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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기뻐하라 (골로새서 2장 6-8)

 

골로새서 - 옥중서신 중 하나 (옥중서신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에 골로새 교인들을 향하여 보낸 편지

골로새 - 지금의 터키 지방

  • 그러면 사도 바울과 골로새교회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골 2: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바울과는 ‘피차 얼굴도 모르는 관계’입니다.

(골 1:7)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 7절에 보면 '에바브라'란 인물이 등장하는 데 이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바로 골로새교회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2년 동안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사역을 하는 동안, 에베소에서의 증거가 어찌나 효과적이었던지 행19:10에 보면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두 명의 골로새 출신의 사람이 바로 에바브라빌레몬이었습니다.

 

2) 에바브라와 사도바울

  •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이 에바브라가 찾아왔습니다. 에바브라’는 투옥되어 있는 바울을 만나서 골로새 교회의 상황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이때가 골로새 교회가 세워진지 약 5년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서 1:23에 의하면 바울을 찾아왔다가 그만 함께 갇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몬 1: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 그래서 그랬는지 이 편지는 ‘에바브라’가 가져가지 않고 골로새로 가는 두기고 편으로 보냈습니다

(골 4:7)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골 4:8)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바울이 두기고 편으로 골로새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이후는 그들에게 에바브라의 소식을 전하며 그로 인해 근심하거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디모데와 함께 갇혀 있었던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교회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3절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그러면, 바울이 무엇 때문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까요? 골로새에서 복음으로 거둔 열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절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자신이 직접 전하지는 않았지만 에바브라가 전한 복음을 듣고 열매를 맺어 자라는 성도들을 향하여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구체적 열매의 내용>

그러면 복음으로 맺어 자라는 열매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이 세 가지 은혜들이 논리적인 순서로 배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과거에 기초하였고, 사랑은 현재에 속한 것이고, 소망은 미래를 품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칭찬하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모든 죄악을 사하시지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복음에 대한 믿음이고 그 예수가 부활하셔서 지금도 그들과 함께 함에 대한 믿음입니다.

복음의 열매란 바로 이러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입니다.

 

둘째로,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삶을 보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4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믿음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믿음은 자연히 사랑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이론적이거나 신비적이거나 혹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은 또한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가득한 신앙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5절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복음을 듣고 나서 열매 가운데 세 번째 것은 ‘소망’이었습니다. 믿음은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믿음이 있을 때 소망이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소망은 귀한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 모든 희망이 단절된 세계,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서 맺는 소망은 특별합니다. 어떤 소망입니까? 예, ‘하늘에 쌓아 둔 소망’입니다. 곧 천국 소망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장차 부활할 것을 말씀하면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고전15:19)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망이 없으면 만사가 붕괴되고 맙니다. 심지어 믿음과 사랑까지도 메말라 버립니다. 믿는 사람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상실했다는 증거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땅위에 있는 것을 보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교회와 신앙의 3대 요소입니다. 어느 한 부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항상 3요소가 함께 ‘하나’를 이루며 어우러져야 합니다.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사람들과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의 감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골 1: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10)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 바울은 골로새교회가 지금까지의 열매에 그치지 아니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그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 골로새교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지만 여전히 자라나야 할 교회임은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교회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성장해 가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 - 제대로 알지 않으면 미혹된다. 그 당시의 교회들의 문제, 특별히 바울이 세운 이방인들의 교회- 율법적 유대교 뿐만 아니라 영지주의적 헬라철학, 그리고 그 지방의 무속신앙

제대로 알지 않으면 문제를 잃으킨다. 우상이란 다름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면 어떻게 됩니까?

 

2. 합당한 행함과 범사에 기쁨, 모든 선한 일에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삶에 궁극적인 열매는 무엇입니까? 어떠한 상황이 와도 "모든 견딤과 오래참음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난을 이기는 힘입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절망하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 여전히 사랑에 힘쓰며, 또한 소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읽은 2장의 본문을 살펴 봅시다.

[골 2:6-8]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1.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당시 골로새 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 로마 교회로부터의 핍박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대한 핍박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당시의 로마인이나 헬라인들은 그들의 황제를 “주”(“큐리오스”)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황제를 숭배케 했고 황제를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황제 외에 다른 어떤 존재도 “주”라 부르지 못하게 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외에 어떤 “주”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황제를 “주”라 칭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로마의 황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들을 옥에 가두고 죽였습니다. 바울을 비롯하여 초대교회 지도자 200여명이 이 때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이 모든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부른데서 왔습니다.

 

"예수로 나의 주로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러한 핍박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세상을 이기는 성령의 능력, 믿음의 능력이었습니다.

 

두 번째의 교회적인 어려움 - 그 지역의 영지주의적 헬라철학, 그리고 그 지방의 무속신앙, 그리고 유대교적 율법주의

복음에 온전히 서 있지 않으면 스며드는 혼합사상, 이방사상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이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행하되'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peripatevw’(‘페리파테오’)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어떤 특별한 행위 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본문을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생기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

즉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과 한 몸이 되어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삶은 단순히 교회만 드나드는 삶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7절a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믿음에도 성장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갑자기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장성한 단계까지의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것에 비유합니다.

처음 나무를 심으면 쉽게 뽑히고, 가뭄에도 취약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뿌리를 깊이 내려야만 쉽게 뽑히지도 않고 웬만한 가뭄에도 말라죽지 않는 것입니다.

 

왜 바울은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라고 말씀합니까? 그래야만 능히 모든 핍박과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은 단순히 교회 오래 다니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몇 주 전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뿌리가 깊은 좋은 밭은 어떤 밭입니까?

좋은 땅 - 듣고 받아 (파라 데코마티아) - 매우 기뻐하다. 영접하다. 환영하여 머물게 하다.

이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기뻐함으로 받아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7절b “...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믿음은 감사의 전제조건입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감사가 나오고,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하거나 병든 믿음의 소유자는 감사를 모릅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받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며,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음만큼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냥 ‘감사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감사를 넘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넘치게 하라”의 원어의 뜻은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뜻합니다. 풍성한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딱 받은 만큼, 생각난 만큼 인색하게 하거나 체면치레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의 환경과 처지와 입장이 어떠하든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대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의 문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되 풍성한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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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장 35-39절) 

 

많은 신학자들이 로마서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학을 가장 잘 설명해 놓은 기독 신학의 핵심이라고 평가합니다. 위치를 보아도 신약성서의 중간 부분을 대충 피면 로마서가 나옵니다. 로마서는 신약성서의 중심이고 그 제 8장은 로마서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제 8장은 신약성서의 중심이다. 저 독일의 경건파의 창시자 '슈페~너'~(Spener, Phillipp Jakob 1635~1705)의 말로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만약 성서를 반지에 비교한다면, 로마서는 그 보석이고, 제8장은 그 보석의 빛나는 가장 중심부의 다이아몬드의 정점이다.(sparking point)'이라는 말했습니다. 또 다른 신학자는 로마서 8장에 대해 이같이 격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이 만일 다 불타서 없어진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로마서 8장만 남아있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중에서도 우리가 읽은 본문이 포함된 31-39절은 이 로마서 8장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이요 가장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헨델의 메시야의 가장 피날레이면서도 하일라이트인 "환희의 찬가"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합니다.

 

31절부터 보면 바울은 4가지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승리를 선포합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1절)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33절)

주가 정죄하리요(34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35절)

 

이 말은 반어적 표현으로 다시 말하면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고, 누구도 우리를 고발하거나 참소할 수 없고,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고,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의 삶에 있어서 정말로 우리를 대적하는 자가 없는가? 우리를 고발하거나 참소하는 것은 누구인가?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하고 고발하고, 참소한다. 교인들이 나를 정죄하고 성경이 나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는 분이시고, 성령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영이시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고 참소하는가?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우리로 하여금 용서받지 못할 자가 되게 하고,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 의심하고, 무가치하게 만들며, 성령님이 다스리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 고난이 사라지고 편안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고난으로부터의 면제가 아니라 고난으로부터의 승리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난에서도 우리가 그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35절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처해 있는 삶의 실존적 현실을 7가지 용어를 써서 기록하고 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바울 -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실존적 7가지 문제를 설명 - 당시 로마에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이요, 사도바울 본인이 자기 삶을 통해 처한 삶의 현실을 표현한 것이지만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존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환란 - 외부적인 역경

곤고 - 내적인, 심적인 역경, "매우 협소한 장소에 갇혀진 영혼"

[고후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핍박 - 종교적 억압, 신앙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

기근 - 경제적 궁핍

적신 - 옷이 벗겨지는 수치

위험 - 예기치 못한 삶의 사고

칼 - 갑작스럽게 닥쳐온 죽음 - 짧은 비수, 장검이 아니다.

죽을 사 - 한 일 - 저녁 석- 비수 비 ->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칼이 바로 죽음의 의미"이다.

 

화요일날 오전에 교회 사무실에 있는데 이유순 집사님께서 cd를 녹음하러 오셔서 월요일날 장로님 모시고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속이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하시기에 바로 통화해서 많이 힘드시냐고 물으시니까 검사를 오래해서 그렇다고 말씀하시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수요일 새벽예배 마치고 아이들 학교 RIDE해주고 오는데 우후남 집사님이 전화를 거셔서 911을 불렀다고 숨을 잘 못쉬신 다고 말씀하셔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몸이 불편하니 병원을 가실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광경 - 이미 시신이 되어 천이 얼굴 위로 덮혀 있는 상태....

다리가 확 풀어지면서 말 문이 막히고....- 정말 비수처럼 갑작스럽게 닥쳐온 죽음.

 

[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눈물이 그치면서 정말로 속으로 여러감정이 올라오는데 첫 번째 해야 할 일이 성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성도들은 또 얼마나 이 소식을 받고 충격을 받을까.....

추수 감사절을 한 주 앞두고 큰 슬픔 속에서 예배드려야 할 생각을 하니 정말 말 그대로 마음이 곤고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해 동안 지내오면서 마음 속으로 참 많이 들었던 생각이 "너 이런대도 계속 설교할꺼냐? 너 이런대도 계속 목회 할꺼냐?"

정말 마귀가 주는 정죄와 참소와 고발들이 내 마음 속에서 끊이질 않고 일어났는데..... 누워있는 시신 앞에서 또 다시 곤고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가운데서 그래도 임종예배를 드려야 하기에....전혀 준비도 없이 갔기 때문에 핸드폰 성경 어플을 켜 놓고 성경 구절을 찾는데

제일 먼저 들어온 구절이

[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을 읽는데 "그래 이젠 장로님, 집 걱정 없이 영원히 거할 안전하고 좋은 거처로 가시는구나...."라는 생각. 거처를 옮기게 될 때마다 염려하시면서 기도했던 모습이 있기에...

 

그리고 또 주신 말씀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그러면서 장로님의 죽음이 그 분께는 정말 복된 죽음이구나. 우리는 인사도 제대로 못해서, 송구하고 당황스럽고 슬프지만, 병원에서 아프다 가시는 것보다, 사고로 가시는 것보다,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주일까지 다 예배 드리고 그 전날 저녁도 속이 좀 편해 지셔서 미역국을 한 그릇 다 잡숫시고 주무셨다고 하니 그리 심하게 고통스러우셨던 같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으니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무엇보다 생전에 말씀을 사랑하셔서 말씀 암송도 많이 하셨지만 인생에서 돌아가시기 전 3년동안 가장 많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2017년부터 일년에 적어도 14-15독을 매일 같이 읽으시면서 가셨기에 그 분의 죽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죽음인가 납득할 수가 있었습니다.

 

롬 8:31-34]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 조건이 아니라 너무도 분명한 If가 아니라 Since, Because- 확실한 사실

- 어떠한 상황에 있는 자들에게 주는 말씀인가? - 자기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살아가는, 7가지 삶의 실존에 닥쳐 있는 그러한 자들.

- 간구하느시는 자- 현재 진행형 - 그 때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자.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긴다 - 가까스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광야에서 아말렉을 상대하실 때에 "여호와 닛시"하면서 내가 대대로 그들과 싸우겠다 하신 것처럼 계속해서, 완전하게, 승리하게 한다.

어떻게? 그분의 사랑으로...

단지 긍정적 사고로 말미암아 그런 척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믿음은 곧 그 사랑에 대한 확신이다.
  • 어떤 시간이나, 어떤 장소나, 어떤 대상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어떤 것도 없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러나 육적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적 죽음을 두려워하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인생의 완성이다.

 

고난 - 하나님이 일하는 방법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4:1-2]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왜 고난이 필요한가?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신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벧전 4:6-8]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장로님의 죽음을 앞두고 다같은 생각이겠지만 이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한 마디라도 더 잘 해드리고, 밥 한끼라도 더 자주 나누었을텐데.....

하는 남은 자들의 후회.... 떠난 후에 하면 정말 허무한 후회.

 

그렇기에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간절히 느낄 수 있다.

죽음은 칼 같이 온다. 이렇게 날벼락처럼 떨어진다. 순서도 없이 온다.

 

그렇기에 남은 성도들, 후회를 남기지 말고 사랑하자. 후회를 남기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자.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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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부터 열매맺는 자가 되자 (약 3:1-12)

 

야고보서 -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게 쓴 편지

야고보 - 예수가 사역 할 때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교회의 리더가 된다.

초대교회의 초대 리더가 된다.

 

얼마전 갈라디아서 2장 말씀을 증거하면서 베드로가 안디옥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야고보 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밥먹다 말고 안 먹은 척 자리를 피하는 장면 - 예수의 혈육적 동생이라는 권위, 초대교회의 리더라는 권위.

 

[약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 때 이미 교회의 핍박이 일어나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교회가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기독교 공동체는 제도적으로 굉장히 혼탄했다.

왜? 구약의 교회, 성전, 레위인 중심의 폐쇄적 리더십 - 대대로 세습되는 신분

신약의 성전 - 성령 공동체, 사도 공동체, 누구나가 리더가 될 수 있는 교회의 혁명적인 변화.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도 바울의 글에서도, 이 곳 야고보의 글에서도 질서와 권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야고보서의 주제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 행함이 있는 믿음.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다룬다.

 

1장을 통해 환란 가운데서도 인내하는 사람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축복받을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환경이 어려워지면 금방 원망하고 변질되는 사람이 아닌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자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지난 주 설교시간에도 모래 위의 집과 반석 위의 집을 언급하면서 말씀드렸지만 참 믿음은 언제 나타나는가? 환란의 때에 흔들리지 않는 자가 참 믿음있는 자요, 그렇지 못한 자는 모래 위의 집- 자기 생각, 자기 상식에 근거한 믿음, 집이 무너지는 자.

 

2장을 통해서 야고보사도는 그 유명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고 말하며 믿음은 반드시 삶으로 이어지고 삶으로 드러나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반드시 삶을 통해 열매 맺는다. 삶으로 증명이 된다.

 

우리가 몇주째 계속해서 열매맺는 삶을 나눈다. 믿음이 있는 삶은 그 삶에 열매를 맺힌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 열매를 맺히는 삶이다.

 

3장은 그 열매의 가장 핵심, 토대, 바로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에 대해 강조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믿음의 열매는 어디서부터 맺히는가? 바로 우리 입술의 말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이고 말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음(강조) 을 말한다.

 

이 3장의 내용은 1장 19-26절 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다루면서 강조하는 장이다.

 

[약 1:19-2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 좋은 밭에 대한 비유 - 듣고 마음으로 받는 성도 - 잘 듣지 못하는 성도 - 들음과 동시에 말하는 성도 - 또 들으면서 성내는 성도 - 속히 듣고 말을 삼가라. 성내기도 삼가라. 그것이 하나님의 의 - 하나님과의 관계,

  •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 온유함 - 야생말이 길들여 지는 것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던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에 우리자신을 드리는 것 그것이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는 것이다.
  • 그리고 받은 말씀을 가지고 왈가왈부 말 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한다. 그래서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 혀를 재갈 물리라 한다. 이 말씀은 3장의 본문을 다루면서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한다.

 

3장

1. 혀의 위험성 경고 -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약 3:1-2a]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신약의 교회 - 수직적인 구조가 평등한 구조가 되었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이 말씀은 예수 외에 우리는 다 형제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인데 거꾸로 작용해서 교회 안에서 세워진 장로나 사도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서로 서로 다 선생이 되려 한다.

 

이 말씀은 선생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한 말씀이 아니라 선생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왜? 혀를 통해 일하기 때문에 - 책임을 마지막 때에 지기 때문이다.

 

  • 더 큰 심판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선생 된 자의 부담 - 설교를 듣고 시험에 든다. 설교를 듣고 실족하게 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들고 전하는데 드는 문제라면 할 수 없다.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부하고 뛰쳐나가기 때문에... 복음이 그런거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잘못된 의도와 잘못된 해석으로 성도를 시험들게 하면 그것은 치명적이다. 이 말씀 그대로....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목사의 사명은 그렇기 때문에 엄중하면서도 위험하다. 남은 구원하고 나 자신이 구원에서 떨어질 각오가 항상 있어야 한다.

  •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잠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말이 많다고 소통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말이 아끼는 사람에게 더 소통이 된다. 말을 안해서 후회한 적은 별로 없지만 말을 잘못해서 후회한 적은 많다.

올 한 해 제 신앙 인생에 있어서 제일 많이 회개하고 후회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대목이다.

입술에 재갈을 물리자. 말이 많으면 결국 실수하게 된다.

 

2. 작은 혀가 제어가 되었을 때의 큰 유익

[약 3:2b]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있을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언제 말해야 하는지 우리의 모델이 되신다.

 

[요 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말의 내용, 전달, 때에 있어서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우리에게도 말에 있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3. 말의 위력 - 온 몸과 온 삶을 결정짓는 것

[약 3:3-5]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 재갈 - 제어능력과 방향성

말 - 자기 고개 방향으로 달리는 습성, 재갈 - 말이 바라보는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

  • 배의 키 - 키에 따라서 어떤 크기의 배에 상관이 없이 배의 방향이 결정된다. 배의 무게와 크기와 관련이 없이 모든 배가 그 키 하나로 조정이 된다.
  • 산불의 원인 - 담배꽁초 하나. 바람에 부딪껴서 일어나는 작은 불꽃 하나

가시나무새 -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딪끼며 울어대며

언제 입술에서 불꽃이 이나? 바람이 불어 마른 가지가 부딪칠 때 .

마른가지 - 가시 - 욕망, 정욕, 탐심, 교만.

 

말-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은사 가운데 하나

사탄- 최고의 은사인 혀를 더럽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까.

타락한 이후에도 창조의 능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말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4. 작은 혀가 제어되지 않았을 때의 엄청난 해악

[약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혀가 모든 불의의 세계가 들어있다. 죄의 가장 주된 통로가 바로 혀이다.

혀가 온 몸을 더럽힌다.

 

[잠 16:27-28]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5. 혀를 길들으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약 3:7-8]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 쉬지 아니하는 - 언제나 돌발하기 쉬운

 

은혜가 없는 바른 말은 무섭고 잔인한 말이 되기 쉽다.

한 사람의 말은 본인만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30초의 말이 30년의 가슴을 태우게 된다. (내적 치유 상담- 부모에게 들은 한 마디 저주가 평생 가슴에 남는다)

길들이다 - 다마조

[막 5: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거라사 귀신 들린 사람- 제어할 수 없다.

내 혀를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없다.

 

 

[골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말- 맛도 있고 멋도 있게 하라 은혜로 말의 맛을 내라.

 

 

  •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쓰신 방법은 다름 아닌 말을 통해서였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그 말씀은 현실이 되었고, 열매가 되었다.
  •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손수 손으로 빚어서 만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가지신 말의 권능을 이어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셨고 그것을 위한 가장 큰 방법으로 말을 사용하게 하셨다. 아담으로 하여금 모든 만물에 이름을 짓게 함으로서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셨다. 모든 이름은 권능자가 지어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만물의 이름을 짓도록 함으로서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신 것이다.
  • 창세기 3장에는 뱀의 유혹 사건이 나온다. 그의 생김새로 유혹을 한 것이 아니다. 선악과가 정말로 대단해서 그것으로 유혹을 한 것이 아니다. 뱀이 인간을, 사탄이 인간을 유혹한 방법도 역시 말을 통해서였다. 말을 통해서 하와의 마음 속에 생각을 불어넣어주었고, 하나님과 같이하는 교만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 주었고 곧 행동으로 범죄하도록 한 것이다.
  • 사람이 범죄하자 사람의 말에도 타락이 왔다.

[창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말에서부터 시작 - 타락한 심성을 가지고 꺼내놓은 자기 표현, 모든 잘못의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 하나님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 그 이후의 모든 인간의 역사는 타락의 역사이고 타락의 역사는 곧 잘못된 인간의 말의 역사이다. 범죄한 인간이 말을 통하여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까지 닿으려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에게 말을 흩으시는 강경책을 쓰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중에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했고, 불신했다.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 예수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오신 분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이루게 하셨고 타락한 인간의 말을 향해 “회개하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공생애를 사시다가 그 분께서는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부활 사건 후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임한 것은 우선 말의 능력의 회복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한 설교의 말씀에 3천명 이상이 회개하여 돌아와 세례를 받았고 많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서 복음이 증거 되었고 귀신들이 떠나갔고, 회개하게 되었고, 기뻐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회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참 예수님의 구원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이 함께합니다. 한 번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이 있고, 권리가 있고, 약속이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말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고 권능이고 약속입니다.

 

결론

  • 자기의 말 훈련하기

[골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말- 맛도 있고 멋도 있게 하라 은혜로 말의 맛을 내라.

 

- 맛과 멋이 있는 말을 하도록 훈련하라.

 

  • 어떻게 훈련하는가?

1. 기도하라 - 다윗의 기도

[시 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2. 작정하고 실천하라.

[시 17: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시 39: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기도하지 않고 도달할 수 없다. 또한 기도와 함께 결단하고 훈련해야 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마자 첫 성 여리고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 - 입에 제갈을 물리는 것 - 침묵하라.

여리고를 정복하니까 곧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이다. 혀를 훈련시키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 혀의 이중성

찬송과 저주 -

가장 높고 고귀한 언어는 찬양

가장 낮고 가장 악한 언어는 저주

 

교회에서는 주여 주여

밖에서는 죽여 죽여!

 

삶이 변화하기 원하는가? 그 첫번째는 혀다.

말이 바뀌면 삶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 열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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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 밭이 되기 위하여 (막 4:1-20)

 

 

몇 주째 계속해서 예수의 열매맺는 삶 - 성령으로 충만한 삶에 대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십자가의 의미

1. 날 위해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 - 구원의 십자가

주님께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행하신 일

왜 내 의지와 상관이 없는가?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에 아담이 하나님을 찾아 갔는가? No,

아담은 숨고 하나님이 아담을 찾았다. 왜? 죄인은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이 죄인을 찾아와서 가죽옷을 입히고 살 길을 열어 주신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것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이고 그것을 믿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우리에게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것을 믿고 그 분을 내 삶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 그 십자가에 나를 못박고 예수가 살게 하는 삶 - 십자가의 삶, 성령의 삶, 예수의 열매가 열리는 삶. 예수가 날 위해 달리신 십자가가 중생의 십자가라면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십자가는 성화의 십자가

 

그리고 동시에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 - 보호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치시는 분 - 우리에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또 가르쳐 주시는 분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함께 있는 것보다 성령이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왜? 예수가 직접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는데 성령은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쳐주시는 분이기에...

 

그런데 성령이 임해도 우리가 그 은혜를 충만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

에스겔 47장 말씀을 통해서 성전을 통해서 은혜의 강이 흘러 처음에는 발목을 적시고, 그 다음에는 무릎까지 차고, 그 다음에는 허리까지....

발목까지 차고 무릎까지 차도 결국 그 길은 누가 원하는 길로 가는가?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릎까지 찼을 때 - 인간적으로는 자신의 삶과 말씀의 삶의 갈등이 고조에 이르러서 내가 원하는 길로도 잘 안가지고 그렇다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로도 여전히 나아가지 않는 인생.

- 그런데 그런 고통의 시간이 신앙적으로는 성령이 나를 점점 주장하는 시간. 나에게는 고통이지만 성령을 알아가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

그런데 열매는 언제 맺히는가? 그 물이 나를 온전히 삼킬 때- 열매가 맺히고, 생명이 넘치고, 바다에 고기가 넘쳐나고, 잎사귀를 통해 치유가 나타나는.... 언제? 물이 나를 삼킬 때

 

지난 주 말씀 제목 두 번째 강을 건너자!

첫번째 강은 홍해 -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이루신 기적

그러나 두 번때 강은 요단강 - 법궤를 앞세워 말씀따라 순종하는 삶. 바다에 발바닥을 내딪는 삶. 성결케 하는 강. 성령 충만, 성령세례, 성결.

그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

 

구원받았으면 되지 꼭 성령 충만해야 하나. 홍해를 건넜으면 되지 꼭 요단강을 건너야 하나?

가나안을 맛보지 않으면 광야가운데서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애굽.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만 입술을 통해 나오는 것은 언제나 불평, 원망, 다툼.

열매맺지 못하고, 그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요 16:21-22]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큰 아들 -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열심을 내었지만 무엇이 없었나? 기쁨이....

 

여기까지가 지난 삼 주 동안의 말씀 - 출애굽과 십자가와 성령에 관한 말씀이다.

 

  • 자, 오늘 말씀은 흔히들 "씨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알려진 예수의 비유.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예수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 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또한 중요한 비유의 말씀이다. .

이 비유의 말씀은 누가복음 8장에,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에도 나와 있다.

특별히 마가복음 4:13에는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비유들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왜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비유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비유는 흔히 씨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밭에 대한 비유이다.

씨는 무엇인가? 14절에 보니까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고 말한다.

씨는 곧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성품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씨앗으로 온다. 약속으로 온다. 왜? 그 말씀이 열매맺을 때까지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도들에게 주는 말씀

설교자는 물론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전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분별하고 증거해야 하는 것이 설교자의 책임이다.

그런데 전하는 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을 듣는 자들도 바르게 들어야 되는 책임이 있다.

 

[막 4: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 이 구절을 읽는데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자, 주님은 배에 올라 앉으시고 무리가 바닷가 육지에 있으면 과연 예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베드로의 배에 올라 그를 제자 삼으신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그 분의 배에 올라타야 한다. 내가 거하고 있는 곳에 그대로 있으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이 본문은 3절부터 9절까지 네 종류의 밭에 대해서 말씀하신 다음에 15절부터 20절까지는 다시 그 밭에 대한 비유를 해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막 4: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막 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2, 15, 16, 18, 20 - 아쿠오라는 동사 반복 "듣다"

그리고 이 본문을 지나서 23-24절에도 보면

[막 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뿌리는 자의 비유가 아니라 밭에 대한 비유이고 이는 곧 듣는 자에 대한 비유이다.

 

세미나 - 지식, 교양

하나님의 말씀 - 생명을 주는 책, 영생을 주는 책.

 

지식을 전하는 강의라면 듣는 자는 그 지식을 선택할 수 있다. 듣고 싶으면 듣고 안듣고 싶으면 안들으면 된다. 그리고 그 책임은 성적으로 나오든가, 아니면 앉아 있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설교는 생명에 관한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느냐 안듣느냐에 따라서 복음서는 예수의 적이 되느냐 제자가 되느냐, 믿는 자가 되느냐 핍박자가 되느냐로 갈린다.

  • 내가 죽고 사는 문제임과 동시에 (영생, 생명)
  • 예수를 죽이는 자인가 따르는 자인가 (빛이냐 어둠이냐)의 문제요
  • 열매를 맺느냐 열매없이 버림받느냐에 대한 문제가 바로 듣는 자의 모습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들음

  • 길 가에 떨어지는 들음
    • [막 4: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 [막 4:14-15]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길 가 - 아까 1절에 예수는 지금 어디에서 말씀을 전하시는가? 배 위에 올라...우리가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 그 분의 배 위로 올라. 산위에 올라 (산상수훈)

길 가는 어디인가? 혼인잔치에 기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주님이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 길 가는 아무리 설교 해도 귓가로 흘려 보내는 것이다. 전혀 들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누가 그런 마음을 주나? 사탄이....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고 주위가 집중되지 않는다. 그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생명을 얻지 못한다. 빛에 거하지 못하고 어둠에 거한다. 열매가 없다.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전혀 말씀과 상관이 없다.

[막 4:11]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그들은 외인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한 명도 외인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 돌 밭과 같은 들음
    • [막 4:5-6]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 [막 4:16-17]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넘어지는 자요
    • 밭 - 말씀을 받았다.
    • 돌짝 밭 - 뿌리가 없다. 깊이가 없다.

- 오해) 돌짝 밭 - 굳은 심령 아니다. 돌 짝 밭은 얕은 밭이다. 뿌리가 깊이 심기지 못한 밭이다.

- 처음에는 깊은 흙에 심은 밭보다 훨씬 빨리 싹이 튼다. 그러나 그게 다다. 자라지 못하고 바람에 날리던, 그냥 죽어버린다.

    •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 - 무엇때문에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나는가? 바로 말씀 때문에

왜? 우리를 훈련하기 때문에. 우리를 부인하고 주가 주인되게 하여야 하기 때문에, 마치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내 허리를 적시듯.

바위 위에 얇게 흙이 덮혀있는 것과 같은 상태의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감정적 흥분과 피상적 열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감정의 상태를 넘어 말씀이 심령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예수께서는 뿌리 없는 믿음이라고 규정하는바 이들의 믿음은 일시적이며 잠정적입니다. 믿음의 진정성 여부는 시험에 견디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검증되어집니다.

    • 모래 위의 집과 반석 위의 집 - 언제 아는가? 비가 오고 물나며 바람 부딪치며 창수가 날 때

모래 위에 지은 집 - 자기 믿음, 자기 생각에 지은 집, 자기 상식 안에 갇힌 믿음 - 왜 우리는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니까... 먼지라는 것 -

반석 위에 -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뿌리가 깊다는 것은 무엇이냐? 말씀 위에 기초한 신앙이고 십자가 위에 기초한 신앙이다.

    •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마치 뿌리 없는 식물과 같이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하며 따라서 그 과실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시험을 견디어낸 믿음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약 1:12).
    • 뿌리 있는 신앙인은 배반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다시 십자가 앞에 나와와 죄짐을 벗도 의의 길, 부활의 길로 들어갑니다.

 

  • 가시떨기에 떨어지는 들음
    • [막 4: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 [막 4:18-19]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 밭이 더럽다.

 

말씀을 들을 때에

- 길가, 돌짝 밭 - 아쿠 소스, 과거형 동사

- 가시 밭 - 말씀을 듣되(현재 완료 진행형) - 상당한 기간동안 들은 것을 의미.

 

상당히 오랫동안 들었을 때에도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못하면 열매맺지 못한다.

무엇으로 가득찬 마음 -

1. 염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2.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 에돔 자손, 아말렉 자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시인과 촌장 - 가시나무

지금은 목사가 된 하덕규 목사가 젊은 시절 영적, 세상적 방황의 중점에서 불렀던 노래. 이 가시떨기 마음 밭을 묵상하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외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곳 없네 ...

 

결국 가시는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누리고 싶은 것

사도바울의 고백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런데 내가 버린다고 다 잃어버리는가? 오히려 얻는다. 즐거움을 얻고 기쁨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내가 취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자기려고 하는 것은 나에게서 멀어진다.

 

  • 좋은 땅
    • [막 4: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 [막 4: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떨어지매 자라 결실하는 밭

다른 밭 - 듣되

좋은 땅 - 듣고 받아 (파라 데코마티아) - 매우 기뻐하다. 영접하다. 환영하여 머물게 하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목사님은 이 본문을 연구하시면서 길가는 밭이 아닌 굳은 땅, 돌짝 밭은 얕은 땅, 가시떨기는 더러운 밭이기에

좋은 땅은 무엇이냐? 곧 부드럽고, 깊으며, 깨끗한 심령이라고 표현 합니다.

 

물론 우리는 다 가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성전의 기물들은 다 조각목을 사용하여 만드셨는데 그 조각목은 결국 가시나무 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나무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이 가시나무를 가지고 언약궤를, 성전의 기구며 성막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를 불렀던 하덕규씨가 젊은 시절 방황을 끝내고 참 시인이 되고 목사가 되었듯이 하나님은 가시나무를 다듬어 주의 보혈로서 씻기시고 은혜의 금으로 덧입혀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왜 이 비유를 알아야 다른 모든 비유를 안다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좋은 땅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어떤 좋은 말씀을 들어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한 해는 우리 교회가 열매 맺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우리 로고스 교회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아니라 출산하고 열매맺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빈센트 반고흐 씨뿌리는 사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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