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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2장 1-7절  사랑병

 

  • (아 2:1)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1장 13-14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그의 사랑을 몰약 행주머니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하며 칭송합니다. 자신의 치유자(몰약) 과 자신이 피하고 거할 피난처(엔게디의 포도원)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2:1장에서는 자신의 모습은 사론의 수선화, 즉 넓은 들판에 피어있는 흔하디 흔한 들꽃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론은 팔레스틴 지방에서 가장 넓은 평원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찬사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기를, 자신은 바로 이 넓은 들에 핀 야생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겸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들판에 피었다가 곧 시들어 버릴 사론의 들꽃에 불과합니다.' 이게 신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들에 ,핀 민들레와 같이 아무 보잘것도 없는 들판에 꽂과 같다고 겸손한 표현을 합니다.

골짜기의 백합화 역시 자신의 낮은 위치와 환경을 표현한 것입니다. 

내가 사는 곳은 왕궁도 아니고 초라한 들판이나 골짜기에서 포도원을 돌보는 자요 거기에 피어있는 흔한 꽃이라는 것입니다. 

 

  • (아 2:2)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신랑은 여인의 이 말을 받아 백합화는 백합화인에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하며 그녀를 자랑합니다. 

가시나무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시로 인해 순종하지 못하고 온전히 교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접근하게 하지 못하는 예루살렘 여인들의 모습입니다. 이 가시들 곁에 있으면 상처를 받습니다. 술람미 여인 또한 그녀들의 곁에 있으면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며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왕이 보기에 술람미 여인은 그러한 예루살렘 여인들과는 다른 가시나무 사이에 있는 한송이 백합화입니다. 백합은 가시들에 둘러 쌓여 있어도 그 정결함과 향기를 보존합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완전히 콩깍지가 씌워져 술람미 여인의 피부는 거무스름하며 겉으로 보기에 보잘것 없었지만 솔로몬에 눈에는 술람미 여인이 사랑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허물과 실수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 장점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시의 많은 예루살렘 여자들이 있었지만 솔로몬의 눈에는 오직 술람미 여인만 보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콩깎지가 씌운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여인이었지만 솔로몬의 눈에는 솔로몬이 선택한 술람미만 사랑스러워 보였던 것입니다. 

 

  • (아 2:3)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술람미는 솔로몬을 향해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그냥 수풀로 표현하고 솔로몬은 거기에 우뚝 서있는 사과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가시나무 속에 백합화처럼 수풀속에 사과나무도 단연 돋보였을 것입니다. 술람미는 솔로몬을 가장 멋지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또한 내안에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찬양을 하듯 오직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신랑을 위해 여인이 다른 모든 것은 수풀입니다. 당신만이 나의 사과나무입니다. 하는 것은 어쩜 너무 닫연하면서도 헌신적이고 순결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아 2:4)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이렇게 서로가 사랑가운데 교제하니 술람미 여인은 신랑으로부터 무수한 영적 즐거움을 얻습니다. 잔칫집은 사랑의 교제 안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즐거움과 행복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즐거움은 그녀에게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게 합니다. 내 위의 깃발은 신랑으로 인해 드높아진 자신이 누릴 기쁨이고 승리이고 행복입니다. 

 

  • (아 2:5)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난해한 구절 가운데 하나인데 신랑이 주는 기쁨 가운데 취하여 술람미 여인은 지금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그런 사랑에 취해 그녀는 지금 이성을 회복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다른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건포도와 사과로 나를 좀 도와달라고 한다. 외적으로 강해지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건포도와 과일은 단지 외적인 즐거움과 건강함을 주는 것들이다. 외적인 안위이다. 예루살렘 여인들이 먹고 힘을 내는 것들이다. 

 

  • (아 2:6)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그녀가 사랑에 취해 비틀거미면서 있을 때에, 혹은 다시 세상 가운데서 정신을 차리려 애쓸 적에 신랑은 그녀에게 다가와서 왼팔로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안아 줍니다.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되고 그녀를 안아 줌으로 세상적인 즐거움이, 유혹이, 풍파가 그녀를 훼방하거나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흔들려도 끝까지 그녀를 지키는 것은 왕의, 신랑의 품입니다. 

 

  • (아 2:7)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신랑의 품으로 인해 다시금 온전한 사랑에 거한 여인은 자신이 아름다울 수 있는, 왕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금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예루살렘의 여인들로 인해서 훼방받거나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에 의탁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즐거움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을 것을 이야기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주님의 사랑을 받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난 사랑받을 만해!라고 하며 교만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모습을 잘 알고 있는가? 

 

2. 주님의 사랑을 받는 나의 눈에는 오직 주님만 보이는가? 다른 모든 것들은 수풀처럼 여기는가? 때로 다른 것에 현혹되어 주님을 놓쳐 버리지는 않은가? 건포도와 사과를 의지하듯 사랑받는 중에 다시금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는 않는가? 

 

3. 자신을 흔들고 깨우는 것들로 인해 방해받고 있는가? 그것들이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있는가?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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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1장 12-17절 (만남) 

 

서로를 사랑하며 갈망하던 왕과 술람미 여인이 드디더 만나 서로의 존재를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바로 12-17절까지의 장면- 남녀가 서로 주고 받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으로서 1장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7절에서 ""네가 양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했던 여인이 8절에서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했던 왕이 드디어 12절에 만난다. 연합한다. 

사랑하는 자를 갈망하는 기다림이 12절의 참되고 복된 만남으로 이어진다. 

"기다림"의 대림절의 끝에 이런 참된 만남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12절)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품어냈구나 

 

누군가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 비로서 그에게 다가가 꽃이 된 것처럼 햇빛에 그을린 검은 피부를 가진 여인은 비로서 왕의 곁에서 그녀의 향을 품어냅니다. 

막 14: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에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바로 그 "나드 한 옥합" 

감히 사람들이 값을 매길 수조차 없었던 그 값비싼 나드 한 옥합-  술람미 여인의 삶의 전부가 담긴 향기가 비로서 왕 앞에 퍼져 나가는 것입니더,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

그러나 우리의 향은 결국 그리스도께 품어지는 우리의 삶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를 품어내느라 애쓸 필요없이 오직 주님 보시기에, 그 분께 드리는 향기라면, 순전한 나의 삶의 나드 기름내음이라면 가장 향기롭고 고귀한 삶일 것입니다. 

 

13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자신의 순전한 나도 기름의 향을 품는 여인이 이젠 사랑하는 남자를 통해 흘러나는 향기를 표현합니다.. 

내 품 안의 몰약 향주머니,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 

 

- 어제 동방박사의 예물을 소개하면서 몰약 -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구별시키기 위해 사용하였던 관유에 사용된 기름, 모든 성전의 기구들을 구별시키는데에 사용되었던 기름,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나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몸을 닦았던 그 기름이 바로 몰약 

 

나드 기름이 아름다운 향으로 주위를 향기롭게 하는 향기였다면 

몰약은 그 의미가 "쓰다"라는 의미로 악취를 제거하며, 부패를 막았던 방부제로 사용했던 향이 바로 몰약입니다 

그래서 시체의 부패를 막고, 죽음으로 발생되는 모든 향을 억제하기 위해 몰약을 썼던 기름이 몰약입니다. 

 

왜 술람미 여인은 왕을 내 품 안의 몰약 향주머니라고 표현했을까요? 

궁전이 아닌 포도원의 고된 노동을 통해 감히 왕 앞에 나설 수 없는 땀냄새와 세상의 악취가 그 분 앞에 가면 내 안의 모든 악취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감히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그 분의 보혈의 피가 내 모든 삶의 죄와 악취를 깨끗게 하실 분입니다. 

 

  • 엔게디라는 곳은 "염소새끼의 샘"이라는 뜻으로 다윗의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했던 지역의 이름입니다. 군대장관이었던 다윗이 도망치며 삶의 극한에 쫓겨야만 했던 그 장소는 동시에 그 지역의 온갖 꽃들이 많았던 곳으로도 유명한데 고벨화는 가장 높이 피는 꽃으로서 그 지역의 모든 꽃들을 다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을 헀다고 합니다. 
  • 즉 수많은 꽃들이 있지만 그 꽃들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특별한 꽃이 고벨화, 수 많은 여인들 중에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고 만들어준 왕의 아름다움, 왕의 향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러한 여인의 사랑의 고백에 왕은 화답합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비둘기 같은 눈은 어떤 눈일까요? 

1) 비둘기의 눈은 특징이 있는데 그들은 정면만을 응시하지 곁눈질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비둘기의 눈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순결한 눈입니다. 

2) 요나서를 통해 나누었지만 비둘기의 의미는 평화의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비둘기의 눈은 평화의 눈입니다. 사랑의 눈은 심판의 눈, 비난의 눈이 아닌 평화로운 눈입니다. 

3) 비둘기는 또한 신앙적으로 온유함을 상징합니다. "비둘기 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라는 찬송가 가사가 있듯 그 눈은 온유한 눈입니다. 성경에서 온유란 "길들여진"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씀에 훈련된"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 순전하고 평화로우면, 온유한 눈, 왕은 술람미 여인을 통하여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녀의 눈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

눈 속엔 마음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왕은 술람미 여인의 눈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느끼며 그녀의 안에 있는 진정한 어여쁨을, 내면의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구나" 

왕과 술람미 여인은 지금 왕의 침상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일하고 있는 자연, 술람미 여인이 헤메던 대 자연 속에서 만나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그 곳이 결국 가장 아름다운 침상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세상은 점점 편안한 세상을 향해 나갑니다. 기계가 대신 일을 해주고 

이젠 인공지능이 대신 생각까지 해 주려 합니다. 

사람들은 힘든 노동을 피하고, 좀 더 편하고 쉬운 삶을 향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 편안함이 우리 삶을 평안으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를 평안함으로 인도하는 것은 결국 사랑입니다.

평안함은 우리를 희생의 삶, 십자가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만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희생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그래서 결국 완전한 평안함을 얻도록 인도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왕을 통해 지신의 진정한 내면의 향을 드러내고, 왕의 향으로 자신의 밖에 스며든 모든 세상의 악취를 몰아냅니다. 

 

그리스도와 함꼐 하는 신앙생활은 진정한 내 향을 찾아 그 분께 드리는 것이고 그 분으로 인해 잘못된, 악취나는 내 모습을 닦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사랑의 교제가 오늘도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찬양) 주 보혈 날 정결케하고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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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1장 8-11  여인 중에 어여쁜 자 

8절은 술람미 여인의 친구들이 하는 말이라는 해석과 이어지는 9-11절까지와 함께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왕의 말이라는 해석이 갈리지만 저는 8-11절까지를 함께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는 왕의 첫 말이 등장하는 부분으로 보고자 한다. 

왕의 첫 마디는 무엇인가?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아가서 song of songs. 노래 중의 노래, 최고 중의 최고 
사랑하는 여인으로서 당연한 표현이지만 왕의 여인을 바라보는 첫 마디는 여인 중에 가장 어여쁜 자, "여인 중의 최고"라고 자신의 여인을 부른다.
사랑은 대상을 최고로 대우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업슨 최고라고 여기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연인들이 다툴 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저 사람이 더 이뻐 내가 더 이뻐? 
처음 사귈 때는 아무리 예븐 연예인과 비교해도 자신의 연인을 가장 이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오래된 연인- "너 자신을 알라" "누가랑 비교를 해..." 
그런데....사랑은 그게 누구건 내가 사랑하는 자를 가장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 - 우상숭배 
중고등학교 때 성경을 배우면서 우상숭배를 간음에 비유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호세아서를 비롯한  성경의 여러 곳에서 우상숭배를 간음에 빗댄다. 
왜? 최고이신 신랑을 버리고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피부가 검은 술람미 여인을 최고로 아름다운 여인이라 부른다.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날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은, 아들을 주시면서까지 날 구원코자 한 그 사랑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날 그렇게 최고로 보신 것이다. 

지금 술람미 여인과 비교되고 있는 여인들은 어떤 여인들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날마다 자신을 치장하며 왕에게 잘보이기 위해 애쓰는 여인이다. 그런데 왕의 관심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자들에게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왕이 맡긴 일을 하느라 외모를 관리할 여력이 없이 거무잡잡하게 변한 그 여인을, 하나님의 포도원을 가꾸는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여인을 가장 아름답게 보신다. 세상은 외모를 치장하지만 신앙은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7절에서 당신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여인의 물음에 왕의 답변은 무엇인가?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 (8 b) 

우리는 영이신 주님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한다. 그분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동시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그 분은 당신이 계신 곳을 말씀하신다. 
1) "양 뗴의 발자취를 따라" - 성도들의 무리를 따라. 도마가 다른 제자들과 떨어져 있을 때,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그 무리와 함께 거할 때, 주님은 그 분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도마를 만나주신다. 주님은 성도의 무리 가운데 거한다. 또한 신앙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2)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 목자는 양들을 인도하는 자다. 좋은 목자는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신다. 가장 좋은 목자는 우리의 보혜사 성령님이시다. 그는 우리를 예수께로,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신다. 또한 좋은 영적 지도자는 우리를 단순히 지식으로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다. 늘 기도한다. 목사이기 전에 목자가 되게 해 달라고...
3) 너의 염소새끼를 먹이라: 양들틈에서 염소는 늘 말썽을 일으킨다. 그러나 염소는 또한 양 틈에서 양들이 엉커붙지 않도록 늘 떼어 놓는 역할을 한다. 목자를 따름과 동시에 주님을 따르는 자는 자신의 염소새끼를 먹이는 자이다. 공동체 안에서 미운 오리새끼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자를 외면하지 말고 먹이는 자, 돌보는 자, 주님은 무리가 아닌 그 안의 제자를 찾으신다.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준마는 왕이 타는 훈련된 말이다. 히브리 전통에서 준마(훈련된 말)이 의미하는 것은 "온유함"이다. 온유함은 훈련된 말이라는 의미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 온유한 목자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따른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였다. 
왕은 겉만 치장하며 수근덕 거리는 자에게 관심이 없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며 말씀에 훈련된 자를 바라보신다.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구나(10) : 예루살렘의 여인들처럼 따로 보석으로 치장하지 않았어도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포도원을 돌보고 자신의 염소새끼를 먹이기 위해서 땋은 머리털로, 치장한 보석이 아니라 소박한 목의 구슬꿰미로 인해서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왕이 원하는 아름다움과 자신이 준비한 아름다움이 다르면 어떨까?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11) : 술람미 여인은 이미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정결한 마음과 순결한 사랑으로 인해 아름답다. 그런 여인을 위해 왕은 더욱 그녀를 아름답게 할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금사슬은 왕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에게 주는 선물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자에게 주는 면류관이다. 

진 선 미 - 히브리 전통에서도, 철학의 전통에서도 참된 것은 곧 선한 것이고, 선한 것은 곧 아름다왔다. 
그런데 현대의 문화는 미의 기준을 바꾸어 버렸다. 아름다움은 참된 것과 상관이 없고 오히려 위조되고 꾸미고, 가장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아름다운 자들이 선함과는 상관이 없게 된다. 세상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준과 멀어졌다. 

주님은 지금도 아름다운 자를 찾으신다. 
그 아름다운 자는 어떤 자인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자기의 피부가 검어지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의 치장대신 소박하고 순수하게 따은 머리, 구슬목걸이라도 주님은 우리 안의 중심에 녹아있는 아름다움을 보신다. 

그 주님의 눈에 띄이고 싶지 않은가? 술람미 여인처럼 주님의 눈에 아름답게 비취이고 싶지 않은가? 

찬양)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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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1장 5-7절 포도원지기와 양치는 자

 

(아 1:5)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아 1:6)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아 1:7)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1. 예루살렘 딸들아!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인들에게 자기를 변호하고 표현하는 구절이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성전에 거하는 여인들, 피부가 희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 그러나 자신은 햇빛에서 일하는 동안 피부가 검어져 있는 초라한 여인. 그러나 왕으로 부터 사랑받는, 왕의 사랑을 받는 여인. 

피부가 검다. 하류층, 노동자... 햇빛에 의해 그을린... 

자신의 오빠들이 자신에게 포도원을 지키라 노하여서 일하였으므로 피부가 검어졌다. 

마지 막내였던 다윗이 집안의 가장 궂은 일을 담당했듯이 술람미 여인 역시 그 집안에서, 혹은 왕의 궁전에서 다른 여인들처럼 자신을 가꾸며 치장하며 산 것이 아닌 궂은 일을 맡아 하던 여인이다. 

 

2.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답다. 

  •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크게 경험하게 될 때에 우리 안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가장 깊은 지식이 생겨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우리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분명하게 인식하는데서부터 은혜가 시작된다. 왕궁에 거하는 피부가 하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술람미 여인은 비로서 자신이 왕이 거하는 곳에 있는 자들과 다른, 피부가 검은 자라는 의식을 하게 된다. 빛으로 인해서 자신의 모든 흠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흠을 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이 왕에게 선택된 사랑받는 자, 그 분 안에서 아름다움을 인젇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언제 우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오직 그 분의 사랑을 받을 때이다. 우리가 아름다울 때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날 때, 즉 하나님이 사랑하실 만한 그 분의 모습이 비춰질 때에만 아름다운 것이다. 
  • 신랑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여인을 아름답게 한다. 나 자신이 스스로의 눈에 검게 보이면 보일 수록 그 분의 눈에는 그만큼 더 아름답게 보인다.그리고 그 분의 빛으로 나를 빛나게 하신다.  

 

3. 게달의 장막 같을 지라도 솔로몬의 휘장 같구나. 

  • 게달의 장막은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검은 천막을 가리킨다. 특별히 게달의 장막은 늙은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구멍이 숭숭히 뚥히고 질긴 가죽으로 가죽 중에서도 못쓸만큼 질이 좋지 않은 가죽이다. 
  • 성전안에서 보호받으며 사는 예루살렘 여자들 앞에서 술람미 여인의 얼굴은 검은 면만보이고 계달의 장막같이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왕에게 사랑을 받는 여인은 왕의 휘장으로서 그 모든 흠을 가리운다. 휘장으로 말미암아 여인의 모든 허물은 가리워지고 오직 거룩하고 아름다운 자로서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가린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모든 장막, 휘장을 가르신다.  그의 옷으로 우리를 덧입히신다. 

      

4. 내가 햇빛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 그녀는 본래 검은 피부가 아니었다. 검게 된 이유는 하루종일 포도원에서 일 할때 햇볕으로 거무스럼하게 그을렸기 때문이다. 내가 '포도원에서 일광에 쬐어서'라고 말한다 . 포도원은 솔로몬의 포도원이다,  어머니와 오라비들이 소작인이었으나 무엇 때문에 노했는지 술람미여인에게 포도원을 지키도록 했다. 
  • 자신의 오라버니를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한 어머니에게서 나왔으나 아버지가 다를 수도 있고 무슨 연고인지 그 형제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돌보아야 할 포도원지키는 일도 술람미 여인에게 맡긴 것이다.. 
  • 그들은 술람미 여인과의 관계도, 포도원을 맡긴 왕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기에 그 일을 그들이 미워했던 술람미 여인에게 맡겼다. 억지로 주어진 일이었지만 그녀을 그 일을 통해 왕을 만난다. 왕의 사랑을 받는다. 왕의 부인이 된다. 

ex) 구레네 시몬 - 남들이 외면하는 십자가, 억지로 떠밀려온 십자가를 통해 주의 자녀가 된다. 초대교회에 존경받는 자가 된다.  

  • 여기에서 우리는 왕과 술람미 여인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알 수 있다. 술람미 여인은 왕이 소유한 포도원을 돌보는 자였다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을 잘 돌보느라 피부가 검어졌다. 즉 자신에게 맡겨진 일상의 작은 일에 충성하다가 보니 어느덧 자신의 피부가 검어진 것이다. 자신의 살갗을 태운 태양빛은 육신의 눈으로 보일 때는 자신의 피부를 태운 고난이고 역경이었지만 결국 자신을 아름받게 하여준 하나님의 빛이 비춘 통로가 된다. 
  • 포도원을 지키느라 햇빛에 피부가 그을린 여인이었지만 주인 앞에서 고백할 때는 언제나 난 나에게 주어진 것을 잘 관리하지 못한 모자람의 고백이 나온다. 그러한 겸손은 외식적인 겸손이 아니라 은혜를 경험한 자가 중심에서 드리는 진정한 고백이다. 
  •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 의를 위해 핍박을 당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아름답게 보신다. 위로해 주신다.  

 

5.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 술람미 여인과 왕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술람미 여인은 왕이 소유한 포도원을 돌보는 자로, 왕은 양을 돌보는 목동이 되어 만났다. 양을 어떻게 돌보았냐면 마치 친구를 사귀듯 사랑으로 돌본 것이다. 그곳에선 왕의 권위도, 권세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선한 목자로서 양들의 친구가 되어준 것이다. 처음에 술람미 여인은 그가 왕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어찌보면 자신과 같이 굳은 일을 맡은 친구로서 그를 대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의 삶으로 다가오신다. 
  • 하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세상은 빛으로 오신 주님을 외면하지만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 술람미 여인은 그러한 선한 목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을 하나도 가리우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 내게 말하라: 사랑하는 자를 갈망하는 마음. 같이 있고 싶어하는 마음. 

 

세상 어느 누구도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자가 없다. 나의 존재를 알아주고, 나의 가치를 알아줄 때, 우리는 부러울 것이 없는 충만한 상태가 된다. 

주님은 나를 아시는 자이다. 나의 이름을 부르고 검게 그을린 나의 속 마음을 알아주시는 분이시다. 

그 분 앞에 우리는 아무 것도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다. 내 모습 그대로 보여도 날 사랑하시는 그 분이 바로 나의 왕, 나의 신랑, 나의 예수님이시다. 

 

찬양)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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