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32020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내 집에 임한 구원 (행 16:25-34)

 

요즘 새벽에 성도들과 함께 묵상하는 말씀 - 빌립보서

감옥 속에서 기쁨을 전하는 전도자- 바울

 

본의 아니게 코로나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가택연금과도 같은 상황에 처한 성도들에게, 또한 저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는 말씀.

불안이 게으름으로 가면 곧 무기

력새진다.

그러나 불안을 통해 신앙을 향하면 그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오늘 사도행전 16장은 바로 그 빌립보 교회의 배경이 되는 장

첫 날에 빌립보서 1장 서론을 이야기하면서 다룬 적이 있는 이야기.

 

우리가 읽은 24장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데서 부터 시작된다. 바울과 실라는 왜 감옥에 갇혔는가?

 

빌립보 지역에서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은 그 곳에서 점 치는 한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따라와서 "이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고 며칠이고 소리치며 다님.

->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왜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라고 외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심히 괴로워 했을까?

그녀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닌 진실이 아닌가?

오히려 귀신 들린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며 자신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며 선전하는 것은 전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심히 괴로워 했을까?

 

바울 뿐만 아니다. 예수님도 공생애의 때에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자가 다가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하는 소리를 듣고 그의 말에 상대하지 않고 곧 귀신을 나가게 합니다. 그에게서 무슨 말이 나오건 그 말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원하시는 고백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하는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그리스도, 즉 자신의 주로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구주가 되지 않을 때에는 그것은 화려한 미사여구요 공치사일 뿐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의 종이 세상의 이런 칭찬과 공치사에 취하게 되면 겉으로는 인정받는 것 같지만 아무런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귀신 들린 여자가, 아무리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떠들고 다녀도 그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과 상관이 없다.

신앙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가 나의 구원자임을 받아들이고 그 분이 나의 주인이 되도록 내 맘과 영을 열어드리는 것입니다.

 

  • 며칠을 듣다가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여종에게서 쫓습니다.

그런데 또 귀신들린 자가 나오자 주인은 오히려 화를 내고 신고하여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갇히게 합니다. .

귀신을 쫓는데 왜 그들을 감옥에 갇히게 하는가? 그들은 구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배요, 물질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귀신의 정체요, 또한 세상이다.

그들은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건,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건 그것은 딴 세상의 이야기이지 자신들의 이익을 해하면 그들이 누구이건 대적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군대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쫓았을 적에 그 마을 사람들은 귀신 쫓은 자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귀신과 함꼐 멸망당한 돼지로 인해 예수를 몰아낸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언제나 자기 배를 채우는 것, 자기 만족을 채우는 것-> 그것이 예수를 내어 쫓고 바울을 감옥에 가둔다.

 

바울을 감옥에 보내는 자들의 고백은 복음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습이라 하며 복음을 거부합니다"

자기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자들 앞에서 복음은 받지도 못하고 따르지도 못할 길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바울은 실패자요, 세상은 바울을 감옥데 가둔 실력자요, 승리자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능력은 바로 이 때 발휘 됩니다.

 

  • 그 감옥 속에서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많이 맞았고, 그들의 발은 차꼬에 체워졌고 간수들이 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긴 듯 합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는 자유를 제한 받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영을 제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감옥 속에서도, 쇠사슬에 매인 채로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찬양은 죄수들의 영혼을 울리고, 감옥의 문을 열며 간수장들을 얼어붓게 합니다.

 

신앙은 감옥 속에 가두어 지지 않습니다. 폭풍이 와도 멈추지 않습니다. 영혼의 깊은 밤이 와도 기도는 계속되고 찬양은 밤을 통해 흘러나갑니다.

 

바울을 이겼던 세상이 한 순간에 패배자가 됩니다. 자기가 승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이 택하는 것은 죽음 뿐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망권세 입니다.

자기가 지탱하는, 자기를 지탱하는 것이 무너지자 간수가 택하는 것은 스스로 죽는 것입니다.

그 때 바울이 죽으려는 간수를 막아섭니다. "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잘못된 신앙은 몸을 상하게 하고, 가정을 상하게 하고, 공동체를 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바른 신앙은 우리의 몸도, 마음도, 공동체도 가족도 온전케 합니다. 살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죽이는 것은 사탄이요, 이단입니다.

 

[행 16:29-30]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요청한 것

등불을 달라- 나를 좀 보게 해 달라. 내 눈을 뜨게 해 달라. 내 맘을 좀 열어달라.

엎드려- 그리고 그들 앞에 무릎꿇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난 이제 당신의 종입니다. 자신의 몸과 영혼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간절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그 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영혼의 고백을 합니다.

 

거기엔 자신의 성을 채우고자 하는 이기심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빼앗았다고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두게 되는 다툼도, 허영도 없습니다.

오직 어떻게 해야 내가 삽니까? 살고자 하는 마음만 있습니다.

 

신앙은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교양있고, 격식을 갖추고...

진정한 신앙엔 외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에 주님 앞에 무릎꿇는 것- 그 때 구원이 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31절)

 

우리는 지난 몇 주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전혀 새로운 경험들을 해 봅니다.

바이러스가 때때로 창궐할 때도 이토록 전세계 모두에게 임한 적이 있었는가?

 

그러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자가 격리라는 말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힘들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이토록 그리울 수가 없습니다.

그냥 지나쳤던 커피숍이니 식당 하나도 그토록 들어가고 싶을 수가 없습니다.

공원에 가서 산책도 하고 싶고, 아이들과 두려움 없이 뛰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못합니다. 왜? 바이러스가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때 치료약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그 약만 먹으면 바이러스가 와도 아무런 해가 되지 못하고, 금방 낫고 회복되는 약이 주어진다면 거리는 다시금 사람들로 넘쳐나고, 몰마다, 식당마다 다시금 일상의 생활로 돌아갈 것입니다.

 

[요 1:4-5]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으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막혀 하나님과 상관없이 어둠이 된 세상, 어둠이 된 사람, 철저히 죄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 땅에 예수께서 빛으로,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합니다. 빛이 비취고, 생명이 비취는데도, 그 생명이 나에게 다가오고, 나를 살리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어둠이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그가 부활하고 승천하여도, 우리의 어둠이 사라지고, 사망이 떠나갔는데도 어둠에 익숙한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but,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주 예수를 믿으라- 장대 위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힘을 주신다. 너와 네 집에 구원이 임한다.

 

우리는 지금 전혀 새로운 신앙생활의 길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더러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죽음이 뭘 두렵냐고... 어차피 죽을 인생, 예배 드리다가 죽으면 천국가니 얼마나 당당하냐고....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는 교회와 성도와 목사들을 믿음 없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만 살려고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은 교회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죽음이 전염된다면 그것은 교회의 사명이 아닙니다.

교회는 건물도, 제도도, system도 아니고 예수를 주로 고백한 우리가 바로 교회요, 우리의 고백이 곧 예배입니다.

 

우리는 건물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지키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하고 생명을 전하기 위해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의 치료자입니다. 그는 감옥 속에서도 구원을 이룹니다. 감옥 속의 죄인을 승리자로 만듭니다,

두려우십니까?

진지하게 물어봅시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나이까?"

 

그에게 임한 똑같은 말씀이 묻는 자에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

 

때로 집에 있으면서 내일 걱정이 됩니다.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돈이 떨어지면, 쌀이 떨어지면, 일상에서 해 보지 못한 걱정들이 우리 마음을 불안케 합니다.

그런데 그 불안함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들에 핀 백합화, 하늘을 나는 새 주가 책임지시듯 그 분은 그날 필요한 구원을 이루십니다.

내일 걱정 내일 하고 오늘은 주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임하는 구원을 누리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충만한 저와 우리 로고스 교회 모든 성도님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누가복음 13장 1-9절 (이후에 만일....)

 

누가복음 13장 1-9절까지의 말씀은 한가지 주제를 향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3절까지 말하고 있는 빌라도와 어떤 갈릴리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

4-5절: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열 여덟명이 죽게 된 사건

그리고 이 사건의 의미를 부연설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6-9절까지의 무화과 나무 비유이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사건- 관심거리

 

[눅 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사람의 피를 섞은 것인가?

  • (공동번역) "바로 그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빌라도가 희생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하여 그 흘린 피가 제물에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일러 드렸다
  • (표준 새번역)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가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과 뒤섞이게 하였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 드렸다.
  • (GNB-Good News Bible) 바로 그 때 어떤 사람들이 거기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께, 빌라도가 희생제물을 바치던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말했다

 

가장 반로마 저항 운동이 일어났던 동네 - 갈릴리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공개 처형 - 십자가형

이 때에도 그들을 죽여 그들의 피로 로마의 신전에 제사를 드린 것이다.

갈릴리 인들이 죽은 것도 뉴스지만 그들의 피가 이방신전의 제물로 드려진 것- 신앙적으로 가장 모욕적인 일

갈릴리 전체가 들썩거릴 일이 생긴 것이다.

 

당시의 유대인 - 왜 하필 그들이 그렇게 죽고 그들의 피가 이교도 제사에 드려지게 되었을까? 그들의 죄가 더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개인이 당한 고난과 재앙을 보고 그 사람의 죄를 평가.... 죽은 자들을 두 번씩 죽이는 일

 

예수의 답변)

[눅 13: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두 가지 내용

1. 그들의 죄가 더 많아서 그런것이 아니다.

2.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두 번째 대답 - 첫 번째 대답과 두 번째 대답 사이의 모순

그들이 죄가 많아서 그렇게 죽은 것이 아닌데 너히ㅡ가 회개하지 않으면 그와 같이 망하리라.

 

죽은 자의 이유는 그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아니다.

이미 죽은 자의 죽음은 죽은 자의 심판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를 향한 경고이다.

 

  •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자

우연한 사고 - 우연한 사고가 있을까?

사고는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거짓, 누군가의 부주의로 생긴 것이다.

 

제대로 공사하지 못한 자

안전보다는 빨리 끝내기를 원하는 누군가의 욕심.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현장의 노동자들이 죽게 된 사건.

 

죽은 자의 이유는 그들의 죄가 너희보다 많아서가 아니다.

그들의 죽음은 바로 너희들을 향한 경고이다.

 

  •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되어진 많은 내용

코로나 사태: 중국 교회를 핍박한 중국에 대한 심판이다.

한국의 사태: 정세균을 국무총리 세워서 세균이 퍼진 것이다.

 

어떤 재앙은 죽은 자들을 향한 심판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경고인 것이다. 그들의 죄악이 우리보다 많아서 당한 것이 아니다.

 

3절: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5절: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7절: 삼년을 와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9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삼 년 - 오랜 기다림,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다림. 인내. 자비.

 

[눅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회개에 합당한 열매 -> 열매는 무엇인가? 회개에 합당한 염래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10: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 (예수님이 주로 사역하시던 바로 그 도시) - 갈릴리 인근 가장 큰 도시

 

[눅 11: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요나: 마지 못해서 억지로 말씀을 선포한 자 -> 그의 소리를 듣고도 니느웨 전체가 회개하였는데....예수의 말씀을 듣고서도....

 

1절: 그 때 마침

그 때는 어느 때인가?

1. 무리에게 (제자와 대비대는 말씀) - 자기 중심, 자기 목적을 위해 신앙생활하고 제자 되지 못하는 자

2. 외식하는 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 당시의 신앙인의 주류)에게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하실 때

 

[눅 12:54-59]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 분간하지 못하느냐? -> interpret (이 시대를 해석하지 못하느냐?)

2.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느냐? (Judge) -> 판단하다. 선택하다.

3.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죄를 갚는가? 우리의 죄를 갚을 수 있는가? 신천지처럼 집 버리고, 가족 버리고, 돈 바치면 우리의 죄를 갚을 수 있는가?)

오직 한 푼이라도 남김 없이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주께 우리의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

 

예배 중단에 대해 염려하는 성도들, 목사님들 (기독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 전염병 확산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 초대 교회가 로마의 핍박을 당할 때에도, 우리나라 6.25 때에도, 세계나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도 예배가 중단된 경우가 없었다.

- 지금의 우리보다 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모여 예배드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믿음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를 잠시 중단하기고 결정하게 된 이유

  • 중세 흑사병 사태 때 유럽 인구의 절반가까이 죽었을 때

- 유럽 인구의 대부분이 교회를 통하여, 교회에서, 그 시체를 다 치울 수가 없어서, 성직자들이 시체를 치우다 또 감염되어 교회의 사제들의 인구가 교회수보다도 더 적게 되어버린....-> 성직 매매의 원인.

- 당시는 의학적 지식이 없어서...모여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감염경로가 너무나도 확실해진 이 때에....

- 마치 난 예수 믿으니까 약도 안먹고 병원도 안가는 것과도 같은 것

  • 초대교회의 핍박 - 예수 믿기를 포기하도록...

- 그러나 지금은 예수 믿지 않도록 핍박하거나 강요하는 시대도 아니다.

- 사회의 질서와 안정에 협조해 달라는 시대

- 이웃공동체, 사회 공동체를 위한 책임과 모범.

  •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막 2: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 3: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주일 경시와 예배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거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더 빨리 모여 예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신천지의 문제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와 신천지를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러한 때에 교회가 또다른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되어 버린다면...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우리 구원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 우리 삶으로 드리는 예배, 우리 삶의 전 영역을 드리는 예배

 

  • 예배가 중단된 것이 아니라 예배당 예배를 자제하고 가정에서 흩어져 예배 드리고, 또한 서로 연락하며 교제하는 것.

지금까지 아무런 지장없이 예배 드릴 수 있었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의 성도님들이 전무후무한 이번 사태에 대해 답답해하고 혼동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번 코르나 사태 - 이전의 메르스나 사스때보다 다르게 여겨지는 까닭

- 단순한 전염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경고이자 기회

- 신천지: 거짓과 속임수와 감춤의 결과

가족이, 친구가, 교회가 파괴된 실상이 세상에 낯낯이 밝혀짐

한국교회 대부분의 입구에 신천지 금지-> 수많은 피해 가정들이 국회에, 청와대에서 시위하고 고발해도 꿈쩍않던...

그래도 사라지기는 커녕 신천지는 급성장하고 교회는 점점 더 공격을 당하고...

이게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일들이 드러내진 것.

모략이라고 하는 그들의 감춤과 속이는 교리가 그들의 부흥의 원인이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세상에 낯낯이 밝혀짐.

 

  • 전세계에 주는 경고는 무엇인가?

National Geography- 인류 멸망의 10가지 시나리오

1. 생화학 무기 - 탄저균

2. 통제 불가능한 인공지능

3. 핵전쟁

4. 지구 온난화로 말미암은 기후 재앙

5. 인공 블랙홀

6. 변종 바이러스 출현

 

코로나와 같은 변종 바이러스 -> 6번째 이유

이런 데도 전 세계가 공포에...

 

기후 재앙이 일어난다면.... 모든 인류의 과학이 바로 멸망의 길로....

 

전 세계의 학교가 휴교를 내리고

직장은 할 수 있는대로 재택 근무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은 얼마나 더할까?

집에서 쉬면서도 먹고 살 걱정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

 

그저 집에서 불안해하며 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누려왔던 일들이 멈출 수도 있구나.

모이지 못할 수도 있고 예배드리지 못할 수도 있고, 회개의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세상이 갑작스레 끝날 수도

 

  • 대형교회 예배 현장 -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외로움을 알겠다. 그동안 수많은 성도의 무리 속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함께 모일 수 없는 대신

릴레이 기도 - 한명씩, 큰 교회는 서로 붙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하루 24시간을 채우면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홀로 예배드리는 훈련

 

  • 트럼프 - 오늘(3월 15일)을 국가 기도의 날로....

 

회개하자.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자.

그리고 시대를 분별하자.

그리고 옳게 판단하자.

 

새벽예배는 없지만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같이 새벽예배 일정에 맞추어서 설교를 카톡을 통해 보내드릴 것이고 기도 제목도 나눌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잘 교육하지 못했던 이단에 대한 교육, 교단에 대한 교육, 신앙적으로 유익한 자료들도 공유할 것입니다.

나누고 싶은 자료가 있다면 바로 올리지 마시고 저에게 먼저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선별해서 모든 성도에게 유익하면 카톡방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이 어려운 시기를 예배하며 나누고, 사랑하며, 중보하고, 기도하는 저와 우리 로고스 교회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 영혼의 대피소 (시편 91편 1-16절)

 

시편 91편은 아직 학자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유대 경전 미드라쉬의 해석에 의하면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나서 쓴 글이라고 설명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다윗이 고난 당할 당시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 내용이라고도 한다.

 

다윗의 글이건, 다윗의 글이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노래를 함께 찬양하며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의 길을 걸어갔다.

이것이 모세의 글이건 다윗의 글이건 지금 시편기자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3절: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

새 사냥꾼의 올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물들도 영리해서 사람이 놓는 덫을 구분할 줄 안다. 미리 쳐 놓은 덫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요리저리 잘도 피해 다닌다.

그런데 새 사냥꾼의 덫은 어떠한가? 전혀 새로운 공격, 뜻밖의 곳에 위치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믿는 자를 넘어뜨리는 전혀 새로운 방법의 공격, 그것이 무엇인가?

신기하게도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새 사냥꾼의 올무로서 심한 전염병을 이야기한다.

 

5-6절은 다시 그러한 시편 기자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5절)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찾아오는 화살

-> 이것은 낮에 받은 공격으로 인해 그 두려움과 불안으로 잠못이루는 밤의 공포를 도치시켜 표현한 것이다.

즉 낮에 받은 화살은 육체적으로, 직접적으로 받은 공격이라면, 밤에 찾아오는 공포는 그러한 화살로 말미암아 생겨난 정신적 공포, 불안을 이야기한다.

 

(6절)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 아무도 모르게 퍼져나가는 전염병을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으로 묘사하고

그로 말미암다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재앙을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이라고 표현한다.

 

분만 아니다. 그러면서 7절에 그러한 것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천 명이 네 왼편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으러진다고 말한다.

 

읽으면서 느끼시겠지만 시편 91편의 내용은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전염병을 맞고 있는 인간의 공포와 두려운 상황과 너무 닮아 있는 장면들이다.

 

지난 주에 제 아내를 비롯해서 코스코나 대형 마트를 갔다오신 분은 마스크 뿐만 아니라 쌀과 물까지도 사재기로 인해서 살 수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하시더니 신문을 보니까 호주와 일본에서는 휴지가 동이 나고 먼저 산 사람에게서 휴지를 얻기 위해서 몸싸움을 벌이는 일까지 있다는 내용이 사진과 더불어 실린 기사를 보았다. 왜 하필이면 휴지가 바닥나나 했더니 휴지의 원료가 중국에서 나는 것인데, 이제 그 재료를 수출할 수 없어서 이제 곧 휴지 대란이 난다는 이야기가 퍼저나가면서라는 것이다.

그 소문도 곧 가짜 뉴스로 판명이 났다. 중국이 없어도 나라마다 휴지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문만 가지고도 나라의 휴지가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소문을 몰라도 그저 남들이 사니까 두려움 가운데 같이 사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에 살고 있는 형님께도 전화를 했더니 그곳에서도 마스크를 비롯해서 이런 저런 사재기 마트를 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온 세상이 난리가 났다.

 

역사를 들여다 보면 유래가 없던 일도 아니고 우리 또한 몇 해전 메르스나 사스같은 전염병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퍼지다 보니까 더 큰 공포와 불안감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이다.

 

중세 때나 가깝게는 1900년도 초반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을 때도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사태만 보아도 한 번 전염병이 올 때마다 세계가 얼마나 아수라장이 되었을 지는 가히 상상이 간다.

 

재난의 때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난 끄덕없어. 난 그래도 평안해 하는 것은 오히려 문등병처럼 통증을 못느끼는 무딘 심령이라는 것이다.

 

  • 전쟁이나 지진 같은 피해도 엄청난 재해지만 전염병이 그와 다른 것은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힘들어도 같이 있으면 위로가 되고, 같이 있으면 두려움이 덜할 텐데, 전염병이라는 것은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고 사람 모인 곳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롯이 홀로 맞아야 하는 재난은 공포 그 자체이다.

 

  • 더군다나 이번 사태로 교회와 성도가 겪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재난이나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믿음을 지키고,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다.

 

그런데 교회모임 자체가 바이러스의 공포에 노출되면서 교회 모임을 갖는 것 자체가 눈초리의 대상이 되었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 조차 바이러스의 위험으로 인해 삼가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위기를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에 있어서 시편기자가 말하고 싶은 신앙의 처방은 무엇인가?

 

[시 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시 91: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 은밀한 곳와 그늘은 무엇인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평소 때는 그 가치를 알 수가 없는...

 

나다나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부터 너를 알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은밀한 곳과 전능자의 그늘은 주님과 긴밀히 교제하는 자,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있을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이다.

 

  • 그러한 자들의 고백이 무엇인가?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니....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누가 하나님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정말 긴박한 상황에서 그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피난처라고 여러분의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고백할 수 있는가?

어떤 자가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가?

 

바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다.

일상에서, 평상시에, 남이 알든 모르든, 아니 남이 알지 못하는 바로 그 시간에 주님을 찾는 자들이다.

 

  • 피난처이신 하나님은 그러한 자에게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시는가?

 

[시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어떤 모습인가? 새가 자녀를 품는 모습이다. 어미가 아이를 품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우리를 품으신다. 우는 아이를 어르시듯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우리를 앉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또한 그는 어떻게 우리를 도우시는가?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신다.

His faithfulness will be your shield and rampart

그의 신실하심은 너의 방패와 성벽이 되신다.

 

우리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의 진실하심, 그의 신실하심.

그가 자기 백성을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어미가 간난아이를 품듯 우리를 품으시고 우리의 성벽이 되고 방패가 되신다.

 

어떤 자에게? 하나님과 은밀히 교제하며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에게...

 

  • 전환

[시 91:9-10]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분명 신앙인에게 있어서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우리의 보호처가 되신다.

그 말이 곧 신앙인은 전염병이 돌아도 병에 걸리지 않고, 재난이 와도 화가 미치지 못한다는 소리인가?

 

하나님이 천사들을 명령해서 믿는 자들은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만 전염병에 걸리게 하시는 것인가?

이것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오만함이다.

 

물론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하나님은 믿는 자는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임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는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믿지 않는 자들만 재앙이 임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신앙적이지도 않다.

 

[시 91:12-13]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므로 위험한 상황에서 사자 앞에 나가듯이 뛰쳐 나가고 독사를 발로 밟으려 한다면 이것은 신앙이라기 보다는 자기 도취요, 자기 망각이다.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구절이 신약에서 누구를 시험하기 위해 쓰여진 말씀인줄 아는가?

 

[마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바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해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하면서 이 구절을 가지고 시험하는 구절이다.

 

네가 뛰어들어도 죽지 않아.... 그러니 한 번 뛰어봐....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코로나로 두려워 떨어도 성도는 다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예배당에 나오라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어떠한 질병에 걸려서 쉬어야 할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예배하러 나오는 것은 개인의 믿음이요, 개인의 신앙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질병이 남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 지켜주실 것이야 하면서 모임을 주장하는 것은 믿음 이전에 맹신이다. 설사 전염이 되지 않는다해도 그 사람으로 인해 타인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두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남을 살리는 것이지 두려움을 주고 죽이는 것이 아니다.

 

[시 91:14-15]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은 재앙이 내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고백에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그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고난이 없을 것이 아니라 그 고난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신다고 말씀하신다. 고난을 면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환난 당할 때에 그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신다.

 

(L 목사님의 간증)

딸의 희귀병으로 말미암아 목회도 학업도 중단하고 딸도 학업을 포기하고 장기 휴양....

왜 목사님인데도 그런 고난을 당해야 해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그런데 병원의 원목으로서 많은 환자와 그 가족, 보호자들을 위로하고, 의사들에 앞서 환자와 그 가족을 돕는 사역...

 

자신의 모든 고난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결코 의미없는 고난을 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 안정제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이 비례한다면 오늘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큰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살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거 그 어느 떄보다 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며 산다.

1950년대까지 안정제라는 약은 없었다. 처음 안정제가 나왔을 때 광고가 어떻게 소개되었는지 아는가

"행복알약, 마음의 평화를 주는 약, 행복을 처방하는 약"이라 불리며 신비의 알약이라 소개되었다.

지금 이 안정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용되고 흔한 약이 되었다.

 

약이 우리의 심령을 평안케 할 수 있는가? 안정제가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나?

아무도 지금은 그 광고의 문구를 믿으려도, 들으려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평안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당신은 위기의 때에 과연 "내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 분의 내 피난처, 내 요새가 되는가?

그의 은밀한 처소에, 그의 그늘에서 쉬어본 경험이 있는가?

 

그의 처소는 여러분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시간, 어느 곳에서도 들어갈 수 있는 처소이다.

그분의 날개 깃은 여러분이 순전한 마음만 있으면 안길 수 있는 품이다.

 

휴지사러, 마스크 사러 --물론 필요할 때는 사야 겠지만....

그것을 통해서 불안을 극복하려 하지 말고 우리가 해왔던 것.

우리가 누려왔던 바로 그 신앙을 통해서 위기의 시대를 이겨나가길 축원한다.

말세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 때마다 주의 은밀한 처소에서 요동치 않는 주의 사랑과 보호함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시는 우리 로고스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가 가야할 길 (왕상 13:1-10)

 

새벽예배 가운데 나누는 말씀 - 열왕기상

이스라엘 왕조의 역사 - 열왕기서와 역대서

역대기서는 바벨론 포로기를 마치고 하나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으로 귀한할 때 완성된 성경

유다왕조의 정통성 강조 - 북왕국 이스라엘 왕조는 유다왕들을 소개하면서 필요할 때만...

 

열왕기서는 이보다 앞서 기록되었다고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는데 열왕기서가 기록되고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때는 바벨론 포로기 때.

-> 역사를 기술 할 때의 관점 - 우리가 왜 포로가 되었을까? 왜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까?

 

열왕기서는 하나님의 택한 나라 이스라엘이 각각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분열되는 과정을 소상히 다루고 그것을 다름아닌 왕들의 신앙, 왕들의 정책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시작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솔로몬이 있었다.

 

신명기 17장에는 아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광야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왕의 기준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신 17: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절: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

16절: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 것이요.

17절: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요,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기 말 것이니라

18-19절: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이 말씀과 배치되어 살았던 것이 누구인가? 바로 솔로몬

애굽의 왕 바로의 사위가 되고, 1000명의 아내를 두고, 은금으로 모든 왕궁을 치장.

 

솔로몬이 만약 이 말씀 중에 하나라도, 자기 지혜를 의지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자기 옆에 두고 읽었더라면....

그가 지은 잠언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거늘.....후렴구처럼 많이 등장하는 구절....

그러나 그의 삶은... 왕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계명을 어겼다.

 

그래서 선지자 아히야를 보내어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움을 알게 한다.

여로보암은 전쟁을 통해서도 아니고, 백성들의 투표를 얻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 왕이 된 자다.

그것도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10지파를 책임지는 왕이 된다. 그를 왕으로 세우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왕상 11:37-38]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마음껏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내가 도울 것이다. 네가 내 말을 지켜 행하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그런데 여로보암이 왕이 되자 가장 걱정 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왕이라는 자리를 배앗길 염려부터 한다.

하나님으로 인해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되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을 잃어버릴까봐, 그 축복을 자신이 어떻게 지킬까 전전긍긍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왕상 12:25-33]

(왕상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왕상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이 나라가 다시 다윗에게 가면 어떡하지?)

(왕상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왕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애굽에서 인도한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 신들이라-> 완전한 혼합 신앙

 

25절- 건축하고, 건축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백성의 대표가 되어 르호보암에게 우리를 어떻게 다스릴꺼냐하고 묻던 자가 다름 아닌 여로보암.

왜? 솔로몬 때 그의 치리기간 동안 계속되는 건축으로 고달팠던 백성들의 짐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데 그가 왕이 되자마자 힘쓴 것 - 또 건축- 누구를 위하여? 오직 자신을 위하여...

 

29절부터 끝절 까지 읽어보면

그들의 예배 - 하나님 아닌 황금 송아지 - 그들의 신들,

- 레위인 아닌 자격없는 제사장

- 그들이 마음대로 정한 절기.

 

이런 배경에서 13장이 시작된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범죄하였을 때에, 르호보암이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을 보낸 것 같이 여로보암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그를 돌이키게 하신다.

 

[왕상 13: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에게 왔으니 여로보암이 무엇을 하고 있었나? 분향- 제사의 주관을 자신이

분향은 누가 하는 것인가? 제사장이.... 사울-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제사를 주관하다가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게 됨.

 

이러한 광경을 보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무엇이라 예언하는가?

[왕상 13:2-3]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왕하 23:15-17]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여로보암 이후 300여년이 지나 그 사람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

 

이러한 예언- 자신의 나라를 저주하는 예언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여...(4절)

손이 말랐다- 손은 능력, 권세 - 권세가 말랐다.

 

5절)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 예배를 받지 아니하셨다.

 

그 때에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한 말을 보자.

[왕상 13: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지금 여로보암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제단에서 분향 - 지금으로 말하면 예배 인도

그런데 손이 마르니까 무엇이라 구하는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자기 입으로 자기가 예배 드린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님과 다름을 고백하는 것 아닌가!

성경이 그냥 이렇게 표기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니 손이 어떻게 됩니까?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왜 낫게 해 주셨을까?

아니 왜 하나님의 사람을 여로보암에게 보냈을까?

그를 저주하도록? 왕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깨달으라고. 회개하라고, 돌이키라고...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 - 손이 낫게 된 후에 여로보암의 행함을 보자

[왕상 13: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지금 잘못해서 병이 나았으면 무엇해야 하나? 회개하고 참회하고 돌이켜야 하거늘.... 이제 낫으니 쉬자. 같이 쉬자

병 낫고 예물을 드리는 것 - 무당에게 하는 짓 - 끝까지 혼합종교.

 

그러니 그 사람이 무엇이라 말하는가?

[왕상 13:8-9]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겠다.

함께 거하면서 함께 먹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는 말 - 식구 - 함께 먹는 사람, 함께 먹는 관계

난 당신과 한 식구가 아닙니다. 난 당신과 섞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말을 합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다른 길로 가고 되돌아가지 말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 보낸 자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동시에 누구에게 들으라 한 소리인가?

여로보암에게.... 솔로몬의 길로, 르호보암의 길로, 자기가 잘못한 과거의 길로 돌아가지 말라.

 

다른 길은 어느 길인가? 주님 가신 길. 좁은 길, 좁은 문, 십자가의 길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말씀 따라 순종하는 길.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주님 바라보고 걸어가는 길. 그것이 신앙의 길이다.

 

모든 사람이 고통을 느끼고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난 목사로서 특별히 이번 사태가 한국의 기독교인, 한국의 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기독교인으로서 신앙과 상관없이 그저 질병이 아닌 그로 인해 예배가 금하여지고 교회의 문을 폐쇄시켜야 하는 그런 조치들이 하나님이 주신 따끔한 채찍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이미 세상의 반대와 비난을 무릎쓰고 교회의 건축을 감행했던 교회들,

세습을 금한다는 교회의 법을 정했으면서도 이를 스스로 어기면서 감행했던 여러 교회들의 무법천지,

일부 목사들의 학위와 졸업장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징계나 조사 없이 그냥 눈감아 버린 죄....이로 말미암아 무수한 교단과 이단들이 범람하게 된 것.

 

하나님은 이미 여러 차례 교회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우리는 말로는 위기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

 

불뱀에 물렸을 때에 하나님은 불뱀을 치워 주신 것이 아니라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 그것을 쳐다보도록 하였다.

장대 위의 놋뱀은 우리가 저지른 죄악을 바라보며, 그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보는 것이요, 나 대신 심판 당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숱한 역경이 있을 때마다 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단결과 애국심을 또 한 번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해 또 한 번 나라의 시스템과 국민의식이 발전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위기를 통해 한국교회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이전의 잘못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회개의 물결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왕상 13:33-34]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난 이러한 일이 정말 한국교회와 사회에 다시금 반복되지 않기를,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기를 함께 기도하고 중보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