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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라보며 사는가? (창 13:15-16절)

 

토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성도님들과 함께 다과를 먹으면서 교제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과를 거의 마쳐서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소름이 돋고 근질근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쥐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1920년대 초반 이제 갓 스물이 넘은 한 청년이 만화가가 되기를 꿈꾸며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신문사나 잡지사마다 자신의 그림을 보내보았지만 번번히 거절당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납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계속되는 거절에 돈도 점점 떨어져갔습니다.

어떤 글에는 하숙집이라고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교회 창고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여하튼간 가난한 만화가였던 그가 사는 방에는 는 조그만 생쥐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처음엔 그도 소름이 끼치고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었지만 조그만 생쥐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먹이도 주고, 하다보니 생쥐도 이 청년을 보고 도망하지도 않고 함께 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면서 그 생쥐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가난한 자신의 삶에 위로를 받고, 친근해지기 시작하면서 그 생쥐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누구이야기인 줄 아시겠습니까? 바로 월트 디지니가 미키 마우스의 탄생이야기입니다.

 

누구나가 소름 끼쳐 하는 그런 생쥐를 보면서 그에게 오히려 친근하고 명랑한 미키마우스를 발견하고, 그 캐릭터 하나로 월트 디지니는 승승장구하며 만화 뿐만 아니라 에니메이션, 영화, 놀이동산 등 모든 아이들의 친구가 되고 그 중심에 미키 마우스가 있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톰과 제리, 조금 지나 스파이더맨..... 다 남들이 혐오하는 대상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끄집어낸 누군가의 눈으로 말미암아 대 전환을 맞이한 캐릭터들이다.

 

 

  •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는 것을 비전(Vision)이라 한다.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밖을 보고 내 안을 보는 것이다.

 

비전은 말씀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말씀을 깨달으면 눈이 열리고 눈이 열리면 변화가 시작된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깨닫는 것을 강조한다.

[시 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호 4:14]......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가? 고침받을까 두렵고 변화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지만 대개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려는 대로 본다. 우리의 생각대로 보는 때가 더 많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선입견이 들어가고 편견이 들어가서 볼 때가 훨씬 더 많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던 열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사람을 거인으로 자신을 메뚜기로 보았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가나안 사람을 "우리의 밥"으로 보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눈으로 보니 거인 같은 자들이 밥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스라엘 모든 군사들이 골리앗을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거인으로 보았지만 다윗에 눈에는 고작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한당으로 보았다.

비전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를 보게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시기 전에 먼저 보게 하신다.

 

[창 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신앙은 하나님이 보라 하신 것을 보는 것이고, 보라 하신 곳을 종과 횡으로 두루 거닐며 받는 것이다.

 

망상은 근거 없이 바라는 것이다. 막연히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비전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보라는 것을 거니는 것이다.

 

  • 어떻게 비전을 얻게 되는가? 언제, 어디에서 비전을 받는가? 비전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통할 수 있는가? 그가 부르실 때 멈추어야 하고, 일어나야 하고, 귀를 열어야 한다.

 

1. 말씀

말씀을 펴야 보인다. 자기가 집착하고 있는 곳을 떠날 적에 보인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듯이, 롯이 아브람을 떠난 뒤에,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빈들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본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비로서 참 것을 보게 된다. 참 나를 보게 되고 참 세상을 보게 되고 하나님을 보게 된다.

 

[요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거듭난 자는 물과 성령으로, 예수를 영접한 자이다. 회개하여 자신을 씻고 십자가의 보혈로서 자신을 깨끗이 한 자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곧 거듭난 자다.

 

한 자로 보다의 의미는 "관"자를 쓴다.

보는 것에 따라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세계관이 달라진다. 비전이 있는 자는 세상 사람과 다른 관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다.

 

  • 관점이라는 의미의 영어 “Perspective”라는 단어는 Person과 spective의 합성어이다. 그것은 개인이 바라보는 시각, 같은 사물을 보고도 달리 감지하는 개인마다의 차이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똑같은 물컵의 물을 보고 어떤 이는 “이것밖에 안남았다”라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네”라고 표현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점은 바로 이 차이를 가리킵니다.

 

정탐하라 (explorer)”는 것은 바라보라는 것이고 바라본 것을 두루 다니라는 것이다. 12명의 뽑힌 자들이 가나안을 바라보기 시작하는데 열 명의 사람들은 오로지 가나안 사람들만을 바라보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디를 바라보든지 하나님을 찾는다.

 

2. 어떻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가? - 기도

세상에 눈을 감는 자, 기도하는 자가 비전을 갖는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눈 대신 하나님 주신 영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다. 기도하는 사람은 참 것을 보고, 참 것을 보는 사람은 기도하게 된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갈매기 조나단은 높이 날기 위해 끊임없이 날개짓을 한다.

왜 높이 날기 원하는가? 멀리 보기 위해서.....

 

신앙인이 높이 날 수 있는 길은 기도하는 때이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은 가장 높이 날고 멀리 보게 된다.

장대 높이뛰기 하는 선수보다 더 높이 나는 사람은 무릎꿇고 기도하는 신앙인이다.

 

헬렌켈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자였지만 그의 전기에서 그녀는 말한다.

"시력이 없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비전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다"

 

왜 기도하는가? 보기 위해서 기도하고 보여주신 것을 간절히 바라도록 기도한다.

소경 바디메오-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3. 본 자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모험하라.

지난 주 말씀 -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신중하고, 그 뜻을 알았을 때는 신속하라.

 

하나님이 비전을 주셨을 때- 행동하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바라 본 것을 취하라는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보여 주셨는데도 여전히 기도만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다.

보여 주셨을 때는 기도하며 행동해야 한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이 주어졌을 때에 망설이지 않는다. 어디인지, 거기 가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그저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다.

바치라니까 망설이지 않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친다.

비전이 있는 자는 움직이는 자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버렸으며, 애굽의 모든 보화를 포기했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

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머물러 있는 것 보다 더 귀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십자가 너머의 구원을 보았기에 과감히 십자가에 달렸다. 하나님의 나라는 안전하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물리치고 싸우며 나아가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길은 인생을 건 결단이고 모험이다.

 

모험하는 자는 남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창조한다. 사막에 길을 내고 황무지를 장미꽃길 같이 가꾼다.

쥐를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고, 십자가를 가장 아름다운 상징으로 만든다.

 

인생은 항해다. 배는 정박되어 있을 때에 아무런 가치가 없고 항해할 때에야 비로서 배의 역할을 한다.

나그네 길은 걸어가야 하는 길이고, 순례자의 길이다. 움직이지 않는 신앙인은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4. 하나님이 비전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것

하나님을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다듬어가시기 위해서 일을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는 이유는 비전을 통해 일을 완수 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통해 우리를 완성시키고자 하시는 것이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비전하면 가장 첫 번째로 손꼽는 인물 - 요셉, 꿈의 사람

 

그런데 성경에서 요셉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꿈의 완성이 아니라 요셉이라는 사람의 완성이다.

세상에서는 업적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일을 주신다.

모든 일의 목적은 우리를 세워가시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가꾼다.

인기는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고 인격은 하나님이 인정하고 다듬어 가시는 것이다.

사울은 인기 때문에 인격을 잃어버렸지만 다윗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인격을 가꾼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을 구하기 위해서 말씀을 열고

비전을 보기 이해서 기도하고

기도한 바를 갈망하며 바라며 움직이는 자는 결국 자기를 변화시키는 자이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이라는 비전을 주신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이 아닌 광야로 먼저 인도하신다.

왜? 그들을 다듬어가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비전을 품는 자는 광야를 살고, 고난을 이기고 주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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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따르기 - 요한복음 4장 34절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가끔씩 어떤 목사님들이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며 내뱉는 말의 실수가 세상의 표적과 관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 예를 들어 이전에 총리후보로 나섰던 한 후보는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된 것은 공산화를 막기위한 하나님의 뜻이요, 일제 식민지가 된 것은 우리나라 역사를 허송세월로 보낸 하나님의 징계였다는 것-
  • 미국에 임했던 허리케인으로 인한 큰 비해, 대화제 -> 동성연애를 향한 하나님의 뜻
  • 동남아에 임한 큰 해일 , 심지어 배가 침몰되어 수많은 아이들이 죽게 된 것 -> 어떤 특정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민족사 뿐만 아니라 개인사까지도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말하는 것은 불분명하고 논쟁적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처럼 아무렇게나 쓰게 되는 오용

-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

- 자신의 경건을 나타내기 위한 수사적 표현

-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체념하듯 수용할 때 사용하는 체념적 표현

 

남북 전쟁 - 노예 해방을 두고 각 측의 신학 노선 : 각자가 다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

신학교 내, 교단 내의 신학적 싸움, 신구교 간의 갈등 - 하나님의 뜻을 사이에 두고 양보없는 갈등

세상 사람들은 풀 수 있는 내용을 교회 안에서, 신학교 내에서는 서로 하나님의 뜻을 빙자해서 서로 한치도 양보없이 싸우는 극심힌 갈등 -

 

하나님의 뜻은 논쟁적이고 복잡하며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오용을 막고 그 뜻을 찾아 신속하게 순종할 수 있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향한 대 전제

 

1. 하나님의 뜻은 모든 창조세계에 미친다.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지으셨고 그 뜻대로 인도하시고 운행하신다.

 

2. 진정한 존재의 성공은 자아를 실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있다.

평안과 안식 - 내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 그 뜻을 실현하고 있는가/그렇지 않은가?

성도의 원칙 -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르는 것

 

주의 기도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뜻대로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면서 그 뜻을 감추이지 않으신다.

그 뜻을 찾고 따르기를 원하면 찾을 수 있고, 찾게 하신다.

 

전제: 그 뜻을 찾고 따를 자세가 전제.

만약 우리가 그 뜻을 안 다음에 그 다음에 그 뜻을 따를지 안따를지 고려할 것이라면 그 뜻을 찾는 것은 하등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하나님의 뜻은 찾는 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자에게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정도는 순종의 정도와 비례할 수 밖에 없다.

 

3. 하나님의 뜻은 마지막 것 까지 다 완전히 알려주시는 법이 없다. 대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시고 그 순종을 통하여 그 다음의 길로 인도하신다.

  • 아브라함 -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 불 분명한 명령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정확한 지점 (Exact Point)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 (Right Direction)으로 인도하신다.

 

  • 사도바울 : 다메섹 도성 - 너는 시내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게 이를 자가 있으리라.

시내로 들어갔더니 아나니아를 만나 그 다음의 계시로 인도하심

 

-> 한 걸음씩만 보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그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씩 right direction으로 가다 보면 어느 새 정확한 지점 (exact point)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J.I> Packer: 하나님께서 한 걸음씩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유는 우리와 기계적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고 하나님과 더불어 작품을 같이 만들어 가기 위해서이며 또한 우리가 그 작품이 되어가기 위해서이다.

 

  •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위한 안전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고 그 뜻을 이루어가는 인간의 모델을 제시하셨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그 분은 떡 (양식)보다 뜻을 위해 사셨다.

[마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떡을 위해 살지 말고 뜻을 위해 사는 성도가 되자! 뜻을 위해 살면 떡도 주어지고 뜻도 주어진다. 그러나 떡을 위해 살면 떡도 잃고 뜻도 잃는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영원을 바라보는 자.

 

켐벨 몰간 : 나의 집- 사라진다. 나의 가족 - 그들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의 뜻-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나의 무엇 무엇"은 다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 만이 진정한 내 것이 된다.

 

4. 실존적 현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해도 정말 알지 못해서 혼동 스러울 때, 뜻을 구해도 알려 주지 않을 때 - 그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실, 그 뜻을 구해도 여전히 아리송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이 그 분의 뜻

어떻게 찾고 따를 수 있을까 씨름할 수 있어야 한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 분의 뜻 :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그 분의 뜻을 찾기 위한 첫 번째 기준

 

1) 성경으로 가라: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주신 보편적인 뜻

분명하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 (Kown will of God) 로고스와 레마

출발은 언제나 그 분의 말씀 안에서 뜻을 찾는 것이다. 그런 매일의 삶 속에서 그 분의 뜻에 친숙하게 된다.

 

2)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을 경험하라

[요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께서 하시는 말 :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가르치시는 영

 

정말 그 분의 뜻을 알기를 원한다면 성령의 충만한 자의 조언을 구하라. (목회자나 목자나...)

그러나 그 조언을 최종적인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것을 가지고 골방으로 가서 더 깊이 물으라.

그 분의 뜻이 분명할 때까지 기도하고 확신하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는 신중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신속하라.

그런데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 분의 뜻을 구하는 데는 신속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너무 신중하다. 뒤바뀌었다.

 

사람

-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

- 자기 뜻에 따라 사는 사람

-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

 

양은 그 음성을 듣고 따른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어떻게 하나님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가? 우리가 그 뜻을 묻고 따를 적에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다.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

 

행하기 위해 그 뜻을 찾고자 하는 자는 시도에서 끝나지 않고 승리하게 된다.

 

언젠가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르는 데 인생을 드려라.

그 뜻을 찾는 데에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 뜻을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지 말라.

그 뜻을 찾기 위해 도움을 구하되 최종적인 분별은 성령님께 의지하라.

그 뜻을 찾는데 신중하되 뜻이 확실하면 즉시 순종하라.

 

하나님의 뜻 따르기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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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그리스도인의 행복 (벧전 4:7-11)

 

베드로전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유일하게 기록한 서신서입니다.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시기는 학자들마다 여러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는 AD 63년의 로마 대 화제 이후에 네로황제에 의해 그 화제의 원인으로 기독교인들이 지목되면서 시작된 대핍박과 환란의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는는 것입니다.

 

이 때는 이미 기독교 공동체가 이방의 여러 나라에 퍼져 있었지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때문에 극심한 핍박을 견뎌야 했던 시기입니다. 대화제의 범인으로 기독교인이 지목되었듯이 사회에 안좋은 일이 생기면 "교회 다니는 사람 때문"이야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지던 시기라는 것입니다.

 

[벧전 1:1-2]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전서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고난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기독교인의 자세, 혹은 신앙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믿음이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벧전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 우리는 무언가 고난을 받으면 죄의 댓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초대교인들 -> 우리는 피뿌림을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다. 고난을 갑옷으로 삼아라. 고난 받는 자는 죄에서부터 멀어진 자다. 보통의 상식과 반대되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벧전 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 정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게 된다는 것.

무언가 성공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정욕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잘 안 와닿을 수 있지만 우리가 승승장구 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지만 얼마다 마음이 들뜨고 경건치 못한 것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찾게 되고,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자,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환란의 날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고 기도하는 것. 필요한 것일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이런 환란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그런 위급한 때에 정신 차리고 기도하는 것. 성도가 가진 힘이자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런데 그 뒤의 구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이런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과는 맞지 않는 뜻밖의 권면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 Above all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아니 지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사랑하라 말씀합니다. 그것도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고까지 강조합니다.

 

그 다음 구절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9절)

서로 봉사하라(10절)고까지 합니다.

 

이렇게 힘든 때에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봉사하면서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가 아니라 "하는 것 같이 하라"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정말 힘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그런데도 힘들게 봉사하면서도 자기를 내세우거나 힘든 내색하지 말고 하나님이 힘주셔서 하는 것 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권면한다면 여러분, 아멘 하고 감사하면서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힘들어도 힘든 척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죽는 환경에서도 사랑하고 봉사하라니 우리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항상 하나님이 힘주셔서 하는 것처럼 하라니 이런 위선이 어디있습니까?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힘든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아니 상대방이 좋으면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할 것이고, 그저 그런 사람을 억지로 사랑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더니 급기야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내 몸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사랑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사랑마져도 교회 안에서는 부담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봉사해서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 마치 연약한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든 무엇이든 빼앗아 가서 만족하는 탐욕스러운 왕의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봉사하라고 하는가?

 

구원하셨으니 마땅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구하지도 않은 구원을 그것도 내가 태어나기도 까마득히 전에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면서, 잘 믿어지지도 않는 십자가를 말하면서 그러니까 너희는 고난 받으면서도 아무 소리 말고 감사하고 봉사하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모습이 그렇게 선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이라고 하니 봉사하면 주님이 영광받으시고 봉사 안하면 하나님은 영광 받지 않으시니 하나님은 봉사에 굶주린 분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분이고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요 우주의 주재시요 수많은 천사들이 수종든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봉사가 없으면 불편하고 부족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계명은, 그리고 그 중에서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봉사라는 것은, 봉사하는 삶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가진 사랑을 함께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가진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섬김이고 봉사입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왕으로 사시지 않으시고 종으로 사셨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것을 종들을 위한 종으로 오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 이 땅에서 사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도 종의 역할을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삶, 하나님이 감정,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요, 섬김이요, 봉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그 사랑의 삶, 돌봄의 삶, 봉사의 삶을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짐이 아니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자 사랑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면 돌보고, 섬기고, 나누어야 하는데 사랑이 정욕이 되고 탐욕이 되니까 주기보다 받기만 원하고, 결국은 돈을, 우상을, 게임을, 사람보다, 가족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행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봉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고, 예배하고, 섬겨야지만 만족하시고 살아가시는 무의탁 노인같은 분이 아닙니다 .

그 분은 불쌍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이 없어도, 헌신이 없어도 스스로 충만하시고 만족하시며 행복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 예배하도록, 헌신하도록, 봉사하도록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이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사랑을 알고 이 세상에 하나님 자녀답게, 하나님 닮은 삶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가장 기본적인 삶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삶

기도의 삶이고 사랑의 삶이고, 그것은 결국 섬김, 봉사의 삶입니다.

 

  •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Each of you should use whatever gift you have received to serve others, as faithful stewards of God's grace in its various forms.

-> 여러분 각각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남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형태의 은사를 통해서 남을 섬기도록 여러분을 은혜의 청지기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봉사하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께로 남을 섬기기 위해 받은 은사를 사용하라"는 말의 번역인데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마땅히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봉사하라고만 하면 마치 안해도 될 것을 해야하는 extra 짐으로 여겨지지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아니마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이 가정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아이들 양육하고, 학비 내고...가정 지출의 가장 큰 부분...

그런데 그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부모, 상식적인 부모라면 그럴 수 없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고 자녀이기에 마땅히 그 일을 한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위해 고생하면서 그것을 행복이라 말한다.

실재로는 그것 때문에 고생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고생을 행복이라고 표현한다.

왜?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고생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사는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가족, 성도들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성도를 사랑하며 수고 하는 것이 봉사이다.

 

 

왜? 나를 위해 살고 나 자신 만을 위해 사는 것보다 그 가족, 식구들을 위해, 사는 것이 삶의 맛을 주고 의미를 주고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조금 확장하면 저같은 목사는 교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고생하는 것이 사는 맛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너희들에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선물을, 은사를, 달란트를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George Beverly Shea 의 간증

1909년 캐나다 에서 감리교 목사의 여덟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경제 한파로 학업을 포기한 후 보험회사에서 세일즈 맨으로 일하던 중 NBC 라디오 프로에 나가 “가라 모세”를 불러 하루 아침에 일약 스타가 되었다. 방송출연 제의가 쏟아지고 돈과 인기가 굴러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에게 두려움이 몰려 들었다. 갑작스레 부와 인기가 찾아오니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가 하는 두려움과 언제 떠나갈 줄 모르는 그런 박수소리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찬양에 회의가 일었다.

 

어느날 그는 자기 옷 주머니 속에 넣어둔 어머니의 손편지를 잃게 된다. 평소에 어머니가 좋아하던 싯구가 그이 마음을 때렸다.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어떤 것도 그것과 바꿀 수 없다"...

잠시나마 엄청나게 짓눌렸던 쉬아에게 짧은 글이 믿음과 확신으로 그의 마음에 다가왔다. “그래, 예수님만이 나의 행복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는 즉시 그 아름다운 가사에 곡조를 붙이기 시작했다. 바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시가 음악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쉬아는 자신이 쓴 찬송 곡조를 부르며 다짐했다. “긴 시간 동안 주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주님만이 행복임을 고백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바라던 삶이었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헌신이었다.

 

며칠 후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을 때 쉬아는 확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주님만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방송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일생을 통해 쉬아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결정이었다.

 

1절은 ‘세상의 부귀’보다 ‘예수님’을, 2절은 ‘세상의 명예’보다 ‘예수님’을 그리고 3절은 ‘세상의 행복’보다 ‘예수님’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찬송은 ‘세상 부귀’(1절)로 간단히 번역됐지만 영어가사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세상의 금과 은, 큰 재물, 많은 집들과 땅보다 예수님을 기뻐하겠다고 고백한다.

1983년 74세 된 백발의 쉬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전도대회’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 후에 굵은 베이스 음성으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를 불렀다. 수많은 회중의 끝없는 박수에 쉬아는 다시금 고백했다.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뜨거운 박수 갈채도 예수님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워져 가는 교회

여러분의 신앙에서 무엇을 세우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를 닮기 원한다면 그 분을 따라 섬기는 삶에, 봉사의 삶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는 봉사하는 교회입니다. 은혜가 없는 교회는 섬김을 받기만 원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인 이유 - 주방봉사든지 이런 저런 봉사하면서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힘들어서 봉사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있어도 탓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지금도 아름답지만 그러한 봉사에 자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원한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 나와 우리 로고스 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George Beverly Shea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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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맞으며- 연결되고 세워져가는 교회

 

[엡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가 한 해 동안 계속적으로 묵상하며 경험해야 할 표어이다.

따라해보자.

"연결되고 세워져가는 교회"

 

우리 교회와 성도가 신앙 안에서 가장 지향해야 할 두 축을 보여주는 구절.

 

  • 연결되고 - Unity (연합, 협력, 하나됨)

성도는 합당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합당하게 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성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삶을 향해 "부름받은" 자들이다. 성도는 어떤 기준에 의해 선발된 자가 아니라 은혜로 "선택"되어 부름받은 자다.

 

그러한 부르심이란 다름 아닌 "서로 사랑"하기 위한 공동체이다.

 

좋은 성도가 무엇인가? 당신이 부모로서 혹은 신앙의 선배로서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언을 남긴다면 무엇이라 남길까?

말씀 많이 읽어라. 기도 많이 해라. 기도해야 산다. 누구처럼 십일조를 당부할 터인가?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하신 마지막 당부

"서로 사랑해라."

 

좋은 성도는 말씀을 많이 읽어야 되지만 그것만으로 안된다.

좋은 성도는 기도도 많이 해야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좋은 성도는 전도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고...다 좋지만 그것이 좋은 성도의 핵심이 아니다.

제자, 즉 좋은 성도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는 성도다.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고 귀신을 내어 쫓고 천상의 찬양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꾕가리라고 했다.

 

서로사랑하는 것을 특별히 "새 계명"이라고 하면서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들로 예수의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설교를 잘해서 기도의 능력이 있어서 예수장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사랑하는 자가 예수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요한일서 2장 10-11절에 보면

"빛 가운데 있다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또 어둠에 행하며 갈곳을 멀게 하니 이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그는 빛이 아니라 어둠의 자녀다. 구원받지 못한 자라는 극단적이고 무서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됨을 위한 구체적 말씀으로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엡 4:1-4]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겸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왜?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형상과 비전이 그에게 있으므로...

온유- 야생마가 길들여짐. 제멋대로 굴던 내가 말씀으로 길들여지는 것 - 온유

야생마 같이 살면 안된다. 우리는 주의 멍에를 메고 주를 주로 섬기는 주께로부터 훈련 받은 자.

오래참음 - 하나되기 위한 기본 자세

사랑으로 용납- 사랑없는 용납은 방관이요 방치.... 사랑 안에서 용납하는 것 만이 능력이 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 - 평안의 매는 줄 - 고통 중에서, 푹풍 중에도 주로 말미암아, 주로 인해 평안할 수 있는 마음. 우리가 참고 용납할 수 있는 능력- 주가 주신 평안.

 

  • 주와 함께 세워지는 교회 - Purity

신앙 생활의 목적 - 복받고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닮는 것, 주를 따르는 것, 주와 같이 사는 것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믿는 것-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 좋은 받- 기쁨으로 받아 순종하는 것

아는 것 - 그 말씀을 경험하는 것, 적용하는 것, 내 것이 되는 것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지 못하면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온갖 교훈과 풍조에 밀려 요동한다. 귀가 얇아 누구의 말을 들으면 금방 혹 하고 ...

비가 오고 창수가 나며 집이 무너지는 자 - 모래 위- 모래는 흙- 인간에 기초한 신앙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

 

결론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개개인의 교회된 성도도 범사에 그리스도를 따라 자람으로 거룩하여 지고 -
  • 공동체된 교회 역시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각 지체의 분량에 따라 그 전체 공동체가 자라고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세워지는 것이다.

 

연결된다는 것 (Unity)- 서로사랑하고 하나됨으로 서로 도움이 되어 결합되는 교회

세워진다는 것 (Purity)- 신앙의 목적이 문제 해결이나 자기 소원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닮고 따르는 것에 목적을 두고 나아갈 때에 교회는 스스로 세워진다.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가 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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