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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이 한국을 방문했다. 코로나로 인해 불안한 발걸음을 보내는 마음도 영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두 여인네가 없이 두 아들 녀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영 허전하기만 하다.

함께 살던 누군가가 그 자리에 없다는 것.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누군가가 나와 함께 거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에덴이 천국의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머물수 있었기 때문이요, 그곳을 나오면 우리의 삶은 이른바 탕자의 삶일 뿐이다. 모든 불행의 시작이 하나님과 함께 머물던 자리를 떠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며 회복시키고자 하신 것은 다름 아닌 예수와 함께 거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신 것이다. 코로나 19로 말미암아 우리가 함께 거하지 못하는 물리적 답답함을 느낄지라도 예수가 만들어놓으신 새로운 공동체는 우리 삶의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아내와 딸이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듯 하루 빨리 성도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예배할 그 날을 또한 기다린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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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코로나에 홍수, 그 뒤에 무더위가 찾아오더니, 우리가 사는 미국 땅에는 코로나에 더한 화재로 말미암아 무더위에도 창문을 열 수 조차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좀 풀릴 것 같은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확진자는 다시 많아지기 시작하고,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짖누른다.

 

계시록 강해를 하면서 성도들의 믿음과 인내가 여기 있느니라” (13:10)의 말씀이 무겁게, 또 깊게 내 삶에 적용이 되어야 하는 말씀이구나를 실감하게 하는 나날들이다.

 

아이들이 이번 주 개학을 한다. 개학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가정학습의 연장이지만 무엇인가 긴 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는 듯 하다. 각자가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나름의 개학을 여는 한 주가 되었음 좋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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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표현 중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다.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의미이다. 코로나 19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가까운 친구들끼리도, 성도들끼리도 얼굴을 대면하여 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우려의 말들을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물론 사람이 얼굴을 대면하여 볼 수 있다는 것, 참 좋은 일이고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꼭 신앙의 세계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대면하여 보지 못함에도 예수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그 분을 믿었으며, 그 분을 영접하고, 매일 그 분과 동행하며 살고자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보지 못하고 믿은 자들이 얼굴을 대면하여 볼 때 얼마나 더 큰 기쁨이 있을지를 바울 서신을 통해 표현한다. 보지 못함에도 예수와 교제하듯, 보지 못함에도 성도들이, 친구들이 교제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관계가 예수를 중심으로 한 믿음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 길고 지루한 코로나의 상황 속에서 성도간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기를 소망해본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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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이은 장마와 홍수로 다시금 재난의 소리가 들린다. 재난 위에 더해지는 재난은 사람들의 힘을 정말 다 해치는 고통일 듯 하다.

사사기나 예언서를 보면 재난의 때에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은 굴이나 산 위로 숨는 것이다. 남들이야 어떻듯 우선 살고 보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게 피하는 자에게도 재난은 피해가지 않고 반드시 오게 됨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도, 역사를 통해서도 경험하게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재난의 때에 사람들이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소망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더 연락하고, 더 기도하고, 더 교제하며 나 뿐만 아니라 주위의 이웃이 절망하지 않도록 평화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은혜는 나눌 때에 커지고 고난은 나눌 때에 감해진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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