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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교회  (열왕기하 5장 1-8절) 

 

지난 주 말씀 - 깊은 물의 은혜를 경험하라. 

                  - 얕은 물이 아닌 깊은 물의 은혜, 반석 위의 믿음,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폭풍우가 쳐도 요동치 않는 믿음, 성도 

                  어떤 성도는 고난이 오면 완전히 흔들려서 시험에 드는 성도

                  어떤 성도는 고난을 잘 극복하였다가 편안해지면 시험에 드는 성도 

                  "빈곤에 처해도 풍부에 쳐해도 자족할 줄 아는 믿음" 그리스도에게 배운 믿음. 

                  

오늘 다룰 사건- 나아만이 엘리사로부터 문등병을 고침받는 사건을 통해 한 영혼이 깊은 물의 은혜를 경험하는 예를 성경의 예를 통해 바라보고 묵상해보자. 

 

1. 나아만 -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He was a great man in the sight of his master and highly regarded, because through him the LORD had given victory to Aram. He was a valiant soldier, but he had leprosy.   

  • 아람왕의 군대장관 – 이방인, 왕의 신하

->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아람왕의 군대장관- 높아보았자 누구 밑이다. 그는 신하이다. 그리고 크고 존귀하지만 누구의 눈에, 그 주인의 눈에만 크고 존귀한 자다. 대통령도 집 안에서는 천대받을 수 있다. 세상에서의 모든 직책이 누구의 눈에 높아보이는 것이다. 한 도지사 - 소방관에서 전화해서 "나 도지사인데...""네, 말씀하세요...." 

-> 그 주인의 눈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그가 크고 존귀한 이유는 아람왕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의 모든 것 - 주관적, 상대적, 제한적 존귀함이다. 

  • 크고 존귀한 자 –> 여호와께서 그가 아람을 구원하게 하심-> 왕 앞에 존귀하게 된 것도 결국 누가하신 것인가> 하나님께서 그를 아람왕에게 존귀하게 하신 것이다. 세상에서 크고 존귀한 것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 그 스스로 높아진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해 엘리야를 만나 아람과 북왕국에 하나님을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그리고...

  • 저는 큰 용사나....문등병자였다. He was a valiant soldier, but he had leprosy.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문등병자였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하지만 누군가 앞에서만 필요한 자요, 그리고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아픔이 있다. 밖으로 보여 줄 수 없는 은밀한 어두움이 있다. 

 

당시의 문등병 - 저주받는 질병. 죄인의 표상. 아무리 왕의 눈에 높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그는 죄인이다. 저주받은 인생이다. 

성경에서의 질병 - 그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징후이다. 

소경 - 눈이 있어도 진리를 보지 못하는 자

귀머거리 -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결코 듣지 못하는 자. 

중풍병자 - 머리가 지시하는 바를 몸이 따르지 않는 자 (머리이신 주님이 말해도 따르지 않는 자) 

혈기 마른 자 - 무감각,

 

그러나 그 모든 질병 중에서도 가장 죄인을 대표하는 질병 - 문등병 

  • 문등병이 걸리면 가족과 사회에서 격리
  • 머리를 풀어해치고, 옷을 찢고, 윗입술을 가리고 누군가 앞에 지나가면 자신에게 오지 못하도록 "부정하다, 부정하다"외쳐야만 했다. 
  • 왜 문등병이 치명적인 죄의 병인가? 육신이 썩어들어가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모른다. 죄를 지어도 죄인 줄 모르고, 사망의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모르고 걸어들어간다. 

 

나아만이 아무리 아람 땅에서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이나, 그러나 그는 문등병자였다라는 마지막 한 마디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 그가 아무리 존귀해도  "그러나"의 문제를 피해가지 못한다. 한나가 아무리 남편의 사랑을 받아도 아이를 얻지 못하니 행복이 없다. 라헬도 마찬가지다. 삭개오가 세라장이라도 그가 백성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예수를 벗어난 모든 인간에게, 아니 신앙 생활 하면서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인간의 문제. "그러나" 의 문제이다. 

 

2. 두 왕 이야기 (4-7절) 

  •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이르되 (4절) (나아만과 아람왕) 
  •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5절) (아람왕과 이스라엘왕) 
  •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6절) 
  •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7절) (이스라엘왕과 하나님) 

 

-> 왕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소개해주는 일, 부탁하는 일...어쩔 땐 누군가 소개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백이나 된 것같고 일이 술술 풀릴 때도 있지만 결정적인 '그러나'의 문제 앞에서 왕이라도 해결을 주지 못한다. 

두 왕이 있지만 두 왕 사이에도 권력이 지배한다. 큰 왕이 있고, 작은 왕이 있어서 작은 왕은 할 수 없음에도 큰 왕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왕이라도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왕들 위에는 더 큰 왕이 있다. 트럼프 위에 트럼프를 움직이는 권력이 있고, 그 권력 위에는 또 다른 권력이 있다. 결국 위로 올라가면 사탄과 하나님과의 싸움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다하는 왕 둘이서 나아만의 문제를 가지고 서로 미룬다.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없으니 미루는 것이다. 그리고 왕의 입술을 통해 고백케 한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때로 돈이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고 하지만 정말 진정한 생명 앞에서 돈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인생의 모든 "그러나"의 문제를 다스릴 수 있는 자 - 하나님이시다. 

 

3. 어린 계집종 (2-3절) 

  •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2절) 
  •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나병을 고치리이다. (3절) 
  •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4절) 

 

  • 세상에 사로잡힌 자, 수종 드는 자. 종, 노예
  • 그러나…    나아만의 문제를 풀 열쇠를 아는 자 
  • 주인의 신뢰를 얻는 자 (아내, 나아만, 아람왕…)

-> 세상에서 보면 보잘 것 없는 작은 자이지만 나아만에게 있어서 어린 계집종은 두 왕들 보다 의지할 자이다. 왜? 해결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힘과 권력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을 그 소녀는 알고 있었다. 

 

4. 엘리사 

  •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 When Elisha the man of God heard that the king of Israel had torn his robes, he sent him this message: "Why have you torn your robes? Have the man come to me and he will know that there is a prophet in Israel.

 

  • 문제를 떠맡는 사람, 문제를 찾아가는 사람
  • 사마리아 지역, 아합왕 다음 여호람 왕때에...북왕국 이스라엘의 타락의 가장 중심에 
  • 그러나....그는 해결자

 

여전히 세상은 그러나로 가득차있습니다. 문명은 더욱 발달하고 세상은 점점 더 편해져간다고 하는데 범죄의 질은 날마나 극악해져가고 사람들의 정신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갑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이스라엘의 계집종처럼 당신을 치유할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라는 것을 믿고 외쳐야 합니다. 엘리사처럼 그런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을 치유해주어야 합니다. 트레이시 제일교회 성도님들은 세상의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여기 있다. 내가 그 분을 안다 소개시켜줄 수 있는 어린 계집종이요. 기도함으로, 중보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런 문제를 찾아 갈 수 있는 엘리야입니다. 그러나로 가득찬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로 가득찬 세상에 교회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그러나의 문제가 없습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듯이 살고, 괜찮은 듯 살고, 행복한 듯 살지만 남에게 밝힐 수 없는, 꺼낼 수 없는, 드러내면 고통스러운 그런 그러나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나아만은 어떻게 그러나의 문제를 극복합니까? 

 

  • 에필로그 1 - 나아만과 엘리사 (왕하 5:9-10절)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노라.

- 나아만의 생각: 내 생각에는 - 신앙생활에 제일 방해가 되는 것 - 내 생각에는...세상에서 닲고 닲은 그 경험->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나의 방법을 넘어선다. 다르다. 

-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요단강이 어떤 강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했던, 법궤를 앞에 두고 제사장들이 앞장 서면 거리를 두고 뒤따라 가야 했던 순종의 강, 성화의 강, 나를 부인하고 정복해야 하는 성령의 강

- 일곱번 씻으라: 온전히 자기를 비우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요 2:7, 9)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

- 온전한 순종 뒤에 은혜를 맛본 자만이 주님을 안다. 진정 주님을 경험한다. 나보다 크신 주님. 나를 정복하신 주님 

 

Epilogue 1. 나아만과 엘리사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 그의 죄가 사해지고 거룩을 경험한다. 성결의 은혜다. 

 

Epilogue 3. 나아만의 하인과 엘리사의 사환 

13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라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20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이다. 

-> 나아만은 이방인이었고, 문등병자였지만 지혜롭고 충직한 신하가 있었다. 그의 신하의 입술을 통해 나아만은 요단강의 성결의 은혜, 거룩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게하시는 엘리야의 사환이었다. 사환이라고는 하지만 선지자의 사환은 곧 인턴, 부교역자였다. 그런데 그는 엘리야의 영성을 닮지 않고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까지 하면서 나아만에게 가서 그가 가지고 온 제물을 받고 대신 그의 병을 물려 받는다. 이방인인 나아만은 고침을 받았는데, 엘리야의 사환 게하시는 문등병자가 된다.

세상의 아이러니이고 교회의 아이러니이다. 

당시 선지자 - 가난하고 궁핍했다. 게다가 나아만은 풍족한 예물을 가지고 와서 그의 병을 완전히 고침받았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를 말할 수 있었을 수 있었고,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엘리야와 함께 거하는 선지생도의 형편을 위해서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엘리야의 사환이면서도 엘리야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믿음, 자기 생각을 의지했다. 

나아만이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면 그는 결코 문등병을 고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게하시는 엘리야 밑에서 자기 믿음, 자기 생각대로 행하다가 결국 문등병에 걸린다. 죄인이 된다. 

가장 은혜의 중심에서 가장 사악한 인류의 배신자 가룟유다가 나온다. 은혜의 중심에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나아만의 문제- 은밀한 문제, 그것이 밝혀지면 그도 군대장관의 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심각한 문제. 

왕과 자신만이 알고 있었을 문제...그런데 계집종의 소리에 그 문제를 자신의 신하들 앞에 꺼내 놓는다. 

죄인은 감춘다. 그러나 은혜는 죄를 드러낸다. 그리고 수술 받는다. 

 

문등병 - 피부병

어릴 적 백일 때 홍역 예방 주사를 맞고 온 몸에 퍼진 피부병 

어릴 적 - 친척들이 부른 별명이 욥

"쯧 쯧, 제가 어른 노릇 할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 피부병으로 인해 어쩔 떈 한달 이상씩 결석

혼자 놀기, 시쓰기.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쓴 시 

 

- 외로움. 

까만 밤 홀로 앉아 오늘도 밤을 지새운다. 

누군가 있는데 내 옆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가서 내 몸을 상처내며 논다. 

 

내 자아가 어떘을까? 

내 몸이 싫고, 감추는데 익숙하고 부정적인....

중학교 때 수련회가서 주님을 만났다. 세개의 못 "그 때 그 무리들이" 

뜨겁게 기도하며 방언도 받고 회개기도도 했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대화같은 기도, 기도 같은 대화. 

 

아무도 없을 때 - 샤워하고 상처난 온몸을 바라보며 연고를 바르려고 하는데....

주님이 "승구야 내가 널 사랑한다." 

난 날 안사랑해요. 내 몸좀 깨끗하게 해 주세요. 

난 네 몸도 사랑한다. 

내 몸은 너무 더러워요. 

"너를 위해 난 십자가를 졌고 내 피로 너의 몸과 너의 모든 것을 깨끗이 했다" 

 

그말을 듣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똑같이 상처난 내 몸이 

주님꼐서 사랑하는 몸이라는 그 말에 싫어했던 내 몸이 그냥 괜찮아 져 버렸다. 

아름답진 않았지만 내 몸이 더 이상 싫지 않았다. 

 

그 때 부터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팔옷, 반바지를 입었다. 

드러내놓고 다니니 피부도 점점 나아졌다. 신경을 안쓰니 더 이상 내 그러나의 문제가 내 인생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즘도 스트레스 받고 그러면 또 다시 피부가 올라오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방해하지 않는다. 

 

여러분에겐 어떤 그러나의 문제가 있는가? 

언제까지 짊어지고 살 것인가? 

해결하고 싶지 않은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담그라. 

예배의 은혜에 빠져 버려라. 

찬양의 은혜에 빠져 버려라. 내 영혼을 담그고, 내 문제를 담그고, 내 모든 질병과 어두움과 과거와 상처를 담그고 그 분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라라. 

주님이 만지신다. 그 분이 내 그러나의 문제를 고쳐 주신다. 

트레이시 제일교회는 성도 여러분의 그러나의 문제를 방관하지 않고 어린 계집종이 되어 주를 알리고, 엘리야가 되어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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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막 2: 1-12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의 값을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정하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그럼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세가지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생을 얻은 우리 인간의 생명이 영원함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귀한 것은 힘듭니다.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생명을 출산하는 것도 힘이 들고, 그 생명을 양육하고 돌보는 것은 더욱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산의 고통과도 같은 아니, 해산의 고통은 주어진 시간에만 참으면 해결되는 고통이지만 한 생명을 구원하는 고통은 그 영혼이 구원될 때까지 받게 될 고통이므로 더 큰 고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의 중풍병자이야기는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한 이야기입니다. 네 사람의 친구들이 한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려와서 구원받은 내용입니다. 올 때는 상에 실려 왔는데 갈 때는 치유 받고 돌아갔고, 병 뿐만 아니라 죄사함까지 영적으로, 육적으로 다 고침받은 사건이 마가복음 2장의 사건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한 사람을 구원하기까지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오늘의 사건은 중풍병자가 낫는 기적은 친구들의 믿음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에 보신 것은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찾으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친구들은 그냥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이 친구를 주님께만 데려 온다면 반드시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담임하면서 한 분 한 분 그 분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말씀과 동행하도록 살게 그 분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저의 임무이고 책임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마음에 움직이시고 감동을 하시는가? 바로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시고 감동하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시라면 할 수 있습니다하고 달려드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고 움직이십니다. 질병을 치료하시고, 때로 파도도 잠잠케 하시며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가장 첫 번째 법칙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 두려움과 질병과 고난과 사탄을 이기는 것도 오직 믿음 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신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힘도 오직 믿음입니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러면 우리가 읽은 막 2장의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함께 갑니다. 희망없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한 친구를 사랑한 네 명의 친구들, 그 중풍병자를 긍휼이 여긴 사람들, 사랑과 믿음이 만나는 곳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믿음을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갈 5: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하나가 된 믿음입니다. 네 친구들은 한 마음으로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옵니다. 누군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 안됩니다. 함께 보조를 맞추어 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가 된 믿음은 곧 협력하는 믿음입니다. 혼자 힘 보다는 협력해서 함께 나아갈 때에 큰 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네 친구들은 중풍걸린 한 사람을 일으키기 위해 한 마음으로 협력합니다. 하나님은 연합하는 사랑, 연합하는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성령님은 사랑으로 연합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분리하게 합니다. 마귀의 다른 이름은 곧 분리자입니다. 분쟁하게 하여 힘을 분산시킵니다. 힘이 분산되면 무력해집니다. 우리는 우리를 분리하게 만드는 사탄의 역사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작은 힘이라도 뭉치면 힘을 발휘하게 그 속에 사랑이 담기면 엄청난 힘이 나옵니다. 사랑은 나누어진 것도 연합하게 만듭니다. 
  • 또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열정적인 믿음입니다. 친구들은 예수님 계신 곳에 사람들이 많아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열정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를 볼 수 없자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에게 다가갈 수 없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면서 제자들이 예수를 설득할 정도로 부르짖었습니다. 열정이 없으면 이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이 열정이 중풍병자를 낫게 합니다. 사랑은 바로 열정입니다. 사랑이 있다는 것은 어떤 장애가 있어도 헤쳐나갈 열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에너지 입니다.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변화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사랑으로 연합하여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들의 표정, 그들의 행동을 상상해 보자. 억지로 했을까? 창피해 했을까? 아마도 기쁨이 있었을 것이고 기대에 차 있을 것이고 또한 중풍병자 친구에 대한 긍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름답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변화시키 전에 사랑하는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다.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또한 곧 희생하는 믿음이다. 사랑은 곧 희생이다. 사랑하는 것 만큼 희생하게 된다. 사랑한다면서도 희생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 아니다. 정욕이고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다. 사랑은 곧 희생이다. 값을 따지지 않고 희생하는 것이다. 네 친구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중풍병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그를 인도하기 위해 하던 일을 중지하고 그를 데리고 나옵니다. 중풍병자를 위해 지붕 뜯는 희생을 감수한다. 지붕을 뜯는 다는 것은 나중에 그 수리비까지 감수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고 희생시키셨다.

  •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존귀하게 만들어 준다. 가치 있게 해 준다. 중풍병자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님은 나중에 그의 병이 죄를 통해서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죄를 짊어지고 병에 든 자의 자존감은 그야말로 무너져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별히 몸이 아프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할 때에 그런 삶의 비참함, 초라함이 지배하게 된다. 중풍병자는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어찌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고통거리, 골칫거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도, 남에게도 귀찮은 존재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그를 존귀한 자로 만들어 준다.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열정을 바침으로서 아무런 의미 없이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병자에게 나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하고 그들의 열정을 바치는 존귀한 자로 느끼게 끔 해준다. 중풍병자를 존귀하게 해 준 사람은 누구인가? 먼저는 그 친구들이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를 존귀히 대해 주신다. 예수님은 소외된 사람들, 죄인들, 병든 사람들에게 존재 가치를 심어 주신다. 예수님의 관심이 그런 사람들에게 가 있다. 세리와 죄인들, 병든 자를 사랑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이 사람 하나만 오면 교회가 좀 교양있어지고, 수준이 올라가고, 재정이 풍부해지고 그런 사람들을 찾을 것인가?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가는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중풍병자와 같은 병든 자들, 상처 투성이의 사람들, 정말로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싫어 할 수 있어도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시니 우리의 눈도, 관심도 그런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다. 사람들을 전도하기 필요한 마음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 영혼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고, 그들을 존귀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 
  • 그렇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서 존귀한 자임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진짜 천하 보다 귀한 자이고 주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를 질 그런 자가 나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인생의 실패 때문에 내 가치가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구겨졌다고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돈이 좀 찟겨져도 번호만 남아 있으면 그 가치는 그대로 입니다. 오래되어도 새돈이나 가치는 같습니다. 모양과 상관없이 돈은 그 가치를 유지하듯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기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 우리의 가치는 이미 십자가 상에서 결정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상속자가 되었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이다. 
  •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가치를 실력으로 평가할 지도 모른다. 재산의 유무로 상대할 지도 모른다. 재능과 기술이 있어야 대접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당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기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신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들이다.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이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에 우리 자신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외모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커리어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영혼의 가치를 따라 사람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 또한 친구들의 믿음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목적이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었고 그렇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믿음이 무어냐? 분명한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많아서 도저히 예수님께 다가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정확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애가 있어도, 기회가 사라져도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확한 목표가 없으면 장애가 주어졌을 때 막혀 버립니다. 주저 앉아 버립니다. 그런데 믿음 안에 정확한 목표가 있을 때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산을 넘고 파도를 헤치고 길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막 2: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 친구들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적극적입니다. 어떤 장애가 와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지붕을 뜯은 것이 아닙니다. 불쌍한 한 영혼, 한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목적이 분명할 때에 길이 보입니다. 남이 볼 수 없는 길을 목적이 분명한 자들은, 꼭 이 일을 이루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는 중에 길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니 어느 누가 지붕에 중풍병자를 데리고 올라갈 생각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붕을 뚫을 생각을 하겠습니까? 

Ex) 삭게오: 세리장 삭게오가 그렇잖아도 남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며 살아가던 그가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 바라볼 생각을 했겠습니까? 주님을 만나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까 남들이 쉬 생각지 못하는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닙니까? 

  •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적을 성취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일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작한 일을 끝맺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1. 장애물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무리? (나도 남들처럼?) 우리 속에는 무리에서 벗어나 특별한 길을 가고자 하는 잠재의식 속에 동시에 무리 속에 속하고자 하는 의식? 무리들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습성이 있다. 네 친구들이 먼저 한 일은 무리들 가운데 길을 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무리에 있지 않고 무리를 뚫고 나오는 한 영혼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남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다. 남을 돕다가 수군수군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비난을 감수할 수도 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체면이라는 장애도 극복을 해야 한다. 네 친구들은 일찌감치 교양 있는 것을 포기하고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뚫었다. 극성맞아 보이는 것을 감수했다. 아마도 나중에 사람들이 다 간 후에도 지붕을 고쳐주고 돈을 물어주었을 것이다. 
  2. 더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길과 체면을 생각하고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렇게 해도 아무런 일도 안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외부적인 장애물보다 더욱 큰 장애물은 언제나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입니다. 이럴 때 넘어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다시금 목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냥 돌아가면 똑같이 변화없이 절망 속에서 살아갈 중풍병자를 위해 그래도 조그마한 희망만 있어도 그를 위해 끝까지 가 보는 것입니다. 가장 큰 위기는 목표를 잃었을 때에 옵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 눈에 목표가 보이지 않고 장애물만 보일 때 입니다. 장애물은 장애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서 목표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장애물 앞에서 목표를 잃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를 만나야만 친구가 나을 것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넘어서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지붕 밑에 있는 예수님을 향해 지붕을 뚫고 친구를 내려 보냅니다. 

우리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를 가까이 하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믿음은 다름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장애물 속에서 기회를, 장애물 속에서 비전을, 장애물 속에서도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합니다. 믿음의 눈은 모든 것을 초월하게 만들어 줍니다. 
  • 예수님은 이러한 친구들의 믿음을 보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 예수님은 믿음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기적은 은혜의 사건입니다. 중풍병자에게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 우리는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기적들은 기적을 경험했던 당사자들의 믿음보다 그들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믿음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 가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은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과 종들의 순종이었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이 나은 것은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의 병을 낫게 한 것이었습니다. 나사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던 마르다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 믿음을 키우십시오. 약한 믿음에서 강한 믿음으로 키우고 믿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말씀으로, 기도로 믿음은 자라납니다. 믿음은 점점 강해집니다. 중풍병자의 병나은 기적을 보고 가장 기뻐한 것은 물론 중풍병자였겠지만 그 친구들의 마음은 어떻했겠습니까? 힘들게 발 맞추어 지붕까지 친구를 올리고 지붕을 뚫고 지붕아래까지 친구를 예수님 앞에 인도한 그 친구들의 마음도 역시나 감격에 겨워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이 사건으로 더욱 강해지고 또한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 우리 주위에는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패와 절망 속에서 스스로 예수 앞에 나올 수 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자존심 때문에 주님이 필요없는 것 같지만 결국은 너무 상처에 곯아 스스로 예수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처럼, 그것이 부모의 모태예서부터건, 태어나서 부터건,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부터건 예수 앞에 그들을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 그들을 예수 앞 까지 안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장애가 있고, 사람들의 시선이 있고, 내 자존심이 있고, 데리고 나와도 아무런 일이 안 나타나면 어떡하냐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도 있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모든 장애물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뜻밖에 생각지 않은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온 자들은 무명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이름 조차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그들을 아시고 그들 때문에 친구를 구원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몰라주어도 예수님 앞에 기억된 자 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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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강해 1:40-45 (문등병을 고치신 예수님)  

 

(막 1:40)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막 1:41)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막 1:42)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막 1:43)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막 1:44)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막 1:45)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1. 한 나병환자, 나병, 한센병, 문등병- 구약시대로부터 저주의 대명사, 율법은 

구약시대부터 문둥병은 저주의 대명사로 통했습니다. 

율법에는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서 살지니라" (레13:45,46)

 

예수님 시대에도 랍비들은 문둥병자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까지 피해서 자리를 옮길 만큼 버림받은 존재. 

중세기에는 나병이 들면 신부가 데리고 가서 장례예배를 드리고 사회 밖으로 추방. ->송장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소록도- 호적에서 제외된 자. 평범한 삶에서 제외된 자. 소외된 자. 사람 곁으로 오지 못한다. 함께 있지 못한다. 

그들의 병도 병이지만 전염되기 때문에....

 

증상: 처음엔 살이 뽀얘지면서 하얗게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몸의 감각이 무뎌져서 몸이 썩어도 느끼지 못한다. 

        무감각증은 가장 치명적인 병의 증상이다. 아파야 피하고, 아파야 조심하는데 아프지 않으니까 몸이 상해도 그냥... 

        좀비와도 같은 삶. 

        -> 죄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 하다. 

       마약 중동자. 도박 중독자. 알콜 중독자  - 처음엔 에너지를 주고 생동감을 주고 심적인 흥분감을 주어서 삶이 재미있어 진다. 삶이 의미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점점 중독이 되어가면 내 몸이 망가지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취하게 된다. 

                                                                   가끔씩 인터넷에 떠도는 중독자들의 사진. 1년만에도 사람의 모습을 아주 비참하게 만든다. 본인만 모른다. 약만 먹으며 괜찮다고 한다. 

내 영혼의 문등병 - 영혼이 점점 망가져가고 있는데 난 괜찮다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나의 연약함을 부정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기도도 나오지 않고, 관계도 다 끊겨가고 있는데 내가 맘만 먹으면 괜찮다고 하며 스스로 속이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2. 다가감 갈망함 엎드림 간구함. 

(막 1:39)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그런데 이 문등병자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하나님의 나라, 평안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변화를 본 것이다. 

나도 예수를 만나면 나 자신의 저주, 나 자신의 연약함, 스스로 괜찮다고 했지만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소망'이 생긴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소망을 갖는 것이다. 이대로 이렇게는 안 살고 나를 약하게, 나를 악하게 만드는 모든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갖는 것이다. 

믿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품는 간구의 소리를 외치는 것이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움직인다. 움직이게 한다. 이대로는 그대로 살 수가 없어서 예수 앞에 나오게 한다. 

 

문등병자는 사람들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자다. 호적에서부터도 파 내어 사람들이 다가오면 먼저 피해야 하는 것이 법이다. 

그런데 그 모든 세상의 상식, 율법마저 깨어 버리고 문등병자는 예수 앞에 나온다. 

예수 앞에 나오는 것. 모든 변화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행동은 곧 결단이다. 

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예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예수의 귀에 소리가 들리게 해야 한다 

 

(시 18:6)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시 18:7)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하였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자기 한풀이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한풀이 기도가 아니라 그 분의 귀에 들리도록 하는 기도이다. 

만물 중에 유일한 영적 존재인 사람이 영의 근원이고 영을 통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귀에 우리영의 깊은 소망을 아뢰는 것. 그것이 기도다. 

우리는 부르짖는 기도는 익숙하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익숙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귀에 들려지는 기도인가? 영으로 함께 하는 기도인가? 

내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들려지면 땅이 진동하고 산들이 요동하는 변화가 감지된다. 

하나님의 마음이 내 영에 느껴지고, 그 분의 움직임이 감각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으로 부르짖어 하나님의 귀에 들려지는 기도이다. 

문등병자의 기도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면....당신이 원하시면..."주님, 나 같은 것도 깨끗해 질 수 있나요?"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3.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이르시되 

죄인을 구하러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 지금 자기 앞에 꿇어 엎드려서 도움을 청하는 죄인을 보신다. 

요한복음 1장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5)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10-1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2절) 

 

막 1:38)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 

불쌍히 여기사 - 민망히 여기사 -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하셨다는 이야기다. 

손을 대시며- 어떤 손이셨을까? 

능력의 손, 창조의 손, 사랑의 손길. 하나님의 손이 죄인을 만졌다. -> 성육신 

 

그 분이 날 만지시면- 변화가 나타난다. 열매가 나타난다. 

 

4. 문등병자를 품어주는 교회 

(행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예수님의 관심은 누군가를 따돌리는 것이 아니라 품어 주는데 있다. 

우리 또한 우리 안에서 나병환자를 격리 시키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을 얕잡아 보지 않는가? 

사람들은 서열을 나누고 갈라져 나오기를 좋아한다. 

남자가 낫니 여자가 낫니, 돈 많은 사람은 없는 사람을, 배운 사람은 안 배운 사람을, 구세대는 신세대를... 유대인은 이방인을, 건강한 자는 문등병자를... 

유대인은 이방인이 만든 요리도 먹을 수가 없었다. 유대인 의사는 이방인 환자를 진료할 수도 없었다. 말을 섞을 수도 없었다. 불결하다. 오염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당시 유대인들 "예수님을 가리켜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 (마 11:19)" 

에드나 글래드나 - 고아원 원장 

고아로 맡기워진 아이들의 호적 - 사생아, 평생을 달고 다니는 낙인 

- 3년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1936년 출생증명서에 사생아라는 단어를 텍사스 주의회에서 삭제하게 함. 

 

시선을 바꾸라. 사람들을 이방인이나 유대인, 내부인이나 외부인, 건강한 자나 문등병자.. 낙인을 찍지 말라. 

(고후 5:16)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나 자신이 주님에게 어떻게 선택을 받았는가? 언제 나를 부르셨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

살다보면 누구나 버림받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교회는 그런 버림 받은 자, 환자들이 모여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흠이 많다. 그리고 지금도 아직 미완성이다. 어찌보면 쓸모없어 버린 쓰레기같은 인생들을 목수이신 예수님이 갈고 닦아 무엇보다 광채가 나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다.

건축자의 버린 돌을 모퉁이 돌로 삼아 주신 것이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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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35-39 (예수, 기도를 통해 안식하고 방향을 정하다)

 

예수의 공생애

세례 요한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세례를 통해 예수의 공생애 시작 

세례 받자 마자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 그 사탄은 누구인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걱정없이, 어둠없이, 죄없이 살던 인간을 유혹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이끌려 끊임없이 죄악 속에서 살도록 인간을 사망의 길로, 유혹한 자. 

 

그 이후로 인간의 삶- 헛된 욕망을 위해 살다가 헛되이 죽는 인생들... 

하나님을 떠난 새로운 즐거움, 행복들을 생산해 내지만 결국 그 끝은 사망의 길. 

 

그런 사탄의 시험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을 이야기하시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시며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면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물리치신 예수님. 

 

그런 후에 사람들을 만나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을 내어 쫓고, 병자들을 고치심. 

귀신들의 왕, 사탄을 물리치셨는데 왜 구석 구석, 별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며 또 귀신을 쫓고 병자들을 고치며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이 임하셨는데 왜 그럼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를 영접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데 왜 끊임없이 말씀 읽으며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 필요와 쓸 것을 이미 아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도해야 하는가? 

 

사탄의 영향력, 흔적, 유혹, 시험...여러가지 사탄의 세력이 여전히 남아있고, 영향력을 미치고, 또 넘어가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구석구석 사탄의 영향력을 치워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날 이끌도록,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복음은 무엇인가? 사탄의 세력은 이제 끝이 났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했다. 이제 저주에서 풀려났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믿음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다. 이제 어둠의 시절은 끝이 났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임했다. 

이제 원수는 힘을 잃었다. 주님만 힘있다. 주님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 권세있다고 외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 전날의 사역 

- 안식일 - 회당에서 말씀전함, 귀신 들린 자 귀신을 쫓고... 베드로의 집 - 장모의 열병을 치료... 

                그리고 저녁무렵 동네의 모든 귀신 들린 자, 병든 자 치료... 

 

  • 그런데 35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왜 지친 몸을 이끌고 기도하시는가? 

기도가 주님께는 안식이었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두운 이 세상에 오신 것.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것. 만나야 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은 유대인들까지도 함께 하기 싫어하는 병든자, 가난한 자, 눌린 자, 포로된 자..., 그들을 만나시고 만지시고, 함께 주무시고, 그리고 가르치시고, 제자 삼으시는 일. 

 

사랑하기때문에 하지만 육신적으로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날 자체가 그 분께는 너무나 큰 고통. 

사랑을 위한 고통. 

 

그런 세상 가운데서 오직 숨돌리고, 하늘의 기운을 맛보고, 그래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서 다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기도. 

오직 세상의 방해 없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하늘의 영원한 보좌를 체험할 수 있는, 그 유일한 회복의 시간... 오직 기도의 시간. 

 

휴식보다 더 깊은 안식. 

잠 보다 더 달콤한 휴식. 주님의 기도시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자신의 할 일을 알고, 할 수 있도록 충전을 받는 시간. 

 

그런데 육적인 사람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 도대체 적응이 안되는 시간. 

더군다나 피곤함을 무릎쓰고 새벽미명에 기도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시간은 이토록 힘겨운 싸움이다. 

 

  • (막 1:37)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  사람들이 이토록 좋아하고 난리인데 왜 여기 있습니까?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오천명을 먹이실 때에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온 유대인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양을 할 때에도 오히려 주님은 한적한 곳을 찾아 홀로 기도하셨다. 

흥분과 칭찬, 환호 속에서 자기가 할 일을 망각하지 않으셨고, 자기 능력에 도취되어서 교만해지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강요하지 않았다.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곧 기도다)

  •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 단 한 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권유한 것을 제외하고는 기도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 기도는 하셔야 되요!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육적인 사람에서 영적이 사람이 되는 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다. 

그런데 그것은 권면이나 강요로 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 훈련, 기도 훈련하는데 과연 기도를 훈련해서 얼마나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기도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놓아두고 기도하신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덧 제자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는 것 처럼 따라오는 것이다.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막 9: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했다고 하는데 나와도 대면해 주십시오.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 나의 기도도 들어 주십시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다. 

자기 사명, 자기 정체성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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