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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2-13 예수의 시험받으심 3

 

11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12절: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마태복음: 성령에게 이끌리어

누가복음: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자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마가복음: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the Spirit sent him out into the wilderness) 

 

하나님의 아들이 된 다는 것: 세상과 전쟁하는 것, 세상과 갈등하는 것. 너무도 당연스럽게 살던 세상의 방식, 가치관과 이제 끊임없이 다르게 살기 위해, 아들로 살기 위해 갈등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에서는 금식이나 굶주림, 유혹의 내용이나 그 의미, 그것을 통한 결과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짧은 설명 속에 생략되지 않고 남아 있는 내용. 그만큼 중요하다. 

 

1. 장소 - 광야 

예수는 세례를 받음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또 사탄에게 시험받음으로 고난을 경험하지만 변하지 않는 무대가 되는 곳 - 광야이다. 

세례요한과 시험 받는 예수와 연결시키며 1절부터 13절까지 변함없이 활동무대가 되는 장소는 다름아닌 광야이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3절) 세례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4절) 

 

  •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 - 
  •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40년

      (민 32:1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 방황하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마침내는 다 끊어졌느니라 (죄를 끊기 위한 40일) 

  • 모세의 시내산에서의 40일 

     (출 34:28)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기 위한 40일) 

  • 엘리야의 로뎀나무 아래에서 휴식 후에 호렙으로의 40일 (회복을 위한 40일의 여행) 

      (왕상 19:8)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영적인 고갈, 홀로 견디는 것 같은 고통- 그런데 널리 떨어져서 보면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가 가득한 기간- 고통과 갈등과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가 자라는 것이다. 

  • 임재 - 지금 함께 하시고 있는 하나님을 경험 하는 것 
  • 섭리 - 지나고 나서 이해하게 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인도하심. 

 

2. 구조적 중요성 -등장인물 

성령, 사탄, 들짐승, 천사 

사람이 없다? 오직 인간은 예수님. 

들짐승- 에덴동산에서는 평화롭게 인간과 같이 어울리던 동물, 인간이 다스리던 생명체  

            그러나 광야에서는 들짐승, 위험한, 무서운, 해로운 짐승 

광야 가운데 주님이 경험하는 것 - 오직 사탄과 들짐승 (사탄의 세력), 하나님과 교제함이 없는 영이 없는 존재는 오직 들짐승과 같다. 

뱀의 유혹으로 인한 결과 - 육신의 노예, 정욕의 노예, 성공의 노예

찰스다윈 - 동물의 세계: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하나님의 자녀 - 섬기고 사랑하고 희생하며 생명의 역할, 복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 

 

그러나 시험을 전후로 감싸안는 섭리와 보호와 지켜보는 것 - 성령과 천사 

(시 8:5)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이 땅에서의 인간 - 천사보다 못하지만 그 땅에서 우리가 받을 영광 - 천사들이 수종들게 한다. 

사탄은 실제적 세력으로 이땅에서 존재하지만 그것을 감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섭리는 우리를 능히 시험에서 이기게 하신다. 

 

마태복음에서는 40일의 금식 후에 사탄의 시험을 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마가복음에서는 40일동안 쭉 시험을 받는 것으로 나옴. 

 

하나님: 시험을 통해서 우리를 교육하신다.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신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시험을 받도록 우리를 내 모실 때가 있다. 그러지만 천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신다. 수종들게 하신다. 결코 우리를 파멸의 길로 놓아두지 않으신다.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시험에서 예외가 되지 않으시고 참 인간으로 이 시험을 지나셨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욌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 광야의 시험 -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우리에게도 요구하시는 것-> 광야의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

 

성령에게 이끌리어 사탄에게 받을 사십일 간의 시험. 

천사들이 너와 함께 하리라.  

 

수험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부모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지만 그 분은 우리를 보살피신다. 안위하신다. \

 

묵상질문) 

  • 광야의 시험을 통해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묵상해보자. 
  • 그 시험의 기간 동안 나를 바라보시며 지키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묵상해 보자 

 

찬양) 광야를 지나며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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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시험 (2) 마가복음 1장 12-13절 

 

지난주 나눈 말씀...

예수의 시험을 통해서 나의 신앙생활에서 오는 시험의 문제

예수의 시험 -> 첫 번째 아담이 실패했던 시험을 극복하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는데서부터 사역이 시작됨…….

아담의 시험 - 선악과 :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도 한...

                요한일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사탄의 공격은 지금도 항상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육신의 정욕 - 내가 하고 싶은 것, 급한 것,,,, 나를 채우는 것,,, 

안목의 정욕 - 눈에 보이는 것, 남들에게 보이는 삶,,, 비교의 삶,..

이생의 자랑 - 남을 지배하는 것 ->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 바벨탑...

 

그 시험이 바로 돌로 떡을 만들어먹는 육신의 정욕을 말씀으로 극복하고

사탄과 세상과 타협하여 부와 명성을 얻으려 하지 말고 

허튼데 신앙을 사용하여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그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받기 전에 먼저 하신 것-> 세례 (13-17절) 

 

세례는 무엇인가? 특히 요한이 행한 세례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세례, 회개의 세례이다. 죄인이 받는 세례이다.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죄인들이 받는 물세례를 받으셨는가?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상징하는 예식이다. 

완전한 예수그리스도께서 불완전하고 죄인인 인간으로부터 당하실 십자가 사건...  구속의 사건을 나타내는 신성한 의식...

세례는 죽고 거듭나는 것이다. 인간이 죽을 이유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에서 죽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실 이유는 죽음으로서 그것도 죄인이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죽음으로서 구원의 사건을 담당해야 할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

 

그래서 세례요한에게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할 때 이미 자신의 사역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예수를 알고 있는 사탄의 시험은 이 십자가로 인해 다시 해석될 수 있다. 

단순히 우리 인간 입장에서 바라보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대한 시험이라면 그것은 예수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시험이지 정말 위험한 시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이 시험이 가져다주는 위험이 무엇인가? 

-> 바로 십자가를 못지게 하려는, 십자가 없이 구원을 가게 하려는 사탄의 음모인 것..

 

구원의 예표, 모델... 출애굽기..(출애굽기 7장부터) 

바로와 모세, 바로와 하나님과의 줄다리기는 바로 이 구원을 두고 타협하려는 사탄의 음모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바로, 즉 사탄의 세력에게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라.(세상 중에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할 것이다. 예배할 것이다) 

이것은 죄악에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신앙인 개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나아오라는 부르심이자 세상적으로 보면 불신앙을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시험이고 재앙이다.  

네가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열가지 재앙...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구분하심....

 

열 가지 재앙은 무엇인가? 믿는 자들에게 역시 십자가이다. 고난이다. 

그것을 통해서 내 죄악이 씻겨나가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로 구별되는 것,.,.

때로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단련하시고 순결케 하신다. 

그런데 어떠한 고난도 구원받을 자에게는 치명적으로 미치지 못한다. 파할 길을 주시고 넘어가게 하신다. 

 

(1)피, (2)개구리..

떠나가라...(내가 믿겠다. 도저히 못살겠다.)라고 말하다가 재앙이 거두어가면 다시 세상으로 향함....(우리 믿음의 현주소)  현실을 벗어나기에 급급한 믿음....(내일 가라..._ ) 나중에 열심히 믿겠다. 

(출 8:15)그러나 바로가 숨을 통할 수 있음을 볼 때에 그 마음을 완강케 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3)이의 재앙 - 

(출 8:19)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하나님을 느끼지만 의지적으로 반항함..)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4)파리의 재앙 

(출 8:25)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 세상 것 버리지 말고 적당히 신앙생활해라... 시간 되면 예배드리고 평일 날에는 똑같이 살아라...

 

(출 8:26)모세가 가로되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세상 속에서 똑같이 살아가며 예배하는 자들은 그들과 어울리기 위하여 세상으로 나가게끔 되어 있다. 

 

(출 8:27)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하나이다

-> 온전히 죽고 말씀대로 드리는 예배, 십자가의 예배 

 

(출 8:28)바로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 교회 생활 열심히 하되 세상에 대한 관심을 두고, 나를 위하여(세상에서 잘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예배하라...)

 

(5)가축, (6)독종. (7)우박 

우박-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내 백성은 악하도다(9:27)

->비와 우박과 뇌성의 그친 것을 볼 때에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강케하니 그와 그 신하가 일반이라,.(34) 

 

(8)메뚜기 (신하와 왕 사이에서 갈등,,) 

10:8 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뇨

9절 : 남녀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11절 : 남정만 가서.... (너만 잘 믿어라...)

   -> 복음 :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9)흑암의 재앙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어다.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제사 때 쓸 제물들... 당시는 피의 제사...) 

-> 피 없는 제사를 드려라. 믿되 십자가 없는 신앙을 가져라. 

 

(10) 장자의 재앙

가장 귀중한 것 빼앗기고 하나님 앞에 나옴....

 

장자의 죽음 - 왜 가장 큰 재앙인가? 

내가 신앙생활을 통해 얻고자 했던 그 어떤 소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우리는 왜 따르는가? 

말씀을 따르면 복주시기에, 보답이 있기에, 보상이 있기에... 

그런데 정말 너 자신의 소욕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택할 수 있는가? 

세상 모든 것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리고 주 예수를 가장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가? 

 

예수의 시험

1.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예수 : 생명의 떡... 최후의 만찬 그 살과 피를 먹음으로 우리도 구원에 동참함...

How? 십자가의 온전한 죽음을 통해서...

마귀의 시험 : 죽지 말고도 떡이 될 수 있다. 네가 떡을 만들 수 있다. 

            십자가 지지 말고 떡을 만들어 너두 먹고 사람들도 배불리 먹여라..

당장 시급한 문제가 많은데 언제 연단 받고 십자가 지고 예수 믿냐...

 

2.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지금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아준다. 

예수님은 지금 영광 받을 때가 아니다. 십자가 후에 영광을 받으신다. 

 

3. 절하라..절하면 영광과 권세를 준다. 

절하고 타협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으로 영광과 권세를 얻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예수 앞세워서 영광 받고 부하게 되고, 존경 받으려 하고, 성공하려고 하고...

-> 십자가없는 신앙...사탄의 계략에 빠짐.... 이정도 연단 받으면 되잖아요..

십자가는 완전히 죽는 것....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는 것...

why? 부활의 영광을 위해...주의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과 신앙인들이 이 십자가 없는 신앙으로 걸려 넘어지고 있는가? 

조금 고생하였다고 자기는 십자가 다 졌다고 자부하며 영광을 가지려 하는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타고 다니면서 예수 이름 앞세워서 영광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의 초청?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초청 –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예수 믿으면 평안하다....맞는 말이지만 십자가가 빠져있는 초청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전하지 않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많이 쓰는 말)  

(마 11:29-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애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 이니라 . (쓰지 않는 말) 

 

노아의 십자가 

방주를 짓는 것 ->십자가 지는 것 

Where?  산꼭대기...   When? 햇빛 쨍쨍할 때...

-> 사람들이 미쳤다고 해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

 

카톨릭과 개신교 

면죄부 사건 -> 십자가 없는 구원.... 구원을 돈으로 팜...

기독교 역사상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이 빠지면 흔들리고 힘이 없게 됨...

기독교의 핵심은 항상 십자가...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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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시험 1 (막 1:12-13)

세례로 말미암은 성령의 강림 -> 영적 전투의 시작, 한국 교회 초창기 예수 믿었더니 누가 죽었더라...  

애굽에서의 탈출 (홍해를 건넘으로 시작) - 첫번째 세례 사건 

홍해를 건너자 마자 들어서는 곳- 광야 (40년) 

 

예수의 세례와 이어지는 광야에서의 시험(40일간)과 맥을 같이 한다. 

 

성령의 첫 번째 임재가 내적 평안을 이끌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광야에서의 고독과 사탄의 시험으로 인도한다. 

마가복음의 표현- 누가복음이나 마태복음보다 훨씬 짧게 예수의 시험을 소개했지만 두가지 특별한 언급. 

1.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2.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예수의 시험은 신학적으로, 그리고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므로 3일에 걸쳐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첫 주는 아담의 타락과 연관시켜서 예수의 시험을 살펴보고, 두번째주는 출애굽기와 더불어 예수의 시험을 살펴보고 마지막 주는 마가복음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예수의 시험을 살펴본다. 

 

1. 아담의 시험과 예수의 시험 

예수의 시험은 한 개인으로 받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 모두가 짊어지고 있는 죄의 짐을 벗겨주시는 구원 사역의 시작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세례받으신 예수가 공생애의 본 사역을 인간에게 죄를 가져다 주었던 그 시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유혹은, 사람의 어린 날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또는 인류의 야만시대부터 문화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시대, 모든 계급에 있어서의, 각양의 유혹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시험은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사탄의 계략이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순수성을 체크하시는 테스트이다. 아담은 아무 부족함이 없을 에덴동산에서도 사탄의 이 시험에 넘어져서 우리 인간 모두에게 죄의 길을 열어주었다. 

 

뱀이 여자 하와를 유혹하자 하와는 이전까지 말씀으로 불문율로 지켜왔던 선악과를 죄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창 3: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 말씀은 사도요한은 

(요일 2: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라는 말씀으로 풀었다. 

 

먹음직도 하고(육신의 정욕). 보암직도 하고(안목의 정욕),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고(이생의 자랑)은 정확히 연관되는 말씀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기신 사탄의 시험도 이 세가지의 모습의 유혹을 이기셨다. 

돌을 떡덩이가 되게하라 (육신의 정욕) 

내게 무릎 꿇으면 이 세상의 권세를 주겠다. (안목의 정욕)

성전 꼭대기서 뛰어내려라 천사들이 널 안위하리라 (이생의 자랑) 

 

즉 예수께서 세 가지 시험을 이기신 것은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죄의 세가지 본성을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끊으셨다는 것이다. 승리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그 죄의 문제에서 해방되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1. 세 가지 시험의 유형 

1) 육신의 정욕 

육신의 정욕은 우리가 풍족할 때에도 올 수 있고 또한 더욱 힘들게 우리가 가장 궁핍할 때에 올 수가 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을 때에는 모든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때이었다. 예수가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는 40일을 주리신 가장 배고플 때였다. 

인간이 가장 풍족할 때에 지은 죄를 예수께서는 오직 인간의 모습으로서 가장 힘들 때의 시험으로 맞아 승리하셨고 믿음의 길을 걷는 그분의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올 수 있는 모든 육신의 정욕의 시험을 그 분의 시험 안으로 포함해 주셨다. 

 

모든 시험에 앞서서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하는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네가 만일 하나님이 아들이어든...”

 

“참으로 너희더러”에 담긴 말은 무엇이냐? 

아니 하나님의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들었으면서 이 아름다운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시더냐?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으면서 이 하찮은 나무 열매 하나도 먹지 못하게 하시더냐..라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에 회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인간 예수에게 다가온 첫 번째 시험의 시작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는 물음표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배가 고프냐? 왜 초라하게 그런 몰골을 가지고 사느냐...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에 금을 가게 한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때에는 배고픔과는 상관없이 육체적인 즐거움에 대한 미혹이 들어온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약속받았는데... 술 한잔 하면 어때,, 노래방 좀 가면 어때... TV좀 밤 새워가면 맘껏 보면 어때... 하루 정도야 하루 종일 잠자면 어때....

우리의 육신의 자유를 주장한다. 그런데 그것은 육신의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고 다른 것에 종 노릇하는 것이다. 참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을 때에만 자유할 수 있다. 진리에 있을 때에 자유한 것이지 진리 없이 온 자유는 방종이고 죄악이고 다른 것에 종노릇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의 자유 - 진, 선, 미의 개념에서 진리는 동시에 아름다우며, 동시에 선한 것이다. 자유가 선한 것이면 아름다와야 하고, 동시에 참된 것이다. 결과가 유익해야 한다. 결과가 유익하지 못한 자유는 참 자유가 아니다. (철학자들의 사고) 

 

  • 질문 1) 내가 풍요로운 때에도 난 신앙의 경건을 잘 지킬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풍족한데도 그것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남이 갖은 것으로 탐욕을 부리지 않는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 만나와 물, 매추라기로 채우신 하나님..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하지 않고 애굽의 것들만을 바라보고 불평함...(고귀하고 유일한 인격인 내가 사탄의 영역, 세상의 영역에 있을 때는 항상 기준이 남이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잠시동안의 행복도 얻고, 불행도 느낀다) 그런데 주 안에서의 복은 순간적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가장 배고플 때...

신앙이 깊다는 것은 주를 위해 몸바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주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극심한 고통 중에 하루 하루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에 이러한 유혹이 올 수 있다. 남에 대한 중보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일만을 생각하다가 돌연히 내 꼬락서니가 보이고 내꼴이 보이면서... 내가 서기 위한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없어지고 나의 뜻, 나의 의지, 나의 신념만이 내 마음 속을 채운다. 

나를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으셨으니까...이젠 자녀의 권리를 좀 주세요...

마치 탕자의 요구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을 지언정 그것은 타락으로의 길이다.

 

  • 질문 2) 내가 정말 고생하고 빈곤하며 초라할 때에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며 하나님이 주신 소명만을 바라보고 나의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예수님이니까 이기지 나는 못이긴다. 

(히 2:18)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분이 시험을 받으신 것은 인간의 능력만을 가지고 시험에 응하셨다. 사탄이 계속적으로 요구한 것은 너의 신성을 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예수의 신성은 오직 사람을 구원하는데만 사용하셨지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시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이 예수님처럼 40일을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신성으로 그것을 감당했더라면 인간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지만 오직 인간의 능력으로만 행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따르는 우리가 그 분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해결책) 내가 부하든 가난하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사도바울이 말한 자족하는 비결) 

(빌 4:12-13)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누구로부터? 예수로부터)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2. 거룩한 성에 올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이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 말씀으로 물리치시니까 말씀을 가지고 도전한다. 주께서 성경의 말씀으로써 물리치셨으므로, 자기도 또 성경에서, 하나님께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은 지켜주신다는 약속의 말씀

(시 91:11-12)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을 끌어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 내리라'고 꾀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린다면, 예배하는 자들이, 이야말로 하늘로부터 오신 메시야라고 높였을 것이므로, 하나님께 순종치 않고, 자기를 높이게끔 하려는 유혹이기도 했다. 주님은 이에 대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으로써 물리치셨다(7;신6:16-). 사단도 때로는, 말씀을 가지고 오는 일이 있으므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에는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고 있는 것을, 사단은 뛰어 내린대도 보호된다는 것으로, 곡해케 하려했다. 성경을 자기 멋대로 곡해하고, 난용해서는 안된다.

 

성전 꼭대기는 무엇인가? 무언가 신앙의 깊이를 가진 사람,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고, 때론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기도 할 수 있을 때에 사탄은 시험한다. 하나님의 뜻에 내가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쓰임받는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에 하나님이 자기 말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생각을 가진다. 자신의 의지와 신념대로 하나님을 조정하려고 할 유혹이 일어난다

그래서 자기의 존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남들이 자신을 위대하게 보도록...

크건 작건 이런 유혹이 온다. 성공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목회....

성공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앙......  

 

  • 질문 3) 하나님을 내가 움직이고 조정하려고 했던 때는 없는가? 내 말이 능력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을 가지지는 않는가? 사탄은 그 약점을 공격할 것이다. 

 

->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나님은 누구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신다. 오직 자기 주관성, 절대 주권성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 

 

3.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메시야는, 최후에는, 세상 끝에 하나님의 나라의 권위와 영화를 받아야 할 분이시나, 먼저 구속을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길을 피하고, 사단과 타협하여, 만국(여러 나라)의 영화를 취하도록 하라는 유혹

우리의 신분 - 보장된 신분... 그러나 그 신분을 얻기 위한 코스 - 유일한 길... 십자가

십자가 - 주와 남을 위해 고난 받는 것...

그런데 사탄은 빠른 길, 타협의 길로서 우리에게 접근... 

하나님의 길. 한 달 길 되는 길(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 

그렇지만 신앙의 순수성, 말씀으로 살아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복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40년의 연단과정을 거치신다. 

그런데 사탄은 그 길, 연단의 길, 십자가의 길 대신에 내게 머리 숙이고 세상 방법을 좀 섞고 좀 영리하게 꾀를 부리면 그 영광을 지금 준다는 것...

ex) 존레논 - 무명일 때의 꿈...정말로 세계적인 그룹...

Imagine..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아요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이예요

 

  • 내가 가장 힘들 때에 사탄이 어떠한 모습으로든, 무서운 악마의 모습이던지, 광명한 천사의 모습이던지 내게 다가와서... 내가 무릎만 꿇면 네가 바라는 소원을 다 이루워 준다고 하면 무릎꿇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모세의 고백 - 주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가나안도 필요없습니다. 

              실제 믿음없이 가나안에 들어간 족속들이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우상숭배하며 패역하며 하나님 대신 인간의 왕을 요구하는 백성이 됨..

말씀 안에 있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가? 하나님이 제일 좋은가? 

하나님 주신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않고 걸어갈 용기와 믿음이 있는가? 

당장 먹을 것 없고 나 때문에 가족이, 자녀가 고생한다 해도 믿음으로 이겨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시험은 내가 강할 때에도, 약할 때에도 온다. 

맞이하고 물리치고 넘어가는 신앙인이 되자. 

복음은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소식이다. 

날 성공시키고 날 배부르게 만들어도 영생이 없으면 복음이 아니다. 

십자가가 있고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는 것만이 복음이다. 

복음으로 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찬양) 오 기쁘도다 나의 생활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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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9-11절  그리스도의 취임식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에 다 함께 제시되어 있는 사건 

왜 예수는 세례를 받아야만 했는가? 

요한의 세례는 바로 회개의 세례가 아닌가? 세상의 나를 죽이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거듭나는 신앙의 고백이 아닌가?

그런데 죄가 없는 분이,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신 분이 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셔야 하는가? 

 

교회 역사에서 어려운 난제 중의 하나... 해석도 여러가지.... 왜 그분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아야만 했는가? 

 

세례요한의 사역과 사명,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는 것. 요단강에서

  • 당시의 유대인들. 죄사함은 성전에서 제물을 통한 제사(예배)를 통해서라고 믿음.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품
  • 죄사함은 외적인 의식이 아니라 내적인 돌이킴, 고백, 선언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께게 마음을 돌리고 (회개의 의미) 방향 전환에 걸맞게 생활 방식을 고치라는 것. 

  • 세례를 주는 것 보다 더 큰 세례 요한의 사명: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시키기 위해서..

어제 나눈 세례 요한의 정체성은 그의 길을 예비하는 자.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자

오직 예수를 위해 준비된 자, 그가 세례요한이고 세례요한의 사명인데 지금 그의 삶의 목적이신 예수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다. 

세례요한에게 예수는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자" 무슨 소리인가? 나는 그에게 깜도 안되는 사람이다. 

주의 종, 주의 종, 하는데 참, 우리는 그 말 할 자격도 없는 자가 아닌가? 

 

그런 요한에게 예수가 세례를 받으러 오셨다. 

마태복음에 보면 자신을 찾아 오신 예수를 보고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며 만류한다. 

 

이에 예수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하시니 요한이 허락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 이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이 말씀을 듣고 세례를 주심을 허락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세례 요한은 지금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당연히 죄가 없으신 분이신데, 왜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고 하셨는가? 또 그것이 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인가? 

우리는 예수께서 받으신 세례의 의미를 마가복음 10장의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막 10:38-3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이 두명의 제자들은 아마도 이전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받으셨던 그 세례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예 그럴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장차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두고서 나의 받는 세례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나의 마시는 잔은 무엇인가? 

(마 26:42)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잔, 즉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예수가 마시는 잔은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왜 십자가를 지는가? 죄 없으신 그 분이 친히 어린양이 되어 죄지은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함이다. 죄사함의 방법이 십자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장차 자신이 감당해야할 죽음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29절에 보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예수를 보고 요한이 무엇이라 증거하냐면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말한다, 즉 예수도, 요한도 세례를 베풀면서 이 세례가 결국 예수가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죽음을 당함으로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왜 요한의 세례를 받으셔야 했는가?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 죄의 값 사망을 감당하시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받으실 세례와 우리가 받을 세례를 이렇게 연결시킨다.  

(롬 6: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세례는 신자의 세례와 다르다  

신자의 세례는 죄인으로서의 죽음 , 옛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그리스도의 세례는 곧 그의 죽음이고 그것은 죄없으신 의인의 죽음이었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신자는 성령 세례 , 영적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다. 

그리스도의 그러한 죽음이 곧 내 옛 사람의 죽음이고 내 죄의 죽음이 되었다.  

 

  •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예수님 위에 임하셨다. 이때 하늘에서 음성이 있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막 1:11)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음성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해 주신 것이다.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께서 성자하나님을 증거해 주신 것이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나 그는 불로 세례를 베풀리라"  

세례 요한이 미리 증거한대로 그리스도의 세례는 성령세례이다. 

 

(행 2:38) "너희가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죄 사함과 더불어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는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생명을 얻어 누린다. 

 

묵상) 

1. 세례 받을 때를 생각해보자. 세상에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이 있었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2. 내가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죽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듯, 주가 세례를 받음으로 내 죄가 완전히 사라지고 내 안에 성령을 주신다. 세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내가 연합한다. 우리는 날마다 주 안에서 세례 받는 자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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