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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4장 6-11절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사 44:6-11]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 

- 애굽의 종되었던 민족을 빼내어 오심에서부터 시작

-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 십계명과 성막을 통해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 

- 예배: 에덴에서와 같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

 

그런데 그들이 다시 바벨론의 노예가 되었다. 

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어버리고 다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40장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는 민족인가를 말씀하신다.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무언가 회개하고, 순종하고, 구원받을 만한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아직 (still, 에티) : 여전히 죄인이었을 때에, 그러나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의지. 

 

그럼 왜 그들을 구원하시는가?

어제 말씀 

[사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 그가 사랑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닌가? 왜 그들만 사랑하는가? 

 

두 번째 이유 

[사 43: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 두 번째 열방에게 무엇인가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을 택하여 하나님을 알도록 (경험하도록), 믿도록 (그 분만이 하나님이신 줄을), 깨닫도록 보여주기 위해서 택하였다.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그 많은 인간들이 다 죄에 빠져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에, 아브라함 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여, 그의 후손으로 하여금, 여전히 그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그들을,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하심과 연단하심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이 참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고, 살아계심을 깨닫게 하여 열방에게 보이고자 한 것이다. 

 

어떤 신자들은 늘 묻는다. 

내가 구원받았는지 안받았는지, 내 믿음이 흔들릴 때면 늘 혼동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말한다. 

내가 넘어지고, 죄짓고, 실패하고, 낙망하고, 깊은 침체에 빠지며, 흔들리지만, 그 분은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고 또 말씀하시고, 그 분이 하신 말씀이 내 삶에 역사가 되고, 하면서 나는 실패해도 그 분은 부인할 수 없기에, 난 넘어져도 그 분이 살아계심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 분으로 인해 내가 구원받음을 압니다. 믿음의 근거가 내 상황이나 감정이나 확신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와 역사와 사랑이다. 

 

그래서 그 믿음을 잃어버린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상황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한다. 

 

[사 44:1-2]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 여수룬: 사랑받는 자. 

 

그리고 그 분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신다. 

 

[사 44:7-8]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 그가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치며 알리며 설명한 것이 무엇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 그들에게 듣게 하신 것, 그들에게 알린 것 - 하나님, 왜? 그들을 증인 삼으려고...
  • 불교의 경전- 구도자가 어떻게 부처가 되는가? 해탈의 길, 열반의 길
  • 유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인, 도
  • 모든 종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독교-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리스도가 이룬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 분을 믿으며 바라보면 닮는다. 따라간다. 따라 살라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그저 믿으라고 한다. 바라보라 한다. 이것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믿음은 하나님과는 관련없는 신념이 되고 만다. 

 

우상을 만들어 절하면서 자기가 잘되기를 바라는 자- 결국 그 우상은 대장장이의 손에 만들어진 창작물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영이다. 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 나는 스스로 있는 존재다. 나는 처음과 나중이다. 

 

 

당신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 확신? 

그럼 그 축복이 고난이 되면 믿음이 사라지는가? 

확신이 희미해지면 불신이 되는가? 

당신이 택함받은 자라는 것, 

하나님의 지명받은 자라는 것

실패하던 말던, 낙심하던 말던, 침체에 빠지건 말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건 말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나를 이끌어내어 주신 분이라는 것을, 이끌어 내실 분이라는 것을 믿는가? 

당신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세우실 것을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믿는가?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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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장 1-7절 (지명) 

 

[사 43:1-7]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며 승리케 하시리라는 약속 

역사에 개입하시고 이스라엘의 모든 못난 결정에 개입하사 그것을 고치시고 그의 사랑을 인하여 그들의 실패보다 더 큰 그 분의 역사 

 

  • 역사적 배경 - 바벨론이 포로 상황에서 주신 말씀 

우리가 읽은 43장의 바로 전장 42장 -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둑 맞으며 탈취를 당하여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혔다." (21-22절) - 하나님이 우리를 벌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도둑맞고 탈취당한 것이다. 옥에 갇힌 것이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신실한 남편을 버리고 우상에게 바람난 것이다. 

  • 본문 속의 역사적 배경은 유다왕국이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이다. 유다왕국이 망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악을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본문 속의 그들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존재라기보다는 사기꾼 같은 비열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가정은 파괴되고,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인권이 짓밟혀서 인간의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러지 같은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그런 비참한 노예가 되어 있는 그들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지명- 1 

  • 어떤 사람이 어떤 귀한 자리를 맡게 될 때에 크게 보면 선출직이 있고 임명직이 있습니다. 정치를 예로 들면 대통령이나 국회위원은 선출직이지요. 살다보면 대부분의 직이 선출직입니다. 회사는 시험을 통해서 신입사원을 뽑습니다. 또한 그 사람의 일한 성과와 또는 계속되는 시험을 통해서 승진을 시키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공정함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다수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상관이 주관적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위원은 투표를 통한 선출직이지만 주로 행정이나 실무를 맡는 각 부처의 장관들은 임명제입니다. 뽑는 자의 주관이 가장 큰 기준입니다. 그래서 장관을 뽑을 때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적당한 기준을 초월해서 임명되는 경우를 낙하산이라 합니다. 누군가 윗선에서 힘이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편애가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임명직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야곱을, 이스라엘을 지명해서 불렀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잘 할 때, 무언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 만한 때에 날 사랑한다하시면 납득이 간다. 
  • 그런데 내가 정말 잘 못하는데, 자꾸만 어긋나는데 그런데 내가 널 사랑한다. 너는 정말 내 아들이다고 할 때에는 그 말이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느껴지질 않습니다. 그 분이 날 지명해서 임명했다는 사실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에... 기드온을 부르실 때에,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하나같이 난 아닙니다. 난 죄인입니다. 날 어서 떠나세요...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 또한 함께 예수 믿는 자들 중에는 정말로 믿음이 연약하고 인간적으로도 볼품없고, 별 애정이 안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는 짓마다 밉상이고, 도대체 그 말과 행동과 생각이 하나도 맘에 안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를 지명해서 부르면서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지명해서 불렀다. 넌 내 자녀다"하면서 귀한 직분을 주신다면 화가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도 정의롭지 못하고 편애가 가득하고 옳지 못하다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명해서 불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불합리하고 편견이 가득하고 공정치 못할 정도로 하나님 맘대로인 것...
  • 멸망 받아 마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4절) 지금 한 참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있는, 그러면서도 회개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했다...." 

  •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편애다. 어떻게 그렇게 그런 자들, 그런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가? 

1) 내가 너를 구속했다. - 내가 너의 죄값을 치뤘다. 내가 용서했다. 내가 널 샀다. 입양했다. (1절) 

2) 내가 그를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다. (7절) - 내 것이므로 내가 책임진다. 

3)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들이다. (7절) - 그들을 통해 내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일 것이다. 그들을 통해 또 다른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죄악이 많을 지라도 반드시 그들을 나의 자녀의 합당한 자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로 만들 것이다. 

 

지명 - 2 

  • 지명은 그가 나에게 이런 자리, 임무를 주었다. 
  • 세상은 힘들면 피한다. 맘에 안들면 바꾼다. 길을 가면서 힘들면 내가 선택을 잘못했나? 고민하며 염려한다. 
  • 어떤 사람은 직장을 바꾼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도 바꾼다. tv 채널 바꾸듯이 자꾸 인생의 노선을 변경하며 바꾸려고 시도한다. 
  • 그런데 지명해서 불렀다는 말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이 친히 임명했다는 것이다. 이 가정에 살도록,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봉사하고 헌신하도록, 그 자리에 똑 맞는 사람이 나라서 그 일을 맡겼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나 만이 그 자리, 그 위치,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목사로서, 어떤 사람은 장로로서, 권사로서, 안수집사로서, 집사로서.... 하나님이 그 자리는 반드시 너가 해야 된다면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1)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요 - 홍해를 건널 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 바울은 이것을 세례의 사건으로 풀이. 

2)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광야 생활의 마지막 가나안을 입성하기 전 건넌 강- 요단강. 

    (수 3: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 이제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나갈 때에 어떤 어려움도 이기게 하신다. 

3)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다니엘과 세 친구) 

(단 3: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불같은 시험 많아도 겁내지 아니할 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 

 

결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지명하여 소명받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분은 야곱된 우리를 이스라엘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무기치하고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자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할 용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곁에는 항상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보지 말고 환경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사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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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장 1-9절 (하나님의 종) 

 

[사 42:1-9]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하나님의 종 -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시는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고 세상에 드러난 종  

그 종이 세울 것 - 하나님의 정의, 이 땅의 정의를 넘어선 하나님의 뜻,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간 각자가 생각하는 선악을 넘어서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뜻

그 종의 특징 - 외치지 않고 소리를 높이지 않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권력적이지 않은, 세상적이지 않는,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섬기면서 동시에 다스리시는... 힘의 논리가 아닌 질고를 지고, 고운 모양이 없고, 고난당하는 종.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 하나님이 택한 종, 하나님의 영이 있는 종, 모든 죄인들의 빛이 되어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이끌어낼 종 

 

[마 16:16-23]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베드로의 고백 - 당신이 그 메시야, 그리스도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종입니다. 
  • 그래 그 고백 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다. 내가 교회에게 나의 종된 사명, 종의 권세를 주겠다. 
  •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리지 말라. 내가 죽을 것이다. 내가 고난 당할 것이다. (종된 사명, 종된 정체성) 
  • 항변하여 이르되 안됩니다. 당신이 죽으면 실패합니다. 당신이 살아야, 힘이 있어야, 보여주어야 그 임무가 성취됩니다. 
  •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한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마 4:8-10]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사탄의 유혹-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영광이 되라. 
  • 사탄아 물러가라. 
  •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 - 종의 직분, 종의 사명, 종의 방법 - 하나님의 정의, 뜻을 이루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지 않고 오직 그 분께 드리는 것.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예수의 마음, 종의 마음 
  • 신이 종이 되어 복종하는 것, 그런데 사람은 신적인 목사, 신적인, 신비한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추앙한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주목받다가 세상이 된다.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것 - 세상의 어떤 힘도, 권세도 할 수 없었던 것을 종이, 종된 메시야가, 십자가를 통하여 하시는 구나. 
  • 그 결과 -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 종- 예수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예수로 완성되고 예수가 모델이 되어 우리에게 보여주시지만 우리 모두를 그 종의 자리에 초대하시는 것이다. 한 시대,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의 때부터 예수의 때까지, 예수의 때 이후로, 그 분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때까지 계속적으로 교회에게, 교회된 성도에게 맡기신 자리, 맡기신 사명, 맡기신 권세.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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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이사야 41:8-14절) 

 

본문을 살피기 전에 먼저 출애굽기의 내용을 살펴 봅시다. 

출애굽기는 전체가 40장으로 이루어 졌는데 1장부터 20장까지가 애굽에서부터 시내산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열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십니다. 

바로가 지배하는 세상의 왕으로부터 광야에서 그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애굽에서부터 시내산에 이르기까지 2개월이 결렸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과 함께 하니 가나안에 들어갈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습니다. 

거침이 없어 보입니다. 

 

21장부터 40장까지는 여전히 광야에 머물러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여 줍니다. 

열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을 빠져나왔다면 이젠 10계명을 받으면서 그들의 겉 뿐만 아니라 속사람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훈련을 합니다. 

광야의 삶을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가려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먼저 성막을 짓는 훈련을 합니다. 

세상의 왕으로부터 벗어나는데 2개월이 걸렸다면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삼는데는 40년이 걸립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두가지의 여정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서 광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물질, 욕망, 탐욕에서 벗어나 보다 귀하고 영원한 영원의 삶, 구원의 삶,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야곱이 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장자가 되는 과정 

야곱은 둘째로 태어났지만 첫째가 되기 원했습니다. 장자권을 사모했습니다. 

야곱에게 장자권은 단지 물질적인 부를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장자권을 얻기 위해 야곱은 집에서의 안락한 삶도, 부모로부터의 보호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라반의 집으로 가서 광야의 삶, 고난의 삶을 자청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에서 나오듯이 고난을 통해 세상에서 품던 꿈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사모하게 됩니다

 

두 번째의 여정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광야에서 성막을 세우는 것, 하나님을 진정한 나의 왕으로 삼는 여정입니다. 

가나안이 목적이 아닙니다. 성막이 목적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먼저입니다.

열가지 재앙보다 더 힘든 과정이 열가지 계명 안으로의 삶으로 들어오는 삶입니다.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게 되는 삶입니다. 

광야까지는 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고 예배의 사람이 되기까지는 4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인생에서도 구원받는 백성이 되는 것은 순간적인 회심으로, 영접의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과정은 평생을 걸리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과정입니다. 

광야의 고난의 삶보다 더 지치고, 낙망하고, 더딘 기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나의 왕으로 삼는 이 여정입니다. 

 

이제 이사야서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읽은 41장의 배경은 바벨론의 유배기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이란 이방민족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도 이렇게 절망하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해서 사마리아에 그들의 성전을 따로 짓고 때로는 그 성전에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로 가득 채워 놓았던 민족입니다. 온전히 예배하지 못한 두 마음을 품은 민족, 더렵혀진 신앙인이 북왕국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왕국 유다는 그래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며 하나님의 선민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어본 적이 없습니다. 

때론 그들도 우상숭배하고, 때론 범죄하였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져버린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고,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가 된 것보다 더 큰 충격이 바로 성전이 불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을 부인할 순 없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 부터 애굽에서부터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어왔고 배워왔고 또 체험해 왔기 때문에 그들이 포로가 되고 성전이 무너진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나하는 두려움이 더욱 컸던 것입니다. 

 

40장 27절은 두려움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사 40:27)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고통이 심해 질수록 그들이 느끼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을 잃어버렸다. 나는 하나님께로 버림받았다."라는 패배감과 무력감과 절망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40장 1절부터 전혀 기대치 않는 말씀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합니다. 

(사 40:1)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절: 그 노역의 때, 고통의 때가 끝이 났고, 그 죄악은 사함 받았다. 

4절: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9절: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자기 자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부족하여 늘 죄인된 심정으로, 버림받은 것 같은 두려움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로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뜻이지요.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긴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가 엉덩이 뼈가 부서지면서 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는 것이고, 이제야 비로서 하나님이 그를 자기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바라볼 때는 여전히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 부르시는데 자기가 보는 자기 모습은 언제나 여전히 야곱입니다. 

여전히 거짓말하고, 변하지 않고, 사기치며 이스라엘이 되기에는 한참이나 먼, 연약하고 나약하고, 부정한 자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불렀다. 네가 부르짖어 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처음 부터 너를 택한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종, 나의 자녀이고, 네가 어떠하든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형편은 어렵고, 자기 자신이나 환경이나 변하는 것은 없고, 그 모든 것이 자기 잘못같고 하는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놀라지 말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랑이신 하나님은 곧 공의의 하나님이시때문에 우리의 죄를 다 그대로 받아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죄와 허물을 또한 우리 스스로 해결하라고 내버려 두시지도 않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해내신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십계명을 주고 그저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계명을 주신 이는 또한 계명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을 붙여 주시고, 성막으로 교회로 인도하시고, 모세를 통해, 아론을 통해, 떄론 여호수아를 통해, 아론과 훌을 통해 서로 돕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승리하도록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사기꾼 야곱이 장자가 되는 과정이고 그 야곱이 자기 이름을 벗어 이스라엘이 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내 모습을 바라보면 언제나 실망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나의 여정을 바라볼 때 비로소 하나님이 내 인생에 행하신 일들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으로 걸어간 신앙생활은 또한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어가는 과정입니다. 

이 여정은 더 길고 지루합니다. 

사람이 잘 바뀌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잘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해가 멈추고, 폭풍이 잠잠케 되고, 오병이어가 나타나고, 썪은 이가 금이빨이 되고, 암이 나으면 기적이라고 떠들지만 부정한 내가 거룩한 자로 바뀌어 가는 것,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장자권은 팥죽 한 그릇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라반이 집에서 자기의 모든 거짓된 자아와 세상의 방법을 버리고 진실한 자로, 거짓이 없는 자로, 얍복강 앞에서 하나님과 진정으로 대면하여 "당신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당신이 나를 복주시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놓을 수 없습니다"는 가슴 속, 중심으로서의 고백과 기도의 싸움이 없이는 이스라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나를 변화시키는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이 만남의 시작이라면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한 자로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바뀌어가는 과정은 내가 주와 함께 거닐 때에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내가 힘쓰고 애써 보았자 내 힘으로 나를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그 분이 나를 바꾸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지 못할 자가 어디있겠습니까? 

우리가 그 분을 의지하여 그분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그 분의 말씀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야곱으로서 우리가 살아갈 때에,  때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노하기도 합니다. 조롱하고 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야곱으로 놔두지 않고 반드시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오히려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되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1-12절) 

우리가 아직 온전치 못한 야곱이기 때문에 받아야 햇던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이스라엘이 되는 날 하나님은 찾을 수도 없게, 아무 것도 아니게 바꾸어 주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야곱인 우리를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십니다. 

변하지 않는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뭐라 한다해도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저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다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주님의 약속 안에서 나의 온전함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성막을 세우며 거니는 40년동안 이스라엘의 가장 큰 연약함을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불평함에서 나옵니다. 

한달이면 갈 것 같은 광야길이 길어지고 돌아가고, 멈춰있고, 정체하니까 사람들은 모세를 손가락질 하고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여러분 세상은 일확천금을 꿈꾸고 급작스런 성공을 꿈꾸지만 신앙의 여정은 대기만성입니다. 

기다림이고, 인내이고, 바라봄입니다. 

 

광야 생활의 마지막 관문은 여리고성이었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여리고성은 7일간의 침묵으로의 순종을 통해서 무너졌습니다. 

은혜 뒤의 불평은 모든 은혜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환경, 여리고성 앞에서의 묵묵한 순종과 기다림은 결국 여리고성을 무너뜨립니다. 

 

부흥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부흥이 아니라 야곱이 장자가 되고 그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아! 변하지 않는 너 자신이나 환경에 실망하고 절망하지 말아라. 

난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택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이스라엘 되게 함께 할 것이요. 도울 것이요, 보호해 줄 것이다라고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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