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2021  이전 다음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  

찢김이 없는 교회 공동체 (요한복음 21장 1-11절) 

 

1. 배경 설명 

(1절) 그 후에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2번씩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신 후에

부활을 통해 20장 31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심을 믿게 하셨을 때에...

그 이전에도 고백은 있었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 믿음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떨어진 믿음을 부활을 통해 다시 일으키신다. 

그런데 그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음에도 제자들의 반응 - 

디베랴 호수 - 요세푸스의 유대상고사,  갈릴리 호수는 게네사렛 호수, 혹은 디베랴 호수라고도 불린다. 다 같은 호수를 가리키는 명칭.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다. 

 

그런데 날이 새어갈 때 쯤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배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져라"하셔서 말씀대로 순종하셨더니 백 쉰 세 마리의 물고기를 잡는 장면...

 

이 장면을 보면 성경을 좀 읽으신 분들은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에 장면을 떠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장면은 주일설교를 통해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누가복음 5장 1-11절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2. 두 장면의 공통점 

1) 게네사렛 호수가, 요한복음에서는 디베랴 호수라고 불렀지만 좀 전에 설명드린대로 같은 지명.

2)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눅 5:5),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더니" (요 21:3) - 물리적인 시간의 밤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영혼의 상태를 가리키는 '영혼의 밤'을 가리키기도...

3) 주님의 말씀이 임한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4)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그 내용은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주님의 말씀이 임했다.. 

4) 제자들의 순종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6),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 21:6) 

 

3. 눅 5장 묵상 

누가복음 5장의 장면은 베드로를 부르셔서 제자 삼는 장면 - 물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 

그의 배에 오르셔서 - 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주님이 되심, 베드로와 같이 3년간의 공생애 시작 

                              - 주님과 동거동락하면서 그 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서 배우고, 그리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역 

                              - 그런데 실수도 많고, 꾸중도 듣고, 마지막 십자가의 장면에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

                              -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 주님을 위해 죽겠다는 신념이 철저히 깨지는 절망을 경험 

 

4. 요 21장의 묵상 

왜 처음으로 돌아갔을까? 주님과의 3년간의 동거동락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배우고, 보고, 순종했으면, 변해도 수천번은 변했어야 할 베드로와 제자들.

그것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보게 되고, 그 분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본 그들이 21장에서 너무도 초라하게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며 사람 낚는 직분을 다 포기하고 세상을 향하는 마음

주님은 부활했지만 이들의 삶에는 생명이 없어져 버렸다. 

생명은 무엇인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에서 공급되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인데 예수는 부활했음에도 그들에게는 그 부활의 능력, 생명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20장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사역 

1) 첫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면서 "성령을 받으라" (20: 21-22) 

그런데 그 파송(선교적 사명)과 성령의 사건은 사도행전2장에 가서 성취된다. 

 

2) 두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서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29절) 

지금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어도 왜 생명력을 잃고 무기력하게 세상으로 향하고 있는가? 주님을 보지 못하므로, 지금 내 곁이 있음을 알지 못하므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3)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31절) 

너희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야 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 

-> 잃어버린 생명을 얻게 할 것이다. 하시면서 21장에 생명력을 잃고 무기력에 빠진 제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장면이 21장의 사건이다. 

 

5. 첫 부르심과 부활 후 두 번째 부르시는 사건은 무엇이 다른가? (오늘 설교의 주제. 중심) 

1) 그들은 지금 똑같이 "영혼의 밤"에 처해있다. 그런데 첫번째 밤은 예수 없이 지내던 그들이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밤이다. 두 번째 영혼의 밤은 늘 주님과 함께 했지만 지금 옆에 주님이 없어서 겪게 되는 "주님의 침묵, 주님의 부재"로 말미암아 생기는 영혼의 밤이다. 은혜도 알고 말씀도 알지만 그 주님의 임재가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을 때에 믿는 자는 또 다시 영혼의 밤은 맞는다. 

 

2) 누가복음 5장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주님과의 깊은 관계" 무리가 아닌 제자된 관계, 얕은 물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주인되게 살아가는 깊은 신앙, 깊은 믿음을 요구하신다. (이것은 제자로의 초대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21장의 부르심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하신다. 오른편에 던지라는 것은 바른 관계, 바른신앙,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다시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읽은 본문 뒷 부분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당부와 말씀 

1) 네가 날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치라. 

사랑으로 일하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고, 주님이 하신 사랑으로 영혼을 구하라 .

2)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8절) - 네가 주인 되지 말고 주님의 주인되게 살아라. 베드로- 내가 언제 내 마음대로 행했습니까? 주님과 늘 함께 하지 않았습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동행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생각과 동기로, 어제 디모데전서 말씀처럼, 주님의 시각으로 일하라. 

왜? 제자들의 동기 - 주님 옆에서 높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그 영광을 함께 누리기 위해, 십자가를 피해, 도망하던 모습...

3) 22절: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 다른 사람과 경쟁하거나 의식하지 말고 주의 사역 감당하라. 

말씀을 들을때- 저사람은 어떨까, 저사람이 변해야 되는데 하지 말고 오직 나만 바라보고 따르라. 

 

6. 주님의 약속, 보장 

10-11절)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생선 - 그물을 내려 낚은 것 - 영혼 구원, 혹은 우리 삶의 열매 

그런데 -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눅 5:6) 물고기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물이 찢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베드로의 삶이 그것을 보여 준다. 

지기 열심, 자기 생각과 신념으로 따르다가 십자가 앞에서 도망하고, 제자들을 이끌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되고, 생명을 잃어버린 21장 초반에 나타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 - 찢어진 그물의 상태다. 

 

그러나 경쟁이 아니라 사랑으로, 높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김으로,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으로 성령을 통해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더 이상 찢어진 그물이 아니라 찢김이 없는 그물롯, 무기력하고 절망하지 않는 삶으로, 다툼이나 분열이 없는 교회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약속하고 계신 것이다. 

 

그 말씀 그대로 더 이상 제자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순교할 지라도 그들의 삶이 찢김이 없이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사랑의 공동체, 연합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 주 동안 내년도의 목회의 방향과 표어를 간구하면서 묵상할 때에 주신 말씀 요한복음 21장 11절의 말씀이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한복음 21장 11절) 

 

  • 올라가서 끌어올리니 (순종하는 공동체) 
  • 가득히 찬 큰 물고기 (열매맺는 공동체) 
  • 이같이 많으나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연합하는 공동체)

 

아직 이 말씀의 의미를 다 새기지 못했다. 성도들 모두가 내년에 우리 교회가 힘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찢어지지 않은 그물의 의미와 이를 위해 우리가 새기고 힘써야 할 것들을 묵상하며 의미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찢김이 없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며, 막연한 많은 수가 아니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열매들이 풍성한 우리의 남은 생이 되기를, 그런 2022년을 맞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Posted by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다니엘 2장 13-19절 위기 속에 경험하는 하나님 

 

한자로 위기 (危機) - 위험할 때 위, 기회할 때 기,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 

의학의 아버지, 의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의 그 히포크라테스

“위기는 어떤 질병의 국면을 의미한다. 위기 국면은 병세가 악화되든가 호전되는, 생과 사가 달린 결정적 국면이다.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경과가 결정되는 국면이 위기이다.” 

 

위기는 전환점이다. 생명의 전환점, 발전의 전환점, 교회나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부흥이나 성숙을 향한 전환점- 바로 위기이다. 

 

오늘 다룰 주인공 다니엘은 다니엘서 전체를 통해서 세 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1. 1장에서 소개되는 유대땅에서 바벨론 땅으로 끌려가게 되는 위기 (성전파괴) 
  • 바벨론 : 남왕국 유다를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이었던 이스라엘 성전을 불태운 나라.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그런데 그 두나라의 정책은 사뭇 달랐다. 
  • 앗수를는 역대제국 중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잔인한 국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정복하자, 자기 나라 사람들을 북왕국 이스라엘로 보내어 그 땅을 정복하게 하고, 혼인정책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피를 더럽힘. 두고 두고 사마리아를 비롯한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게 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김. 
  • 바벨론 – 이스라엘의 유능한 젊은이, 인재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가서 그것도 왕궁에서 최고의 음식과 환경을 제공하며 바벨론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침. (그런데 그 기간은 정해져 있는 3년동안, 3년 후면 철저한 바벨론 왕의 신하가 되게 하는 정책) - 문화적으로 바벨론 흡수 정책, 스스로 유대인임을 포기하고 바벨론화 되게 하는 정책 –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때까지 세상 문화를 바벨론 문화로, 사탄의 교묘한 정책을 바벨론 정책으로 말하는 교묘하고 기독자를 서서히, 스스로 무너뜨리게 하는 전략을 썼다. 

- 이 때 다니엘과 세 친구들 - (8절)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 그런데 왕의 진미를 먹은 자들보다 더욱 그들을 영육간에 빛나게 하셔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면서도 왕의 총애 속에서 바벨론 나라의 지혜자로 서게 하신다. (다니엘서를 다루면서 깊이 있게 볼 장면)

 

2. 오늘 다루게 될 두 번째 위기 

1) 바벨론의 느부가넷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무언가 꺼림칙하고 불길한 꿈이었는데 그 꿈 내용조차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나라의 모든 술객들과 지혜자들을 불러 명한다 

 

(5-6절) 왕이 갈대아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의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 것이요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2) 갈대아인: 바벨론사람을 일컫는 말, 여기서도 중요한 포인트, 아브라함이 원래 어디사람이었는가? 갈대아우르지방- 바로 바벨론 지방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여 이스라엘을 이루어 살다가 범죄하니 다시 갈대아지방으로 들어감 

(3) 위기- 꿈과 그 해석을 풀면 – 선물과 상과 큰 영광 Vs 풀지 못하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정이 쑥대밭

  •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회는 보이지 않고 무엇만 보이나? 위험만, 죽음만, 불안만 보인다. , 위기의 때에 사람들의 일반적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꿈을 말하고 해석하는 것이 당시 술객의 일인데 꿈을 알려주지도 않고 그 꿈을 말해주고 그 해석도 말해 달라고 하니 누가 그 명령 안에서 기회를 꿈꿀 수 있겠는가? 그러니 7절에 술객들이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러면 우리가 해석하겠습니다.”라고 요청하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왕은 “시간 끌지 말고 못 맞추면 죽이고, 그러다가 그 땅의 모든 술객들과 지혜자들을 다 죽일 것이라 명한다. 이러한 때에 다니엘과 세 친구 역시 아닌 밤 중에 갑자가 죽음의 위기에 몰려 버린 것이다. 

 

자, 이제 다니엘은 어떻게 이 위험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 가는가? 

(14-16) 그 때에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에게 물어 이르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하니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알리매,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1) 어찌 그리 급하냐- 시간을 주시면 

- 위험의 때, 두려움의 때: 생각이, 이성이 마비된다. 판단력과 분별력이 흐려진다. 믿음도 사라진다. 두려움은 불안함을 준다. 불안함이라는 것이 평안치 않다. 평화를 빼앗기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 :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 뿐이다. 

인류 역사상으로 전염병이 퍼질 때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전염병 자체가 아니라 전명병이 주는 두려움이다. 전염병과 전염병이 주는 두려움은 다르다. 두려움은 어떤 문제가 주는 그림자이다.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문제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할 여러 가지 영향력에 대한 것을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생각한다. 의사한테 건강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마치 우리의 생각은 그 병의 최악의 상황까지 나아가 벌써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이스라엘을 이끌던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리더가 되었다. 여호수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 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주신 말씀,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그러면서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신앙인에게도 두려움은 몰려온다. 위대한 신앙인은 두려움 자체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중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자이다. 

 

모두가 죽음의 위험에서 생각과 마음이 무너졌을 때에, 다니엘은 차분했다. 조급하지 말고 시간을 얻었다. 그 시간은 무너져버린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고 깨어져 버린 평안을 다시 얻는 시간이다. 

 

위험한 순간에 우리가 먼저 다스릴 것은 우리 마음이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이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두려움이, 불안함이 올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감정에 압도되어 무너지지 말고, 기도와 간구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고, 대화하고) 큰 의미에서 다 기도이지만 간구는 지금의 상황을 낱낱이 아뢰고, 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생각과 마음을 지킨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바르게 생각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상황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바라볼 것 –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 무엇으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유명한 묵상집의 저자 오스왈트 챔버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두려운게 없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두려워진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속엔 다른 두려움이 들어올 틈이 없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를 얽매였던 모든 다른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

 

여러분의 상황이, 문제가, 여러분을 두렵게 할 때, 위험한 일을 만날 때-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평강을 얻는 지혜가 함께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그런데 뒤에서는 바로가 군사를 이끌고 뒤따라오고, 앞에는 홍해라는 큰 바다가 가로 막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라.“ 

두려워말로, 가만히 서서 (조용히 엎드려서ㅡ) 바라보라. 

 

떠들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요해진다.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모세의 영혼도 고요해진다. 그들의 눈엔 이젠 바로의 군사도, 홍해도 아닌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2) 지혜 가운데 일의 순서를 세우는 것 

다니엘 – 근위대장 아리옥이 자신을 죽이러 왔다. - 왜 그리 급하냐 하면서 왕을 만날 것을 청한다. 

왕에게 무작정 시간을 구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주시면 그 해석을 알려 드리겠다 말한다 .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믿음의 동역자 세 친구들에게 그 일을 알리고 중보를 요청한다. 

그리고 세 친구들과 함께 기도한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이렇게 차곡차곡 일을 징행할 수 있었을까? 

마음의 평온함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에 아말렉 군사들이 그들을 치러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번도 전쟁을 치른 적이 없다. 그들은 허다한 잡족들이 모여있었고, 어린아이와 부녀자들도 함께 모여있었고, 전쟁도구도 있을 턱이 없는 유랑민이었다. 

모세는 먼저 여호수아로 하여금 전쟁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아말렉을 맞서게 한다. 

그리고 나서 아론과 훌과 함께 산꼭대기로 올라가 기도한다. 산꼭대기에 올라 기도하는 것이 두가지 의미이다. 

첫째는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요

둘째는 전쟁의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공간에 올라 그 흐름을 바라보며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마음이 평온한 자의 일의 우선순위를 안다. 분별하고 행동하고 기도한다. 

신앙인은 기도와 분별과 행동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신앙인은 동역하고 중보하는 사람이다. 

 

다니엘에게는 무작정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그의 기도의 주변에는 그를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왕과 시위대장이 시시탐탐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세 친구와 함께 환경에 방해받지 않는 은밀한 기도를 드린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은밀한 일 – 아무도 모르는 일, 꿈 꾼 자조차 모르는 일.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과의 은밀한 속삭임, 영혼 깊은 기도. 세상의 모든 은밀한 것들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는 왕께 달려가 그 하나님과의 은밀한 기도 가운데 받았던 모든 은밀한 일들을 왕께 고한다. 

 

그 결과 그들에게 닥친 위험이 어떻게 변하는가? 

2장 46-49절) 이에 느부가넷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웠던 느부가넷살 왕이 다니엘에게 절을 하고 하나님을 높인다. 바벨론 안에 거하는 모든 지혜자들 중에 오직 다니엘과 세 친구만이 이 위기에서 기회를 얻고 상을 얻는다. 

 

위기를 통해 그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믿음의 성숙을 얻고, 이전보다 더한 지혜자가 된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기도의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 찾아오는 어떤 위기에도 맞설 수 있는 자가 된다. 

 

지난 시간- 잇사갈 지파 시대를 분별하고, 자기들이 할 본분을 알고 통솔하는 영성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크게는 코로나라는 시대적인 위기의 때 – 위험이 아닌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있기를 

작게는 우리 개인에게 일어나는 여러 영적, 육적 위기의 순간에 불안함과 염려함과 낙심함이 아닌 영적 도약을 위한 기회로, 그 다음 믿음의 진보를 향한 통로로 삼을 수 있는 기회로, 우리에게 오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생각과 마음을 지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은밀히 구하며, 함께 중보하며, 함께 자라갈 수 있는 트레이시제일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역대하 12장 23-32절 잇사갈 교회, 잇사갈 성도 

 

본문의 배경 : 11장에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에 다윗의 나라의 장수들과 지도자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 

 

12장 1절 -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

다윗이 왕은 커녕 사울을 피해 도망다닐 때에 다윗에게 와서 그를 도운 사람들 

22절 -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그리고 나서 23절 - 싸움을 준비한 군대 지휘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 헤브론이라는 작은 지역의 왕이 되었을 때에 모여들었던 사람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신다. 

 

24절 - 유다자손들 - 6천 팔백 : 방패와 창을 들고 전쟁하는 자 

25절 - 시므온 자손 - 싸움하는 자 - 칠천 백 

26절 - 레위 자손 - 4천 육백 

27절- 아론의 집 - 삼천 칠백(제사장 가문) 

28절 - 사독 (또 다른 제사장 가문) - 이십 이 

29절- 베냐민 (사울의 자손이지만 다윗에게로 넘어온 자) - 삼천 명 

30절- 에브라임 - 이만팔백명 

31절 - 므낫세 - 이만 팔백명 

 

다 수천에서 만명이 넘는...

 

그중에 자나가듯 소개된 지파의 자손 -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

 

그 뒤에 나오는 스불론, 납달리, 단--- 숫자가 훨씬 더 많아져서 오만, 삼만, 십이만....

잇사갈을 축으로 그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진다. 

 

그 중심에서 가장 초라하게 소개된 지파 - 잇사갈: 눈이 멈추게 되는 구절. 

가장 작아 보이지만 그들이 결코 작아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덧붙여진 설명 때문이다. 

 

그외의 족속들 - 병사들, 싸우는 자, 전쟁하는 자. 

그런데 잇사갈 자손에게 덧붙여진 설명 -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 즉 이스라엘이 행하여야 할 본분을 아는 우두머리,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은 이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다. 

 

1. 시세를 안다. - 그 시대의 흐름을 안다. 흐름을 안다는 것은 방향을 알고, 그 앞을 통해 뒤를 미리 예견하는 자이다. 

2. 이스라엘의 본분을 안다 - 이 급변하는 시대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하고 대처해야 할 것을 안다. 

3. 그리고 그들이 나머지 모든 군사들을 통솔할 것이다. 

 

잇사갈 - 한 번도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두드러진 적이 없었던 지파였다. 

잇사갈은 야곱의 첫번째 아내였던 레아에게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다음으로 난 다섯번 째 아들이다. 

 

창세기 30장에 잇사갈을 낳게 되는 사연이 길게 소개되는데 간단히 소개하면 

레아는 자녀가 있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반면에 라헬은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다. 라헬은 자녀가 없자 자신의 하녀였던 빌하를 통해 자녀를 낳자 레아도 자신의 하녀였던 실바를 통해 아이를 낳게 한다. 그렇다보니 라헬 뿐만 아니라 레아의 태도 닫혀버렸다. 

하루는 레아의 아들인 장자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발견하고 가지고 왔다. 뿌리가 사람의 다리 모양으로 통통해서 불임을 해결해주는 임신촉진제로 알려져 있는 식물이다. 아이를 원하는 라헬이 그것을 보고 달라고 하니 레아는 거절했다. “네가 내 남편을 빼앗고도 또 합환채까지 빼앗으려고 하느냐!” 반드시 먹어야 하겠다는 욕심에 라헬은 합환채대신 그 밤에 남편을 레아에게 보낸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잇사갈이다. 잇사갈의 이름의 의미는 그래서 합환채를 통해 얻은 아들이므로 "값을 치루고 난 아들"이란 의미이다. 

값을 치루고 난 아들이란 의미는 보다 넓게 예수께서 값주고 산 자녀라는 의미로 확장할 수 있다. 

 

한 지파의 보다 깊은 의미는 야곱과 모세가 그들에게 한 축복의 내용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1) 야곱의 축복 (창세기 49장 14-15)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양들-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귀는 주인의 일꾼이다. 돕는 자이다. 동역자이다. 잇사갈은 튼튼하고 힘쎈 동역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쉴 곳을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 메시지 성경) 현대어로 쉽게 그 의미를 해석한 성경 

그는 그가 머문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그 땅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알았기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종처럼 일하는 것을 택한다. 

 

양처럼 그저 목자의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일하는 것, 그와 함께 머무는 그것의 귀함과 아름다움을 깨달아 스스로 종된 삶을 사는 것 - 잇사갈지파가 얻은 축복이다. 

 

2. 모세의 축복 (신명기 33장 18절)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그들이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 장막에 있음으로 즐거워하라. (장막 -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 예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동역하는 것) 

- 백성들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한다 - 무리가 아닌 제자로서 사는 것, 그 제자로서 사람들을 초대하는 삶 

- 거기(산)에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의롭다 - 관계가 바르다. 바른 제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삶) 

바다의 풍부한 것 - 세상의 무지개를 쫓는 삶이 아닌 하나님 창조하신 세상을 풍부히 누리는 삶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말씀의 깊은 것, 복음의 깊은 것, 십자가의 비밀, 신앙의 신비를 아는 삶) 

 

유다지파나 레위지파의 축복이 부럽지 않은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3. 사울에서 다윗으로 

사울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다윗이 왕이 되기도 전에 다윗에게 모여든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그 중에 극히 소수였던 잇사갈 지파는 세상을 볼 줄 알고, 그 세상 속에서 교회로서, 성도로서 자기가 행할 본분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하러 모인 수 많은 다윗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리더자가 된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지만 다윗을 시기하며 스스로 왕의 직분에서 떨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사울을 따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윗은 궁극적으로 오실 메시야의 나라, 그리스도가 왕 된 나라의 예표이다. 맛보기이다. 

수 많은 교회가, 성도가 그 그리스도의 나라를 쫓아 그 분을 따르지만, 나는 우리 트레이시제일교회가 이 시대를 읽고 바라보며, 다가올 세대를 예측할 수 있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개척되고 창립된 교회이다. 

개척의 일성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자고 했지만 그 사이 시대는 포스트코로나가 아닌 위드코로나, 과거로서의 회복이나 복귀가 아니라 뉴노멀 시대를 말하고 있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는 것은 이제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에도 또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코로나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말하고 그것이 실현되고 있다. 

 

비정상 (Abnormal)이 아니라 뉴 노멀 (New Normal)-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내외적으로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것이 교회다. 

대면예배가 비대면 예배로, 모일지라도 이젠 축소해서, 선별해서 모이게 됨으로 많은 교회의 성도가 줄어들고, 교회를 떠나고, 교회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있다. 

밖으로는 교회는 코로나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공공의 안전과 이웃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서 교회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위기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고, 또 다시 사회를 이끌어 구원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지금 필요한 교회의 비전은 빨리 코로나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기대, 과거로의 복귀에 대한 희망대신 새롭게 다가올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미 코로나 이전의 교회는 사회로부터 많은 신뢰를 잃어버리고 누구나가 교회의 위기, 영성의 위기를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잘못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 읽은 잇사갈 지파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그들은 시세를 알았다. 그 시대의 흐름으로 미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것을 알았다. 바뀌는 시대의 교회의 본분, 성도로서의 본분을 알았다. 

이전과는 다른 교회의 사명, 선교, 구제, 예배, 교육, 공동체, 모든 것이 새로운 뉴노멀 시대에 맞는 교회와 성도로서의 본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소수이지만 그러한 모습으로 몇천 몇만이나 되는 다윗의 백성들을 지도하고 통솔했다. 

우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 트레이시에 모인 작은 공동체지만 육신적 나이의 한계에 머물지 말고 이 시대를 볼 수 있는 지혜와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바뀌고 있는, 이미 바뀌어 버린 시대에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 교회와 성도로서의 본분을 알아 행할 수 있는 교회된 성도, 제자된 성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 모습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주위를 통솔할 수 있는 사명이 주어질 것이다. 

 

시대를 아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을 통해, 성령을 통해 우리의 눈을 열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본분을 아는 것은 곧 훈련받아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할 말이 많지만 내년의 교회의 비전과 우리의 본분을 찾기 위해 다음주부터 Redwood Glen이라는 기도원에 들어가 한주를 본려 한다 성도들 모두도 각자의 처소에서 기도하며 우리에게 잇사갈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Posted by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빌립보서 3장 12-16절 (주가 붙잡은 내 삶의 목적)

 

사도바울의 인생은 다메섹 도성에서 예수를 만난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그 이전의 삶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 가장 좋은 가문, 가장 좋은 학벌, 로마의 시민권, 그 당시 사회가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메섹 도성으로 다음 삶의 성취를 이루려 가고 있습니다. 

 

그 삶의 중간에 갑자기 예수가 그의 길을 막아 섭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너는 이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처럼 어느날 예수께서 바울의 인생 여정에 오셔서 그의 길을 막아섭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하는 사울의 물음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며 그의 인생을 돌이키게 합니다. 

 

예수를 만난 바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을 바꾸었습니다. 

그 이전의 삶이 자기의 성공, 남들의 인정, 최고 중의 최고가 되기 위한 삶이었다면 

예수를 만난 이후의 그의 삶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영광, 그 분께서 맡기신 사명, 이방인의 사도로 그를 부르신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2. 사명 

주님은 우리의 삶에 방향을 주십니다. 목적을 주십니다. 

바울은 그것을 "내가 예수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구절이 유명한 구절인데 정말 어려운 구절 중의 하나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 이 도대체 무언가? 

 

예수님께서 나를 잡으셨는데 나도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예수님께서 붙잡으신 그것을 나도 붙잡고 싶은데 그것은 예수님께 잡힌 바 된 나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공동번역 성경]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현대어 성경] 그리스도께서 내게 바라는 사람이 될 그날을 향해서 계속 노력할 뿐!

[한글 흠정역-킹제임스 버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이루시고자 하신 그것을 붙잡으려고

 

그것은 곧 나의 가능성! 나의 창조의 목적, 내 삶의 비전 

예수가 붙잡은 것은 현재의 나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루실 바로 그 모습을 붙잡은 것이고 바울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이다. 

 

첫 번째 은혜는 나를 붙잡은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예수를 믿기로 결정했다. 내가 그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붙잡은 주님은 각자에게 부름의 목적, 인생의 사명을 주십니다. 

각자마다 다른 내 인생의 숙제를 주십니다. 

 

바울에게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가나안땅까지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호세아에게는 부정한 여인 고멜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삽에게는 성가대를 지휘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에게는 그 분의 어머니를 맡기셨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분명한 삶의 목적, 푯대, 사명을 주십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자는 행복합니다. 삶의 동기가 분명합니다. 삶이 어렵고 환경이 흔들려도 목적이 소명의식이 있고, 목적이 분명한 인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3.푯대를 잃은 인생 (꿈과 비전) 

저희 어렸을 때는 꿈에 어른들이 늘 물어보는 질문이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질문들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학에 들어갈 때도, 자기 진로를 정하지 못해서 방황합니다. 

공부를 다 하고 졸업을 한 후에조차도 아직도 지기 앞길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사회적인 큰 문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목적이 무엇이 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돈버는 데에만 가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달란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려면 무엇을 해야지에 맞춥니다. 

그러니까 평생 남들 기대만 맞추다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랑, 행복, 정의, 믿음, 평화 등 인생의 목적이 되고, 삶을 정의할 수 있는 그러한 가치를 1차적 가치. 

그리고 그러한 1차적 가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는 가치, 돈, 재능, 힘-> 2차적 가치 

이러한 2차적 가치는 1차적 가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적 가치.

그런데 이러한 가치체계가 뒤바뀌어서 돈, 재능, 힘을 얻기 위해 사랑, 믿음, 정의등을 이용하거나 포기하면 이러한 현상을 철학이나 윤리학에선 "가치관의 전복" 가치관이 뒤바뀌었다.

그 어떤 가치보다도 존엄한 사람의 가치가 돈과 힘과 같은 물질적인 2차적 가치에 희생되는 것- 인간소외현상이라고 한다.  

현대의 모든 정신적 문제의 근본- 가치관이 전복되고 소외된 데서부터 출발. 사람의 가치가 한 없이 떨어진 시대. 

그것을 회복하러 오신 분- 예수-> 한 영혼의 가치를 모든 우주 만물보다 위에 두셨다. 오직 그 분만이 잃어버린 나의 가치, 잃어버린 인간의 가치를 회복시키신다. 

 

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푯대를 잃어버립니까? 

 

모든 목적을 자기가 다 정해놓고 주님께는 도와달라고만 하는 인생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소명에 관심이 없습니다.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다가 위급하면, 자기 뜻대로 안되면, 한계가 오면 그때서야 주님께 나와 도와달라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영적인 결혼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와 결혼 한다면서 

"난 당신의 몸만 필요해...난 당신의 돈만 필요해..."

이렇다면 과연 그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결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연합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땅의 결혼은 불완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한다해도 늘 부족합니다. 

그런데 그 불완전한 결혼을 통해 완전한 하나님과의 연합, 완전한 사랑을 고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도 온전히 연합하고자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 인생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참 안식과 참 사랑이 없습니다. 

 

4. 아직 잡지 않았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이미 얻었다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에 있는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한 5,6년 전쯤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바울의 나이는 60대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나이 60은 지금의 시대로 보면 80, 90대의 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소아시아를 누비며 많은 사람을 구원했습니다. 배가 파산을 당하고, 수없이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믿는 자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나이는 이미 황혼의 때이고, 그동안 사역의 열매로 보면 누가 보아도 훌륭한 사도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노년은 좀 여유 있게 즐기면서 사역을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선언합니다. 다시말하면 ‘나는 아직 불러주신 주님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뒤에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달려간다’는 헬라어로 ‘dioko’인데 의미는 사냥개가 먹잇감을 보고 전심전력하여 달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부르심의 소명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의의 면류관을 바라봅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혹시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주저 앉아 있지는 않으십니까? 

저처럼, 바울처럼, 목적지와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께 붙잡힌 인생은 역설적으로 가장 자유한 삶입니다. 

주께 붙잡히지 않은 인생이 바로 노예의 삶입니다. 

주께서 주신 푯대가 있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죽기까지 내가 할 일이 있고, 사명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살 이유를 줍니다. 

오직 주님만이 내 갈길을 아시고 알려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외모에는 사람의 생긴 것 뿐만 아니라 바울이 이전에 가졌던 가문, 학력, 능력, 그의 모든 커리어가 포함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 안의 중심,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심기워진 하나님의 꿈. 나에 대해 놓지 않고 꼭 붙잡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닌 주님이 바라보시는 나

주님이 붙잡고 계시는 내 미래의 모습,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살아갈 내 중심.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주님이 바라보시고 붙잡고 계시는 나의 그 모습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붙잡을 것을 쫓는 삶

이것이 신앙생활의 재미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신앙생활의 신비요, 나의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