하기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당시의 거짓 목회자들의 상황을 또한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1절) 

믿음에서 떠났다는 것은 무슨 소리입니까? 처음엔 믿음 안에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멀쩡하게 잘 신앙생활 하고 믿음 안에, 진리 안에 거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여호와 증인, 몰몬교, 통일교, 안상홍 등 이단으로 알려진 곳은 그래도 구별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무엇입니까? 

멀쩡한 교회 안에 보수적이고 정통이라고 외치면서도 버젓이 다른 교훈, 다른 복음 들을 전하는 잘못된 리더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


블로그 비밀 댓글로 

"목사님, 말씀이 참 쉽고 좋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받으셨습니까? 궁금합니다." 

라고 질문한 성도..

왜 물을까? 그것을 묻는 성도의 의도는 무엇일까? 


첫째는 아무 목사나 못믿겠다는 소리겠지요.

그런데 차라리 구원의 확신이 있으십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셨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좀 자존심 상하기는 하지만 

"진짜냐, 가짜냐?"를 묻는 질문일텐데 성령의 은사를 받으셨습니까?를 묻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이 진짜 가짜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성령의 은사는 무엇을 위해 줍니까? 구원받기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신앙이 유익을 위해 주는 하늘로부터의 선물입니다. 

물론 구하는 자에게 더 풍성히 주시는 선물이지만 그 목적은 교회와 성도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성도가 묻는 질문은 도대체 성령의 어떤 은사를 받았냐는 것인지, 마치 방언할 줄 아냐를 묻는 것 같은데 그게 왜 그에게 진짜 가짜냐를 묻는 기준이 되는지 마음이 참 안좋았습니다. 


참 목사를 찾기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도 씁쓸하지만 그걸 구분하는 기준이 방언 받은 목사냐, 아니냐는 아니지 않습니까? 방언 받으면 다 거룩하고 다 구원받은 자녀입니까? 

방언받고 잘못된 목사와 성도는 없습니까? 


문제는 무엇입니까? 교회 스스로가 교회를 신뢰하지 못하도록 증거합니다. 물론 한국교회가, 미국교회도 마찬가지겠지만 위험한 상태이고 많은 비난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함께 고쳐 나아가 하고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공동의 짐이고, 공동의 책임이고, 공동의 회개 거리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비판하고 목회자들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괜찮다, 여기만 진짜다 하는 그런 말과 생각들 때문에 결국은 그리스도인 서로가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가 된 것 아닙니까? 


사람의 행위, 교회의 잘못된 점, 구체적인 행동과 시스템은 반성해야 하지만 교회 자체가 다 썩어 빠진양 교회를 부정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 


그런데 교회 안의 그런 잘못된 교훈을 전하는 자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2절에 보니까 양심이 화인 맞아서 그렇다" 

화인 맞다는 소리는 불에 달군 쇠로 낙인 찍혔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성령의 인을 치셨다고 표현하는데 잘못된 것을 전하는 자 역시 양심의 낙인이 찍혔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에 거슬리는 짓을 하다가 사탄의 도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 디모데전서 1장에 모든 교회 가르침의 목적은 무엇에 있다고 했습니까?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가르침은 어디서 나오느냐? 화인맞은 양심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성령에 근거하지 않고 다른 목적, 다른 유익을 위해서 만들어낸 교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계시록 강의) 

적그리스도가 누구인고, 마지막 세대에 일어날 일들이 어떤 어떤 일들이고.... 

모여드는 사람들.. 왜? 분별하여 구원받기 위해서...............

누가 적그리스도다, 어떤 나라, 어떤 단체가 적그리스도다..

미안하지만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마다 그 해석과 지적하는 바가 계속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또 새로운 것인양 떠들어댄다. 

홍혜선..한국 전쟁설.... 교회 자체가 미국으로 이민..


도대체 왜?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이것 하면 큰일 난다. 거기 가면 죽는다. 

거기 가입하면 사탄의 종이 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막 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늘 깨어 있으라. 기름을 준비하라. 


영성, 신앙

모든 삶 안에서 하나님을 누려라. 어떤 삶 속에서도 주 안에서 안식해라.  평안하라. 


전도서 : 다른 헛된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서 기뻐하고 누리면서 내 가정을 사랑하라. 

그것이 불완전하다고 다른 것에 눈 돌리지 말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무엇하지 말고, 무엇은 꼭 해야 하고,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 

참 사랑을 위해서 정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라. 

그것을 가지기 위해서 2장에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해라. 

기도를 통해서만 그런 것들이 주어진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는 목회라는 것입니다. 


거룩은 무엇하고, 안하고 (구약의 율법은 구별하고 금지하는 것을 통해서 거룩의 모델을 보여주었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우리들은 

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 

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의 가장 큰 위협적인 거짓 가르침 - 영지주의 이원론.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 


육이 악하기 때문에 육의 상징인 성욕과 식욕 자체를 악하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금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도 자칫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찬양불렀듯이 

"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하면서 지칫 이런 영지주의적 이원론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물질이란 본래적인 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선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을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사용하게 된 것이지 

그 물질 자체는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육적이다 영적이다'라는 말씀은 물질과 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 육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영이란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을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롬 8:4)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이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육인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영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육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영이 없는 자로서 자기가 모든 것의 주체가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도 행할 수 있고 악도 행할 수 있는데 내가 스스로 선을 택하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선악과 따 먹고 난 이후의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주인 삼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을 성경은 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육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기쁘시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을 원수로 여겨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요일 4:1)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 4:2)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3)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일 4:4)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일 4:5)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요일 4:6)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고전 2: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3)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에덴동산: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과 하와는 완전했을까? 실수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렇지만 그들이 무슨 실수를 해도 그것이 죄라 불리지 않았다. 왜? 하나님 안에 있으니까? 


그런데 하나님 밖에서 그들은 무엇을 해도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 밖에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은 것. 그 행위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음으로 하나님 밖에 쫓겨난 것.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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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성도 (디모데전서 3장 14-16절) 


디모데서는 목회서신으로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의 실제적인 지도를 해 주는 편지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서를 읽으면 마치 어머니나 장인어른이 저에게 말씀하시듯 선배 목회자로서의 따뜻한 마음과 동시에 목회에 있어서의 중요한 핵심등을 알 수 있습니다. 


첫장에서는 목회의 목적과 정의를 내립니다. 

복음과 목회의 목적은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통한 사랑을 이루는 것. 


이것을 훼방하는 악한 이단 세력과 율법주의자들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것. 


2장에 가면 이 사랑을 위해 우리가 힘써야 할 것 -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 

오직 기도를 통해 온전한 신앙과 사랑을 이룰 수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질서를 이야기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 

갑자기 억눌려 있던 여성도들이 교회의 중심으로 자리잡음으로서 이루어지는 여러 부작용과 무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한 것. 

이 구절은 그 시대와 교회의 상황을 잘 이해하여야만 현대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3장에서는 본격적인 교회의 직분에 관하여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교회의 직분을 크게 감독과 집사로 이야기합니다. 

주님을 머리로 둔 교회은 오직 주님만이 머리시요 목사나 성도 누구나가 주 안에서 평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직분은 서열이 아닌 교회의 질서와 운영을 위한 역할이고 질서를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제시한 두가지 공식적인 체제는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원할한 질서와 운영을 위하여 남자와 여자, 감독과 집사를 세워놓았습니다. 


감독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건전한 가정을 가지면서 가정에서 존중받는 가장이어야 하고, 사회에서도 책망받지 않는 자를 중시합니다. 앞에서 이끄는데 가정의 배우자나 자녀들이, 혹은 사회생활 하는 동료들이 인정하지 못하고 비난한다면 도저히 리더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집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중한 입과 성도로서의 기본적 믿음과 소양입니다. 섬기고 돕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입을 조심해야 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집사에게는 감독을 이야기 할 때는 언급하지 않은 직분을 잘 감당했을 때의 결과들을 설명합니다. 

곧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의 큰 담력을 말한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말했듯이 하나님의 일에 충실히 감당할 적에 교회 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에서의 모든 책임을 아름답게 하신다는 일입니다. (다윗, 요셉..)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있어서 신앙적인 요구보다 사회적인, 도덕적인 기준을 더 강조한 까닭은 이것이 공동체를 위한 자격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사람 사이의 관계 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의 질서를 세우는데 신앙만을 내세워서 막무가내로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의 기본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공동체에서 일어나기 쉬운 오류중의 하나는 바로 신앙이라는 이유로 상식적인 사회적, 도덕적 기준조차 망각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비판이 일어나면 교회 안의 일을 사회에서 평가하지 말라는 등의 이유로 사회적인 비판을 외면하려 합니다. 

예전에는 교회가 사회로부터 가려 질 수 있었을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한 사회에서 더 이상 교회는 사회로부터 숨겨질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조차 교회는 산 꼭대기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사회로부터도 깨끗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바울은 다시 교회의 본질로 돌아와 이런 직분과 질서를 이야기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런 목회의 목적과 교회 안의 남자와 여자, 직분을 이야기 하는 것은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 즉 교회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됨을 이야기 합니다. 


집- House, Home (House- 외적 표현, 건물, 거룩한 처소, Home-은 내적 관계) 

교회- 하나님의 집- 그 머리는 오직 하나님 

살아계신- 여전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임재

그것을 증거하는 것- 진리, 말씀, 그리스도. 무엇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을 통해서다. 

성막의 중심이 언약궤이듯이 하나님의 집의 터와 기둥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진리의 기둥과 터전이 잘 세워져 있으면, 

즉 성경말씀이 바르게 전파되고 있으면.. 

교회라는 ‘집’은 당연히 든든히 세워지게 된다.  

반대로, 성경의 일부만 가르쳐지고, 나머지는 덮어버리거나, 

성경의 진리를, 세상의 유행사상과 혼합해서 선포되어지는 등 

복음의 기둥과 터가 흔들리고, 붕괴될 때 

‘교회’는 자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진리를 유지시키고, 보호하고, 훼손되지 않도록 지탱시킬 책임이 교회의 사명이다. 

그 진리가 무엇인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토대이고 기둥임과 동시에 또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는 것이다. 


(딤전 3:16)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1)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2)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 부활, 성령의 강림 

3)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4)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5)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6) 영광가운데 올려지셨다. 


그리스도의 삶의 집약

->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인 공동체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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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모데전서 4장 9-16절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미쁘다 이 말이여! 

참말이다. 진실로....무엇이?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이란 것은 무엇인가? 

경건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배에 잘 참여하고 기도 잘하고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경건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참된 경건은 우리가 디모데전서 1장 이후로 계속 다룬대로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충만한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 경건은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참된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즉,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다. 집착하는 것이고, 나만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못된 사랑은 세상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만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 이기심과 집착이다. 

예) 나르시시즘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랑이다. 그를 우러러 보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에게서 나오게 된다. 세상의 사랑에 빠지면 더욱 더 나 자신에 집착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을 보고 이웃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나도 귀하게 여기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시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약 1:27) 


나에게 집착하면 할수록 나를 파멸시키지만 주를 바라보면 볼수록, 경건해지면 경건해질 수록 나는 건강해진다. 이것이 경건의 파라독스이다. 

신앙에는 이런 파라독스 투성이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라 하고 첫째가 되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한다. 

복있는 자는 가난한 자라 하고 나 자신을 부인하면 영생을 얻는다 한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경건, 경건주의는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100여년이 지난 이후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일대의 일대 신앙적인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종교개혁 - 종교 전쟁 - 아우부스부르크 종교회의 (기독교 공인) - 정통주의 시대 - 경건성의 위기 - 경건주의, 청교도 운동 시작 


종교개혁 100년 후 찾아온 경건성의 위기- 이성 중심, 교리 중심, 논리 중심 적인 신학 논쟁... 

삶이 따라오지 않는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능력이 없다. 삶의 변화가 없다. -> 지식 보다는 실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변화에 초점 


디모데전서의 이 구절에서 경건과 반대로 쓰인 말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

좀 더 앞으로 가면 1절의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

2절) 양심의 화인을 맞아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

3절)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금하라....


신앙의 양 극단 - 자유주의와 신비주의 

성경보다 합리성, 이성을 더 숭배 

성경에서 기적은 모두 신화, 천국과 지옥에 관련된 것은 모두 비유로서 진리가 아니다. 

예수의 말 외에는 모두 인정 거부

예수의 삶 속에서도 기적은 거부

->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는 그저 도덕적 스승이다. 성인들 중의 한 명이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그의 사상을 따르는 것이다. 

공자를 따르듯, 부처를 따르듯... 


왜 이 이성의 신학이 잘못된 것인가? 

이성의 신학의 시작: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주의, 이른바 모더니즘 

과학에 대한 맹신. 

신학: 하나님은 우주를 시계 톱니바퀴처럼 완전하게 창조해 놓으셨다. 

그래서 창조 이후의 세계는 과학의 법칙, 이성의 법칙을 통해서 운영된다. 

예수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은 간섭하지 않으시거나 시계가 고장 났을 때에 잠시 수리하듯 제한적으로 간섭하신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포스트 모더니즘. 

기독교 세계가 아니라 일반 세계의 흐름이 이성의 세계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그 회의의 시작? 세계 대전...과학이 발달되면 유토피아가 올 줄 알았는데 그 결과 온 것은 지구의 종말의 위험. 

왜? 이성도 방향을 읽으면 폭력이 된다. 

다시 신학으로...


역시 기적은 있다. 과학으로 이해되는 세계는 극히 일부분이다. 이해되지 않는 영역이 훨씬 더 많다. 


신비주의: 성경보다 체험을 중시한다. 직통계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럴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인지, 나 자신의 생각으로부터인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인지 분별해야 한다.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계시의 분별 기준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다. 

예) 재림 예수, 종말의 때- 성경에 분명 떄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이다고 말씀했다. 그런데 끊임없이 때와 기한을 이야기한다. 

말씀이 말씀을 거스를 수 없다. 


허탄한 신화- 무엇 했더니 어떻게 하였다. 주일 성수 했더니 사업이 대박 났더라. 

그럴 수도 있고 안 스럴수도 있다. 은혜는 공식이 아니다. 

은혜는 측량할 수 없기 때문에 은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신앙을 공식화 시켜서 이야기 한다. 

허탄한 신화이다. 내게 일어난 일이 남에게 그대로 안일어 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맞게 역사하신다. 


경건- 믿는 자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아니 꼭 필요한 것이다. 

수고하고 힘써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게 되기를... 


왜? 이 세상에서 경건에 힘써야 하는가? 우리의 소망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둔 자이므로... 

경건하지 못한 자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자들, 왜? 경건하지 못했기에...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불평하고 세상을 섬겼기에... 

우리는 왜 경건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 목적을 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둔 자이므로.. 


12절)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연소함- CHILDISH, CHILDLIKE 

1) 나이가 어리다. (Childlike) 

2) 유치함 (Childish) 

무엇이 신앙의 유치함인가? 

기도는 잘하지만 행동은 그대로, 쉽게 혈기를 내고, 신앙보다 감정에 치우치고, 정욕에 이끌리고, 유혹에 늘 넘어지고...


유치함의 반대 - 성숙함. 온전함 

12절 후반) -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의 본이 되라! 유치하게 살지 말라.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힘쓸 것-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은사를 활용하라! 

전심전력하여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라! 계속하라. 끊임없이 하라! 

무엇을 위해? 나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내게 주어진 영혼들을 위해....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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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에 관하여 2 (집사) 디모데전서 3장 8-13절 


  • 교회의 직분을 감독과 집사로 나누어 설명한 것은 크게 리더와 돕는 자로 나눈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거룩한 백성,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높음이나 낮음이 없고 남녀노소, 모두가 평등한 모습을 같습니다. 이것이 유교공동체와 다릅니다. 

유교는 상하관계를 중시합니다. 

왕과 선생과 부모가 있고 신하와 학생과 자녀를 철저히 구분합니다. 

이 둘간의 관계는 절대 순종이고 또한 복종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가 머리요 우리 모두는 그 분의 몸의 지체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사나 장로나 성도가 주 안에서 평등합니다.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 안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공동체입니다. 무슨소리인가 하면 변함이 없는 공동체라면 자연스레 질서가 잡힙니다. 그리 큰 갈등이 일어날 요소가 없습니다. 역할이나 책임이 이미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리스도 안의 성령 공동체이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도 변하고 또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나갑니다.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서 세운 것이 직분입니다. 책임과 역할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리더와 돕는 자를 주십니다. 

마치 아담을 만드시고 돕는 베필을 주신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남자가 높고 여자가 낮은 것이 아닙니다.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만물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주도하고 돕는 역할의 차이를 주신 것입니다. 


감독은 영어로 overseer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위에서 보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통치하듯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듯 두루 두루 살피고 보호하고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집사로서 표현된 단어는 영어로는 deacon, 헬라어로는 diakonon이라는 단어인데 집사 이외에도 왕의 사환, 수종자, 일꾼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사는 리더인 김독을 수종하고 돕는 일꾼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 8절부터는 집사의 자격이 나오는데 그 첫째가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라고 나옵니다. 

정중하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져 왔는데 하나는 respect와 또 하나는 grave입니다. 

respect는 존경하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respect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spect라는 단어가 '보다'라는 단어인데 respect이니까 '다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존경하다, 존경 받을 만하다는 뜻은 쉽게 지나쳐 가다가 다시 되돌아서서 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사람 다시 봤어..."하는 표현입니다. 

왜 다시 보겠습니까?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좋은, 선한 모습이 있을 때에 아니 이 사람 다시 봤어 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외적인 모습보다 내적인 성숙이 있을 때에 이렇게 말합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grave입니다. 무거운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이 말은 뒤에 나오는 일구이언과 연결되어 생각하면 쉽습니다. 

왜 집사는 입이 무겁고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는 자라고 할까요? 

옆에서 감독의 좋은 모습, 나쁜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모습을 전하는 것도 나쁜 모습을 전하는 것도 그런데 자기가 본 대로 나가기 때문에 전하다 보면 포장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질서가 깨어지게 됩니다 .

앞에서 감독이 술을 즐기지 않는 이유는 술이 가정 파괴, 성적인 유혹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사에게 있어서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입이 무겁다가도 술이 들어가면 가벼워지기 때문입니다. 

입이 무거운 것, 일구이언하지 않는 것, 이것이 집사의 첫째 조건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우상숭배나 속임수로 인한, 탐욕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입니다. 

이 말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1장 5절에서 나왔지요? 그리스도의 교훈의 목적을 말하면서 기독교의 교훈의 목적은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왜 이 믿음의 비밀, 깨끗한 양심이 깨어지는가? 탐욕과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눈에 보이는 것으로 쉽게 결정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시험하여보고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겨라...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자들을 말하면서도 이와같이...남자들과 똑같이...

여기에 더하여서 정숙하라....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당시의 고린도교회나 여인들이 교회에서 갑자기 책임을 맡게 되고 리더가 되면서 그들의 차림새나 행색이 이방선지자들처럼 된 것을 가리켜 항상 여인들이 교회에서 행할 때는 정숙하라 단정하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감독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3. 직분의 열매

직분을 잘 감당하면 어떤 약속을 주시는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의 큰 담력 


다윗에게 첫 번째 준 직분은 목동이었습니다. 그가 목동의 일을 잘 감당하니까 그를 왕궁으로 데려가 왕 앞에서 수금을 타게 합니다. 

수금을 타다가 병기드는 자에서 군대장관으로 군대장관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의 위치가 어떠하든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충성된 집사였다는 것입니다. 


함께 나눈 적이 있지만 직분이야기를 할 때에 재일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입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에도 어디에 있던 주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고향 교회로 돌아와 주일학교교사직을 완수했습니다. 

그리고 퇴임후에는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보람도 있었고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예배드리는 것은 진정한 평화와 위로였습니다. 나는 대통령보다 주일학교 교사라는 직분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라고 고백하며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퇴임 후에 가장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큰 담력은 무엇입니까? 

12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귀신도 쫓고, 병자들도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없어서 사람들이 그들에게 달려오자 그들은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곁에서 보는 것은 쉬운데 직접 영적인 전쟁터에 나가서 활동하면 배운대로, 본대로 신앙의 승리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직분은 하나님의 사역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터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믿음이 내 믿음이 되고 목사의 믿음이 성도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 주신 약속이자 보장입니다. 


반대로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루시퍼- 성가대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자가 자기가 영광을 가로 챕니다. 

직분자는 철저히 하나님을 위한 자리이고 또한 성도들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직분을 통해 자기가 영광을 취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되고 사탄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가룟인 유다는 열 두 제자 중 돈 궤를 맡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탐욕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어떻게 됩니까? 

예수를 은 삼십 냥에 팔아넘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매일 듣는 이야기지만 실재로 직분감당하다가 시험에 들면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힘들면 힘주세요.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포기하거나 숨어버립니다. 

직분엔 반드시 열매가 있고 약속이 있습니다. 

반대로 직분 잘 못 감당하면 반드시 치루어야 할 값이 있습니다. 

죄는 회개하고 용서받지만 직분 잘 못 감당해서 인생의 값비싼 댓가를 치루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미쁘다 이말이여! 

이 시대의 직분을 사모하는 것,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기에 바울은 너무 아름답다. 가치있다고 감탄을 합니다. 

직분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될 적에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속한 처소에서 우리의 자리를 아름답게 빛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담력, 믿음의 큰 비밀을 체험하게 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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