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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회도, 미국에 있는 몇몇 주의 교회도 이제 예배당에서의 공예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공예배는 코로나 이전의 공예배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성도들간에 가깝게 앉을 수도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할 수도 없고, 예배당 안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며, 예배 후의 친교나 식사도 극히 제한이 되었습니다. 교회도 출석인원을 제한하고, 성도들 역시 예배당 예배를 주저하는 분들이 아직 많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등급을 낮추었다가 또다시 한 장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확진자가 발생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사회도, 교회도 극히 조심을 합니다.

이젠 성도들께서도, 목회자도 어떻게 예배당 예배를 준비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미리 준비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준비되지 못한 모습으로 기다렸다가 신랑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은 신부가 아니라 지혜롭게 코로나 이후를 예배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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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말미암아 생긴 가정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면 전도사님이 보내주신 말씀의 본문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성경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몇 번 아이들과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또 너도나도 바쁜 일상을 살며 가정예배를 실천하지 못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어머님의 설교를 들으며 자랐고, 그것이 내 신앙의 토대가 되고, 삶의 견고한 힘이 되었지만 어느덧 영어권 자녀가 되어 버린 아이들이 커가면서 아버지가 목사인데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아비의 설교를 평생 듣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면 부모로서의 가장 큰 유산은 신앙의 유산일진데 아이들이 과연 우리 부부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받을 수 있을까가 항상 염려였었다.

사도행전을 강해하면서 발견하는 교회의 역사는 초대교회의 교회는 모두 가정에서부터 시작한 교회였다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의 상황이 아무쪼록 많은 성도들의 가정을 교회화 할 수 있는 경건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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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하루 종일 거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때론 웃음을 짓다가도 때론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온 세계가 떠들썩한데도 아이들은 그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맘껏 컴퓨터 하고 자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즐거운 듯이 보인다. 어른들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은 걱정도 없어 보이고, 그저 이 시간을 즐겁게 보이는 것만 같다. 그런데 한 아동 청소년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아이들도 이 시기를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으며, 한참 활동할 나이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 틀여 박혀 있는 삶이 그들에게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말을 한다. 단지 아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누구에게가 아닌 스스로 풀고 있는 거라고... 그 말을 듣다 보니 그럴듯도 하다. 한없이 편해 보이는 그 속에도 분명 스트레스가 있고 불안함이 있고,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단지 우리 눈에, 생각이 어른들을 이해 못하는 아이들로 만드는 것일 뿐. 그렇게 생각해보니 인생 어느 순간에 이렇게 오랜 기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함께 나름 유익하고 기억이 되게 이 시간을 보낼까 기도하게 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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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16:6-10]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이사야 13-23장 열방에 대한 심판 

이전 14장 바벨론에 대한 심판 - 유다 백성의 성전을 불태우고 그들의 힘과 화려함과 발달된 문명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린 사탄의 세력, 

 

16장 모압에 대한 심판 

바벨론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작은 나라 but 농작물이 풍족한 나라 - 포도나무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한다. 왜 유다 백성이 아닌 이방 민족에게 이러한 심판을 명하실까? 

이사야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에서도, 다른 선지서에서도 마찬가지다. 

 

모압 - 아브라함의 사촌 룻이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 한 후 그 딸들에게서 난 민족 - 모압과 암몬 

이스라엘 역사상, 이스라엘 민족을 유혹하고 죄에 빠뜨리게 한 민족 - 발람과 발락 -> 이스라엘 민족이 모압여인들과 혼인케 하여 큰 죄악을 짓게 한 민족 

한편 모압 여인 룻을 통해 다윗이 태어나기도 하는 이중적 의미 

 

그들이 가진 위험성이 무엇인가? - 그들을 닮지 마라. 

그들에게도 남겨진 자가 있다. - 롯 처럼, 룻 처럼. 

 

그들의 심판받은 이유 

 

[사 16:6]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왜 작은 나라 모압의 교만함이 심판의 대상이 되었는가? 

 

[사 16:8-9]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

 

- 농작물의 풍족함, 그 중 특히 포도농사의 발달과 풍년으로 그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함이 극치에 달함. 

 

그들 민족의 특징 - 아브라함의 사촌이지만 함께 할 수 없는 민족 

무엇을 찾아 길을 가는가? 보기에 좋은 것,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모압과 암몬의 시작 - 그곳을 탈출하게 하셨으나 곧 무슨 걱정 - 먹고 살 걱정, 자손 걱정 -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한 후 딸들이 동침하여 이룬 민족 - - 발락과 발람의 실패했으나 결국 모압 여인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하게 만듦. 

역사적 반복 

 

물질적 욕망, 육체적 욕망이 특징인 민족 

 

[사 15:1] 모압에 관한 경고라 하룻밤에 모압 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 하룻밤에 모압 기르가 망하여 황폐할 것이라

  • 그들이 가진 부와 향락 - 하룻밤에 황폐해질 것 -> 그의 자랑이 헛되다. 

9-10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의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렘 48:26] 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 거리가 되리로다

 

하룻밤에 망하였으나 그 슬픔은 깊고 오래간다.

  • 하룻밤에 망한 모압의 사람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 탄식의 예배를 드린다. 우상 앞에서 탄식하고 애통하며 심히 울지만 더욱 헛되고 헛될 뿐이다. 고난을 만나 힘든 시기를 보낸다면 헛된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 교만으로 인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아프다.

 

[사 15:5]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그 피난민들은 소알과 에글랏 슬리시야까지 이르고 울며 루힛 비탈길로 올라가며 호로나임 길에서 패망을 울부짖으니

  • 선지자 이사야는 모압을 보고 아파함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악인, 교만한 자가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며 마음 아파하신다.

 

[사 15:7] 그러므로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리니

하룻밤에 멸망한 모압, 이런 상황 속에서도 모압 사람들은 “얻은 재물과 쌓아 두었던 것을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며 피난한다. 다른 피난처로 도망하는 것, 쌓은 재물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을 만날 뿐이다. 하나님이 아닌 모든 도움, 모든 피난처는 잠시 쉴수는 있지만 피난처가 아니다. 모든 심판받는 자들이 가야할 곳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다. 나의 교만과 악함을 깨닫고 말씀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아들이고 경배하는 것이다.

 

모압, 그 민족의 특징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음행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본성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함으로 심판받았다. 그들의 풍성함이 오히려 그들의 심판의 도구가 되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만함 

  • 하나님처럼, 하나님 보다 더 위를 향하는 마음 - 이사야 14장에 표현된 바벨론이 가진 교만함 
  • 그러나 또 다른 교만함 -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에 찾지 않고 돌아오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교만함. 

염려- 하나님께 맡기는 대신 스스로 짊어지는 것-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태도를 교만이라 보았다. 

겸손은 맡기는 것이고 염려는 내가 맡는 것이다. 

 

모압은 하나님의 심판에도 돌아설 줄 모른다. 그들이 얻은 재물과 쌓았던 것으로 고난의 강을 건너고자 하나 자기의 것으로 그 강을 건널 수는 없다. 그 강은 오직 주의 은혜로 건널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을 보며 애통해 하신다. 

이리로 오라 하신다. 

 

교회 안에 모압과 같은 신앙인이 얼마나 많은가? '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정작 그들이 기대하고 기대고 의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쌓은 재물과 욕망과 수많은 우상들 아닌가? 

 

왜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면서 구태여 바벨론을 언급하시고 모압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에게 경고하시고 심판하시며 애통해하시는가? 유다 안에, 교회 안에 바벨론 신앙인들, 모압 신앙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도 룻처럼 하나님 나라의 남은 자, 구원 받을 자가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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