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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된 성도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0-21) 

 

  • 새해 첫 주 - 개척예배에 주신 말씀 

무화과 나무와 성전 척결 - 교회가 맺어야 할 열매는 성령의 열매, 삶의 열매, 입술의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 화평의 열매 

  • 지난 주 - 교회의 지체된 성도의 정체성 - 조각목 

가시많고 악마디 많고, 바짝말라 수분이 없는...

그런데 그 조각목의 껍질을 벗기고, 금테,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테로 우리를 싸매사 성전의 도구와 기둥이 되게 하시는 주님

껍질을 벗기고 믿음의 테를 두르자! 

 

  • 이번 주 - 하나님께서 쓰시는 성도와 교회 

교회와 목회의 나침반과도 같은 말씀 

 

미국에 오게 된 배경 

신학대학원 4학년 때 - 결혼과 진로와 사역에 대해서, 여러가지 고민을 하면서 잠못이루고 있을 때, 마지막 수업과목 <교회 개혁의 역사> 시간에 방문한 봉쇄 수도원 

 

평생을 수도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수도하는 수도사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적게는 10년, 많게는 20-30년간 그 곳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기를 수련하는 사람들.  

 

외부에서 방문해도 한 두 사람만 면담이 가능하고 그 안에서의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 인상 - 감옥과도 같이 무서웠다. 그리고 평생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 길이라고 여겨졌다. 왜 개신교 전도사와 목사님들이 이 곳에 와야만 하는지....

 

23년을 외부 출입없이 그 곳에서 수련하고 있다는 한 평신도 수도사와의 면담 - 목회자라고 특별히 긴 시간을 내어 주셨다. 

"저희들이 이상해 보이지요? 저희들도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개신교 목사님들의 설교를 많이 듣고 접합니다탁월한 목사님들이 많고 설교를 통해 목사님들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지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물론 가톨릭 신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목사님들이 넘어지는 소리- 대개는 돈과, 권력, 그리고 여자문제로...) 

저희는 그것이 그 분들이 기도가 부족하거나 성경을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훈련, 일상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지 않나...저희들은 평생 이곳에 있으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이 길이 모두가 가야할 길이라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교회가 성도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배라면, 그 배가 바다 위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잃어버린 길을 찾는 등대같은 존재....아, 저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있구나 하면서 바른 길을 찾는다면 평생의 수도생활에 가장 큰 면류관이라 생각합니다." 

 

잔잔한 대화를 들으면서 내가 지고 있었던 모든 짐들, 결혼과 사역과, 먹고 사는 일들이 그 앞에서 정말 스르르 녹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일상에 대한 훈련이라는 말, 등대 같은 삶이라는 말이 마음 속에 깊이 박히고, 신앙생활의 긴 여정동안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야 할 길을 기준하는 하나의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오늘 말씀도 내 인생의 나침반 같은 성경 구절이다. 

 

1. 큰 집에는 

큰 집은 어디인가? 하나님이 주인 되신 집이다. 하늘나라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세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된 교회이다. 

"그릇"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articles, 즉 재료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금과 은도 가득하고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릇 중에는 귀하게 쓰는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다고 말씀한다. 귀하고 천하게의 뜻은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혹은 천한 목적을 위해서라는 의미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당연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금그릇이나 은그릇은 존귀한, 아주 고상한 목적을 위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에나, 아주 특별한 날에만 쓸 테이고, 나무그릇이나 흙으로 만든 질그릇은 하찮은 목적을 위해서, 아무 때나 쓰는 그릇이 되겠구나…. 이것이 상식적인 생각이고 또한 현실적인 해석이다. 

 

2.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반전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1절) 

  • If a man cleanses himself from the latter, he will be instrument for noble purposes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d to do any good work.
  • 만약 사람이 자기 자신을 깨끗이 하면 그는 거룩하게 되어 고상한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고, 주인에게 유용하며, 어떤 선한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준비된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금 그릇, 은 그릇은 귀한 용도로 고상하게 쓰여지고,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은 하찮은 용도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금 그릇이나 은 그릇, 나무그릇이나 질그릇, 그 재료에 상관없이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내가 내 재료가, 내 달란트가, 내 능력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능력 있고, 부유하고, 똑똑한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자를 쓰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마음의 중심으로 믿는가? 교회에서 너무나도 많이 들었던 말씀이지만 진심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가?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외모로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느니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실 때에도 독사의 자식들아 하시면서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눅 11:39)라고 말씀하십니다. 

 

  • 성경에서는 일관적으로 이렇게 말하는데, 이 말씀을 내 삶 속에서도,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진정으로 받아들이기가 왜 힘든가? 

 

사람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교회에서까지 바라고 행해왔던 교육은 언제나 “큰 그릇이 되게 하는 교육” “금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만큼 1등을 좋아하고 최고를 좋아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올림픽 나가서도 금메달 아니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최고가 되기 위해선 친구와도 경쟁해야 하고, 늘 남을 넘어서도록 교육받아 왔다.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남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교육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조차 상투적인 말이지 실재 삶의 현장에서는 언제나 금그릇 되라고 직간접적인 강요를 당해 왔다.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남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교육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조차 상투적인 말이지 실재 삶의 현장에서는 언제나 금그릇 되라고 직간접적인 강요를 당해 왔다. 

몇달 전 서울대 대학생이 아무리 공부해도 금수저를 달고 태어난 자들을 이길 수 없다 며 비관하며 자살한 사건은 우리 나라의 현실을 보여 준다. 

 
그런데 성경은 금그릇이 되어도 천히 쓰임받는 자가 될 수 있고 나무그릇, 질그릇이 되어도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고 증거한다. 그릇이 좋다는 것은 능력이 많다는 것이다. 스펙이 좋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 재료가 좋다는 것이다. 금수저를 타고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라 할지라도 천한 목적을 위해 쓰임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50대 재벌 중 정상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는 가정- 1/3도 안된다. 다 혼외 자식, 이혼과 재혼.

잘 배운 검사, 판사, 기업인, 정치인- 정말 그들이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받고 있는 것일까? 

 

바울, 예수, 12제자- 세상적으로 실패한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장 귀하게 보신다. 

 

물론 기독교는 복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으로 창조하시고 부르셨다. 그런데 그 복은 성경에서,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부자가 되며, 세상적으로 성공한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보다는 애굽이, 바벨론이, 로마가 훨씬 복있는 민족이었을 것이다. 

 

시편에 보면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시 1:1-2) 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8복을 이야기하실 때에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자” (마 5:1-10)이 복 있는 자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런데 시편의 복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복을 하나님 말씀하신 복이라고 뚜렷이 증거하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예수 믿었더니 병이 나았더라, 가난에서 해방되었더라. 큰 차를 몰게 되었더라. 그건 그냥 부스러기처럼 따라오는 부록이지 중심이 아니다. 

예수는 그런 것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 그런 것을 축복이라고 하면 복음을 질 나쁘게, 값싸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세상의 기업가들이나 자본자들이 더 잘 베풀수 있는지 모른다. 

 

축복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찾고자 하는, 회복하고자 하는 열매이다.  

죄로 물든 나의 심령, 사탄 마귀가 지배하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하늘나라의 심령을 가지고 사는 것, 그것이 축복입니다.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잘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간증할지는 몰라도 내가 예수 믿어서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그 분을 닮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분을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이름을 팔고 예수를 이용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를 닮고 예수를 따르는 자입니다.  

 

나폴레옹 예화) 네 이름을 바꾸던가, 네 삶을 바꾸어라. 

 

2. 두 번째의 반전은 20절의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의 이런 것에 대한 해석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 If a man cleanses himself from the latter, he will be instrument for noble purposes, made holy, useful to the Master and prepared to do any good work.”  

영어로 표현하면 “from the latter” 가 의미하는 것이 16절에서부터 19절에 나타나는 망령되고 헛된 것을 말하고, 경건하지 아니한 것에서부터 떠나라는 것인지, 아니면 바로 전 절에서 나타나는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을 말하는지 분명치가 않다. 대부분의 해석은 내용상으로 16절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문법상으로 보면 이런 것, 영어로 from the latter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시체를 받습니다. 그러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하면 네게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에서부터 자신을 깨끗이 하면 거룩하게 되고,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쓰임 받을 것이고, 어떤 선한 일에 대해서도 준비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성막에서 하나님은 성막 안의 언약궤를 비롯한 중요 부분을 반드시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명하십니다. 이 조각목은 바로 연약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가시 많고 상처많고 쓸모없는 나무가 조각목입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또한 우리는 흙으로 빚어서 만든 하나님의 작품이다. 우리가 모두 질그릇이요 나무그릇이다. 조각목도 질그릇의 특징은 무엇인가? 모두 깨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조각목을 성막의 도구로 쓰실 때 거기에 금을 입히고 금 테를 둘러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입히워 사용하시듯, 질그릇에 보배를 담그시듯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영광스럽게 사용하신다.   

 

예1) 다윗은 초라한 나무그릇, 질그릇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며 자신을 깨끗이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금으로, 은으로 덧입게 하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사울은 금그릇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자 그의 좋은 체격, 인물, 자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버림받아 저주받은 왕이 되었다. 

 

2012년 담임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 한 안수집사님이 교회를 나가시면서 정목사는 목회 못할 사람이다. 사람 상대하려면 때도 묻고, 흙두덩이에도 뒹구를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순진해서 사람 상대할 줄 모르고 성경은 알지 몰라도 현실을 너무 모른다. 

 

그떄 그 말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성도가 늘지 않고 떠나가는 성도들이 생길 때마다 이 말이 귓가를 맴돌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도 흙두덩이에서 뒹군 흔적이라도 좀 보일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순진한가? 어리석은가?  고통스럽게 이 말이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었다. 

 

제작년에 10여년 만에 한국에 들어가 대학 친구들(일반대 나온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이 말을 이야기 했더니, 때도 묻고 사람 잘 상대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너가 성도라면 흙투성이면서 사람만 잘 다루는 목사를 존경하겠냐? 하며 오히려 저에게 질문했다. 그 친구를 통해 흔들리는 내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트레이시제일교회는 세상사람들이 보는 제일 number 1 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을 수 있는 number 1 교회가 되길 원한다. 금그릇, 은그릇은 하찮은 일 시키면 자존심 상해하고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무슨 일이든 내가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깨끗한 그릇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금그릇, 은그릇을 만드는 교회가 아니라 조각목과 질그릇 같은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그릇 되어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일이 어떤 일이든 맘껏 쓸 수 있는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되길 원한다. 그런 소망을 가진 자마다 함께 찬양하자. 

"항상 진실케 내 맘 바꾸사..."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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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장 가나안 평정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와 아이성을 침 - 가나안 땅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중앙을 점령하였다. 

남부 가나안의 연합 -  

(수 9:2)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같은 것을 듣고 오직 기브온 족속만 화친제의 

 

그들로 말미암아 가나안 남부 족속들이 연합하여 기브온을 침공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시고 여호수아는 즉시 순종하여 전쟁에 임하고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여 태양을 멈추고 남부 족속들을 전멸 

그들의 왕이 막게다 굴- 그들의 피신처로 숨음 - 그곳이 그들의 무덤이 됨. 

하나님이 명하시면 그곳으로 가서 치고 진멸하여 가나안 남부를 점령 

 

남은 것은 가나안 북부 

북부의 우두머리인 하솔왕 야빈이 북부 족속들을 소집함 

 

  • (수 11:4)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그들이 의지한 것 -그들의 수의 많음. 말과 병거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여호수아의 군대는 이제 그 큰 숫자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음. 

 

  • (수 11:6)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또 두려워하지말라고 당부하신다. 

승리하고 또 승리해도 막상 들어닥치면 또 두려워진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의 심령을 두려워진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 말씀과 기도로 믿음 안에 거하는 것. 

  • 7절: 이에~갑자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자 즉시 순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속의 말씀을 주셔도 끝까지 상황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한다.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의지한다. 말씀을 주시면 행동한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칠 때 이 갑자기, 즉시 라는 말이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 말 뒷발의 힘줄을 끊어라. 

그들 수의 많음에 당황하지 말고 급소를 치라.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못하도록 다시는 그것을 이용하지 말라. 

끊어버리라. 

 

어려울 때에 하나님 의지하고 극복한 후에 하기 쉬운 잘못 - 이제 세상의 것, 물질과 수단을 의지해서 어려움을 막으려고 함.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나를 신뢰하고 의지하면 영원한 승리를 준다. 

 

(신 20:1)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삼상 14:6)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삼상 17: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오히려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다. 없으면 의지한다. 전적으로 의지한다.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신다. 

 

모세의 광야생활 40년- 네가 가진 모든 능력을 무력하게 만드시는 기간 - 네 발을 벗고 나를 따르라. 너의 권리를 나에게 양도하라. 

 

(수 11:15)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모세는 죽었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런데도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무슨 말인가? 

 

성전을 지을 때에 다윗에게 성전의 지을 모든 설계도를 다윗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성전을 짓는 것은 솔로몬을 통해서다. 

모세에게 성막의 설계도를 주시지만 그것을 위임받아 세우는 것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통해서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늘과 땅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을 인간들에게 위임하셨고 또한 위임받은 인간들로 하여금 또 위임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었을지라도 자기들의 신앙을 위임했다. 그대로 전달했다. 에스라, 느혜미야 때에 성경이 기록되기까지 그들은 구전을 통해서도 정확하게 하나님의 신앙을 전달했다. 

그것이 가정과 교회의 의무이다. 

 

  • (수 11:18)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

오랫동안: 7년 

14장의 갈렙의 나이 85세 

가데스바데아에서 정탐꾼으로 가나안땅을 정탐할 때의 나이 40, 모세가 죽을 때까지 광야생활 38년 

85-78= 7년이다. 

 

  • (수 11:20)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

그들의 죄악을 끝까지 참으셨던 하나님, 반드시 심판의 때가 있다. 

 

(수 11:23)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40년의 광야 생활, 7년간의 전쟁 끝에 얻은 땅, 전쟁이 그칠 때가 있다. 열매 맺을 때가 있다. 반드시 주신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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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0:16-27 막게다 굴 속의 가나안의 다섯 왕 

 

막게다 굴에 숨은 다섯 왕 -입구를 돌로 막고 지키게 하고 대적의 뒤로 가서 지체하지 말고 후군을 쳐서 자기 성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혀를 놀려 이스라엘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21절)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25)

25절에 보면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고...담대히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과거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말씀입니다.(1:6, 9), 이제 이 말씀을 다시 기억 하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에게 같은 격려와 확신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가나안 남부의 다섯 동맹군을 매우 두려운 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 막게다의 동굴 = 피난처 -> 구금처 -> 무덤 ----- 헛된 것에 의존하지 말라!

오늘 말씀 27절에 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들이 숨었던 그 굴이 오히려 무덤이 되고 만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우상을 가지고 혹은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우상이든 돈이든 명예든 혹은 어떠한 지위 던 간에 그것이 자신을 보호해 줄줄 알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것들로 자신의 안식처나 피난처를 삼아 살고 있는 자들은 결국 그 의지하던 것들과 세상과 더불어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할 것은 세상도 아니며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 되심을 마음에 각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피난처: 막게다 동굴이 아닌 골방, 기도 처소, 감옥에서도 기도하면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시는 분. 

세상은 각자의 막게다굴로 피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곳은 자기를 가두는 감옥이 되고 무덤이 되지만 우리는 감옥 안에서도 주님께 기도하면 그곳은 해방의 나라가 된다. 가나안의 다섯왕이 굴 속에 피신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얼마나 초라하고 우스운 장면인가! 얼마 전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가나안 민족들의 왕이 그것도 한꺼번에 굴 속에 갇혀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하다.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40) -> 모든 죄악의 근절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여호1:3)

여호수아의 이 명령은 결코 야만적인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신 7:2)을 충실히 따른 순종적인 행위였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사실은 종말론적으로는 사단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분 안에서의 성도들의 승리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대적하는 땅의 모든 왕들을 마침내 그의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이며(시 110:1;빌 2:10;히 2:8),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단의 세력을 발로 밟게 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롬 16:20)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43) -> 여호수아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40) = 순종한 여호수아, 이 전쟁은 성전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42) =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싸우셨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40)

=> 바벨론의 포로였다가 돌아와 차지한 곳과 정확하게 같다.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부각시키고자 하는게 저자의 의도이다.

 

가나안 남부를 점령 

막게다 (28절) - 립나 (29-30)- 라기스 (31-32) - 게셀왕 호람(33) - 에글론 (34-35) - 헤브론 (36-37) - 드빌 (38-39) 

 

1) 여호수아가 ~에서 ~으로 나아가서 ~과 싸우매:신속하게 이동하여 계속적으로 땅을 정복해나감  

2) 여호와께서 ~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3)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에서 행한 것과 일반이었더라 

 

저는 이 대목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사들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을지 한번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들은 기브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오르막 산행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지금까지 또한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체력적으로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을 것입니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는 좀 그만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긴 하루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양을 붙잡아 두시는 동안 그들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제 마음에 들려오는 귀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태양을 주시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아침을 허락하셨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피곤하고 힘들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태양 빛을 비추시는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약속의 땅’ 지경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그 일을 끝내기 전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태양의 빛을 거두어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이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인 우리에게 몸을 주신 것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일할 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주신 것이고,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 사명을 통해 우리는 영생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제한적인 몸을 위해 영적인 삶을 포기하지 마시고, 영원을 위해 몸을 쓸 수 있는 지혜와 충성됨이 있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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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0장 1-16절 기브온 화친 

 

기브온 - 묻지 않고 화친을 맺은 족속 

           나중에 베냐민 지파의 땅을 얻고 그들의 땅에 가장 큰 산당이 세워지게 되고 솔로몬의 일천번제가 행해지게 됨. 

           왜 그들을 구원하시는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선물이라. 행위에서 말미암지 않음이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은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지만 그 은혜를 누렸다. 그들에게 주어진 저주는 축복이 되었고 약속이 되었다. 

              

(수 10:2)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이스라엘의 승리 소식을 들었을 때에 다른 가나안 족속들은 동맹하여 일심으로 맞서 싸우려 하지만 강하고 큰 성읍이었던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에 동맹하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종으로 들어온다. 무엇이 살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 힘과 자기 살 길을 의지하고 그것을 택했다면 그들은 살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참 살길을 향해 붙잡으니 그들은 영원한 보장을 받았다. 그것이 구원이다. 

 

예루살렘왕 - 아도니세덱, 이스라엘의 승리를 듣고 기브온의 화친 소식을 듣고 

그의 선택은 무엇인가? 똑같이 그는 두려워하였지만 그의 선택은 가나안을 의탁한 것이다. 자기 살길을 어디에서 구했는가?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고 세상 안에서 살 길을 구하였다. 그는 기브온보다도 약한 자였고 힘이 없었지만 결국 하나님께 엎드리지 못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가나안 다섯 족속이 동맹을 맺고 기브온을 침공한다. 

자기 민족의 반역자를 치는 것이다. 세상의 무리였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선 무리에 대한 응징이 시작된다. 

우상 숭배하다가 하나님을 믿으면 처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마치 깡패 소굴에 들어있다가 착하게 살려고 하면 복수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당신이 종 돕기를 더디 마시고 우리를 구하소서." (6절) 

 

이스라엘은 결정해야 한다. 

꼭 이들을 도와야 하는가? 자신들을 속인 자들,....

그리고 도울 능력도 없다. 자신들은 힘이 없다. 한 족속도 치기 어려운데 다섯 족속의 동맹군을... 

 

그런데 여호수아는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왔다. 

왜? 언약 때문이다. 약속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 때문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가지고 변명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을 의지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다. 보장하신다. 승리를 약속하신다. (8절) 

사람 보기에 불가능한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다. 

 

약속을 가지고 순종한다. 

하고자 하니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주시니 즉시 순종했다. 

그 먼길을 "갑자기 " 닥치도록 즉시 순종한 것이다. 

 

육체적으로 지쳤으나 하나님은 우박을 내리셔서 그들을 무찌르신다.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도 더욱 역사하시는 것이다. 

 

승리를 주실 때에 멈추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현장의 중요성을 안다. 

현장에서 또한 기도하는 자가 된다. 

그는 현장에서도 기도가 멈추면 승리하지 못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그는 현장에서도 기도한다. 태양아 멈춰라! 

 

말씀-> 순종-> 기도./...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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